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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에세이] 질긴목숨

운영자 2007.09.10 16:39:35
조회 1845 추천 1 댓글 2

3. 스물에서 마흔넷


  질긴목숨



  1985년부터 시작된 직선제 개헌투쟁은 얼어붙었던 80년대를 깨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6년 5월 3일 인천에서 있었던 직선제 개헌투쟁은 그 분수령이 되었다. 때리면 맞고 잡아가면 갇히면서 민주화운동은 온 국민의 가슴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국군보안사령부는 5.3 직선제 개헌투쟁에 참여한 노동운동가들을 송파 보안사분실로 끌고 갔다.
군의 정보기관인 보안사가 민간인들을 잡아다가 족쳐도 괜찮은 세상이었다. 나는 5월 6일 보안사분실로 끌려가는 도중에 벌써 죽을 만큼 맞았다.

  개라도 그렇게 맞았으면 분명히 죽었을 것이다. 인간의 목숨이 질기기는 쇠심줄보다 훨씬 더하다는 것을 그 때 생생하게 체험했다. 그러고도 열흘 동안 전기고문, 고추가루 물고문, 몽둥이찜질 등 야만적인 고문을 수없이 받았다.

  고문 이후에는 고문 흔적을 없애기 위해서 온수욕과 안티푸라민 마사지와 약물 복용을 강요당하면서도 모진 목숨은 끊어지지 않았다. 나는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2심에서는 3년으로 줄고, 올림픽이 끝난 88년 10월 3일에 특별사면으로 2년 5개월 만에 풀려났다.

  서울구치소, 안양교도소, 목포교도소를 거쳐, 광주교도소에서 석방의 기쁨을 맛보았다. 내가 고문과 감옥생활에 대해 말하자면, 아마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할 것이다. 인간 가치가 밑바닥까지 떨어져 뭉개지고 절대 고독이 난무하는 그 곳이 바로 감옥이었다.

  감옥 속에는 또 다른 감옥이 존재했다. 벌방과 징벌방이라는 곳이었다. 이 곳에서 하는 독방살이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주었다. 일명 뺑끼통이라고 부르는 둥그런 통에다 아무런 덮개도 없이 똥오줌 물을 담아두었으니 코를 찌르는 냄새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인간이라는 사실 자체가 부끄러워질 정도였다. 인간이 짐승보다 못하다는 굴욕감으로 심적인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감옥살이를 하면서 다시는 감옥에 들어오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 십 번 되뇌었다.

  감옥 안은 분명 또 다른 세상이다. 감옥에 근무하는 교도관 중에는 담배를 팔아 수입을 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다보면 교도관들이 오히려 죄수들에게 담배를 팔았다는 이유로 약점이 잡혀 가격 흥정을 해오는 죄수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웃지  못할 일들도 벌어졌다.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대통령선거, 1988년 국회의원선거와 올림픽이 모두 지나갔다.
그처럼 중요한 시기에 갇혀 있는 내 처지가 몹시 아쉽고 안타까웠다.

  그래서 건강을 돌보며 잃어버린 세월을 조금이라도 만회하기 위해 담배를 끊었다. 나는 지금 그 모진 고문을 다 이겨내고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살아있다는 것은 다른 어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가치라는 사실을 나는 감옥생활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석방되던 날, 나는 진실로 나를 고문했던 사람들까지도 마음속으로 용서했다.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의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을 죄책감까지도 용서해 주고 싶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아픈 역사를 살아낸 우리는 모두가 피해자였다.

  나를 고문했던 사람들 중에는 지금까지도 연락을 주는 사람도 있고 진정으로 미안하다는 말도 해준다. 나는 이 사람들을 대하면 그저 반가운 마음일 뿐, 미운 감정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지난 아픔은 지금의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준 밑거름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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