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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쓰는 편지

운영자 2009.12.22 17:55:33
조회 552 추천 0 댓글 2

3월 10일 (목) 바르샤바, 맑음


아직 시차적응이 안돼  새벽 3시경에 일어납니다.

아침에 쓸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니 갑자기 <지갑을 주운> 기분입니다.


어제 오전 첫 일정은 폴란드 하원 입법위원장과 위원들을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그 다음엔 상원의 입법준법위원회 위원장단을 만나고 오후엔 법무부 차관을 만났습니다.


폴란드방문의 주요 목적은 폴란드의 법제 및 사법제도의 운영현황을 조사하여 제도개선과 입법활동에 참고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정도의 목적이라면 주한 폴란드 대사를 부르거나 전문가를 초빙하여 설명을 들어도 될 일입니다. 결국 비싼 돈 들여서 방문하는 목적은 직접 만나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의 설명이나 신문과 책으로는 전달되지 않는 눈빛과 체온 그리고 그 속에 담긴 고뇌와 희망을 읽는 일입니다.


폴란드 상원의 입법준법위원회는 한국의 법제사법위원회와 유사합니다.

그러나 하원의 경우 입법위원회와 사법위원회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상임위의 법안이 법사위를 거치는 한국과 달리 이곳에선 전체 법안 중 10% 정도의 중요한 법안만 입법위원회를 거친다고 합니다.


폴란드는 입법부의 권한이 꽤 강한 편입니다.

입법부를 거치지 않고 발효되는 대통령령이나 총리령은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유권자 10만명 이상 서명하면 법안을 발의하는 국민발의권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제고슈 쿠르축 하원 입법위원장은 소련공산당 중앙위 소속 사회과학대학에서 정치학 박사를 하고  현 집권여당인 민주좌파연합 정부에서 법무부장관을 지낸 사람입니다. 강인한 인상이었지만 민주좌파연합의 실권이 임박한 탓이지 얼굴이 밝지 않습니다. 상원의 입법준법위원장은 법학교수 출신으로 하원과 상원의원을 지낸 인물입니다. 60세의 이 여성은 단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 것 같은 독수리 상입니다. 루블린대학교수 시절 바웬샤의 자유노조를 대학에 만들었던 그는 지금 우파 야당 소속입니다.


모두 세시간 반에 걸친 대화였지만 법제, 입법등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끼리의 토론이다 보니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천정배의원은 폴란드 정치인들이 명함도 주고 받지 않고 배석자 소개도 없이, 정치인 특유의 너스레도 없이 바로 진지하게 대화를 시작하는 것을 보고 <자본주의의 때가 덜 묻었다>고 평가합니다. 이상철 대사는 동유럽 정치인들의 보편적인 특징이 덧붙입니다.


폴란드는 지금 정치적 대전환기에 들어섰습니다. 집권당인 민주좌파연합의 지지율은 5%선. 중도파와 우파가 다음 선거에서 집권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그러다 보니 총선 시기를 앞두고 갈등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빠르면 5월 늦어도 9월엔 현재의 여당이 야당이 되거나 해체될 가능성이 큽니다.


2001년 9월 총선에서 41%의 득표율로 집권한 민주좌파연합은 19%에 이르는 높은 실업율과 각종 부정부패 사건으로 지지율이 급락했습니다. 민주좌파연합의 실권은 폴란드에서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사실 폴란드는 여타 동유럽의 사회주의국가와는 다른 국가사회주의 권력해체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바웬샤의 자유노조운동으로 공산당권력이 흔들린 점이 바로 반공산당 세력과의 대화와 타협을 촉진시켰고 이로 인해 폴란드 공산당은 공산당에 대한 청산 과정없이 단계적으로 정권을 이양하고 그 결과 1989년 이후  주도적인 좌파세력의 하나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01년 9월 총선에서 민주좌파연합이 집권한 것은 마치 자유노조세력의 약화에 기인한 것입니다. 해체 및 몰락 직전의 일본 사회당이 40여년만에 집권하게 되었던 상황과 비슷합니다. 이제 민주좌파연합의 실각은 1980년대 말 이래의 구공산계열 대 비공산계열의 경쟁구도가 종언을 고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도 폴란드의 시장은 윤택해 보였습니다. 1인당 GDP가 한국의 절반 수준이고 명목임금 역시 절반에 불과하지만 싼 물가와 함께 무상의료제도 등 사회주의의 남은 유산으로 삶의 질은 눈으로 보기에도 높아보였습니다.


폴란드는 한국에게 중부동부유럽의 최대 투자국이며 폴란드에게 한국은 아시아에사 가장 많은 투자를 하는 나라입니다. 또 폴란드는 한국에게 중부동부 유럽국가 중에서 최대의 무역흑자국입니다. 폴란드는 대우자동차의 진출에 큰 기대를 걸었던만큼 아직도 한국자본의 진출을 강력히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국제적인 문제에 다앙한 것은 인상적입니다.  반핵, 반테러, 유엔개혁 등을 강하게 제기하는 모습은 한반도 문제에서도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한국정부에 비해 꽤 대조적입니다.


체코슬로바키아와 함께 북한의 추천으로 중립국감독위원회 일원이 된 폴란드는 한반도 문제에도 집착이 커 보입니다. 90년대의 체제 변화 후 북한으로부터 나가 줄 것 요구받았지만 계속 눌러 있었습니다. 1995년 마침내 단전, 단수까지 당하고 쫓겨나다시피 철수하긴했지만 지금도 1년에 서너차례 서울에 와서 스위스, 스웨덴과 함께 <중립국 감독위>회의를 하고 있습니다.


저녁은 대사관저에서 법사위 방문단 전원과 대사 및 직원들과 함께 했습니다.

몇 년전 650만불 들여 새로 지었다는 한국 대사관저는 일본대사관저와 붙어 있었습니다.

낮에 가본 한국대사관도 일본대사관 근처에 있었습니다. 마침 스페인대사관도 인근에 있다보니 이라크 참전국에 대한 테러위험 때문에 무장병력들이 상주하고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한국공관은 인도네시아 무장경찰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미국과의 오랜 특수관계 때문에 이라크에 참전한 폴란드도 병력을 점차 줄여가고 있습니다. 쿠르축 하원 입법위원장은 이라크의 폴란드군 머지않아 완전 철수할 것이라 말했습니다.


국회의 결의로 이라크의 평화와 재건을 위해 파병된 한국의 짜이툰부대 생각이 났습니다.

지난 6개월 간 짜이툰부대가 한 일은 두가지입니다.

그것은 짜이툰부대의 <평화>를 지키는 일이었고 또하나는 짜이툰부대 기지를 <건설>하는 일이었습니다.

쿠르드자치정부가 한국측의 이런 사정을 잘알고 주둔 댓가로 막대한 재정적 요구를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입니다.


해외 주재 대사관이 무장병력에 의해 지켜지고 있다면 그것은 정당하지 못한 국가정책 때문입니다. 대통령의 눈물 몇방울로 그 정당성이 회복되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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