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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REMAKE/ 운전교육 -13-

화로불판구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3.21 14:22:28
조회 226 추천 20 댓글 3


죽음의 기억을 잊기위한 시간은 7년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안나는 무서운 꿈이라도 꾼 듯, 눈을 부릅뜨고 잠을 자던 침대에서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이마엔 송글송글 땀이 맺혀 언제라도 또르륵 흘러내릴것만 같았고, 등에선 축축하고 서늘한 식은땀에 젖어선 잠옷의 얇은 면이 기분 나쁘게 달라붙어있었다.



경직된 듯 파르르 떠는 손끝을 매만졌다. 어두운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새벽의 바람이 창문을 간지럽히는 소리와 아주 먼 발치에서 가늘게 들리는 도시의 소음뿐. 어두운 시야속에서 무엇이라도 찾는 것처럼 빠르게 눈동자를 돌려 이리저리 공허한 방안의 사물을 훑어보았다. 새벽 두시를 가리키는 전자시계의 하얀빛만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다.



“하아..하아..”



마라톤이라도 뛰는 것처럼 호흡이 조금씩 가빠온다. 안나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잠옷 하의 속 자신의 은밀한 부분을 매만졌다. 젖었다. 제발, 이러지 않기를 바랐는데. 애석하게도 자신의 팬티는 체액을 머금고 촉촉이 젖어 달라붙어있었다. 가빠오는 숨이 점점 목끝으로 올라온다. 채울 수 없는 공허와 외로움이 섞인 울분이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껄떡대는 호흡과 터져나오는 흐느낌을 진정시킬 생각도 없이 자신의 이불보를 꽉 끌어안았다. 눈동자에선 이유모를 눈물이 방울져 흘러내렸다.



“아니야..잊어야해..제발..”


안나의 조그만 중얼거림은 고요한 방안을 타고 이리저리 부딫혔다. 소리는 저 멀리 날아가기도 하고 사물들을 지나쳐 벽을 타고 돌아와 들리지 않을 환청의 메아리가 되어 오는 듯 했다.



‘잊지마, 벌써 날 잊은거야?’


“..난..난 잊었어..제발..”


‘그렇게 간단히?, 과연 그럴까?’


“제발..제발 날 놓아줘..제발..”



무릎을 끌어 감싸안고는 이불을 뒤집어쓴 듯이 침대의 끝에 앉아 오들오들 떨었다. 추위가 아닌 짓눌렸던 기억들이 그녀의 마음을 차갑게 헤집어 놓고있었다. 눈을 질끈 감고는 고개를 무릎에 처박아 잊었다. 라는 말만 계속 중얼거렸다.



‘엘사는 살아있어, 너도 직접 봤잖아’


“..!!...아,아니야!! 그녀는 엘사가 아니야!!”


‘정말? 진심이야..?’



껄떡이던 안나의 호흡이 멈췄다. 어디선가 들려온 물음에 안나는 얼어붙은 듯 떨리던 몸도 멈췄다. 눈동자를 부릅뜬 채 방안의 한구석, 벽 너머의 무언가를 바라보듯 응시했다. 자신의 숨겨왔던 치부를 들킨 것만 같은 수치심이 밀려왔다. 그녀를 떠올리자 짓궂은 공허의 목소리는 작게 키득거렸다.



‘너도 알고 있잖아, 그녀가 바로 엘사라는 걸.’


“흐윽...흐으윽..아냐..아냐..”


‘엘사 에델바이스는 살아있어, 엘사 아렌델이 되어서..’


“흐으윽...아냐!! 아니야!! 그녀는...그녀는 내가 사랑했던 엘사가 아니야!!”


‘거짓말 하지마!!’


“아아악!! 아니야!! 제발..제발 그만둬 주세요!! 부탁드릴께요 제발요...”



두 팔로 머리를 감싸안고 고개를 빠르게 젓는다. 머릿속에 들려오는 더러운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듯 귀를 틀어막고, 작게 신음했다. 제발 떠나가기를 바랐다. 두 눈을 감고 두 귀를 막아도 방안을 돌아다니는 차가운 여성의 목소리는 떠날 기미를 보이지않았다. 언제나 존재했다. 자신의 옆에서, 때로는 꿈에서. 안나의 마음 속에서.



깔깔깔 비웃는 웃음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운다. 끊어질듯이 껄떡대는 숨소리로 잔혹하고 찢어지는듯한 목소리가 안나의 심장을 두드린다. 새벽의 고요덕에 그 웃음소리는 공기를 타고 더욱더 크고, 우렁찬 괴수의 목소리가 되어 안나의 몸을 감싸안았다. 핏발이 선 눈동자로 보이지 않을 소리를 쫒던 그녀는 이불로 몸을 둥글게 감싼체 오체투지했다. 무릎을 접어 절하는 듯이 엎드린 자세로 두 귀를 막고 흐느꼈다.



“그만해주세요!!..죄송해요!!..흐으윽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크하하하!! 잊지 못하겠지? 그렇지? 크하하핫!’


안나는 자신의 이마를 침대에 쾅쾅 찍었다. 모든 기억이 사라지고 잊혀지길 바라는 것처럼.



“네!! 네 맞아요!! 전 그녀를 못 잊었어요! 엘사 아렌델을 보고 그녀를 떠올렸어요!! 발정난 개처럼 흥분했어요! 그러니..그러니 제발 부탁드릴께요..절 괴롭히지 말아주세요..제발..”



두손을 들어 아무것도 없는 하늘에 싹싹 빌었다. 눈물로 가려진 앞은 모든 것이 흐려져 기괴한 형태가 되었다. 가다듬기 어려운 호흡이 폐를 진동하고, 가슴이 아파왔다. 옥죄어 오는 죽음과도 같은 손길에 온몸이 파르르 떨리고 차가워졌다.



‘더러운년’


“..맞아요..저는 더러운 년 이에요..다른 사람을 보고 죽었던 애인을 생각하며 젖어버린 더러운년이에요...흐으윽..”


‘너 때문에 죽었어.’


“죄송해요..죄송해요..그러니 제발..제발..괴롭히지 말아주세요..”



기다렸다는 듯 방안은 고요와 정적으로 가득했다. 안나의 처절한 흐느낌만이 벽 이곳저곳을 튕기며 메아리 치고 있었다. 수치심, 외로움과 자괴감이 가득찬 자신의 육체가 부끄러웠다. 자신은 스스로를 더러운년 이라고 외쳤다. 그게 사실이였으니까. 자신은 처음 보았던 여자에게 정욕을 느끼고 흥분했다.



너무도 닮았다. 얼굴도, 모습도, 목소리 마저도.


스스로가 싫었다. 기억 때문에, 잊고 싶었던 그 기억 때문에.



“흐으윽..흐윽...”


조금씩 진정되는 호흡이 싫었다. 이대로 심장이 멈춰 그대로 죽었으면 싶었다. 그렇다면 자신도 그때처럼 자연스레 잊혀질수 있겠지. 가슴 속,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존재하던 핏덩이가 꿈틀대듯 더러운 이 상처도 사라지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편해질수 있지 않을까.



몸을 둥글게 말아 감싸안은 자세가 된 안나는 이불로 자신의 온 몸을 가리듯 덮었다. 작은 고치가 되어 영원히 이곳에서 말라가기를 원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시간을 흘러가고, 심장은 멈추지 않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콩콩 자신의 가슴속에서 열심히 두근거렸다.



그렇게 안나는 잠에 들었다. 빠져나오지 못할 죽음의 목소리를 벗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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