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yourname&no=307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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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째서인지 모든 일이 처음부터 잘못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나를 집요하게 구속하고 옭아맸다. 계단의 맨 아래쪽 단이 부서져 버려 전혀 위로 올라가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그 날 당직이었던 나는 학생들이 모두 하교한 뒤에도 학교에 남아 남은 업무를 처리하거나 문고본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황혼이 질 무렵의 학교는 내가 책장을 넘기거나 키보드를 치는 소리를 뺀다면 섬뜩할 정도로 조용했다. 마을 어딘가에서 폭발음이 들리고 정체불명의 여자아이가 화재가 일어났으니 고등학교로 대피하라는 방송을 마을 전체에 송출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원래대로라면 마을 회관에서 흘러나와야 할 대피 안내 방송이 내가 있는 이토모리 고등학교의 방송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전파 탈취인가? 회관으로부터 그 어이없는 사실을 전해들은 나는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방송실로 향했다. 머리를 양 갈래로 땋은 여자아이가 문이 열리는 소리도 듣지 못한 채 종이 대본을 들고 떨리는 목소리로 방송을 내보내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가 누구인지 바로 알아보았다.
나토리 사야카,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에 문제를 일으키는 일도 없어서 평소에 크게 눈에 띄는 아이는 아니었다. 이런 일을 저지를 만한 아이가 전혀 아닌데. 왜 그랬냐고 물어봐도 나토리는 그저 훌쩍거릴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 아이를 학교 밖으로 데려가던 도중에 하늘에서 혜성이 갈라졌다. 나토리가 나를 원망하듯이 손가락으로 혜성을 계속 가리켰다. 가만히 대기할 것을 지시하던 마을 회관에서의 안내 방송은 이토모리 고등학교로의 대피 훈련 안내 방송으로 바뀌었고 운동장에 사람들이 운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혜성이 직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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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구호 물자 분배를 부탁드립니다."
"아, 네."
교사라는 공적인 신분을 가진 나는 혼란에 빠진 주민들을 통솔해야 했다. 곳곳에 돗자리가 깔리고 학교 교실에서 의자를 꺼내와 앉는 사람도 있었다. 갈 곳을 잃은 사람들은 낮에도 의기소침한 채로 담요를 덮고 잠이 들거나 사라진 마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곤 했다. 아침 해가 산등성이 위로 솟아올랐지만 나에게는 그 해가 전혀 밝게 보이지 않았다. 평소에는 따뜻하게만 느껴졌던 햇살은 온기를 잃어버렸고 갈 곳 없는 사람들은 그런 햇살에도 기뻐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뻐할 수도 없었다.
한숨을 내쉬면서 물병이 담긴 박스에서 생수를 꺼내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가끔씩 나를 알아보는 학생들이 있었지만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나는 간신히 웃어줄 수 있을 정도였다. 입꼬리가 쇳덩어리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박스를 낑낑대며 들어올리려고 했지만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동료 남자 선생님이 그 박스를 다른 구역으로 옮겨주었다.
버려진 의자에 앉아 잠깐 쉬고 있는데 등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키노 선생님!"
살짝 고개를 돌려보니 학교에서 나를 졸졸 따라다니던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 세 명이 나에게 뛰어오고 있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그 셋을 함께 품에 안았다. 무사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셋을 안은 팔이 가늘게 떨렸다.
"너희들... 괜찮아? 다친 데는 없고?"
도쿄에서 학교를 그만두기로 했던 날 있었던 일들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오랜만에 학교로 가면서 느꼈던 전철의 불쾌함, 교장실에서 퇴직서를 제출하던 일, 그 사람과 지극히 공적인 대화를 나눈 일, 복도에서 우연히 그 아이와 마주쳤던 일, 그리고 고개를 떨구고 교문 밖으로 나가는 길에서 만나 나를 위해 울어 주었던 아이들까지. 마음 속에 영원히 묻어둘 수 있기를 바랐지만 결코 완전히 묻히지 않고 나를 괴롭히는 아픈 기억들이었다.
그래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열여섯 살의 나보다 나아진 게 없구나. 운동장의 흙이 눈물을 빨아들여 조금 진하게 변했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이들도 함께 울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안심시켰다. 나는 아이들이 떠난 뒤에도 한참 동안 의자에 무기력하게 앉아 있었다.
교사들은 평소 근무 시간까지 봉사하거나 각종 잡무를 담당하는 게 원칙이었지만 나는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도 학교 운동장에 남았다. 그 동안 여러 가지 물품을 실은 헬기들이 내리고 물자를 조달하고 다시 뜨기를 반복했고 돈이 많은 사람들은 한 발 앞서서 임시 캠프를 떠났다. 슬슬 차가워지는 10월의 밤 공기 때문에 학교가 난민들에게 개방되었고 정부는 그들을 위한 대책을 수립하는 데 힘썼다. 사람들은 학교 안으로 몰려들어 차가운 바닥 위에 자리를 깔고 웅크린 채 잠을 청했다.
동료 선생님들이 전부 퇴근한 뒤여서 직원실에는 나 혼자만 남아 있었다. 전자기기들이 작동하지 않아서 어두운 달빛만이 유일한 광원이었지만 그마저도 건물 안을 밝게 비출 정도는 아니었다.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는 예감이 찾아와서 아까 그 아이들에게 인사라도 건네려고 교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와중에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나토리, 잠깐 밖으로 나와 줄래?"
거절당할까봐 걱정했는데 나토리는 다행히 군말 없이 나를 따라 복도로 나왔다. 알고 싶은 것이 있었다. 어둑어둑한 복도에 마주 보고 섰지만 빛이 없어서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긴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나의 의도를 전부 눈치챈 것 같았다.
"선생님, 그 일에 대해서는 이야기해드릴 수 없어요. 그럼 제 친구들이 곤란해질 수도 있어서... 죄송해요."
나토리는 그 말을 끝내고 꾸벅 인사를 한 다음 도망치듯이 나에게서 멀어졌다. 다그쳐 물을 생각은 없었기에 나는 다시 교실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나토리의 희미한 뒷모습을 눈으로 좇기만 했다.
나토리의 친구라면 떠오르는 아이들이 있었다. 미야미즈 미츠하와 테시가와라 카츠히코. 점심 시간에 세 명이 모여 운동장 구석에서 도시락을 먹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미야미즈는 자기 자신에 대해 밝히기를 꺼려하는 아이였지만 워낙 유명해서 나는 얼떨결에 그 아이가 정장의 딸이며 신사의 후계자라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평소에는 조용하게 지내지만 가끔은 자신의 이름을 까먹거나 성격이 돌변하는 등 조금 특이한 아이였다. 테시가와라에 대해서는 건설 회사를 운영하는 집안에 있다는 것 외에는 아는 사실이 거의 없었다. '친구들'이라면 이 둘을 가리키는 게 분명했다. 두 명이 무슨 일을 했던 건지에 대해서는 짐작이 가는 바가 없었다.
내가 신경쓸 일은 아닐 것이다. 스스로가 무책임하게 느껴졌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쯤이면 다른 곳에도 이토모리의 일이 대서특필되고 있을 것이다. 그 추측이 반드시 맞았으면 해서 집으로 가면서 핸드폰을 열어 뉴스 헤드라인을 확인하고는 안도했다. 도쿄의 그 아이는 잘 지내고 있을까. 사라진 시골 마을의 깨끗한 하늘에 별이 특별한 규칙 없이 이곳저곳 박혀 있었다. 내가 걷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헬기가 소음을 내며 날아갔다.
나의 2013년은 어떻게 이렇게 운수가 따라주지 않을 수가 있는지.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자조 섞인 그 말소리는 입술을 통해 퍼져 나와 공기 중으로 금방 흩어졌다. 그 아이도 도쿄에서 함께 밤하늘을 바라보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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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yourname&no=321812
별이 떨어진 뒤에 유키노 선생님의 이야기. 아무래도 센세가 나오면 언정 얘기를 안 섞을 수가 없네.. 다음 화는 누구로 할까 대충 구상해보고 적겠음. 등장인물이 많지가 않아서 길게 써 봤자 5~6화 정도로 끝날 것 같다
마음에 들었으면 밑에 있는 글들도 한번 읽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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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yourname&no=290810
3편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yourname&no=299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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