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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523 PWS 펍 브롤 사진
경리단길 타코 아미고 3층에서 진행.외국인 관중이 반 이상이었고 진행도 다 영어.현장에는 시호랑 별빛나루, 하다온이 관전.1경기는 KA키드 vs 오메르타, PWS 스트릿 챔피언십 매치.KA키드 악역인 줄 몰랐는데 악역이더라.좁은 공간임에도 이것저것 다양한 기술 많이 나와서 재밌었음. 중간에 별빛나루와 하다온은 찹 한대씩 때림.아나운서 겸 심판을 맡은 찰리의 편파판정에 힘입어 KA키드가 챔피언 방어.2경기는 이랑 vs 포이즌 로즈.인터젠더 매치인데다 중간에 KA키드가 개입해 악역 연합으로 가세하는 바람에 포이즌 로즈가 빠르게 패배.여성 상대로 2:1로 싸우는 비열한 모습에 관중의 야유가 끊이질 않았다...3경기는 태그팀 매치, 오메르타-포이즌 로즈 vs KA키드-이랑.앞서 2경기를 내준 외국인 듀오가 최종전에서 두들겨패면서 승리.철판으로 두들겨패는 오메르타의 파워가 아주 인상 깊었음.편파 판정을 일삼던 찰리까지 응징하면서 경기 마무리.좁은 공간이긴 하지만 그래서 더욱 가까이서 볼 수 있고, 스팟 하나하나마다 집중이 안될 수가 없음.프로레슬링을 좋아하면 꼭 한번 가보면 좋겠다.선수들이랑 직접 대화 나누고 하이파이브하는 경험은 참 즐겁네.
작성자 : 프갤러고정닉
조선 후기 무당 이미지에 대해서 알아봐요
조선시대 후기 무당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존나 무당에게 엉엉 빌고 모든걸 맡긴 뭐 그런걸 상상할수도 있습니다그런데 조선 19세기 사람들의 무당을 바라보는 관점은 좀 독특했습니다그럼 우리 이것에 대해서 가볍게 알아봐요휘비고 디비고 레츠고~~`조선 후기 사람들은 무속을 완전히 미신이라며 버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당의 말을 무조건 절대적으로 떠받든 것도 아니었습니다 병이 나거나 집안에 불행이 생기면 굿을 하고, 죽은 사람의 넋을 달래기 위해 무당을 부르는 문화는 여전히 생활 속에 깊게 남아 있었죠 그런데 19세기쯤 되면 민중문화 안에서 무속을 믿으면서도 동시에 웃음거리로 만들기 시작합니다 쉽게 말하면 귀신 장사하는 새끼들 좀 웃기지 않냐? 라고 생각한거죠 대표적인 예가 배뱅이굿인데요 이름만 보면 진짜 굿 같지만, 실제로는 굿의 형식을 빌린 소리극에 가깝습니다기본 줄거리는 배뱅이라는 여성이 죽고, 그 넋을 달래기 위해 부모가 굿판을 벌이는 이야기인데 여러 무당이 등장하고, 죽은 사람의 혼을 부르고, 굿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여기서 재밌는 부분이자 진 주인공이라 볼수있는게 가짜 무당인데요, 배뱅이의 부모가 딸의 넋을 달래려고 굿을 벌이는데, 그 과정에서 재산을 노리는 가짜 무당이 등장합니다 이 가짜 무당은 진짜 신내림을 받은 존재라기보다, 사람들의 슬픔과 불안을 이용해 돈을 뜯어내는 사기꾼입니다 조선 사람들은 굿을 나름 무서워했습니다 죽은 사람의 넋, 원혼, 재앙, 병 같은 것은 당대에도 문제였으니까요 그런데 동시에 사람들은 굿판 뒤에서 벌어지는 역겨운 장면도 알고 있었던거죠 무당이 진짜 귀신 보는지 아닌지, 굿이 진심인지 장사인지, 슬픔을 달래는 의례인지 삥뜯는 굿판인지 애매한 경우가 많았겠죠 그러니까 사람들의 태도는 무조건 무속 다 사기임 ㅋㅋ이 아니라 굿도 필요할 수 있는데, 저걸 빌미로 장사치는 놈들은 좆같네 진짜이거였습니다배뱅이굿 같은 소리극만 봐도, 굿의 구조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만든 소리극 입니다 굿거리, 무당 말투, 장단, 제의 분위기를 모르면 그런 풍자가 나오기 어렵거든요 아예 모르는 사람이 대충 미갴ㅋㅋㅋ 비웃는 게 아니라, 굿판을 자주 보고 듣던 사람들이 씨발련들 작작해라 ㅋㅋㅋ 이런식으로 비꼰거에 더 가깝습니다 전에는 굿판이 벌어지면 신이 온다, 무당이 말한다, 죽은자가 말한다..는 식으로 엄숙하게 받아들였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배뱅이굿 같은 극에선 엄숙한 구조가 희극이 됩니다 신성해야 할 무당은 우스꽝스러운 인물이 되고, 엄숙해야 할 굿판은 코미디가 되고, 두려워해야 할 초월적 세계는 사람이 꾸미고 연기하는 무대가 됩니다 점점 이것도 결국 인간 사회의 문화 아니냐? 하고 보는 시선으로 바뀌는거죠지금 사람들도 사주나 신점을 완전히 믿는 건 아니면서 재미로 보고, 무당은 수상하다고 하면서 무속 유튜브나 공포 썰은 봅니다 귀신은 없다고 말하면서도 폐가 체험은 무섭고, 점은 안 믿는다면서 새해 운세는 확인합니다 조선 후기 민중들도 비슷했습니다 무속을 생활 속에서 완전히 끊어내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무속의 권위를 100% 순종적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았고오히려 비꼬고 시발련들 ㅋㅋ 이런 관점에서 보기도 했습니다 조선 사람들도 미신을 깨우쳤다..라기 보단 더 정확히는 믿으면서도 의심하고, 의지하면서도 비웃고, 두려워하면서도 공연으로 만드는 복합적인 존재이자 일종의 문화 현상 이였습니다굿은 여전히 필요했지만, 굿판은 때론 웃음거리였고무당은 두려운 존재였지만, 동시에 사기꾼 캐릭터 였습니다 뭐 현대에도 반도체 공장 세우는데 돼지 머리로 제사 지내는,이런 문화가 남아있으니까요 세상만사 늘 복잡한거 같습니다관련문서: 원래 내용이 좀 많았는데 제가 줄이고 자른게 많으니 더 자세한 내용을 보고 싶다면 이 2개의 논문 추천드립니다 좆노잼 똥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조선시대 무당은 세금 내는 합법 장사였습니다안녕하세요이상하게 싱갤에서 미신이나 무속글 좋아해서한편 더 써봅니다 (은근 무속 좋아하는 싱순이들이 많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으흐흐)즐겁게 읽어주세요 휘비고 디비고 레츠고~ 조선은 겉으로 보면 성리학 국가라서 무속을 되게 싫어했다고 대부분이 아실테고 뭐 사실 완전 틀린말은 아닙니다성리학 관료 입장에서는 무당이 굿하고, 귀신 부르고, 병 고친다고 하고, 액막이한다고 돈 받는 게 딱 유교 질서 흐리는 잡신 장사처럼 보였을 겁니다 그래서 무속은 자주 음사(바르지 못한 제사) 취급을 받았고, 국가도 금지하거나 밀어내려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도 모순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욕하던 무당들에게 국가가 무포세(무당 세금)을 걷었습니다 이 무포세는 고려 말부터 시작되어 1895년까지 이어졌고, 이 제도 덕분에 조선 후기에도 무속이 유지될수 있었습니다세금을 걷는게 좆친 않지만여튼 국가에서 인정한 직업이란 얘기니까요 조선 정부 입장에선 무당? 사상적으로는 마음에 안들죠 근데 백성들은 계속 찾고 굿판도 계속 열리니까 아예 없애긴 힘들었습니다그래서 일단 명부 올리고 세금이라도 걷자고 판단을 내린걸로 추정됩니다 유교 이념만 보면 무속은 때려잡아야 하는데, 현실 사회에서는 출산, 전염병, 죽음, 재앙, 마을 제사 같은 문제에서 무당 수요가 계속 있었습니다 백성 입장에서는 의학도 부족하고 행정도 모든걸 해결할 순 없고 흉년이나 가뭄 같은 재난은 자주 오는데, 성리학적으로 마음을 닦으셈만 듣고 살 수가 없었습니다 애가 아프고, 흉년 들고, 집안에 초상이 나고, 장사 망하면 사람은 결국 사람 심리라는게 굿판으로 갈수 밖에 없거든요 조선 조정도 이걸 완전히 뽑아낼 수 없었고 무당의 수요를 인정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골때리는건 조선 후기에도 궁궐을 담당하는 국무당, 지방 관아를 담당하는 아무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국가가 무속을 공식적으로 깔보면서도, 궁궐과 관아 담당 무당이 남아 있었던 거죠 우리는 유교 국가라 미신 ㄴㄴ 해놓고 뒤에서는 근데 궁궐 쪽 미신 일은 네가 좀 봐봐 하는 꼴입니다 조선시대 성수청, 활인서 같은 국가기관에 국무당이 소속되어 있었고,이들이 명산대천에서 왕실의 복을 비는 별기은제, 기우제, 그리고 왕비나 태후들의 무제와 궁중 병굿을 담당했습니다국무당은 아니지만 안좋은 쪽으로 명성왕후가 유명하죠물론 단순히 조선 왕실도 무당 신봉했다!라고 과장하면 안 되지만,최소한 국가 권력 주변에서도 무속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건 분명합니다서울 무당을 한강 밖으로 쫓아낸 것도 생각해보면 웃깁니다 대전통편에는 경성 안의 무녀를 강 밖으로 쫓아낸다는 규정이 있었고, 여기서 강은 한강을 뜻합니다 즉 도성 안에서는 무당 장사 하지 마라는 건데 그런데 이게 생각해보면 보면 한강 밖에서는 무당 일을 하는걸 인정한다는 말이 됩니다 완전 금지가 아니라 눈에 거슬리는 중심부에서는 꺼지고, 외곽에서 하셈에 가까운 정책이었던 셈이죠요즘 식으로 말하면 우리 동네 이미지 떨어지니까 번화가에서는 하지 말고 외곽으로 빠져라 같은 도시 정비 계획과 비슷하죠고을굿(동네 단위가 아니라 고을,지역 단위로 벌이는 큰 굿판)이 계속 이어진 것도 흥미로운데요 조선 후기에도 고을굿이 지속되었고, 유교적 동제(마을 제사를 유교식으로 정돈한 것) 가 정착하면서 기존의 마을굿이 별신굿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계속 이어졌습니다 또 상업이 발달하면서 시장에서의 별도의 별신굿도 생겨납니다 무속은 미신으로만 남은 게 아니라, 마을 공동체와 시장 문화 속에서도 계속 변형되어 살아남았습니다 유교,불교,상업,마을문화랑 섞이면서 형태를 바꿔 살아남은거죠 조선의 무속 탄압은 싹 다 없애버리겠다!!보다는 관리 가능한 형태로 바뀐것에 가까웠습니다 국가 입장에서는 무당이 도성 한복판에서 활개 치면 유교 국가 체면이 안 살고 양반들이 보기에도 꼴 보기 싫지만하지만 백성들이 계속 찾고, 마을굿도 있고, 관습도 있고, 세금도 걷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조선은 무속을 완전히 박멸하지 않고, 욕하면서 등록하고, 세금 걷고, 금지하면서 필요할 땐 불러다 썼습니다 이게 조선 후기 무속의 모습이었습니다양반들은 무속을 깔봤습니다 어리석은 백성들이나 믿는 것, 여자들이나 빠지는 것, 잡귀 믿는걸로 봤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양반가도 집안에 일이 생기면 점치고 굿하고 액막이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밖에서는 잡귀라고 욕하지만, 사적 생활에서는 씨발 혹시 모르니까 한번 해보자..를 시전한거죠 이건 현대랑도 비슷합니다 싱붕이들도 평소엔 사주,타로,점집을 ㅋㅋ 미신잼 ㅋㅋㅋ이라고 하면서, 막상 입시, 취업, 결혼, 이사, 수술 날짜 잡을 때 어머니나 가족의 설득에 그래..혹시 모르니까..하면서 나쁜 날은 피할까.. 하는 그 심리와 비슷하죠 그래서 조선 무속을 단순히 탄압받은 민간신앙으로만 보면 또 애매합니다 더 정확히는 멸시받았지만 필요했고, 금지됐지만 이용됐고, 천대받았지만 행정적으로는 세금내는 인정받은 직업이였습니다 무당은 사회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었지만, 사람들이 불안할 때 찾아가는 현실적 상담자이기도 했습니다 국가가 보기엔 미신따리 미신따 존재였지만, 백성 입장에서는 질병,재난, 가정불화, 죽음 같은 문제를 처리하는 생활 서비스업자였습니다 심리상담소, 장례 컨설팅, 재난 액막이, 지역 축제 기획자를 전부 했던 셈이죠 교과서에서는 조선은 성리학 국가라 무속 탄압했음 한 줄로 끝나지만...현실은 좀 더 복잡했던 셈입니다 관련문서 이정도 추천 드립니다 잘라먹은 내용이 많고 압축요약을 많이 했으니원문을 보는것도 추천드려요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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