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이전 한국에서 체류하던 화교들은 거진다 대만계 중화민국계 였음근데 인종차별 정서가 있어서...중화요리계로 많이 갈 수밖에 없었다 함일본에서 광동요리를 익힐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후덕죽 명인이 요리 수행을 하시던 70년대 시기에는 아직 한중 수교가 되어 있지도 않았었구후덕죽 명인이 2000년도 들어와서 한국 국적을 취득 하셨기 때문에 대만인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일본에 광동지역 출신 인사들이 중화 요리를 하고 있어서 거기로 가서 배울 수밖에 없었다 함당시 후덕죽 명인의 성공이 화교 출신들에게는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함지금은 화교 차별이...없지 않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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