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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갤문학] 느끼지 마라, 감춰라 - 1

abc초콜릿(116.126) 2020.03.12 11:33:38
조회 767 추천 51 댓글 22
														

프로즌 1에서 대관식 파티할 때 엘사가 마법을 터뜨리는 사고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하는 생각에 써봤어. 






1초도 빠짐 없이 푸른 천으로 덮혀있던 왼손이 결국 드러나버리자 몸의 모든 신경은 그 쪽에 온 집중을 기울였다. 공기 중의 입자가 조금씩 맨손에 붙으면서 얼음 조각이 나타나는 게 느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장갑을 돌려달라고 외치며 안나에게 안전한 쪽의 손을 내밀었지만 그녀는 물러서듯이 뒤로 피하며 애원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살짝이라도 건들면 눈물이 쏟아져 내릴 듯이 간절한 눈빛을 반짝이며 울먹이듯 입술을 꿈틀거렸다.



"언니, 제발... 제발 이렇게는 못 살겠어..."



갑작스러운 결혼 약속부터 아직 남은 대관식 일정까지 새하얕게 가려졌고 서둘러 자리를 피해야겠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나는 지금 차가운 바다 위에서 숨떨리는 줄타기를 하고 있다. 힘겹게 건넌 줄의 반 이상을 넘기는 참이다. 단 한 순간이라도 정신을 놓아버리면 13년의 노력이 무너지겠지. 그리고 그 결과는 어느쪽에게든 위험할 것이 분명하다. 



"그럼.. 떠나."



힘겹게 입술을 움직여 비수 같은 말을 꺼내야 했다. 잠깐만, 실례할게 따위의 더 부드럽고 동생을 배려할 수 있는 말들이 뒤늦게 떠올랐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당장 해야할 일은 방에 쌓아둔 장갑을 다시 쓰고 날뛰는 것을 억누르는 심정을 가라앉히는 것이다. 갑자기 손이 드러나는 일은 이번이 거의 처음이지만 가릴 수 있는게 장갑만 있는 건 아니었다. 추위에 떠는 사람처럼 스스로를 껴안았다. 이렇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



두 마디의 짧은 말에 모든 것을 잃은 표정으로 날 바라본 안나가 끝없이 아른거렸다. 그리고 지진 같은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안나의 계속되는 질문 앞에서, 그동안 꿈쩍도 하지 않은 채 땅 위에서 버티던 나의 요새는 흔들리고 있었다. 



"대체 뭐가 그렇게 두려운건데!"



"그만 하랬잖아!"



이번에야말로 따뜻한 말을 던져보고 싶었지만 순서를 제치고 내던진 차가운 말. 불길이 되어 당장이라도 손 끝에서 터져나올 것만 같은 힘은 천만다행이도 문고리 앞에서 조금 진정되었다. 이 자리에서 왼손을 휘둘러버렸다면 내 방에서처럼 날카로운 얼음 송곳이 온 무도회장을 덮어버렸을테고, 안나를 또 다치게 했을 것이다. 비좁은 잔 속에서 넘치기 직전까지 쌓인 능력을 거친 숨으로 잠깐 새어나오게 했다.  



잘 했어. 지금처럼만 계속 하면 돼. 여태까지 했던 것 같이 앞으로도 쭈욱. 칭찬 같지도 않은 칭찬으로, 폭발 직전까지 갔던 감정을 진정시키며 문을 닿았다. 힘겨운 짐을 내려놓듯이 풀려버린 긴장 때문에 등이 벽에 닿을 뻔했지만 다행히도 그 직전에 멈출 수 있었다. 어깨 아랫쪽이 닿은 자리에 희미한 서리가 붙었다. 따뜻한 실내 온기에 그것이 녹아내리기를 빌며 방을 향해 최대한 느리고 진정된 것으로 보이는 걸음걸이로 움직였다.






비명을 지르지도, 재촉하지도 않는 내 작은 방만이 여기 궁전에서 숨쉴 수 있고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겨우내 방 공기를 마셨을 때는 몇 십년 만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한 쪽만 남아 쓸모 없어진 장갑을 가지런히 접은 다음 상자를 열었다. 진한 파랑색 수십 장이 서류들처럼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어차피 일정 때문에 나가야 하는 몸이지만 단 1초라도 시원하게 있고 싶은 마음에 망토와 구두, 외투를 벋고 내려좋았다. 구두를 벗을 때는 발을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조이던 깔창에서 자유로워진 덕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습관처럼 구두를 뒤집었다. 모래 알갱이 같은 눈가루가 떨어져내렸다.




발코니 밖에서는 예정대로 여왕을 알현하면서 여러 민원을 제의하는 행사를 대기하는 인파로 가득찼다. 사람들과 대화하며 필요한 것을 돕는 게 의무이자 10년 넘게 공부한 것의 목적이지만 내 안의 장벽을 넘을 수 없었다. 아렌델은 헌신적이고 부드러운 왕을 원한다. 언제 누굴 죽일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아니라. 




사시나무처럼 파르르 떨리는 손을 굳게 입을 다문 문에게 가져갔지만 조금씩 기온이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쩌적. 발이 닿은 곳을 중심으로 바닥은 서리에게 묻혀갔고 천장과 벽의 고드름은 서로 맞닿을 기세로 자라났다. 




"폐하. 시간이 되셨습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오.. 오면 안돼."



다시 내쳐야 했다. 어느새 얼음굴이 되버린 방이 들켜버리면. 오늘 모든 일정을 취소하라는 쪽지를 써서 밖으로 보낸 다음 얼음조각들을 정리하기 위해 서랍에서 끌과 망치를 꺼냈다. 서리를 긁어내어도 몸이 닿을 때마다 계속 얼어붙었다. 헛수고였다. 온 바닥을 세 번씩 긁어내고 나서야 악화가 멈췄다. 어느새 쌓아둔 조각은 양동이 다섯 개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많았다. 13년이 헛수고였다는 생각이 뼈저러게 느껴졌다.



이제 사고치고 수습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방보다 집무실에 지낼 시간이 몇 배는 될테니까. 이 침실은 오로지 나만 들어갈 수 있고, 내가 숨실 수 있는 유일한 성역. 



성 밖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밖으로 나가면 저 아름다운 분수도 사람들도 얼어버리겠지.



울적한 감정을 뒤로하고 침대에 누웠다. 주변이 차가워지지는 않았지만 몸 속이 서서히 무거워진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 차라리 여기에만 있어주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주지말고, 나만 괴롭혀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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