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G를 떠나 KT위즈로 합류한 첫 해, 원석은 전반기 믿을 수 없을 만큼 좋은 성적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꼭 한 사람이 있었다.
베테랑 포수, 성우.
그의 경험과 리드 그리고 그곳은 묵직했고, 무엇보다 원석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
하지만 팀은 모른다.
둘 사이에 그 이상의 감정이 얽혀 있다는 걸.
선후배보다, 팀메이트보다, 배터리보다 더 깊고 더 위험한 무언가가 있다는 걸 말이다.
원석은 팀에 합류한 뒤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지만, 후반기부터 컨디션이 이상하게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패스트볼 구속은 뜨는데 제구가 들쭉날쭉했다.
그리고 그걸 가장 먼저 눈치챈 사람은, 늘 그의 전담포수로 마스크를 쓰고 있던 성우였다.
이날의 경기에서도 원석의 제구는 2회부터 눈에 띄게 흔들렸다.
직구가 높게 떠오르고, 변화구는 손에서 빠르게 흘러내렸다.
덕아웃에서는 이미 “원석이 ,오늘 컨디션 왜 저래?”라는 말들이 조용히 오갔다.
6회초 참다못한 성우는 마스크 너머로 원석을 보더니 바로 타임을 걸었다.
내야수들이 마운드에 모여드는 동안,
성우는 일부러 천천히 걸어갔다.
누가 봐도 불호령을 내리러 가는 선배의 걸음이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연인을 사랑하는 애정이 분명 담겨있었다.
원석이 입을 열기 전에,
성우가 먼저 낮게 말했다.
“오늘 아침 비가 와서… 돌아버린거냐?”
말투는 담담하지만, 안에 꽉 찬 힘이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퍽!
성우의 주먹이 정확히 원석의 얼굴을 가격했다.
강하게 때리는 건 아니었지만,
옆에 있던 내야수들이 동시에 몸을 움찔할 만큼
소리가 또렷했다.
“선배님… 그 정도까지 하셔도 돼요?”
“와… 이건 좀 세다…”
팀메이트들이 웅성거리지만,
성우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정신 차려. 너 기량 있는 투수야.”
라고 말하면서 원석의 헬멧 턱을 두 손가락으로 살짝 들어 올렸다.
거칠고, 확실하고, 아무도 쉽게 할 수 없는 제스처.
원석은 그 순간
혼란이 싹 지워지고, 시야가 하나의 점으로 모이는 느낌을 받았다.
바로 이 자극.
이 단단한 한 번의 통증이
원석의 집중 스위치를 켜는 걸
둘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건 패티시도, 폭력도 아니었다.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원석 고유의 루틴.
그리고 그 루틴을 정확히 실행할 수 있는 단 한 사람 성우.
오직 성우의 주먹 맛이 원석을 각성시킬 수 있었다.
성우가 마지막으로 낮게 말했다.
“만년 백업 인생 살고싶지않으면 집중해. 나도 백업 선수를 사랑하고싶지는 않으니까.”
원석은 숨을 깊게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의 투구는 완전히 달라졌다.
볼넷으로 흔들리던 손끝은 안정됐고,
직구는 존을 후려치듯 꽂혔다.
덕아웃에서는
“방금 뭐 했길래 저렇게 돌아왔어?”
라는 말들이 돌았지만
답을 아는 건 단 두 사람뿐이었다.
그렇게 경기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원석은 승리투수가 되었다.
그 결과 KT위즈의 퇴근길에는 싸인 요청하는 팬들이 줄을 섰다.
그중 한 팬이
“원석 10승 기념”유니폼을 입은 상태로 그들에게 달려왔다.
성우가 그 팬을 보자마자 씩 웃으며 말했다.
“그거요… 내년에 자수 바꾸셔야 할 거예요.”
팬이 놀라 “원석 선수 떠나나요..?”라고 묻자
성우는 아주 담담하게,
그러나 누구보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내년에 원석이 20승 할 거거든요.”
원석은 그 말을 들으며 모르게 웃음을 삼켰다.
둘만 아는 신호처럼,
성우의 그 말은
믿음, 애정, 약속이었다.
그리고 그 누구도 모르는 비밀연애는
그 순간 더 단단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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