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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특수부대 만들기 (1)

ㅇㅇ(203.123) 2020.05.09 13:12:48
조회 4539 추천 46 댓글 17

* * * * *



"이딴거 못 씁니다."


일부러 강하게 말했다. 사실 나도 우지 기관단총이 굉장히 잘 만들어진 실전용 기관단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월남에서 씨레이션 짬밥 먹을때 몇 번 써 본 적도 있다. 스웨덴 기관단총보다도 훨씬 낫더라. 근데 그건 어디까지나 그 때 이야기다. 지금 쓸 수 있는 물건은 절대 아니다.


"우지가 고장에 강하고 쓸만한 총이란건 어디까지나 야전에서 쓸 때 아야기입니다. 인질구출작전에 쓰려면 실용성있는 수준의 신뢰성만 확보되고 나면 그 다음으로는 제일 중요한 게 초탄 명중률입니다. 처음 말씀하신 잉그램 기관단총보다야 낫지만, 우지도 구조적으로 못 씁니다."


"아니 그럼 뭘 사오란거야." 곤혹스러움 반, 짜증 반의 상대방은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기가 죽을수는 없었다. 나도 내 입장이란게 있다. 인정사정 봐주다간 암것도 못한다. 이 바닥이 원래 그렇다. 독일의 베게너 대령, 미국의 베크위스 대령, 다들 겪고 있는 일이다.


"처음 말했잖습니까. 독일제 MP5가 필요합니다."



- 1 -



분명히 코쟁이들한테 직접 배웠는데, 내가 하는 영어는 나중에 학창시절 배운것들과 미묘하게 달랐다. 차이점을 군대 가서야 알았다. 육사때 만날 기회가 생긴 미군 장교가 내게 이렇게 말한것이다.


"자네는 신사 영어를 쓰는구만!" 하면서, 영어를 어디서 어떻게 배웠길래 영국, 그것도 상류계급 영어를 이렇게 유창하게 하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영국군 부대 하우스보이였습니다."


우리 스폰서들이랑은 미묘하게 다른 말이지만 미국인들한테는 은근히 이 악센트가 먹어준다는걸 나중에 알게되자 소싯적 날 챙겨주시며 영어를 섬세하게 가르쳐주시던 영국군 대대장님이 새삼 고마워졌다. 조선팔도에서 흔치 않은 영국 영어 구사능력은 이후로도 두고두고 내 인생에 도움이 되었다.


하우스보이 생활을 하면서 수준높은 영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체득했던걸 보면, 내가 생각햐도 난 머리가 꽤 좋은 녀석이었다. 하지만 하우스보이 생활 할 정도였으면 내가 얼마나 가진 것 하나 없는 거지꼴인지도 알만큼 알 터이다.


남들은 삼시세끼 배불리 먹는것에 만족하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 때 나 혼자 영어를 비롯해 공부에 매진한 이유는 별 거 아니었다. 언제까지고 하우스보이로 살 수는 없을텐데, 의식주 걱정 없는 지금 공부를 해 둬야 나중에 다른 일자리를 찾아볼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전쟁이 끝나고, 유엔군들은 대부분 짐 싸서 자기네 나라로 돌아가곤 했다. 영국군 역시 결국 짐 싸고 떠나버렸고, 나는 다시 혼자 남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나를 각별히 눈여겨보고 아껴주시던 대대장과 다른 연대 간부들이 내게 장학금 비슷한 목돈과, 주한 영국대사관의 잡역부 일자리라도 알선해주었다는 점이었다.


전쟁통에 부모를 여의고 홀로 남은 소년에게는 과분한 행운이었다. 그 덕분에 대사관에서 숙식하면서 굶진 않고 여차저차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성적은 좋게 나왔지만 대학 갈 때가 또 문제였다. 등록금을 감당할 수 없던 나는 육사의 문고리를 두들겼다. 그렇게 나는 군문에 들어서게 되었다.


난데없이 군사혁명이 터지고, 처음 보는 대위 나부랭이 손에 이끌려 어어하다가 얼결에 혁명 지지 시가행진이란 역사의 한 순간에 함께하기도 했다. 이윽고 졸업이 다가왔다. 괜찮은 성적과 유창한 영어실력에 힘입어, 나는 병과지망때 남들에 비해 비교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포병이나 기갑도 진급이 꽤 잘 된다지만 포병은 항상 맨 앞에서 한 발짝 뒤에 있는 모양이 어쩐지 나랑 적성이 안 맞았고, 기갑은 독일육사 유학파들이 단단하 틀어쥘 모양이었는데 이제와서 독일어 배우기는 늦었다 싶었다. 그렇게 무난하게 보병병과로 결정했는데, 누가 날 위에서 주목하고있기라도 했는지 중위 계급장을 달자 마자 공수부대로 인사발령이 나버렸다.


무난하게 선임소대장과 중대장의 단계를 밟아나가겠거니 하던 큰 그림이 어그러진 뒤, 나는 교육단을 거쳐 검은베레와 위장복의 사나이가 되고, 포트 브랙에서 미육군 특전부대 교육을 무난하게 이수했다. 부중대장 하면서 생각보다 내가 이 일에 적성이 맞음을 확인한 그 다음은… 월남행이었다.


내 생각대로, 영어 실력은 앞서 말한 미국 연수나, 뒤이은 파병기간에도 큰 도움이 됐다. 사람같아보이지도 않는 동양놈이 기품있는 영어를 늘어놓으면 동물원 원숭이처럼 볼 지언정 대체로 호감을 표시하곤 했다.


미국인들이 은근히 자기들보다 한 수 위로 쳐주는 유일한 영어가 영국 영어다. 바로 위에 붙은 카나다만 해도 놀림의 대상이 된다. 호주는 말할것도 없다. 호주군 막사에서 하우스보이를 했다면 어떻게됐을까, 그런 생각을 가끔 혼자 하면서 웃곤 했다.


"중위님은 영어를 어디서 배웠습니까?"


앞서서 괴팍한 영어를 한다고 말한 바 있던 호주군 특수부대를 처음 만났을 때, 군문에 들어선 이후 처음으로 영국 영어를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한국전쟁때 영국군 부대에서 잡역부로 일하며 배웠습니다. 그런데 영국은 베트남 전쟁에 불개입하지 않았나요?"


나의 그런 질문에 콧수염이 제법 멋진 영국군 상사가 자신의 질문에는 납득이 됐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 질문에 대한 대답도 그럭저럭 납득이 되는 이야기였다. 호주 뉴질랜드 카나다 모두들 영국을 상전으로 모시는 특수관계 쯤은 하우스보이 생활과 대사관 생활로 그럭저럭 알고 있었다. 이 녀석이 나중에 나한테 부대방문 축하 기념품으로 예쁘게 크롬 도금 장식된 브라우닝 자동권총을 선물할줄은 그땐 꿈에도 몰랐다.


맹호 공수지구대에서 1년을 구르고, 전공덕분에 금방 대위진급이 이뤄졌다. 귀국 짐을 쌀 준비를 할 때 쯤 주월사를 통해서 파병연장 제의가 들어왔다. 그때 이후 몇 번 같이 일을 했던 SOG라 불리는 연합군 특수부대에서 나를 찾는다는 이야기였다.


남들은 빨리 돈과 경력을 모으고 잽싸게 짐을 싸서 떠나는 땅이었지만, 난 왠지 끝을 보고 싶었다. 공수부대는 다른 보병부대와는 다른 야성적이고 전투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공수부대에 팔려온 대부분의 보병병과 장교들처럼, 경력관리만 적당히 하고 빨리 나와서 무난한 진급코스를 바라보고 있던 난 어느새 딴 맘을 먹고 있었다. 한번 이 바닥에서 끝을 보고 싶었다. 그러려면, 월남짬밥을 몇 년 정도 더 먹는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5년이 훌쩍 지나갔다.


월남 파병기간은 내 군생활엔 두고두고 좋은 도움이 되었다. 물론 별은 꿈도 꾸지 않았다. 난 이미 정상적인 장군진급루트는 꿈도 꾸지 않았다. 육사출신에 영어도 그럭저럭 되니까, 적당히 중령 대령쯤 달고 전역해도 어떻게든 먹고 살 길은 있겠지. 그냥 특전대대장 한번 해보고 싶었다. 별하나 달아주고 공수단장 한번 시켜주면 소원이 없고말이다.


그럼 어떤 점에서 내게 도움이 되었는가? 한마디로 말해서 인맥이었다. 국내 인맥같은 시시한 거 이야기하는게 아니다. 나는 미국과 호주, 영국 특전부대의 여러 인물들과 같이 정글의 진흙탕을 헤치며 친해졌다. 그 월남 인연들이 두고두고 내게 도움이 되었다.


1970년 연말, 비공식적으로 존재하던 SOG의 한국군 공수지구대장으로 1년간 목에 힘 좀 주며 살다가, 갓 귀국하여 1공수특전단 예하 모 지역대장으로 부임한 나는 작년에 공수부대며 유격부대며 다 긁어모아서 새로 만들어진 우리의 특수전사령부가 신종의 위협에 대한 대비책 마련을 위해 골머리를 썩히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청와대에서 이야기가 많아. 그 요도호 사건 이후로 각하께서 심기가 불편하셔." 귀국 후 얼마 안 되던 어느날, 이전 테트 공세때 전공으로 무공훈장을 받은 뒤부터 나를 제법 챙겨주시던 1공수단장 정 장군님이 먼저 날 찾아준 덕에 난 황송하게도 장군, 그것도 직속상관인 단장님과의 술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전투에만 매진하다보니 월남의 야전에서 맺은 인연은 많아도 정치적인 인맥은 하나도 없는 내게 있어서 정 단장은 나의 혹시모를 공수단장에 대한 꿈을 이뤄줄지도 모를 귀인중의 귀인이었다. 그런 분께서 고민이라니. 어쩌면 여기서 점수를 딸 수도 있겠다 싶은 것이었다.


'주한 미 특전파견대에서 배워오는건 어떻습니까' 라고 말하려다, 나는 말을 아꼈다. 공수부대에서 잔뼈가 굵은 저 선배가 미군 특전부대에서 배워 올 생각 못 해 봤을리가 없다.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바로는, 미국인들도 이 신종의 위협에 대해선 무지하긴 마찬가지였다. 알콜이 적당히 혈관을 돌며 뇌를 자극하던 그 순간, 그린베레의 찰리 베크위스 그 양반과 호주군을 통해 몰래 찾아온 몇몇 영국군 특수부대가 생각난 게 그 때쯤이었다. 오호라. 이거 좋은 해결책이 되겠는데?


"영국군은 어떻습니까?" "영국군?" 처음 생각해본 방향인듯 싶었다. 무리도 아니다. 이놈의 군대에서 참고할만한 외국군 사례는 곧 미군 사례다. 아마 장기 파월경험이 없었다면 나도 그렇게 됐겠지. 그러나 지난 5년간의 파월을 통해 그동안 내가 경험하고 들어본 것들이 너무 많았다.


"미군 특전부대 장교들이랑 이야기해봤는데, 그놈들은 놈들 나름대로 자기들에게 손볼데가 많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조금 뻥튀기가 있긴 했다. 자기들이 잘났다는 녀석들도 많았다. 하지만 플레이 메 포위전과 프로젝트 델타의 영웅, 찰리 그 양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 했다. SOG 파견때 친하게 지냈던 호주군 및 영국군들과 비교해봐도 그랬다. 뛰어난 친구들은 맞지만, 뭐든지 다 잘하는 친구들은 아니었다.


"그리고 영국 특수부대가 대테러작전의 풍부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저번에 제가 호주군 편으로 몰래 들어왔다갔다 하는 영국군 공수특전단 이야기 해 드린 적 있지않습니까. 우리나라엔 안 알려져서 그렇지 이 부대야말로……."


한참을 떠들었다. 미군 특전부대가 먼저 고개숙이는 그들의 풍부한 전투기량과 부대 전통, 그리고 직접 전해들은 북아일랜드 내전과 그에 따른 대테러작전 양상 등등. 그들의 내 말을 주의깊게 듣던 정 단장님이 갑자기 내 어깨를 탁 치는 것이었다.


"역시 자네는 안목이 넓고 깊어. 내가 이래서 자네를 좋아하는거야. 고맙네. 일이 잘 풀리면 각하께서도 좋아하실거야. 영국군쪽은… 한번 알아보도록 하지."


그리고 몇 일이나 지났을까, 단장실에서 나를 찾는다는 전화에 모든 업무를 내팽개치고 부리냐케 대대 본청앞으로 달려나와보니 단장님이 보낸 지프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그러나 속으로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단 본부로 찾아간 나는 깜짝놀랄만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각하께서 직접 지시하신 일이라구요?"


"그래. 황 소령 자네 제안대로 영국군쪽에 인력을 보내서 관련교육을 받아오기로 결정됐어. 우리 특전사는 물론이고, 정보사랑 해군 UDT에서도 인원을 차출해서 대테러교육을 이수받아올거야."


반가운 소식이었다. 이 기회에, 미군만 일방적으로 바라보기보다 그 미군 특수부대에서도 한 수 접고 들어가는 영국과의 직통 루트를 뚫어서 두고두고 교류 협력 관계를 가지게 된다면 이건 국군 특전부대 역사에 길이남을 발전이었다. 그런데 왜 근무중에 나를 부르신걸까? 이런건 천천히 알려주셔도 될텐데. 그런데 의문은 오래 가지 않아 풀렸다. 상상 이상으로 파격적이고 부담되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인원을 제일 많이 보내는 우리쪽에서 한국군 인원들 인솔자를 임명하기로 했는데, 사령관님께 자네를 추천드렸어."


"정말입니까?!"


"내가 농담하는 것 같나? 영국 파견 아이디어를 낸 것도 자네고, 야전 경험도 풍부하고, 영어도 능통하잖아? 자네가 적임자야. 반응이 좋으신걸 봐서 아마 곧 인사명령이 내려 올 거야."



- 2 -



'71년 1월 21일부로 영국행 비행기를 탄 육해공군 각군의 특수부대 하사관/장교들 수십명이 다시 본국으로 돌아온것은 '74년 2월 초의 이야기였다.


한-영 특수전부대의 교류협력과 군 특수전 및 대테러전 교리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며 중령 계급장을 받은게 '72년도의 일이었다. 공교롭게도 그때부터 영국과 IRA간 분쟁이 본격화된 데다 옆 나라 독일에서 올림픽 도중 대참사가 벌어진 터라, 우리도 덩달아 배워가는 것이 많았다.


2진 파견 인원들은 아예 북아일랜드에서 몇번 IRA 세포조직의 아지트를 급습하는 등의 실습을 경험해 보기도 했다니 말 다 했다. 사실 '74년에 나가서 '76년에 돌아온 2진 인력들이 세부적인 전술 노하우 전수라는 측면에선 우리 1진보다 더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 때는 주로 이론만 정립돼있던 관련 전술을 직접 실전에 적용해보며 발전시키던 시절에 다녀온 인원들이니까.


갑작스런 연수요청을 본국 국방부가 수락했다곤 하지만, 그들의 새로운 제자들에 대한 교육열이 기대 이상으로 적극적이었던데는 역시 내가 월남에서 맺은 인연 탓이 컸다. 내가 월남에서 구르던 60년대 중후반 무렵, 하사관이나 초급장교 계급장을 달고 월남에 파견근무를 와서 나랑 전우겸 술친구가 되었던 녀석들이 바로 현재 22 SAS연대의 주요 보직에서 한참 활약중이었던 것이다.


본국으로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내 마음은 누가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두근대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저 대대장이나 달고 전역한다면 그 이상으로 바랄것이 없던 처지였다. 그러나, 몇 년 사이 상황이 많이 바뀌어있었다.


본국에선 우리 1진 파견 인원들이 귀국하는 대로 우리를 기간인력삼아 합참본부 직할의 대테러 특수임무부대를 편성할 계획이었다. 그 대테러부대를 실전 임무수행이 가능한 단계로 올리는것이 이제 귀국 후 내가 책임지고 해야 할 일이었다. 거기다가, 어지간한 이변이 있지 않은 한 부대장으로 나를 임명시킬 속셈이라는 귀띔까지 들은 상황이었다. 이대로면 진짜 장군 해 볼수 있지 않겠냐는 야심이 내 마음 속 어딘가에서 무럭무럭 자라나기 시작했다.


"근데 왜 합참이랍니까? 그거 뭐 별거 없는 자리 아니지않습니까. "


"육해공군의 최정예를 모아서 대테러나 비밀공작을 하는 부대를 만들려고 보니까, 육군 예하부대인 특전사에 해공군이 섞인 부대를 만들긴 좀 그렇다는거야. 그렇다고 중정에 배속을 시킬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육해공군이 모두 속해있는 합참 예하부대로 정했다는구만."


어느새 소장 계급장을 달고 있던 정 장군이 귀국 자리에서 내게 뒤에 얽힌 속사정에 대해 넌지시 알려주었다. 돌아오자마자 찬밥신세가 된 것은 아닌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자세한 작전통제는 어디서 받는겁니까?"


"조직은 합참본부 직할로 두고, 평시 작전통제는 합참본부장이 장으로 겸임하는 대간첩작전본부에서, 전시 상황에선 한미연합특전사령부에 배속될거야. 다만 계엄시에는 수경사에 배속되는 몇 몇 사단들처럼 수경사에서 통제하게 만들거라던데."


"조직도가 좀 복잡하네요. 이랬다가, 저랬다가. 이런 거 별로 안 좋은데."


뭔가 지휘통제라인이 간결하지 않고 꼬여있는게 조금 맘에 안 들었지만, 아무튼 이 사안은 계속 군과 각하의 주요 관심사항으로서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예정이라니 다행이었다. 앞으로 내가 만들어야 할 새로운 유형의 특수부대에는 기존 공수단, 아니 공수여단이랑은 비교도 안되게 많은 돈이 필요했다.


다행인 점은, 한국군의 대테러전력 육성은 국제평화에 이바지하는 인도적 방향 이라며 미국측에서도 두 팔 벌려 환영하는 터라 그 카터 시절의 살벌한 한미관계 와중에도 군사원조까지 그럭저럭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 아끼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골치가 아프긴 했지만, 난 개의치 않고 달려들었다. 그렇게 새로 만든 부대는, 머리부터 발 끝까지 다른 부대랑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역만리 구라파에 계신 스승님들의 인증을 받고 내부적으로 결정한 모래색 베레모는 시작에 불과했다.


"황 중령. 꼭 스위스제로 해야겠어?"


"방탄모가 방탄이 돼야 방탄모라고 불러줄 거 아닙니까. 다른 부대는 어떨지 몰라도 우리 부대는 실내에서 코앞에 들이닥친 테러범의 총알을 몸으로 받아내야 합니다."


독일제 방탄복이나 스위스제 티타늄 방탄모 도입을 요청하자 방탄모라도 국산 하이바를 쓰는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단칼에 정리하면서 그렇게 이야기했다. 대신 전투복(우리는 새 복제를 고안하면서부터 의식적으로 작업복이라 부르길 거부했다.)은 국산을 쓰기로 합의를 봤지만 조건이 있었다. 우리의 주문사항을 토대로 만들어 테스트를 거친 후 도입하겠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영국의 DPM이나 미 해병대의 ERDL을 눈여겨 봤지만 일찌감치 물 먹은 후 국산을 수배하던 와중에 해군의 지상부대용 신형 위장복이 눈에 띄었다. ERDL 비슷한것이 위장성도 좋아보여서 즉시 이 위장무늬를 바탕으로 신형 전투복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잠깐 군에서 채택했던 신형 작업복이 미군 스타일로 상의를 빼 입는 물건이었기에 우리도 새 전투복의 착용방식을 두고 잠깐 논의가 있었지만, 상의를 빼어 입는쪽이 편하는데는 실전경험자가 다수였던 부대 기간요원 대다수가 동의했기에 논쟁이 벌어질 일도 없이 일찌감치 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어차피 장구류 착용하면 상의 아랫단 주머니 못 쓰지 않습니까. 그 주머니를 차라리 담배포켓 자리로 올려버리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월남에서 해군 백구부대로 참전했을 때 나랑 안면을 텄던 해군 고참상사 한명의 이런 의견이 많은 이들의 지지를 얻어 신형 전투복 개발에 적극 반영되었다. 팔꿈치나 무릎같은 부분엔 처음부터 보강천을 대서 나오자는 이야기는 조금 더 발전돼서 보강천은 천 대로 대고, 별도로 무릎보호대와 팔꿈치 보호대를 복제에 포함시키자는 의견까지 수렴되었다.


이런식으로, 우리는 계급고하를 막론하고 실용적인 아이디어를 취합하여 개선사항에 반영하곤 했다. 군기는 필요할때 잡더라도 전력개선에 관한 건설적인 의견교환은 자유롭게. 군기라면 세계 최고의 망나니 부대라 할 수 있을 SAS의 순기능을 보고 온 우리 입장에서 나름 최선의 타협(?)이었다.


"아니 무슨놈의 요구사항이 이렇게 많아요?"


요구사항이 있다길래 별 생각없이 찾아왔을 피복제작공장 관계자 몇 명에게 우리가 내민 개선사항 목록을 들이밀자 입이 딱 벌어져서 하는 말이 그랬다. 옷의 원단부터 주머니의 각도 등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여태 어느 부대에서도 들어보자 못한 개선사항의 홍수에 당황할 법도 했다.


우리는 벙 쪄있는 그들에게, 우리가 앞으로 입을 옷은 삽질할때 입을 작업복이 아니라 전투를 할 때 입을 전투복이고, 당신들 생각엔 별 것 아니어보이는 부분 하나 하나가 전장에선 큰 차이를 가져온다며 어르고 달래서 우리 요구사항이 관철된 신형 전투복을 받아낼 수 있었다.


방탄판을 삽입한 총알을 막는 방탄복, 티타늄 방탄헬멧, 전술조끼와 웨빙등 신형 장구류, 고고장 죽돌이들이나 쓰는거라고 생각했을 팔꿈치 보호대와 무릎 보호대 등, 우리는 국군 역사에 있어 전례없는 복제의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바닥에서부터 시작해야 했던 것이다.


총도 그랬다. 무슨놈의 군대가 꿩 사냥 갈것도 아니고 엽총을 장만하냐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헛웃음을 가까스로 참아야했다. 권총은 .45구경을 써야하는지 영국처럼 9밀리로 가야할지 설왕설래가 잠깐 있었지만, 결국 .45구경을 적당히 손봐서 쓰기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다시말해 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그 위부터는 다시 충돌의 연속이었다.


기관단총을 새로 장만하는 과정도 그러했다. 영국 근무 경험과 월남 파견 경험을 토대로, 우리는 두 종류의 다른 기관단총이 필요하다는데 합의를 보았다. 왜 기관단총을 두 종류씩 장만해야하는지도 이해를 못 하고 있는 상대를 설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MP5야 그렇다 치고, 그럼 비싼 독일총도 사주는데 무슨 기관단총을 또 하나 더 장만해야 한다는거야? 총알도 5.56인데 그냥 M16 쓰면 안돼?"


단축형 소총 개념을 가진 기관단총의 필요성을 이해시키는데 또 시간이 한참 걸렸다. 우리가 월남에서 열심히 훔쳐서 갖다 바친 CAR15들을 경호실이나 중정에서 잘 써먹는 사례가 그나마 우리의 입장 변호에 도움이 되었다.


우리가 점찍은 총들은 XM177이었지만, 미국의 내부 법률문제 탓에 결국 그 부분은 어쩔수가 없다며 소염기가 작아진 대신 총열이 그만큼 길어진 신형 CAR15가 우리에게 도착했다. 성능이야 총열이 길어져서 도리어 더 잘 맞는 터라 아무 불만 없었다. 이쯤 돼서 나는 슬슬 뒷일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처음부터 각오한 자였지만 일말의 불안감은 어쩔 수 없었다. 아마 부대의 성과가 확실히 나오지 않는다면, 여기저기 웬수진 사람들이 내 발목을 잡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 나름대로 어느정도 우리의 필요성을 위에 인식시킬 방법을 안 찾아본건 아니었다. 신형 총기나 특수장비를 장만할 때, 필요량을 일부, 혹은 (물주가 미군일 경우) 한참 초과해서 군사원조를 받은 뒤, 상당 물량을 경호실과 중정, 그리고 우리의 친정인 특전사와 UDT에 나눠주는 식으로 어느정도 기름칠을 하긴 했지만, 저놈들 너무 나댄다는 식의 뒷말은 특전사령관이 되신 정 장군님이 감싸주시지 않았다면 아마 분명 내게 인사상의 불이익이 왔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인력 조달은 의외로 큰 부담 없이 진행되었다. 나랑 비슷한 무렵 미국판 SAS인 델타포스를 만드느라 골치 썩혔다던 베크위스 그 양반은 말 그대로 맨주먹에서 시작하느라 이 부분에서 제일 고생했던 모양이지만, 일단 나는 청와대 명의로 각 군에서 적합한 자원들이 두 차례에 걸쳐 모집된 상태에서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 후, 이들을 기간인력삼아 부대를 만들기로 했으니 내 얼굴을 팔면서 타 부대에 아쉬운 소리를 하며 데려와야 할 인력 풀이 델타에 비하면 훨씬 적었기 때문이다.


부대 편제는 이마 훌륭한 참고사항이 영국에 있었다. 새로운 임무에 미 육군 특전사식 편제는 너무 규모가 컸다. SAS 스타일이 특수부대 안의 특수부대를 지향하는 신규 부대의 성격에도 적합해보였다. 용어 번역 과정에서 한국적 변용이 좀 있긴 했다.


"트룹은 중대로 번역하는게 무난할 것 같습니다. 규모도 그렇고, 지휘권자 계급도 그렇고요."


"그럼 스쿼드런이 지역대가 되는건가?"


결론적으로, 우리 부대는 1977년 2월에 준비를 완료하고 창설식을 가지게 되었다. 부대는 다른 특전대대와 비슷한 규모였으나, 부대의 중요성이 강조되어 연대급으로 격상되었다. 연대의 주 임무는 전평시를 막론한 직접타격이나 정찰, 대침투작전 및 정보기관과의 협업 등 전략적 특수작전 수행과 대테러작전이 되었으며, 연대 예하에는 직할대 외에 3개 지역대를 두었고 1981년까지 지역대 하나를 추가로 증편시켜 4개 지역대 체제를 굳히기로 결정되었다. 각 지역대는 자체적으로 4개의 중대로 구성되는데, 고공, 산악, 해상, 기동 중대로 구성되었다.


부대 이름을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았지만, 육해공군 특수부대의 원류인 한국전쟁당시의 반공유격대 활동에서 그 뿌리를 찾고, 3군의 특수전 역량이 총집결된 합동부대라는 점을 들어 제 8240합동특수작전연대(8240th Joint Special Operation Regiment, 8240th JSOR)라 명명되었다. 그리고 초대 연대장으로… 바로 나, 황선규 대령이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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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껏 올드스쿨 느낌 특수부대 룩딸질 하려고 설정놀음하다가 막 썼던건데, 능력 부족으로 결국 가상의 테러사건 해결같은 이야기를 시도하지 못한 채 초반부만 적고 마무리 지었던 소설입니다. 초반부의 지나치게 강박적인 장비 묘사도 어느정도는 이런 방황의 흔적입니다.


그 결과 밀덕물로도, 대체역사물로도 이도 저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응답하라 1979'같은것도 돈 받고연재하는 꼴을 보니 너무 땅 팔 필요는 없겠다 싶어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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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강생이'님이 그려주신 대략적인 대원들 단독군장 착용시 모습입니다. 물론 임무에 따라 장비와 피복이 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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