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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설 후 몇 달도 안 되어 우리 부대의 몸값은 한없이 치솟았다. 이번에도 독일이 우리를 도와줬다. 루프트한자 여객기 납치사건과 뒤이은 GSG-9의 전사상에 길이남을 인질구출작전 대성공. 경호실의 차실장이 그걸 보고 홀딱 반해서 66대대에서 인원을 추리고 증편하는 식으로 대테러부대를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렸다.
"그래봤자 2류야 2류. 그깟 대위출신 무지렁이가 특수전에 대한 무슨 이해가 있겠나. 각하께서도 8240연대가 이미 잘 하고 있다면서 영 탐탁찮아 하시는걸 보면 아마 곧 흐지부지 될거야. 미국에서 온 손님들은 좀 어떠신가?"
내가 귀국한 그 해 연말에 특전사령관이 된 정병주 특전사령관님이 나를 안심시킴과 동시에 내 옛 전우, 베크위스 대령 일행에 대한 궁금증을 동시에 드러냈다.
"우리 기량을 고평가하는 듯 합니다. 교관단 몇 명을 파견해달라는 요청으도 있었고, 우리와 SAS랑 SBS가 그러듯 상호간 연락장교 자리를 상설해두자는 아야기도 했습니다.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우리의 정치적 파워도 부러워하는 모양새구요. 그동안 대테러의 ㄷ도 모르고 관심도 없던 펜타곤의 탁상물림들이 이제와서 델타를 당장 써먹을 궁리를 하고 있다고 머리를 쥐어 뜯고 있습니다."
"거 참 불쌍한 친구구만."
"선각자의 길이란게 원래 그렇지 않겠습니까. 제가 재수가 좋아서 장군님같은분께 도움도 받고 각하께서도 챙겨주시고… 정말 지난 몇년 간이 꿈만같습니다."
예정에 없던 육군 특전사령관의 부대방문이었지만 부대 분위기는 의외로 차분했다. 대통령 방문, 각군 총장 방문, 국회의장 방문, 중정부장 방문 등등 특급 VIP 방문은 충분히 잦았고, 육군 소장 정도면 다들 각자 자리만 정리하고 하던 일 보러 갈 정도였다. 뭐, 사령관님은 오히려 그 편이 마음 편한 듯 했다.
"아예 조금 있다 직접 물어셔도 됩니다. 제가 통역하겠습니다."
"허허 이 사람, 영어실력 좋다고 놀리는거야? 그나저나 기분이 묘하지 않나? 항상 우리들 가르쳐주는 선생님 역할하던 양키들이 말이야. 이쪽 분야에선 얼마전부터 우리들 하는거 배우기 바쁘단 말이야. 하하하."
베크위스 일행은 둘째 치고, 부대 창설 준비단계부터 우리에게 호의적 시선을 보내며 은근히 뭐 하나라도 더 배워가려는 모습을 보이던 주한미특전파견대의 그린베레 용사들이 생각난다. 그런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시가전 교장 참관, 저격 훈련 참관등 실 훈련 참관 위주로 간결한 급조 부대투어를 마무리 짓고, 때마침 방문한 귀중한 손님인 베크위스 대령과 대화 후 기념사진 촬영까지. 사령관 동정으로 사령부 게시판에 붙여놓기 딱 좋은 그림이 나왔다.
별 탈 없이 또다른 VIP 방문을 마무리짓고 배웅을 나가는 길에 그 이야기가 나왔다. "자네가… 17기였지?"
"예, 그렇습니다."
"자네 동기들중에서 난 자네가 제일 맘에 들어. 열심히 일해서 성과를 바탕으로 스스로 앞길을 개척하고말야. 자네같은 인재들이 각 기수에 한 명 씩만 있어도 군의 앞날이 밝을텐데말야… 아무튼, 혹시 동기들중에 좀 수상쩍은 녀석들 있지 않던가?"
"저 말고도 훌륭한 장교들이 선후배 기수에 골고루 많습니다. 근데 수상하다는 건 무슨 말씀이신지……." 라고 말을 어물거리긴 했지만, 대충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별로 친하지도 않던 녀석들이 요 몇년 들어서 이상하게 들러붙긴 했는데.
"16기 장세동 대령이랑 같이 찾아오는 녀석들이 몇명 있습니다." 라고 생각나는 대로 내가 말했다. 어느덧 사령관이 주차시켜놓은 지프차가 가까워보였다.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녀석들은 아니었는데, 임관 초에 잠깐 술이나 한두잔 하다가 월남 가고서 멀어졌던 녀석들입니다."
"누군지 알 것 같구만. 김진영이하고 그 허… 뭐였더라."
"맞습니다."
"그 자식들 말이야, 마음에 안 들어. 제대로 된 야전 경험도 없이 서울 주변이나 뺑글뺑글 돌면서 어쩌다 월남 한번 가면 국군 개망신이나 시키던 것들이 무슨 재주로 벌써 대령을 달고 30경비단장을 하고…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거 같지 않아?"
"으음… 남들 보기엔 불공평할정도로 진급이 빠른 친구들이긴 합니다. 그치만 설마, 윤필용 사건 보고도 인사로 장난질 치는 것들이 있겠습니까. 장 대령 그 사람은 월남에서 열심히 싸우기도 했었고요."
"자네가 정말 말 잘했어. 윤필용 사건이 채 5년도 안 됐어. 이럴 때 일수록 경거망동하지 말고, 직무에 충실하면 되는거야. 알았지?"
"사령관님도 참, 절 뭘로 보시고… 제가 인맥장사로 군 생활 할 녀석으로 보이십니까?"
"그래, 내가 괜한 걱정했지. 다음에 보세. 그 육본 앞에 은하식당 가서 만두 안주에 소주 한 잔 어때?" 어느덧 지프차의 뒷좌석 앞에 다다라서, 운전병이 문을 열어주고 있었다.
"에이, 사령관님. 기왕 사시는거 목에 기름칠좀 부탁드리면 안되겠습니까?"
"허허 이 친구 하고는, 좋아. 다음에 만나면 풀코스로 한 잔 하자구."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살펴가십시오, 단결!"
"단결."
차는 시야에서 점점 멀어지고, 몇 명 되지도 않는 수행원들과 돌아오는 길에 그 이야기를 곰곰히 생각해봤다. 확실히 꼴사납고 짜증나긴 했다. 누구는 생사의 기로에서 하루에도 몇 번을 오락가락하면서 훈장받아서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자기들이 뭐라고 벌써 대령을 다는건지.
"부장 생각엔 어때?" 같이 배웅나가며 그 이야기를 주워들었던 부연대장, 문영식 중령의 의견을 물었다. 해사 16기로 육사 기수에 치환해보면 나보다 한 기수 아래쯤 되는 사람인데, 월남 파병 경험은 1년에 불과했지만, 대신 중정이나 정보부대랑 협업으로 치른 대북침투 경력은 나보다 훨씬 많은 무시무시한 사람이었다. 나 못지않은 야전파로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조금 궁금했다.
"뭐 어떻겠습니까. 어차피 높은 자리는 육군 나으리들이 다 가져가니까, 저희 해군들은 애시당초 채념할 뿐입니다. 조 중령, 공군도 비슷하지 않아?"
"공군도 그렇지 뭐. 국방장관 자리만 해도 뭐 했다 하면 다 육사출신이잖아. 아, 그렇다고 연대장님께 불만이 있단 이야기는 아닙니다. 연대장님이야 후배 장교들한테는 살아있는 전설 아닙니까."
참모장인 조민우 중령이 혹시나 오해라도 할까봐 손사래라도 치며 나설 기세로 말을 마무리 지었다. 공사 10기로, 부연대장처럼 대북 공작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실무 요원이었는데, 영국 연수생 1진을 파견할때 공군에서 제일 먼저 명단에 올렸다는 대단한 인재였다.
그런 잡담을 주고받으며 본청 정문앞에 서니 어느덧 해가 저물어가는게 퇴근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자연히 대화도 그 쯤에서 마무리되고, 그 날은 다들 조용히 퇴근했던걸로 기억한다.
몇 일 후, 또 사령관님이 했던 이야기가 생각나서 연대 인사과장을 불러놓고 이야기를 해 보니 확실히 뭔가 꿍꿍이가 있긴 한 모양이었다.
"주요 간부진들을 유학파 출신이나 파월 특전부대 출신 위주로 채우다보니 많이 걸러지긴 하지만, 그래도 중대장 선에서는 조건 다 채우는 사람이 모자라서 남는 자리에 이상한 놈들이 들어오려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맨날 서울 근처만 왔다갔다한 그런 애들?"
"그렇죠. 제일 멀리 나가봤다는게 9사단 정도니 말 다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고보니까, 말씀하신 대로 육군 인원들중에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관리는 잘 하고 있지?"
"우리 부대야 해 공군 출신들이 실무에서 워낙 강세기도 하고, 실력 없는장교들은 하사관들이 먼저 박살내버리고. 사관학교 그런거 안 따지고 실력으로만 보니까 맥을 못추리잖습니까. 다들 선발과정에서 걸러집니다."
그러고보니까 얼마 전에 사고쳤다가 된통 깨지고 나간 그 새끼도 육사 출신이었지. 하, 모교 망신시키는 꼴 보니 기분 더럽네. 얼마 전 보고받은 불쾌한 사건이 생각났다. 거창한 사건은 아니고, 그냥 한심한 녀석이었다.
파월 경력자들은 다들 중령 대령 달고 있다보니 쓸만한 놈들을 골라서 부대에 데려오곤 했는데, 위에서 인사발령 형식으로 들어오는 경우는 자체 선발과정에서 걸러내곤 했다.
가끔 의외로 이런 친구들 중에서도 선발과정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인재들이 있어 기분을 훈훈하게 만들긴 했지만, 대개 제일 먼저 떨려나가는 게 이런 부류였다. 어디서 경력관리나 해 보라는 식으로 꽂아넣어준 인원들.
자체 선발 과정에 들어가면, 실무에서 잔뼈가 굵은 고참 하사관들의 관심을 받으며 된통 고생하는 것들이 이런 녀석들이었는데, 그중 한 녀석이 사격훈련중에 기어이 사고를 친 것이었다.
타이어로 만든 간단한 구조의 킬 하우스에서 실내전시 교전의 맛보기나 하라고 만든 코스였는데, 여기서 얼타다가 앞에 줄 서고 있던 녀석의 허벅지가 오발된 총알에 스쳐 찰과상을 입었다. 하마터면 대형사고가 될 뻔한 일이었다.
예정보다 빨리 총소리가 울리자 번개처럼 달려든 우리의 교관들은 상대가 연줄 좋은 육사출신 소령이라는건 안중에도 없다는 듯 쪼인트부터 시작해서 머리부터 발 끝까지 한바탕 풀코스로 조지고 당장 퇴교조치를 시켜버렸다고 한다.그런대 이 놈이 나가서 부당하게 폭력을 당했느니 어쩌니 하면서 청와대에 닿은 연줄을 가지고 우리 교관들을 남한산성에 보내려고 달려든 것이다.
차분하게 퇴교절차를 위해 준비해뒀던 서류들과 교관들이 임무부적합 평가를 내릴수밖에 없던 교육생 평가 기록등을 내밀어 되려 그놈의 인사상에 빨간줄을 그어버렸던 일이었다. 그러고보니 그놈의 뒷배가 되어줬던 전두환 경호실 작전차장보가 생각났다. 장군들 사이에선 11기 전 장군 그 양반이 각하랑 친하다는 소문이 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 있었는데.
"쓰레기같은 자식. 내가 저런 새끼 별 다는데 도움을 줬다는 이야기지."
생도시절 얼떨결에 혁명 지지 시가행진인지 지랄인지를 준비하느라 개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손바닥의 손금이 닳도록 비위를 맞추더니 이젠 저런 추태를 보아면서 경호실에서 한자리 차지하고 앉았다니. 청와대 방어상태가 새삼 걱정됐다.
그 때 들었던 생각이었다. 그러고보니, 몇번 가진 술자리에서 장세동 30단장이 월남에서 전두환 장군 모셨다는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하던것이 생각났다. 다른 동기놈들의 그 존경심에 가득찬 표정까지. 이 새끼들, 아예 나까지 포섭하려고 작정한 거였구만.
청와대에까지 연이 닿아있다니 내가 함부로 나설수도 없었다. 난 이제 내 홀몸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국군의 신생 최정예부대가 나의 사소한 언행 하나 하나에 따라 그 운명이 태풍 앞의 촛불처럼 순식간에 꺼질수도 있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선을 확실히 긋고 경계를 할 필요는 있어보였다. 내 부대가 저런 싹수 노란 것들의 꼭두각시로 전락하는 꼴은 절대 볼 수 없었다.
"괘씸한 것들, 주 소령, 내 생각엔말야. 이것들 우리 부대를 자기네 파벌에 잠식시키려고 수작질 부리는 거 같은데."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정상적인 경력이라면 여기 문고리 두들길 엄두도 못 낼 것들이 항상 한 두 놈씩은 왔다가 개망신당하는 꼴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앞으로 육사출신 지원자라면 뒷조사를 좀 해 봐야겠어. 인사과장도 정신 똑바로 차려. 까딱 잘못하면, 우리 부대가 통째로 누군가의 사병이 되게 섕겼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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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델타와의 친교는 확실히 우리 부대에 큰 도움이 되었다. 미군측의 주선으로 미국 내 항공사와 접촉해서, 곧 폐기할 예정이라는 중고 제트 여객기를 헐값에 매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으로의 마지막 비행을 거치자 마자, 이 비행기는 우리의 새로운 실습 교보재가 되었다.
"무시무시한 친구들이야? 실력도 그렇고, 이런 수완도 그렇고. 돈만 좀 더 많아지면 근시일 안에 영국 본가도 잡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역시 우리 찰리 대장님이셔."
"부대 건물 생긴것부터 범상찮더군요. 영창을 고쳐서 병영을 만들 생각을 했다니 정말 기가 막힙니다."
포트 브랙 연수 이후 몇년만의 미국 방문인지. 그러나 그때보다 육체적으로는 편할지언정 정신없는 스케줄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이런 저런 소득이 꽤 많았다. 인적자원 교류와같은 무형의 성과부터 시작해서, 물질적으로도 말이다. 아까도 말했던 훈련 교장용 비행기라던가, 소총과 저격총에서 운용할 신형 야간 조준경인 PVS-4의 초도 물량 수십세트, 그 외에도…….
"그나저나, 기관총 이름이 참 앙증맞지 않습니까? 미니미라니."
"총알 빼고도 무게가 7키로 넘는 쇳덩이가 그런 귀여운 이름을 갖고 있다니 세상 말세야. 뭐 그래도 요 근래 나온 기관총중에선 제일 나은거같은데."
최근 미 육군이 테스트하고 있는 차기 분대자동화기 사업은 M60기관총에 만족하지 못하는 우리 연대에서도 귀추를 주목하고 있는 바였다. 해당 사업의 후보중에서 하나를 골라 도입하는데까지는 만장일치로 의견이 모였는데, 그 다음엔 약간 갑론을박이 있었다.
부대 안에서는 HK의 물건을 사자는 축과 FN의 물건을 사자는 축이 거의 반반으로 나뉘었었다. 하지만 경합 초중반 HK의 기관총이 내구성 문제로 패배의 쓴잔을 마시면서 HK는 기관총은 좀 서투른 듯 하다는 의견이 대세가 되어버렸고, 결국 부대 내 의견은 미군측의 유력 후보인 FN의 물건으로 가닥이 잡혔다.
1년 정도 미군 차기 경기관총 사업과 관련돤 총기 업체들과의 접촉 끝에 몇 달 전 FN에 구입 의사를 밝히자 그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이 와중에 우리가 방미도중 일정으로 차세대 SAW 도입사업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으러 가자, FN의 마케팅 담당자가 짧은 시간에 머리를 쓴 것이었다.
"공짜 기관총 십여정이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선물인가. 안 그래?"
우리가 구매를 결정한 것 과 동 사양의, 신품 미니미 경기관총 12정이 우리의 짐보따리에 섞여서 한국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부대 창설준비 단계에서 RPD를 어디서 주워와야하나 진지하게 고민했던 옛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한국 최초의 대테러부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인질구출작전 능력같은 탄탄한 기본기 외에도 이런 부수적인 요소들이 우리 연대의 입지를 더욱 튼튼하게 해 주었다. 방미과정의 군사외교를 통해 보여준 성과와 한국군의 전투력 자랑이라던가, 상대적으로 소외받는 해/공군에 대한 배려와 눈가리고 아웅인 3군 화합 및 합동성을 보여주기 위한 홍보모델이라던가 기타 등등…….
이번 방미를 통해 우리 부대는 경호실 차 실장의 나치 독일의 괴링과 비슷한 돌발행동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대통령의 마음을 돌려놓는데 성공했고, 결국 경호실 배속 대테러부대는 유야무야 됐다고 한다.
이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두 달 후인 79년 8월 말의 수도권 민방위 훈련에서 우리 부대는 처음으로 양지에서 대규모 시범훈련을 보이게 되었다. 지난 몇 년간 세계 최고수준의 기량을 갈고닦았던 부하들의 자랑스런 훈련 시범 모습을 참관하면서, 나는 블루 라이트때문에 골머리를 썩혔다던 델타의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은근히 마음고생을 했던 지난 2년여 남짓의 세월을 잠깐 뒤돌아봤다. 다 옛날 이야기다.
그리고 그 훈련이 있던 79년 8월이 내가 대통령을 직접 볼 수 있었던 마지막 순간이었다.
정치적인 혼란이 심해지고 경기도 죽을 쑤던 그해 10월 26일 밤. 전 군에 비상이 걸렸다. 계엄령이 선포되고, 우리 부대도 덩달아 바빠졌다. 계엄령 시 작전계획에 의거해서, 부대의 작전통제권이 수경사로 넘어가고, 예하의 주력인 3개 지역대를 원 주둔지인 서울공항 근교에서 필동 수경사령부로 이동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말이 연대지, 3개 지역대의 실 병력은 200명 남짓에 몇 년 전부터 유사시 주둔지 이동에 대한 준비가 되어오던 터라 아주 불편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주둔이 장기화되면서 점점 불편이 가중되고 있었다.
"아시다시피 우리 연대에 차가 어디 한두댑니까. 경장갑차만 50대가 넘습니다. 육공트럭이며 오톤트럭이며 는 어떻구요. 긴급조치니 뭐니 하면서 잠깐 왔다갈때는 그럭저럭 할 만 했지만, 수경사 여기저기 짱박아놓는것도 하루이틀입니다."
"어쩌겠어. 규정이 그래 돼 있는것을… 차로 한시간이면 주둔지에서 수경사구만 이거 참."
"대원들 훈련하러 왔다갔다 하는것도 은근히 시간 잡아먹습니다. 훈련 일정 잡힌 인원들은 훈련일날은 원 주둔지에서 지내다가 다음날 차편이든 헬기편이든 수경사로 오게 하는건 어떻습니까."
더부살이중인 필동 수경사령부의 한귀퉁이 회의실에서 연대주간업무회의가 시작되고, 각 처부별 문의 및 애로사항을 청취하는 시간이 되자, 참모부의 각 부서장들이 각자 위치에서 느낀 수 많은 불편사항들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나도 그들의 노고를 이해하고 동감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맘대로 할 수 있는게 있고 못하는 것이 있었다.
"수경사령관 지시 없이는 병력 이동 안 되는거 알고 있잖아. 그 수경사령관 장 장군이 지금은 국가위기상황이라 규정을 엄수해야 한다는데 어쩌겠어. 그래도 다들 노숙하는 신세는 아니니까 이 정도면 우리가 참아야지. 곧 계엄령 풀리고 그러면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거야. 조금만 더 참자고."
"서러워서 살겠습니까. 성남이 그립습니다, 진짜."
언제나처럼 결론은 불가능은 없다, 안되면 되게하라로 결론이 나버렸다. 주둔지에 잔류중인 연대 본부대 일부 병력들에게 매일같이 그랬듯 정시에 전화로 상황 보고를 받고,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가버렸다. 대원들이 좀이 쑤시는지 중대 병력 하나가 지프차에 몸을 싣고서 수경사 실탄사격장 방향으로 가는것이 언뜻 보였다.
다음 날, 새로 온지 얼마 안 된 그 신임 수경사령관, 장태완 장군이 현재 파견나와있는 우리 부대를 사열했다. 다들 영국물 먹으면서 많이 느슨해졌다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끼리만 있을 때였고, 수많은 VIP들을 상대했던 경험을 토대로 무난하게 사열식을 마쳤다. 이윽고 장비검열 등의 의례적인 순서를 거쳐, 임시 연대본부 사무실에 들러 순시를 마치고, 마지막 순서가 됐다. 연대장실에서 나와 사령관 둘 만의 독대.
"특전사령관 정 선배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네. 대단한 부대에 대단한 부대장이구만. 자네가 임시 파견온 객식구라는 게 안타까울 지경이야."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남의 주둔지로 모셨으면 훈련시범이며 이것 저것 많아 보여드릴 수 있었을텐데, 보여드린게 너무 없어서 제가 너무 아쉽습니다."
"더부살이하러 와서 고생이 많은데, 뭘 또 보여준다고 준비하려고 그러나. 다음에 날씨도 풀리고 계엄 해제되고서 자네들도 원대복귀 하면, 그때 한번 찾아가보도록 하지."
그런 인사치레성 발언으로 시작해서 말문이 트이기 시작했다. 파견 주둔으로 인한 몇 가지 애로사항에 대해서는 일전에도 들었던 것과 같은 원론적인 답변만을 들을 수 있었다. 저 사람이라고 어쩔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긴 하지만, 조금 맥 빠지는것도 사실이었다.
"그도 그렇지 않겠나? 막상 수도 서울에 위급상황이 발생하면, 청와대 경호에 구애받지 않고 능동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병력은 자네들밖에 없어. 사령부 예하 전투부대라봤자 30단 33단을 제외하면 사령부 직할대수준 아닌가. 서울 시내에 야포단 포격을 쏟아 부을수도 없고 말이야. 전차대대도 경비단에 분산배치 되어있고."
듣고보니 맞는 말이기도 하니 반박을 할 수도 없었다. 수경사 예하 전투병력의 사실상 전부인 30단과 33단은 근본적으로 대통령 경호부대이다. 정말 수도 서울에 중대한 군사적 위기상황이 발생하면 수경사령관이 제일 먼저 사태 수습에 나서야하지만, 예하부대는 위기상황이라면 제일 먼저 청와대에 발이 묶일 부대들이었다.
둘이서 대화를 해 보면서 절감했지만, 새 수경사령관은 괜찮은 사람이었다. 부대운영 철학같은것도 잘 서 있었고, 6.25는 물론이고 월남 경험을 비롯해서 야전 경험도 많았다. 자연히 꽉 막힌 사람은 아닌데다, 이미 나랑 친하게 지내고 있던 정병주 특전사령관이랑도 막역한 사이. 나랑 접점이 될만한 부분이 많아 보였다. 갈수록 정나미 떨어지는 전두환 선배랑은 달리 인간적으로도 가깝게 지내고 샆다고 해야하나?
아무튼, 이제 장군 진급의 꿈이 눈 앞에 있다. 늦게 가지기 시작한 꿈이라 그런가, 남들보다 뒤늦은 만큼 더 간절했다. 새로운 인맥으로 수경사같은 핵심부대 사령관을 둘 수 있다면 그것도 뭐 좋은 일 아니겠는가? 이번 계엄이 생각보다 오래 가면서 불편한 점도 많았지만, 나는 이런 점에서 보면 나름대로의 기회라고 생각하며 순간의 불편함을 감내하기로 한번 더 마음을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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