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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히나사요] 세상의 끝에서 함께모바일에서 작성

ㅇㅇ(123.142) 2019.08.07 16:30:09
조회 847 추천 26 댓글 9
														


* 원문링크 : http://posty.pe/5iii2n
* 히나사요 SF 단편


1

"있잖아, 언니……. 언니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믿어줄 수 있지?"

노크 한 번 없이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히나는 그렇게 말했다.

한가한 금요일 저녁이었고,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기타를 연습하고 있었다. 히나가 제멋대로 들어올 때마다 그래왔듯 들어오기 전에 노크부터 하라고 대답하려던 나는 히나의 얼굴을 보고는 그 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히나는 어째선지 초조해 보이기도 했고 불안해 보이기도 했다. 두 감정 모두 히나에게선 좀처럼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래서일까, 히나의 표정은 무척 낯설었다. 난 기타를 내려놓으며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물론이지, 히나. 무슨 일인데 그러니?"

히나는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다가와 내 옆에 꼭 붙어 앉아 내 왼쪽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무슨 일이 일어나기라도 하는 걸까. 왼손을 들어 천천히 히나의 등을 쓸어내려 주었다. 히나의 몸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한동안 붙어 앉아 체온을 나눴다. 쌍둥이 자매이자 연인인 우리는 침묵 속에서 누구보다 많은 감정들을 느끼고 또 전달할 수 있다. 내가 히나의 불안과 걱정을 가슴 깊이 느낀 것처럼, 히나도 내게서 사랑과 위로를 건네받았을 것이다.

"언니, " 히나의 목소리는 물기로 가득했다. 억지로 울음을 참으며 히나는 그렇게 말했다. 거대한 슬픔과 상실감이 목소리에 가득 묻어나왔다. "세상이 끝나려는 것 같아. 어쩌면 좋지……?"

히나의 말에 내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했을까, 어떤 말로 위로를 해줘야 했을까. 히나야 워낙에 독특한 면이 많고 나로서는 그 생각의 흐름을 쫓아가지 못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바로 이 순간만큼 히나에게 거리감을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세상이 끝날 것이라고, 멸망이 찾아올 것이라고 울먹이며 얘기하는 동생을 어떻게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2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진이나 해일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하기 전에 인간보다 민감한 동물들, 쥐나 뱀, 개미 같은 동물들이 재해를 예견하고 미리 도망친다는 것. 나는 히나의 그 믿기 어려운 얘기를 그런 식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누구에게도 온전히 이해받지 못하는 천재인 히나는, 어쩌면 민감한 동물들처럼 범우주적인 재해를 느끼는 감각이 발달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어쩌면 히나가 역사적으로 수많은 천재들이 그랬던 것처럼 광기에 잠식당해버린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내가 히나를 믿어보기로 결심한 까닭은, 히나를 믿고 지지해줄 사람이 나 이외에는 단 한명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히나가 미쳐버린 것이었다고 할지라도 히나는 내 사랑하는 연인이자 쌍둥이 동생이니, 내가 아니면 누가 지지해줄 수 있을까.

그 날 이후로 히나는 눈에 띄게 우울해졌고, 외출의 빈도수도 현저히 줄었다. Pastel*Palettes 활동도 건강상의 문제를 핑계로 잠시 중단하게 되었다. 히나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내 곁에서 보냈다. "마지막까지 언니와 함께 하고 싶어." 그런 말을 하는 동생을 난 거절할 수 없었다. 함께함으로 히나의 불안감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면 기꺼이 많은 시간을 공유할 수 있었다.

그런 히나의 변화에 가장 당황해 한 것은 물론 부모님이었다. 히나가 잠시 자리를 비우면 두 분은 내게 히나에 대해 넌지시 묻곤 하셨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병원에라도 한 번 데려가보는 건 어떻겠냐는 조심스러운 제안도 난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병원에 데려간들 어찌 할 방도가 있을까.

아무튼간에, 부모님이 알아차릴 정도로 히나는 불안정해졌다. 어떤 날은 식사도 거른 채 온종일 자기 방에 틀어박혀 있기도 했고, 또 어떤 날엔 늦은 밤 내 방에 찾아와 내 곁에 누워 울음을 참으며 잠들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 역시 흘러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느라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 우리는 한 침대에 누워 서로의 체온을 나눴지만 그럼에도 온통 슬픔으로 가득차 있었다.



3

뉴스를 보았다. 곧 세상이 끝날 것이라는 뉴스를.

그리고 나 역시 느끼게 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머지않아 끝나버리게 될 것이다.



4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온전히 히나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멀리서부터 천천히 태풍이 다가온다. 태풍이 아직 관측 불가능한 영역에 머무르고 있다면 그 누구도 태풍의 존재를 인식할 수 없다. 그러나 관측 불가능한 영역과 관측 가능한 영역의 경계를 통과하는 순간, 태풍의 존재에 아주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은 그 존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인간보다 먼저 자연재해를 예견해내는 동물들처럼. 그리고 시간이 흘러 태풍이 코앞까지 가까워졌다면 아무리 둔감한 사람조차도 그 존재를 알아차릴 수밖에 없다.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매섭게 몰아치는 비바람을 모른 척 외면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래서 결국은 나 같은 일반인들까지도 세상의 끝이 임박했음을 모두 알게 된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히나 외에도 세상의 끝을 알아차린 이들이 있었다. 대부분이 천재 과학자라고 했고 간혹 감수성이 뛰어난 예술가들도 있다고 했다. 놀랍게도 츠루마키 씨 또한 그들 중 한 명이었다. 히나와 비슷한 시기에 멸망을 예견한 후계자를 위해 츠루마키 가문은 발빠르게 움직였다. 세계 전역에 흩어져있는 천재들을 한 데 모아 진실을 규명해 낸 것이다. 태풍에 관한 예의 그 비유도 이들이 대중에게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었다.


TV에선 잠시도 쉬지 않고 종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세상의 끝이라는 게 도대체 어떠한 형태일지, 지구나 태양계의 끝이 아니라 범우주적인 스케일의 멸망이라는 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그에 대응하거나 맞서 싸울 방법은 없는지…….

그러나 내게는 그런 사실들이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히나였다. 히나는 옳았다. 히나를 믿기로 결심했던 나 역시 옳았다. 세상 모두가 코앞으로 다가온 멸망을 느낄 수 있게 되자 히나도 더는 불안해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제 슬픔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기쁨을 나누기로 결심했다. 이른 새벽에도, 늦은 오후에도, 그리고 깊은 밤에도 우리는 함께였다. 같은 침대에서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같은 식탁에서 같은 음식을 함께 나누고, 같은 음악을 들으며 같은 감정을 공유했다. 죽음을 앞둔 노부부의 삶이 이런 식일까. 행복감과 슬픔, 상실감과 기쁨이 잔뜩 섞인 감정은 묘하게 따뜻하기만 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나버릴 그 순간이 다가왔다.

"언니, 시간이 거의 다 됐어."

히나는 늘 나와 함께 별을 보고 싶다고 얘기했었다. 우린 마지막의 마지막을 함께 보낼 장소로 산 중턱의 천문대를 골랐다. 밤하늘의 별들은 멸망을 목전에 두고도 아름답게 빛났다. 히나에게 그런 말을 하자 히나는 슬프게 웃었다.

"지금 보고 있는 별빛들은 모두 과거로부터 온 것들인걸. 어쩌면 별들도 지금 이 순간엔 울고 있을지도 몰라."

묘한 울림이 있는 문장이었다. 우리가 별들의 아주 먼 과거를 볼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별들끼리도 서로의 과거밖에 볼 수 없다. 별들끼리는 서로가 서로의 과거만을 보고 있으므로 슬픔도 아픔도 나눌 수 없다. 그 사실이 나를 슬프게, 그리고 기쁘게 만들었다.

"히나. 너와 이 순간을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나도 그래, 언니."

쌍둥이 자매이자 연인인 우리는 침묵 속에서 누구보다 많은 감정들을 느끼고 또 전달할 수 있다. 마지막 순간 우리는 조용히 키스를 나누었다. 세상이 끝날 때까지 나누는 키스는 그 어감만큼이나 로맨틱하다. 마침내 모든 것이 희미해지고 우리 둘만이 남겨질 때까지 우리는 입맞춤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시간이 정지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히나사요는 SF도 어울리는거같지않아?

SF 히나사요 보고싶어서 짧게 써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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