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스프레소 콘파냐는 달콤하다.
쓰디쓴 어른의 맛 위에 부드러운 순백의 크림이 얹어지므로.
어느 잠들지 못하는 샬레의 밤, 두 남녀가 고요한 사무실에 있었다.
"노아, 마지막으로 이거 정리 좀 부탁할게에..."
"네, 선생님. 후훗, 이걸로 오늘 서류도 끝이네요?"
그리고 그 주인공은 물론, 업무가 밀린 나와 이를 도와주는 당번 노아였다.
"대체 왜 업무는 해도해도 줄지 않는걸까... 이걸로 논문을 내면 밀레니엄 프라이스는 따놓은 당상 아닐까?"
"확실히 흥미로운 주제긴 하네요... 엔트로피 증가 법칙과 관련해서 연구한다면 가능할지도요?"
"엑? 그걸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주는거야?"
"끝없는 탐구는, 밀레니엄의 모든 학생이 지향해야 할 가치니까요."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던 노아는 귀가 준비를 마쳤고, 나 역시 그녀를 배웅해주려 외투를 걸쳤다.
"그럼 선생님, 저는 슬슬 돌아가야... 어라?"
"왜 그래, 노아?"
목도리를 두르며 자리에서 일어나던 노아는, 핸드폰에서 무언가를 확인하고는 살짝 놀란 듯했다.
"별건 아니고 버스가 살짝 지연된다는 알림이 와서요... 이럼 어쩔 수 없이 D.U에 더 머무를 수밖에 없겠네요?"
말과는 달리 노아의 표정은 살짝 들뜬 듯했다.
"하핫, 이거 당한 느낌인데? 뭐 좋아, 오늘 하루 고생했는데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것도 예의는 아니고."
그렇게 말한 나는, 노아와 함께 샬레를 나서 어딘가로 향했다.
"와아...! D.U에 이런 카페가 있는 줄은 몰랐네요?"
아주 조그맣지만, 원목의 느낌이 살아있는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카페.
그곳의 따뜻한 조명을 온몸으로 받으며 우리는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아, 샬레의 선생님! 오늘은 일행이 있으시군요?"
"하핫, 오랜만입니다. 요 며칠 일이 바빠서요."
이곳의 사장과 정답게 인사하는 나를, 노아는 신기한듯이 쳐다봤다.
"의외네요, 선생님? 단골 카페가 있는줄은 몰랐는데..."
"그럴만도 하지, 너네 앞에선 캔커피만 마시니까."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앉은 나는, 가벼운 손짓으로 어서 앉으라는 사인을 노아에게 보냈다.
그에 응하여 자리에 앉은 노아에게 메뉴판을 건네주자, 그녀는 메뉴판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에스프레소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가게군요, 저한테도 생소한 이름이 꽤 많네요?"
그럴만도 했다. 예전에 살던 곳처럼, 키보토스에서도 에스프레소가 주류는 아니었으므로.
"천천히 보고 골라봐. 뭘 마시든, 특별한 경험이 될 테니까."
"선생님이 그렇게 말할 정도면 기대되는데요? 그럼 전, 가장 기본인 에스프레소로 시켜볼까요?"
"그럼 난 콘파냐에... 아, 이 집 피스타치오 타르트가 맛있는데 먹어볼래?"
"어머, 그럼 사양 않고."
메뉴를 정한 후, 나는 바로 카운터로 향했다.
"테이블에서 에스프레소와 콘파냐 한 잔씩, 그리고 타르트도 하나 주세요."
"금방 만들어드리죠, 자리로 가져다드릴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넉살좋은 미소를 보인 사장은, 곧바로 메뉴 준비에 들어갔다.
"선생님은 단 음료만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면도 볼 수 있어서 좋은걸요?"
자리에 돌아오자, 그곳에는 즐겁게 미소지으며 기록을 시작한 노아가 있었다.
"아무래도 업무 중에는 캔커피가 가장 가성비가 좋거든. 적당한 당분과 카페인이 머리를 깨워주니까. 하지만, 가끔은 이런 사치도 부려야지 않겠어?"
나는 살짝 웃어보이며 자리에 다시 앉았다.
"그리고, 에스프레소 바에는 각별한 추억이 있어서."
"추억이요?"
눈을 동그랗게 뜬 세미나의 서기님을 상대로, 나는 지루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별건 아니고, 아직 대학생 시절의 이야기야.
그땐 철이 없어서 공부보단 학교 근처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거든.
그날도 여느 때랑 다름없이 대학가를 돌아다니는데, 골목 구석에서 에스프레소 바를 하나 발견했어. 크기도 인테리어도, 이곳과 비슷했지.
그래도 성인이 됐는데 에스프레소 한 잔은 마셔봐야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가게에 들어갔어.
메뉴를 봤는데 거기에도 에스프레소 콘파냐라는 게 있어서, 왠지 어감이 좋길래 한 잔 시켜봤지.
그리고 나온 커피를 봤는데,
"실례합니다, 주문하신 커피 두 잔과 타르트 나왔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거기 놔주세요."
대화 도중에 주문한 메뉴가 나왔기에, 나는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잔을 집어들었다.
"어? 그건 생크림 아니에요?"
노아의 목소리와 눈빛에는, 새로운 장난감을 선물받은 아이처럼 호기심이 묻어있었다.
"그래, 바로 이 비주얼이었어."
"우와... 커피에 생크림을 올려줘요?"
"하핫, 학생은 이런거 처음 보지? 우리 가게에서 가장 잘 나가는 메뉴야. 어서 마셔보라고."
기대에 가득 찬 나는, 그대로 잔을 들어 가볍게 한 모금을 마셨어.
그때 느낀 감동이 아직도 생생해.
씁쓸하지만 고소한 에스프레소와 부드럽고 달콤한 생크림의 조화!
과연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그렇게 난, 이 에스프레소 콘파냐에 푹 빠져버렸지.
"과연... 선생님이 이곳 단골인 이유도 알 것 같네요."
메모를 마친 노아는, 실로 좋은 이야기를 들었다는듯 흡족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땐 별 생각 없이 마셨는데, 키보토스에 오면서 두 번 다시 마시지 못하게 된 줄 알고 꽤 슬펐지. 어느 순간, 그날의 한 잔이 추억이 되었더라고."
"추억, 인가요..."
노아는 끝까지 내 말 한마디 한마디에 경청하고 있었다. 이에 나도 자연스럽게 내 속마음을 줄줄 털어놓고 있었다.
"그래도 나름 발품을 팔아보니 이런 가게가 있어서 다행이었어.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이곳의 커피도 훌륭하고 말야."
"어이쿠, 이거 아무래도 비교당한 것 같은데,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큰일나겠네요?"
어느샌가 우리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있던 사장은, 내게 가벼운 농담을 던졌다.
"하핫, 이거 실례되는 소리를 했으려나요?"
"아닙니다! 누군진 몰라도 경쟁 상대가 있다는건 좋은거 아니겠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다과를 즐기고 있자니, 어느샌가 시간이 제법 흘러 있었다.
"그럼 이제 진짜로 가볼게요, 선생님. 덕분에 커피 잘 마셨답니다?"
"노아가 좋아했다니 기쁜걸? 다음에도 언제든지 사줄게."
"아뇨, 다음에는..."
"응?"
뭔가 말을 더 하려던 것 같았지만, 노아는 늦을 것 같다며 급히 가게를 나섰다.
그리고 또 어느 날, 소낙비가 거칠게 내리던 밀레니엄 학원에서...
"미안해, 노아! 실수로 우산을 안 챙겨서..."
"아, 괜찮아요 선생님. 저도 마찬가지라..."
공교롭게도 우산을 챙기지 않은 우리는, 우선 노아의 기숙사 방에서 비가 그칠 때까지 잠시 머무르기로 했다.
"우선 씻고 계세요, 갈아입을 티셔츠는 금방 꺼내드릴게요."
"고마워, 노아! 덕분에 살았어~!"
노아의 따뜻한 배려에, 나는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덕분에 빠르게 씻고 나온 나는, 뽀송함을 즐기며 콧노래까지 부르고 있었다.
"그럼 이제 저도 씻으러 들어갈게요. 테이블에 커피 내려놨으니 그거 마시면서 기다려주실래요?"
"커피? 고마워~, 역시 노아밖에 없다니까?"
"후훗, 별 말씀을요."
마침 몸이 식어있던 나는, 바로 커피가 있다는 테이블로 향했다.
"커피, 커피~... 어?"
그리고 그곳에 놓여있던 것은,
"이건... 생크림이잖아? 거기다 이 향기..."
틀림없다, 에스프레소 콘파냐. 그것도 상등품이다.
"아니, 이런걸 다..."
당황과 감격을 동시에 느끼던 내 눈에, 테이블에 적힌 쪽지가 보였다.
"이게 왜..."
- 에스프레소는 생각보다 만들기 쉽더라구요? 그래도 그때 가게에서 마신 향을 재현하느라 애를 좀 먹었지만요. 그래도 세미나의 서기에게 어려운 일은 아녔답니다? 무엇보다도, 선생님에게 둘도 없는 추억이라고 하셨으니까...
"그랬구나, 노아..."
그때 내가 가게에서 들려준 추억 이야기, 기억해주고 있었구나.
그래서 날 위해 직접 커피를 내려준 거구나...
"전부, 전부 기억하고 있었구나..."
그렇게 감동에 젖어있을 때...
"네, 전부 기억하고 있어요."
귓가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잠깐. 노아?"
이상함을 느낀 내가 뒤를 돌아보자,
"어ㅇ람ㄴㅇㄻㄴㅇㅁ아! 왜 그런 꼴로 있는거야?!"
샤워를 마치고 나왔는지 머릿결과 피부에 물방울이 맺힌 노아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이 좋아하시던 커피의 향도, 선생님이 입고 다니는 옷의 치수도, 그리고... 대략 한 달간의 일기예보도요."
"어, 어?"
그랬다. 생각해보니 뭔가 이상했다.
노아가 원래 비 소식을 잊은 적이 있었나?
왜 노아의 방에 내 치수에 맞는 티셔츠가 있었지?
덫은 이미 깔려 있었다.
"물론, 여기까지 했어도 거부하시는건 선생님 마음이에요. 저도 강제로 하고싶진 않고... 다만,"
노아는 다시 한 번, 내 귓가에 속삭였다.
"저도 선생님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고 싶어요."
에스프레소 콘파냐는 달콤하다.
쓰디쓴 어른의 맛 위에 부드러운 순백의 크림이 얹어지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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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전 에스프레소 아다를 뗐을 때 느낀 감동을 표현하려고 노력한 작품
실제로 맛있으니 여러분도 한잔씩 마셔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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