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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소설) "전 당신같은 어른은 되지 않으렵니다."

OGIAD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3.12 22:43:31
조회 3758 추천 44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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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미야코."


"네, 선생님?"


어느 오후의 샬레. 난 자연스럽게 샤워실 앞에서 머리를 닦고 있는 미야코에게 물었다.


"예전에 나같은 어른이 제일 싫다던 거 말야."


"커흡?!"


마신 것도 없는데 사레가 들렸는지, 미야코는 성대하게 기침을 했다.


"정말, 선생님! 그 얘기는 안하기로 했잖아요!"


"아, 그랬나? 미안미안, 역시 반응이 재밌어서~!"


"... 선생님은, 의외로 짖궂은 면이 있다니까요?"


볼을 부풀리며 대꾸하는 미야코는 꽤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아 글쎄, 미안하다니까~. ... 근데 말야, 미야코."


"네?"


갑자기 톤이 확 낮아진 내 목소리에, 미야코는 조금 긴장한 듯했다.


"그러면 혹시, 혹시 말야."


"왜... 그러시나요?"


미야코에게 얼굴을 들이밀자, 그녀는 겁먹은 토끼처럼 잔뜩 움츠러들었다.


"... 에잇."


"앗! 아니, 선생님! 뭐하시는 거예요!"


장난스럽게 미야코의 이마를 검지로 살짝 밀자, 아무리 내게 한없이 너그러운 그녀라도 화가 난 모양이다.


"아~, 또 장난쳐버렸네? 일부러 그런건 아닌데 말야~."


"정말이지, 오늘따라 더 이상하시네요?"


"그래서, 싫어?"


"물론 싫지는 않아요, 토끼들은 함부로 만지는 걸 싫어한다지만 저는 토끼가..."


저런 말을 하는걸 보니 그래도 진짜로 화나진 않았나 보다. 그나마 다행이네.


"그나저나 미야코, 슬슬 돌아가야 하지 않겠어? 해가 지면 캠프로 돌아가기 힘들텐데."


"아, 듣고보니 시간이 그렇게 됐네요. 오늘도 고마웠습니다, 선생님."


"하핫, 오히려 내가 고맙지. 덕분에 야근은 안 해도 될 것 같아."


"네, 그럼 RABBIT 1, 베이스캠프로 복귀하겠습니다."


잠시 벗어뒀던 방탄조끼 등을 다시 입은 후, 그녀는 경례와 함께 코우사기 공원으로 돌아갔다.





"후우..."


미야코를 보내고 나니, 샬레 사무실은 평소보다 더 텅 빈 느낌이었다.


그런 사무실을 채우고 있는 것은, 창가에서 쏟아지는 늦은 오후의 햇빛이었다.


"그러고보니 벌써 봄이구나."


코트를 입고 다니기엔 꽤 답답하다고 느낄 정도로, 날씨가 꽤 풀린 상황이었다. 그 추운 겨울이 마치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그리고 이런 날엔, 꼭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 아버지."





"그래, 사범대를 갈 거라고?"


"네, 아버지. 꽤 멀리 떨어진 곳이라 자취를 할 것 같습니다."


기억 속의 아버지는, 항상 침상에 누워계셨다.


"학비는 어떡할거냐?"


"알바라도 하면서 벌어야죠. 엄마만 고생시킬 수는 없잖아요. 성적이 우수하면 장학금도 받을 수 있을거구요."


"그래... 알겠다."


내 대답을 들은 아버지는 나를 등지고 누우셨다. 아마 그 짧은 대화만으로도 벅차셨던 거겠지.


당뇨 합병증은 무서운 병이었다. 목숨을 온전히 가져가지도 않고, 그저 시름시름 앓게 만드는 질나쁜 희망.


그런 아버지 때문에 엄마는 살림살이에 병수발까지 하루도 편한 날이 없으셨다.


"... 아버지."


"왜 그러냐."


"아마 입학하고 나서는 얼굴 뵈러 자주 못 올 것 같습니다. 저도 계속 의지하고 살 수는 없잖아요."


"... 그거 좋은 마음가짐이구나."


여전히 아버지는 나를 등지고 계셨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아버지, 저는 나름대로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그렇지만 이건 꼭 말하고 싶습니다."





"전 당신같은 어른은 되지 않으렵니다."





- 선생님. 저희는 당신같은 어른이 제일 싫습니다.


"그땐 아무렇지 않은 척 했어도, 좀 충격이었지~. 꽤나 당돌한 아이라고도 생각했고."


퇴근길에 편의점에서 따뜻한 커피와 이런저런 간식을 사면서, 나는 그날을 떠올렸다.


미야코가 마음에 계속 걸렸던 건 그날부터였다. 그 아이를 볼 땐, 조금 더 젊을 때의 내가 떠올랐으니까.


"무능한 어른이 되기 싫어서 참 열심히 살았는데... 저도 크게 다르진 않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버지."


지갑을 펼쳐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초등학교 입학 날, 아픈 몸을 이끌고 오신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


어린 나는 뭐가 그리 좋은지, 아버지 손을 꼭 잡고 환하게 웃고 있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아버지가 부끄러워서, 어지간하면 아버지와 같이 사진을 찍지 않으려고 했다.


"... 진짜 못났네, 나란 놈은."


그런 아들임에도 아버지는 언제나 나를 자랑스러워 하셨던 것 같다. 해드린 것도 없고, 늘 피해다니기만 했는데.


다만 그 사실을 알게됐을 땐, 이미 아버지는 세상에 없으셨다.





내가 임용을 봤던 그해 겨울은 참 추웠다. 결과를 기다리며 자취방에만 늘어져있을 때, 돌연히 전화가 걸려왔다.


"네, 여보세... 엄마?"


평소에 아들한테 방해될까봐 용돈 보내줄 때 빼면 연락을 잘 안 하시던 엄마였다. 그조차도 내가 받기를 거부해서 통화가 짧게 끝날 때가 많았다.


그런 엄마가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걸었다. 틀림없이 큰일이라 생각했고, 실제로 그랬다.


아버지의 장례식은 소박하게 치러졌다. 아버지의 동향 친구분들이나 엄마의 지인들을 제외하면, 그리 많이 오지는 않았다.


그나마 대학 친구들이 와서 힘내라고 격려해주긴 했지만, 아버지와의 정이 그리 깊지 않아 애초에 그리 슬프지도 않았다.


... 아버지 유품을 정리하기 전까진.


"응? 엄마, 이건 뭐예요?"


"아, 그거? 너네 아빠가 밤마다 붙잡고 계시던 건데, 자세히는 엄마도 모르겠네?"


책장을 정리하던 중 웬 수첩같은 것이 있어 엄마한테 물어봤지만, 잘 모르는 눈치셨다.


"이게 대체 뭐길래... 어?"


수첩을 펼쳐보니, 거기에는 내가 고등학교 때까지 학교 신문에 실렸던 내용들이 스크랩되어 있었다.


다음 장에도, 그리고 다음 장에도, 아버지가 정성스레 오려서 풀로 붙인 흔적이 가득했다.


사춘기 이후로 내가 울었던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어, 뭐야? 오늘따라 금방 도착했네."


상념에 젖어있었기 때문일까. 오늘은 평소보다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했다.


코우사기 공원, RABBIT 소대 아이들이 지내는 곳이었다.


"거기 누구... 어? 선생님!"


날 맞이해준 건 순찰을 돌던 소대의 프론트맨, 소라이 사키였다.


"여어~, 사키! 다른 애들은?"


"다들 안에 있는데, 그나저나 그건..."


평소 풍족한 삶과 거리가 있어서일까, 사키는 내 편의점 비닐봉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너네 보러 오는데 빈손으로 오기도 그래서, 간식거리랑 따뜻한 커피야. 괜찮지?"


"음! 역시 선생님은 센스가 있다니까?"


사키는 나를 보며 활짝 웃었다. 옛날 같았으면 상상도 못 했을텐데 말야.


"아, 사키! 복귀했... 선생님?"


"또 만났네, 미야코. 보고 싶었지?"


사키의 안내를 따라 텐트로 향하니, 과연 나머지 소대원들이 식사를 마치고 정리 중이었다.


"아아, 선생님...! 오랜만, 이네요..."


"쿠히히, 보아하니 썩 괜찮은 걸 들고온 모양이네?"


"모에도 참, 선생님을 보자마자 그런 소릴 하면 예의가 아니잖아요? 소대장으로서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선생님."


"하하, 됐어. 하루이틀도 아닌데 뭐."


적당히 자리에 앉은 나는 봉지에서 간식들을 꺼내 나눠주었다.


"보자, 감자칩에 초콜릿에 마시멜로에 구미까지... 커피는 따뜻한 카페라떼로 통일했는데, 상관없지?"


"와아...! 그, 그럼 저는 초콜릿으로!"


"엑! 뭐야 미유, 웬일로 그런 파멸적인 열량을 골랐네? 뭐, 그럼 나는 감자칩~!"


"그럼 나는 마시멜로로 할까? 마침 모닥불도 있겠다... 미야코는 구미로 괜찮아?"


"네, 저는 오늘 저녁을 좀 많이 먹어서요."


각자 간식을 가져간 아이들과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고 있자니,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오늘 불침번은 미야코가 서는구나?"


"네, 요 며칠 사키가 맡았는데, 꽤 피곤해하는 것 같아서요. 놔두면 무리할 것 같아서..."


"하긴 사키는 모범생이니까, 놔두기엔 좀 걱정되지?"


달이 밝은 밤. 나와 미야코는 공원 근처를 같이 돌고 있었다.


"그나저나 선생님은 슬슬 들어가보셔야 되지 않나요? 벌써 시간이 꽤 늦었는데요."


"가봤자 누가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아까 커피 마셔서 쌩쌩하다. 이대로 미야코랑 좀 더 있다 가려고."


같이 있겠다는 말이 싫지 않았는지, 미야코는 약간 얼굴을 붉혔다.


"저... 근데 선생님, 있잖아요."


"응? 왜 그래, 미야코?"


평소랑 다르게 쭈뼛거리는 미야코가 신경쓰여, 나는 잠시 멈춰서서 미야코를 바라보았다.


"그, 오늘 낮에 이야기하려다 마셨던 거요..."


"내가? 무슨 이야기를... 아, 그거?"


기억을 더듬어보니, 확실히 미야코에게 뭔가 말하려다 장난으로 무마한 게 생각났다.


"아니 미야코~, 진짜 그건 장난이었다니까? 혹시 너무 심했으면 내가 사과할..."


"그치만, 그치만요, 선생님."


미야코의 눈빛은 진지했다. 아, 이건 장난으로 못 넘기겠네.


"선생님은 항상, 그날의 이야기를 할 때면 무척 슬픈 표정을 짓거든요. 선생님 스스로는 잘 모르시는 것 같지만..."


"어, 정말?"


진짜 몰랐던 사실이다. 말할 때마다 거울을 보진 않으니까.


"혹시 뭔가 마음에 담아두신 게 있다면, 지금 이 자리를 빌어서 다 이야기해주시면 좋겠어요. 그야 전..."


미야코의 눈가가 촉촉해져갔다. 어라, 이게 아닌데.


"전, 선생님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


"미야코."


난 미야코의 머리에 내 손을 얹은 후, 적당히 머리가 헝클어지지 않을 정도로 쓰다듬었다.


"어...? 선생님?"


"미야코가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었던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의도한 건 아녔지만, 너희 입장에서 난 RABBIT 소대를 버린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커다랗고 거친 손으로 멋대로 머리를 만지면 싫어할 법도 한데, 미야코는 얌전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래서 나도 항상 미안하단다. 내가 좀 더 서둘렀으면, 너희들이 고생하지 않아도 될텐데."


"선... 생님..."


미야코는 의외인듯 날 올려다볼 뿐이었다.


"아무튼, 이 선생님이 학생을 미워할 일은 없단다. 누가 그랬잖니?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는 같다고. 자식 미워하는 부모가 없는 것처럼, 학생을 미워하는 선생도 없는거야. 어른은 언제나, 아이를 원망하기보다 용서할 이유를 찾는 법이거든."


"그랬, 군요... 그래도 죄송해요, 제가 괜히 신경쓰이게 했네요."


"그니까 괜찮대도~! 아, 그래도 내가 미야코한테 하나 바라는 게 있다면..."


근처에 벤치가 있어 잠시 앉은 나는, 미야코에게 옆 자리를 툭툭 치며 같이 앉을 것을 종용했다.


"남한테 자기 속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내는 건 항상 중요하다는 거야. 미야코는 소대장으로서의 책임 때문인지, 가끔 혼자 끙끙 앓는 것 같으니까."


"그렇게, 보였나요?"


"선생님은 다~ 아는 방법이 있단다? 내가 내 표정을 모르는 것처럼, 미야코도 너 자신의 표정을 모르잖아. 미야코는 선생님을 볼 때마다, 꼭 뭔가를 고백하려다 주저하는 것 같던데?"


옆자리에 앉은 미야코에게, 나는 내가 뼈저리게 느낀 교훈을 들려주었다.


사실은 내가 당신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내가 당신을 얼마나 존경했는지 스스로도 알고 있었는데.


그 마음을 전해주려고 보니 그땐 너무 늦어서, 이젠 대신 제자에게 가르쳐주고 있네요.


"그, 그러면... 혹시 지금 제 모든 마음을 이야기한다면, 들어드릴 건가요?"


"오, 진짜? 물론 그래야지. 저 높이 뜬 달에게 맹세할게."


그렇게 말하고 미야코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녀는 곧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선생님."


"응?"


"사실은 저... 선생님이 그 누구보다 좋아요."


"응, 역시 그랬... 잠깐, 뭐?"


어라, 이런 말을 바란 건 아녔는데.


"제가 늘 선생님에게 뭔가 고백하려는 것 같았다, 라고 하셨죠? 맞아요, 사실은... 선생님에게 사랑한다고, 늘 말하고 싶었는데..."


미야코는 조용히 내 손을 잡았다. 자그마한 두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저... 선생님."


"계속 말하렴, 미야코."


"선생님이 제 마음을 받아주시지 않아도 괜찮아요. 다만 약속해주실래요? 오늘의 제 감정을, 온전히 이해해주겠다고. 어른과 아이의 관계라면, 이런 응석은... 부려도 괜찮겠죠?"


어른과 아이의 관계... 그런 관계에서 볼 때 난 미야코의 스승이고, 아버지고, 지도자였기에 이렇게 답해주었다.


"응. 선생님은 언제나, 네 감정을 이해하고 있단다."


달빛이 그저 고요히 비치듯, 나 역시 그저 그녀의 마음을 받아주었다.


*****

당어싫을 진지한 소재로 써먹고 싶기도 했고, 선생이란 캐릭터에 배경설정이 있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어서 쓴 소설

선생은 마지막에 고백을 받아준 걸까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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