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키보토스의 모든 학생들에게
아마 이 편지를 읽고 있을 너희들은 꽤 당황했겠구나.
그러나 부디 오해 없이 끝까지 읽어줬으면 좋겠다.
언제나 선생님을 아끼고 사랑하는 학생들의 마음을, 선생님은 잘 알고 있어.
그러나 최근, 이것이 지나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구나.
선생님은 너희들의 과분한 사랑에 모두 답해줄 수 있을만큼 대단한 사람도 아니거니와, 교사와 학생 사이에는 어느 정도 선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단다.
그 선을 넘게 되면 돌이킬 수 없게 되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선생님은 그게 늘 두려워서.
그래서 총학생회와의 회의를 통해, 이렇게 공문 형태로 편지를 쓰기로 결정했단다. 부디 이해해주길 바라.
다시 한 번 선생님이 이곳에 있는 동안 아낌없이 존경과 사랑을 나누어준 모두에게 감사를 표할게.
늘 건강하기 바란다!
20XX년 XX월 XX일
샬레의 선생이, 모두에게 경의를 담아
"이게, 대체 뭐야..."
오늘의 당번이었던 하야세 유우카는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마침 화면이 켜져있던 선생의 태블릿에 '유서.txt'라는 파일이 있는 것도 당황스러운데, 그 안에는 키보토스의 모든 학생에게 쓰는 편지가 있었다니.
그녀는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지만, 아무리 세미나의 회계인 그녀로서도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아냐, 그럴 리 없어...!"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밝은 얼굴로 학생들을 반겼던 선생이었다. 그런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고 있다고?
하지만 유서의 내용을 보니 아예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교사와 학생 사이의 선... 그렇다는 건..."
유우카가 도달한 결론은 충격적이었다.
"우리 때문에... 선생님이... 그런 생각을..."
우리가 너무 선생한테 의존해서, 어른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겨서.
그래서 선생은 이 세상에서 도피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야, 아니야아니야아니야... 으흐윽...!"
유우카는 머리를 붙잡고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조금 모자라 보여도 순박하고, 누구보다 헌신적인 사람이었는데. 그런 그를 죽음으로 내몰다니.
아직 그에게 내 마음을 전하지도 못했는데, 늘 부끄러워서 모진 소리만 했는데.
하지만 그렇게 우는 것도 잠시.
"... 가봐야 해. 선생님을 만나러."
하야세 유우카는 결심했다. 선생을 꼭 만나야겠다고.
만나서 그를 설득하고, 자신의 진심을 전할 거라고.
유우카의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거면 됐나..."
선생은 수면실의 침대에 걸터앉아, 어떤 알약을 삼켰다.
"이걸 먹고 나면..."
텅 빈 눈으로 물잔과 약통을 내려다보며, 그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조금 있으면 몸이 훨씬 가벼워지리라,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선생님!"
그러나 그 생각은, 곧 수면실에 도착한 남색 머리의 소녀로 인해 깨지고 말았다.
"어? 유우카? 무슨 일..."
"선... 생님... 그건 설마...!"
유우카는 보고 말았다. 선생이 손에 든 것을.
거기에는 반쯤 비어있는 약통이 들려있었다.
"아... 아아...! 설마 이미..."
"어? 아, 아냐! 유우카, 이건..."
선생은 손사레를 치며 변명하려 했지만, 곧 그는 갑작스런 포옹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선생님... 죄송해요... 제가 조금만 더 선생님께 친절했다면... 흑..."
"유, 우카..."
선생은 놀랐지만, 이내 품에 안긴 유우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유우카... 오늘 많이 힘들었나 보구나... 그래도 괜찮아, 여기 선생님이 있으니까..."
"또, 또 그렇게..."
학생을 위로해주는군요. 당신은 무너져가고 있었으면서.
목이 메어서, 다음 말은 나오지 않았다.
"유우카, 나 졸리니까... 조금만 이대로, 있어줄래..."
"네? 아, 안돼요! 지금 당장 의사를 부를 테니까...!"
유우카의 간절한 말은, 안타깝게도 선생에게 닿지 않았다.
유우카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은, 그대로 힘을 잃고 툭. 침대로 떨어졌다.
"아, 아아... 아아...!"
사람이 너무 슬프면 소리내어 울 수조차 없다는 걸, 유우카는 그때 처음 알았다.
"선... 생님... 선생님... 제발 일어나주세요..."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데,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데.
유우카의 허벅지를 베고 뉘여놓은 선생은, 일어날 기색이 없었다.
유우카는 그저 하염없이 울면서, 잠든듯 고요한 선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전 당신에게 더 많은 걸 받았는데...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이거 뿐이네요..."
당신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것. 유우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 정도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이제 눈물이 말라 더 울 수조차 없을 때.
- 똑똑! 똑똑똑!
수면실 밖에서 분노어린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응? 저기, 누구..."
"선생님! 안에 있지! 당장 나오라고, 이 색골!"
어린 소녀의 목소리. 그 목소리는 상당한 열기를 띄고 있었다.
"어라? 열려있네... 아! 찾았... 어라? 그쪽은..."
조그마한 체구의 분홍빛 소녀는, 유우카를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저기... 미안, 부탁이 있는데."
잔뜩 충혈된 눈으로, 유우카는 그 소녀에게 부탁했다.
"총학생회에, 연락해줄래? 아무래도 선생님이... 선생님이...!"
분명 눈물은 말랐을텐데, 유우카의 눈이 다시 촉촉해지기 시작했다.
"어, 총학...? 아, 맞다, 그거! 저기, 미안한데 잠깐 비켜줄래? 선생님이랑 할 얘기가..."
"선생님이 돌아가셨단 말야!"
유우카는 스스로도 놀랄만큼의 성량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소녀 역시 바짝 겁먹은 모양이었다.
"뭐, 돌아가셔...? 선생님이?"
"그래, 돌아가셨다고... 이렇게 갈 사람이 아녔는데... 아무것도 못 해드렸는데..."
눈물이 방울방울, 선생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저, 저기... 근데..."
소녀는 우물쭈물하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역시 저 소녀도, 선생의 죽음이 믿기지 않...
"선생님, 지금 일어나신 거 같은데?"
"어?"
"으으... 뭐가 이리 시끄러워..."
그 말대로였다. 분명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아야할 선생은, 머리를 긁적이며 몸을 일으켰다.
"서, 선생님? 어떻게..."
"어라? 유우카... 미안, 당번으로 불러놓고 멋대로 잠들었네... 근데 유우카, 혹시 울었어?"
선생은 유우카의 눈물 자국이 매우 신경쓰였지만...
"마, 마침 잘됐네! 선생님,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응? 코하루? 넌 또 왜..."
대뜸 삿대질을 하며 다가오는 코하루 때문에, 선생은 유우카를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하아... 그러니까, 내가 이해한 게 맞니?"
선생은 한숨을 푹 쉬며, 미간을 짚은 채 코하루를 혼내고 있었다.
"으, 으응... 미안..."
무릎을 꿇고 손을 든 코하루는, 유우카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바로 전날, 핸드폰의 배터리가 다 떨어져서 코하루는 샬레에 방문했다.
샬레의 사무실에서 핸드폰을 충전하던 코하루는, 아즈사에게 연락해야 하는 것이 떠올라 양해를 구해 선생의 업무용 태블릿을 빌려썼다.
그렇게 아즈사에게 모모톡을 보낸 후, 코하루는 문득 하나코가 지나가듯 한 말을 기억해낸 것이다.
"선생님의 태블릿은 말이죠, '좋은 것'이 잔~뜩 있답니다?♡"
그 당시엔 헛소리로 넘겼지만, 갑자기 궁금증이 폭주한 코하루는 태블릿을 뒤지기 시작했고...
거기에는 이런 파일이 있었다.
- 장유유서.txt
"자, 장유!? 설마 하스미 선배를 생각하면서 그렇고 그런 망상을 했다던가... 야한 건 안돼! 사형이야!"
결국 코하루는 그 파일명을 '장유유서'에서 장유를 뺀 '유서'로 바꾸고 말았다... 그게 무슨 후폭풍을 불러올지 생각하지 않은 채로.
"근데 그게 아무리 생각해도 교육자로서 잘못됐다고 생각해서, 오늘 나한테 따지러 왔는데..."
"하필이면 저랑 만났다, 뭐 그런 얘기죠?"
"으, 응... 미안해, 유우카 씨..."
"사과는 저 말고 선생님에게 해야죠! 멋대로 오해하다니 너무하잖아요!"
"히이익! 죄, 죄송합니다!"
평소 게임개발부를 혼내던 실력일까, 유우카는 능숙하게 코하루를 다루고 있었다.
"저, 저기 유우카... 그쯤하면 코하루도 반성했을 테니까..."
"하아... 네, 뭐... 아, 근데 잠깐."
"어? 왜 그래?"
유우카는 처음으로 돌아가, 가장 궁금했던 것을 선생에게 물었다.
"선생님, 근데 있잖아요. 그럼 그 문서의 내용은 뭐였던 거예요?"
"아~, 그거? 그게 별건 아니고... 거기 적어놓은대로, 최근에 학생들이 너무 날 편하게 대하는 느낌이었거든. 그래서 총학이랑 의논해서 편지를 공문 형태로 보낼 생각이었는데..."
"아하... 그럼 제가 오자마자 잠드셨던건요?"
"유우카... 너도 회계라서 알겠지만, 철야를 3일 동안 하면 길바닥에서도 잠들 수 있단다."
"아."
그렇게 오해가 오해를 물어온 그날의 이야기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아마도.
"후우... 진땀 뺐네."
선생은 유우카와 코하루를 돌려보낸 뒤,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관심을 돌리는 데 성공했던 약병을 바라보았다.
"... 거기, 듣고 있니?"
[네, 선생님. 잘 들립니다.]
수면실 침대 옆에 놔둔 태블릿에서 검은 옷의 소녀가 나타났다.
업무용 태블릿 외에도 선생이 가지고 다니는 오파츠, 싯딤의 상자였다.
"그래... 당분간 저거에 대해선 비밀로 하자꾸나. 알겠지?"
[하지만 선생님, 그건 현실적으로 무리입니다. 샬레는 왕래가 많은 곳이라...]
"그건 알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알려지지 않았으면 해. 도와줄 수 있지."
[... 네, 선생님이 원하신다면.]
소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 약에 대해서 알려지는 건 파국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왜냐하면...
"... 솔직히 요새 기가 허해서 아연 먹는다는 말을 어떻게 하니. 안 그래, 프라나?"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게 그렇게 부끄러운 일인가요?]
"그, 그런 게 있어! 그나저나 너네 선배는 뭐하고 있냐?"
[아로나 선배라면 아까 전부터 낮잠 타임입니다만, 깨울까요?]
"아냐, 됐어. 급한 업무도 다 끝내놨으니까. 대신..."
선생은 휴게실로 향해서 냉장고를 열었다. 그리고 거기서 무언가를 꺼냈다.
[오오, 이건...]
"원래 머슴 밥은 챙겨줘도 자는 녀석 밥은 안 챙겨주는 거거든. 너 혼자만 마셔라?"
[그건 저보고 머슴이라는 건가요... 뭐 좋습니다. 맛있게 마시도록 하죠.]
딸기우유를 받고 기분이 좋아진 프라나를 보며, 선생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흐음... 그렇군요. 아연 섭취라."
그리고 그것을 어쩌다 들은 학생이 있었으니...
"RABBIT 1, 베이스캠프로 복귀한 후... 이후의 작전을 생각해야겠군요."
그것은 토끼가 아니지만 번식력만큼은 토끼와 다름없는 소녀였다.
*****
https://gall.dcinside.com/m/projectmx/15079091
요새 장편 쓰느라 지쳤는데 마침 좋은 소재를 봐서 쓴 소설.
이제 주먹을 꺼내기 전에 누가 빨리 만화로 그려오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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