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심이 조금 지난 오후. 와일드헌트의 녹음실에서, 두 남녀가 있었다.
"있잖아, 카노에. 궁금한 게 있는데."
"어? 궁금한 거? 이히히, 언제든지 물어봐. 혹시 전생에 대한 거라면..."
"어? 어떻게 알았어?"
"어라? 진짜 그쪽?"
와일드헌트에서의 소동을 겪고난 후, 선생은 종종 오컬트 연구회를 방문했다. 보통은 업무의 일환이었지만, 이렇게 학생 개인과의 약속으로 가는 일도 많았다.
녹음실 마이크 앞에서 목을 풀던 카노에는, 선생이 전생에 흥미를 느낀다는 사실이 의외였는지 눈을 꿈뻑였다.
"호, 혹시! 전생에 대해 조금 기억나는 게 있다던가...!"
"어... 그 반대야. 전혀 감이 안 잡혀서, 힌트라도 주면 좋겠다~ 싶어서."
"에엑, 뭐야... 괜히 기대했네."
이 아이는 대체 뭘 기대한걸까. 선생은 감도 잡히지 않는다.
"흐음... 아, 전생의 말투를 따라해주면 기억이 날지도."
"전생의 말투?"
카노에의 제안에 선생은 흥미가 동했다. 생각치도 못한, 신선한 방법이었으므로.
"응, 난 전생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아있으니까... 내 전생의 말투를 흉내내면, 선생님이 기억해낼지도 몰라. 그러면 꼭, 나랑 사귀어줘야 해?"
"어, 어음. 그건 좀 고려해볼게."
카노에는 목소리를 다루는 재주가 뛰어났기에, 분명 귀가 즐거운 경험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선생은 카노에의 제안을 수락했다.
"크, 크흠! 아, 아아... 오빠오빠! 오늘은 뭐하고 놀까?"
"음... 이런 여동생이 있으면 좋겠다라는 감상과 별개로, 기억나는 건 없어."
"에이, 그러지 말고! 빨리 나가자! 놀이공원 가기로 했잖아?"
"가고 싶다면, 지금 가도 괜찮은데?"
"어, 진짜!? 아, 아니, 이게 아니라... 오빠, 사실은 나..."
"근데 잠깐."
손을 들어 카노에의 성대모사 쇼를 잠시 멈춘 후, 선생은 물었다.
"나, 설마 여동생이랑 사귄 거야? 그거 괜찮은 설정 맞아...?"
"서, 설정 아냐! 그리고 엄... 전생에는, 윤리관이 좀 달랐달까..."
"아니, 아무리 봐도 억지잖아!"
태클을 걸긴 했지만, 카노에의 성대모사 쇼는 계속되었다. 확실히 선생에겐 재밌는 경험이긴 했다.
... 물론 자꾸 위험한 ASMR을 들려주려고 해서, 그건 적절한 제지가 필요했다.
"다녀왔습니다~..."
와일드헌트 방문과 샬레 업무를 끝낸 후, 선생은 오랜만에 집에 들어왔다. 업무가 적었던 덕분이었다.
"오늘은 씻고 일찍 잘까... 이젠 맥주 한 캔 깔 체력도 없네."
온몸을 덮치는 피로감에 살짝 서글픔을 느끼며, 침실에 들어온 선생은 옷을 대충 벗어던졌다. 정말이지 긴 하루였다.
"오늘은 왠지, 깊게 잠들 수 있을 것 같네..."
욕실로 들어가 물을 받으며, 그는 생각했다. 그것이 크나큰 착각임을 모른 채.
"후아암..."
씻고 나온 선생은, 그대로 침대에 엎어졌다. 얼마만에 눕는 침대인지, 샬레 수면실과는 비교도 안 되는 부드러움이었다.
"이대로 눈감으면, 영영 뜨지 못할지도..."
잠에 취해 자신이 불길한 소리를 한다는 것도 자각 못한 채, 선생은 곧바로 잠이 들었다. 누가 업어가도 모를만큼 깊게.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가 자기 뺨을 찌르는 감촉에, 선생은 눈을 떴다.
"어라? 누구... 카노에?"
틀림없었다. 창백한 피부에 잿빛 머리칼, 흉터를 연상시키는 초커까지. 틀림없는 이타가키 카노에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정말~! 오빠는 늦잠꾸러기라니까! 어서 일어나!"
얼굴에 짙게 드리운 그림자가 사라지고, 태양보다 밝게 웃고 있다는 것일까.
"음... 꿈이군."
"어? 뭐라고 했어?"
"아무것도 아냐. 그나저나 일단 나와줄래?"
자신 위에 민망한 자세로 올라탄 카노에를 내리고, 선생은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했다. 꿈이라서 그런지, 몸이 한결 가벼웠다.
"일단 오빠 씻어야되니까, 잠깐 기다려줄래? 우리 동생은 착한 아이니까, 기다려줄 수 있지?"
"에헤헤... 응!"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 기분 좋았는지, 카노에는 해맑은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오빠, 너무 좋아...♡"
화장실로 들어가는 선생을 보며 카노에는 침을 질질 흘렸지만, 선생은 눈치채지 못했다.
"우와아~! 놀이공원이다!"
"사람이 많으니까, 오빠 손 꼭 잡아야 된다?"
남매가 도착한 곳은 D.U. 최대의 놀이공원. 정원에 흐드러지게 핀 꽃과 손을 흔들어주는 인형탈들이, 두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래서, 우리 동생은 어디부터 가면 좋겠어?"
"있지있지, 난 회전목마부터 탈래! 오빠도 같이 타자!"
"하핫, 그럴까?"
선생의 손을 잡고, 카노에는 달렸다. 순식간에 회전목마 앞에 선 두 사람은, 같이 말 위에 탔다.
"근데 오빠, 사실은... 말이 흔들리는 거, 조금 무서워. 안아줄래?"
"그럼, 오빠는 그러려고 여기 있으니까."
선생은 한팔로 카노에를 끌어안았다. 체온이 서로 전달되어, 카노에는 안심이 된듯했다.
"오? 움직인다!"
"와아~!"
등을 타고 퍼지는 선생의 체온을 느끼며, 카노에는 즐겁게 회전목마를 탔다.
회전목마 이후, 두 사람은 다양한 놀이기구를 탔다.
"아하하! 이거 봐, 오빠! 표정 엄청 웃겨!"
"욘석! 그거 이리 내!"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찍힌 사진을 보고 한바탕 웃기도 하고,
"꺄아악! 귀, 귀신!"
"걱정 마! 오빠, 좀비도 안개도 안 무서우니까!"
서로에게 의지하며 귀신의 집을 돌파하기도 했으며,
[풀콤보다동!]
"와아! 해냈다!"
"이예이~!"
오락실에서 간단한 게임을 즐기기도 했다.
그리고...
"우와... 오빠, 이거 봐! 놀이공원이 엄청 작게 보여!"
"이 대관람차, 꽤 높게까지 올라가니까. 현기증날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
대관람차에 탄 두 사람은, 놀이공원의 낭만적인 야경을 즐겼다.
"오빠, 고마워... 덕분에 오늘 하루, 엄청 즐거웠어."
"그런 말할 거 없어. 오빠는 그러려고 여기 있는 거니까."
넋을 놓고 놀이공원을 내려다보는 두 사람.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지다...
"꺄악! 오, 오빠!?"
갑자기 카노에를 끌어안은 선생 때문에, 그녀가 비명을 지르는 것으로 침묵이 깨졌다.
"... 미안. 역시 오늘도, 부탁해도 될까. 그런 귀여운 모습을 보면, 참을 수 없게 돼서..."
"... 변태. 하지만 그래도 좋아...♡"
대관람차에서 내린 둘은, 급히 놀이공원을 벗어났다.
집에 돌아온 두 사람은, 현관에서 그대로 서로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
"츄웁, 츕, 하아... 오빠...♡"
"미안해. 동생에게 욕정하는 쓰레기같은 오빠라서..."
"그런 말하지 마... 나도 오빠가 세상에서 가장 좋으니까...♡"
카노에를 안아올린 선생은, 그대로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마음의 준비를 마친듯, 카노에는 상의의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오빠, 오빠, 오빠오빠오빠오빠오빠오빠오빠오빠오빠...♡"
카노에는 선생의 목을 감싸안았다. 그를 놓치지 않겠다는듯.
"있지, 하기 전에... 딱 하나만 부탁해도 될까?"
"응, 오빠의 부탁이라면 뭐든지...♡"
어떤 과격한 것이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던 카노에. 그런 그녀에게, 선생이 속삭였다.
"슬슬 일어나지 그래? 이게 꿈인 건, 카노에도 알잖아?"
"허, 흐억!"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카노에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 그건...!"
카노에는 손에 느껴지던 그 감촉을 다시 느끼고자 했다. 꿈이라기엔 생생한 기억이었건만, 감촉은 두 번 다시 느껴지지 않았다.
"아, 아아...!"
그러나 카노에는 절망하지 않았다. 이건 기회였다.
"선생님! 선생님의 연락처가...!"
그녀는 급히 핸드폰을 켜 선생에게 모모톡을 남겼다. 이건 틀림없는, 전생에 대한 단서였으므로.
[선생님! 혹시 일어났어?]
[역시 우리들, 전생에 연인이 맞았나 봐! 가능하면 빨리 와일드헌트로 와줘!]
"왜, 왜지? 왜 답장이 안 오는 거야... 설마 선생님, 관심이 식었다던가...!"
온갖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카노에는 손톱을 깨물었다. 그때.
- 모모톡!
"아, 선생님!"
선생의 답장. 틀림없었다. 그 내용은 분명, 긍정의 내용을...!
[카노에, 지금 새벽 3시란다... 아무리 선생님이라도, 이 시간에 외근은 무리야...]
"아..."
카노에는 조금 실망하며, 선생에게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전생의 기억이 떠올랐으니.
"기억은 확실히 떠올렸으니까, 이제 밀어붙이기만 하면...! 근데 잠깐."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 아까 그 꿈, 무슨 내용이었지? 분명 엄청 야한 꿈이었는데..."
꿈이란, 그저 한바탕 꿈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으, 으... 으아아! 대체 왜 기억이이이이!!!"
하나도 기억해내지 못하는 자신을 원망하며, 카노에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
오늘 쓴 소설이 날아가서 너무 화가 나 꼴리는대로 한편 썼습니다.
한붕이라서 캐붕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그래도 쓰면서 즐거웠어요.
짧은 소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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