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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소설 삼국지를 처음 읽고자 하는 사람에게

ㅇㅇ(121.179) 2023.08.23 18:13:16
조회 15828 추천 56 댓글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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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번역본이 너무 많아 무얼 읽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작성했다.

다만 내 주관이 많이 들어가 있으니 이해 부탁해.



삼국지는 필독서인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한번쯤 읽어보면 괜찮은 고전소설이다. 크게 얻을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삼국지는 아주 엣날부터 인기가 많은 소설이었고, 특히 90년대 코에이 삼국지게임이 성공하여 대중적 인기의 정점을 찍게 된다. 나도 게임으로 인해 삼국지에 관심을 가졌었고 당시에는 삼국지 관련 만화나 영화가 많았다. 즐길거리가 그때와 비교가 안되는 지금은 젊은 세대가 삼국지에 무관심한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삼국지 소설을 읽어보고 싶다면, 기본적으로 10권 분량의 장편소설이기 때문에 한질을 골라서 읽도록 하자.

우리의 시간은 소중한데, 10권짜리 삼국지 여러 판본을 섭렵할 정도로 돈과 시간낭비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삼국지는 크게 소설가의 번역과 전문가의 번역으로 나뉜다.



소설가가 유려한 문체로 다듬은 삼국지


유명한 작가들이 문장을 손봤기 때문에 읽기 편하고 재미도 가장 크게 느낄 수 있다.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성공한 삼국지도 거의 이 부류에 속한다.

단점이라면 전문가 번역에 비해 오역이 많은 것이겠지만, 오역이란 것이 일반독자 입장에서 그다지 신경 쓸 정도는 아니다.

예를 들면 '칼을 꺼내들고' 를 '긴 칼을 들고' 로 오역했다 지적하는 식으로 스토리 이해에 지장이 없는 자잘한 오류들이 많다.


아래 기사를 읽어보면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오역이 대충 어떤 식인지 참고할 수 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5/0000146299?sid=103



여하튼 문장력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삼국지들을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판본에 별표를 달았다.)



박태원 삼국지

구보 박태원의 삼국지인데 거의 5~60년대에 유행하던 정음사 버전은 구하기 힘들다. 옛날 문체에 한자가 너무 많으니 굳이 찾아 읽을 필요는 없다.

깊은샘 출판사에서 2008년 개정판이 나와있는데, 고문투가 상관없고 박태원에게 특별히 관심이 있다면 깊은샘판을 구해서 보자.



월탄 박종화 삼국지

7~80년대에 가장 유행했다고 하는 삼국지. 현재는 달궁 출판사에서 구할수 있는 것 같다. 유려하지만 옛스러운 문체, 한자가 진입장벽이다.



정비석 삼국지

80년대 유행했는데 작가가 워낙 문장력이 좋고, 재미로는 최고로 치는 사람들이 많다.

다른 삼국지들에 비해 분량을 많이 잘라내서 6권 분량으로 읽는 부담이 덜하다.

작가 사후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문체를 지좆대로 바꿔서 개정판을 냈는데 개인적으로 좀 불만이다. 대표적으로 '~한다'를 '~했다'로 일괄수정했다.

옛날 문체에 거부감이 없다면 구판인 고려원판을 중고로 구매해 읽는것도 추천한다.



이문열 평역 삼국지

가장 대중적인 삼국지. 평역 삼국지라서 중간중간 작가의 평이 자주 들어가는데 주관적이고 전문성이 부족해 오류가 있는 것이 단점이다.

소설로서의 매력이 아주 뛰어나고, 문장력에 있어서 이문열 삼국지를 따라올 판본은 없다고 본다.

다만 RHK 개정판은 삽화, 지도를 전부 빼버려서 민음사판을 중고로 구할것을 추천한다. 민음사판이 워낙 물량이 많이 풀려서 인터넷서점에서 최상급 중고도 쉽게 구할수 있다.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

일본에서 가장 대중적인 삼국지라고 하며,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에 역수입 될 정도로 영향력이 큰 삼국지 판본이다.

위에 언급한 정비석 삼국지도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를 참고한 흔적이 보인다.

장점은 부담없이 술술 읽어나갈 수 있는 부드러운 문체와 저렴한 가격.

작가 사후 저작권이 만료되어 값싼 번역본들이 시중에 나와있다. 대표적인게 코너스톤 삼국지.

단점이라면 일본어를 전문 번역가가 번역한 것이니 소설가 손을 거친 것만 못하고, 번역가 역량에 따라 문장의 차이가 날 수 있다.





고전 삼국지의 충실한 번역본(정역삼국지)


일단 알아두어야 할 것은 삼국지의 원본 (모종강본)은 문체가 딱딱하고 재미가 없다는 점이다.

몇몇은 원본도 충분히 재밌다고 주장하겠지만, 지금까지 정역삼국지들의 저조한 판매량이 이를 반증한다.

말그대로 번역을 한것이기 때문에 모든 정역삼국지들의 내용은 대동소이하며 자잘한 문체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김구용 삼국지

내가 알기로는 최초의 정역이다. 번역수준도 뛰어나고 역자가 시인이기도 해서 한시 번역에 특히 높은 평가를 받는다.

매우 가치있는 판본임에도 문체가 고루하고 딱딱해서 인기가 없다. '어찌 ~하리오' 식의 말투가 많다.



황석영 삼국지

황석영이 정역을 추구했기 때문에 정역류에 넣었다. 황석영의 이름값과 마케팅이 성공해 가장 많이 팔린 정역류가 되었다.

그런데 알다시피 황석영은 소설가라 번역의 정확성은 정역류 중 가장 떨어지는 편이다.

이문열이 삼국지에서 본인의 필력을 유감없이 뽐낸데 비해, 황석영은 이름값에 비해 문장에 별 특징이 없다.

결국 이도저도 아닌 무난한 삼국지가 되었는데, 썩어도 준치인지라 나름 깔끔하고 부드러운 번역이란 평이 많다.

추천하는 이유는 문장보다 채색삽화가 워낙 훌륭하기 때문인데, 삽화도 소설을 즐기는데 중요한 요소이니 참고하자.



리동혁 본삼국지

결론만 말하자면 본삼국지는 마니아들의 삼국지이다. 삼국지 소설을 읽고 빠져들어 더 많은 것을 파고들고 싶다면 좋은 선택이다.

그만큼 작가의 해설이 풍부하다. 장점은 정확한 번역과 풍부한 자료. 해설과 더불어 괜찮은 채색삽화와 지도, 인명사전 등 자료가 많다.

단점은 역자가 조선족이라서 번역은 정확할지언정 문체가 어색하고 딱딱하여 소설로서의 매력은 떨어지는 편.

참고로 4권짜리 개정판은 해설이 많이 빠져서 이 책의 큰 장점이 사라졌으므로, 11권짜리 구판을 E북 구매 혹은 중고구매를 추천한다.



정원기 정역삼국지

역자인 정원기는 삼국지 전문가이다.

역자가 정직한 번역에 매우 집착하는 편이라 원본 모종강본과 거의 흡사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가장 많은 채색삽화가 실려있어 보는 재미가 있다. (3~400매 정도이고 60여명의 화가가 나눠서 그렸다.)



박기봉 삼국연의

삼국지의 편저자인 모종강은 소설만 손본것이 아니라 매화 시작부분, 그리고 소설 중간중간 자신의 평을 넣었는데, 그 평까지 번역한것은 박기봉 삼국지가 유일하다. 다만 이것이 오히려 독서에 방해될 여지도 있다. 필력 뛰어난 이문열 삼국지조차 중간에 평역한다고 맘에 안든다는 사람들이 한트럭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각권 미리보기가 가능하니 모종강의 평이 어떤 느낌인지 감을 잡아보고 구매를 결정하자.



송도진 삼국지

중문학 전문가가 정직하게 번역하여 모종강본 원본과 매우 흡사하다는 평이다.

매화 말미에 정사 및 여러 역사서들을 참고하여 소설과 실제역사를 비교해주는 점이 특징인데, 이 해설부분이 분량이 꽤 많다.




삼국지의 변화, 발전에 대해


흔히 삼국지를 천년 고전이라 하는데, 삼국지의 원본은 고정된 형태가 아니며 오랜 세월이 흐르며 계속 각색되고 살이 붙어왔다. 역사서와 민담 등을 최초로 정리해 소설화 한 사람이 나관중이라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나관중의 삼국지 원본은 전해지지 않는다. 이후 여러가지 판본이 난립하던 중 모륜, 모종강 부자가 기존 판본을 각색하고 편집하여 모종강본을 내놓았고, 당시(청나라 초) 독서계를 휩쓸어서 이 판본만이 현재까지 살아남게 된다.


다만 지금 기준으로 모종강본은 재미가 떨어진다. 재미를 떠나서 고전은 고전 그대로 번역해야 한다는 의견이 꽤 많지만 정작 나관중의 원본은 유실되고 없다.

모종강본 외에도 가정본 같은 수많은 판본들이 있었고 모종강이 이를 수정, 삭제하고 뜯어고치는 바람에 이를 비판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물론 모종강본은 그 자체로 고전이고 존중받아야 하지만, 너무 집착하여 모종강본의 정역만이 유일하고 진정한 삼국지란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삼국지는 중국을 넘어 동아시아의 고전이 되었으며 일본은 요시카와 에이지의 번안본이, 한국은 이문열을 필두로 여러 번안본이 인기를 누려 왔다.

즉 모종강 이후에도 삼국지는 끊임없이 변화 발전해 왔다는 것이다. 정역본과 번안본 모두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 정답은 없는 문제일 것이고, 신중하게 선택하여 행복한 독서를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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