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용차가 충격에 삼켜진 순간, 『검귀』는 즉시 움직이고 있었다.
옆에 있는 여인(麗人)의 허리를 팔로 감싸 안고, 비어있는 쪽의 손으로 검을 뽑아들자, 바퀴가 공중에 떠 기울어진 용차의 벽을 안쪽에서 베어낸다. 직후, 바닥과 좌석을 차, 밖으로 뛰어나왔다.
다음 순간, 진홍빛 충격파가 본격적으로 밀어닥쳐, 용차가 파도와 같이 휩쓸린다.
"────."
눈 아래, 충격으로 갈라져 날아가는 차열이 보인다. 극히 일부의 정예만이, 빌헬름처럼 순간적인 행동으로 화를 면하나, 대부분은 그대로 맹위에 삼켜졌다. 가도를 달리던 용차, 약 50대의 용차가 통째로 말이다.
"토벌대의, 머리부터 끝까지……"
땅에 내려선 빌헬름은, 분연에 휩싸인 대참사에 어금니를 꽉 깨문다.
『파멸원망』 스트라이드의 토벌──이를 위해 편성되어, 도시 픽텃으로 향하던 자들이다. 그것이 갑작스러운 일격에 선제당해, 아주 제대로 전열이 흐트러졌다.
노호와 비명이 어지러이 오가며, 토벌대는 눈 깜박할 새에 부상자 집단으로 변모한다. 쓰러진 용차에서 기어 나와, 피를 흘리는 부상자가 움직이지 못하는 중상자를 끌어내고, 구원을 시작한다. 이제 상황은 완전히, 야전 병원이나 다름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바보 같은……"
그런 상황을 눈앞에서 보았기 때문인지, 바로 옆에서 망연해하는 중얼거림이 들렸다. 그것은 빌헬름이 끌어안아, 순간적으로 용차에서 끄집어낸 로즈월이다.
늘 태연하고, 표표히 여유를 부리는 그녀가, 그런 식으로 동요를 겉으로 드러내는 일은 드물다. 그 정도로, 이것이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
"로즈월? 뭘 보고……"
옆을 바라보며, 빌헬름은 로즈월의 모습에 의아해했다.
꼼짝 않고 두 눈을 부릅뜨고는, 좌우로 색이 다른 눈동자에 경악을 내포한 로즈월. 그 시선은 충격에 휩쓸린 차열이 아니라, 저 멀리 떨어진,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 빌헬름은 푸른 눈을 돌렸다.
──그리고, 그걸 발견했다.
"무슨."
멀리, 가도의 끝에 보이는, 상업도시의 풍경. ──그 거리의 중심, 도시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하늘 한가운데, 기묘한 먹구름이 떠 있있다.
먹구름은 날개를 펄럭이며, 길고, 굵은 목을 세 개 늘어뜨려,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다.
먹구름──아니, 그것은 이 세계에 사는 모든 이가 아는 존재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물을 보는 일은 절대로 없는, 속세를 벗어난 이치에 사는 생명체.
"용."
용(竜)이 아닌, 용(龍)──검정색 날개를 펼친, 다두의 용이 픽텃 중천에 체공하고 있다.
토벌대의 면면 또한, 잇달아 그 위용을 눈에 담는다.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경악이 퍼져간다. 악연실색한 나머지, 움직이지 못하게 된 자가 단숨에 늘어났다.
보르도의 노호가 토벌대의 정신을 차리게 할 때까지, 그 상태는 계속되었다.
2
"전제가 크게 무너졌네. 저건 무어냐.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있긴 한가?"
부상자를 데리고, 일시적으로 가도를 벗어나는 토벌대, 그 선두에서 보르도가 말을 꺼낸다.
다행히, 보르도의 상처는 얕아, 전투나 지휘를 하는 데에 지장은 없다. 베인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있으나, 침이라도 발라두면 된다.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돌연히, 도시 상공에 나타난 흑룡과, 스트라이드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말이다.
용의 출연 같은 일은, 백 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하는 진기한 일이다. 그것이, 왕국에 있어 위협적인 대죄인을 토벌하려는 부대를 습격하다니, 우연이라 생각하기는 어렵다.
저 흑룡은, 애초부터 그럴 생각으로 토벌대에 공격을 가했다. 그 말은 즉, 용이 스트라이드와 협력관계, 혹은 종속관계에 있음을 의미한다.
"설마, 저 흑룡이 전승에 나오는, 『신룡』 볼카니카가……"
"벽화의 모습하곤 아주 딴판이다! 안 그래도, 여긴 친룡왕국 루그니카라고! 무슨 고로, 용이 우리에게 엄니를 드러내겠나!"
"지금은 부상자를 우선해라! 아아, 젠장! 술사가 부족하잖아!"
예상치 못한 선제공격을 받아, 토벌대의 혼란은 최고조에 달한다.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최초의 일격은 그야말로 최고의 전술, 당한 처지로서는 최악의 전개다.
실제로, 정예를 모았을 터인 토벌대조차, 용의 숨결에 반이 당했다.
부상자를 품에 안은 채로 전장에 남는 것은 자살행위. 이로써 토벌대는, 싸우기도 전부터 철퇴할 것을 시야에 넣어야 할 상태이다. 그러나──,
"──보르도, 네가 물러서라고 해도, 난 간다."
"……너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옆에 다가선, 맹렬한 검의 기운을 두른 『검귀』에 보르도는 탄식했다.
단 한 명──아니, 단 두 명 중에 하나, 용의 숨결로부터 무사히 달아난 빌헬름이다. 짐승과도 같은 감으로 움직인 빌헬름, 그에게는 저 도시에 향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뱃속에 아이를 품은 아내를 구해낸다. 그것은 그에게 있어, 절대로 양보할 수가 없는 궁극의 일선이다.
"네 마음은 이해하네, 하지만, 사정이 바뀌었다. 이제, 적은 스트라이드와, 그를 따르고 있는 소세뿐만이 아니다. 작전을 다시 볼 필요가 있겠어."
"──큭, 그래도!"
"네가 죽으러 가는 걸, 눈뜨고 보고만 있을 수은 없지. 『여덟팔』이 놈에게 가담하고 있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 거기에 흑룡까지 더했다가는, 아무리 너라도 살 수 있을까 보냐."
사나운 귀기(鬼気)를 내뿜어, 빌헬름이 분노를 표출한다. 그 눈빛을 받아, 보르도는 온몸의 근육이 긴장한다. 말로 빌헬름을 막지는 못한다. 그 정도는 오랜 세월을 같이 지내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하지만, 말 자체에 거짓은 없다.
테레시아의, 『검성』의 존재는 왕국의 보물이다. 잃어서는 안 될, 지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는 하나, 쓸데없이 무모한 싸움에 아군을, 전우를 잃는 것은 보르도에게 용납되지 않는다.
최악의 경우, 허를 찔러 빌헬름을 구속해서라도, 철퇴를──,
"──엏게, 둘까 오냐."
"……그랬지. 물러설 수 없는 건, 너도 마찬가지였군."
배후, 찌르는 투기와 쉰 목소리에, 보르도는 자신의 실념을 부끄러이 여겼다.
보르도의 뒤에 선 그림 또한, 용의 숨결에 삼켜진 한 명이다. 그럼에도, 그는 놀라울 만큼 힘이 넘친다. 마치, 솟아나는 사기가 부상을 억누르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것은 그림 혼자가 아니라, 토벌대의 반──그 공격에서 살아남은, 반의 인원도 마찬가지다.
용의 숨결을 맞고도, 토벌대의 반은 싸우는 데 충분한 여력을 남기고 있다.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물론, 그래봤자 전력은 반감, 적은 당초보다 가일층으로 전력을 증가시킨 상태이다.
싸우러 가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보르도 경."
"설마, 당신까지 무모한 싸움에 한 수 거들 셈이신가, 메이더스 여사."
요염한 음색에 속내를 간파당해, 쓴 표정을 지으며 보르도는 돌아본다. 여느 때와 같은 복장을 흙먼지로 더럽혀, 『검귀』덕에 궁지에서 벗어난 로즈월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갸웃했다.
그대로, 그녀는 시선을 멀리, 용이 있는 하늘로 향한다.
"무위무책일 뿐인 일이었담, 저도 가담할 생각은 없는걸요. 자살 지망에 동행한 게 아니거드으―은요. 사정이 있어서, 죽어선 안 되는 몸이랍니다."
"죽으면 안 되는 건 누구든 똑같다. 둘러대지 말고, 얼른 말하기나 해. 저 흑룡이, 언제 움직일지 몰라."
"바로 그거야."
옆에서 끼어든 빌헬름을 손으로 가리켜, 로즈월이 한쪽 눈을 감았다. 청색 눈동자에 포착당해, 빌헬름은 '뭐?' 하고 언짢은 투로 내뱉는다.
"무슨 소린가?"
"진언하겠습니다, 보르도 체르게프 지휘관님. 저 용은 틀림없이, 악역의 사도되는 스트라이드가 준비한 비장의 수…… 허나, 놈은 아직, 저걸 완전히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
"추격을 안 하는 것이, 그 증거다 이 말인가?"
로즈월의 구신에, 보르도는 굵게 팔짱을 껴 응수한다. 그 대답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지적한, 스트라이드가 흑룡을 지배하지 못했다는 가능성은 이해한다. 그것은 보르도도, 하나의 안으로 생각하고는 있었기 때문이다.
선제공격으로 적의 기선을 제압했다면, 그대로 추격하여 괴멸상태로 몰아가는 것이 정석. 그러나 용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지금도 흉흉하게, 흑룡은 도시의 하늘에 떠있다. 다만, 그뿐이다. 반쯤이 붕괴해, 상태를 고치려 하는 토벌대에 태평하게 시간을 내주고 있었다.
"하나, 그것이 함정이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도 없네."
"그런 짓을 한다고 무슨 의미가 있지? 용이 제어 하에 놓였다면, 두 번만이라도 더, 숨결을 내뿜으면 그만이다. 아무리 끈질긴 빌헬름 군이라 해도, 끊임없이 노려지면 언젠간 태워질 테지.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를 접근시킬 만한 이유가 없어."
"……과연."
"그리고, 제가 여기서 물러나선 안 된다고 진언하는, 가장 큰 이유도 이에 있습니다. 지금, 용은 제어 하에 있지 않아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도 알 수 없어지지요."
로즈월의 추측, 그 내용에 보르도의 온몸이 떨렸다.
흑룡은 아직, 완전한 지배 상태에 빠져있지 않다. 하지만, 용의 자아가 꺾여, 스트라이드에게 굴복당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타기해 마땅한 사상을 가진 존재, 스트라이드가 왕국과 원수질 자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흑룡을 데리고, 놈은 얼마나 많은 비극을 왕국에 초래할 것인가. 아인전쟁이 종결해, 겨우 진정되기 시작한 루그니카를, 멸망시킬지도 모른다.
친룡왕국 루그니카를, 용으로 하여금 망하게 한다.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최악의 놀림거리다.
"보르도 지휘관님……!"
분노와, 패기로 떨리는 목소리가 보르도를 불렀다.
그건 로즈월의 것이 아니다. 물론, 빌헬름도, 그림도 아니었다.
그것은, 이 회의를 지켜보던 한 기사가 낸 소리다. 그리고, 참다못한 눈빛을 보르도에게 향하는 건, 그 혼자뿐만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 모여, 아직 싸울 힘을 남긴 기사들 전원──아니, 부상을 입어, 힘을 보태주리라 기대할 수도 없는 자들조차, 하나의 의사로 단결되어 있었다.
"싸웁시다. 왕국을, 『검성』을…… 우리의 검과 긍지를, 지키기 위해서."
"────."
그 한마디에, 전원이 일제히 검을 쳐든다. 왕국 기사로서, 본연의 자세를 보이기 위하여.
그러자, 보르도는 눈을 감는다. 마음속에서 투지와 의무를 천칭에 걸어, 기울였다.
"정말로, 멍청한 녀석들 같으니……"
딱 한 번만, 이전의, 야만한 어조로 내뱉은 뒤, 보르도는 자기 부창(斧槍)을 어깨로 졌다. 그러고 나서 천천히, 흑룡이 날갯짓하는 하늘을 우러러본다.
여전히, 흑룡은 움직일 낌새를 보이지 않는다. 로즈월의 추측, 그걸 뒷받침하는 증거는 그것뿐. 그러나, 최악의 상상이 맞는다면, 왕국을 구할 기회는 바로 지금이다.
흑룡이 악의에 굴복하기 전에, 결착을 낼 수밖에, 없다.
"────."
어리석고 무모한 지휘관으로 이름을 남기게 될지, 혹은 이름을 남길 나라마저 잃게 될지.
──보르도가 결론을 내리는 데,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3
수리한 용차에 중상자를 태워, 가까운 마을로 이송시켰다. 정보 전달의 역할도 겸한 후송이지만, 흑룡은 이미 픽텃 근변의 마을에서 확인되었을 터다.
머지않아, 각 도시에서 사태를 수습하러 병력이 투입된다. 단, 그걸로는 제때에 댈 수가 없다. ──지금, 도시에 진입하는 부대만이, 왕국을 구할 가능성이다.
"도박엔 이겼군."
가도를 따라, 목적의 도시에 접근한 빌헬름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오는 도중, 예상된 방해는 없었으며, 토벌대는 첫 일격을 받은 시점에서 단숨에 나아가, 도시로의 돌입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그동안, 중천에 머무른 흑룡은 정관을 유지하는 중이다.
──아니, 정관이라 할 수는 없다. 여기까지 거리를 좁히면, 흑룡의 상태는 똑똑히 보인다.
길이 십수 미터에 달하는 거구, 검게 광택을 발하는 비늘, 강대한 턱을 가진 머리가 셋이나 늘어선 위용, 그것은 말 그대로 옛 전승으로 전해지는 용 그 자체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 흑룡은 바야흐로, 공중에서 몸부림치며, 다두를 고통으로 일그러뜨려, 신음하고 있었다. 분명히, 흑룡은 자기 뜻을 거스르는 명령에 반항하고 있다. 그것은 로즈월의 억측이 옳고, 스트라이드가 완전히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저 모습을 보건대, 지금 술식을 건 장본인을 치면 해방될 거야. 물론, 해방된 용이 우리에게 우호적일 거라는 확증은 없다만……"
"스트라이드 놈들이랑, 한꺼번에 싸우는 것보다 백배 낫다. 놈들을 전멸시킨 뒤라면, 용 퇴치든 뭐든 어울려주마."
"위세 한번 좋구나. 그래야 너답다고 느낀다는 게, 참 웃기단 마아—알이지."
용조차도 두려워하지 않는 빌헬름의 말에, 로즈월이 어깨를 움츠리며 쓴웃음을 짓는다. 그런 웃음은 잠시 놔두고, 빌헬름 들을 태운 용차는 마침내 도시에 도착해, 문을 통과한다.
개방된 도시의 정문을 빠지는 순간, 습격을 경계하나, 그것도 없다. 그대로, 아무 일 없이 용차는 도시에 침입해, 토벌대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런데──,
"──!? 뭐지?"
불시에, 피부에 이질감이 들러붙어, 빌헬름은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자, 직후에 용차 전체가 심하게 흔들려, 엉겁결에 소리를 지른다.
그건 빌헬름뿐만이 아니라, 주위의 용차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건, 지룡의 가호가 벗겨졌다…… 맞나요?』
빌헬름이 맛본 감각, 그것을 알기 쉽게 말로 나타낸 건 환영의 피보트다.
이 상황에 이르러서, 이제는 전장에까지 동행한 환영에, 그러나 지금은 수긍한다.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하는 역할로, 그의 존재는 매우 유용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빌헬름의 심중은, 냉정하고는 정반대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두, 멈춰라! 용차의, 『바람막이의 가호』가 벗겨졌다! 이에 틀림없나!?"
거리 입구에서 용차를 세운 보르도, 그가 확인하자 모든 용차에서 긍정의 대답이 돌아온다.
지룡의 『바람막이의 가호』는, 주행하는 데 방해가 될 요소를 전부 무시할 수 있는 지룡 고유의 가호다. 가호가 사라지는 건 정차 후, 뜸을 들이지 않고 이동을 재개한 경우 따위로 제한되며, 이번에 해당되는 것은 없다. 게다가, 모든 용차가 그렇게 되다니 말이다.
"잠깐만 기다려줘. 벗겨진 건 『바람막이의 가호』뿐인가?"
그 의문에 끼어들어, 손을 들고 말한 건 로즈월이다. 그녀는 일동을 빠르게 둘러보고, 눈썹을 찌푸리더니,
"이 안에, 가호의 소유자가 있다면 대답해주길 바라. 가호의 효과는 됐어. 가혹한 일이니까 말이지. 다만, 그 가호가 아직 발동하는지, 궁금하다."
로즈월의 물음에, 기사들은 곤혹해하며, 얼굴을 마주 본다.
가호는, 선천적으로 개인에게 선사되는, 세계로부터의 축복이다. 그러나, 남과 다른 힘을 날 때부터 지닌다는 것은, 남과 차별화된 가치관을 기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쓸데없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자, 가호의 소유자는 그 내용을 숨기기 마련이다.
그걸 배려한 로즈월의 질문에, 한 기사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 아니, 가호의 반응이 없다. 나의 가호는, 거리에 들어선 순간부터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역시, 그렇군. 그 말고도, 짚이는 사람은 없니?"
한 명이 나서면, 다른 이들도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한다. 그래도 열 명도 채 안 된다. 숨기고 있지는 않으리라. 가호는 희귀한 선물이기에, 이 숫자만으로도 기적에 가깝다.
"──이것이, 맹약의 파각인가."
그 결과를 지켜보고, 로즈월이 무언가 알아챈 듯 긴장한 낯으로 중얼거린다. 그 내용에 빌헬름은 아는 바가 있었다.
맹약의 파각, 그것은 마이크로토프의 저택에서, 지오니스 폐하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다. 까놓고 말해, 빌헬름은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만.
"스트라이드는, 신룡의 맹약을…… 아니지, 이 세계의 제약을 무효화시키고 있어."
"이 세계의 제약? 무슨 소리지?"
"가호의 소실이 딱 좋은 증거야. 아마도, 이 도시에 한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만, 스트라이드는 마법진으로, 세계와 인간의 연결을 끊었다. 즉, 이 도시에서는 가호도, 용의 맹약도 소용이 없다 이거야. ──신룡의 구원은 오지 않아."
"……가호의 유무가, 그렇게 중대하냐?"
초조감에 사로잡힌 로즈월의 설명이지만, 빌헬름으로서는 딱히 와닿지 않는다.
애당초, 빌헬름은 가호나 검의 재능을 타고나지 않은 비재한 몸이다. 가호의 소실로 인한 불리는 무엇 하나 없다. 더구나, 신룡의 맹약을 믿을 생각 역시 없었다.
그것은, 신룡에 대한 신앙심이 어지간히 굳센 자가 아니라면 모두에게 공통되는 인식일 터다. 친룡왕국에 전해져 내려오는 맹약은 형태만 남았고, 용의 구원 따위 아무도 믿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빌헬름의 인식에, 로즈월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큰 문제고말고. 용과의 맹약을 여기서 논할 필요는 없지만, 가호의 손실은 크다. 소유자에게 있어서는, 날 때부터 있었던 세 번째 발을 빼앗기는 것과 같거든. 일상에서 흔히 쓰인 힘일수록, 그 변화는 커지지. 그리고……"
『──스트라이드는, 이를 왕국 전체에 확장시킬 속셈일 테죠. 그렇게 되면, 피해는 가속도적으로 증가합니다. 그 전에, 흑룡이 왕국을 태워버리는 게 빠를지 모르지만요.』
로즈월의 말끝을, 피보트가 목소리를 겹치듯이 대변한다. 똑같은 내용을 로즈월도 말하고 있었지만, 환영이 하는 말이 더 이해하기 쉬웠다.
다시 말해, 이렇다.
"놈은 남의 아내와 국토뿐만 아니라, 타인의 가호까지 앗아가려는 거냐."
"……속내가 뭐든 간에, 최종적으로 그 형태가 되기를 노리고 있는 건 분명하지. 어쨌든, 흑룡말고도 놈을 봐줄 수 없는 이유가 생겼다."
"처음부터, 놈의 목을 더 이상, 몸통에 연결해놓을 이유는 없다고."
살려서는 안 될 남자의, 살려서는 안 될 이유가 열에서 열하나로 늘었다. 그런 감각으로 혀를 차고, 빌헬름은 기사검을 만지며 거리로 시선을 향한다.
"그나저나, 기분 나쁘게 조용하군."
천공에 흑룡을, 뱃속에 『파멸원망』을 거둬들인 도시는 정숙으로 가득 차있다. 상황에 입각하건대, 매우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수렁에 빠졌던 지난 내전으로, 도시나 거리가 전장이 되는 경우는 곧잘 있었다. 그때의 경험상, 전장이 되는 장소에는 일종의 독특한 분위기가, 긴장감이 감도는 법이다.
하지만, 이 도시에는 그런 것이 일절 느껴지지 않는다. 긴장감은커녕, 루그니카 왕국에서도 손꼽히는 인구수를 자랑하는 이 도시에서, 대낮의 거리에 사람 한 명 안 보이다니 불길하기 짝이 없다.
설마, 스트라이드에게 뒤처진 지 고작 한나절만에, 온 거리의 사람들이 학살당한 건가. 쿠르간이라면, 그것도 불가능하지 않을 터다만.
"어이, 저길 봐!"
그런 빌헬름의 사고는, 기사 중에 한 명이 낸 소리에 중단된다. 그 기사가 가리키는 것은, 도시의 중앙으로 향하는 큰길──거기에 나타난 한 사람이다.
순간적으로, 토벌대에 긴장된 분위기가 퍼진다. 단, 그것도 이내 사라졌다.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아무리 봐도, 스트라이드에 편드는 한패가 아니라, 마을 주민이었기 때문이다.
손에 든 것 없이, 비트적거리는 발걸음으로, 토벌대 쪽을 향해오는 마을 사람. 그 모습에 토벌대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곧바로, 이변을 눈치챈다.
"이봐, 이건 아무리 그래도……"
줄줄이, 가도를 치는 발소리가 무수히 다가온다. 그건 정면의 큰길뿐이 아니라, 좌우의 길에서──아니, 온 거리에서, 이곳을 향해 걸어오는 소리다.
그것은 서서히 까만 인산인해가 되어. 걸음은 뜀박질이 되어, 서로를 밀쳐내고, 겨루듯이 이쪽으로 달려든다. 아무 말도 않고, 비정상적인 눈빛으로, 일제히.
일 났다, 그리 생각했을 때에는 이미 달아날 틈은 없었다. 토벌대는 밀어닥치는 군중에 주위를 둘러싸여, 그대로 사납게 달려드는 사람들을 받아낼 수밖에 없다.
"전원, 방패를 들고 한곳에 굳어라! 뭉개질 거다!!"
포효와도 같은 보르도의 지시에, 기사들은 즉시 방패를 들어, 주위와 하나로 뭉친다. 그리고, 전신의 근육을 팽창시켜, 돌진해오는 군중을 정면으로 받아쳤다.
"──!?"
맹렬한 격돌음에 고통의 신음소리가 거듭되어, 살이 으스러지고, 뼈가 눌려 찌부러지는 소리가 울린다. 그건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차례차례로 계속되어, 군중은 돌격의 기세를 잃어도 멈출 줄을 모르고, 또다시 돌격을 반복해서 기사들의 방패를 짓누르려 했다.
"물리치라──앗!"
노호에 맞춰, 토벌대는 짓눌리기 전에 반격에 나선다. 맞서는 자들을 방패로 받아쳐, 억지로라도 몸을 부딪치는 것으로 활로를 열어젖힌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할 시간은 없다. 그저 앞만 보고, 끊임없이 들이닥치는 인체의 파도를 막을 뿐이다.
"베어 쓰러뜨리면……"
"그게 놈의 계략이야! 그들은, 단지 조종당하고 있을 뿐. 죽이면, 스트라이드가 바라던 바다!"
두, 세 명 죽이면 얌전해지리라. 그런 성급한 판단을 내리는 빌헬름을, 옆에 있는 로즈월이 가로막았다. 그녀는 치켜든 주먹으로 잇달아 군중의 급소를 쳐서, 의식을 빼앗음으로써 폭주를 막고 있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데다, 정신이 아득해질 작업이나, 그러지 않고서 온당하게 수습할 방도는 없다.
"일종의 흥분상태지. 제정신을 잃어서, 간단한 유도로 우릴 덮치고 있어."
"그래서 기절시켜라 이거냐. 말이야 쉽지."
도신을 검집에 넣은 채, 빌헬름의 검격이 군중들의 사이를 꿰매듯이 솟구친다. 눈을 깜박인 직후에는 열명 가까이 쓰러지지만, 그럼에도 아직, 사람의 수는 끝이 보이질 않는다.
주위의, 보르도나 그림 들 또한, 마찬가지로 방어 일변도에서 타격으로 전환해, 상황을 타파하고자 열심히 반항하고 있다. 하지만, 기사 중에는 군중의 기세에 꺾여, 넘어진 끝에 짓밟혀, 전투불능 상태가 되는 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한 명이 쓰러지면 단번에 가속한다. 멈출 수가 없어질 정도로──,
"──아니, 그게 다가 아냐."
시야의 끝, 부자연스럽게 움직임이 멈춘 기사가 밀려 넘어진 것을 보고, 빌헬름은 그 위화감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검집에서 해방된 은섬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꽂힌다. ──순간, 강철끼리 맞부딪치는 소리가 울리더니, 누군가가 크게 뒤로 물러났다.
그건, 작은 몸집에 검은 장속을 두른 인물이다. 한 번은 본 적이 있는 모습에, 빌헬름은 엄니를 꽉 깨문다. 이전에, 아스트레아 저택에서 조우한 시노비, 죽이지 못한 적 중에 한 명이다.
돌격하는 군중의 그림자 안으로 들어가, 기사들을 배후에서 하나씩 줄여나가는 비열한 책동──,
"과연, 정면에서 싸울 배짱이 없는 교활한 놈이나 쓰는 수법이구먼."
"소생은 시노비인 고로, 그러한 말에는 익숙하외다. 좌우지간에……"
땅에 엎드리듯이 자세를 낮춰, 시노비가 쿠나이라고 불리는 득물을 양손에 든다. 거꾸로 쥐어져있는 그것은, 베기에도 던지기에도 적합한 무기다.
"지난번에는 서로, 목을 치지 못해 후회를 남긴 바 있다. 이번에는, 그렇게 되지 아니하오이다."
"오이다 좋아하시네. 육갑 떨고 자빠졌구먼. ──그대로 죽어라."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빌헬름의 검격이 시노비를 향해 번개의 속도로 육박했다. 그것을, 시노비는 거꾸로 쥔 쿠나이로 받아쳐, 다른 한쪽의 날을 후려친다. 그 구타는 머리를 낮춰서 회피하나, 순간, 튀어 오른 무릎에 볼이 긁혀, 빌헬름은 혀를 찼다.
극도의 단련을 거쳐, 강철과 같이 만들어진 육체다. 덩치는 작지만, 온몸이 그야말로 근육의 덩어리로, 외관 이상의 여력(膂力)으로 빌헬름의 검력(剣力)을 따라잡으려 든다.
무엇보다, 이러는 사이에도 폭도가 된 군중의 공격은 계속되고 있으며, 그림 들은 빌헬름을 뺀 상태로 이에 대처해야만 한다. 재빨리 결착을 내지 않으면, 시노비의 상대를 하면서 군중을 전멸시키는 건 빌헬름조차 불가능하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뒈져란 말이야, 쥐새끼가──!"
공기를 꿰뚫는 자돌이, 비처럼 시노비에게 내리쏟아진다. 그것을, 시노비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하고, 손을 등 뒤에 숨긴 채로 쿠나이를 투척한다. 그건 빌헬름이 아니라, 군중과 싸우는 기사의 발에 꽂혀, 의식이 빼앗긴 그 기사 또한, 밀려 꺾인다.
"젠장……"
"허점을 찌를 줄 아는 건 주인뿐이 아니오이다. 네 녀석이 만전의 상태라면, 소생의 수완으로는 도저히…… 하나, 이 좁은 범위 내라면 소생이 유리하다."
"────."
시노비의 말에 드러나는 여유에는 근거가 있다. 그것은, 빌헬름이 시노비와 싸우는 데 있어 사용할 수 있는 영역의 넓이다. 군중에게 포위당해, 토벌대는 서로서로 등을 받쳐줌으로써 겨우 저항하고 있다. 그러나, 아군이 한 명 쓰러질 때마다 그 범위는 좁아지고, 당연히, 빌헬름이 자유롭게 쓸 수 있을 공간은 극소── 검은 휘두르지 못하고, 찌르는 수밖에 없다.
"그러하다면, 피할 뿐. 직선의 공격, 경계할 것도 없기에."
"입만, 살아가지고……"
검극의 응수를 피하면서, 기실, 자돌 공격을 벗어나는 시노비에 빌헬름은 고전한다. 이대로 갔다가는 상황이 악화되어, 시간 경과에 밀리게 된다. 그러자, 그곳에──,
"그렇담, 선수 교체를 해볼까."
"──큭."
휙, 하고 바람을 가르며 날아든 권격(拳撃)을 받아, 시노비가 충격으로 뒤로 날아갔다. 끼어들어온 건, 경쾌한 발놀림으로 난전에 가담하는 로즈월이다. 그녀는 양손에 검은 장갑을 껴, 아연해하는 빌헬름에게 미소 짓는다.
"근접전이 주체가 되는 장면이라면, 격투기보다 더한 기술은 없지. 양보해주겠니."
"……맨손으론, 쿠나이에 잘게 썰려서 끝장이야."
"걱정해줘서 고맙군. 하지만, 이건 특별히 제작된 거라서 말이지. ──선조가 남긴 무구의 일종이다. 이게 놀랍게도, 성검의 날도 막아내거든."
펼친 양손을 보이면서, 로즈월은 농담하는 투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이 거짓이 아니란 건, 흑장갑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압박감으로 알 수 있다.
실제로, 로즈월의 격투기가 시노비의 체술 상대로는 상성이 좋다. 어중간한 솜씨로는 맡길 수 없으나, 그녀의 전투력은 충분히 의지할 만하다. 문제는, 그토록이나 큰소리를 쳐놓고, 남에게 맡기다니 모양새가 말이 아니라는 것 정도──,
"내가 폼을 잡는 상대는 테레시아만으로도 충분해."
"왜, 갑자기 염사를 꺼내서 내 마음에 상처를 준 건지는 모르겠지마아—안, 네가 그렇게 말해준다면, 저것은 내가 받아주도록 하지."
손가락질을 받아, 억지로 적을 교환당한 시노비는 어딘지 불만스러워 보인다. 흑색 두건 너머로 가늘게 뜨인 눈에, 빌헬름은 한 발짝 물러서, 로즈월에게 전장을 양보한다.
이제부터는, 대신 그녀의 등을 지키면서, 상황의 타파를──,
"──이으엘름!"
다음 순간, 옆쪽에서 몸통으로 박치기를 당해, 빌헬름은 균형을 잃었다. 보아하니, 안색을 바꿔 달려든 건 그림이다. 그 행동에 무슨 일이냐고 물으려 하다, 빌헬름은 곧바로 그럴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챈다.
빌헬름을 밀쳐내, 뒤바뀌듯 그 자리에 선 그림──그 발이,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손에 붙잡혀있었다. 그리고, 그림의 발목을 잡은 것과 반대쪽 손으로, 로즈월의 가는 발까지 잡고 있다.
"아차──."
반응할 틈도 없다. 눈을 깜박인 직후, 발을 잡힌 두 명이 단숨에 그림자 안으로 끌려든다. 그대로, 그림자는 수면과 같은 파문을 남겨, 둘의 모습이 말 그대로 소실됐다.
그걸 보고, 빌헬름은 말없이 숨을 멈춘다.
"놀라운 직감이군…… 그 바람에, 초대객을 잘못 잡았소이다."
"……뭐?"
"주인어른의 분부였사오나…… 뭐, 좋다. 좌우지간에, 주술의 속박은 이 도시에서 풀릴 것이외다. 지금은 잠시, 그때까지의 봉공(奉公)을──"
"말 같지도 않은 소리나 지껄이고…… 너희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검사의 교체를 거부해, 재차 상대하는 시노비에게 빌헬름은 소리친다. 끌려간 둘의 안부를 걱정하면서도, 분노는 살의가 되어 검에 깃들었다.
『빌헬름!』
"뭔데!?"
"──?"
하지만, 그 일격을 휘두르기도 전에, 귓가에서 환영의 피보트에게 불려, 고함친다. 그 모습을 시노비는 의아해하나, 신경 쓸 여유는 없다.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피보트의 필사적인 호소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해, 검을 쥐는 손에 힘을 줬다.
"──."
군중이, 후려치는 일격에 무참하게 휩쓸린다. 그것은, 토벌대에 밀어닥치려 드는 사람들의 맨 끝자리, 포위의 바깥쪽에 있던 자들이다. 충격에 피가 흩날리고, 너무나도 강렬한 위력에 손발이 날아간다. 그걸 전혀 문제 삼지도 않고, 한 차례, 두 차례, 휘두를 때마다 죽음이 만연한다.
담담하게, 거치적거리는 돌멩이를 걸듯이 목숨을 쓸어넘겨, 다가오는 이형, 위용 넘치는 존재──그것은, 청색 피부에 여덟 개의 팔을 가진 초월적인 전사다.
"『여덟팔』의, 쿠르간……!"
"오래간만이로군, 『검귀』여. 그동안 잘 지냈는가."
감정을 눌러 죽인 빌헬름의 성색에, 위풍당당하고 낮게 반석과 같은 소리가 응한다.
그 인물은 한차례 발을 멈추자, 빌헬름 뒤에 선 시노비에게로 눈을 돌리고,
"죽이지 못했나. 애초에, 그대는 의도한 대로 되지 않으리라고 말했네. 스트라이드의 낙담이 눈에 선하다. ……하나, 내게 있어서는 난득한 축복이지."
"소생은, 죽음 또한 일인 시노비이외다. 목줄 따위 없어도, 죽을 때까지 따라가겠다 생각하옵건대, 주인어른의 신의는 미처 얻지 못했소이다."
"그자에게 믿을 것 따위 없네. 그런 고의 주술 도구, 계획, 증오일세. 그리고……."
무언가, 타인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주고받아, 쿠르간의 눈이 빌헬름을 바라본다. 거구는 굵디굵은 팔에 네 자루의 대도를 쥐어, 온몸에서 사나운 투기를 내뿜었다.
폭풍으로 착각할 만한 압박감에, 열세에 놓인 기사들의 다리가 얼어붙는다.
"저 녀석의 상대는, 내가 할 수밖에 없다만……."
"그럼, 시노비는 내가 상대해야 한다, 그런 건가?"
빌헬름의 독백을, 부창으로 폭도를 쓸어넘긴 보르도가 이어 말한다. 그의 말에 시선을 보내며, 빌헬름은 생각에 잠겼다.
로즈월과 그림이 빠진 이상, 이 자리에 남은 기사 중에 전력적으로 신뢰할 만한 건 보르도뿐이다. 단, 보르도의 전투 방식은 시노비와의 상성이 아주 최악에 가깝다.
좁은 범위 안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시노비에게, 동작이 큰 보르도의 기술이 어느 정도 통할지.
"내가……."
『공자에게 맡기는 건, 내키지 않는다? 그건 능력 때문인가? 아니면…….』
"────."
반사적으로 말을 꺼내려다가, 빌헬름의 입은 피보트에게 가로막혔다. 빌헬름의 속내를 반영한 환상, 그런 피보트가 어깨를 들썩인다.
마치 진실을, 빌헬름의 갈등을 사뭇 얕보는 듯, 외벌적으로.
"너한테 맡기겠네, 빌헬름. 오래 버티진 못할 거다…… 놈이 말이지."
망설이는 틈에, 빌헬름의 어깨를 치고 보르도가 시노비와 격돌한다. 한번, 시작되어버려서는 막을 방도는 없다.
빌헬름도 마찬가지로, 응수해야 할 강적을 앞에 두고, 고민을 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호적수에 감사를. ──왕국의 최후에, 걸맞은 결투를."
"잔말만 씨부렁거리는 성격도, 여전한가 봐. 시간은 얼마 안 걸릴 거다."
"그렇다면, 인생 최고의 찰나를 새기도록 하마."
말하고, 『검귀』와 『여덟팔』이 격돌한다.
──은화란무의 두 번째 전투, 그것이 픽텃의 난전 속에서 꽃 피듯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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