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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코믹 얼라이브 특전 『검귀전가──6막』-2

케드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2.10.27 17:5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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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해방된 순간, 천지가 월컥 뒤집히는 충격에 그림은 균형감각을 잃었다.


"──윽."


작게 신음하고, 겨우 한쪽 무릎을 꿇어서 자세를 안정시킨다. 직후에 날쌔게 물러서, 레멘디스의 가문이 새겨진 방패를 들어, 추격에 대비했다.


그러나, 예상된 그것은 오지 않는다. ──아니, 애당초 이곳은.


"고작 잡일 하나 가지고도 제대로 할 수 없다니, 짐도 수하친병의 불행이 따로 없구나. 한쪽은 몰라도, 다른 한쪽에는 무슨 가치가 있을런가."


"──이거야 원, 놀랍군. 설마, 제악의 근원 아래 배알이 허락될 주우―울이야."


던져진 말에, 그렇게 응수한 건 그림의 곁에 선 여인이다. 함께 그림자에 끌려온 로즈월은, 좌우로 색이 다른 눈에 경계심을 담고, 상대를 노려본다. 그리고, 그림도 마찬가지로, 경악과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둘의 눈앞에서 무방비하게 서있는 영리한 눈초리의 남자야말로, 오래도록 찾아헤맸던 왕국의 원수──이 악덕 행위의 주모자, 스트라이드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그림자에서 풀려난 건,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석조 바닥 위다. 보아하니, 주위에는 시선을 가릴 것 하나 없으며, 이곳이 높은 건물 옥상에 해당된다고 이해한다. 게다가, 도시의 중심──거기까지 생각하다가, 그림은 문득 얼굴을 들어 올렸다.


이 장소가 도시의 중앙, 그 건물에서 하늘에 가까운 곳이라고 한다면──,


"──아."


확 트인 시야, 상공에 검은 날개를 펼친 위용이 체공하고 있다. 세 개의 머리를 지닌 다두룡(多頭龍)이, 그 눈동자를 요기스러운 빛으로 반짝이면서, 끊임없이, 고통에 사로잡힌 채로 신음하고 있었다.


"아주 볼 만하지 않느냐? 전승으로 전해져, 전설로 칭송받는 용이 이토록이나 무참하게 신음을 하는 것이 말이다. 라고는 하나, 볼라키아의 지보인 주술 도구를 세 개 겹쳐, 그럼에도 저항하거늘. 과연 용이구나, 하고 칭찬해야 될는지 모르겠군."


"볼라키아의 지보……그런 걸, 대체 어디서 손에 넣은 거지?"


"무어라? 네놈들, 아직 거기에도 이르지 못했느냐. 이것 참, 짐이 네놈들을 적이 과대평가했었단 말인가?"


손가락에 끼운 열 가지 반지, 그걸 보여주는 스트라이드가 실망이라는 듯 탄식한다. 그러고 나서 그는 하찮다며 고개를 모로 젓더니,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짐은, 볼라키아 황제의 혈족…… 스트라이드 볼라키아이다. 그렇기에, 제국의 지보에도 안이하게 접근할 수 있지."


"────."


"이리 말한다기로, 네놈들은 제국의 능구렁이 따위에게 잘만 속아넘어갔더구나."


담담한 투로, 여태 밝혀질 일이 없었던 자신의 정체를 폭로하는 스트라이드. 그런, 예상치 못한 대답에 그림은 당목했다. 하지만, 로즈월은 희미하게 숨을 멈추었을 뿐.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기듯이 눈을 내리깐 후,


"상급 회의에선, 대충 그런 추측을 전제로 움직이고 있었어. 성왕국에 도시국가, 그리고 제국……그중 하나의 간섭이 있다고 한다면, 제국이 분명하리라고. 그래도, 이렇게까지 손쉽게 밝힐 줄은 몰랐지 뭐야."


"숨길 필요가 없다. 애초에, 그걸 알고 뭘 하겠느냐? 일이 끝난 후에, 제국에 배상이라도 청구하겠나? 허허벌판으로 변한 왕국 땅에서."


"아니면, 네 계략을 깡그리 때려 부순 다음, 제국에 책임을 따질 수도 있지. 그 경우, 네 고국은 크게 상처를 입게 되겠지만……."


"흥, 고작 그따위냐. ──상관할 것도 없군."


간단하게, 스트라이드는 우국의 의사를 코웃음치며 넘겼다. 물론, 로즈월로서도 그 말이 통하리라 기대하지 않았지만, 상상이상으로 허탕을 친 바람에 눈썹을 찡그린다.


볼라키아의 황족, 그것이 사실이라면, 말 그대로 제국의 의도는──,


"너 개인하고는 관계가 없다, 라. 그거야 괜찮은데…… 그렇담, 뭐가 목적이지? 『검성』을 납치하고, 용을 부르고, 가호를 지우고, 맹약을 파각해서, 뭐를."


"덧붙여서 말하자면, 네놈을 이곳에 끌고 온 이유도 말인가? 마지막 하나는 둘째치더라도, 모든 건 맹약을 파각하는 데 필수적인 요건을 충족시켰을 뿐이노라. 그리고, 마지막 하나의 답 또한 단순하다. ──네놈에게, 이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지. 왕국의 여마법사."


"나한테……아니, 왕국의 마법사한테, 이걸?"


"아니다, 네놈이다. 메이더스의 여자여. 네놈에게, 이걸 보여줘야만 했다."


스트라이드의 말에 짚이는 데가 없는지, 로즈월은 진심으로 곤혹해하고 있다. 한편, 스트라이드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만족스러운 듯 한쪽 눈을 감았다.


그러면서, 오른손에 끼운 반지를 왼손으로 어루만지며,


"이로써, 광란한 죄인과의 서약은 이루어졌다. 앞으로는 짐의 마음대로 하겠노라."


"기다려. 넌 무슨 소리를……."


"기다릴쏘냐. 짐은, 오랫동안 기다려왔거늘. 더 이상은 기다리지 않겠다. 기다릴까 보냐. 샤스케!"


"분부하신 대로."


날카롭게 명한 스트라이드의 목소리에, 그의 그림자 속에서 한 시노비가 일어선다. 조금 전, 난전의 틈을 탔던 시노비와 꼭 닮은 흑장속은, 스트라이드의 얼굴을 옆에서 엿본다.


"모두 한꺼번에?"


"네놈이 초대객을 틀리지 않았더라면 말이지. 처리해라. 한쪽은……아아, 그렇군."


명령의 도중에, 그림에게 눈을 향한 스트라이드의 입가가 일그러졌다. 그것이 냉소임을 깨닫는 데 시간이 걸린 건, 그림이 아는 웃음에 비해 너무도 이질적이었기 때문인가.


그런 그림의 내심을 내버려 두고, 스트라이드는 입가를 일그러뜨린 채 이어 말한다.


"네놈, 어디서 본 낯이다 싶더니, 『검성』의 저택에 있던 졸병이로구나. 게다가 분명……아아, 과연, 재미있다. 재미있어진다. 재미있게 해주마."


"월……."


"무어, 취향을 돋우려는 게다. 짐이 좋아하는 쪽으로 말이지."


말하고, 스트라이드가 왼손을 들어 올렸다. 그 중지에 끼운, 푸른 보옥이 요기스럽게 빛난다. 그리고── 그녀는 천천히, 이 옥상으로 발을 들여디뎠다.


"캐럴……."


"으, 아……그리, 임……."


옥상으로 이어지는 문을 열어, 모습을 드러낸 건 캐럴 레멘디스다. 고운 금발의 머리, 녹색의 맑은 눈동자──그림에게 있어, 둘도 없는 사랑스러운 여자.


그 전신은 튄 피로 더럽혀져, 그녀에게 있어 긍지 그 자체인 기사검도 선혈로 물들어있다. 눈에 패기는 없으며, 볼에는 허옇게 흘린 눈물 자국이 남아있었다. 그건 지금도, 옥상에 선 그림과 로즈월을 보고, 재개된다.


눈물을 흘리면서, 캐럴은 고개를 저어, 청렴한 동작으로 기사검을 쳐들었다.


"짐의 충실한 허수아비, 네놈은 이것과 연인 사이가 아닌가? 이것이 대체, 그 검에 얼마나 무고한 피를 빨게 하였는지, 직접, 입으로 말하도록 해보겠느냐?"


"싫어, 싫어……싫어어……."


"거부하는 얼굴도 흥을 돋우는구나. 이토록이나 우는 낯이 어울리는 여자도 보기 드물다. 오죽, 네놈도 남자로서 흥분하렷다? 아니라면……."


야비한 스트라이드의 폭언이, 새된 소리로 중단되었다.


그것은, 미끄러지듯이 스트라이드 앞에 선 시노비──샤스케라고 불린 흑장속이, 손에 든 쿠나이로 돌덩이를 튕긴 결과다.


돌덩이는, 내디딤으로 부서진 바닥의 파편. 그걸 냅다 찬 로즈월이, 그 단정한 표정에 차디찬 적의를 드러내며, 적을 쏘아본다.


"입 닥쳐라, 쌍놈. 더 이상, 네 목소리를 들었다가는 귀가 썩겠다."


"우연이 다 있군그래. 짐도, 네놈의 눈이 왠지 마음에 안 든다. 특히 그, 푸른 눈이 거슬리노라. 일선을 긋고, 무언가를 지킨 셈이라도 되는가? 기어오르는 것도 정도껏 해라, 여자."


"────."


"──짐과 네놈은, 같은 측에 속하니라. 위아래의 차이는 있다만, 말이지."


증오와 혐오, 서로서로 악의가 횡행하는 감정을 맞부딪히며, 로즈월과 스트라이드가 대치한다. 그걸 곁눈질하면서, 그림은 방패를 들어, 캐럴을 정면에서 바라봤다.


여전히, 그녀의 모습은 시선을 강탈할 만큼이나 아름답다. 피로 물들었다 하더라도, 외곬으로 검에 전념해온 나날이 그녀를 그녀답게 만든다.


"그림…… 미안해요, 미안해요…… 부디, 저를……."


"캐럴, 어를……."


흐느껴울며, 비통함으로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걸 가로막아, 그림은 의연히, 표정을 다잡는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여자가 울고 있을 때, 전해야 할 말을 입에 담았다.


"──너을, 사랑한다."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면서, 검격이 날아든다. 그걸 방패가 막아내, 불꽃이 튄다.


연인끼리의 격전이, 이 자리서 시작되었다.



5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일실에서, 테레시아는 공기가 터지는 감각을 맛보고, 고개를 든다.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거 같아."


머리 위, 첨탑 옥상에는 흑룡과, 그를 제어하려는 스트라이드가 남아있다.


흑룡에게 주술을 건 뒤, 스트라이드는 테레시아를 또다시 감금했다. 용을 부르기 위한 제물로서 희생당한 열아홉의 시체, 그것은 지금도 방구석에, 자신들에게 찾아온 부조리한 운명을 저주하듯이 한데 쌓여, 테레시아를 구박하고 있다.


그러나, 이 희생자들로 인해 가장 깊은 상처를 입은 건, 원치 않은 형태로 검을 휘두르게 된 캐럴이 틀림없다. 가능하다면, 흐느껴우는 그녀의 곁에 있어주고 싶다. 눈물이 멈출 때까지, 오열이 안 들리게 될 때까지, 폼에 안아서 지탱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캐럴은 방의 감시역을 명령받아, 테레시아의 눈길이 닿는 곳에 있지 않다. 그리고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고, 테레시아의 몸에도 이변이 일어나있었다.


──『검성의 가호』와 『사신의 가호』, 테레시아가 지닌 두 가호, 그 존재를 지금은,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호가 다음 세대로 넘어간 건, 아니야. 그건, 알겠는데……"


『검성의 가호』는, 대대로 아스트레아 가문의 인간에게 계승되는 특별한 가호다. 테레시아 또한, 이미 세상을 떠난 선대 『검성』이었던 숙부에게서 가호를 이어받았다. 그렇기에, 언젠가는 이 가호가 자신의 손 안에서 떠나리리라는 각오는 되어있다. 그렇다 해도, 지금은 아니다.


가호는 떠난 것이 아니라, 잠든 것이다. 그 사실을, 『검성의 가호』하고 별개로 지닌, 『사신의 가호』의 소실로도 테레시아는 실감한다. 그러면서도 그 일과, 스트라이드의 계략이 무관계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테레시아는 낙관적이지 못했다.


"대체, 그 남자는…… 스트라이드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상황의 파악에 힘쓰고 싶은 테레시아, 그녀의 입에서 새어 나온 말은 혼잣말이 아니다. 그것은 물음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정면에 등을 돌린 채 앉아있다.


파도치는 회색 머리에, 전신을 푹 뒤덮은 회색 로브──아직 젊은 소녀는, 멀린다라 불리는 스트라이드의 아내, 인 모양이다. 그의 계획의 협력자이자, 열아홉 명의 제물을 고른 장본인이라고 한다. 모종의 방법으로, 그들이 가호를 지닌 존재임을 간파해서 말이다.


"마안이라고 했던데, 당신은, 그, 마안족이니? 하지만, 마안족은……"


"위, 위험성을 구실로, 멸종……당했습니다. 저는, 그 생존자예요. 그분께서 주워주시지 않았더라면, 죽었을 테지요."


테레시아의 말에 고개만 돌아보고, 멀린다는 의외로, 솔직하게 대답해준다.


그녀가 긍정한 마안족──그것은, 극소수의 부족으로서 활동하고 있었다는, 매우 드문 피를 지닌 아인족의 일종이다. 마법이나 주술, 그러한 계통과는 차별화된 이능이 깃든 눈을 가진다고 하며, 보이지 않는 것을 보거나, 타자의 정신에 간섭한다는 등 위험한 힘을 지닌다는 이유로, 제국에서 일제히 멸망시켰다고 들은 종족이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취급은 루그니카 왕국에서의 하프엘프에 대한 취급과 유사하다. 위치가 특정된 것으로, 부족이 통째로 망했으므로, 어쩌면 그보다 더 가열할지 모른다만.


그런 마안족의 생존자가, 하필이면 스트라이드에게 협력하고 있다 함은──,


"당신은, 스트라이드한테 이용당하고 있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박해받은 입장을 호기 삼아서, 당신의 힘에 눈독을 들이고, 그래서."


"……그 말대로입니다만, 그 부분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지요?"


"무슨……."


고개만이 아니라, 이번에는 온몸으로 돌아보고, 멀린다가 테레시아에게 갸웃거린다. 그 눈동자는 굳게 닫힌 상태지만, 그녀에게는 테레시아가 눈꺼풀 너머로 보인다. 그런 확신이 들 정도로, 강한 압박감을 느끼게 했다.


"그분께서, 제게 바라시는 건 기하여 마땅한 핏줄의 힘뿐. 그, 그렇지만, 전 상관없어요. 저는 그저, 그분께 필요로 여겨지는 자신만으로도, 좋았어요."


"오직 힘만을 요구받았는데, 만족했다?"


"훨씬, 불행한 혼인은 무수히 있습니다. 용자나 세월, 집안이나 혈통, 그 안에 저와 같이 힘이 있을 뿐. ……저라는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혼인과 비교하면, 저를 필요로 해주시는 스트라이드 님께서는, 저의 희망이랍니다."


심취나 도취하고는 다른 대답에, 테레시아는 이런 상황임에도, 자신을 수치스레 생각했다.


스트라이드가, 멀린다에게 아내로서 애정을 품고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다. 그러나, 멀린다는 이를 이해해놓고, 그녀 나름의 방식으로 스트라이드를 사랑하고 있다.


마음의 질은 크게 달라도, 그것은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다.


"그분은, 고국에 버려진 몸. 그분은, 운명을 저주하는 죄인의 엄니. 그분은, 역사에 거부당한 그림자 속 구세주. 그분이야말로, 천상에 계시는 관람자들에 대한 절대적인 일격."


"────."


"저는, 그걸 위한 초석. 그 일을 위해서, 이 저주받은 피를 씁니다. ──저의 마안이, 방위의 요체. 『여덟팔』조차 이룰 수 없는, 아내로서의 본망이기에."


"방위의, 요체."


입안에서 중얼거리자, 테레시아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이 도시에 끌려온 지, 벌써 한나절이 넘게 지났다. 흑룡의 출현에 의식이 쏠릴 수 있지만, 그보다 더 비정상적인 건, 여태껏 주위에서 혼란의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데 있다.


애초에, 열아홉 명의 제물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소동이 일어나야 정상이다. 거기에 인식의 이변이, 아마도 멀린다의 마안이 관여되었으리라.


그리고, 방위의 요체라 자신을 뽐낸 멀린다에게는, 이 도시에서 맡은 역할이 있다. 그것은 필시, 달려오는 빌헬름을 방해하는, 무언가로.


"──읏, 수상한 짓은, 하지 마시기를."


눈을 닫은 채로, 멀린다가 테레시아의 움직임을 민감하게 알아챈다. 그녀는 꼼짝거린 테레시아에게 엄한 소리를 질러, 몸에 희미한 긴장감을 띠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테레시아는 구속당하지 않았다. 가호는 사라졌다 하더라도, 의사만 있다면 움직일 수가 있었다. 물론, 임산부인 테레시아는 대단한 일을 해내지 못하나, 아마 멀린다보다는 낫다. 문제는──,


"당신의, 뱃속의 아이한테는 저주가 걸려있습니다. 수상한 낌새를 보였다가는, 저주는 뱃속의 아이의 목숨을 대가로…… 그러니까."


"맞아, 그건 무서워. 정말로, 무서운걸. 하지만, 여기에 그 남자는…… 스트라이드는 없잖아. 곧바로, 무슨 일을 해댈 거라 생각하기는 어려워."


"그런, 그런 불확실한 도박에, 자기 아이의 목숨을 걸겠다 이건가요?"


"원하든 원치 않든, 나랑 빌헬름의 아이한테는 고난이 찾아올 거야. 아스트레아의 아이니까 말이지…… 이 아이도, 운명으로부터 벗어나지는 못해. 되도록이면 평온하게, 아무 일 없이,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행복하게 살아줬으면 좋겠지만."


눈을 내리뜨고, 테레시아는 볼록한 자기 뱃속에 있는 아이의 미래를, 말없이 생각한다.


파란이 일지 않는 인생, 그런 건 이 아이에게 찾아오지 않을 테다. 걸어가는 도상에 있는 수많은 문제를, 돌멩이 치우듯이 지켜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필시 그럴 수는 없으리라.


그러니까──,


"아스트레아의 아이인 이상, 싸워줘야겠어. 나랑, 그이랑, 이 나라를 위해서. ──언젠가, 『검성』을 잇는다고 한다면."


"──. 이 무슨, 오만함. 아이를, 아이로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싸우게 하다니. 다, 다, 당신한테는, 실망했습니다. 저는, 당신을, 용서하지 못해."


테레시아의 말을 듣고, 경악을 감출 수 없는 성색으로 말하며, 얼굴에 손을 갖다 댄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천천히, 눈꺼풀을 열어, 어둠의 색으로 칠해진 눈동자에 테레시아를 비추었다.


흰자위 없이, 검정으로만 물든 마안이 태레시아를 포착한다. ──순간, 그 눈동자에 영혼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압박감과, 발판을 잃어서 떨어지는 감각이 테레시아를 덮친다.


"──어둡디어두운, 죄의 물밑에 가라앉으시오. 뱃속의 아이한테는 죄가 없습니다. 그런데, 모자되는 당신에게는, 씻어낼 수 없는 죄가 있습니다. 그것을, 실감하시오."


눈앞에서 들릴 터인 목소리가, 멀린다의 혐오가, 되게 멀리서 떨어진다.


그걸 의식 끝에 두면서, 테레시아의 의식은 아주 천천히, 심연으로──.


"──빌헬름."


떨어지기 전에, 한마디만, 사랑스러운 남편의 이름을 부르고. ──테레시아의 의식은, 끊겼다.



6



상업도시 픽텃을 무대로, 각처에서 격돌이 시작되고 있었다.


하늘에 흑룡, 땅에 인간, 세계에서 축복은 빼앗기고, 악역의 사도만이 웃음을 짓는다.


도시를 일망하는 첨탑, 그 옥상의 가장자리에 서서, 스트라이드 볼라키아는 양팔을 펼쳤다. 그리고, 온 도시에 울려 퍼지는 흑룡의 신음소리를 만족스러운 듯 들으면서, 입을 연다.


"자아, 이로써 무대에 배우가 모였노라. 왕국! 제국! 그 얼굴에 먹칠을 당한 기분은 어떠느냐. 종말의 때는 가깝다. 짐과 함께, 이 파멸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닌가."


누구에게 말하는 것도 아닌, 그것은 독백에 가까운 물음이었다.


대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스트라이드는 시퍼런 얼굴 안에, 두 눈만을 형형하게 빛낸다.


"국토의 증표는 사라지고, 용의 구원은 없다. 가호의 빛은 닿지 않고, 용자는 범인으로 영락한다. 어디, 천상에서 이를 바라보는 악랄한 관람자여, 마음껏 굽어보도록 하거라. ──세계가 어느 쪽을 택할지를 말이다."


흑룡의 날개가 일으키는 바람을 쐬며, 검은 망토를 펄럭이는 스트라이드가 배후를 돌아본다. 거기서도 또한, 강철과 강철의 격렬한 싸움이 펼쳐져 있다.


"──큭."


결코 넓다고는 할 수 없는 탑의 옥상, 그곳에서 행해지는 전투는 동시에 두 개──.


한쪽은, 인간이라는 영역의 한계에 단련으로 도달한 시노비의 기술과, 이에 응전하는 마법사일 터인 여자의 놀라운 체술. 두 자루의 쿠나이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샤스케의 공격을, 여자는 묘한 흑장갑으로 받아내며, 날카로운 공격을 주고받고 있다.


둘 다, 두렵도록 갈고닦은 기술과 기술의 대결이다. 단순한 싸움이라는 시점에서 보자면, 눈여겨볼 만한 점도 많이 있으리라.


그러나, 관전하는 스트라이드의 넋이 오르는 것은, 다른 한쪽의 대결이다.


"으, 으, 아앗!"


꼴사납게 눈물을 흘리며, 눈꺼풀이 부은 여자의 손에서 청렴한 검격이 가해진다.


긴 세월 동안, 수련하는 데 쏟아 부운 성과를 검에 싣고, 전력으로 휘두르는 그것을 방패가 받아, 새된 소리와 불꽃이 옥상에 난비하고 있었다.


그 검극에 있는 건 증오나 적의가 아니라, 비탄과 걷잡을 수 없는 애정. ──서로 사랑하는 자끼리, 원하지 않는 형태로 베는 광경은 스트라이드의 가슴에 달고도 짜릿한 충격을 주었다.


정확하게는 검과 방패, 그 격돌을 검극이라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다만, 원래, 이 정도의 실력자가 아니언마는. 주술에 감정으로 반항하고 있나. 정말로, 불합리한 인형이로다."


하는 수 없다며 어깨를 으쓱하고, 스트라이드는 눈앞의 검사와 순사(盾士)의 싸움에 탄식한다.


주술에 조종당하는 여검사, 그 실력은 진수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주술의 강제력으로 목부터 아래는 스트라이드의 뜻대로 되지만, 유흥을 위해 마음을 속박하지 않은 것이 안 좋은 영향을 남겼다.


물론, 검격을 받는 방패 기사의 방어 기술이 탁월한 것도 있으나──,


"뜻밖의 복병이 있었군. 보아하니, 졸병 중 하나에 지나지 않을 터다만, 요외로 버티는구나. 그렇다면, 하는 수 없지. 살짝, 공을 들여주마."


말하고, 스트라이드는 여검사에 해당되는 주술 도구, 반지의 보옥을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그러자마자, 반지의 청색 반짝임이 강해져, 신음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으, 아……! 아, 안 돼, 안 돼! 그림! 도망쳐!"


한탄하는 여검사, 그 몸에 푸른 문양이 떠오른다. 의복을, 갑옷을 안쪽에서 비치는 빛에, 상대하던 방패 기사가 당목해, 다음 순간에 검격의 속도가 올라간다.


바람을 가르고, 옆으로 후려넘기는 장검의 위력을 맞아, 남자는 세차게 뒤로 날아갔다.


주술로 육체에 간섭해, 대상의 잠재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리는 금기다. 당연히, 육체에 가해지는 부담은 심상치 않으며, 사람으로서의 모양이 무너질 만한 수단이다.


그럼에도, 상관없다. 스트라이드에게 있어, 이 찰나, 재미를 붙이는 것 이상으로 관심이 가는 건 없다. 할 일은 이미 끝냈다. 이제──,


"──어느 쪽이 짐에게 도달하는가, 그뿐인 놀이이니 말이다."


"우아아──앗!"


중얼거림을 덧칠하듯이, 절규하는 여검사의 참격이 종횡무진으로 휘몰아쳤다. 통상의 기사검보다 거대한 검을, 여검사는 손발과 같이 화려하게 다루어, 자신의 연인을 몰아넣는다.


몸을 쭈그려, 남자는 안간힘을 써서 검격을 막아내지만, 언젠가는 한계를 맞아, 피의 바다에 가라앉을 것이다. 안 그래도, 저택에서 여자에게 베인 상처는 다 낫지도 않았다. 여자는 두 차례, 연인을 베는 꼴이다.


──이번에야말로, 그 목숨을 빼앗아, 한탄의 밑바닥으로 가라앉는 것이다.


"그림...... 부탁이야, 나를......"


높이 쳐들어, 그대로 검을 내리찍기 직전, 여자는 또다시, 그렇게 말했다.


──죽여줘. 이어질 말은 그 정도인가.


담박하고, 흥이 깨졌다는 투로 스트라이드는 바라본다. 그러나, 그 말에 이은 남자의 행동에, 깨진 감정은 무산했다.


검격이 행해지는 순간, 남자가 방패를 내려놓고, 여자 앞에서 무방비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무슨."


"캐럴."


남자가, 몹시나 다정한 얼굴로, 여자의 이름을 불렀다.


찰나, 절망적인 표정을 짓던 여자의 팔이 휘어져, 장검의 일격이 날아든다.


──그것은 곧장, 남자의 머리에서부터 가랑이 아래까지를 싹둑, 베어내고.


"────."


검이 살을 베어 가르는, 장렬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검격은, 남자의 코앞에서 멈춰있었기 때문이다. 한결같은 사랑이 기적을 일으켰다──그런 것이 아니다.


올곧게 떨어지는 도신을, 남자가 맨손으로 집어 들듯이 받아, 막아내고 있었다.


마치, 검의 궤도와 속도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것처럼.


"내가, 얼아나......캐럴과, 『검귀』을 봐온 줄 아냐."


검을 양손으로 집은 채, 여자──캐럴의 머리를 넘어, 남자의 안광이 스트라이드를 포착한다. 그 눈을 불사르는 격분에, 스트라이드는 처음으로 그 남자의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그림이라, 불린 그 남자. 생각지도 못한 그의 분전에, 스트라이드의 볼이 일그러졌다. 분노가 아닌, 환희로. 뜻밖의 수확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혹여."


"──?"


"혹여, 네놈이 그런가? 네놈이, 짐이 추구한 범인(凡人)이냐? 『검귀』가 아니라?"


스트라이드가 던진 물음에, 그림은 몰이해를 내포한 낯으로 눈썹을 찡그린다. 하지만, 그런 반응도 개의치 않는다. 스트라이드는, 이미 결론을 냈다.


시험해봐야만 한다. ──이것이, 자기 종생의 목적에 필적하는가의 여하를.


"────."


그동안에도, 캐럴과 그림의 대치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캐럴이 힘을 넣어도, 막힌 검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이만저만한 검사라면, 캐럴의 수완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리라. 그림도 마찬가지로, 단순한 전투력으로는 그녀 이하였을 터다. 그러나, 유일하게, 그림의 방패가 닿는 상대야말로, 그 검술을 곁에서 봐온 캐럴. 요컨대, 그 남자는 운명을 극복해낸 것이다.


그렇다면──,


"샤스케."


짧게, 시노비의 이름을 불렀다. 그 호명만으로, 검은 마수(魔手)는 뜻을 헤아려서 움직인다.


그림자에 숨어들어가, 전선에서 벗어난 시노비는, 다음 순간에 동작이 멈춘 캐럴의 그림자에서 출현했다. 그 손에 쿠나이가 아니라, 작은 칼을 쥐고서.


캐럴의 등을 차폐물 삼아, 그대로 그림마저 한 번에 꿰뚫는다. 방패를 떨어뜨린 그림에게 막을 수단은 없으며, 샤스케의 모습이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게, 무자비한 일격이 캐럴의 등에 박힌다. 순간──,


"──그건, 용납 못하겠는걸."


단숨에, 한걸음으로 거리를 좁히는 보법을 사용해, 캐럴과 칼날 사이에 끼어들어오는 장신. 그 복부에 날이 꽂혀, 선혈이 옥상에 흩날렸다.


배후의 충격에, 캐럴은 숨을 멈춘다. 자유로워진 고개를 돌려, 자신의 등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확인했다.


칼 앞에 몸을 내던진 여자──로즈월 J. 메이더스가, 배를 뚫린 광경을.


그 광경에 녹색 눈을 부릅뜨고, 캐럴은 소리쳤다.


"──줄리아!!"


비통한 목소리가 하늘에 울린다. 울려 퍼진다.



천공에, 흑룡의 신음소리는 여전히 이어지며── 두 목에서는 이미 빛이 소실되어, 마지막 남은 목의 저항마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기다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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