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둡디어두운, 물밑으로 가라앉아가는 감각에 휩싸여, 테레시아는 어둠 속에 일렁이고 있었다.
어둠이라 함은, 잘못된 표현일지도 모른다.
왜인가 하면, 테레시아를 이 칠흑에 초대한 술사에 의하면, 테레시아가 가라앉는 건 죄의 수저——어둠보다 더욱이 깊고, 결코 구원받지 못하는 장소일 테니까.
"이런 엄마라서, 내가 미안해."
자기 손발의 감각도 애매한 공간에서, 테레시아는 복부를 만지며 사과한다. 부풀어오른 태내에는, 탄생할 순간을 애타게 고대하는 아기가 있다.
테레시아와 빌헬름, 『검성』과 『검귀』가 맺어진 사랑의 결정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목숨을 위협받고 있었다.
이대로 테레시아가 돌아가지 못하면, 이 아이는 태어나지도 못하고——,
"——그렇게는, 절대로 안 될 거야."
조용히, 굳센 결의를 품은 목소리로 테레시아는 단언한다.
이 물밑에, 뱃속 아기를 휘말리게 한 건 틀림없이 자기 자신이다. 하지만, 그건 아이의 운명을 탄생보다 먼저 끝마침 지으려는 것이 아니다.
테레시아는 자기 아이가, 아스트레아 가문의 인간으로서 성장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스트레아 가문, 『검성』의 가계에는 이루어내야만 하는 책무가 있다. 그것은 테레시아나, 뱃속 아기나 마찬가지다. 이 아이 또한, 아스트레아의 아이로서 태어난다면, 원하든 말든 간에 똑같은 것을 짊어지게 된다.
그렇기에, 자기 미숙함을 부끄러이 여기면서도, 테레시아는 아이도 고난의 길을 같이 갈 것을 절망(切望)한다.
——이 앞에 어떠한 일이 기다리고 있다 할지라도, 기필코 아이를 지켜내리라는 각오와 함께.
"————."
그런 각오를 다진 테레시아를, 마침내 수면이 맞이한다.
진흙탕을 밟는 듯한 감각이 있은 뒤에, 테레시아는 부드러운 땅에 무릎을 찧는다. 배를 지키려고 몸을 구부린 그녀는, 침체된 어둠 속을 응시했다.
둥글고, 푸른 눈동자에 비치는 칠흑, 그것이 서서히 걷혀, 시야가 밝아진다.
그리고, 당목하는 테레시아 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렇, 지. 이곳이, 내가 범한 죄를 보여주는 곳이라면, 보게 될 건 뻔해."
한숨을 쉬고, 테레시아는 한차례만 세게 눈을 감았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자신이 놓인 상황을, 어둠이 걷힌 광경을 정면에서 받아낸다.
——테레시아는 홀로, 바위로 만들어진 탑 위에 있었다.
불어대는 메마른 바람, 하늘은 마치 지상을 내버린 것처럼 저 멀리로 보인다. 불안정한 발판은 크기가 제각각인 바위를 높이 쌓아올린, 아이들의 장난감 같은 석탑이다.
그 정상에서 테레시아는 눈 아래——사방을 가득 메운 망자 떼를 본다.
낮게 울리며 들리는 것은, 땅울림과도 흡사한 원망의 목소리.
피에 젖은 손가락을 뻗어, 공허한 눈을 머리 위의 테레시아에게로 향하는 죽은 사람들의 군세, 그 얼굴 하나하나를 테레시아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럴 게 당연한 이야기다.
——이들은 모두, 테레시아가 직접 베어죽인 자니까.
"이게, 나의……."
『검성』으로서 검을 들어, 『아인전쟁』에서 테레시아는 너무나 많은 목숨을 빼앗았다. 테레시아 혼자 참살한 수는, 그야말로 만에 육박할까.
목숨에 귀천지별은 없으며, 그 무게가 평등하다고 한다면, 그건 몹시 불평등한 천칭이었다.
그런 고로, 망자들의 신음소리가 탄핵이라고 한다면, 테레시아에게 부정할 자격은 없다.
"이곳이……."
죄인이 도달하는 종착점.
평온한 행복을 용납하지 않는 단죄의 꼭대기.
——테레시아 반 아스트레아가 가라앉는, 죄의 물밑.
"이곳이, 나의……."
다시금, 테레시아는 자기 과오를 앞에 두고, 자각의 말을 속삭였다.
무의식적으로 그 손은 배에 닿아, 마음속에 단 한 명의 남편을, 사랑스러운 검의 귀신을 그려낸다.
바위 탑이 흔들린다.
안하의 망자들이 남에게 질세라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지르면서 탑을 기어오른다.
——마안으로 인해 드러나는 죄의식, 『검성』을 향한 탄핵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2
——그것은, 빌헬름이 피보트의 환영을 보게 된 지 한참이 지난 무렵이었다.
『결국, 전 당신의 마음속에 남은 죄책감 그 자체가 아닐까 싶어요.』
그런 말을 하며 냉연히 미소 짓는 피보트에게, 빌헬름은 얼굴을 찌푸리고 혀를 찼다.
애검을 손질하던 중,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기화로 삼아 환영은 빌헬름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쪽으로 시선도 주지 않고, 빌헬름은 짧게 탄식하더니,
"……들어보마."
『고마워. 그럼, 말을 이어볼까요. 이렇게 말해도, 이제 제가 이야기하려는 내용은, 거의 당신의 생각이라 해도 무방합니다마는.』
미소를 지은 채, 피보트는 환영치고 인간미 넘치는 투로 어깨를 움츠린다. 그가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고 빌헬름에게 생각하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이런 태도다.
환영의 존재에 의한 악영향은커녕, 감정적으로 일을 벌이기 일쑤인 빌헬름에게 있어, 객관적인 조언을 해주는 유용한 존재로 여겨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빌헬름의 인식에 이의를 제기한 건, 다름 아닌 피보트 자신이었다.
『빌헬름, 언제까지나 현재 상황에 만족하고 있지는 말아요.』
"만족한다? 내가?"
『예, 그럼요. 당신도 이미 확신했을 텐데요. 여기 있는 전, 체르게프 부대의 부장을 맡았던 피보트 애넌시 본인이 아니라고. 필경, 저는 당신이 아는 피보트의 우상에서 태어난 그림자, 가짜에 지나지 않는걸요.』
"그건……."
『틀렸다고요? 그렇다면, 지극히 사적인 질문을 뭐라도 던져보세요. 피보트의, 가족구성이나 어렸을 때 기억을 말이죠. ——무엇 하나, 대답할 수는 없답니다.』
머뭇거리는 빌헬름에게, 피보트는 『왜냐하면.』 하고 말을 잇고,
『당신이, 피보트의 가족이며 과거에 관한 일을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에요. 결국 당신의 마음 구석에 달라붙은 죄의 찌꺼기인지라, 당신이 모르는 건 대답할 수가 없지요.』
"————."
『이제 그만 깨달아야 해. 그리고 인정하세요. 저는, 당신이 인간답게 성장했기에, 조그만큼 정에 눈을 떴기에 비로소 생긴 죄의식이에요. 더욱 말하자면, 저는 당신에게, 처음으로 죽은 것을 안타깝게 여겨진 인간이거든요.』
가차 없이 다그치는 피보트를,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것이 사실임을, 다른 누구도 아닌 빌헬름 자신이 인정하는 바 있기 때문이다.
『저는 언젠가 사라져버릴 아지랑이와도 같은 존재. 당신이 아까워한 전우, 피보트는 진작에 사망했다. 그와 말을 나눌 기회는 이제 찾아오지 않아.』
"————."
『그러니까, 빌헬름, 당신은 인정해야 한다고요.』
거기서 말을 끊고, 피보트는 빌헬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길게 째진 그 눈동자 안에 아련한 감정을 밝혀, 고한다.
『——다음은, 당신 차례야.』
"그대의 마음은, 어디 딴 데 있나 보군."
"——큭!"
한순간의 의식의 간격, 그 대상으로 날아든 건 압도적인 일격이다.
강풍을 두른 참격, 즉사에 마땅한 폭위를 쿠르간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휘두른다. 뒤로 물러날지 옆으로 피할지, 찰나의 판단으로 빌헬름은 성검을 방패 앞으로 내밀었다.
『아스트레아』의 이름을 관하는 성검, 그 도신을, 두 배 이상이나 두꺼운 대도의 충격이 되받아친다. 엄선된 강철은 일격을 맞아, 그러나 꺾이지 않고 소유자를 지켜냈다.
"구사일생, 그러나."
낮은 목소리가 귓가를 스쳐, 이어지는 충격파가 석재 가로를 파괴한다.
공격 자체는 간신히 막아냈다. 그러나, 안도는 주위에 적용되지는 않는다. 압도적인 참격의 여파는 가릴 것 없이 주위로 퍼져, 담을 형성하고 있던 시민들이 날아간다.
피를 흩뿌려, 잘게 베인 사람들의 모습에 빌헬름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큭……!"
"의식을 딴 데 둘 틈 따위 없네. 그대의 검은 나에게, 나의 검은 그대에게. ——이곳이 인생 최상의 무대, 이를 망치지 말아다오."
"말투 하나는 아주 망할 놈의 주인 닮아서 참 잘나셨구먼, 연극이 따로 없어 안 그러냐!?"
욕설을 퍼붓고, 빌헬름은 입속에 고인 피를 뱉었다.
제대로 직격을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은 『여덟팔』 쿠르간—— 볼라키아 제국 최강의 이름을 떨치는 투신이다.
그 공격은 여파만으로도 충분히 사람 목숨을 위협한다. 충격을 흘러넘겨, 공격을 잇달아 따돌리는 빌헬름일지라도, 피로와 고통의 축적은 불가피하다.
안 그래도, 상황은 빌헬름—— 아니, 왕국의 토벌대에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도시 픽텃은 『파멸원망』 스트라이드의 지배하에 놓여, 도시 주민은 모종의 수단으로 인해 놈의 꼭두각시가 되어있다. 의사도 없는 눈동자로 밀어닥치는 사람들은 폭도와 같으며, 물량으로 뒤지는 토벌대는 열세가 분명하다. 거기에, 그림자 속에서 암약하는 시노비와, 주위 피해를 개의치 않는 쿠르간까지 있다.
——절체절명이란, 바로 이런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이제는 정말, 본격적으로 위험한 정세인걸. 내가 한 말이, 생각나기 시작하는 즈음 아닌가요?』
"……시끄러."
검을 쥔 손의 악력을 확인하는 빌헬름에게, 곁의 피보트가 말을 건다. 그걸 살살 뿌리치자, 피보트는 모노클 너머로 눈을 가늘게 뜨고,
『절체절명이란 말이 이리도 알기 쉬운 장면을 찾기도 힘들어.』
"————."
『테레시아 님은 포로의 몸이고, 캐럴 님도 꼭두각시가 된 데다, 메이더스 여사와 그림은 그림자에 삼켜져서 행방불명, 도련님은 시노비 상대로 열세에 놓여있고, 체르게프 부대를 포함한 토벌대 면면은 머지않아 군중에 밀릴 테지. 그리고 당신은…….』
"——그대는, 마안에 홀렸군."
"뭐?"
하나부터 열까지 안 좋은 상황을 역설하는 피보트, 그 말끝을 이어받듯이 낮은 목소리가 들려, 빌헬름은 의식을 그쪽으로 돌렸다.
물론, 환영의 피보트의 말이 들린 것은 아니며, 대사가 이어진 것도 단순한 우연이다. 그러나, 쿠르간은 여덟 개의 팔에 네 자루의 대도를 들고, 암석과 같이 근엄한 안면에 실망한 기색을 띠며 말했다.
"마안족의 계집애, 스트라이드의 아내에게 깃든 마성의 빛이네. 그대가 그 계집애의 눈에 비친 기회가 언제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그러한 수법에 걸리다니, 그대에겐 실망했다."
"마안, 이라고……?"
생각지도 못한 말에 빌헬름은 귀를 의심했다.
마안, 그것은 『마안족』이라고 불리는 희소 종족이 지닌 특수한 이능이다. 마법과도 가호와도 다르다 여겨지는 권능, 그러나 마안족 자체가 멸망의 위기에 처해있는 시대다. 그런 힘의 영향을 받을 기회 따위, 빌헬름에게는 단 한 번도.
"……마녀의 보금자리군."
『스핑크스의 유산을 회수한 스트라이드 일당이, 그 안개의 계곡에 남긴 마안의 함정…… 그것이 홀린 결과라면, 제 존재에 대한 정답도 나왔군요.』
"하지만, 그곳에 간 건 나 말고도 있었어. 그림 들도 같이 갔다."
"그렇기에 실망이라 한 거라네, 『검귀』여. 마안의 포로가 되는 이는, 마음이 허약한 자 말고 없지. ——그곳을 찾은 우상무상에게 이변이 없다면, 다시 말해."
——그 자리에서 유일하게, 빌헬름 혼자 마안에 홀릴 정도로 마음이 허약해져있었다는 둘도 없는 증표다.
"————."
쿠르간에게 전해들은 말, 그 무게에 빌헬름은 절구한다.
빌헬름에게 있어, 자신이 허약하다 따위의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다. 그건 검술뿐만 아니라, 마음의 자세나 강함 또한 마찬가지다.
약하다 함은 타기해 마땅한 것으로, 빌헬름과 가장 무관한 말이었을 터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눈앞에 닥치는가. 그건——,
"——오로지, 자기 무술에만 노심해라, 『검귀』. 그것이 심신을 강철로 연마해주리라. 그것이 내가 호적수에게 요구하는 자격, 그 심신을 강철로 연마한 자와의 결착, 그것만이."
"몸도 마음도, 강철로……."
네 자루의 대도를 쳐들어, 피를 끓게 하는 투신의 검기에 빌헬름은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검을 든 것과 반대쪽 손으로 자기 가슴 언저리에 대며 굳게 주먹을 쥐었다.
오로지 자기 무술에만, 검에 대해서만 노심한다는 것.
그랬다, 그랬을 터다. 빌헬름은 줄곧, 그래왔을 터이다.
오직, 강해질 것만을 바라고, 검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검의 극한에 이르고 싶다고 희구해왔다.
그것이 어느샌가, 알게 모르게 많은 것들을 짊어진 채 나아가게 되어, 순수함에서 동떨어진 결과, 빌헬름은 약해졌다.
참으로 검에 몰두해, 『검귀』라 불리기에 걸맞은 경지에 있었더라면.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서는, 『여덢팔』의 영역에 도달하지 못한다 하면——.
"——그렇다. 그것이 정답이네. 그래야지, 그대는."
"나는——."
검을 쥔 손에 힘을 넣어, 빌헬름은 짊어져왔던 부담을 풀어내려고 한다. 그 징조에 쿠르간은 기대의 눈빛을 보내, 예리한 검기가 팽창되고 있었다.
——지금, 여기서, 놈을 죽일 수만 있다면, 나머지는 아무것도.
"우리 돌격대장을, 너무 얕보지 말아다오, 『여덟팔』!"
순간, 긴장된 분위기를 깨부수는 듯 거친 목소리가 들려서, 빌헬름은 당목한다. 소리를 낸 건 전장의 반대편, 거기서 부창을 치켜든 거구—— 보르도였다.
그는 근육의 갑옷과도 흡사한 육체에 무수한 열상을 입어, 피투성이의 상태다. 이 자리에 남은 토벌대 중에서, 빌헬름에 버금가는 실력자인 보르도는 시노비의 상대를 맡고 있다.
전술의 유연함과 속도를 무기로 삼는 시노비와, 보르도의 상성은 최악에 가깝다. 실제로, 시노비의 맹공을 막아내지 못해, 보르도는 엄청나게 많은 피를 흘리고 있는 꼬락서니였다.
그러나, 보르도는 그런 저자세를 내색도 않는 태도로 대담하게 웃으며,
"시간을 들여서 겨우겨우 짐승에서 인간의 길로 데려왔네. 그런데 요변스레 짐승으로 되돌리면 못 쓰지."
"거구에 부창, 그대는 왕국의 『맹견』인가."
"무어야, 나까지 알고 있었구먼. 그쪽 이명이 널리 알려져있다니 민망한 느낌도 들지만, 지금은 놓아두지."
일순간, 얼굴을 찌푸린 보르도는 이내 기분을 전환해, 빌헬름을 쳐다보고,
"염려 말게, 빌헬름. 거리끼는 바없이 당당하게 가슴을 펴라. 얼마나 무거운 것들을 짊어지고 있다 해도, 네가 왕국 최강이네."
"보르도……."
"너야말로, 왕국의 검이다. 이 미증유의 위기에 항거할 수 있는, 가장 날카롭고 소중한 강철이다."
얼마나 무거운 것들을 짊어지고 있다 해도 상관없다고, 보르도는 그렇게 단언했다.
피에 젖은 볼을 미소로 일그러뜨리는 보르도, 그가 남긴 말에 주위 기사들도 하나같이 수긍한다.
각자의 무기를 들고, 밀어닥치는 폭거를 상처 입히지 않고 진압하는 데 열중인 그들은, 상황의 타개를 빌헬름의 검에 일임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절대적인 신뢰를 『검귀』에게 맡겼음을, 목숨을 걸고 증명한 거나 다름없다.
『죄다 버리고 살아온, 『검귀』로서 존재하는 것이 당신의 강함인가요?』
흔들리는 빌헬름 곁에서, 쭉 침묵하던 피보트가 묻는다. 그쪽으로 시선을 향하자, 그는 희미하게 웃으며, 빌헬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토록이나 몰아넣은 주제에, 손바닥 뒤집기냐?"
『몰아넣었다니 박정하군요. 애초부터, 저는 당신을 몰아넣을 생각 따위 털끝만큼도 없었다고요. 지금이나 옛이나, 당신은 사람이 하는 말을 끝까지 안 들어.』
어깨를 들먹여, 피보트는 한숨을 쉬고 생전처럼 어이없다는 투로 계속한다.
『제가, 당신 눈앞에서 어떻게 목숨을 잃었는지, 기억하시죠?』
"——. 그래, 당연하지."
『당신에게 있어선 청천의 벽력이었겠지요. 설마, 전장에서 누군가가 자기 대신에 베이다니, 당시에는 상상도 못했을 테니까요.』
그러면서 미소 짓는 남자는, 아인족 최강의 전사 앞에 가로막아서, 빌헬름을 지키다 치명적인 칼날을 받았다. ——그 순간을, 빌헬름은 아직도 꿈속에서 다시 본다.
그러니까, 환영의 피보트에게 『다음은 당신 차례다』라고, 그런 말을 들어도 부정할 권리는——.
『빌헬름, 다음은 당신 차례다.』
다시금, 피보트는 빌헬름에게 그 말을 던졌다.
죽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다음번에는 빌헬름도 목숨을 잃게 되리라고, 저주를.
그럴 줄로만 알고 있었던 말, 그러나, 여기에는 이어질 내용이 있었다.
『다음은 당신이, 소중한 존재를 위해 그 목숨을 걸 때다.』
"————!"
찰나, 빌헬름은 손에 든 검의 손잡이로 자기 이마를 힘껏 쳤다.
딱딱한 충격과 소리가 울려, 깨진 이마에서 피가 흐른다.
『빌헬름 반 아스트레아, 강철의 삶을 바란 검의 귀신이여. ——이제까지나, 이제부터나, 당신이 걷는 길의 끄트머리에는 수많은 죽음이 따라다닐 거예요. 하지만, 당신은 결단코 걸음을 멈춰선 안 된다.』
흐르는 피를 소매로 닦아, 빌헬름은 세게 어금니를 깨물며, 앞을 본다.
『선대 체르게프 부대의 부장으로서, 부대의 현 대장에게 전하는 말은 이게 전부입니다.』
"——충분해,"
한 발짝, 앞으로 내디딘다. 곁에 선 피보트는, 그 전진에 따라오지 않는다. 그럴 것이, 그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몸이다. 지금을 살아가는 자의 발걸음을, 죽은 자는 쫓을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그는 정면에 돌격하는 『검귀』를 지켜보며, 그러고——,
『빌헬름, 협조해!』
"——보르도!"
피보트의 말을 들은 빌헬름이 외친다. 그 소리에 보르도가 부창을 들고 끄덕였다.
순간, 빌헬름은 폭발하듯이 튕겨져나가 땅을 차고, 맹연히 쿠르간으로 향해 돌진한다.
그러자, 쿠르간은 대도 『귀신의 칼날』를 낮은 자세의 빌헬름에게 내리쳐—— 그 일격을, 궤도로 끼어든 부창이 혼신의 힘으로 받아낸다.
"뭐라!?"
"아아…… 제국 최강의 일격은, 죽도록 무겁군그래!"
예상치 못한 간섭에 쿠르간이 경악의 소리를 내어, 동시에 충격으로 보르도의 상처가 피를 뿜는다. 그러나, 의지와 긍지가 일격을 확실하게 막아내었으며, 그로 인해 빈틈이 생겼다.
하지만, 그건 쿠르간 말고 보르도 또한 마찬가지다.
"등을 보이다니, 어리석긴!"
자신의 전장을 포기하고 등을 드러낸 보르도에게, 그림자를 통해 다가간 시노비가 단검을 휘둘렀다. 그대로 심장을 노려, 시노비의 일격이 명중하고——,
"——그래, 정말로 넌 바보자식이야. 겨우 한 마디에, 목숨이나 걸고 말이야!"
"——윽!?"
목소리에 놀라는 시노비, 그 시야에 은섬이 호를 그리며 날아든다. 즉시 단검을 세워, 시노비는 그 참격을 막으려 한다. 그런데 날카로운 참격은 단검을 분쇄해, 그대로 시노비의 오른팔을 양단하고 팔꿈치부터 앞부분이 저 멀리 날아가며 피를 가로에 흩뿌렸다.
그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은섬은 온갖 각도에서 연속해서 베어낸다. 뒤로 물러서, 한쪽 팔을 잃은 시노비는 왼팔과 체술을 구사해 회피를 시도했다. 그러나——,
"오, 오오오오오오——옷!!"
"……무념이외다."
압도적인 검력으로 마침내 왼쪽 팔을 걷어내, 시노비의 몸을 대각선으로 양단한다. 깊은 상처는 죽음이 불가피한 치명상으로, 시노비는 피를 토하며 그 사실을 자각한다.
하지만, 쓰러지다 만 몸으로 참아내더니, 최후의 수단에 나섰다.
"죽고서도, 아직…… 이 몸은 사람에서 일탈한, 시노비오이다! 최후의 임무올시다!"
소리치는 시노비가 수도를 자기 배로 찔러넣는다. 순간, 시노비의 몸속에 있었던 폭렬 술식이 발동해, 대기가 일그러지는 열량과 함께 시노비의 왜구가 팽창한다.
자폭 특공의 기색에 빌헬름은 자세를 바로잡았다. 어쩌면 폭발하기까지의 짧은 시간 안에, 그 육체를 잘게 썰어버리면 피해를 분산할 수 있을지도——,
"그럴 리가 있겠냐! 비켜라!"
그런 빌헬름의 무모한 사고를 질책해, 부창을 손에서 놓은 보르도가 시노비를 박질렀다. 그리고 빌헬름을 등으로 밀치자, 적을 스스로의 몸으로 뒤덮듯이 감쌌다. 시노비의 왜구가 보르도의 거구에 깔린, 다음 순간——,
"——컥!"
격렬한 폭음, 이어지는 충격파가 가로를 빠져나가, 아주 잠깐이지만 도시 전체가 흔들린 듯한 착각을 빌헬름은 느꼈다. 그러나, 실제로 폭렬이 도시에 끼친 영향은 거의 없는 것과 같았다.
석조 바닥이 벗겨져, 뒤집힌 가로에는 튕겨져나간 시노비의 시체, 그리고——,
"보르도!"
"……으."
폭발의 충격을 맨몸으로 받아낸 보르도는, 그 막대한 위력에 의식을 잃고 있었다. 하지만, 흔들어보니 숨은 붙어있다. 이만한 충격을 받았음에도, 죽지 않은 것이다.
"참 튼튼하기도 해. 그대로 죽지만 마라."
희미하게 안도의 한숨을 쉬어, 빌헬름은 토벌대에게 보르도와 부상자를 중심으로 한 진형을 만들도록 지시한다. 시노비가 빠지면, 적은 폭도와——,
"이제, 방해꾼 없이 너랑 맞붙을 수 있겠군."
"————."
쿠르간으로 검 끝을 겨누어, 빌헬름은 검기를 부딪친다. 하지만, 그걸 받은 쿠르간은 한쪽 눈을 감고, 폭심지를 보고 있었다.
보르도가 아니라, 거기서 죽은 시노비의 최후를 눈에 새기듯이 끄덕인다. 그리고,
"내가 원한 것과는, 적이 다른 자세다만."
"그렇지. 지금 와서 뭘 버리기에는, 아무래도 쓸데없는 것들을 너무 많이 주운 모양이야."
"————."
"그러니까, 이젠 질 것 같지가 않거든."
상황이 호전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테레시아는 적의 손아귀에 있으며, 캐럴은 꼭두각시가 되었고, 로즈월과 그림의 안부도 모르는 마당에, 보르도가 쓰러진 데다 토벌대의 피로는 쌓이기만 한다.
그렇다 할지라도——,
"——왕국을, 지켜내라!!"
"우오——옷!"
과거, 피를 토하듯이 고함친 남자를 따라, 빌헬름은 소리 높여 명령했다. 『검귀』의 그 구호에, 용맹한 토벌대 전사들이 힘차게 응수한다.
그리고 재차, 빌헬름은 활처럼 빠르게 쿠르간으로 달려든다.
성검 『아스트레아』와, 대도 『귀신의 칼날』이 격돌해, 불꽃이 사납게 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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