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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2016년 10월 코믹얼라이브『오르코스령의 적설/전편』-1

케드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3.11.06 23: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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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눈에 보이는 땅은 전부 천국에서 내려오는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다.

 

"――――"

 

정오였지만 두꺼운 눈구름이 하늘의 빛을 가려서 설원은 어두웠다.

 

어제 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그칠 기세가 보이지 않고, 얼음 결정들이 밑의 모든 것을 뒤덮었다. 수많은 발자국들, 나뒹굴고 있는 검과 방패들그리고 팔과 다리를 잃고, 눈을 붉게 물들이는 시체들도.

 

"――――"

 

표정을 통해서 이들이 살기 위해 끝까지 몸부림쳤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설원을 맴돌는 차가운 바람은 이들의 절망을 덮고, 이들의 한탄은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다.

 

――단 한 명을 빼고. 설원에 나뒹구는 시체들 사이에 오직 하나만이 서 있었다.

 

――변한 게 없구나.”

 

눈보라 치는 설원의 한복판에서 검은 옷을 입은 여자가 속삭였다.

 

윤기나는, 긴 머리카락은 찬바람에 휘날렸고, 이 세상에서 보기 드문 검은 색의 눈동자는 환희에 젖은 채 설원을 내다봤다.

 

그녀의 시야에는 이제 두 번 다시 움직이지 못할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시야를 돌렸겠지만, 그 중심에 선 이 여자는 더욱 돋보였다.

 

그녀를 꽃으로 비유하고자 한다면, 지금 이 순간, 피와 죽음으로 가득 찬 이 곳에 서 있는 이 여인은 매혹적인 향을 내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눈보라 속의 설원에 선 이 여인의 모습을 가장 잘 묘사할 수 있는 방안일 것이다.

 

"――"

 

갑옷을 입은 수많은 남자들이 전장에 뒤늦게 도착했지만, 이들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털이 달린 갑옷과 투구를 쓰고, 검과 도끼로 무장한 이 전사들은 피로 물들은 설원에 홀로 서 있는 여인을 보고 멈춰선 것이다.

 

――어머나.”

 

여인은 전사들 쪽을 돌아보면서 붉은 입술로 웃음을 지으며 손을 올렸다.

 

그 손에는 이 참상을 만들어낸 도구였을 곡도를 쥐고 있었다.

 

――미안. 참을 수가 없어서 먼저 나서고 말았네.”

 

매혹적인 웃음을 지으며, 그 여인은 남자들에게 형식상의 사과를 했다.

 

하지만 그 남자들 중 누구도, 자신의 일을 멋대로 처리한 것에 대해 여인에게 항의하지 않았다.

 

△🔽△🔽△🔽△

 

2

 

――구스테코 성왕국은 네 개의 대국 중 가장 가혹한 자연환경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치지 않는 백설, 녹지 않는 영원설. 극한의 추위로 둘러싸인 이 곳에서는 농작물이나 가축을 기르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으므로 하루하루 살아나가는 것부터가 급했다.

 

이런 가혹한 곳을 바탕으로 해서 구스테코 성교회의 교리가 탄생했다.

 

교리에 의하면 동토와 한기는 위대한 존재가 인류에게 내린 시련이라고 한다. 죽은 후에 평온함을 누리기 위해서는 이 시련을 통과해야 한다고.

 

온화한 국가에서 태어난 이들은 이 교리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지만, 구스테코에서는 빠르게 퍼저녀갔으며, 누구도 이 교리에 의구심을 품지 않았다. 거리는 구원을 바라는 이들로 가득찼다. 모두가 가망이 없는 꿈에 필사적으로 매달린 채.

 

이것이 구스테코 성왕국의 현실이며, 수 백년간 지속된 혹한의 역사다.

 

――그래서 놈들은 다 디진 걸로 보인다! 그러니, 얘들아! 원하는 만큼 마음껏 먹어라!”

 

이 말을 한 남자는 누가 봐도 취한 채, 유리잔을 카운터에 내리쳤다.

 

과음으로 코가 새빨개진 거한이었다. 술에 취한 것이 확연히 보였지만, 질책을 받을 필요는 없었다. 남자의 발언은 역으로 박수 세례를 받았고, 주위에 있던 다른 이들도 술을 들이켰다.

 

이 술집은 현재 이 남자와 그의 일행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급여를 잘 받아서 기분도 좋았던 데다가, 이들이 폐를 끼칠 만한 다른 손님들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술집의 주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이거야말로 생명수지! 여기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구스테코 성교회의 성왕과 자비로운 어머니께 감사를! 건배!!”

 

건배!!”

 

빈 술잔은 금새 채워졌고, 남자의 축사에 다른 이들도 환호하며 술잔을 들어올렸다.

 

성교회의 교리를 모욕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이에 대해서 그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이다. 구스테코 전역에 성교회의 교리가 퍼진 것은 맞다. 하지만 그걸 따르는 지는 별개의 얘기다.

 

교리는 뱃속을 채워주지도 않고, 목숨을 구해주지도 않는다. …적어도 이게 이들의 생각이었다.

 

"――"

 

술집의 주인은 저들을 도저히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어른이 된 순간부터 50살의 나이를 먹을 때까지 이 술집을 운영해왔던 이 남자는, 태어났을 때부터 성교회의 교리를 접해왔다. 물론 교리에서 말한 것과 달리 이 세상에 구원은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교리를 모욕하는 것은 불쾌하게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용병들로 가득 찬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을 꺼낼 정도로 접객을 안 해본 것은 아닌 만큼, 가만히 있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큰 손해를 잆었으니, 오르코스령의 놈들도 좆 됐다고 생각하겠어?”

 

문가에 종소리가 들리자, 말을 하고 있던 남자의 표정이 변했다.

 

이 술집은 자신들이 예약을 해놓았고, 모든 마을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불청객은 누구인가.

 

――아하.”

 

붉은 얼굴의 남자는 몸을 일으켜세우고, 휘파람을 불면서 문 쪽으로 걸어갔다. 다른 이들도 그 남자와 같은 의도를 품고 남자의 행동을 지켜봤다.

 

역시나―― 어떤 남자도 서게 만들 정도로 매혹적인 여자가 서 있었다.

 

우유를, 줄 수 있을까.”

 

여인이 자리에 앉는 그 순간, 술집의 주인은 그녀의 외모를 분석했다. 검은 눈동자에, 검은 머리카락. 구스테코 근방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색이 아니었다. 입술은 피처럼 새빨갰고, 그녀가 입은 옷은 몸매를 그대로 드러냈다.

 

주인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녀는 팔목을 짚고, 주문을 반복했다.

 

우유, 한 잔 달라고 부탁했는데.”

 

――아, . 미안하군.”

 

주인은 고개를 가로젓고, 우유를 집으러 걸어갔다.

 

구스테코 같이 추운 곳에서 우유는 술보다도 더욱 귀한 사치품이었다. 그 점은 둘째치고, 술집에서 주류가 아닌 우유를 주문하는 고객은 굉장히 드물었다.

 

일반적으로, 이런 주문이 나오면 말싸움이 벌어지거나, 누군가가 관심을 품기 마련이지만

 

――어이, 어이. 술집에 와서 우유를 시키다니, 말이 되나?”

 

여인에게 묻지도 않고 옆에 앉은 붉은 얼굴의 거인이 기회를 잡고 다가갔다. 그는 유리잔을 카운터에 내려놓고 손가락을 두 개 들어올렸다.

 

. 하나는 내 거고, 하나는 이 아가씨 거로.”

 

사주려는 거야?”

 

한 병을 사고도 남을 정도로 벌어가지고. 원하는 만큼 마시게 해줄 수 있는데, 좋지?”

 

여인의 시선에 남자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자신의 가슴을 한 대 쳤다. 살짝 웃음을 지은 여자를 바라보던 주인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난폭하게 변하지 않아서 다행이라 여긴 주인은 둘에게 각각 술잔을 하나씩 갖다줬다. 여인과 남자는 잔을 잡고 맞부딪혔다.

 

――성왕과 자비로운 어머니를 위하여.”

 

의외네. 신도였어?”

 

――뭐, 진지하게 믿는 건 아니지만. 어렸을 때 세례를 받은 적이 있긴 하지만, 뭐 이런 일을 해보면자비로운 어머니의 동정심에 매달릴 권리는 이미 잃었다고 봐야겠지.”

 

그렇네이해해. 나도 이 나라에서 태어났으니까.”

 

여인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잔을 살짝 마셨다.

 

여인의 목소리에서 뚜렷하게 느껴지는 한기를 무시한 남자는 여인을 슬쩍 훑어봤다. 술을 마시는 모습조차도 매혹적으로 느껴졌다.

 

어쩌다가 이 술집으로 오게 된 거지? 오늘은 우리가 이 술집을 전세냈는데, 몰랐던 건가?”

 

“…? 나가야 한다는 뜻일까?”

 

아니, 아니, 오히려 반대지. 이렇게 예쁜 아가씨랑 같이 있는 거는 좋으니까.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모두 다 집으로 들어갔거든. 그 쪽은 어쩌다가 이런 날에…?”

 

――이고르 케나시.”

 

여인은 남자의 말을 끊고 이름을 하나 말했다. 그 이름을 들은 남자가 당황하자, 여자는 입술을 핥았다.

 

그의 명령을 받고 왔어. 케나시 남작, 알아?”

 

――알고 있겠지만, 오늘 술값을 내는 게 바로 그 케나시 남작님이신데. 그렇구만감사하기도 하지.”

 

어머.”

 

거인은 웃음을 지으면서 여인의 어깨를 꽉 껴안았다.

 

여인이 살짝 놀란 것을 본 거인은 술에 찌들은 웃음을 지었다.

 

술값은 물론이고, 이런 훌륭한 여자도 대주다니, 정말 고마운데. 역시 남작님이 뭘 좀 아시는구만!”

 

이 마을에서 용병들이 성욕을 해소할 수 있던 여자는 뼈만 앙상한 여자애들 뿐이었다. 괜찮은 업소가 있는 마을은 거리가 좀 있어서 가기도 성가셨다. 그런 이들의 눈 앞에 완벽한 선물이 있었다.

 

남자가 고용주의 배려심에 깊은 감동을 느끼면서 선물에 손을 대려 한 순간

 

――로그레스! 로그레스 햐아트는 있나?”

 

――응?”

 

갑자기 한 남자가 술집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술집에 있던 남자들은 언짢은 표정을 드러냈고, 가장 짜증이 난 것은 이름이 불린 붉은 얼굴의 남자, 로그레스 본인이었다.

 

재미를 보려던 참에 방해를 받자, 로그레스는 불청객을 노려봤다.

 

그래서, 네가 남작님의 심부름꾼이냐? 뭐 때문에 왔는데?”

 

이고르 주인님께서 너를 부르셨다. 붉은 사냥대의 우두머리를 저택에 즉시 오라고 호출하셨다.”

 

――즉시? 지금 당장?”

 

다른 뜻이 있나?”

 

청년의 비아냥거림에 로그레스는 짜증난 다는듯이 코를 긁적였다. 고용주가 부른 만큼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

 

옆에는 아주 매혹적인 여자가 있었다.

 

이 자리를 떠나게 되면 자신의 보상을 두고 가야 한다. 그러면, 당연히 자기 애들이 재미를 볼 것이고.

 

“…내일로 미루면 안 되나?”

 

주인님께서 급하다고 하셨다. 빨리 움직여라, 도살자!”

 

로그레스는 한숨을 쉬었다.

 

본능을 우선시하다가 당장 내일의 밥줄을 잃을 수는 없었다. 구스테코 성왕국에서는 그런 가벼운 태도로 살아나갈 수가 없다.

 

미안하게 됐어, 아가씨. 나으리가 부르셔가지고 말이지. 이렇게 예쁜 여자를 두고 가는 게 아쉽긴 하지만…”

 

괜찮아. ――불린 건 당신만이 아니니까.”

 

?”

 

로그레스가 머리를 굴리는 동안, 아직도 그의 품 안에 있던 여인은 청년을 바라보면서 맞지?”하고 물었다. 청년의 표정은 굳었다.

 

용병들 사이에서도 평온함을 유지하던 청년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네. 주인님께서는 당신도 불렀습니다. 같이 와 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아도, 아무 짓도 안 할 건데.”

 

무섭지 않습니다...”

 

─냄새. 겁먹었을 때······ 그 사람에게서는, 겁먹었다는 냄새가 나는 법이고, 화났을 때는, 분노했다는 냄새가 나는 법이야알고 있어?”

 

청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인은 입술을 핥고 다시 로그레스 쪽을 바라봤다.

 

같은 사람한테 불린 것 같네. ――에스코트, 해 줄 수 있을까?”

 

상관없지만아가씨, 이름이 뭐야?”

 

팔을 다시 푼 로그레스는 여인의 행동거지를 조심스럽게 바라봤다.

 

용병의 시선에 여인의 웃음은 더욱 짙어졌고, 그를 매혹하는 듯이 바라봤다. 그 분위기가 극에 달한 순간, 그녀는 이름을 밝혔다.

 

――엘자. 엘자 그란힐테.”

 

――

 

그녀의 이름을 듣자마자 술집이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술에 취했지만, 잔뼈도 굵은 용병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로그레스는 손으로 입가를 막았다.

 

겨우 이름 하나로, 방금 전까지 시끄러웠던 술집에는 침묵만이 가득한 이 상황은, 누가 보더라도 놀라움을 느꼈을 것이다.

 

아 미친. 그냥 좀 새끈한 여자인 줄 알았는데, 당신이… “창자 사냥꾼이군.”

 

그의 목소리에서 성욕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녀의 흉악성이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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