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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성미가 원래 급해서. 낭인의 인도도 내일이 예정이긴 한데, 왕도에는 좀 일찍 도착했지. 하지만 제국인이 멋대로 왕도를 돌아다니다가 문제를 일으키면 귀찮을 거 아냐? 그런데 흥미로운 소문을 들었어. 여기 이 곳 말이야.”
콩콩 손등을 벽으로 두드린 여성, 세리나 드라쿨로이는 방문한 이유와 의도를 설명했다.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납득할 수 있냐는 별개의 이야기다.
“제국의 특사, 님입니까. 그나저나 그럼 지금쯤 영빈관에서는 소동이 나지 않았을련지요?”
“뭐,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잖아. 왕국도 제국하고 분쟁거리가 생기는 건 만들고 싶지 않아? 그럼 그쪽이 입을 안 열면 그만이야.”
러셀이 던진 의문에 세리나는 사나운 육식 동물 같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정말 제국인다운 답이었다.
“정말 제국인다운 말투네. 무슨 일이든 강경한 쪽이 통한다고 생각하는 거려나?”
“호오?”
내심 러셀이 품었던 인상을 입 밖으로 낸 로즈월은 방문객을 응시했다. 그 시선에 세리나는 가볍게 눈썹을 치켜올리고 자신의 두 눈의 밑을 두 손으로 톡톡 치면서,
“양쪽 눈동자의 색깔이 서로 다르네. 신기하지만 아름답네. 자세히 보니까 얼굴도 괜찮아 보이고. 너 말야, 제국으로 이사 와서 내 남편이 되지 않을래?”
“————"
“초면인 사람을 상대로, 그것도 여자가 입에 담기에는 좀 부적절한 농담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남자인지, 여자인지, 성별은 신경을 안 써줬으면 하는데. 이 쪽도 그런 거 때문에 귀찮아. 내가 남자였다면 이야기가 신속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을 거라고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단련된 몸이지만, 가느다란 어깨를 으쓱하며 세리나는 코웃음쳤다.
세리나의 반응에 러셀은 턱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으면서,
“실례입니다만, 이쪽이 메이더스 변경백이라는 것은 알고 계신지요?”
“메이더스 변경백… 루그니카의 서방 변경백이었던가.”
“그렇습니다. 변경백은 루그니카 왕국의 중책을 담당하고 계시고, 마법의 발전을 위해서도 그 재능을 발휘하고 계십니다. 왕국에 없어서는 안 될 분입니다.”
“아니, 그래도 친구에게 그런 말을 들으면 살짝 부끄러운데 말이지——.”
러셀이 말을 꺼낸 이유는 로즈월도 알고 있지만, 로즈월이 이에 대해 말을 더 꺼내기 전에 그를 노려봐서 입을 닫게 했다.
어쨌든 세리나도 상대가 로즈월 L. 메이더스라는 것을 안다면 태도를 바꿀 것이다. 설마, 특사로 온 사람이 국제적인 문제를 일으킬 리가——,
“그렇군, 나름대로 입장이 있나 보네. 그렇다면 내가 아이를 낳아줘서 그 가문에 물려주면 너도 제국으로 올 수 있지 않아?”
“호오, 순순히 물러서질 않는군.”
“당연하지. 간단히 물러날 정도로 순종적으로 사는 편이 아니라서. 우리 드라쿨로이 가문… 이라기보다 나는 항상 굶주려 있거든. 유능한 것들과, 새로운 발상과, 기술에 대해서 말이지.”
양 팔을 벌리며 석탑 전체를 가리킨 세리나의 대담한 침략 발언에 일제아를 포함해 다른 연구원들 모두가 곤혹스러운 얼굴로 로즈월을 바라봤다. 귀족으로서도, 소장으로서도, 제국의 특사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그뿐이다.
그런데 로즈월은 정작 세리나의 선언을 듣고서 노란 쪽의 눈에 안광이 빛내고,
“나를 유능하다고 평가한다는 것은 알아들었다만… 너는 마법에 흥미가 있는 건가.”
“어어, 있지. 요즘 왕국에서 갑자기 유행을 탄 마조구랬나, 그런 것도 관심이 가긴 하는데, 도구보다는 기술이 궁금해서.”
“그 말은…”
“단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마법에 관심이 많아. 가능하다면 외우고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세리나는 씩 웃으면서 풍만한 가슴을 주먹을 쥐고 두드렸다. 제국인다운 탐욕스러운 자세다. 로즈월은 감았던 눈을 뜨고 두 눈으로 그녀를 똑바로 응시했다.
러셀은 그 순간, 뭔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러셀이 그래서 입을 열기 전에,
“마법에 대해 알고 싶다라! 좋지. 참으로 훌륭해. 그렇다면 얘기를 얼——마든지 하도록 하지!”
“——————!!”
로즈월이 한 발 먼저 두 손을 쭉 뻗고 세리나의 손을 잡았다. 어린아이처럼 눈동자를 빛내는 로즈월의 기세에 세리나는 한 순간 밀렸지만, 긍정적인 태도라는 것을 알자마자,
“그래, 그래. 그렇다면 나야 좋지! 고마워. 그럼 공부해볼까.”
“안쪽에 있는 내 연구실로 안내하지. 이 쪽이네, 드라쿨로이 여사.”
“드라쿨로이 여사라고 딱딱하게 부르지 않아도 돼. 세리나면 충분하니까.”
“그럼 나도 로즈월이라 불러도 되네.”
“로즈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진행되자, 러셀이 로즈월의 이름을 불렀다.
엄청난 성량에 두 사람이 고개를 돌리자, 러셀은 손가락으로 로즈월보고 가까이 오라고 신호했다.
“뭔 생각입니까?!”
“무슨 뜻이지?”
“여기는 왕국의 중요 시설이고, 저 분은 제국의 손님이잖아요.”
목소리를 낮추었지만, 확실하게 추궁하는 태도를 담아 러셀은 로즈월에게 물어봤다.
사귄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러셀은 오래 전부터 로즈월의 동향에 주목해왔다. 그가 마법에 관해 남다른 집착을 품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마법에 관심이 있다 정도로만 알았지 이 정도로 분별이 없을 줄은 몰랐다.
여기서 자신에게 명백하게 손해가 될 존재라면 향후의 교제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지만——,
“——러셀, 뭔가 상황을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오해요?”
“어. 애당초, 왕국인과 제국인의 게이트의 구조는 서로 다르거든. 오랜 세월에 걸쳐 그 토지에 적합하도록 진화한 영향이 커서 말이지. 혹독한 더위의 환경에서 사는 생물은, 거기서 살 수 있도록 적합한 성질을 획득한다. 이해했나?”
“…그렇다면 마법을 다루는 기관인 게이트도 마찬가지. 그래서 왕국인의 마법을 배워도 제국인인 그녀는 다룰 수 없다.”
“그렇지, 게다가...”
열변을 토하는 교사가 기억력이 뛰어난 학생을 만난 것처럼 로즈월은 흡족해 보였다. 그 대답에 러셀은 화를 낮추었지만 완전히는 납득하지 못했다.
설령 로즈월의 말대로 세리나가 왕국식 마법의 사용법을 배우지 못하더라도.
“배운 구조를 제국식에 응용해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역설계할지도 모른다?”
“————. 드라쿨로이 여사.”
“미안. 옛날부터 귀가 좋아가지고. 덕분에 비밀 이야기를 놓치는 일이 없어서 다행이지만. 듣기 싫은 이상한 소문이 귀에 쏙쏙 들어오는 일도 빈번하고.”
세리나는 귓불에 달린 홍색 귀걸이를 만지작거리면서 기죽지 않은 채 답했다.
하지만 엿들은 것에 대한 불쾌함은 물론이고, 그녀의 지적은 정확했다. 로즈월이 말했던 게이트와 관련된 사실 덕에 제국인이 왕국식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마법을 아예 사용할 수 없다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설령 기초적인 것들 뿐이라고 해도, 제국에 왕국의 지식이 유출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뭐, 그래도 상관없지 않나?”
하지만 로즈월은 러셀의 우려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그 진의를 알아채려고 러셀은 멍하니 로즈월의 얼굴을 바라봤다. 하지만 로즈월은 어떠한 악의도 없이 웃으면서,
“경쟁이 없는 분야의 발전은 느려지지. 선선대가 만들어낸 것 이상으로 마법 연구소의 성과가 없는 것도, 오랫동안 기술을 은닉하고 있는 치료원에게서도 큰 발전을 바랄 수가 없는 이유들 중 위기감의 결여가 그 중 하나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네.”
“——. 그것 때문이라면 왕국에게 손해가 생겨도 상관없다는 겁니까.”
“더 큰 이득을 보기 위해서는 일시적인 손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지.”
로즈월과 러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응시했다.
로즈월의 발상은 어느 정도 이해는 되지만, 전반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 일시적인 손실로—— 상처가 생기고, 피가 흐를 것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미래를 계획해서는 안 된다.
역시, 로즈월 L. 메이더스는 루그니카 왕국에게 있어서 위험 인물인건가.
“늑대가 팔을 물어뜯게 하라. 그대는 몸통을 검으로 꿰뚫어라.”
“——.”
“초대 볼라키아 황제가 남긴 말이지. 우리나라 국기에 그려진 검에 꿰뚫린 늑대——검랑을 나타내는 방식과는 상반된 해석이지만, 나는 이 쪽이 마음에 들어.”
서로 노려보고 있는 러셀과 로즈월과 달리 세리나는 제 3자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입지다.
검랑은 볼라키아 제국의 인문학에서 제국을 내세울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제국의 국기에 그려진, 검에 전신을 관통당하더라도 상대의 목구멍을 먹어 치우겠다는 전의——그 본연의 자세를 그려낸 것이라고도 하지만, 세리나의 해석은 정반대다.
“물론 제국에 이로운 것이 왕국의 번영으로 이어진다고 내가 말한다 한들, 제국인이니 설득력은 없겠지.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딱 하나야.”
“…뭡니까?”
“나는 은혜든, 원한이든 받은 것은 반드시 갚는다. 빚은 지지 않아.”
팔짱을 끼고 당당하게 말하자, 러셀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입술을 다물었다.
궁극적으로 승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고 무엇이든 하는 것이 옳다고 존중받는 것이 볼라키아 제국의 방침이다. 그녀의 언약에도 그 긍지를 떠올리게 하는 얼굴 이외에는 믿을 만한 요소라고는 아무것도 없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어때, 러셀? 이렇게까지 말해주는 걸. 세리나는 도량이 꽤 큰 사람이야. 너도 그건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지 않았나?”
“——”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로즈월은 러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따끔하게 질문을 던졌다.
뜻을 꺾을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안 러셀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
“…애초에, 이 연구소의 소장은 당신이죠. 저는 당신의 호의 덕에 출입하고 있을 뿐인 외부인이고요. 저의 의견 따위는 처음부터 당신에게는 불필요했겠죠.”
"흠. 틀린 말은 아니다만……"
그 말을 들은 로즈월은 말을 끊고, 잠깐 고민에 빠졌다.
무슨 일이든 즉석에서 판단하여 답을 도출하는 로즈월 치고는 드문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찌푸리는 러셀 앞에서 그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나도 가능하다면 친구의 기분을 상하게 해놓고서 이야기를 진행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
“————.”
“러셀?”
우정을 중요시하는 사람에게서 나올 법한 뜻밖의 말이 나왔다. 러셀은 당연히 의심을 품었지만, 그를 진지하게 바라보는 로즈월의 표정에서는 다른 의도가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의표가 찔렸다.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로즈월을 통제 불능의 위험인자로 여겨야 하는지, 아니면 높게 평가해야할 위대한 힘을 지닌 애국자인지, 판단하기가 힘들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건 로즈월 뿐만이 아니라 세리나도 마찬가지다.
“하하하, 꽤 귀엽게 말하네. 로즈월, 너 점점 마음에 드는 걸?”
지금의 대화에 세리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로즈월의 말대로, 그녀가 그릇이 큰 인물이 될 것이라는 것은 러셀의 눈으로도 보였다.
사람을 보는 눈이 있다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러셀에게는 그런 근거 없는 발언과는 별개로 확신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감정의 가호」에 의한 엄연히 근거가 있는 사실의 간파다.
「감정의 가호」는 사물의 좋고 나쁨을 가리는 사소한 가호로 여겨지기 쉽지만, 러셀의 가호는 인간의 유능함과 무능함, 지룡의 우열등도 가늠할 수 있다.
그래서 로즈월과 세리나가 걸물이라는 것도, 세리나에 대항하지 못하고 저자세로 있는 연구원들도 왕국의 연구 기관에 걸맞은 능력자임을 간파하고 있다.
하지만 능력의 좋고 나쁨과, 그 능력을 어떻게 활용하는 지는 사람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그것이 러셀의 과제이며, 루그니카 왕국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만약 왕국과 제국 사이에 전쟁이 터지고, 제국에서 마법이 날아오는 일이 있다면 저는 당신의 뒤를 칠 겁니다.”
“정말 대단한 우정이네——. 그만큼 다급한 사태에서도 너는 내 뒤에 있을 거라는 뜻이기도 하니까.”
아이러니한 빈정거림을 받은 러셀은 일단 지켜보겠다면서 로즈월에게 수긍했다.
애초에 말했던 대로, 로즈월이 러셀의 허락을 구할 필요는 없다. 반대로, 러셀이 대첵을 세우는 것에 대해서도 로즈월의 허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의 최선을 다하기 위해 마음 속까지 털어놓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아무래도 얘기가 잘 끝난 것 같은데, 나도 슬슬 인내심에 한계가 오고 있어서. 당장 시작했으면 하는데.”
아까부터 계속 서 있었던 세리나가 로즈월을 재촉하자, 로즈월은 마법에 흥미를 품은 상대에 대한 기쁨을 숨기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이고,
“아, 우선은 게이트란 무엇인가 같은 본질적인 얘기도 하고 싶은데… 세리나, 너의 그 귀걸이는 마정석으로 만든 건가?”
“맞아. 우리 가문의 영지에서 반란의 조짐이 있었는데, 그걸 토벌한 상으로 황제 각하께서 하사했지. 꽤 마음에 드는 거라.”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로즈월과 세리나 두 사람은 연구소의 안쪽으로 향했다. 그 두사람이 멀어지는 걸 보면서 러셀은 작은 목소리로 일제아를 불렀다.
그 연구원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눈을 깜빡거렸지만——,
“경계는 늦추지 말도록. 변경백에게 미심쩍은 행동이 있으면 샅샅이 보고해라.”
“잘 알겠습니다.”
일제아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답했으나, 러셀은 이에 답하지 않았다.
즐겁게 마법 강의를 하고 있는 로즈월을 보면서 저 소년을 친구로 봐야 할지, 위험 인자로 봐야 할지 저울질을 하면서 무겁게 한숨만 쉬었다.
5
——제국과 맺은 조약에 따라, 그 낭인, 아라갈은 제국으로 인도될 예정이다.
이게 왕도에 숨어든 낭인을 포박하는 공을 세운 하인켈 아스트레아에게 내려진 소대의 다음 임무 내용이다.
볼라키아 제국이 보낸 특사에게 아라갈을 인도한다. 그 후, 제국과의 국경선까지 특사를 호위하며 차질 없이 인도를 완료한다.
오랫동안 냉랭했던 제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지 않기 위한 중요한 책무이지만——,
“꽤 넉살 좋게 생겼네.”
입마개를 문 낭인의 모습을 확인한 특사, 세리나 드라쿨로이는 가학적인 미소를 지었다.
아직 십대처럼 보이는 소녀지만, 언행과 행동에서는 귀족다운 위엄과 역사를 느낄 수 있었으며, 사납게 느껴지는 패기도 제국인답게 뒤숭숭했다. 적어도 나이도 성별도 이번 직무를 맡겼을 때 족쇄가 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부주의하게 타인을 위압하는 듯한 언행에 하인켈은 조마조마했다. 그녀는 하인켈처럼 자신이 중책을 담당하고 있다는 입장을 자각하고는 있는 걸까.
“이름은 아라갈… 제국을 피해 외국으로 탈국한 도망자라. 한 번 탈출에 성공했으면서도 이렇게 왕국에서도 잡히다니 정말 운이 없는 남자네. 연행한 너희들이 이 흉물을 잡은 소대라고 보면 되나?”
“…아, 어, 어어, 우리가 그 늑대인간을 포박했다.”
느닷없이 질문을 받아 당황해서 말을 더듬은 하인켈은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한 자신을 반성했다. 하지만 세리나는 하인켈의 반성은 신경쓰지 않고, “허”하면서 눈썹을 치켜들었다.
“이렇게 말하긴 그렇지만, 이렇게 적은 수였다면 잘 제압한 거다. 우리나라에서도 감옥 하나는 박살내고 도주할 수 있을 정도니까.”
“평소의 수련 덕인 걸 수도.”
“수련이 결실을 맺지 않았다라는 말을 하진 못하겠네. 다만…”
라면서 세리나의 시선은 하인켈을 뒤로 늘어서 있는 소대원들 쪽으로 향했다. 줄을 선 대원은 4명, 그 중에서 한 명을 바라봤다.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키가 크고, 단단한 근육도 붙어 있었다.
“혼자만 체격이 다르군. 그런데도 이 소대를 이끄는 자가 아니야. 그렇다면 문제아라는건가?”
“특사 공, 대화는 소대장님과 해주시길 바랍니다. 저의 역할은 지금 주위를 감시하는 것입니다.”
“뭐야, 매정하네. 뭐 됐어. 나중에 얘기를 나눌 기회가 생길 지도 모르니까.”
눈을 가늘게 뜬 세리나의 말에 마코스는 맞받아쳤지만 세리나의 흥미는 마코스에게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자체가 하인켈에게는 굴욕이다.
우두머리인 자신이 아니라 수하인 마코스가 주목받는다. ——마코스의 실력을 생각하면 당연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특사 공! 앞으로의 경로에 대해 얘기를 하고 싶군요!”
“응? 아, 잘 부탁해. 딱히 참견할 생각은 없어서. 왕국의 일은 왕국의 사람이 맡길게. 나도 당분간은 이거에 집중하고 싶어서.”
“손에 쥔 것입니까?”
“어제 왕국의 친구에게서 배운 것을 시도하는 중이라.”
언성을 높인 하인켈에게 세리나가 손에서 무언가를 만지작거리며 답했다. 그녀의 손에는 부드럽게 모양을 바꾸는 은빛의 가느다란 실 같은 것이 있었다.
처음 보는 물건에 하인켈이 눈썹을 올리자, “이건 말야”하고 세리나가 입을 열었다.
“체내의 게이트를 통해 마나를 양손 사이에 통과시키면 형태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실이라고 하더군. 마나를 내보내는 법을 배우는 장난감 같은 거래.”
“마나를 내보내는 방법… 설마.”
“응? 벌써 입을 열게 만들 기회가 왔네?”
하인켈은 세리나의 설명을 못 알아들은 것 같지만, 마코스는 뭔가 짚이는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더 말을 하기를 바라는 세리나를 무시하고 다시 굳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세리나는 마코스의 무례한 태도에 대해 “됐어, 됐어.”하고 나무라지 않고 넘어갔다.
불필요하게 자신만 기운이 빨린 기분이 들어 하인켈은 불만스러웠지만 여기서 세리나가 마코스를 나무라는 얘기가 나와봤자 의미가 없으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계획대로 이송을 시작하겠습니다. 부디 우리의 지시에 따라 주십시오.”
그리고 하인켈의 우울한 심정과는 상관없이 임무는 시작됐다.
“————”
임무는 소대장인 하인켈, 부관인 마코스, 그리고 왕국 기사 3명이 나머지 소대원이고, 거기에 아라갈을 호송중인 용차의 차부들이 4명. 나머지는 제국의 특사인 세리나와 그녀를 호위하는 제국병까지 합쳐서 4명으로 총 14명 정도 되는 소규모의 단체다.
다만 임무를 받은 사람의 수와 책임의 무게가 비례하지 않는 경우는 종종 있다. 이번 건도 그런 경우 중 하나로——하인켈의 속마음은 타들어갔다.
원래 늑대인간의 체포를 주도한 것은 마코스다. 하인켈도, 다른 기사들도 아라갈에게 맞서지 못했고, 마코스가 없었다면 놓쳤을 것이다.
아라갈 포박 시에 다른 기사들의 의식이 없어서 그랬는 지는 몰라도 마코스는 다행스럽게도 그 공을 하인켈에게 넘겨줬다. 이유를 물어봐도 “아직 감을 되찾는 중이다”같이 납득이 안 되는 말이나 했다.
그렇다면 자신도 공을 거절했어야 했나.
“————젠장.”
양보받은 공일지라도 하인켈은 악착같이 갖고 싶다.
받든 안 받든 자기혐오에 빠질 거라면 받고 자기혐오에 빠지는 게 훨씬 낫다. 라고 생각하고 공을 받았지만 결국 쓴맛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다.
급기야 특사를 호위하기 위해 며칠 간 왕도를 비우게 됐고, 아들인 라인하르트의 곁을 떠나야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라인하르트는 위험하다.
부모에게 애지중지 귀여움받을 것 같지만, 라인하르트에게는 다른 아이들에게 없는 천성이 느껴진다. 얼마 전에 잠시 드러냈던 몹시 위험한 가호의 징조도 그렇다.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는 그 가호는 잘못했다가는 아들을 세계 전체의 적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강하게 호소하고, 가르쳤던 결과 라인하르트는 다시는 그 가호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하인켈은 아이의 자제심이 그 다짐을 영원히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낙관적이지 않다.
그래서 라인하르트에게서 오랜 기간 떠나 있고 싶지 않았다. ——하물며, 집을 맡기고 있는 파우젠 부부가 아니라 자신의 부모에게 맡기는 것만은.
“대장 공, 마음에 여유가 없어 보이네.”
“——윽.”
문득 바로 앞의 상대의 얼굴을 본 하인켈은 숨을 들이쉬었다. 하인켈의 반응에 은실을 가지고 놀던 세리나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두 대의 용차와 차부로 나누어 타서, 한 쪽에는 아라갈을, 다른 용차에는 세리나를 호위중인 하인켈과 마코스가 탔다. 굳이 말을 나눠야 할 필요도 없어서 말을 나누고 있지 않은 터였다.
“불안한 이유라도? 여기는 제국이 아니라 아직 왕국 아니었나? 자국의 격을 낮출 생각은 없지만, 길에서 문제가 생기는 쪽은 우리나라가 훨씬 가능성이 높아.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나?”
“아, 아아, 그건…”
“이 녀석은 지 아들이 자기한테 찰싹 달라붙습니다. 그래서 불안한 거고요.”
중요한 사람을 괜히 불안하게 만들었나 생각하던 하인켈의 옆에서 마코스가 그를 옹호해줬다. 거의 사실 그대로 말한 것이나 다름 없었지만, 세리는 “호오” 하고 흥미가 생긴 것처럼 말했다.
“과연. 자기 자식은 귀엽지. 나도 그런 기분은 알고 있어.”
“…특사 공은 겉으로 보기에는 젊다고 생각했는데.”
“희미하게 빛나는 것을 보면 주워가고 싶은 버릇이 있어서. 그래서 주운 아이들도 많아. 손은 많이 가지만, 장래가 촉망되는 귀여운 애들이지.”
손을 팔랑팔랑 흔드는 세리나의 말투는 그대로였지만, 전과 달리 상냥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하인켈도 그녀에게 제국 특사라는 것 말고도 다른 면모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주먹을 꽉 쥐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실은”이라고 마코스의 도움에 힘입어 마지못해 얘기를 꺼내려 했다.
——그 다음 순간이었다.
“적습——!!”
용차 밖에서 날카로운 경고가 들리자마자 하인켈의 전신이 굳었다. 그러나 옆에 있던 마코스와 세리나는 재빠르게 움직였다.
세리나는 곧바로 용차의 좌석 밑으로 고개를 숙였고, 마코스는 일어서서 문을 붙잡았다. 그대로 문을 박살낼 것 같은 기세로 용차 밖을 뛰쳐나오면서,
“하인켈!”
하인켈을 보고 세리나를 지키라고 재촉한 것이라는 걸 겨우 알아들었다.
그러나 알아들었다 해도 그걸 실행할 만큼의 평정심을 되찾지 못했다. 그 직후, 용차가 격렬히 흔들리면서 용차가 무서운 기세로 용차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그대로 벽과 좌석에 부딪힌 하인켈은 비명을 질렀다.
——있어서는 안 될 습격이, 늑대인간을 이송중인 왕국 기사들과 제국 특사를 노리고 순식간에 포위망을 좁혔다.
<계속>
작중 배경은 라인하르트의 어머니인 루안나가 쓰러진 후, 테레시아가 죽기 전이므로 20년 전으로 추정.
마코스 길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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