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OV: DOPAMINE ***

“… 정말 소녀 V 여러분들은 개성이 가득하시군요.”

“아하하하! 이제 와서 새삼?”

“그래도 나랑 도화 정도면 정상이지~”

“…………?”

“씨이, 거기서 어리둥절하면 어떡해!”

“푸하하하하하!”

… 그렇게 우리끼리 시시덕거리며 공원 중앙 쪽으로 이동하던 때 – 왠지 심상찮은 기운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 하. 처음 봤을 때부터 역시 너일 줄 알았지.”

“차도도 씨, 지퍼 닫으셔야 할 거 같아요 ^^”

“아니, 뭔 기싸움을 저렇게 살벌하게 한대…”

“쟤들 누구 – 아, 서리태랑 차도도네?”

공원 한가운데 위치한 정자 뒤쪽에서 2명의 소녀들이 서로에게 썩소를 지어보이고 있었다. 1명은 유난히 훤칠한 키에 힙한 보라색 자켓 차림, 또 1명은 포니테일로 묶은 금발에 화려하게 차려입은 모습이었다.

아니, 쟤네 뭐하는 거야? 저게 어딜 봐서 인기 걸그룹 멤버와 대세 인플루언서가 마주보는 모습이죠?

그리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접근하기 전에 프로필부터 띄워보는 령이(도화가 부르는 거 보고 나도 따라해봤다; 어감이 좋은데?):

이름: 서리태

레벨: 115

클래스: 로그(레인저)

활동 서버: 오곡나라

유저: ■■영

한줄소개: 안녕하세요, 오곡걸스 막내 서리태입니다^^

이름: 차도도

레벨: 96

클래스: 메이지(소서리스)

활동 서버: 마고특별시

유저: ■■린

한줄소개: 모던한 마녀 인플루언서 차도도입니다♡

“"어이~ 두 사람! 지금 뭐해?”

“어? 도화다 도화~”

“어라? 안녕~”

조금 전의 날카로운 기세는 어디갔는지 금세 멀쩡한 얼굴로 다가오는 우리를 반겨주는 두 사람. 뭐야, 뭔 태세전환이 이리 빨라?

“어? 이 친구는… 좀 전에 왔던 걔네? 그 뭐냐, 상담사?”

“긍정. 유령이라고 합니다.”

“… 운영 네이밍 센스 어떻게 되먹은 거에요? 내가 지어도 그거보단 잘 짓겠다.”

“오오, 그래? 그럼 리태가 얘 별명 좀 지어줘봐!”

“후, 얼마나 잘하나 보자.”

내 말에 바로 팔짱 끼고 구경꾼 모드로 전환하는 차도도. 잠시 멈칫하고 령을 바라보는 서리태였지만, 이내 어깨를 으쓱한 뒤 –

“……쪼끼쪼끼?”

“…………”

잠시 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아니, 못 열었다. 그리고 졸지에 쪼끼쪼끼가 되어버린 당사자는 –

“…… 검색 실패. 상응하는 단어를 찾지 못했습니다. ‘쪼끼쪼끼’는 무슨 의미인가요?”

“크학학학…!”

말 잘한다, 령아! AI한테 한 방 먹었구나, 서리태!

“리태야, 너 대체 어느 시대 사람이야…”

“아니, 왜 다들 모르시지… 허허…”

… 생각하면 할수록 쟤 소녀 X가 누군지 진심으로 궁금해진다. 신인 걸그룹한테서 나올 수 있는 구수함이 아닌데? 대체 원본은 무슨 생각으로 저런 캐릭을 만든 걸까?

***

대충 공원을 반 바퀴쯤 돌았을 때, 조금 전까지 같이 있던 낯익은 얼굴과 다시 마주쳤다.

“어, 또 리엔이다!”

“안녕~ 쫌 전에 보긴 했지만.”

아까보다 한결 편해진 듯한 리엔…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올블랙 차림의 또 한 명의 소녀. 이 친구는…?

이름: 뚱냥이

레벨: 112

클래스: 비스트(캣)

활동 서버: 고양이별

유저: ■■주

한줄소개: . (없음)

… 아까 만났을 땐 몰랐는데 령이가 띄워준 프로필을 슬쩍 보니까 겁나 시크한 친구구만. 딱 봐도 한줄소개에 아예 귀찮아서 안 써놨어. 그 와중에 레벨은 왜 이리 높아? 거기다 나랑 클래스도 똑같고…

그런 그녀에게도 용감히 다가가 말을 거는 령이지만 –

“뚱냥이 님, 무슨 고민 있으신가요?”

“아니.”

“……”

우, 우와… 단 2글자로 퇴치당했어… 기분 탓인가, 아니면 물러나는 령이의 어깨가 살짝 쳐져 있나…?

“그, 뚱냥아, 혹시 화난 건 아니지…?”

“아냐.”

“……”

… 아무래도 리엔처럼 AI가 맘에 안 들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성격이 저런 것 같다. 일단 리엔이 상대하게 놔두고 물러나자… 라고 생각하던 때.

“우와, 뚱냥이다~ 진짜 뚱냥이야! 데헷☆”

“니, 니모 잠깐만…”

“??”

갑자기 우리 뒤에서 나타난 빨간머리 소녀 하나가 뚱냥이를 보며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아까는 못 봤던 것 같은 핑크색 잠옷 차림의 귀여운 애가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데…?

“이 분들은…?”

이름: 니모

레벨: 96

클래스: 비스트(골드피쉬)

활동 서버: 체리바다

유저: ■■윤

한줄소개: 아직은 물고기 모습이 익숙해, 데헷☆

이름: 집순희

레벨: 109

클래스: 메이지(바드)

활동 서버: 방구석

유저: ■■라

한줄소개: 요, 용기 내서 집 밖으로 나왔어요~

“… 날 알아?”

여전히 닉값하듯 뚱한 표정의 뚱냥이 곁으로 다가와 호들갑을 떠는 니모:

“당연히 알지~ 고양이별 서버에서 유명했잖아? 탑 랭크급 유저로 소문 다 났어~ 데헷!”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주접을 떨어대는 니모를 지켜보던 령이가 내 옆으로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물었다:

“검색 불가. 도파민 님, 아까부터 니모 님이 말하는 ‘데헷’은 무슨 의미인가요?”

“내가 알고 싶다…”

중얼거리면서 슬쩍 리엔 쪽을 바라보자… 리엔은 오히려 집순희 쪽으로 관심을 보이는 듯했다. 하긴, 프로필로 슬쩍 보니까 얘도 레벨이 장난 아니게 높아. 얘도 닉처럼 거의 게임 속에서 살다시피 한 거 아닐까?

“히잉…”

딱 봐도 니모 뒤에 쏙 숨어서 어쩔 줄을 몰라하는게 좀 히키코모리 끼가 있긴 하다. 만약 저게 진짜 성격이 아니라 컨셉이면 쟨 여우주연상 받아야 돼.

아무튼, 그 와중에도 니모는 계속 데헷을 연발하며 뚱냥이에 대한 팬심을 드러내고, 그런 그녀를 뚱냥이는 그저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균형을 깬 건 – 바로 가만히 있던 도화의 한 마디였다:

“근데 뚱냥이가 고양이고 니모가 물고기면… 어?”

“어…?”

바로 그 순간 – 당황한 니모가 마침내 입을 다묾과 동시에, 지금껏 아무 변화도 없던 뚱냥이의 표정이 처음으로 움직였다.

먹잇감을 발견한 포식자의 미소로.

“아… 아하하… 장난이지 지금? 데헷?”

“글쎄?”

제대로 재미 들렸는지 아예 사냥하듯 두 팔을 치켜드는 뚱냥이. 이거 이대로 니모를 덮칠 기센데?

“야 니모야, 도망가! 너 그러다 잡아먹힌다!”

“으아앙, 이건 아닌 거 같아 데헷~~~ ㅠㅠㅠ”

“우에엥, 그러니까 내가 가지 말자고 했잖아~~!”

그대로 꽁지가 빠져라 도망가는 니모와 집순희, 그리고 금새 싫증났는지 바로 리엔 옆으로 돌아와 벤치에 벌렁 드러누워버리는 뚱냥이.

“… 너도 참 팔자 좋다. 보통 이럴 땐 다른 친구들이랑 소통하면서 정보도 좀 모으고 그러지 않냐?”

"귀찮아.”

“너 그러다 이벤트 시작하면 다른 애들한테 칼찌 당해서 광탈한다?”

“흥, 난 강해.”

“후후, 나도 강하거든?”

“…… 그래.”

“…… 왜 잘 어울리는데?”

리엔하고 뚱냥이, 뭔가 지들 할 말만 하는데도 의외로 쿵짝이 잘 맞네? 마치 죽마고우처럼… 좀 전에 니모와 집순희도 그렇고, 보면 소녀들 중에 유독 궁합이 잘 맞아보이는 친구들이 있다.

어쨌든 은근 둘이 투닥거리는 걸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서 잠시 지켜보던 때 – 문득 가만히 있던 유령이 조용히 말했다:

“생체 반응 감지… 누군가 저흴 지켜보고 있네요.”

“엥? 전혀 안 느껴지는데…”

나 이래뵈도 비스트 클래스, 그 중에서도 고양이 수인이라 감지 능력은 상위권이라고 자부한다. 그런데 내가 눈치채지도 못하게 감시하는 녀석이 있다고?

“긍정. 저 풀 숲 안에 은폐해 있습니다.”

“!!”

그런데 령이가 멀찍이 떨어진 어느 수풀을 가리킨 순간, 지금까지 전혀 느끼지 못했던 기척이 바로 들썩거렸다. 뭐지?!

“신원 확인… 시계는와치 님?”

“히익?! 잘못했어요~~!!”

누구야 또 넌?!

관음은와치가 또... ㅋㅋㅋㅋ

개인적으로 앞으로 쓰는 과정에서 서리태 캐릭터 묘사가 제일 어려울 거 같음. 신인 컨셉과 모순되는 노련함을 배틀물에서 표현해야 되는데, 글쓰는 놈이 리태보다 멍청한데 그걸 어케 표현함... ㅎㅎ

다음화에선 한번에 프로필 (와치꺼 포함) 7개 띄울 예정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