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OUND 13. CACAOPRINCESS VS BARIM ***

(POV: CACAOPRINCESS)

나는 공주야. 공주라면 당연히 성이 있고 날 지켜주는 기사님들이 있는 게 맞겠지?

쿠르르르르릉…

그래서 테이머로서 내가 가진 능력은 언제 어디서건 내 ‘성채’를 소환하는 것… 물론 그 안에서 언제나 전투 대기중인 기사단까지 풀세트로.

그리고 -

“걸리적거려…!”

뻐억-!

“우와, 뭐 저런…”

벌써 n번째 기사를 쓰러트린 바림을 황당한 마음으로 성문 위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혼자서. 맨몸으로. 어째서?!

“후우… 공주야, 슬슬 내려오지 않을래? 이정도 퍼포먼스면 감동받아서 스스로 내려와줘야 되지 않나~?”

여러분, 저 달콤한 말투에 속으면 안돼! 난 이미 바림의 실체를 봐버렸다구!

“우우~ 완전 별루~”

떨리는 심장을 억누르며 애써 센 척 도발을 날리자, 저 멀리서도 바림의 눈썹이 꿈틀하는 게 훤히 보였다. 솔직히 무서워!

“하아, 내가 이 능력까진 안 보여주려고 했는데…”

한숨을 내쉬며 남은 기사들을 피해 뒤로 크게 도약한 바림이… 갑자기 돌바닥에 털썩 앉더니 무언가를 꺼내든다…?

“공주야… ‘바림’이 무슨 뜻인지 알아?”

“…?”

그러고 보니 어디서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았다. 무슨 미술 용어였던가…?

“표정 보니까 대충 아나보네? 맞아, 그라데이션을 순우리말로 바림이라고 해. 그리고 왜 내가 그런 이름을 갖게 됐을까~?”

그제서야 깨달았다 – 바림이 바닥에 깐 건 카페트만한 도화지였고, 이어서 꺼내든 건… 정말 안 어울리게도, 붓이었다.

샤샤샤샤샤샤샤샤샤샥-!

거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미스터리인데, 갑자기 붓을 집어들더니 무시무시한 속도로 무언가를 그려내기 시작하는 바림. 뭔진 몰라도 저대로 놔두면 안될 거 같다는 위험벨이 머릿속에서 삐용삐용 울렸다.

“막아! 저 그림이 완성되게 두면 안돼!”

쿵쿵쿵쿵쿵…!

내 외침에 근처에 있던 기사들이 급히 검을 들고 바림을 향해 몸을 날렸지만 –

“이 진상들이 으딜, 사람 작업중인데-!”

쾅-!

피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제자리에서 윈드밀을 도는 바림에 의해 죄다 날아가버렸다. 아니, 이게 말이 돼?!

“자, 완성~ 어때, 똑같지?”

황당할 정도로 빨리 완성된 그림은, 도화지가 워낙 커다래서 내가 있는 성채 위에서도 훤히 보였다 – 본인이 직접 보고 그린, 정갈하게 도열한 한 무리의 기사들.

“자,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 거 같애? ^^”

아 제발, 아니라고 해줘. 설마 여기서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닌자 만화처럼 되는 건 아니겠지. 아닐 거야. 애초에 메이지도 아니고 파이터인 바림이 그런 스킬이 있을 리가 없잖아?

… 설마 그것도 구라야!?

내 경악한 표정을 본 바림이 씩 웃으며 말했다:

“좋은 거 알려줄게, 공주야. 나 정도 짬밥의 메이지라면 붓질 몇 번으로 프로필에 사기 치는 건 일도 아니란다?”

이게 뭐야!!!!!!

내 내적 절규를 상큼히 무시한 채 허공에 붓으로 먹을 촥 흩뿌리는 바림. 그게 신호였던 건지… 내가 예상했던 대로, 그림 속의 기사들이 살아서 도화지 밖으로 불쑥불쑥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내 기사들에게 칼을 겨눈 채로.

“자, 이제 머릿수는 얼추 대등해졌고… 이제 슬슬 끝장을 볼까?”

“흥, 이 성벽을 넘을 수 있으면 넘어보던가!”

설령 내 기사들이 밀린다고 해도, 이 성채도 단순히 돌벽만 세워놓은 게 아니다. 침입자들을 요격하기 위한 방어 시스템 정도는 얼마든지 있다구!

“성벽? 내가 뭐하러 힘들게 암벽 등반이나 해?”

내 말에 코웃음을 친 바림이 서로 칼부림을 시작한 각자의 기사들 사이로 일직선으로 내달리더니 –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영화에나 나올 법한 화려한 날아차기로 성문을 한 방에 반파시켜버렸다.

“에헤헿, 바림이는 당당히 정문으로 들어갈게요~”

세상 뻔뻔한 표정으로 2번째 발차기를 준비하는 바림을 보며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엄마, 나 망했어… 무서운 언니한테 잘못 걸렸어…

*** ROUND 14. MUNEO VS SEORITAE ***

(POV: MUNEO)

“빠이어 인 더 홀!!!”

콰앙!!!

왠지 게임 장르를 착각한 듯한 외침과 함께 날아온 서리태의 검은콩 수류탄을 잽싸게 문어발로 쳐냈다. 하필 그 타이밍에 터져버리는 바람에 좀 데이긴 했지만… 뭐, 금방 재생할 테니까.

타다다다다다다다다다 –

그리고 타이밍에 맞춰 반대쪽으로 대시해 미니건을 갈겨대는 서리태지만, 무너 다리가 괜히 8개겠어? 잽싸게 피해주고 새어들어온 일부는 걍 막으면 그만이야~

“후우, 진짜… 레인저를 투기장에 세우다니, 너무한 거 아니냐고요.”

“와~ 서리태, 엄살 쩌네?”

나랑 거의 대등하게 붙고 있으면서 괜히 징징거리는 서리태에게 팩트 싸대기를 선물해준다. 서리태의 클래스인 로그(레인저)는 암습과 생존에 특화된 케이스라 정면 승부에서 불리한 게 맞긴 한데, 그런 것 치고는 그냥 싸우는 것도 겁나 잘하면서 무슨 헛소리야.

… 단순한 피지컬 싸움으로는 결판이 안 날 것 같다. 나도 질 생각은 전혀 없기 때문에, 슬슬 패를 한 두개씩 꺼내야겠지…?

“하아… 이건 진짜 안 쓰고 싶었는데.”

그리고 그건 서리태도 마찬가지 생각이었는지, 갑자기 쓰던 총을 수납하더니 새로운 총을 꺼내들었다 – 어째선지 핑크색으로 도색되고 커다란 ‘A’ 마크가 새겨진 총을.

“이것도 한번 막아보시죠… 헤드샷!”

당당하게 정면에서 갈기는 탄환을 이번에도 문어발 중 하나로 막았지만 –

퍼억-!

“!?”

조금 전과는 비교도 안되는 위력으로 순식간에 다리를 걸레짝으로 만들어놓은 꼴을 보고 놀라 눈만 끔벅였다. 아니, 웃기게 생긴 주제에 겁나 쌔네?!

어느새 조금 전까지 (신인이라던 주제에) 능글거리던 표정을 싹 지우고 급 진지해진 서리태가 총구를 이쪽에 겨누며 중얼거렸다.

“이 총은 오곡걸스 언니들이 부품 하나하나, 탄환 하나하나 세공해준 무기… 우리 멤버들의 마음이 담긴 무기에요. 이걸 빼든 이상… 이젠 진짜 질 수 없다구요.”

“……”

평소 같으면 저 말에도 뭐라고 받아쳤을텐데, 왠지 그럴 수가 없었다. 서리태의 말에서, 뭔가 알 수 없는 울림이 느껴졌다 –

‘…… 언니!’

“?!”

뇌리를 스친 환청에 잠시 흠칫했다. 방금 그 목소리는 누구지…?

‘…… 언니!’

‘■■ 언니~!’

누구야, 너는… 너희들은?

누군데 그렇게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날 부르는 거야…?

*** POV: GHOST ***

“…… 무너 님?”

순간 관전자의 신분을 잊고 소리내어 불러버렸습니다. 물론 이 거리에서 제 목소리가 들리지는 않겠지만… 그런 생각 따위, 지금 아래쪽의 상황을 보면서 떠오를 리가 없죠.

“아… 아아아…”

“저… 무너 씨?”

서리태 님조차 조심스레 물을 정도로 정상이 아닌 무너 님의 상태… 눈에 초점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로 비틀거리며, 무장 대용으로 쓰던 문어도 보이지 않는 채 완전한 무방비 상태…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태에도 불구하고… 서리태 님은 무너 님에게 접근하기는커녕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었습니다. 그녀 역시 저와 같은 걸 느낀 거겠죠… 지금의 그녀는, 위험하다고.

“얘들아, 어디야…? 어디 있어…?”

“……???”

급기야는 아무도 없는 허공에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기 시작합니다. 대체 무슨 일이죠? 무슨 헛것을 보고 있길래 –

쿠르르르르르르르릉…!

“이번엔 또 뭐에요…!?”

당황한 서리태 님의 말에 응답하듯 플랫폼 전체가… 아니, 불의 무대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합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죠…?

푸학-!

그리고 잠시 후, 플랫폼 바깥에서 용암의 바다를 뚫고 솟아오른 ‘그것’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 AI인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포’를 느꼈습니다.

이 세상 어떤 언어로도 그 존재를 정확히 묘사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일단 가장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거대한 해골’ 정도로 말할 수 있겠네요. 실제로는 오롯이 뼈만 존재하는 건 아니고,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생겼던 것처럼 앙상하긴 했지만요.

“사이버 고스트…!”

저도 지식으로만 알고 있지 실제로 본 건 처음입니다. 한마디로 버추얼 세계에 존재하는 ‘망령’ 같은 것입니다만… 아니, 정말 사이버 고스트이긴 할까요? 애초에 저렇게 거대한 사이버 고스트에 대한 정보 따위 없습니다만…

저도 서리태 님도 충격적인 광경에 움직이지 못하던 때, 문득 거대 고스트가 아직도 의식이 반쯤 날아간 상태인 무너 님을 향해 손을 뻗-?!

“자, 잠깐…!”

순간, 자신이 유체화 상태라는 것도 까먹은 채 그들의 사이로 뛰어들 뻔했습니다만 – 거기서 이어진 광경을 보고는 또다시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마치 고래가 울부짖는 듯한 소리와 함께 내민 거체의 손에… 초점 없는 눈에서 눈물을 흘리며 안기는 무너 님이었습니다.

“너는, 누구야…? 따뜻해, 그리워… 마법 같아…”

비록 명백히 제정신이 아니긴 했지만, 거인의 앙상한 손에 안긴 무너 님의 표정은… 그 순간, 마치 제 집에 온 것처럼 너무나도 평안해 보였습니다.

“당최, 뭐가 뭔지…”

철컥-!

저만큼이나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리면서도 무너 님을 안고 있는 거체를 향해 총구를 돌리는 서리태 님. 설마, 저것과 싸우실 생각인가요…?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그리고 그런 서리태 님 쪽으로 시선을 돌린 거대 고스트가 말없이 제 손에 무너 님을 담아 들어올리더니 –

■■■■■■■■■■■■■■------!!!!!!

도저히 로직으로 표현할 수 없는 비탄의 포효와 함께, 그대로 반대쪽 팔을 내리쳐 -

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 축구장만한 크기의 플랫폼을 통째로 부숴버렸습니다.

우완별 ㅋㅋㅋㅋㅋㅋ

바림: 이전에 프로필에는 파이터라고 돼있었고 실제로 피지컬도 뛰어나지만 그건 페이크고, 본캐가 동양화 전공자인 미술 능력자란 점에 착안해 나루토의 사이 같은 그림 능력자로 고안.

차차다섯공주: 기왕 공주 캐릭터 만들었으니까 고유결계로 성도 주고 기사들을 부리며 싸우는 지휘관형 캐릭터로 고안.

무너: 설명 생략. 지금은 설명할 수 없는 떡밥이 너무 많음 ㅎㅎ

서리태: 본캐가 원래 겜덕후 + '서리'태 캐릭터를 살려 도적 + FPS 십고수 캐릭터로 고안.

다음화에 데스매치 조 결과 전부 나올 예정임 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