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 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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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했더니만."

우주의 공허의 한가운데에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소리의 파동의 전할 수 없는 매질조차 없었기에 들릴 수가 없어야 했을테지만, 그것은 필멸자의 인지를 뛰어넘은 듯한 외눈의 초월자가 내는 것이었다.

허나 그 목소리는 신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장엄하고 신성한 것이 아닌, 허망함과 씁쓸함, 그리고 왠지 모를 짠함이 묻어나오는 목소리였다.

"결국 너마저 가버린 거냐...이 썩을 노친네가..."

초월자는 나지막히 읊조리며, 방금 전 자신의 눈 앞에 일어났던 초신성 폭발의 잔해 하나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소멸시켰던 폭발 속에서 기적적으로 튕겨나온 잔해에는 과거 자신의 오랜 라이벌이자 악우를 상징하는 문양이 빛바랜채 새겨져 있었다.

초월자는 그것을 보면 잠시 회상에 잠겼다.

무기질의 육신을 가진 영혼없는 존재였을 적 자신과 놈은 어딜가든 지간에 서로 티격태격 싸우면서도 서로 휴전했다 뒤통수치기를 반복했었다.

놈이 은하계의 중대사 여기저기에 끼어들고 변수들을 몰고다니면서 예언에 항상 훼방을 놓는 바람에 그는 언제나 놈을 엿먹일려고 혈안이었다.

마찬가지로 놈도 자기 집에 쳐들어와서 수집품들을 박살내버렸던 그를 언젠가 엿먹여주려고 혈안이었다.

그렇게 치고박고 싸우다가도 서로 손잡아야할 때가 되면 휴전해서 서로 자기 처지를 하소연하면서 잡담하기도 했던, 서로 적 아닌 적이자 친구 아닌 친구였다.

예언이든 수집품이든 이제와서 무슨 상관이겠냐만은.

크탄의 농간에 의해 육신과 영혼을 잃은 그의 종족은 필시 언젠가 완전히 미쳐버리고 기능이 정지될 것이었기에, 그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잃은 것들을 되찾고 다시 번영하고자 했다.

그는 예언으로서 방법을 갈구했으나, 자신의 종족의 뛰어난 과학력으로도 원하는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능력마저 초월하고자 했다 - 바로 크탄의 조각들 여럿과 융합해서 승천해서 말이다.

누가봐도 미친짓이었고 그가 생각해도 너무 무모한 짓이었음에도 천신만고의 생과 사를 넘나드는 노력끝에 승천은 성공했지만, 문제는 그럼에도 해결책의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승천이 막 성공했을 시점에는 이미 그의 종족은 거의 몰락해버린지 오래였다.

사고뭉치 수집가였던 그 놈조차도 자신의 최후를 예감했던 듯, 자신의 전시관의 옥좌에 왕처럼 앉아 정지장에 들어가 생을 마감했다.

그렇게 이 은하계에는 반신이 된 예언자만이 이성을 가진채 살아남았다.

허망했다. 그토록 원하던 초월적인 예언 능력을 얻었건만, 그가 해낼 수 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종족을 번영시키려 시도하려 해도, 이미 승천하여 꿰뚫고 있었던 수천 수억 가지의 가능성 중에서도 원하는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되고 혼자가 된 허망함에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도 생각했지만, 승천하고 불멸성을 얻은 이후로는 불가능할 뿐 더러 그렇게 된다면 자신의 종족을 기억할 마지막 생존자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기에 그만두었다.

이제 세상이 어떻게 되던 알 바 아니었고 관여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목적을 잃고 아무것도 살지 않는 외딴 행성에서 오랜 세월을 처박혀 생각하는 것을 그만둔 우주의 먼지덩이가 되어버릴 때까지 가만히 은둔하고 있었다.

저 멀리 은하계 반대편의 그 망할 수집가의 거처가 있던 곳에서 시공간과 인과의 거대한 뒤틀림이 일어난 걸 감지하고 바로 뛰쳐나가기 전까지는 말이었다.

전시관이 있던 곳에는 워프와 현실의 뒤틀린 흔적과 잔해들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 썩을 수집가 놈이 평생을 바쳐 수집하고 보존해오고자 한 것들이 영원한 공허 속으로 사라진 것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승천해 얻어낸 초월한 예지력으로 대강 알 수 있었다.

수집품들의 난동과 왠 이방인 셋이 친 삽질로, 수집가는 자신의 전시관과 함께 영원히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역사 운운하더니, 결국은 그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버린 게냐..."

손에 든 조각을 보며 초월자는 한탄과 슬픔이 뒤섞인 조롱을 내뱉었다.

비록 서로 티격태격하던 사이었지만, 한 시대를 같이하고 식물인간 비슷한 상태로나마 같이 은하계에 남아있던 악우의 완전한 죽음에 초월자는 자신의 내면 밑바닥에 있는 미세하게 남은 인간성 비스무리한 것이 뒤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과거와 자신을 이어주던 마지막 연결고리마저 이제 사라졌다.

네크론도, 침묵의 왕도, 크탄도 이젠 전부 없다.

이젠 진실로 그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은하계 최고의 예언자인 내가 제일 잘 알듯이, 아무리 찬란한 별이라도 언젠가 꺼져서 모든 건 결국 공허로 돌아간다."

씁슬함과 비통 속에서 초월자는 손에 든 조각을 흡수하면서 말했다.

"그렇기에 우주가 얼어버릴 마지막에는 모든 게 그 공허 속에서 한자리에 만나기 마련."

우주가 완전히 식어버리며 꺼지는 결말이 올 때까지, 그는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었다.

"하지만 다시 태어났을 때는 네놈은 더 이상 네가, 나도 더 이상 내가 아닐테지."

초월성을 얻었음에도, 그에게는 우주의 결말 이후의 미래와 가능성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 의미는 초월자가 된 그에게도 언젠가 끝은 도래하리라는 것일 터였다.

그렇지만 모든 것의 끝이 올 때까지는, 그는 과거의 마지막 연결고리인 자신의 기억을 결코 잊지 않으며 존재해 갈 것이다.

비록 웬수같은 놈이고 골칫거리였어도, 놈이 이 은하계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이제 자신만이 할 수 있으니까.

"그럼에도 억겁 후의 공허에서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겠다."

초월자는 자신의 마지막 친우가 최후를 맞은 자리를 향해, 애도를 표하며 계속 말했다.

"내 너를 기억하마..."

여행자와 마린과 드론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임

네크론이 모두 기능정지해버리고 혼자만 반신 초월자가 되서 살아남은 오리칸 스토리인데

이번건 역대급으로 못쓴듯

다음엔 카데몬 주제로 유일하게 생존한 악마 드라크니옌 이야기 써볼려는 데 아이디어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