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편
-4-
그렇게 마음먹기엔 옛 도시는 즐길 거리들이 너무 많았다. 맛있는 음식들과 구경거리들, 아늑한 료칸은 세이자의 경계심을 조금씩 누그러뜨리고 있었다. 이곳에서의 생활을 즐기고 있는 자신을 자각할 때마다 자신은 저들에게 놀아나고 있을 뿐이라며 스스로 되뇌는 세이자였지만 가끔씩은 즐길 거 다 즐겨놓고 그런 어그러진 생각을 갖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하며 되묻기도 했다. 특히 이곳의 주민들을 보면 그러한 생각이 자주 머릿속을 지배했다.
하루는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주택지를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확실히 번화가에서 떨어진 곳이라 그런지 높고 으리으리한 건물들은 보이지 않을뿐더러 왕래하는 인파도 손에 꼽을 정도였고 그마저도 번화가에 있는 녀석들만큼 강해보이는 놈들은 보이지 않았다. 지상과는 정반대에 존재하는 곳이라도 수(數)에 따른 위계가 존재하기는 마찬가지인 듯 했다. 그런 위계를 혐오했던 세이자였기에 이는 그녀에게 큰 실망으로 다가왔다. 세이자는 같이 다니던 오니에게 넌지시 물었다.
“이곳은 빈민가나 차별받는 놈들의 부락 정도 되는 곳인가?”
“아, 지상에서 온 사람이라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군.”
“뭐?”
“여기는 원래 이런 동네야. 딱히 차별이나 그런 건 아니지. 이곳 지저는 말이야 지상에서의 시각으로는 기피당할 녀석들이 모인 곳이거든. 그들의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규칙에 따라 그들과는 맞지 않으니 쫓겨난 셈인 거지.”
예상과 전혀 다른 이야기에 세이자는 놀란 눈치였다. 오니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그런 편 가르기의 피해자이다 보니 지상의 규칙을 혐오하지. 그래서 각자가 편한 방식대로 살도록 서로를 내버려두는 거야. 이 마을은 이 마을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놈들이 사는 곳이야. 병적으로 외출을 꺼리는 놈들이나, 지독한 게으름뱅이, 남들과의 교류를 즐기지 않는 놈들이 살고 있지.”
설명만 들어도 이곳은 약해빠진 놈들이 몰려있는 곳임을 알 수 있었다. 이에 세이자는 또 다른 의문이 들어 질문했다. 의도가 담기지 않은 순수한 궁금증으로 인한 질문이었다.
“그래도 이곳에도 약한 놈들과 강한 놈들이 있을 거 아니야? 강한 놈들은 약한 놈들을 지배하려는 욕구가 분명히 있을 텐데 약자들이 자기들 원하는 방식대로 살 수 있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하하, 아가씨. 지배는 지상의 규칙이야. 물론 이곳도 강한 자들과 약한 자들이 존재하지. 하지만 우리는 힘을 각자의 개성의 일부라 여기거든. 우리는 서로의 개성을 존중해주지. 때문에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오니의 말은 맞았다. 지저에 있는 동안 세이자는 다양한 군상의 요괴들을 보아왔다. 밝은 자들은 밝은 대로 음침한 자들은 음침한 대로, 또 강한 자들은 강한 대로 약한 자들은 약한 대로 살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마치 상하관계가 없는 듯 서로 조화롭게 어울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처음 보는 이들은-그들이 지상 출신이라면-아무런 규칙도 존재하지 않아 보이는 이곳이 곧 무법천지가 되어 자멸할 것이라 생각할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오히려 각자가 개개의 개성대로 살 수 있기 때문에 지상과는 다른 균형 속에서 지저의 사회는 탈 없이 잘 돌아가고 있었다. 세이자는 어쩌면 자신이 바라던 뒤집힌 지상의 모습이 이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세이자는 지저에서의 삶이 썩 마음에 들었다. 그동안 깊은 의심과 경계심으로 지저의 풍경을 바라봐 온 그녀였지만 이곳의 사람들과 이곳의 생활에 익숙해질수록 그녀의 마음을 지배하던 부정적인 생각들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그리고 지저 주민들의 정직한 모습과 자신을 향한 호의, 그리고 자신을 아마노자쿠 그대로의 모습으로 대해주는 것은 세이자의 마음속에 그동안 느껴본 적 없는 새로운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진심”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느낀 것이었다.
세이자는 이곳에서 계속 살고 싶었다. 관광객이 아닌 지저 옛 도시의 주민으로서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나도 큰 방해물이 자신의 앞을 막고 있다는 것을 세이자는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츠치구모가 자신에게 준 봉인의 유예기간이 언제까지일 지 알 수 없는 까닭이었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찰나 자신의 옷에 붙은 부적이 눈에 들어왔다. 그날 만났던 츠치구모는 본인은 어느 정도의 유예를 줄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하기 전에는 봉인을 하고 말고의 권한은 자신에게 없다고도 말했다. 즉, 봉인의 최종적인 권한을 가진 자를 찾아가면 이 부적을 뜯어낼 수 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문제는 그러한 권한을 가진 녀석이 누구인지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세이자는 어쩌면 그 해답을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봐, 상담할 게 있는데.”
“어이구, 아가씨! 아가씨가 먼저 말을 걸어주다니 별일인걸? 그래 뭘 상담하려고?”
세이자가 찾아간 이는 그간 자신에게 편의를 봐줘온 오니였다. 그 동안에도 지저에 관해 많은 것을 알려준 이였기에 세이자는 그 자를 신뢰하여 찾아간 것이었다-신뢰라니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동이라며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한 그녀였다-. 세이자는 그에게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자신이 환상향을 떠들썩하게 한 아마노자쿠이고, 무녀에게 잡혀 봉인될 위기에 처해있으며, 자신을 봉인할 단을 만드는 츠치구모에게 유예를 받은 상황임을 말하자 이야기를 듣던 오니는 적잖이 놀란 듯 했다.
“나는 지저에 계속 머물고 싶어. 그러니까 이대로 봉인당할 수는 없어! 봉인을 담당하는 녀석이 있다면 그 녀석이 누군지 제발 알려줘!”
오니는 한참을 생각에 잠겨서 끄응 앓는 소리만 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야마메를 만나고 온 거면 아가씨의 현 상황이 사실임에는 틀림없는데…. 그야 야마메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아무리 봐도 아가씨는 봉인될 만한 요괴로는 안 보이거든.”
“무슨 말이야?”
“아가씨는 아마노자쿠잖아. 무해한 아마노자쿠.”
“뭐야! 너도 내가 약하다고 무시하는 거야? 너 그런 놈 아니었잖아! 나는 환상향을 뒤흔들었던 그 아마노자쿠라니까!”
세이자는 자신을 무시하는 듯 말을 꺼낸 오니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럼에도 오니는 고민에만 빠진 채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세이자의 계속된 사정으로 결국 오니는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오니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고개를 세이자에게 가까이 가져가 쥐 죽은 듯한 목소리로 조용히 말을 했다.
“봉인의 권한은 지령전의 사토리님께서 가지고 계신다고 하더군.”
사뭇 달라진 분위기에 세이자는 의아해했다. 하지만 오니가 답을 말해준 덕에 그가 눈치를 보는 이유에 대해서는 굳이 묻지 않기로 했다. 대신 세이자는 지령전의 위치와 사토리라는 녀석에 대해 오니에게 물었다. 오니는 또다시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사토리님은 옛 도시보다도 한참 지하에 있는 지령전이라는 곳에 살고 계시지. 하지만 아가씨, 만에 하나라도 사토리님에게 대적할 생각이면 그만 두는 게 좋아. 사토리님은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거든.”
“마음을 읽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뭐가 됐든 부딪히지 않으면 이대로 봉인돼버리고 말 텐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
그 말을 들은 오니는 한숨을 푹 쉬고는 말했다.
“사실 아가씨한테는 말하지 않고 싶었는데…. 옛 도시는 지령전의 감시를 받고 있는 곳이야. 사토리님이 기르는 애완동물들이 도처에 돌아다니고 있지.”
“뭐?”
감시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지배란 있을 리가 없던 지저에 생각지도 못한 사실이 오니의 입으로부터 발설되자 세이자는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 속에 굳건하던 무엇인가가 와르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옛 도시 주민들의 정직함은 사실 사토리님의 감시의 영향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지. 사토리님에게 불만스러운 생각을 갖는다면 크게 당할 것이 당연하거든. 아,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서로를 존중하는 것도 거짓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아줘. 서로에게 진심으로 대한다, 이것은 우리의 진실이거든.”
세이자는 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상담을 받아준 것에 대해 작게 감사를 전한 뒤 문을 나선 세이자의 입에는 알 수 없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세이자의 마음속에는 아마노자쿠로서의 무엇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5-
세이자는 스스로도 지저에 충분히 익숙해진 것을 느꼈다. 옛 도시에 온 첫날과는 다르게 지저의 밤과 낮을 쉽게 구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날 함께 다니던 오니들은 세이자가 지령전에 가는 것을 극구 만류하였지만 모두가 잠든 새벽 몰래 도시를 빠져나오는 세이자의 발걸음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멀어져가는 옛 도시를 바라보며 세이자는 변화된 자신의 모습에 그만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여기가 지령전인가?”
지저의 깊숙한 어둠은 옛 도시의 불빛을 잊은 듯 계속해서 이어졌다. 하지만 끝을 기약할 수 없을 것만 같던 그 어둠에도 끝은 있었다. 어둠의 저편에서 빛이 번쩍이는 것이 세이자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것은 어느 건물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었다. 불빛을 쫓아 도착한 그곳에는 옛 도시에서도 볼 수 없었던 으리으리한 규모의 대저택이 칙칙한 주위와는 조화롭지 않게 서 있었다. 그 오만한 듯 서있는 대저택이 지령전임을 세이자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참으로 혐오스러운 모습이었다.
세이자는 커다란 바위 뒤에 몸을 숨긴 채 지령전을 슬쩍 바라보았다. 건물의 입구인 거대한 현관 앞에 보초로 보이는 수인(獸人)요괴들이 눈에 들어왔다. 삼엄해 보이는 경계에 정문으로 당당히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어차피 세이자는 정문으로 들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녀는 최대한 어둠에 몸을 맡긴 채 현관과는 멀리 떨어진 쪽의 담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뒤 냅다 달려 도약한 뒤 담벼락을 넘어 안쪽으로 진입했다. 담벽락 너머에는 넓은 마당이 펼쳐져 있었고, 한 가운데에 호화로운 건물이 서있었다. 세이자는 재빨리 건물의 측면으로 다가가 거기 나 있던 커다란 창문을 통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실로 아마노자쿠스러운 방식이었다. 그때 분주한 발소리들이 들려왔다. 아마도 침입자가 들어왔다는 것을 저들이 눈치 챈 듯 했다. 세이자는 당황했지만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빨리 사토리를 찾아야만 했다.
“저곳을 뒤져봐!”
소란스러운 소리들이 넓은 복도에 울렸다. 세이자는 기둥 뒤에 몸을 숨긴 채 저들이 사라지기만을 숨죽여 기다리고 있었다. 소리가 잦아들고 나서야 세이자는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스테인드글라스가 깔린 복도는 어지러울 정도로 사치스럽고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넓었다. 그런 복도를 따라 수많은 크고 작은 문들이 나있는 것은 마치 부를 과시하는 것만 같아 치가 떨렸다. 이 방들 중에서 지령전의 주인인 사토리의 방을 찾아야 한다고 하면 누구라도 질려서 포기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세이자는 자신 있었다. 그야 권력을 뽐내려는 강자들의 생각을 그녀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토리인가 뭔가가 있는 방….”
세이자는 수많은 문들 중에서 가장 크고 호화로운 문을 골라 있는 힘껏 열었다. 문 너머에는 문의 크기에 걸맞은 넓고 사치스러운 방이 있었다. 그리고 입구와 일직선상의 끝에는 작지만 고급스러워 보이는 책상이 있고 어느 분홍빛 머리의 왜소한 소녀가 거기에 앉아 있었다. 부조리할 정도로 공간이 낭비되고 있는 방이라고 세이자는 생각했다.
“반갑습니다, 키진 세이자씨.”
분홍 머리의 소녀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이상했다. 초면일 터인데 저 여자는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세이자는 오니가 말한 대로 사토리에게 감시당하고 있었던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
“네, 제가 코메이지 사토리입니다. 당신의 이름은 당신의 마음을 읽었기에 알 수 있었죠. 딱히 당신을 감시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의 헌신을 옛 도시의 사람들이 감시라고 표현하다니요, 실망스럽군요. 저는 지저 사회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일하고 있었을 뿐인데 말입니다. 당신에게 저의 일에 대해 왜곡되게 말을 한 친구분은 나중에 처벌할 필요가 있겠군요.”
무엇인가가 오싹한 기분이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훤히 드러난다는 것의 두려움은 세이자가 난생 처음 느껴보는 공포였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꼬리를 내리고 도망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토리와의 승부를 통해 자신이 봉인이 될 운명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세이자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잠깐만요, 뭔가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을 하고 계시는군요.”
사토리는 촉수로 자신과 연결된 붉은 눈을 세이자의 정면에 향하게 하고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봉인 유예? 봉인이 될 운명에서 풀어달라? 그런 권한을 제가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당신은 봉인될 만한 요괴는 아니지 않습니까? 지저에서는 무해한 약해빠진 아마노자쿠잖아요?”
세이자는 자신이 생각한 것을 읽고는 그것을 가로채 먼저 말을 해대는 사토리가 짜증났다. 그런데 그런 사토리의 말에 의아한 점이 있었다. 자기가 봉인될 만한 요괴가 아니라니?
“당신이 어떤 연유로 야마메의 일터로 잡혀들어왔는 지는 당신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저도 알 수는 없습니다만 제 개인적인 판단으로 당신은 봉인되기 위해 지저로 보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무엇보다 당신과 관련된 결재서류를 받은 적이 없거든요. 당신은 지상에서 꽤나 악명을 떨쳤기에 지저에 보내지고는 자신이 봉인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나보군요. 자의식과잉입니다.”
“그, 그럼 내 옷에 붙은 이 부적은…?”
“부적? 능력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든다고요, 그 부적이?”
사토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곧이어 웃음을 터뜨렸다. 세이자는 당황하여 그대로 굳어버렸다.
“정말 자신의 위치는 알 지도 못하는 바보로군요, 당신. 그렇게 좋은 것을 붙이고 다니면서 스스로가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을 그것의 탓으로 여기다니요. 생각해 보세요. 이미 뒤집어진 세상에서 무엇이든 뒤집는 당신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을 리 없잖습니까?”
뒤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자신은 그 동안 정말 말도 안 되는 장난에 놀아난 것이 아닌가? 그러한 생각에 세이자는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크게 웃었다. 한동안 웃어 본 적 없던 비열함 가득한 아마노자쿠식 웃음이었다.
“크크큭! 이미 뒤집어진 세상? 웃기고 있네! 네년이 있는 한 여기는 지상이랑 다를 바 없잖아? 이런 곳 내가 뒤집지 않고는 못 배기겠거든? 이 좋은 부적도 좆도 필요가 없다 이거야!”
사토리는 가소롭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네, 그렇다면 당신이 바라는 대로 해드리죠. 그 부적, 제거해드리겠습니다.”
사토리는 한쪽 팔을 들어 세이자를 향했다. 그러자 세이자의 옷에 붙어 있던 부적이 서서히 사라졌다. 세이자의 몸이 공중으로 둥실 떠올랐다. 세이자의 의지로 떠오른 것이 아니었다. 세이자는 당황했지만 그럴 틈도 없었다. 공중에 떠오른 세이자의 몸은 마치 무엇인가에 끌려가듯이 지령전의 밖으로 튕겨져 나갔기 때문이었다.
“사토리님! 침입자가!”
침입자를 추적하던 사토리의 애완동물 중 하나가 다급하게 사토리의 방으로 들어왔다. 사토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편안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나긋하게 애완동물을 진정시켰다.
“별 일 아닙니다. 그저 ‘지저 VIP 관광권’을 몸에 붙인 광인 하나를 내쫓았을 뿐이니까요.”
지령전 밖으로 내쫓긴 세이자는 그 뒤로도 공중에 뜬 채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에 끌려 어딘가를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날아서 스쳐지나가는 곳들은 모두 세이자가 그 동안 지나왔던 길이었다. 낯익은 곳들을 거슬러 가는 중에도 지저의 어둠은 오리무중의 안개 속처럼 깊었고, 옛 도시의 불빛은 불야성처럼 눈부셨다. 거꾸로 날아가는 자신과는 다르게 옛 도시의 요괴들은 그들의 사회가 흘러가는 방향에 따라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고, 츠치구모가 감독하고 있는 공사장은 그들의 일을 거의 끝마쳐 가고 있었다. 거꾸로 돌아가는 주마등처럼 눈앞을 어지럽히던 풍경에 세이자의 의식은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 뒤로 자신이 어떻게 될 지 예상할 수는 없었지만 이 타의적인 비행의 종착점이 어디 일 지는 알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의 할 일이 무엇일 지도 알 것만 같았다. 태양빛이 얼굴에 쏟아지는 것을 느끼며 세이자는 눈을 감았다.
-epilogue-
“레이무, 환상향의 균형이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 지 알고 있어?”
금색 장발의 불가사의한 여인이 물었다. 상반신만을 내놓은 채 공중에 떠있는 모습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요괴들의 세력 다툼에 관한 걸 내가 어떻게 알아?”
붉은 무녀복을 입은 무녀의 대답에 금발의 여인은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품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길쭉한 손잡이를 제외한 회전부가 전체적으로 둥근 모양인 자그마한 팽이였다. 외양은 버섯처럼 보이기도 하고 오뚝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금발의 여인은 무녀의 눈높이의 허공에다 마치 바닥에 놓듯 팽이를 올려두고는 그것을 돌렸다. 그것은 비틀거리며 돌다가 순식간에 뒤집어져서는 손잡이로 돌기 시작했다. 무녀는 이를 빤히 지켜보고 있었지만 눈빛은 흥미가 있는 것인 지 어떤 지 알 수 없었다.
“환상향의 균형은 이 팽이와도 같아. 환상향에 이변이 왜 일어난다고 생각해?”
“그야, 변덕스러운 요괴들이 자기 힘을 과시하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니야? 설마 너 또 무슨 수작이라도 부렸어?”
“역시 너는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이 팽이가 어떻게 거꾸로 돈다고 생각해? 이것은 말이야, 처음 돌았던 방향과 정반대로 돌아야 가능한 일이야. 하지만 그렇게 돌아도 팽이는 뒤집히기만 할 뿐 처음 돌았던 방향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무녀는 어려운 말을 늘어놓는 그녀가 귀찮아서 짜증을 내며 물었다.
“예전에 사로잡았던 아마노자쿠, 기억하지?”
“아, 기억하고말고. 네가 준 아무 영력도 없는 부적으로 때려잡고는 너한테 넘겼었잖아. 근데 그 녀석이 왜?”
저 멀리서 무엇인가가 빠른 속도로 날아가 공기를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네 마법사 친구는 벌써 눈치챈 것 같은데?”
“마리사한테 이변 해결의 선수를 뺏길 순 없지!”
무녀는 입에 물고 있던 센베이를 힘껏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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