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만팬대] 바람과 붓

동프학선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4.25 23:59:47
조회 522 추천 10 댓글 6


viewimage.php?id=39b2c52eeac7&no=24b0d769e1d32ca73dec81fa11d028314d3faebecfec25ed6aa779bc7a59f30e919a62c749e030ba453d162903f0a347392c52390aac0a586ac487d75856717feb

1


이런 사진을 생각해 보라.(그림이라도 좋다) 두 명의 인간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각자의 자세를 잡고, 하지만 서로 어울리고도 조화롭게 서 있다. 둘 다 앳된 소녀이지만 인상은 서로 다르다.(그야, 그 사실만이 그들의 인상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니까.) 붉고 하얀 무녀복을 입은 이의 검은 머리칼은 너무 크지 않고 적당한 크기의 붉은 리본으로 말끔히 정리되어 있다. 턱을 보기 좋게 살짝 당긴 그는 진지하게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잘 살펴보지 않은 이는 이 진지한 표정에서 웃음을 찾아내기 어렵겠지만, 한 번 그것을 찾아낸 이는 몇 번을 살펴보아도 그 엷지만 단단한 미소를 놓치기 어려울 것이다. 품이 잘 맞아 맵시가 나는 무녀복을 걸친 몸은 약간 긴장한 듯 곧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어 보는 사람도 문득 허리와 어깨를 펴 보게 된다. 발을 어깨 너비 정도로 적당히 넓게 두고 오른손에 든 불제봉을 어깨에 살짝 걸친 그의 모습은 믿음직스러워 보인다.

오른쪽을 보면 다른 한 명의 인간이 있다. 그의 마녀 모자와 흰 셔츠와 검은색 멜빵 원피스는 무녀처럼 품이 딱 맞는 맵시는 없지만, 약간 비실용적으로 소매와 밑단, 옷깃이 장식적이고 수수하기는 하나 옷감에 자수도 놓여있어서 사진을 찍기 위해 차려입은 것임을 짐작케 한다. 보기 싫진 않을 정도로 살짝 고개를 올린 그는 카메라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다. 그 웃음에서는 자신감과 만족감이 화면을 뚫고 전해진다고 해도 가할 것이다. 살짝 짝다리를 짚은 채 왼손으로 세워진 빗자루를 비껴잡고 있고, 허리에 짚은 오른손 아래로는 팔괘로가 허리띠에 매달려 있다. 조금씩 흐트러진 점들이 서로 맞물려 전체적으로는 맵시있는 균형감을 준다.

그리고 구도에서 살짝 여유를 둔 오른쪽 아래의 한구석 여백에는 멋들어진 글씨체로 “샤메이마루 아야”라고 쓰여 있다.



2


우사미 스미레코는 오랜만에 들어온 환상향의 마법의 숲에서 조금 헤매었다.(고등교육은 초중등교육보다는 괴짜를 받아낼 수 있는 수용력이 조금은 더 있는 편이었다) 환상향 나들이를 위해 모처럼 멋을 부려본 옷차림은 숲에서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 마리사!”

스미레코는 예전처럼 ‘마리삿치’라고 부르려고 했지만, 무의식이 순간적으로 그의 말을 멈추었고, 의식은 그것을 다시 이어낼 만큼 결단력 있지 못했다.

스미레코가 포착한 인물은 천천히 일어나 뒤를 돌아보았다. 마리사의 키는 별로 자라지 않은 스미레코와는 대조적으로 훌쩍 커져 쭉 뻗어있었다. 스미레코는 그것을 보고 꽤 놀랐다.

“철이 조금 들었나 보네.”

커진 키에 잘 어울리는 떨어지는 라인의 망토를 걸친 마리사는 반갑다는 표정도 짓지 않고, 감흥 없이 그렇게만 말한 채 다시 뒤돌아섰다. 스미레코는 당황하여 황급히 마리사를 뒤쫓았다.

어느 정도 걸어 여전히 혼자 지내는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마리사는 문 옆의 옷걸이에 모자와 망토를 벗으려다가, 스미레코가 문 밖에 있는 것을 흘겨보고 손에 꼭 맞는 검은색 가죽 장갑만을 벗었다. 마리사가 자신을 보고도 문을 닫아버리지 않은 것을 들어와도 된다는 것으로 알아들은(사실이었다) 스미레코는 조금 긴장한 채 집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집은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본래 관광지에서 기념품으로 팔 법한 장식품들이 놓여 있던 장식대였다. 이제 그곳에는 사진들이 놓여있었다.

마리사가 부엌에서 찻잔 둘을 가지고 나와 탁자에 내려놓았지만 스미레코는 계속해서 그 사진들을 구경했다.

“사진들이네?”

“그래.”

탁자 앞에 앉은 마리사는 대답하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사진 찍는 게 유행하기라도 했어?”

“유행했지.”

다시 한 모금.

“어디서 찍어?”

“인간마을에도 생겼지만, 텐구들 쪽이 나아.”

“무슨 바람이 불어서 유행이었던 거야?”

“몰라.”

“이변은 아니었단 이야기네.”

“그래.”

스미레코는 사진들의 구성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레이무가 없는 걸?”

“그래.”

스미레코는 마리사를 돌아보았지만 마리사는 차를 한 모금 더 마실 뿐이었다. 잠시 동안 스미레코는 입을 열지 않고 사진들을 유심히 뜯어보았다. 그리고 마리사의 독사진으로 보이는 사진 하나를 지목했다. 사이코메트리 같은 것은 아니었다. 슬슬 한계를 느끼고 있었으나 명석한 것은 사실인 스미레코의 직관은 그 사진의 구도와 밑의 서명이 부조화함을 포착해냈다. 스미레코는 왠지 모를 복중의 뒤틀림을 느끼며 말했다.

“이 사진… 어떻게 된 거야?”

스미레코가 돌아보자 마리사는 오른손으로는 자신의 잔을 옆으로 기울여 비었음을 보여주며 왼손으로는 검지 손톱을 세워 앞에 놓여있는 스미레코 몫의 잔을 두드렸다. 도기 잔이 미묘하게 울렸다. 스미레코가 식어버린 잔을 단숨에 비우자 마리사는 일어나 두 잔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어떻게 되다니, 뭐가?”



3


“기껏 오고 가는 거 마음대로 하게 되고선 금세 잘 안 오더니, 별 일이네.”

레이무도 키가 훌쩍 커진 것을 보고 스미레코는 자신만이 별로 자라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스미레코는 역시 별로 바뀌지 않은 신사의 모습을 둘러보며 안으로 들어갔다. 레이무가 내어준 녹차를 마시며 거실 안을 둘러보던 스미레코는 역시 사진이 놓여 있는 탁자 하나를 발견했다.

“사진이 유행했다며?”

“그래, 나도 한 번 찍었지.”

스미레코는 봐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내곤 팔을 뻗어 액자를 가져와 보았다. 레이무의 독사진이었다. 배경도 마리사의 독사진과 달랐지만, 스미레코는 둘이 본래 하나의 사진이었음을 확신했다. 다시 구토감과 비슷한 불쾌감이 배 안에서 꿈틀거렸다.

“이 사진, 원래 이렇게 찍은 거야?”

마루에 걸터앉아 바람을 쐬던 레이무는 돌아보며 대꾸했다.

“마리사 만나고 왔니?”

스미레코는 살짝 당황해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무는 아주 살짝 쓴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알아 뭐하게?”

만족스럽지 않은 대답에 스미레코는 대꾸하지 않고 얌전히 녹차를 한 모금 더 홀짝였다. 그리고 레이무가 이내 잠시 뒤뜰로 향하자 그는 레이무가 무언가를 숨겨둘 만한 공간을 뒤지기 시작했다. 세 번째 시도 만에 방을 전혀 어지르지 않고 스미레코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이것은 사진을 숨긴 것이 다른 이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보다는 자신에게서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함임을 짐작케 했다.

레이무와 마리사를 찍은 사진은 두 명의 독사진이 이 하나의 사진을 나눈 것임을 확증했다. 스미레코가 조금 철이 든 것은 사실이었으나, 여전히 평소라면 둘을 가르고 배경까지 바꿔버린 두 사진이 본래 하나였음을 알아차린 자신을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다. 그러나 스미레코는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사진에 담긴 두 사람의 모습에서 눈을 땔 수 없었다. 두 사람이 빙빙 돌고, 머리가 심장박동으로 둥둥 울렸으며, 빙빙 도는 시야는 다시 그것에 맞춰 요동쳤다. 스미레코는 자신이 숨을 제대로 쉬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울렁이는 속에서 신물이 올라왔다. 스미레코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신물을 억지로 삼켰다.

“너 미쳤니?”

때마침 돌아온 레이무가 스미레코의 손을 잡아챘다.

“어떻게…….”

스미레코가 멍청하게 중얼거렸다. 어째서 “왜”가 아니라 “어떻게”였는지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일어나지 못하는 스미레코에게 레이무의 눈빛은 놀람에서 분노로 바뀌었다. 화를 내는 레이무에게 대꾸할 기백은 스미레코에게 없었다. 스미레코는 억지로 몸을 일으키고 사과한 뒤 터덜터덜 문으로 향했다. 레이무는 스미레코가 나가기 전 독사진의 액자를 다시 서랍장 위에 올려놓고는 바닥에 떨어진 옛 사진을 집어 들었다. 짧은 순간 그것을 바라보던 레이무는 그리고 보란 듯이 손을 움직여 유카리와 비슷한 경계를 열고 사진을 그 안에 집어넣어 버렸다.

“진작 이렇게 했었어야 했어.”

레이무는 경계를 닫고 다시 한 번 묶었다.



4


“철이 들었다고 생각한 건 착각이었나.”

집 앞에서 다시 돌아온 스미레코와 마추친 마리사는 변함없이 차갑게 대꾸했다.

“사진을 봤어.”

마리사는 아무 것도 듣지 않은 것처럼 평온해 보였다.

“사진이라고만 하면 내가 어떻게 아나?”

그러나 스미레코는 물음과 평문 사이의 아주 약간의 균열을 포착했다. 그것을 파고 들 수 있을까 하고 스미레코는 생각해 보았다.

“저 사진, 레이무와 네가 같이 찍었잖아.”

“그 무녀랑? 그런 적 없어.”

“너도 갖고 있지 않아?”

스미레코는 자신이 물음을 내뱉은 데에서 패배를 직감했다.

“없어. 이 집 안에도 바깥에도 진작부터, 어쩌면 처음부터.”

스미레코는 잃어버린 주도권을 (애초에 갖고는 있었을까?) 되찾으려 애를 썼다.

“레이무는 그 사진을 갖고 있었어.”

“그래서 네 손에 내어주던?”

“…봉인해 버리더군.”

“잘 됐네. 그것까지 자취를 감췄다면 아무도 그게 있다고 할 수 없을 테니까.”

주도권을 잃고선 언성을 높이는 것은 지나치게 패배를 자인하는 점에서 불리했지만, 스미레코는 참을 수 없었다.

“그래도 그 사진은 실존해! 그 사실을 부정하려는 거야!”

“무슨 사진을, 사실을 말하는지 전혀 모르겠는데.”

“말장난 하자는 게 아니잖아!”

“설령 그게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더 이상 진실은 아니야.”

스미레코의 머릿속은 다시 의문으로 가득 찼다. 이 울렁거림과 함께 올라오는 그 의문은 여전히 “왜”가 아니라 “어떻게”였다.

스미레코는 눈을 감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잡생각을 털어내야 했다. 마리사는 그것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곤 제 갈 길을 가 숲으로 사라졌다.



5


“오랜만에 와서 뭘 그리 찾나?”

마을 서당의 서재에 보관된 신문들을 뒤지는 스미레코에게 케이네가 물었다.

“없어…”

“무얼 찾는지 알아야 도움을 주든지 할 것 아니야.”

“레이무와 마리사 말이야, 내가 기억하는 날짜까지 모두 찾았는데도 없어. 뭔가를 놓쳤나?”

스미레코는 다시 이미 본 신문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난 또… 헛수고 말아.”

“당신이 지우기라도 했어?”

스미레코는 대놓고 떠보는 투로 물었다. 케이네는 고개를 젓고는 대답했다.

“이봐, 바깥의 태학생. 전공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역사는 쓰는 것보다 일부러 먹는 게 훨씬 더 어려워. 괜히 내가 한 달 중에 하룻밤 새 쓰고 29일 동안 먹겠나.”

“‘일부러’라. 그럼 자연히 지워졌다는 건가?”

케이네는 고개를 끄덕이며 ‘적어도 많은 게 맞아떨어져야 하지.’라고 하고는 말을 이었다.

“반대로 한 번 지워지면 곡필한 것보다 복원해내기가 훨씬 더 어렵지.”

스미레코는 신문을 정리해 넣으며 ‘뭐가 사실이라도 진실이 아니라는 거야’라고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케이네는 그 말을 듣고 말했다.

“왕후장상이 연회를 즐기는 장면을 아름답게 그린 그림이 있다고 치자. 직접 보고 그리기까지 했다면 그것은 사실과 가깝겠지만, 그들의 좋지 않은 면모나 백성들의 삶에 더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은 사실일지언정 진실이 아니라고 평가하겠지. 세계는 사건의 총합이니까.”

스미레코는 이변 해결에 대한 글을 모은 문집을 골라 들고 물었다.

“빌려가도 돼?”

케이네는 ‘그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6


스즈나안 한 구석의 탁자 앞에 앉아 있는 스미레코 앞에 검은 옷을 입은 코스즈가 찻잔을 내려놓고 맞은 편에 앉았다.

“그…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스미레코와 코스즈는 서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들이 앉아있는 탁자 옆에는 아큐의 사진이 벽에 걸려 있었다.

“근데 조의를 저한테 표해도 되나?”

코스즈가 살짝 웃으며 농담했다.

“히에다 가에서 들여보내주기나 할까?”

스미레코의 받아침에 둘은 조금 웃었다.

“그래서… 뭐 하러 오셨다고요?”

“레이무랑 마리사가 다툰 이야기… 그리고… 사진.”

코스즈는 고개를 갸웃 기울여 보이곤 말했다.

“사진은 모르겠고… 레이무 씨랑 마리사 씨도 딱히 말할 게 없는데요. 다투긴 했나? 그것도 모르겠고.”

“그런 식으로 말하기로 약속하기라도 한 거야?”

스미레코는 답답한 마음에 도리어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말할 것 같았어. 딱히 그런 걸 물어보려던 건 아니야…….”

“그럼요?”

코스즈는 궁금하다는 듯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사진은 언제쯤 유행이었어?”

“초반에 한참 유행했고, 아큐도 그때 찍었어요. 아큐가 죽고 나서 꽤 지나서 또 붐이 일었고. 붐일 때는 몇몇 텐구도 영업을 막 적극적으로 뛰었죠.”

“이변은 언제 언제 있었어?”

“세 번 정도 있었고, 아큐가 죽은 후로는 아직 없었어요.”

스미레코는 한숨을 푹 쉬고 말했다. 스미레코는 서당에서 신문을 뒤적이며 속으로는 자신의 울렁거림을 구체화하기 위해서 치열하게 노력했다.

“내가 이해하지 못했다고 느낀 건, 역함을 느낀 건 ‘왜’가 아니라 ‘어떻게’였어.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사진이 거짓일 수 있지?”

스미레코는 여기까지 설명할 수 있었다. 그는 탁자에 턱을 괴고 아큐의 사진을 쳐다보았다. 코스즈가 의아해하며 말했다.

“바깥에서 온 책 중에선 사진을 고치는 기술에 대한 책도 있던 걸요. 보면 전문가를 위한 것도 아니고 대중을 타깃으로 한 거던데.”

“포토샵이랑 옛날 사진은 다르지.”

“여기서도 사진은 고쳐요.”

“아니, 오려 붙이는 것 말고 말이야. 나도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필름에 기교를 부려왔다는 건 알아. 어진영 같은 건 말할 필요도 없고. 하지만 바깥에서 하는 것 같은 거짓은… 기대하지 않는다고. 아니, 옛날의 기교는 오히려 지금은 훨씬 더 알아보기 쉬워! 지금 세상에 코팅리 요정 사건에 누가 속겠어? 봐, 저 아큐의 사진은 어진영도 아니고, 진짜 아큐의 얼굴이잖아.”

계속 아큐의 사진을 바라보던 스미레코는 실례를 깨닫고 서둘러 코스즈를 바라보며 말했다.

“미안, 못 알아들을 이야기를 늘어놨네.”

“예전에는 무슨 말씀을 하는지 잘 이해가 안 갔는데, 이젠 조금 알겠네요. 스미레코 씨, 그건 틀렸어요.”

조금 웃은 코스즈는 이렇게 말하고는 아큐의 사진을 머릿짓했다.

“이 사진을 찍을 때는 환상향에는 몇 없는 강력한 조명을 거의 모두 썼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잘 나오지 않죠. 장소는 히에다 가지만, 배경으로 쓸 기물도 엄선해서 골랐고요. 그 기물 중 절반은 진짜가 아니라 그림이에요.”

코스즈는 서글픈 미소와 함께 사진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턱도 살짝 깎았어요, 이 사진. 아큐의 취향대로. 원래 아큐의 턱은 조금 더 둥글었죠. 특히 이 부분이.”



7


마침 아야가 스즈나안을 방문한 것은 행운이었다. 아야는 스미레코에게 오랜만이란 인사를 건냈고 스미레코는 레이무와 마리사의 사진에 대해 물었다.

“아… 기억이 나는군요.”

스미레코는 드디어 뭔가가 보일까 하고 기대했지만, 다음에 이어질 아야의 말에 실망할 정도는 아니었다.

“정확한 건 잘 모르겠는데, 가서 명부를 봐 보죠.”

“명부가 있는 거야?”

스미레코는 이번에야 말로 큰 기대를 품었다.

“외부에는 비공개입니다. 장사할 때야 당연한 거지요?”

아야의 상업적 미소에 스미레코의 기대는 여지 없이 무너졌지만 아야는 스미레코의 기분을 전환시킬 제의도 들이밀었다.

“사진 편집 이야기를 하고 계시던데, 말이 나온 김에 한 번 봐 보시겠습니까?”

대학에서 사진 동아리는 표지판을 보고 콧방귀만 뀌고 지나간 그이지만, 이 제안에는 흔쾌히 동의했다.

“직접 가면 적어도 필름을 어쩌다 슬쩍 보시기만 하는 건 괜찮을지도 모르지요. 바깥 세계에 대해 취재 협조를 좀 해준다면 그런 기회가 있을지도?”

스미레코가 그러겠다고 하자 아야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필름의 품질은 보장할 수 없을 수도 있다’고 했고, 스미레코는 실랑이 끝에 필름을 먼저 보고 취재에 협조하기로 했다.

요괴의 산의 텐구 진영은 본래도 나름 깔끔하지만 필름 보관소는 특히나 더 현대적으로 보였다. 아야는 영화에 흔히 나오는 첨단 연구소 문을 연상케 하는 보관소 문을 열면서 유독 신나 콧노래까지 불렀는데, 스미레코가 그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한 번 쓴 필름을 한참 지나 또 찾을 일이 뭐 있다고 이렇게 오랫동안 보관을 하냐는 이야기가 많이 있어서, 보관 시한을 정하는 문제로 파가 갈려서 협상이 있을 예정이었죠. 저는 길게 잡자는 파였거든요. 이제 사례가 생겼으니.”

스미레코는 자신에게 한 제안이 이를 위한 꼼수였음을 깨닫고 쓴웃음을 지었다.

“품질은 보장 못합니다. 실망하지 마세요.”

문제의 필름이 보관된 서랍을 열며 아야는 다시 한 번 신신당부했다. 다행히 꺼내 본 필름은 척 보기에 문제는 없어보였다. 아야는 사진 편집 시범을 보여주겠다며 자기 카메라의 필름도 조심스레 꺼내서 암실로 들어갔다.

“품질이… 다행히 괜찮군요.”

아야는 확대경을 스미레코에게 내주었다. 스미레코는 드디어 레이무의 그것 외에도 사진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증거라고 들이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아시겠지만 이건 비공식적인 거니까 어디 가서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원래는 외부인은커녕 멋대로 보는 것도 안 돼요.”

스미레코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속이 울렁거렸다. 아야가 그럼 아날로그 사진 편집의 위대함을 보여주겠다며 빛을 원하는 대로 가리는 갖가지 도구와 사진용 필기구, 실과 염료, 용액들을 보여주었다.

“빛을 가리면 그 부분이 밝아지고 주변을 가리면 상대적으로 어두워집니다. 원리야 아실 거고…”

아야는 그렇게 사진을 이리저리 주물렀다. 그가 선명해지게 하는 것은 선명해졌고, 흐리게 하는 것은 흐려졌다. 그 결과물은, 놀랍게도 원래의 구도와 정말 어울렸다.

“자, 아날로그 현상 치곤 바깥보다 훨씬 빠르지요? 환상향의 특권입니다. 어때요, 여기 설계도대로 됐죠? 제 솜씨는 텐구들 가운데에서도 좋답니다. 바깥에서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작업은 대부분 여기서도 할 수 있습니다. 이곳과 바깥의 옛날에 하던 것을 컴퓨터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보다 정확하겠군요.”

스미레코의 뱃속은 이제 울렁거리지는 않았다. 쿡쿡 찔렀다. 무언가 깨달은 것 같았다. 스미레코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정신적 고통에 얼굴을 찡그렸다.

“이건 사진이 아니라… 마치 그림 같아.”

“사진과 그림이 다르다는 발상부터 문제가 있죠. 바깥에선 분명히 사진 ‘작가’들이 실존할 텐데요?”

아야는 아주 엺게 비웃음 섞인 미소와 함께 이렇게 덧붙였다.

“…설마 ‘똑같이 나오는 사진 찍는 자들이 무슨 작가냐’ 하셨는지?”



8


마법의 숲에서 또다시 저 멀리 다가오는 스미레코와 마주친 마리사는 가던 길을 뒤돌아서려 했다.

“잠깐!”

스미레코가 외쳤다.

“귀찮게 안 할게.”

“아니.”

이미 귀찮다는 말이 생략되어 있었을까? 스미레코는 다시 말했다.

“잠시만 들어봐.”

스미레코는 숨을 삼킨 뒤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건 여전히 거의 없어. 지금부터 말할 게 다야.”

마리사가 들어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스미레코는 말을 서둘렀다.

“이변 문집에서 아큐의 문체를 분리해낼 수 있었어. 마지막 이변에도 아큐의 문체가 포함되어 있었지만, 중간에 끊겼지. 코스즈는 아큐가 죽은 이후로는 이변이 없었다고 했지만, 그건 아큐의 죽음에 걸친 이변은 이전으로 취급한 게 분명해.”

마리사는 계속 들어주었다.

“사진 붐은 두 번 있었어. 아야는 너희의 필름을 찾아볼 때 내게 품질을 보장할 수 없다고 몇 번이나 언급했어. 텐구의 사진 보관소는 문외한이 봐도 잘 되어 있었고, 따라서 이것은 두 가지를 암시해. 하나는 그만큼 아야도 이 주제에 대해 말을 돌리고 싶었다는 것, 두 번째는 필름의 기본적인 품질 보증 기한이 다 되었다는 것. 따라서 그 사진이 찍힌 건 첫 번째 유행 기간이 되고.”

마리사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그리고 아야는 ‘한 번 쓴 필름을 한참 지나 또 찾을 일이 뭐 있다고 이렇게 오랫동안 보관을 하나 했는데 그런 일이 생겼다’라고 말했어. 이건 그런 일이 이전에는 없었다는 것을 의미해. 적어도 기억이 날 정도로는. 필름 사진 편집은 디지털과 아주 비슷하게 강력하지만, 분명한 차이점이 하나 있어. 매번 필름으로 현상을 해야 한다는 거야. 따라서 너희 사진의 편집이 이번과 비견될 정도로 오랜만에 필름을 꺼낸 일은 아닌 것을 알 수 있어.”

“그래서.”

“정확히 언제인지도, 왜인지도, 어떻게 그런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분명한 사실이 하나 있게 돼. 너희는 그 사진이 그렇게 된 후에도 한 번 이변을 해결했어.”

“그래. 그게 무엇을 뜻하지?”

스미레코는 자신이 아직 남아있는 우정 같은 것을 운운하는 시답잖고 식상한 이야기를 하는 광경을 상상했다.

“역사가 적당히 마멸되면 너희 사이에 그 어떤 개인적인 변화도 기록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의미해. 지금 환상향에 있어서 너희의 변화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의미해. 환상향의 역사, 그 진실에 너희의 사정은 비추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스미레코의 목소리는 축축했다. 마리사는 만족감조차 내보이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

“그래. 증거라고 들이밀 건 여전히 없겠지. 따라서 그건 사실도 아니지만, 사실이라 해도 진실은 아니야. 식상한 말이지만.”

스미레코는 이미 그 다음 대답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것을 말하려는 그의 심장은 터질 것 같이 두근댔다.

“맞아, 식상해. 그리고 무언가가 어떤 것이 아니라고 해서, 그게 그것이 아무 것도, 그 어떤 것도 아니라는 뜻은 아니야! 마치…”

그것이 과거의 자신을 규탄하고, 부정하고, 깨어나는 말이기 때문에.

“…바깥 세계가 진실의 세계가 아니라고 해서, 거짓의 세계 또한 아닌 것처럼. 그것 또한 하나의 거짓말인 것처럼. 사람의 겉모습이 그 자신이 아니라고 해서, 그 뒤의 그림자가 자신 그 자체가 아닌 것처럼, 겉모습이든 그림자든 그런 식의 동일시는 광기에 불과한 것처럼! 사진이 진실이 아니라고 해도, 그건 진실의 일부일 수밖에 없어! 너는 그걸, 그걸 인정해야만 해! 너의 인생, 너의 기억, 너의 역사, 너의 사진을!”

바깥 세계를 거짓으로 매도하고 환상향만이 진실이라고 여기던, 남들의 인생은 거짓이라 무시하고 자신만이 진실이라 여기던 그 소녀는 숨을 헐떡였다. 그 외에는 정적이 이어졌다. 스미레코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마리사는 입을 열었다.

“그래, 인정하지.”

그리고 마리사는 몸을 돌려 사라졌다. 스미레코는 한 줄기 눈물과 함께, 환희를 마주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추천 비추천

10

고정닉 8

0

원본 첨부파일 1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게임 캐릭터로 만들면 찰떡일 것 같은 아이돌은? 운영자 26/02/23 - -
AD 가격 오르기 전!! 노트북 기획전!! 운영자 26/02/12 - -
공지 동방프로젝트 갤러리 "동프갤 슈팅표" [59] 돌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9.04 22690 52
공지 동방프로젝트 입문자와 팬들을 위한 정보모음 [46] Chlorin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07.27 112976 132
공지 동프갤 구작권장 프로젝트 - 구작슈팅표 및 팁 모음 [531] Chlorine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2.12.03 110390 136
공지 동방심비록 공략 [58] BOM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12.18 93585 30
공지 동방화영총 총정리 [43] shm(182.212) 15.06.11 119908 52
공지 동방심기루 공략 [64] 케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3.10.12 128714 33
공지 동방 프로젝트 갤러리 이용 안내 [157765/7] 운영자 09.06.23 611158 536
8473481 혹시 후모후모 재판 자주 해주나요 [1] 가지튀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2:22 6 0
8473480 후방주의) 이런 거 좋다 [1] ZZZ컵여자랑성관계하고싶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42 92 2
8473479 아아 다이쨩 민트초코소라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37 34 1
8473478 giftest [5] castle06_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4 182 0
8473477 그냥 짤쟁이 티어놀이나 하삼 ㅇㅇ(106.101) 17:59 112 3
8473476 유웃코가 뭘 했는데 동갤러(118.235) 17:53 84 2
8473475 ‼+상하이⁉+앨리스‼+환악단‼+갤러리로‼+ 상하이갤로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7:07 28 3
8473474 아임스틸히어 불완전한강림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27 59 1
8473473 딱딱 불완전한강림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5:26 42 0
8473472 근데 여기가 앞갤이고 상갤이 뒷갤 아님??? [1] ㅇㅇ(211.235) 13:04 155 3
8473471 철좀들어라 병신들아 급식이나 물어뜯지말고 ㅇㅇ(106.101) 13:01 131 8
8473469 옛날 동갤이 물고기 같은놈 많았던거 생각하면 소름돋네 [1] ㅇㅇ(39.7) 12:10 170 6
8473466 진작 유웃코 갠차해둔 모코웅햄 재평가 해야하면 개추 ㅇㅇ(106.101) 11:13 160 8
8473465 어쩜 눈치없는게 사신키랑 똑같네 ㅇㅇ(211.234) 10:45 130 5
8473464 동갤 살리기는 역시 대 윳 코 ㅇㅇ(106.101) 10:44 110 1
8473463 멍청한척 질문하면서 갤 활성화하기 ㅋㅋ 동갤러(223.62) 10:30 148 6
8473462 슬슬 동갤에 글쓰다 걸리면 상갤 차단먹여야하는거 아닌가..ㅇㅇ ㅇㅇ(211.235) 10:05 161 12
8473461 산천어님 석방하라 ㅇㅇ(211.235) 09:39 64 2
8473459 주망지재상단+볼장연 콜라보.jpg ㅇㅇ(39.7) 08:55 129 6
8473458 미마님 어디계세요 [1] 무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1 53 0
8473457 미마님 어디게세요 [1] =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00 36 0
8473456 갤이여 일어나세요 [1] 무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31 38 0
8473455 갤이여 일어나세요 [1] =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6:30 36 0
8473454 상갤에서 갱차먹는 새끼가 제일 병신이긴함 ㅇㅇ(106.101) 03:40 194 13
8473453 애초에 갱차리스트 자체가 병신임 ㅇㅇ(153.209) 03:09 150 2
8473451 도진상사 궁금한거 좀 있음 ㅇㅇ(118.235) 02:27 118 0
8473450 완장 파벌 아닌데 나댄다? ㅇㅇ(106.101) 01:38 117 4
8473449 왜 갱차인지 기억 안나는 애들이 있음 [8] ㅇㅇ(211.234) 00:23 282 0
8473446 더 재미있는 사진 ㅇㅇ(211.235) 02.25 176 7
8473443 재미있는 사진 동갤러(39.7) 02.25 290 14
8473437 아아 다이쨩 민트초코소라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25 113 1
8473435 미마님 어디계세요 [1] 무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25 56 0
8473433 미마님 어디게세요 [1] =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25 52 0
8473432 갤이여 일어나세요 [1] 무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25 57 0
8473431 갤이여 일어나세요 [1] =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25 53 0
8473428 우뉴님 민트초코님 좀 그만 괴롭히시죠 ㅇㅇ(128.14) 02.24 260 12
8473426 아아 다이쨩 민트초코소라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24 101 2
8473425 아아 치르노짱 ㅇㅇ(223.39) 02.24 166 10
8473422 미마님 어디계세요 [1] 무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24 85 0
8473421 미마님 어디게세요 [1] =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24 74 0
8473420 갤이여 일어나세요 [1] 무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24 67 0
8473419 갤이여 일어나세요 [1] =빵=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24 69 0
8473416 안타 회초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23 167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