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갤문학이라고 다 치려고 했는데 제목 잘려서 안 올라감
*IF White 회지 개정판 공개문학
“파피루스.”
“잠깐만! 나 지금 새로운 스파게티 소스를 개발 중이라 바쁜데!”
“폐허에 인간이 떨어졌...”
샌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식기 따위가 엎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리고 뒷정리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기 시작한 샌즈의 어깨에, 키 큰 뼈다귀는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처럼 힘껏 매달렸다.
“어디, 어디!?”
“저기.”
샌즈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화면을 가리켰다. 돌볼 사람이 사라진 탓에 시들어버린 꽃밭 위로,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인간이 보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화면을 바라보던 파피루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인간이라고...?”
하얗게 센 머리. 구부정한 등. 나뭇가지처럼 마른 다리. 저번에 봤던 인간과는 확연하게 다른 그 모습에 파피루스는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대기 시작했다.
“형이 잘 못 본 거 아냐?”
“아냐. 저 사람도 인간이 맞아.”
“하지만, 그 때 그 인간이랑 많이 다르게 생겼는걸? 얼굴도 어쩐지 쭈글쭈글하고, 앙상하잖아.”
“뼈가 쑤실 나이긴 하지.”
샌즈는 그렇게 말하며 모니터들을 바라봤다. 알피스가 지하 곳곳에 설치해둔 카메라를 이렇게 활용할 줄 누가 알았을까. 어디로 갔는지 요원한 옛 동료를 떠올리며 샌즈는 말없이 감자칩을 하나 집어 들었다. 목이 메인 탓일까. 콜라부터 찾게 된다.
“흐으으음....”
파피루스는 여전히 모르겠다는 듯 얼굴을 찌푸린 채 모니터에서 눈을 떼질 못한다. 정답을 알 수 없는 퀴즈프로를 볼 때랑 비슷한 표정을 한 동생을 내버려둔 채, 샌즈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모니터 속 인간을 바라봤다.
인간은 한 눈에 보기에도 꽤 연로해보였다. 한 가닥도 남김없이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카락 사이로 깜빡이는 두 눈이 침침해보였다. 위험할 게 없는 폐허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몇 번이나 넘어지고 부딪히며 주저앉길 반복하더니, 결국 절반도 통과하지 못하고 한복판에 주저앉아 가슴을 부여잡고 숨을 몰아쉬는 것이었다.
“형?”
“아무래도 가봐야겠지.”
샌즈는 어깨를 들썩이며 자리를 박찼고, 파피루스도 급히 제 형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복도로 나간 순간 긴 어둠이 둘의 앞에 드리워지고, 앞도 뒤도 분간가지 않는 검은색으로 발을 내딛자 회색빛 복도는 순식간에 연보라색 복도로 탈바꿈했다.
“음, 안녕....?”
파피루스는 눈앞에 주저앉은 인간에게 어색한 인사를 건넸다. 숨을 고르던 인간은 고개를 들었다가, 에그머니, 하고 작게 소릴 지르며 몸을 움츠렸다.
“역시, 저는... 저승길에....”
“인간들은 지하를 저승으로 보는 풍습이 있다곤 하지만, 적어도 우린 살아있는걸? 뼈가 짜릿할 정도로.”
“인간들...?”
“난 샌즈야. 뼈다귀 괴물.”
“괴, 물...?”
“할 얘기가 긴데, 일단 일어나서 얘기하는 게 나으려나?”
샌즈는 윙크를 하며 손을 내밀었다. 인간은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짓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샌즈와 파피루스를 바라봤다. 그리고 방금 전 놀란 모습이 거짓말인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듯 샌즈가 내민 손을 붙잡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의외네? 괴물을 처음 본 인간치곤, 금방 적응한 것 같아?”
“아니요. 그... 아주 오래전에 들었던 전설이 생각나서...”
“전설?”
“이 산엔... 괴물들이 봉인되어있다는...”
인간은 기억을 더듬으려는 듯 손가락으로 이마를 두들겼다. 어림잡아도 몇 십 년의 세월이 누적된 길을 되돌아간다는 건, 꽤 고된 일이라는 듯 인간의 얼굴에 주름이 깊어졌다.
“...하지만 기억나지 않아요. 아주 오래 전, 어쩌다 들은 이야기고...”
“그럼 그런 전설이 깃든 산엔, 어째서 온 거야? 뼈가 쑤실 법도 한 데 말이지.”
인간은 갑작스런 질문에 놀랐다는 듯 고개를 들었지만, 그리 좋은 이유로 오른 건 아닌지 표정이 몹시 어두워졌다. 괜한 걸 물어봤단 생각을 하면서도 마땅히 돌릴 화제가 떠오르지 않는 샌즈의 등 뒤에서
“자, 자! 어쨌든! 인간!”
좀 전까지 말없이 인간을 바라보던 파피루스가 난입했다. 과장되게 등에 걸친 망토를 한 번 휘두르며 파피루스는 가슴팍을 내밀어보였다.
“나 위대한 파피루스는! 인간은 나쁠 수도 좋을 수도 있으니 신중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정책에 따라! 인간을 곁에 두고 지켜볼 생각 이니라!”
인간은 그런 파피루스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다, 어린 아이의 재롱을 귀엽게 바라보는 어른의 웃음을 지어보였다.
“어머.”
“그러니! 인간은 겁먹을 게 하나도 없도다! 이 위대한 파피루스를 믿고 따라오면 되느니라!”
“그럼... 잘 부탁해요. 파피루스.”
인간은 손을 파피루스가 내민 손을 향해 살며시 제 손을 내밀었다. 주름지고 앙상한 손이지만, 한 때는 그 어떤 손보다도 희고 곱지 않았을까. 그런 상상을 하는 샌즈를 뒤로 하고 파피루스는 인간을 에스코트하기 시작했다.
“여긴 폐허! 지하의 가장 안 쪽 지역인데, 안심해! 낙엽이 있긴 하지만 그 뿐이니까! 가시 퍼즐이 있었지만, 그것도 내가 전부 치워버렸거든! 물론 스위치만 누르면 되는 거고 갑자기 작동한다던가 하는 건 없었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파피루스의 설명을 들으며 샌즈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한 때 스노우딘에서 친구들과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던 시절처럼, 자연스러운 웃음을 지었단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 그저 그 뒤를 따라갔다.
인간이 나타났단 사실에 지하는 다시 한 번 들썩였다. 처음엔 전의 인간이 왕과 여왕과 근위대장을 포함해 여러 괴물들을 해치웠단 사실을 떠올리며, 이번에도 같은 비극이 반복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곳곳에 퍼졌으나 그러한 두려움이 사라지기까진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간밤에 좋은 꿈 꾸셨나요?”
저녁노을처럼 고요한 인간의 언행은 괴물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기엔 충분했다. 게다가 인간은 연로한 몸이었다. 거슨 할아버지처럼 나이 든 인간을 경계하기엔 괴물들은 매몰차지도 독하지도 못했다.
“저....”
두툼한 목도리를 한 괴물이 인간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낡았지만 꽤 두툼한 목도리를 수줍게 내밀었다.
“여긴 추우니까, 이걸 쓰시면 나을 거예요.”
“어머, 고마워라. 정말 따뜻해 보이네요.”
인간은 조심스럽게 목도리를 목에 걸쳤다. 그리고 무릎을 구부려 목도리 괴물과 눈높이를 맞춘 뒤, 미소를 지으며 괴물의 목도리를 고쳐 매줬다. 그 자상한 손짓에 괴물은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인간. 스노우딘은 어때?”
“춥긴 하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마을이네요.”
인간의 흐릿한 눈동자 너머로 반짝이는 눈송이들이 흩날렸다.
“그렇지? 여긴 참 좋은 곳이야! 비록 뼈가 시릴 만큼 춥지만! 다들 마음만큼은 핫랜드 괴물 못지않게 뜨거운 열정을 지니고 있다고!”
제 마을을 칭찬하느라 여념이 없는 파피루스를 보며 인간은 미소를 지었다. 눈 때문에 느려진 인간의 걸음에 맞춰 걸어가며, 파피루스는 스노우딘 마을 곳곳을 빠짐없이 소개했다. 저긴 도서관이며 다양한 동화책이 있다, 여긴 크리스마스 트리가 있는 광장이다... 이미 첫 날에 마친 설명이었지만, 인간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은 진중한 모습으로 파피루스의 말을 경청했다.
“형은 항상 저기서 기름진 음식을 먹느라 바쁘거든. 그런 게으른 형을 보살피는 것도 내 의무지만! 아무튼 저긴 너무 위험해! 뼈가 녹아버릴 만큼 뜨거운 기름 냄새가 가득하다고!”
인간은 손을 뻗어 파피루스의 등을 쓰다듬었다. 갑작스러운 인간의 손짓에 파피루스는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싫진 않았는지 묵묵히 인간의 손짓을 받아들였다.
“형을 생각해주다니, 파피루스는 참 좋은 동생이네요.”
“그야! 내가 아니면 우리 형은 게을러서 못 버틸 테니까! 아마 양말에 파묻혀 죽을지도 몰라!”
“그래요. 파피루스는 샌즈의 가족이니까요.”
가족이니까요, 라는 마지막 말에 유달리 힘이 들어간 인간이었다. 그러나 얼핏 스쳐간 바람처럼, 인간의 변화는 너무나도 미약해 그 누구도 말의 무게를 눈치 챌 수 없었다.
연로한 인간을 위해 파피루스는 리버우먼의 배를 타고 가장 짧은 길을 통해 성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도 몇 번인가 괴물을 만났지만 대부분 인간의 부드러운 모습에 누그러진 태도를 보였다. 파피루스는 그런 인간과 괴물을 보며, 이번에는 정말 모두가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매번 쫓아와줘서 고마워요.”
“그야! 난 지금 지하의 왕이니까, 인간을 지켜보는 건 내 의무이자 모두에 대한 의무니까!”
그러면서 파피루스는 인간을 위해 특별히 만든 스파게티를 내왔다. 가족인 형도 그럭저럭이란 수식어로 얼버무릴 맛인데도, 인간은 매번 파피루스가 내온 식사를 깨끗이 비웠다. 그리고 어김없이 식사 후엔 파피루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거나 퍼즐을 풀곤 했다.
샌즈는 말없이 인간을 바라봤다. 이따금 뭔가 끓어오르는 듯한 기침 소리가 들렸다. 그런 불협화음은 잠깐이었고, 파피루스 또한 그런 잠깐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샌즈는 작은 것이라도 놓칠까봐 두려워하는 탐정처럼 집요하게 주변을 맴돌았다.
“....그래서 토끼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쉰 목소리의 끝에 파피루스의 물기 어린 목소리가 이어진다. 인간은 옆에 웅크린 파피루스의 머리를 말없이 쓰다듬었다. 주름진 손이 뼈 위를 미끄러진다.
“인간은 왜 내 머리를 쓰다듬는 거야? 내 머리가 그렇게 감촉이 좋은 거야?”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흠. 하긴! 뼈니까 매끄럽긴 하지!”
인간의 일과는 파피루스의 곁에 머무르는 것으로 시작해 끝이 난다. 나이가 든 사람은 잠이 짧다더니, 저녁이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품을 시작한 파피루스를 달래고 재운지 한참이 됐는데도 인간은 잠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밤이 되어야 빛을 발하는 달처럼, 등불을 들고 성이나 지하 곳곳을 배회했다.
샌즈는 그런 인간의 뒤를 말없이 쫓아갔다. 눈치 챘는지 채지 못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쪽이든 샌즈에겐 아무래도 상관없는 문제였다. 샌즈는 그저 인간을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문제였으니까.
“....샌즈?”
인간은 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아섰다. 샌즈는 숨는 기색도 없이 능청스럽게 인간의 앞에 섰다.
“조용한 밤이지? 지하는 항상 어둡고 조용하지만.”
“샌즈는 잠이 없네요.”
“당신이야말로. 뼈가 시릴 만큼 돌아다니면 위험하지 않겠어?”
“괜찮아요. 어차피....”
인간은 급히 말을 삼켰다. 그리고 이어지는 기침. 끓어오르는 것을 넘어 끊어질 것 같은 소리에, 샌즈는 제 갈비뼈가 끊어지는 오싹함을 느꼈다.
“....”
무거운 침묵이 짓눌렀다. 먼저 운을 뗀 건 샌즈였다.
“여기 온지도 몇 주가 되가는데.... 슬슬 말해도 되지 않겠어? 왜 여기에 왔는지.”
인간은 샌즈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손이 떨리는지 등불의 빛이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둘의 그림자도 같이 흔들렸다.
“아이가, 있었어요.”
그 목소리엔 잔잔함도 고요도 없었다. 그저 오랜 시간동안 닳지 않고 갈아온 날카로움이 서려있었다.
“어느 날, 사라졌어요.”
덜컥덜컥. 등불이 심하게 흔들리면서 안의 담긴 그릇과 촛불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전설이 깃든 산으로 올라갔다는, 목격담이 마지막이었어요.”
덜커덕덜커덕덜커-균형을 잃어버린 등불이 무너지면서 빛이 사라졌다. 순식간에 삼켜진 어둠 속에서 빛나는 건 천장에 박힌 반짝이돌이 전부였다.
“찾으려고 해도, 산에 접근할 수 없었어요. 오래 전부터 출입 금지였으니까. 눈앞에 아이가 올라갔다는 산이 있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토해내는 숨소리가 습기 어린 공기를 흔들었다. 오랜 세월동안 가슴 속에 숨겨둔 것들이, 가감 없이 쏟아져 내린다.
“다른 가족들이 있고, 시간이 지나고, 다른 자식들이 성장해 손자를 봤지만, 잊을 수 없었어요.”
원망일까. 미련일까. 세월만큼 익어버린 감정이 어둠 속에 고스란히 녹아 뼈다귀의 골을 울린다.
“적어도, 우리 아이가 마지막으로 사라졌던 그 산이라면.... 죽어서라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낙엽처럼 바스라질 듯, 눈송이처럼 녹아버릴 듯, 빗방울처럼 흘러가버릴 듯,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흩어질 듯- 인간의 몸이 어둠 속에서 아무렇게나 무너져 내린다.
“어쩌면, 우리 아이가.... 여기에.... 이곳에서....”
인간의 손은 어둠 속을 휘저었다.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잡으려는 듯, 애처로운 손에 닿은 건 살점이 하나도 남지 않은 손이었다.
억누른 흐느낌이 어둠을 흔들었다. 희미하게 울리는 빗소리를 커튼 삼아 숨어버린 인간과 괴물을, 빛은 끝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말없이 방관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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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라서 약간 날림인 느낌이 든다.
게다가 다 쓰지도 못해서 상하편으로 끊어버리네.
그래도 IF 시리즈는 내가 처음 썼던 회지였던만큼,
다시 갈아엎더라도 제대로 쓰고 싶은 마음이 크다.
앞으로 시간 넉넉할 때 아낌없이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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