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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위의 목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날아가는 소리가 뒤섞였다. 너가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꺾어들어가면 아마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는 달려가면서도 조심스럽게 절벽에 붙어서, 플라위와 샌즈가 너를 보지 못 하도록 조용히 숨어들었다. 플라위가 샌즈가 있는 곳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 밑이었고, 그 절벽에는 갈라진 듯한 구멍이 있었는데 그 구멍 속에서 빛나는 무언가가 지켜보는 듯 했다. 그곳에서 샌즈와 플라위는 전투를 하고 있었다.
플라위는 샌즈에게 '친절 알갱이'를 끊임 없이 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마법은 샌즈를 전혀 맞추지 못 했다. 샌즈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몸놀림으로 그 알갱이들을 피했다. 그런 와중에도 샌즈는 플라위를 직접 공격하지 않았다. 샌즈는 어디서 생긴 지 알 수 없는 뼈다귀를 계속 날려서 플라위가 땅 속으로 숨어들거나 앞으로 나서지 못 하게 막았다. 플라위는 점점 뒤로 밀리고 있었다. 왜? 그냥 죽여버리는 게 좋을 텐데. 이미 플라위가 프리스크를 한 번 죽였다는 사실을 샌즈에게 말해주면, 어떻게 할 지 궁금한 걸.
'차라, 그럴 것까진 없어. 저 괴물이랑 한 번 얘기를 해보는 게 나을지도…….'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널 보자마자 속이고 죽인 사기꾼이야. 이번엔 샌즈를 죽이려고 하고 있잖아.
'뭔가 이상해, 차라. 저 괴물이 아까 오랜 친구를 만나야한다고 했어. 샌즈는 그걸 막고 있는 거같고. 지금까지 보이지도 않던 플라위가 왜 갑자기 저러는 거야?'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저 괴물은 이미 널 한 번 죽인 적이 있고, 이번엔 샌즈를 죽이려고 하고 있어. 샌즈가 이상한 능력을 써가면서 플라위를 막는 걸 보면, 분명히 너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는 걸 알고 그런 걸 거야. 샌즈는 지금 널 보호하고 있는 걸 거라고. 그런데 여기서 너가 나타나버리면, 샌즈가 하는 지금 이 짓들이 의미가 없어지는 거잖아. 프리스크, 빨리 돌아가서 파피루스랑 같이 있자. 그런 건 나중에 이야기해도 돼.
'그게 문제야. 오랜 친구를 만나는데 나와 관련이 있다는 거잖아. 도대체 그게 무슨 뜻이야? 내가 플라위가 오랜 친구라는 거야?'
…….
플라위는 쉴 새 없이 공격하고 있고, 저기에 너가 끼어들어서 휘말리면 죽을 수도 있어. 프리스크.
"이상한데? 나는 말하는 황금꽃은 처음 보는데, 그 황금꽃이 왠지 날 안다는 듯한 투로 지껄이는 게 마음에 안 드는군."
샌즈가 플라위에게 뼈다귀 공격을 날리면서 말했다. 너는 샌즈가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때 샌즈의 등 뒤에서 거대한 뼈다귀 형체가 나타났는데, 마치 큰 짐승의 머리 같았다. 그 머리의 아귀가 벌어지자 엄청난 빛을 내며 무언가가 발사되었다. 그것은 정확히 플라위의 줄기 밑 부분을 명중했고, 플라위는 뿌리가 뽑혀 맥없이 날아가, 쓰레기통에 휴지를 던지는 모습처럼 포물선을 그리다가, 절벽 바로 앞에 떨어졌다. 플라위는 성난 짐승의 소리를 내며 땅 속으로 들어가 숨으려고 시도했지만, 파란색의 뼈다귀가 날아와 땅 속에 박혔다. 플라위는 더 이상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 했다. 샌즈가 천천히 플라위에게 다가갔고, 그러면서도 거리를 유지했다.
"말하는 꽃아, 내가 좀 물어보지. 우리 어디서 '본' 적 있나? 난 그런 기억이 없어."
"너한테는 말할 거 없어, 이 쓰레기통아. 죽이려면 죽여."
"헤헤, 네가 죽길 원한다면 죽여서 좋을 게 없겠네. 딱히, 죽이고 싶지도 않고."
샌즈의 등 뒤에 있던 뼈다귀 머리는 사라졌지만, 경계를 늦추는 것 같진 않았다. 샌즈는 말을 이어갔다.
"도대체 네 오랜 친구란 게 누구지? 인간 꼬마는 이곳에 떨어진지 얼마 안 된, 그냥 꼬마일 뿐이야."
"넌 말해봤자 몰라. 그 꼬마, 뭔가 숨기는 게 있어."
"헤, 그래? 혼잣말을 좀 한다는 것 외에는, 딱히 이상한 점은 없던데."
"그 말을 누구에게 하는 건지는 못 들었는가 보지? 어차피 알지도 못 할 테지만."
너는 그 말을 들으면서 스스로의 실수를 깨달았다. 나와 대화를 할 때 차라라는 이름을 불렀기 때문에 저 플라위가 움직이기 시작한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너는 속으로 도대체 플라위가 차라를 어떻게 아는 건지 생각했지만, 알 수 없었다. 나도 정확히는 모르니까, 그저 플라위가 스스로 지껄이길 기다리는 게 나을 것이다. 여기에 계속 숨어서, 샌즈와 플라위가 대화하는 걸 듣다보면 뭔가 단서가 나올지도 모른다. 어, 프리스크?
프리스크, 제발, 제발! 제발 가지 마! 위험하다고!
"위대한 꼬마 대왕님 납셨군."
"꼬마, 내 말을 듣지 않았네."
"파피루스 씨는 여기에서 빠져나갔어요. 아마 지금쯤 투덜거리면서 기다리시겠죠."
"그렇다면 이 일을 빨리 끝내는 게 좋겠어, 친구."
너는 플라위에게 다가갔다. 내가 아무리 말려도 아랑곳하지 않을 것이다. 샌즈는 그런 모습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는데, 여차파면 죽여버리겠다는 표정으로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 그 물고기한테 창을 맞았을 때, 샌즈가 있었으면 참 좋았겠다 싶을 정도였다. 너를 보던 플라위의 표정이 흉측하게 바뀌더니, 한바탕 뒤틀린 목소리로 웃어댔다. 너는 그 웃음 소리가 굉장히 듣기 싫은 소리라고 생각했다. 너가 처음 죽어가던 때에 들리던 그 소리였다.
"플라위, 도대체 오랜 친구란 게 누구야?"
"너는 차라가 아니야 그렇지?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지만, 너는 차라와 함께 있어."
"……, 맞아. 차라는 나랑 같이 있어."
플라위가 더욱 흉측한 모습으로 바뀌며 웃었다.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통쾌함인지, 기쁨인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사악한 표정이 플라위에게서 나타났다. 꽃의 형상이라고 믿기 힘든 만큼 잔인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저 꽃, 너무 불편하다. 난 너 같은 거 몰라. 내 기억 속에 말하는 꽃따위 없다고.
"하지만, 차라는 널 모르겠다는데."
"정말로 날 기억 못 하겠어, 차라? 너의 가장 친한 친구!"
플라위의 얼굴이 이상하게 바뀌었다. '너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말하는 순간, 원래 플라위의 목소리가 아닌, 내가 아주 잘 아는 괴물의 목소리가 들렸다. 플라위의 얼굴이 서서히 바뀌더니, 내가 알던 괴물의 얼굴이 나타났다. 도대체 어떻게? 너가 어떻게 그런 모습으로 있는 거야? 난……, 난……,
"차라가 이제 너가 누군지 알겠대. 그리고 굉장히 괴로워하는 것 같아. 맨날 내가 하는 행동마다 옆에서 얘기하던 차란데, 지금은 정신이 없는 것 같아."
"히히, 어울리지 않네, 차라. 마음씨가 그렇게 여리진 않았잖아. 내가 하는 건 다 너한테서 배운 교훈들이라고. 인간들을 모두 죽여버리고, 세계를 박살내자고 했잖아. 혹시, 내가 처음에 그 계획을 방해해서 그러는 거야? 그때 내 행동에 대한 복수로 나를 모른 척하고 인간 꼬마 뒤에 숨어서 날 괴롭히는 거야? 상관 없어. 얼마든지 그렇게 해도 돼, 차라. 하지만, 난 널 기다릴 거야. 난 네 멋진 계획에 따라서 움직여줄 자신이 있어. 난 알아, 차라. 내 최고의 친구. 언제든지 날 찾아와서 이 세상을 부숴버릴 나의 친구! 그 인간 꼬마를 어떻게 갖고 놀지 고민하는 네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서 정말 행복해! 하하하! 하하하!"
플라위는 간헐적으로 기침을 해대는 사람처럼, 웃음을 그렇게 토해냈다. 미친 사람, 아니 미친 괴물이었다. 난, 난……, 그럴 생각이 없어.
"차라는 그러고 싶지 않대."
"그래? 차라가 정말로 그러고 싶지 않다고 했다고? 그러면 나도 어쩔 수 없지. 차라가 원하는 대로 두는 수밖에 없어. 너와 함께 지하 세계를 나가서 행복하게 살게 되겠지."
플라위의 목소리가 너의 머리 속에서, 아니, 나의 머리 속에서 울려서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 버티기가 힘들다.
"인간들 사이에서 말이야"
플라위는 한 번 더 웃어제꼈다.
"그, 그게 어쨌다는 거야?"
"차라, 내가 물어볼게. 너가 어떻게 그 애의 영혼 속으로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어떤 인간이 떨어졌어도 그 인간의 영혼 속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하면, 정말 너는 그 인간을 무조건 도와줬을까? 만약, 그 인간이 어린 아이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어른 남자였다면 그렇게 잘 도와줬을까? 그렇게 확신할 수 있어?"
프리스크, 제발 플라위에게서 떨어져줘. 저 이야기를 더 이상 듣기 싫어.
"이 꼬마 애의 영혼 속에서 속지 마! 너는 지금 이 꼬마의 감정에 지배당하고 있어서, 그게 너가 느끼는 건지, 이 꼬마애가 느끼는 건지 구분을 못 하는 것뿐이야. 영혼이 없는 네가 연민이나 동정 따위 있을 리가 없어! 나도 없거든. 그런데 너가 그렇게 착해졌다는 건, 너가 착한 게 아니라 이 꼬마가 착한 거야! 그런 점에서 여전히 넌 내 최고의 친구야, 차라!"
"차, 차라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프리스크, 제발, 날 변호해줄 필요도 없어. 플라위는 계속 나를 비난할 거고, 너는 나를 변호하겠지. 하지만 변하는 건 없어, 프리스크. 플라위는 포기할 줄 모르는 쓰레기니까. 빨리 여기서 벗어나. 뒷일은 샌즈한테 부탁하고 여기서 도망치자. 네 뒤에 샌즈가 널 지켜보고 있어. 점점 너를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어. 이러다간 샌즈도 너를 경계할 거야. 샌즈랑 친구가 됐잖아. 굳이 더 의심받을 행동은 할 필요 없어. 이제는 빨리 돌아가서 파피루스에게 졌다고 하고, 너가 할 줄 아는 요리를 파피루스에게 대접하자. 빨리, 여기서 나와줘. 부탁할게.
너는 그제서야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나의 호소를 드디어 들어준 것이었다. 플라위가 지껄이는 말을 무시하고, 샌즈에게 무언가를 말하려 뒤돌아 섰을 때, 플라위가 소리쳤다.
"도망치지 마, 차라! 그 인간의 영혼 따위 부숴버리라고! 내가 했던 것처럼!"
그 순간 샌즈의 뒤에서 커다란 뼈다귀 머리가 나타났다. 백색빛을 내는 섬광이 그 머리에서 터져나왔고, 그 섬광 속에서 플라위가 타들어갔다. 플라위가 섬광이 뿜어내는 빛과 소리 속에서 웃어대는 것 같았다. 죽어가는 순간 속에서도 당당하기 그지 없이 웃으면서 플라위는 타들어갔다. 섬광은 끊임없이 나왔고, 그 섬광 속에서 플라위는 풀 한 포기 남지 않고 타들어갔다. 죽어가는 와중에도 웃다니, 저건 괴물이 아니었다. 저건, 악마야.
샌즈의 뒤에서 뼈다귀 머리가 사라졌다. 불이 붙어있던 왼쪽 눈도 사그러들었고, 눈동자는 없었지만 좀 더 따뜻한 눈빛으로 너를 쳐다봤다. 그러고는 어깨를 으쓱 했는데, 어쩔 수 없었다는 몸짓이었다. 너는 별로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못된 괴물 하나가, 아니, 단순히 나쁘다고 표현하기엔 너무 사악한 괴물 꽃 하나가 없어졌다고 해서, 너의 도덕성에 흠이 가진 않았다. 샌즈는 너를 쳐다보며 말했다.
"꼬마야, 우리 할 얘기가 많아진 것 같은데."
"그런 것 같아요, 샌즈."
"일단 파피루스한테 돌아가자. 그리고 집에 가서 좀 쉬자고."
"네, 샌즈."
샌즈가 너의 머리에 뼈다귀 손을 얹었다. 금방, 스노우딘 마을의 입구에 들어섰다. 입구 저편에서 파피루스가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너를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샌즈와 너는 파피루스에게 다가갔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
냉장고에 제대로 된 식료품은 하나도 없었다. 파피루스가 만든 스파게티로 꽉 차 있었고, 냉장고 구석에는 감자칩 봉지가 처박혀 있었다. 도대체 어떤 재료로 키슈를 만들어줬던 건지 이해가 안 되는 정도였다. 파피루스를 내보낼 핑계로 걸었던 내기가 있으니, 너가 요리를 만들어야 했지만 재료가 마땅치 않았다. 파피루스는 인간의 음식은 도대체 어떨까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샌즈는 어린 꼬마한테 요리를 시키는 건 잘못이라고 말하며 말렸지만, 너는 굳이 꼭 요리를 해줘야 한다고 설득했다. 파피루스는 영 찜찜하다는 듯 싶으면서도 인간의 요리에 대한 기대가 큰 것 같았다. 그런 식으로 나오니 샌즈도 별 말을 하지 못 했다.
"으음, 집에 있는 거랑 비슷한 게 하나도 없어. 치즈도 없고, 그 흔한 양파도 없고, 감자도 없고, 야채는 하나도 없어. 고기 같은 걸 바란 건 아니었는데."
괴물 세계에서 식재료를 구한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 된 것이었다고 너는 생각했다. 이대로라면 또 샌즈에게 도움을 받아야할 것 같았다. 파피루스한테 구해달라고 하면 요리 재료로 스파게티를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스파게티는 뭘로 만드는 건지 이해가 안 됐다. 너가 못 찾는 걸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냉장고나 벽장을 계속 뒤졌다.
"그런데, 차라."
응?
"플라위가 했던 말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말이야?"
……, 그건 샌즈랑 같이 얘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러고 싶다면 그렇게 해, 차라."
"꼬마, 그 차라라는 녀석과 대화하고 있는 거야?"
어느 순간 너의 뒤에 샌즈가 있었다. 너는 이제 익숙하다는 듯, 환영 인사도 하지 않았다.
"네, 전 항상 차라랑 대화하고 있어요."
"헤, 그래? 그거 멋지구만. 그런데 말야. 내가 차라라는 아이에 대해서 좀 조사했거든."
샌즈가 눈꺼풀을 웃는 모양으로 만들며 말했다.
"꽤 흥미로워서 말야. 음, 식재료라도 사러 갈래?"
샌즈는 둘이서 얘기할 시간을 가지자는 뜻으로 그러는 것 같았다. 너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냉장고 문을 닫고 샌즈를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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