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AngeliaDark
원제 Full Circle
원문 http://archiveofourown.org/works/6092586/chapters/14020666
번역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
1 :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407509
2 : https://gall.dcinside.com/undertale/454579
뿌린 대로 거두리라
-3-
마을이 달라지리라는 것은 빈말이 아니었다.
첫날부터 살벌했다. 파피루스를 공격하려던 갯과 괴물 일곱 중 셋은 그날 밤을 넘기지 못했고, 네 번째는 뼈를 없애주자마자 죽었고, 남은 셋만 놓여나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파피루스는 놈들을 놓아주기 전 갖은 규칙을 정했다. 보초병은 죽을 만큼 위독하지 않는 한 근무시간을 엄수해야 한다. 근무일지는 매 교대시마다 예외 없이 제출해야 한다. 근무시간을 보초병끼리 바꿀 순 있지만 사전에 파피루스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보초병은 평상시에도 질서 유지에 힘써야 하고, 모범적인 행동을 보여야 한다. 주민들의 길거리 싸움은 금지되었고, 싸움을 하려는 자들은 파피루스에게 결투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정당방위라고 주장하면 전후 사정을 철저히 조사하여 잘잘못을 가린다.
가볍게는 며칠간 구금에서 무겁게는 만 하루 동안 야외에서 뼈에 찔려 있기까지 다양한 처벌이 정해졌다. 최고형인 공개 처형식에는 마을 괴물 모두 참석해야 한다.
처형식 두 번 만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예의 개 무리 건도 있었지만, 술김에 파피루스 얼굴에 주먹질을 한 어느 야간 보초병의 최후는 확실히 인상적이었다. 짧지도 깔끔하지도 않은 처형이었다. 샌즈는 무시무시한 사형 방법들이 실린 인간 역사책을 본 적이 있는데, 동생이 그 자에게 한 일들은 그 책에 덧붙여도 손색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그 자를 죽이던 파피루스의 표정이었다. 광기어린 분노도 아니고, 강렬한 기쁨도 아니고, 그저 보기만 해도 오싹할 정도로 침착한 표정. 무수한 경험으로 숙달되어서밖에 나올 수 없는 그 무심함이야말로 샌즈를 뼛속까지 흔들어 놓았다.
파피루스……. 무릎뼈만 까져도 울음을 터뜨리고, 겁을 먹으면 샌즈의 실험복 자락에 숨던 어린 동생이, 아무렇지 않게 산 괴물의 생살을 조금씩 뜯어내고 HP를 오직 한 칸씩만 깎아내어 극도의 고통에 시달리다 소멸하게 만들면서 그걸 온 마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다니.
샌즈는 정말로 무서워서 죽을 것 같았다. 다른 괴물들은 남남이기라도 하지, 그와 파피루스 사이에는 뿌리 깊은 악연이 있었다. 샌즈가 사고를 치기를, 아니 사소한 실수라고 하기를 노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래서 샌즈는 고개 푹 숙이고 최선을 다해서 규칙을 지켰다.
아무 때나 잠드는 버릇 때문에 위험했던 적도 많지만, 말도 안 되게 운이 좋아 졸거나 늦는 모습을 들키지는 않았다. 한번은 파피루스가 확인하러 오기 직전 거의 동시에 초소에 도착한 날이 있다. 동생이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는 내내 긴장해서 땀이 줄줄 흘렀고, 지나가자마자 그 자리에서 졸도할 뻔했다.
그날 근무는 유달리 힘겨워서 교대하자마자 그릴비로 직행해서 정신이 혼미해질 때까지 술을 들이붓고 쓰레기장에서 떡을 쳤다. 일이 끝나자 제 자신이 쓰레기통보다 더 더럽게 느껴졌으나 당장의 자학욕은 충족되었다. 다음날은 비번이니 잠이나 푹 자면 숙취든 여느 때와 다름없는 자기혐오든 덜어지겠거니 하며 터덜터덜 집으로 걸었다.
복도에 들어서는 순간 낌새가 이상했다. 본능적으로 몸을 날린 자리로 공격이 아슬아슬하게 빗겨 갔다. 술기운에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이어지는 공격들을 영혼으로 감지하고 되는 대로 피하면서 빠져나갈 길을 찾았지만 창문 하나밖엔 없었다. 절대로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지만 당장에는 다른 방법이 없으니 고민 않고 몸을 날렸다. 그의 HP로는 떨어지는 충격을 버티지 못하리란 사실을 깨달았을 때엔 이미 늦었다. 뼈가 박살나는 고통을 예감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아픔은 오지 않았다.
왜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의식이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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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파피루스가 지나가다 창문에서 떨어지는 샌즈를 보고 마법으로 공중에 멈춰 준 것이었다.
범인들은 현장에서 붙잡혔고, 파피루스의 규칙에 불만이 많아 샌즈에게 화풀이를 하려 했다고 진술했으며, 샌즈가 자는 사이 공개 처형을 당했다. 십 년 내내 제가 얼마나 병신 같은 형인지 구구절절 술주정을 늘어놓았으니 둘이 형제간이란 건 비밀도 아니었다.
샌즈는 눈 뜨고 보니 마을 유치장에 있었다. 술이 깨고 상황 파악이 되어갈 때쯤 파피루스가 들어와 경멸어린 눈으로 내려다보며 코웃음을 쳤다.
“술을 얼마나 처마셨으면 적이 있는 줄도 모르고 죽여줍쇼 하고 모가지를 내밀어? 창문 뚫고 뛰면 또 어쩌잔 건데? 한심한 새끼. 너 같은 형 둔 나는 웬 망신이냐? 네 몸 하나 간수 못해서 내가 처형을 해야겠냐!”
뒤돌아 나가다가 고개 돌려 샌즈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약해 빠졌어.”
샌즈는 온몸이 쑤시는 채로 감옥에 이틀 더 갇혀 있어야 했다. 풀려나니 새 규칙이 생겨 있었다. 공공장소에서 만취하면 최대 구금 일주일에 사회봉사 일주일. 덕분에 보초 근무가 끝나도 술을 마실 시간이 없었다.
새 규칙은 샌즈의 평판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동생과의 관계도 마찬가지. 일 끝나면 주점을 찾는 버릇은 여전했지만 딱 무서움을 가라앉힐 정도로만 마시지 그 이상으로 취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술을 입에 대는 것만도 파피루스가 알면 가만두지 않겠지만 조금이라도 취기가 돌면 마음이 편했다.
게다가 그릴비도 파피루스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영업에 지장이 되는 규칙도 규칙이고, 아스고어 왕의 권력을 거드는 왕실 근위병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릴비의 주점에선 비교적 분방한 취중진담이 오갔으며 예사로운 볼일이 있는 괴물들은 다들 여기서 만났다. 주먹다짐 따르는 볼일은 늘 그랬듯 다른 데서 해결했고.
샌즈는 습격사건 이후 집에 들어가려면 마음이 편치 않았기 때문에 그릴비에게 돈을 좀 주고 주점 구석 빈 벽장에서 눈을 붙였다. 나중에는 얼마 안 되는 짐을 잠자는 벽장에 다 옮겨 두고 알아서 방 빼라고 방세도 내지 않았다.
그 생활은 오래 가지 않았다.
퇴근하고 한참 지나 그릴비에서 저녁 먹으면서 한 잔 걸치는데, 문이 열리더니 가게 안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샌즈는 등골이 오싹했다. 돌아보지 않고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나무 바닥을 딛는 딱딱한 발소리가 점점 다가오다가 굳어 있는 샌즈 바로 뒤에서 멈추었다. 잔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정말로 딱 한 잔뿐이었지만 술을 마시고 있었다는 사실은 숨길 수 없었다.
“필요하신 것 있습니까, 파피루스 씨?”
그릴비는 파피루스가 그의 가게 안에 있단 사실이 불쾌한 듯했다. 날선 태도가 목소리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목 뒤에서 가죽 장갑이 구겨지는 소리에 샌즈는 움찔했다.
“호칭이 거슬리는군.”
날카로운 목소리가 두려워 식은땀이 났다.
“그리고 당신한텐 용건 없어.”
느닷없이 우악스런 손이 샌즈의 멱살을 잡고 바 의자에서 끌어내렸다. 소리를 지르고 본능적으로 균형을 잡으려고 발버둥쳤다. 술잔이 흔들려 넘쳤다. 그릴비의 안경 너머 가늘게 뜬 눈이 빛났다.
“저희 가게에선 폭력을 금하고 있습니다. 파피루스 ‘경’.”
“알아서 나갈 테니 걱정 마.”
파피루스는 샌즈를 질질 끌고 걸어 나갔다. 객들은 불쌍하다는 듯 쳐다보았지만 돕겠다고 나서는 이 없었다. 샌즈 역시 도움을 기대하진 않았다.
밖에 나오자 파피루스는 샌즈를 버럭 소리치며 떠밀었다.
“어린애처럼 끌려 다니지 마!”
샌즈는 크게 휘청였지만 넘어지진 않았다. 저도 모르게 주먹이 쥐어졌지만 반항하지 않을 자제력은 있었다.
파피루스는 쯧 하고 혀를 차며 다시 옷깃을 틀어쥐었다.
“이번엔 취하지는 않았나 보군. 상관없어.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질 않나, 싸움을 걸고 다니지를 않나. 요즘은 술집 벽장에서 잔다며.”
‘미친, 그건 또 어떻게 안 거야.’
“너 하나 욕먹는 게 다가 아니야. 나까지 망신이란 말이다!”
다시 긴장해 땀이 났다. 파피루스는 샌즈를 잡은 채 위병 숙소로 끌고 갔다. 꽤 넓은 집이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덩치 큰 사냥개가 으르릉거렸으나 파피루스가 한 번 쳐다보자 조용해졌다. 입가 털이 허옇게 닳은 양이 애완용은 아니다. 주점에서 봤던 손 잘린 괴물 사연이 짐작이 갔다.
파피루스는 샌즈를 주방까지 끌고 가 식탁 의자에 던져 놓고 서랍을 뒤졌다.
“우리가 형제란 걸 숨길 순 없어. 네가 하는 짓을 보면 내 생각이 안 날 수가 없단 말이다.”
섬뜩한 안광이 샌즈를 노려보았다. 샌즈는 사지가 굳어지고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내 형이 술벌레인 건 용납 못해. 거지꼴로 그런 데 빌붙는 것도 용납 못해. 약하고 만만한 호구새끼로 보이는 건 절대 용납 못해.”
파피루스는 줄칼을 들고 돌아섰다. 거친 요철이 위험스레 번득였다.
“샌즈, 남들 보는 인상 문제다. 그 인상 날카롭게 해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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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빨이 서서히 빠득빠득 갈려 나갔다. 너무 아팠다. 부끄럽게 두 번이나 울음을 터뜨렸고 그 때마다 호되게 뺨을 맞았다. 고문에 가까운 손질이 끝나자 새벽이었다. 아파서 기절할 것 같았다. 게다가 보초 교대가 삼십 분 남았고 오늘도 예외는 없어서 파피루스가 어서 입 헹구고 나가라고 다그쳤다.
끊어지려는 의식을 붙잡고 있는 것만도 용했다. 잠들거나 혼절하지 않은 건 기적에 가까웠다. 다음 교대 시간까지 억지로 버티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비틀비틀 교대 지점으로 걸어갔다. 다른 보초들이 던지는 묘한 시선이 의아하다가도 금방 이가 아파 와 이유를 실감했다.
퇴근하는 대로 벽장으로 가서 너무나 간절했던 잠을 자려는데, 그릴비가 팔짱을 끼고 영 언짢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왜요?”
뾰족해진 이가 익숙지 않아 발음이 샜다.
“동생이 본인 집으로 오라더군요. 서둘러서.”
인상을 펴지 않는 걸 보면 역시 근위병 명령에 따르기가 달갑지 않은 모양이었다. 지친 몸이 휘청거렸다. 하루 만에 세 번째로 눈물이 솟았지만, 고맙다는 고갯짓만 하고 나와 위병 숙사로 비틀비틀 걸었다. 가는 길에 마주치는 괴물들은 그를 슬슬 피했다. 뾰족하게 갈아낸 이빨은 물론 축 늘어진 어깨든 피곤이 덕지덕지 붙은 눈구멍이든 보기 좋은 꼴일 리 없다.
마침내 문 앞까지 와서 노크를 했다. 개가 짖을 때는 긴장했지만 이내 잠잠해지고 문이 열렸다.
“오래도 걸렸군.”
파피루스가 먼저 들어갔고 샌즈는 얼른 문을 닫고 뒤따랐다. 흔들리는 시선으로 개를 바라보자 개는 입맛 다시듯 그를 마주보았다.
“죄송합니다. 서두르려고 했는데, 너무 피곤해서―”
“게을러서겠지. 겨우 하룻밤 샜을 뿐이고, 교대 초소에 커피도 있었을 텐데.
뒷짐을 지자 더욱 엄해 보인다.
“게을러터진 나머지 집도 없이 술집 벽장에서 자는 형이 있단 건 내 위신이 떨어져.”
송곳 같은 눈길이 샌즈를 꼼짝 못하게 꽂아 놓는다.
“가까이서 감시해야겠으니 여기서 살아라.”
샌즈는 입이 떡 벌어졌다. 고맙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혼란스러웠다. 다시 집이 생긴 건 좋다. 깨끗한 집이고 집세도 낼 필요 없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선 그릴비 주점을 제외하곤 스노우딘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일 것이다. 그런데 파피루스와 같이 살면 자기 생활은 당연히 없고 하는 일 하나하나 파피루스가 감시하고 평가할 텐데…….
“설마 싫은 거냐?”
샌즈는 화들짝 정신이 들어 공포에 질렸다. 생각에 잠겨 너무 오랫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허겁지겁 무슨 말이든지 하려는데, 파피루스가 바짝 다가서자 말문이 막힌다.
“내 집에 들이겠다는데. 이따위 거적때기 말고 옷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입히겠다는데.”
파피루스는 샌즈의 멱살을 잡는다.
“집도 절도 없는 너 같은 걸 거둬 주겠다는데, 감사할 줄도 모르냐?”
샌즈는 벌벌 떨며 더듬거린다.
“아, 아니, 고마워! 정말이야, 파피루스. 난!”
“내가 누구랬지?”
소리 지르며 샌즈의 머리를 벽에 찍는다. 지쳐 혼미한 와중에 머리를 부딪치기까지 하자 샌즈는 눈앞이 핑 돌았다.
“날 봐.”
샌즈는 공포에 질려 고개를 처박고 떨기만 했다.
“날 보라고!”
급히 고개를 든다. 눈구멍 가득 눈물이 고였다. 파피루스의 얼굴에 경멸이 떠오른다. 파피루스는 갖은 무기가 걸린 벽으로 가서 짧은 채찍을 가져와 허공에 휘두른다. 샌즈는 겁에 질려 물러서려다 벽에 등이 바짝 붙는다.
“샌즈, 넌 훈련이 필요하겠어. 착각하지 말라고 말했을 텐데.”
파피루스는 예고 없이 채찍으로 샌즈의 어깨를 갈겼다.
“팝ㅡ 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어깨를 붙잡는데 채찍이 또 날아든다.
“틀렸어!”
두 눈이 독기 그득 품고 빛난다.
“맞을 때마다 대장님이라고 불러. 똑바로 기억할 때까지 계속 할 거다.”
채찍이 이번에는 팔을 갈긴다.
“시작!”
“대장님, 잘못했ㅡ”
짜악.
“누가 변명하랬냐? 대장님이라고만 불러!”
“대장님!”
짜악.
“대장님!”
짜악.
“대장님……!”
짜악.
“……대, 대장님……!”
짜악.
채찍은 끊임없이 날아든다. 샌즈는 몇 번을 맞았는지 세기를 포기했다. 더는 못 버틸 지경이 되자 흐느끼며 주저앉아 아픈 손으로 아픈 머리를 감싸고 빈다.
“흑, 대장님, 제발, 대장님, 제발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대장님! 제발 그만요. 제발, 제발……!”
“이제 알겠지.”
파피루스는 마침내 채찍을 거두어 제자리에 걸어 놓았다. 목소리는 언제나와 같이 침착하고 냉정하다.
“위층 오른쪽 방에 가서 자고 아침 일곱 시까지 일어나. 내 집에서 게으름 피우는 건 용서 않는다.”
샌즈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훔쳤다. 눈물이 그치지 않아 앞이 흐렸다. 기다시피 계단을 오르는 한 걸음 한 걸음이 고통이었다. 마침내 다다른 방은 감방처럼 삭막했다. 침대 대신 매트리스 하나, 창살 쳐진 창문 하나. 새 옷이 가득 걸린 문 없는 옷장 하나.
매트리스로 바로 쓰러졌다. 감사도 비참함도 느낄 틈이 없이 달콤하고 자비로운 어둠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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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루스의 숙소에서 사는 건 좋기도 나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괴물들이 그를 죄다 피해 다니니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르게 안전했다. 집도 썩 괜찮은 편이고, 옷은 깨끗하고 몸에 맞으며, 빡빡하게 짜인 일과를 따르자니 자학할 틈도 없었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제 생활도 없고, 자유시간도 없고, 어떤 이유로든 파피루스에게 얻어맞지 않는 날이 없었다. 매일 뼈에 멍이 들고 상처가 난 채로 일을 하기보단 차라리 두통에 시달리던 날들이 나았다.
아무리 호되게 시달려도 1뿐인 HP가 깎이지는 않았다. 잠이 오지 않을 때면 어떻게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는데도 그 아슬아슬한 경계선은 넘어서지 않나 의아한 생각이 들고는 했다. 죽을 정도를 정확히 알고 그 직전까지 몰아붙이는 능력은 그 자체로 두려웠다. 샌즈는 가능한 한 고개 처박고 동생을 피해 다녔다.
혼자 있을 때도 마음 편친 못했다. 파피루스가 그의 삶을 아무리 치밀하고 엄격하게 통제한들 십 년간의 버릇으로밖에 가라앉힐 수 없는 혼돈이 있었다. 유달리 고되었던 날이면 파피루스 못 보는 데서 뼈를 뜯어내곤 했다. 술 대신에는 머스타드를 들이켰다. 그릴비의 특제 머스타드 소스를 마시면 취기가 오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너무도 힘겨운 한 달을 버틴 끝에 겨우 하루 쉬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서, 쓰레기통에 엎드려 그릴비에게 사정없이 따먹히고 욕을 들으면서 자신이 얼마나 나쁜 형이었는지 회개하고 또 회개했다.
평소와 달리 만족스럽지 못하고 자괴감만 들었다. 다행히 규칙을 어기진 않았으니 쉬는 날 뭘 했든 파피루스가 신경 쓰진 않을 거다.
미약한 안도는 오래 가지 않았다. 현관문을 열고 발을 들여놓는 순간 파피루스가 영혼을 터뜨릴 듯 틀어쥐고 그를 띄워 올렸다.
“대, 대장님! 아니 왜ㅡ”
오른눈 안광이 불꽃처럼 이글거린다. 예리한 이빨이 어둑한 불빛을 반사해 번득인다.
“말해 봐, 샌즈. 아무한테나 다리를 벌리고 다녔냐? 그게 네 일이야? 네가 마을 창녀야?”
샌즈는 등골을 훑는 수치심에 떨며 고개 젓는다.
“아, 아뇨! 절대로 그런 게 아니라ㅡ”
영혼의 속박이 한층 강해지자 말을 잇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파피루스는 더 다가오며 언성 높인다.
“거짓말 마! 그것도 쓰레기통에서? 네가 사람이냐, 쓰레기냐? 더럽고 천한 게 그리도 좋으냐? 최소한의 자존심도 없어?”
옷깃을 잡고 위층으로 끌고 가서 욕실에 던져 넣는다.
“씻어! 쓰레기 냄새가 진동을 한다!”
옷깃을 잡고 위층으로 끌고 가서 욕실에 던져 넣는다. 샌즈는 눈물을 참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비틀비틀 일어나서 점퍼에 이어 티셔츠를 벗고 바지를 내리려는데, 파피루스가 어깨를 잡고 확 돌린다.
“이건 뭐야?”
이거라니 무슨……아. 좆됐다. 뼈 뜯은 자국을 들킨 거다. 대답을 하려고 입을 떼어 보아도 말문이 막힌다.
파피루스는 샌즈의 어깨를 부술 듯이 움킨다.
“내 망신을 시키려고 아주 작정을 했군.”
바지를 마저 내려 던져 버리고 뜨거운 물을 틀어 샌즈를 그 아래로 밀친다.
“더러우니 어서 씻어!”
퍼부어지는 물살 아래 숨어 드디어 눈물을 쏟아낼 수 있었다. 델 것 같이 뜨겁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뼈 뜯어낸 상처를 닦을 때마다 어깨가 움찔거린다. 잠시 후 파피루스가 물을 잠그고 닦지 못한 물을 뚝뚝 흘리는 샌즈를 낚아채어 욕실 밖으로, 자신의 방으로 끌고 간다. 샌즈는 두렵고 혼란스럽다.
“대, 대장님……?”
더듬더듬 묻지만 대답 대신 방 안쪽 침대로 팽개쳐진다. 침대는 파피루스 키에도 모자라지 않게 길고, 철로 된 머리 쪽 판에는…… 쇠사슬이 달려 있다.
파피루스는 샌즈를 돌려 눕히고 한 손으로 목을 잡아 누른다. 위협적이지만 부러뜨리지는 않을 만한 힘이다. 핏빛 안광을 섬뜩하게 빛내며, 굶주린 맹수처럼 으르렁거리며, 샌즈 위로 몸을 숙인다.
“내가 얘길 확실히 안 했나 본데……,”
오른눈이 한층 더 형형하게 빛난다.
“넌 내 거다. 남한텐 안 빌려줘.”
무엇인가 다리뼈를 기어올라 골반을 감아 오자 샌즈는 뼈가 얼어붙는 것 같다. 가스터의 연구실에서 있었던 끔찍한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안 돼……. 제발 그만……!’
“내가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재워 주잖아? 내 천한 것들에게서 지켜 주잖아?”
파피루스는 샌즈의 목을 조르는 손에 힘을 주며 묻는다. 예리한 이빨들 사이로 검붉은 혀가 꿈틀거린다.
“어릴 때 해 준 것에 대한 보답으론 충분하지 않아?”
“보답을 바라고 그런 게 아니야!”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키는 행위와 그 행위의 장본인이 다른 누구도 아닌 동생이란 사실이 샌즈의 이성을 무너뜨린다. 눈물이 나고 온몸이 떨린다.
“오로지 형으로서 널 사랑해서 그랬던 거야!”
목을 조르던 손이 풀어지더니 위로 올라가 얼굴을 감싸 쥔다. 놀라 눈물이 그친다.
“아, 샌즈……. 나도 널 사랑한단 거 몰랐어? 정말 사랑했었지. 너는 내 형이었고, 내 전부였고,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믿고 의지할 유일한 사람이었어.”
거짓말처럼 부드럽고 지독하게 싸늘한 목소리. 붉게 이글거리면서도 보는 이의 피를 식히는 안광.
“형은 날 망가뜨렸어. 상상도 못했던 방식으로 날 완전히 망가뜨렸어. 한 달 동안 나 혼자만의 지옥에 갇혀서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고민해 봤어. 나 정도면 착하고 얌전하고 다정한 동생이었을 텐데, 어디가 그렇게 미워서 벽에다 집어던지고 머리통을 깨버렸을까?”
손끝으로 샌즈의 뺨을 누르며 음산하게 웃는다.
“그러다 아버지가 와서 날 치료해 준다고 연구실로 데려갔지. 그 다음엔 어떻게 됐을 것 같아? 나를 지켜 줄 형이 없으니까 어떻게 됐을 것 같아?”
파피루스는 더 크게 웃는다.
“강간당했어.”
샌즈는 다시 눈앞이 흐리고 목이 메었다. 손으로는 이불을 구겨 쥐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열 살짜리 동생이 그걸 겪었다곤 도저히 믿고 싶지 않았다!
파피루스의 척추와 골반 주위에서 더 많은 검붉은 촉수들이 돋아나 샌즈의 다리를 기어오른다.
‘하, 시팔. 아버지를 꼭 닮았구나. 그래도, 그래도 왜……! 어째서 이런 것까지……!
“그 짓을 당하면서 깨달은 게 있어.”
파피루스는 덤덤하게 말을 이으며 촉수로 샌즈의 다리를 감아 벌린다. 한 가닥은 떨어져 나와 척추 아래쪽을 더듬는다.
“너한테 맞았을 때처럼 가만 누워 있을 수도 있지만, 내가 덤벼 볼 수도 있겠더라고. 그래서 난생 처음으로 공격용 뼈를 만들어서 그 새끼 영혼을 찔렀어. 아무런 생각 없이 찌르고 찌르고 또 찔렀어. 먼지밖에 안 남을 때까지.”
옷자락 아래서 촉수가 더 미끄러져 나와 손목을 붙든다. 샌즈는 벌벌 떨며 숨넘어가는 소리로 외친다.
“파피루스, 하지 마! 제발……!”
날카로운 이빨이 그의 애원을 끊고 입을 막는다. 두툼한 혀가 벌어진 잇새로 파고든다. 샌즈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혀를 만들어 한데 얽는다.
잠시 후 파피루스가 입을 떼고, 샌즈의 얼굴을 쥐고, 속삭인다.
“……형을 망가뜨릴 거야. 그리고 형은 그 모든 순간에 감사하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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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루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샌즈는 그 모든 순간이 감사했다.
참혹한 학대와 폭력을 당한 끝에 티끌 같은 애정의 잔재를 확인하는 순간이 감사했다.
파피루스가 저를 형이라고 불러 주는 순간이 감사했다.
나중에는 파피루스가 주는 것이라면 고통마저 사랑하는 법을 익혔다. 목숨을 끊지 않는 채로 그만한 고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오직 제 동생뿐이니까. 그건 오직 동생만이 줄 수 있는 선물이니까. 동생이 주는 고통은 곧 기쁨이 되었다. 방문을 닫고 단둘이 있을 때엔 더더욱.
벌을 받은 뒤 함께 있는 고요하고 거룩한 순간들. 다음날 보초를 설 수 있도록 치료도 해 준다. 같이 보내는 밤들. 때로는 그냥 잠을 자고, 때로는 날이 밝도록 뒤엉킨다.
샌즈는 그 순간들을 위해 살기로 했다. 형제가 다시 사랑한다고 착각할 수 있는 순간들. 동생을 대장님 아닌 파피루스라고 부를 수 있는 순간들.
그러한 순간들 사이사이 샌즈는 아름답고 헛되었던 제 어린 날의 꿈이 깨뜨려져 마땅한 까닭을 가슴에 새기고 또 새기었다. 순진무구하던 동생을 그들의 아버지와 같은 잔혹하고 무정한 괴물로 만든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라고. 모든 게 망가지던 그날 밤 저 자신이 그와 같은 괴물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지하세계의 삶은 잔인하고 불공평한 악순환. 남에게 상처 입은 탓으로 남을 상처 입히나, 그것이 또 더한 상처로 되돌아올 뿐. 샌즈는 이를 알면서도 악순환의 한가운데 뛰어들었고, 벗어날 기회가 있었을 땐 벗어날 힘이 없었으므로, 뿌린 대로 거두었다.
* 원문은 더 잔인하고 더 화려한데 온전하게 재현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쉽다.
힘겨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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