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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번역] 소년가장 펠샌 성장소설 -1-

ㅃㅂㅎㅅ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6.05.04 22:57:17
조회 7738 추천 101 댓글 23
														

저자 AngeliaDark
원제 Full Circle
원문 http://archiveofourown.org/works/6092586


번역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




뿌린 대로 거두리라

-1-




  지하세계에서 삶은 공평하지 않다.


  고작 불공평한 정도가 아니라는 것을 샌즈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가장 어릴 적의 기억은, 깜깜한 방에 홀로 앉아 창 밖에서 어느 괴물이 쫓기다가 죽어 가던 소릴 듣던 일.


  어린 시절 그는 늘 혼자였다. 곁에 남아 주는 것은 폭력을 제하면 고독뿐이었으므로, 고독을 단짝처럼 사귀었다. 언제라도 제 척추를 동강낼 만한 자들 틈에 끼기보다는 혼자라도 목숨 잇는 편이 나았다. 고독하던 시절 내내 안정된 미래를 바라고 온 집안의 장서를 탐독한 끝에 마침내는 연구소에 불려가서 제 쓸모를 증명할 수 있게 되었다.


  죽거나 죽이거나인 세계지만 어떤 괴물들은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 그 중 한 부류가 과학자와 그들의 조수다. 과학기술 발전을 저해해선 안 된다는 왕명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 연구소가 있는 핫랜드는 지하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이기도 하다. 물론 그들의 삶도 평화롭지는 않다. 쓸모없다고 평가 받는 인원은 다른 지역으로 달아나지 않는 이상 잡혀가서 생체실험 대상으로 쓰인다. 왕립 경비대에 잡힐 각오를 하고서라도 도망가는 편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다른 영지들 불법 체류자는 경비대 훈련용으로 쓰인다니 죽기라도 금방 죽을 테니까.


  샌즈는 신입 때부터 유능한 인재로 자리매김하다 그 유명한 가스터 박사의 프로젝트에까지 선발되었다. 샌즈로선 마냥 달갑지만은 않았다. 가스터와는 구면이었다. 사실은 친아버지다. 그러나 샌즈는 그를 아버지로 여긴 적이 없었고, 그는 샌즈에게 아버지처럼 대한 적이 없었으며, 두 괴물 사이에 어떠한 형태의 가족애도 존재한 적이 없으니, 같이 연구한다고 별다를 게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산이었다. 설마 대접이 더 나빠질 줄이야. 박봉에 초과 근무. 게다가 파피루스를 먹이고 입히려면 아무리 나쁜 조건이라도 더 고되게 일해야 했다.


  아, 파피루스. 이 지옥 같은 세상을 비추는 단 한 줄기 빛.


  그 나이까지 순수한 눈빛을 간직하는 아인 몹시 드물다. 밖에서는 매일같이 또 다른 아이가 독살스런 붉은 빛을 품은 ‘괴물’이 되어 있는데, 집에 와서 마주하는 동생의 맑은 눈 환한 웃음은 기이하기까지 하다. 녀석이 들이미는 절대적인 사랑—


  어휴, 사랑은 무슨. 정이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


  무어라고 부르든 샌즈는 그 감정이 지독하게 불편했다. 그것은 형언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영혼을 괴롭혔다. 왠지 모르게 더 많이 원하게 되고, 원하면서도 죄책감이 드는 것이……


  ……제게는 과분하다. 그런 느낌이다. 파피루스가 주는 사랑—이 아니고 정은, 샌즈에겐 과분하게 느껴진다. 저도 모르게 파피루스가 뭘 바라고 그러는지 의심하게 된다. 괴물들은 이유 없이 친절하게 굴지 않는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무언가를 해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파피루스는 꼬맹이 때부터 요리를 하기 시작하더니 샌즈가 돌아오면 밥을 차려 주고 같이 사는 집을 언제나 말끔하게 정돈해 주는데 샌즈의 관심 말곤 바라는 게 없다.


  샌즈는 어느새 그 관심을 주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 주기도, 쓰레기장에서 쓸만한 장난감을 구해다 주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저는 받아 보지 못한 정을 파피루스에게 주고 싶었고, 파피루스가 착하게만 자라기를, 이 지옥에 떨어지지 않기를 원하고 있었다.


  파피루스는 퍼즐을 좋아했다. 샌즈는 용케 퍼즐 책을 한 아름이나 찾아 줄 수 있었다. 연구소에서 일하는 기나긴 하루 동안 녀석이 놀 거리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퍼즐에 몰두해 있는 동안에는 다른 것들이 신경 쓰이지 않을 테니까. 샌즈처럼 저도 모르게 창 밖에서 죽고 죽이는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지는 않을 테니까.


  때로는 샌즈가 파피루스를 연구소에 데려가는 날도 있었다. 샌즈는 동생의 미래도 무사하길 바랐다. 연구소 분위기에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이 분야로 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다. 파피루스는 순진한데도 똑똑하다. 퍼즐 푸는 것도 그렇고, 머리 쓰는 일을 좋아한다. 게다가 살림 하는 솜씨를 보면 규칙대로 정리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 같다. 아마 공학 쪽으로 가면 잘 할 것 같다.


  그렇지만 연구소 오길 싫어했다. 이곳 사람들도, 여기서 하는 일도 무서워했다. 올 때마다 진로 탐색에는 관심이 없이 형에게 찰싹 달라붙어 방 안에 단둘이 남기 전까지는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구석 자리에 외따로 앉아 무릎에 펼쳐 놓은 퍼즐 책만 내려다 보고 있을 때면 타고난 명랑함도 빛 바래는 것 같았다. 남들이라고 그걸 몰라 볼 리 없다. 샌즈는 특히 가스터가 신경 쓰였다. 박사는 파피루스를 힐끔거리며 다 들리는 목소리로 실험체가 더 필요하다 중얼거리고는 했다. 그러면 파피루스는 더 애처롭게 떨고 샌즈는 더 지쳐서, 며칠간 긴장한 채 우울하게 보냈다.


  샌즈가 연구하는 공허와 시공간 변칙은 파피루스가 겁낼 만한 분야가 아니라 다행이었다. 거의 가스터의 시행착오 과정에 필요한 계산 작업이라 파피루스와 단둘이 있을 수 있는 날이 많았다. 그럴 때면 파피루스에게 수학 공부를 시키고는 했다. 수학은 숫자로 푸는 퍼즐이라고 구슬려 두었더니 잘 따라와 주었다. 샌즈는 동생의 앞날을 어떻게든 돕고 싶었다.


  돌이켜 보니 잘한 일만은 아니었다. 파피루스는 수학에 굉장히 소질이 있었고 형을 돕겠다며 공부 욕심을 내었는데 그것이 가스터의 눈에도 띄게 되었다. 하루는 가스터가 찾아와 불편할 정도로 오랫동안 쳐다보다 갔다. 샌즈는 그가 동생을 보는 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뭔가 좋지 않은 일을 꾸미고 있는 것 같아 꺼림칙했다. 그래서 그 다음 주에는 위험한 실험이 있다며 집에 두고 왔다.


  가스터는 언짢아 했다.


  이 주 연속 파피루스를 데려가지 않자 가스터는 샌즈를 응용 개발 담당으로 승진시켰다. 샌즈는 이제 가스터와 같은 연구실, 같은 공간에서 그의 두려운 존재감을 받아내야 했다. 온종일.


  ……진짜 지옥은 그 날부터였다.


  샌즈의 뼈를 스치는 손길. 피해 버리면 그만이지만, 횟수를 거듭해 갈수록 길어지고 대담해졌다. 팔을, 어깨를, 허리를 몇 번이고 더듬던 감촉. 집에 돌아가고서도 한참 동안 그 손이 닿아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믿기지 않았다. 아닐 거다. 그럴 리 없다. 그럴 순 없다. 아무리 무심하고 매정한 쓰레기라도, 그래도 친아버진데 설마 자기 자식한테…… 아닐 거다. 아무리 이런 생지옥에서라도, 아버지가 자식한테…… 설마?


  터무니없는 오산이었다.


  추행은 심해져만 갔다. 기어이 옷 아래로 손을 넣어 갈비뼈를 지분거리고 두개골에 입을 대기까지 하자, 샌즈는 기겁하며 그를 떠밀었다.


  “뭐하세요?”


  겁에 질린 데다 하필 변성기라 히끅이며 갈라지는 목소리. 제 자신이 한층 더 비참하고, 초라하고, 불결하게까지 느껴졌다. 떨리는 몸을 팔로 감쌌다.


  “아버지……잖아요. 왜 그러세요?”


  불꽃처럼 이글거리면서도 스노우딘의 눈폭풍처럼 냉혹한 붉은 눈이 한참 위에서 샌즈를 내려다 보았다.


  “하고 싶고, 할 수 있으니까.”


  당연한 사실이란 듯이 대답하며 손끝으로 샌즈의 광대뼈를 쓸어내렸다. 샌즈가 흠칫 고개를 빼자, 가스터는 샌즈의 얼굴을 손아귀에 잡고 자길 보도록 돌렸다.


  “파피루스 참 귀엽지?”


  갑자기 나긋나긋해진 목소리가 더욱 두려워서 샌즈는 꼼짝하지 못했다. 


  “그렇게 순수하고 깨끗한 아이는 처음 보았다.”


  턱을 틀어쥐는 손에 힘이 들어가자 샌즈는 아파 비틀거렸다.


  “부숴 주고 싶어.”


  영혼이 철렁 내려앉았다. 연붉은 눈을 사납게 이글거리며 가스터를 밀쳐내고, 마법으로 그의 영혼을 잡아 방 저편으로 내던졌다. 


  “파피루스는 건드리지 마! 내가—”


  “네가 어쩌겠다고?”


  가스터는 금세 샌즈의 마법을 떨쳐내고, 손가락만 까딱해서 샌즈의 영혼을 구속하고 샌즈를 자기 눈높이까지 띄워 올렸다. 샌즈는 영혼이 떨어져 나갈 듯이 고통스러웠다. 한 끗밖에 되지 않는 HP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가스터는 걸어와서 손을 뻗어 다시 샌즈의 얼굴을 잡았다.


  “샌즈, 너도 참 순진해. 피할 수 없는 걸 늦춰 보겠다는 거냐? 좋다. 내 그 아이 것으로 예비해 놓은 운명이 있다만, 당분간은 네가 대신 받아 보아라.”


  그리고 샌즈에게로 얼굴을 숙이고 검붉은 혀를 만들어내어 눈구멍에 고인 눈물을 핥았다.


  “때가 되면 네가 견딘 고통이 부질없었다는 것을 알게 될 거다. 사랑 따위 아무 소용 없는 여흥이란 사실을 깨닫게 될 거다. 그러면 넌 어른이 된 거야. 그 때 파피루스를 다시 데려 오면, 너는 더 괴롭히지 않으마.”


  샌즈는 뼈가 서로 부딪도록 바들바들 떨며, 목멘 소리로 울먹이며, 가물거리는 안광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파, 파피루스는…… 건드리지 마요. 파피루스만…….”


  가스터는 빙긋이 웃을 뿐이었다.


  “두고 보자.”


 --------------------


  모든 게 나빠져만 갔다. 샌즈 자신밖에 탓할 수 없었다.


  연구실에 가면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기에 매일 집을 나서기가 끔찍스러웠다. 집에 돌아올 때면 영혼이 조금씩 더 썩어 있는 것 같았다. 파피루스에게 걱정을 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정말로 열심히 노력했지만, 정신이 깎여 나가는 와중에 웃는 얼굴 들고 다니려니 날이 갈수록 힘겨워졌다.


  몇 달이 흐르자 파피루스의 웃음을 볼 때조차 그의 삶에 기쁨과 희망은 돌아오지 않았다. 도리어 괴로웠다. 억울했다. 화도 났다. 해맑게 뛰놀고 재잘거릴 뿐 그런 자길 지키려고 형이 얼마만한 고통을 견디고 있는지는 몰라 주는 것이 화가 났다. 동생의 명랑한 목소리조차 소음처럼 싫증이 들었다. 듣지 않고 무시하려 하는데 그것조차 잘 되지 않았다. 상대해 주다 보면 이성이든 감정이든 무겁게 짓눌리는 기분이 들어서, 언제부턴가 퇴근하면 방으로 직행해서 잠만 자게 되었다. 편안해질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면 좋았을 텐데.


  기어이 녀석에게 화를 쏟아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상냥하고 순진한 동생은 형을 돕고 형의 곁에 있고 싶을 뿐인데, 샌즈는 저도 모르게 모진 말을 했다가 사과하고 달래기를 되풀이하고, 그럴 때마다 활발하고 붙임성 좋던 녀석이 조금씩 더 의기소침해지고 눈치를 보고……. 샌즈가 먼저 말을 걸기 전까지는 파피루스도 아무 이야기를 않는 날이 늘어 갔다. 샌즈에겐 그 변화가 고맙고도 끔찍했다.


  그 와중에 연구는 잘만 되어 갔다. 샌즈는 가스터의 역겨운 장난에 놀아나는 시간을 잠시라도 줄이고 싶어서 차라리 실험 대상으로 자원하고 나섰다. 실험에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졸음이 쏟아지는 후유증만 남고, 원래 목적대로 공허 너머 시공간 변칙을 관찰하진 못했다.


  그런데 집에와서 잠이 들자 환상이 시작되었다. 거기 나타난 건…… 샌즈? 아닐 거다. 자신일 리 없었다. 저게 지하세계일 리 없었다. 모든 게 저렇게……


  ……아름다울 리가.


  금세 지금 보는 것은 꿈이 아니라 다른 세계에서 또 다른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일부분이라고 깨닫게 되었다. 그 삶은 아름다웠다. 샌즈와 파피루스가 사는 스노우딘은 생기 있고 화목한 마을이었다. 파피루스가 마을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데 그 중 아무도 눈이 붉지 않고 남을 위협하지 않고, 모두가 행복했다.


  어떤 세계에서는 가스터가 샌즈와 파피루스와 함께 지내는데 샌즈가 알던 가스터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형제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고, 마법 연습을 시켜 주고, 아스고어 왕의 성에 데려가 같이 놀아 주는, 인자하고 다정한 아버지……


  ……환상이 하나하나 펼쳐질 때마다 샌즈의 마음은 한 구석씩 무너져 내렸다. 점점 더 서럽고 화가 났다. 어째서 그런 세계에 살 수 없는 걸까? 밖에 나갈 때마다 습격 당할 걱정에 주위를 샅샅이 살피지 않아도 되는 세계, 파피루스가 친구들과 뛰어놀 수 있는 세계, 가스터가 무시무시한 악당이 아니라 진짜 아버지인 세계에 살 수는 없는 걸까?


  지쳐선지 미워선지는 몰라도 샌즈는 가스터에게 그 이야기를 보고하지 않았다. 그 쓰레기 자식이 이번 프로젝트는 망했다고 생각하길 바랐다. 혹시 왕이 소용없는 연구에 자원 낭비 한다고 그를 사형시켜 준다면 샌즈로선 환영이었다.


  나중에야 깨달은 바이지만 차라리 사실대로 말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언짢은 가스터는 좋은 가스터가 아니다. 좋지 않은 가스터는 샌즈에겐 재앙일 뿐.


  가스터는 ‘사회봉사’에서 살아남아 귀가하던 실험대상 세 명을 화풀이로 찢어 죽인 뒤, 예전 연구실 구석으로 샌즈를 몰아붙이고, 샌즈 위로 허릴 숙여 그늘을 드리웠다. 샌즈는 웅크리고 덜덜 떨며 제발 그가 그냥 나가 주면 소원이 없겠다고 빌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라도 그의 소원이 이루어진 적 있었던가?


  수 년 동안 그 날의 기억을 잊으려고 몸부림을 쳤다. 그가 제게 한 짓, 그 아픔이며, 그 불쾌한 쾌감. 영혼에 남은 영구한 손상. 씻을래야 씻기지 않는 더럽혀진 영혼. 신음하고 비명 지르던 그 날의 기억이 악몽으로 돌아오는 밤이면 잠들지도 못한다.


  그 날 이후 샌즈의 영혼은 돌이킬 수 없이 망가졌다. 시뻘겋게 변색된 마법이 그 증거였다.


  그리고 영혼이 부서질 만한 절망의 구렁텅이에 떨어진 다른 모든 괴물들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내면을 갉아먹는 고통을 죽이려고 허우적대다, 그 역시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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