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번째 천년기 어느 기록없는 날.

포격을 맞아 무너져, 간신히 형태만 유지하고 있는 거대한 황제교 성당. 

언뜻 보면 고귀한 어뎁투스 아스타르테스 모습이지만, 자세히 보면 뒤틀린 모습인 자들이 모여있었다.

투박하지만 역사가 느껴지는 널따란 연회용 식탁 앞에 그들이 서있었다. 

이들은 원래 어떤 형태였는지 알 수 없는 파워아머를 입고 있었고, 헬멧은 자기 앞 식탁 위에 올라가있었다. 

스페이스마린 수술을 받지 않은 인간들에 맞춰 만든 때문인지, 식탁 높이는 그들 허리 약간 아래 정도였다.

식탁 위에는 거대하고 시꺼먼 단지가 있었다. 일종의 의식용 솥으로 보였다. 

단지 안에는 원래 무엇이었을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고깃덩이가 가득했다.

날것은 아닌듯했고 그들만의 방법으로 가공해 튀겨낸 걸로 보였다. 

가장 끝에 선, 화려한 갑옷을 입은 자가 굵지만 귀를 찢을 듯 날카로운 목소리로 웃었다.

'그건 준비됐겠지? 오늘 우리는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옆에 있는 날카로운 새부리 모양 헬멧을 쓴 부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헬멧은 아스타르테스의 MK6 패턴 파워아머와 흡사했지만, 곳곳에 기이한 문양이 그려져있었다.

반대편에 서 있던 소서러로 보이는 자는 말없이 솥만을 노려보고 있었다.

화려한 갑옷을 입은 자가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한쪽에서 기다렸다는 듯 두 명이 함께 다른 거대한 솥을 이고 들어왔다.

의식의 일부인지 이들은 파워아머를 입지 않은 상태였고, 탈의한 상체엔 불길한 글자가 가득 새겨져 있었다.

누가 솥 밑에서 지옥불이라도 때는 듯, 솥에서 부글거리며 끓는 소리, 탁탁거리며 터지는 거품 소리가 진동했다. 

고깃덩이가 든 솥 앞까지 와서 걸음을 멈추고, 이들은 조용히 워로드의 명을 기다렸다.

소서러는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

'영광스런 날이다. 우리는 끝없는 변화 가장자리에 서있다. 우리는 개척자요, 전사, 살아있는 워프다.'

워로드가 앞으로 걸어나가 고깃덩이 하나를 집어 들어올렸다. 

'찍-먹(Zhic-mukk)'

나머지 카오스 스페이스마린들이 일제히 외쳤다.

'찍-먹!'

소서러의 얼굴에 미동이 일었다.

워로드는 거리낌없이 고기를 무서울 정도로 끓는 솥 안 액체에 담갔다. 

끓는 기름도 아니고, 극약도 아니라면, 이건 일종의 의식용 '소스'인 것일까?

이 액체는 살짝 끈적거리면서 약간 탁한 색을 하고 있었다.

워로드가 액체가 뚝뚝 흐르는 고기를 크게 베어먹었다.

이것을 신호로 식탁 양쪽 가까운 자들부터 나와 같은 행동을 시작했다.

비록 정규 스페이스마린 챕터는 아니지만, 이들은 한때 고귀한 자들이었고, 나름의 기강과 근엄함이 남아있었다.

소서러가 워로드에게 다가가 다른 자들이 듣지못하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침묵을  깼다.

'로드,  어째서 찍-먹입니까? 저번에도 이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워밴드의 우두머리는 이 말을 전에도 들어본 듯, 귀찮다는 듯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찍-먹은 변화일세. 변화를 타는 자들은 주체가 되어 원하는 형태로 결과를 만들어내야 하지. 자네가 이걸 모르리라 생각하진 않는데?'

'물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서러가 다음 말을 하려는 순간, 워로드가 액체가 떨어지는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그 말은 꺼내지 말게. 조용히 참가하고 변화의 불꽃이 되게.'

소서러는 더 말을 꺼내지 않고 솥으로 다가갔다.

워로드가 이 의식을 위해 들인 노력과, 인근 제국령 행성을 완벽하게 약탈한 일, 앞으로 워밴드 규모를 늘려 블랙리전에 도전할 계획을 생각하고 있을 때-

'부-먹 (Buu-mukk)'

-눈을 번쩍 뜨게하는 외침과, 쇠 울리는 소리, 경악, 분노에 찬 탄식이 성당 안에 퍼졌다.

액체가 든 솥이 그대로 터져, 고깃덩이는 이미 액체 속에서 하나가 되어있었다.

'똥빗치 인성수쥰'

워로드는 자기도 모르게 어릴 적 쓰던 행성 욕을 내뱉으며 플라즈마 피스톨을 빼 겨누었다.

'부먹은 허황된 변화가 아니다. 우리는 부먹이란 바다 속에 있다'

소서러는 죽음이 소스가 소스를 덮치는 것만큼 의미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근엄하던 카오스 마린들이 어떻게든 의식을 복구하고자 고기를 꺼내려 했지만, 

고기는 이미 액체 속에서 눅눅해지다못해 반쯤 용해된 상태였다.

'찍먹은 변화다. 부먹은 고인 것, 정체다!'

플라즈마가 불을 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