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9급 세무 공무원입니다. 2년간 노량진에서 열심히 공부한 끝에 세무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공직사회에 발을 디뎠습니다. 하지만 일을 하면 할 수록 밀려드는 후회에 사표를 쓰고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기업 대상 업무를 하고 있어서 비교적 시달림이 덜하지만, 민원인들을 상대할 땐 정말 죽을 맛이었습니다. 마치 맡겨놓은 돈이라도 찾아가려듯 세무서에 들이닥쳐 ‘세금 내놓으라’고 소리치는 악성 민원인들이 한 둘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대학 동기들은 큰 회사 들어가서 수 천만원의 연봉을 받는데 최저임금 수준인 자신의 월급도 너무 초라해 보였습니다. A씨는 “공무원 시험 준비에 들인 노력으로 대기업에 도전했다면 상황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며 “30대 중반의 나이를 생각해 그냥 다니지만 솔직히 후회한다”고 말했습니다.
‘공시에 목매는 청년들’은 옛말…시들해진 공무원 열풍
‘청년 취업준비생 세 명 중 한 명은 공시족’, ‘9급 공무원 시험에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도 줄섰다’, ‘수능 대신 공시보겠다는 10대들’이라는 문구가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몇 년 전의 상황이 무색하게 요즘 MZ 세대 사이에서 공무원의 인기는 예전만 못합니다.
빠른 승진과 다른 직렬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 지방 이동 없이 서울 여의도에서 고정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국회직이나 고시급으로 불리며 합격만 하면 출세를 보장하는 5급 이상 공무원을 제외하면 더 그렇습니다.
드라마 속 노량진 학원가 풍경. /tvN ‘혼술남녀’ 캡처
공무원 시험 경쟁률만 봐도 최근 9급 공무원의 인기는 ‘뚝’ 떨어졌음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인사혁신처는 5672명을 뽑는 2022년 9급 공채 필기시험에 총 16만5524명이 지원해 29.2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고 밝혔습니다. 2011년 같은 시험의 경쟁률은 93대 1이었습니다. 불과 10여년 만에 경쟁률이 크게 하락한 것입니다.
이런 경향은 최근들어 더 강하게 나타났는데요, 지난 5년간 9급 공무원의 경쟁률은 2018년 41대 1, 2019년 39.2대 1, 2020년 37.2대 1, 2021년 35대 1로 계속 하락해왔습니다. 9급 공무원뿐 아닙니다. 올해 7급 공무원 시험의 경쟁률도 1979년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인사혁신처는 경쟁률 하락을 2030세대의 인구 감소, 공무원 연금 개편, 코로나 감염 우려 등의 이유로 풀이했지만, 어째 속시원한 해석은 아니어 보입니다. 여전히 취업 시장은 꽁꽁 얼어있고 코로나 상황 때문이란 것 또한 아무리 넉넉하게 잡아도 2년 이상 영향을 미쳤다고 보긴 어렵기 때문입니다.
공무원의 인기가 떨어졌다는 건 또다른 조사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통계청 조사를 보면 2021년 13~34세가 가장 근무하고 싶은 직장은 대기업(21.6%)이었습니다. 공무원들이 일하는 국가기관(21.0%)은 공기업(21.5%)에 이어 3위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2009년 조사에서는 국가기관이 28.6%로 1위였습니다. 공기업과 대기업은 각각 17.6%, 17.1%를 기록하는데 그쳐 국가기관과는 거의 10%p씩 차이가 났었죠.
낮아진 경쟁률과 직업 선호도 외에, 공무원이 된 지 몇년 안 돼 사표를 쓰는 이들이 많다는 것 또한 공무원의 인기가 시들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방증입니다. 공무원연금공단 자료를 보면 2020년 전체 퇴직자 4만7319명 중 5년차 이하 퇴직자는 9968명으로 전체의 21%였습니다. 3년 전인 2017년에는 15% 수준이었습니다.
나이로 나눠볼까요, 2020년 기준 35세 이하 퇴직자는 5961명이었습니다. 이 역시 2017년의 4375명과 비교하면 1600명 가량 늘어난 수치입니다. 종합해 보면 '젊은 공무원들의 퇴사 비율이 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수직·보수적 조직문화, 낮은 보상이 기피 이유
영화 속에서 민원인을 상대 중인 공무원 역할을 맡은 배우 이제훈.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스틸컷
MZ세대 사이에서 공무원이라는 직업의 인기가 시들해지는 이유는 여러가지입니다. 답답한 조직문화, 획일화된 업무체계, 공무원 사회 특유의 불필요한 문서 작업, 각종 동원으로 자신의 업무가 아닌 일까지 맡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막무가내식 요구와 호통을 일삼는 각종 악성 민원인들을 달래는 일까지 더해진다면 매일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뎌내야 합니다.
고된 일에 보상이라도 제대로 주어진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봉급이 애초에 낮아도 너무 낮아, 최저 임금에 수렴하는 급여를 생각하면 더 힘이 빠집니다. 2022년 기준 갓 입직한 9급 공무원의 월급 실수령액은 수당을 포함해 180만원선입니다. 수당을 제외한 기본급은 140만원입니다. 7급 공무원 또한 초과 근무를 아무리 많이해도 200만원 정도밖에 받지 못합니다.
한마디로 공무원 사회는 MZ세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한 만큼의 보상’, ‘일과 삶의 양립’, ‘수평적인 조직문화’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어보이는 조건을 여러가지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이런 단점들은 공무원이라는 직업의 가장 큰 장점인 ‘정년 보장’, ‘연금’ 이라는 카드까지 때론 구겨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젊은 공무원들 사이에서 퇴사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죠.
더군다나 2016년부터 개편이 시작된 공무원연금안은 본인 기여금은 7%에서 9%로 2%p 높인데 반해 지급률은 반대로 1.9%에서 1.7%로 0.2%p 떨어뜨려 젊은 공무원들의 사기를 더 빼놓고 있습니다.
보상은 크고, 확실할 수록 좋은 것 아닌가요. /픽사베이
MZ세대 공무원들 사이에서 회의론이 커지는 가운데 인사혁신처는 2022년 6월 젊은 공무원들의 적극적인 행정업무 능력을 키우기 위한 ‘당근’을 들고 나왔습니다. 바로 ‘적극행정 노력에 대한 보상을 수시로 제공하기 위해’ 적극행정 마일리지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건데요, 이 제도가 시행되면 각 부서장들은 4, 5급 이하 공무원에게 적극행정에 대한 보상으로 마일리지를 제공합니다. 이 마일리지는 기프티콘이나 당직 1회 면제권, 포상휴가, 도서구입 지원 등으로 바꿔 쓸 수 있습니다.
보상이라면 하나라도 더 있는 게 좋긴하겠지만, 일각에서는 월급, 연금, 조직문화와 같은 굵직굵직한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는 이들에게 기프티콘, 당직 1회 면제권과 같은 소소한 당근책으로 과연 어떤 동력을 제공해줄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인사혁신처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소확행)’을 추구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MZ세대 공무원들의 고민에 비하면 소소한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젊은 공무원들이 바라는 건 최소한 다른 회사원들과 비교해 박탈감을 느끼지 않을 수준의 보상일 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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