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부터 서울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이용자들이 듣게 될 안내방송이다. 하나은행이 서울교통공사가 진행한 을지로입구역 역명 병기 유상판매 입찰에서 지난 6월 27일 최종 낙찰을 받으면서 을지로입구역 안내방송과 내외부 역명판, 열차 내외부 노선도에 하나은행이란 이름을 함께 쓸 수 있게 되면서다. 을지로입구역 1·2번 출구는 하나은행 본점과 연결된다. 5번 출구로 나가면 하나금융그룹 명동사옥이 있다.
우리금융그룹도 얼마전 지하철 4호선 ‘명동역’ 역명 병기 유상판매 입찰에서 최종 낙찰돼 2022년 9월부터 ‘우리금융타운’이란 이름을 나란히 쓸 수 있게 됐다.
역명 병기는 지하철역 본래 명칭 외에 기업이나 학교, 기관 등으로부터 비용을 받고 추가로 부역명을 적어 알리는 것을 말한다. 역 이름을 병기하는 사업은 서울지하철의 재정난이 계속되면서 공사가 일종의 자구책으로 시작한 사업으로 알려져 있다.
지하철역에 나란히 이름을 올리기 위해선 적지 않은 돈이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을지로입구역 부역명을 꿰찬 하나은행은 8억원, 명동역을 쓰게 된 우리금융그룹은 6억5000만원을 써냈다. 낙찰가가 수억원에 달하는 데도 지하철역에 이름을 보태 넣으려는 기업과 기관들이 줄을 서고 있다. 그중에서도 은행들이 역병 병기에 가장 열을 올리고 있다. 은행들은 왜 수억원을 들여 지하철역에 이름을 붙여 넣으려고 하는 걸까?
◇하루 이용객만 수만명…홍보 효과 기대
하나은행이 8억원을 들여 이름을 새기게 된 을지로입구역의 하루 평균 이용객은 2021년 기준 6만24명이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에는 10만1199명이 이용했다. 연간 승하차 인원은 2200만명에 달한다.
을지로입구역에 이름을 병기하는 것만으로 매일 수만명, 일년에는 수천만명에게 하나은행을 홍보하는 효과가 있다. 이 역에서 타거나 내리지 않아도 지나치는 승객들도 안내방송을 통해 계속해서 명칭을 듣게 된다. 을지로입구역에 하나은행을 나란히 쓰는 건 앞으로 3년간이다. 홍보 효과를 생각하면 8억원은 결코 큰 돈이 아닌 셈이다. 쉽게 말해 투입 비용 대비 ‘가성비(가격대비성능)’가 좋다.
이번 입찰에서 하나은행은 IBK기업은행과 치열한 경쟁을 펼친 것으로 전해졌다. IBK기업은행은 2016년 6월 3억8100만원을 들여 을지로입구역의 주인이 됐다. 3년 뒤인 2019년에는 4억3000만원을 들여 계약을 연장했다. 기업은행은 이번 입찰에도 참여했지만 하나은행이 8억원을 써내면서 6년간 써왔던 부역명을 내줬다.
우리은행이 6억5000만원을 들여 이름을 새기게 된 명동역의 하루 평균 이용객은 2021년 기준 2만9850명이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에는 하루 8만40명이 이용했다. 명동역을 오가는 수만명에게 우리은행을 알리고 인지도를 제고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치열해지는 역명 사수 경쟁
금융사 입장에서 브랜드 인지도는 중요하다. 고객이 은행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자사 브랜드를 떠올려야, 고객 유치가 원활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고객이 당장 계좌 하나를 만들더라도, 보통 알고 있는 은행 브랜드에서 계좌를 신설한다는 것이 은행들의 입장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비슷한 구조의 상품을 두고 경쟁하는 은행·카드사의 경우 신뢰도나 브랜드 인지도가 상당히 중요하다”며 “특히 젊은층의 유동인구가 많아 활력이 넘치는 지역이나 금융중심지 같은 지역에서 역 이름을 함께 쓰게 되면 해당 역의 상징적인 의미도 가져갈 수 있어 브랜드 이미지 제고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도 효과가 있을까. SC제일은행은 자체 조사결과를 통해 지하철1호선 종각역에 역명을 병기한 2017년 6월 대비 2019년 말 브랜드 인지도가 3%포인트 향상됐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특히 하나은행이 선점한 을지로입구역은 최근 젊은층 사이에서 ‘힙지로’라 불릴 만큼 인기가 높은 장소다. 지하철역명에 이름을 새기는 것만으로도 이곳을 오가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에게 브랜드를 각인시킬 수 있는 효과를 볼 수 있다.
현재 지하철역에 이름을 병기 중인 은행은 1호선 종각역(SC제일은행역), 9호선 국회의사당역(KDB산업은행), 9호선 샛강역(KB금융타운) 등이 있다. 새로 이름을 올린 2호선 을지로입구역(하나은행)과 4호선 명동역(우리은행)과 2호선 선릉역(에큐온저축은행) 등도 있다. 은행 외에도 2·3호선 환승역인 을지로3가역(신한카드), 2·5호선 을지로4가역(BC카드) 등은 카드사가 이름을 병기 중이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은행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기업은행은 지난 2016년 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의 역명 병기 사업에 단독 응찰해 ‘을지로입구(IBK기업은행)’이라는 이름을 따냈다. 하지만 같은해 하나은행이 을지로 신사옥을 완공하며 갈등이 빚어졌다. 하나은행이 신사옥을 준공하며 을지로입구역의 1·2번 출구와 이어지는 시설물 설치를 위한 토지 사용권까지 서울교통공사에 제공했기 때문이다. 결국 두 은행의 갈등은 1·2번 출구에서만 ‘IBK기업은행’이라는 부역명을 삭제하는 것으로 봉합됐다.
◇공공성 훼손 비판도
역명 병기는 지하철 운영기관의 수익 창출을 통한 경영 개선에 기여한다는 목적으로 시작됐다. 인지도가 높고, 승객 이용 편의에 기여해야 하며, 대상역에서 500m 이내 위치한 기관 또는 지명이라는 비교적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데다, 3년 기준 계약금이 적게는 1억원에서 많게는 3억원을 넘을 만큼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지만 그래도 기업들은 지갑을 여는데 망설이지 않는다.
서울교통공사가 진행하는 역명 병기 판매 사업은 서울지하철의 수익 개선을 목표로 2016년 시작됐다. 역명병기 입찰에 참여하려면 해당 기업이나 기관이 대상 역에서 서울 시내는 1km, 시외는 2km 이내에 있어야 한다. 낙찰받은 기업이나 기관은 향후 3년 동안 원하는 기관명을 해당 역의 부역명으로 표기할 수 있다. 재입찰 없이 한차례 계약을 연장할 수도 있다.
최근 진행한 역명 병기 판매 입찰에서는 지하철 7호선 논현역이 역대 최고가인 9억원에 팔렸다. 9억원에 논현역에 나란히 이름을 올리게 된 곳은 ‘강남브랜드안과’다. 서울교통공사는 논현역의 입찰 기초금액(입찰을 위한 최저가)을 2억9000만원으로 책정했지만 3곳의 업체가 입찰 경쟁을 하면서 기초금액의 3배가 넘는 금액에 최종 낙찰됐다.
투입 비용 대비 광고 효과가 높은 만큼 은행이나 많은 기업이 지하철역에 이름을 함께 넣고 싶어한다. 해외에서도 새로운 수입 창출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일본에선 2000년대 중반 소규모 지방 민간 철도회사가 도입을 시작했고 2013년 대형 민간철도인 게이큐 전철이 본격적으로 사업을 개시했다. 미국 뉴욕, 영국 런던, 인도 델리 지하철 등도 역 이름을 판매 중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지하철이 특정 기업·기관의 홍보용으로 활용되는 게 적절치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역명 유상 병기가 지하철의 공공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으나, 규정된 가이드라인에 따라 역명병기 유상판매 심의위원회에서 꼼꼼한 심사를 거쳐 적합한 기업과 기관만을 선정한다”며 “이 사업은 공사의 재정난 해소에도 도움이 되고, 기업이나 단체 역시 합리적인 비용을 내고 해당 역이 지닌 상징성을 활용해 홍보할 수 있는 윈윈(win-win) 사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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