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상속권 보호 서비스 시작한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남은 고인의 흔적 유족에 제공 디지털 유산 상속 문제 두고 갑론을박 지난 4월 추억의 SNS인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2019년 서비스 종료 3년 만에 부활했다. 3200만명에 달하는 회원들의 사진과 동영상이 복구되면서 그 사이 세상을 떠난 고인들의 사진과 동영상도 되살아났다. 미니홈피에 남아 있는 고인의 흔적들은 당사자가 아니면 접근할 권한이 없다. 유족이라도 말이다.
싸이월드 부활 후 고인의 사진과 동영상을 넘겨달라는 유족의 요청이 잇따르자 최근 싸이월드 운영사 싸이월드제트가 이용약관을 수정해 ‘디지털 상속권 보호 서비스’를 시작하기로 했다. 고인이 된 회원들의 사진과 동영상을 유족에게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SNS에 남아있는 데이터를 디지털 유산으로 보고 유족에게 상속하는 게 맞다, 아니면 유족이라도 고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디지털 유산’ vs ‘프라이버시 침해’
싸이월드 운영사인 싸이월드제트는 최근 이용약관에 ‘회원의 사망 시 회원이 게시한 게시글의 저작권은 별도의 절차 없이 그 상속인에게 상속된다’는 조항을 포함시켰다.
싸이월드 회원이 사망하면 생전에 올렸던 사진과 동영상, 다이어리 데이터 중 공개 설정된 것들에 한해 유족에게 제공한다는 뜻이다. 이전에는 유족이어도 고인의 싸이월드 데이터에 접근할 수 없었다. 다만, 유족이 탈퇴를 요청하면 이를 받아들였다.
디지털 유산의 상속 범위에는 ‘사망한 회원의 비밀을 침해하거나 상속하기 부적절한 게시물을 제외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서비스를 보는 이용자들의 의견은 찬반으로 엇갈린다.
해당 서비스를 옹호하는 이용자들은 SNS에 남아있는 사진과 영상, 다이어리 등의 게시물이 모두 ‘디지털 유산’이라고 주장한다. 디지털 유산을 서버에 남겨두는 건 사실상 방치와 다름 없기 때문에, 유족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고인의 흔적들을 방치해두기보다 관리하는 사람이 필요하고, 고인이 그리울 때 꺼내볼 수 있게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해당 서비스를 반대하는 이용자들은 ‘사후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를 강하게 우려하고 있다. 고인의 가족이라 할지라도 개인의 계정에 접근해 모든 데이터를 볼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설령 ‘공개된 게시물’만 유족에게 넘겨준다고 할지라도, 일촌 또는 팔로워가 아닌 이상 가족에게라도 자신의 SNS 게시물을 공개하는 것을 꺼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디지털 유산 관련 법률 부재
문제는 무엇이 맞고 틀리다라 판단하기 모호하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에는 디지털 유산을 다른 유형의 유산과 구별해 별도로 규제하는 법률이 없다. 디지털 유산은 한 개인이 죽기 전 남긴 디지털 흔적을 뜻한다. 통상 SNS·블로그·미니홈피 등 온라인 공간에 남긴 사진과 영상, 일기장, 댓글 등이 디지털 유산으로 분류된다.
국내에선 디지털유산이 개념과 상속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게시물을 ‘개인정보’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일부 기업들은 자체 규정을 통해 디지털유산을 관리하고 있다. 별도의 관리 규정이 없는 대부분 회사들은 유족이 원하면 사망한 회원의 계정 폐쇄 요구 정도만 가능하다.
네이버는 고인이 된 회원의 블로그, 이메일 등 남아있는 데이터는 유족이더라도 제공하지 않는다. 다만 유족이 요청하면 회원탈퇴가 가능하고 계정에 로그인하지 않아도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만 백업해 제공한다.
카카오는 관련 법령을 따로 공개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고객센터 계정탈퇴에 관한 질의응답식 안내에서 관련 정책을 살펴볼 수 있다. 카카오는 “고객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고인의 카카오 계정과 데이터를 유족에게 제공하지 않고 있다”라면서 “다만 가족이 사망자의 카카오계정 정보를 알고 있는 경우에 한해 사망자 계정의 삭제 처리는 가능하다”라고 밝히고 있다.
◇구글·애플 등 디지털 상속권 도입
그러나 해외는 사정이 다르다. 이미 많은 기업들이 프라이버시보다 디지털 상속권에 무게를 두고 관련 정책을 펼치고 있다.
지난 2018년 독일연방법원은 사망한 15세 소녀의 페이스북 계정에 대해 어머니에게 접속 권한을 부여하는 결정을 내렸다. 사망자가 생전 페이스북과 맺은 계약은 유산의 일부분이므로 부모는 숨진 딸의 계정에 완전히 접근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 판결의 이유다.
이에 따라 페이스북을 운영하는 메타는 ‘유산 접근’(Legacy Contact)이라는 기능을 도입했다. 페이스북·인스타그램 계정 주인이 사망한 이후 SNS 계정 관리권을 어떻게 처분할지를 사전에 설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구글은 일정 기간 동안 계정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계정의 휴면 사실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알리고, 그 사람이 계정 데이터를 다운받을 수 있도록 하는 ‘휴면 계정 관리자’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만약 생전에 휴면 계정 관리자 정책을 설정해 두지 않은 채 휴면 계정 상태에 들어가면 일정 기간 이후 계정이 삭제된다. 계정이 삭제되면 구글드라이브, 유튜브 등 계정과 연계된 모든 데이터가 삭제된다.
애플은 2021년 12월 iOS 15.2 버전을 출시하면서 ‘디지털 유산’ 프로그램을 추가했다. 애플 계정의 소유주가 자신의 애플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관리자를 최대 5명까지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이다.
중국 최대 메신저 위챗을 운영하는 텐센트도 최근 사망자 유언이 있으면 보유한 게임 자산을 특정인에게 양도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선 이미 23주가 디지털 유산을 일반 유산처럼 상속할 수 있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디지털 유산 정책이 화두에 오르면서 해외 사례를 바탕으로 국내에서도 디지털 유산의 처리를 규율할 수 있는 입법에 관한 논의가 다시 시작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싸이월드제트 관계자는 디지털 유산 상속 정책을 수정하면서 “디지털 상속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된 셈”이라며 “대형 로펌과 함께 적극적으로 디지털유산 상속권에 대한 법제화를 입법기관에 요청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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