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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플] 애가(愛歌) _ 35

..(118.42) 2021.01.01 05:08:46
조회 802 추천 25 댓글 9




- 우리 아이를 통해, 당신에 대한 정을 품도록 해볼게요.


점심시간이 되어 비서관이 밖으로 나가자, 다카하시가 애써 감추고 있던 속내를 얼굴에 드러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목을 옥죄고 있던 넥타이를 풀어 헤치곤 의자에서 일어나 창 가로 가 창문을 열어젖혔다.

밖에서 산뜻한 바람이 불어와 정신을 환기시켰다.


『오서희... 넌 대체 왜 이렇게 날...』


벌써 몇 시간째 이 상태였다. 서희의 말을 되씹고 또 되씹으며 그 의중을 살피려 애썼다.

그 무엇보다 원하고 바랐던 말이었지만,

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원치 않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선뜻 그 답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더구나 제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척을 진다는 건 대단히 위험한 일이었다.

본국에 있는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조선의 오서희는 누군가에 의해 죽을 수도,

자신이 찾지 못할 곳으로 끌려가 사라질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서슬 퍼런 아버지의 기상에 혼례를 올릴 수도 없는 저와 서희의 처지에 

 늘 아이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해왔기에 단번에 거절할 수도 없었다.

아버지가 마음에도 없던 제 어머니를 옆에 두었던 것이 저와 누이 때문이었던 것처럼

서희를 제 옆에 확실히 옭아둘 아이가 필요하기도 했고...

또한, 아이만큼 저와 그녀의 관계를 확실하게 대외적으로 보여주는 방법은 없다 여기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또다시 죽여 없애는 일이 생길지언정 교합 시 저는 그녀 안에 사정하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었다.



그 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경무국 보안과 과장이 안으로 들어와 누가 볼 새라 재빨리 문을 닫았다.

다카하시는 뒤를 돌아 그를 보고서야 어제 이 시간에 들러 달라 말했던 것을 기억해냈다.

그가 작은 한숨을 토하며 소파로 가 보안과 과장에게 앉기를 권했다.


『앉으세요.』

『비서관께서 총독부를 완전히 벗어나시는 걸 보고 오느라 늦었습니다.』

『괜찮습니다.』


다카하시에 이어 보안과 과장이 소파에 앉고는 목소리를 낮춰 본론을 말하기 시작했다.


『잘하면, 이혁 사장도 함께 엮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혁이라... 하지만, 같은 장소에 있었다 라는 것만으로는 혐의가 부족합니다.

일단... 애초 계획대로 강주승을 노려 이 사장이 어떻게 움직일 지 두고 보죠.』


말을 마친 다카하시가 잠시 생각에 잠긴 동안,

보안과 과장이 조금은 염려스러운 얼굴로 그에게 물었다.


『이 일을, 다카하시상의 부친께서는 어디까지 알고 계십니까?』


『제가 이혁을 가만 두지 않을 거란 정도는 알고 계시겠죠. 그 부분은 괘념치 마시고...

자, 우리 계획을 조금 바꿔 이혁을 내란죄 급의 명분을 만들어 잡읍시다.

그를 없애 공을 세우고, 전리품의 일부는 우리가 차지하는 겁니다.』


전리품이란 말에 보안과 과장의 얼굴엔 감출 수 없는 기대감이 비쳤고,

다카하시 또한 불현듯 제 머리를 스친 이 계책으로 하루 종일 무겁게 짓눌렀던 고민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이혁의 사업체를 아버지의 손에 넘기는 대신 서희와 저의 아이를 보장 받는 것.

어쩌면 탐욕의 끝을 모르는 제 아버지에겐 먹힐 방법인 것도 같았다.


무슨 생각인지 다카하시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제 책상 앞 의자에 걸어둔 자켓을 들고 말했다.


『저는 가볼 데가 있어서,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인사말을 건넬 새도 없이 문밖으로 사라진 다카하시 때문에

보안과 과장이 소파에서 주춤거리며 멋쩍게 일어났다 다시 앉았다.






얼굴이 상기된 다카하시가 정원을 가로질러 집으로 향하다

마루 끝에 걸터 앉아있는 서희를 보고 다가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 일으켰다.


『렌?』


서희가 화들짝 놀라며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다카하시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집 안으로 이끌었다.

무엇 때문에 침묵 속에서 이렇게 다급한 건지,

영문을 모르는 서희는 제 맥박이 긴장으로 빠르게 뛰는 것을 느끼며 넘어지지 않기 위해 바삐 걸음을 옮겼다.

다카하시가 피아노 방으로 서희를 밀어 넣더니 그녀의 유카타를 풀어헤치며 그녀를 벽 쪽으로 밀어 세웠다.

그의 거친 호흡이 가까이에서 느껴지는가 싶더니 곧 서희의 입술이 그에게 덥석 물렸다.


『으음... 렌!!』


서희가 그의 가슴을 손으로 밀어내며 이름을 부르자,

비로소 다카하시가 서희와 눈을 마주치더니 씩 웃으며 들뜬 목소리로 속삭였다.


『네 말대로 우리 아이를 가질 거야.』

『렌의 아버지... 괜찮겠어요?』


『방법이 있을 것도 같아.

그러니 네가 원하던 대로 유라 그 아이는 일에서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해주지.』


『고마워요. 그런데,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총독부에는 돌아가지 않아도 되요?』


『돌아갈 거야. 네 안에 내 씨물을 가득 먹여 주고 말이지.

월경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어쩌면 원하는 바가 빨리 성사될지도 모르지.』


『그래서 이리 다급하게...』

『이젠, 예전처럼 너랑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다시금 서희와 입술을 맞물렸던 다카하시가 잠시 그녀를 놓더니 또다시 히죽 웃었다.

서희가 의아한 표정으로 눈을 끔뻑이며 바라보자, 다카하시가 입을 열었다.


『너는 알까? 갈수록 사랑스러워져 가는 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안에 아무 것도 입지 않아 예쁘단 말이야.』

『그거야, 렌이 다 감췄으니까요. 하, 이럴 바에 아예 유카타도 입지 말까요?』


『네 여체를 다른 이들이 보게 할 수는 없지.

그리고... 유카타를 걸친 흐트러진 네 모습, 보기 좋아.』


『하...』


다카하시가 씩 입 꼬리를 올려 웃고는

그녀의 목덜미에 코를 가져다대고 한껏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더니 축축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네 몸에서 나는 비누의 잔향이 마음에 들어.』

『원하는 게 따로 있는 거죠?』

『응.』

『절 피아노 위에 앉혀주세요.』


서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가 그녀를 안아들어 피아노 위에 앉혔다.

그녀의 목덜미에서 시작된 다카하시의 입맞춤이 조바심을 내며 아래로 내려가더니

그의 코끝이 서희의 은밀한 곳에 닿았다.

그녀의 향취와 비누의 잔향이 섞여 다카하시로 하여금 더욱 안달 나게 만들었다.






유라가 명월관에서 나와 이혁의 집으로 향했다.

웬일인지 하루 내내 명월관을 드나드는 이들을 살폈지만, 주승은 좀체 나타나지 않았다.

어쩌면 다카하시를 죽이겠다는 저를 말리다 못해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은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서희가 이성을 잃고 실언을 했다는 것은 곧 진심이란 뜻이기도 하니까.


언제부턴가 저잣거리를 지나 이혁의 집으로 향하는 유라의 뒤를 누군가 따라붙고 있었다.

움직임이 조심스럽고 가벼운 탓인지 유라는 누군가 저를 뒤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유라가 이혁의 집과 가까워질수록 거리의 인파는 줄어들었고,

그의 집을 지척에 두고서는 인근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확연히 드물었다.

주변을 면밀히 살핀 그 누군가가 이혁의 집 대문을 몇 걸음 앞에 둔 그녀의 팔을 덥석 붙들어 세웠다.

유라가 화들짝 놀라며 그의 손을 뿌리치려 격하게 반응했다.


“뭐, 뭐하시는 겁니까? 이거 놓으십시오! 비명을 지르겠습니다!!”


다소 과격한 행동과는 달리, 부드러운 미소를 지닌 청년이 유라의 손을 놓았다.


“나는 윤이라 한다. 너처럼 다카하시를 없애고 싶은 사람 중 하나지.”

“무..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명월관에서 들은 말은 무엇이지?

그리고 네가 그토록 강주승을 기다린 연유는 또 무엇이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제가 처음 보는 사내에게 그걸 왜 말해야 하나요?”


“넌 절대, 강주승에게서 원하는 답을 못 얻을 테니까.

설마.. 아직 모르는 건가? 그는, 너와는 입장이 달라.”


“하! 저를 떠보시려는 겁니까? 가서 밀고라도 하시게요?”

“밀고가 아니라, 조력자가 되고 싶은 거야.”


윤이 말을 마치고 지그시 유라의 눈을 들여다보더니 다시 물었다.


“다시 말하지만, 강주승은 널 도울 마음이 없어.

그러니, 나와 같이 이 일을 도모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런 거 아니래두요.”


“그래. 쉽지 않은 결정일 테니, 시간을 주지.

언제까지 짐승 같은 놈에게 오서희가 착취당하는 꼴을 보고만 있을 건지,

곰곰이 생각해 보도록 해. 내일 다시 찾으마.”


그녀가 반드시 응하고 말거라는 듯 기세등등한 미소를 머금은 윤이 유라에게서 돌아서서 곧 사라졌다.

유라가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풀썩 웅크려 앉더니,

윤이 사라져 간 자리를 쳐다보며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저와 서희만의 비밀을 주승이 아닌 타인이 알게 됐다는 사실에

온 몸의 털이 곤두서고 파르르 떨릴 정도로 크나큰 두려움이 엄습했다. 

 

‘괜찮아... 저 사람이 밀고하기 전에 오라버닐 설득해 그를 죽이면 돼.’


유라가 가까스로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돌려 굳게 닫힌 이혁의 집 대문을 바라봤다.

명월관에도, 교방에도, 이혁의 회사에도 없었으니, 반드시 이곳엔 주승이 있을 것이었다.






p.s.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애가(愛歌) _ 34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drama109&no=183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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