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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을 먹고 사는 사람들

운영자 2017.07.10 16:10:36
조회 215 추천 0 댓글 1
이슬을 먹고 사는 사람들

  

문예창작과를 나온 김민호씨는 을지로 뒷골목 낡은 건물의 이층을 빌려 혼자 출판사를 하고 있었다. 대머리에 작은 눈 그리고 움푹 들어 간 볼에서는 항상 가난과 외로움이 느껴졌다. 그에게 작은 소책자를 부탁하는 바람에 인연을 맺었다. 인연이라기보다는 잊을 만하면 그가 한 번씩 사무실을 찾아오던가 전화를 걸었다. 문인이라는 자부심이 강한 그는 삶 자체가 한편의 단편소설이었다. 글을 쓰면서 혼자 살겠다고 버티다가 뒤늦게 결혼을 했다. 아내와의 사이에 태어난 딸을 보고 남들은 손녀로 착각했다. 그는 임대아파트의 구석방에서 항상 원고지를 앞에 놓고 있었다. 아내는 외판원을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다. 아파트 동네에서 그는 작가 선생님이었다. 작가 선생은 서민아파트 동네의 자질구레한 미원들을 무료로 대필해 주기도 했다. 그가 사는 서민아파트 앞에 경찰서가 높이 지어지면서 햇빛을 차단했다. 그는 주민을 대신해서 일조권 소송을 제기하면서 나에게 이런저런 자문을 구해오기도 했다. 그의 빳빳한 저항의식을 보고 있으면 김동인 같은 일제시대 작가들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했다. 더러 그와 만나서 허름한 막걸리집을 갔다. 그런 때면 중앙대 문창과 출신인 다른 친구들도 한 두 명씩 동행하기도 했다. 그는 항상 동료 문인들을 걱정하곤 했다. 

“죽은 친구인 강태기의 시적 재능은 천재 수준이었어. 자동차 수리공을 하던 열일곱 살 때 신문사에서 하는 신춘문예 두 곳에서 당선이 됐으니까 말이야. 평생 인도나 티벳을 방랑하면서 육십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겠다고 벼르더니 딱 육십이 넘자마자 암으로 죽어버린 거야. 그 친구 유작을 시집으로 만들어 주려고 했는데 그 자식들은 아버지의 재능이나 뜻을 전혀 모르더구만.” 

그의 메마른 표정에는 항상 어떤 슬픔 같은 그늘이 고여 있었다. 그가 소개해준 친구가 옆에 있었다. 문예창작과 출신답지 않게 우락부락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는 먹고 살기 위해 공기업에 취직해 다니는 바람에 평생 글을 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고 푸념을 했다. 김민호의 생활은 아이가 커가면서 점차 더 쪼들리는 것 같았다. 

“요즈음은 노랫말을 써보려고 하고 있어요. 노래 하나만 히트를 치면 저작권료를 고정적으로 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쪼들리는 상황에서 아름다운 가사가 탄생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종류가 다른 인종 같았다. 그들은 평생 문학 때문에 삶이 괴로움이었다. 그러면서도 문학 때문에 인생이 즐겁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문단의 거물인 소설가 정을병 선생은 대학시절 문학을 신으로 삼기 위해 각오를 한 삶이 있다고 했다. 평생을 하루 한끼만 먹을 것. 결혼을 하지 말고 극히 검소하고 담백한 생활을 할 것. 그렇게 하면 최소의 생존비용으로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얘기였다. 돈 대신 시간을 벌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게 그의 삶의 목표였다고 했다. 그 정을병 선생의 장례식장의 몇 안 되는 참석자 중의 한사람이 나였다. 어느 날 핸드폰에 문창과를 나온 김민호씨본인상이라는 부고가 떴다. 노랫말을 만든다고 하더니 제대로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 그 얼마 후 그가 소개해 음식점에서 자리를 함께 했던 다른 친구도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원고지 위가 아니라 삶과 죽음 그 자체로 그들은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시인 김소월도 이상도 다 그렇게 밀도 있게 살다가 훌쩍 떠나간 것인가? 잘 모르겠다. 세상에는 아침이슬을 먹고 사는 부류의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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