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의 창조물인 만족( 蠻族 ) 세계는 바로 그 로마의 창조자가 되었다. \' 로마제국은 서양사에서 탁월한 정치적, 군사적 능력으로 서양의 세계를 창조하였으며 구주대륙에 대륙적 통일의 영원한 제국이라는 관념을 깊숙히 각인시켰고 이 보편제국의 이념적 전통은 고대 말에 이르기까지 야만족이었었던 게르만족에게서 더욱 강렬하게 그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이미 고대 말 중세 초부터 게르만 서고트의 추장 프리티게른( Fritigern ), 서고트왕 아타울프( Ataulphu ), 동고트 튜다라익( Thiudareik ) 대왕은 게르만족이 지배하는 세계제국을 꿈꾸었으며 이들 게르만 군주들의 야망은 마침내 역사에서 800년 12월 25일 카를( Karl ) 대제의 서방제국의 부활, 즉 중간에 로망스권이 분리되어 나가고 오토( Otto ) 대제에 의하여 쇄신되면서 비록 중세 말경에는 거의 유명무실해지고 기타 게르만권이 분리되어 나가면서 독일민족의 국가로 축소되어 근세 30년 전쟁( 1618~1648 ) 이후 제후들의 할거로 해체상태에 빠졌지만 어떠한 형태로든지 간에 근대 나폴레옹 시대까지 존속하게 되었었던 신성로마제국( 제 1제국: 800~1806 )의 성립으로 결실을 맺게 되었다. 이러한 신성로마제국의 최종적인 붕괴와 중구와 동구에 위치하여 분명한 지리경계가 갖춰지지 않았으며 장기간에 걸쳐 정치적, 종교적으로 할거하여 지속적으로 외세의 압력을 당하고 있었던 독일지역의 상황은 근대 민족주의의 형성과 함께 제국의 적통을 자칭하고 있었던 독일인들에게 독일민족의 통일국가를 건설해야 될 필요성과 당위성을 요구하였으며 이로써 근현대 독일의 역사는 중세 이래의 신성로마제국으로 대표되는 통일국가를, 더 나아가 제국( Reich )을 건립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의 시대가 되었다.
1815년 구 신성로마제국의 판도를 합리적으로 재편성하였던 39개 독일민족 영방국가의 연방이라 할 수 있는 독일연방( Deutscher Bund )은 그 통일독일의 첫 시도였다. 그러나 이 독일연방은 독일통일에 실질적으로 기여를 하지 못하였으며 근대 이래로 촉발되어 점점 독일에도 강하게 영향을 미쳤던 민족주의는 프랑크푸르트 국민회의( 1848. 5~1849. 6 )을 기점으로 결국 천주교 합스부르크 황조( 皇朝 )의 오서( Österreich )제국을 맹주로써 구 신성로마제국 영역의 대부분을 포괄하는 다민족 통일제국의 건설인 대독일주의( Grossdeutschtum )와 개신교 호엔쫄레른 왕조의 보로서( Preußen )왕국을 중심으로 다민족제국인 오서제국을 배제하고 독일민족만의 영역을 포함하는 단일민족 통일제국의 건설인 소독일주의( Kleindeutschtum )로 나뉘어 격렬하게 대립하게 되었다. 그리고 극소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독일주의를 넘어서서 독일의 영토가 독일연방의 경계선이자 멸망 당시 독일민족의 신성로마제국의 경계선을 초월해 이전 근대 독일의 문필가 아른트( Arndt )가 \' 독일어가 발음되는 곳까지, 하늘의 신이 노래하는 곳까지 \' 역설한 것과 같이 독일어권의 영역인 스위스와 스티리아까지 독일국가를 이뤄야 한다던가 더 나아가서는 근대 독일의 교육자 얀( Jhan )이 갈망하였던 것처럼 합스부르크 황제가 통치하는 정말, 화란, 별기애 플레망인 등의 중세 전성기 제국의 게르만족 영토까지, 심지어 스칸디나비아 게르만족까지 통합하여 독일의 중구와 동구에서의 주도권을 염원하였던 초독일주의( Pangermanismus: 혹칭 범독일주의 )도 존재하였었다.
초기에는 구 신성로마제국의 유서깊은 전통의 황조였었던 합스부르크 황조의 오서제국이 강하여 대독일주의가 득세하였으며 보로서의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마저도 오서의 합스부르크 황제가 제국을 통치하고 보로서 호엔쫄레른왕은 그 군사령관으로 복무하려는 구상을 하였을 정도로 우세하였었다. 그러나 대독일주의의 맹주였던 오서제국은 절대다수의 이민족이 구성원이었었던 다민족제국으로 지리적으로 동남부에 위치하여 편벽한 지역에다가 전통적 보수 반동세력이 강고하여 현실적으로 독일민족통일에 저해가 되었으며 통일독일국가 건설이 여의치 못하였던 관계로 점차 주도권은 지리적으로 동북부에 위치하여 후진의 지역이지만 독일민족이 대다수였으며 강력한 군사력으로 근세 이래 급속히 부상하여 오서에 도전하고 있었던 호엔쫄레른 보로서왕국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보로서왕국은 이에 힘입어 그리고 비스마르크( Bismarck )의 유명한 철혈정책에 의한 군사력과 국력 증강 및 그의 외교적 활약 하에 웅비하여 마침내 보오전쟁( 1866 )에서 통일의 경쟁자 오서제국을 패배시키고 독일지역 내에서 대독일주의 오서를 배제시켜 통일의 주도권을 장악하였으며 이어 보불전쟁( 1870 )에서 독일민족의 통일민족국가 건설을 방지하려던 불란서까지 패배시키고 드디어 베르사유궁의 거울의 방에서 독일제국( 제 2제국: 1871~1918 )을 선포함으로써 장기간에 걸쳐 분열되어 있었던 독일을 통일하기에 이른다.( 1871 )
이리하여 독일제국의 성립으로써 독일은 통일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또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독일분열의 시작이기도 하였다. 소독일주의에 의한 보로서의 독일통일과 독일제국의 건설은 대독일주의를 주장하였던 전체 독일민족의 6분의 1에 달하는 또다른 독일민족인 오서를 독일권에서 결정적으로 배제시켜 버렸고 결국 오서는 이미 대타협 칙령( 1867 )을 발표하여 오서-흉갈이 이중제국으로써 쇄신하였던 바와 같이 완전히 독일에서 분리되어 독자적인 노선을 향하게 되었으며 또한 이외에도 역시 독일민족이었던 룩셈부르크는 독일제국에 편입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독일제국 성립 이래로 신생 독일제국의 목표는 독일을 중추로 하여 룩셈부르크 등 독일제국 외곽에 분포하고 있었던 독일민족을 독일제국의 영내에 포함시키고 더 나아가 구주대륙과 세계에서 패권을 도모하여 제국의 영광을 실현시키기 위한 패권경쟁을 경주하게 된다. 탄생하자마자 구주대륙 제일의 강대국으로 등장한 독일은 이어 급격하게 선진화되어 더욱 강력한 세계의 열강이 되었으며 마침내 이를 기반으로, 그리고 근현대의 과학적 인종주의와 약육강식의 진화론이나 아리아인 및 북방인종의 우월성과 같은 사이비 과학까지 가세한 초독일주의를 주창하며 열강들의 제국주의적 패권쟁탈에 도전하여 결국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1914 ) 이 전후 과정에서 독일은 약체화된 오흉제국에게 역으로 초독일주의로써 접근하여 비록 아직도 만만치않았던 오흉제국의 실력으로 독오의 쌍두체제가 지속되어 하나의 국가가 되진 못하였지만 공동으로 1차 대전에서의 중부열강 동맹국으로 참전하는 등의 긴밀한 관계를 수립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성공할 수도 있었던 독오제국의 성립과 독일민족의 세계제패는 1차 대전의 패배로 인하여 실현되지 못하였으며 패전으로 독일제국과 오흉제국은 모두 붕괴되고 말았다.( 1918 ) 이로써 독일민족이 키워오고 있었던 제국의 꿈은 일단 좌절되었다.
1차 대전의 패배에 의하여 독일은 세계의 열강에서 패전국으로 전락하게 되어 극심한 고통을 당하였고 제국건설의 꿈이 파괴되었으며 정체가 바뀌어 바이마르 공화체제가 들어섰으나 그것은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하였으며 외면만의 변화였다. 독일인들은 자발적 변화가 아니라 패전과 연합국의 강요로 인하여 부과된 공화국 체제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독일인에게 독일은 여전히 제국으로 여겨졌고 독일 국방군의 장군들과 장교들은 \' 덧없는 공화국 \'이 아니라 \' 불멸의 제국 \'에 대한 충성심을 자부하고 있던 판이었으며 실제로도 구 독일제국의 체제가 존속하고 있었던 관계로 바이마르 공화국은 \' 훈장을 단 제복을 입은 존경할 만한 인물 \' 다시말해 군부를 위시한 구 제정의 세력들이 통치하고 있었던 권위주의적 대통령 체제로써 황제만 제거된 기묘한 공화제국이었다. 게다가 대전의 패배는 독일에게 또다른 기회의 시작이기도 하였다. 패전으로 인하여 독일에게는 근세 이래로 독일민족의 보로서와 쌍두체제를 형성하여 독일민족 통일에 장애가 되고 있었던 다민족대제국인 오서제국이 해체되어 오서는 비록 독일과 함께 여전히 이중체제로써 존속하였지만 독일민족만의 소국 오서로써 대폭 축소되고 동구의 또다른 열강인 노서아제국, 돌궐제국까지 붕괴해버렸으매 이같은 국제적 정세는 패전에도 고스란히 국가적 민족적 통일을 유지할 수 있었던 독일에게 세력균형이 결정적으로 유리하게 기울어져 베르사유 조약에서의 독일-오서 합방의 금지 조치가 내려질만큼 독일민족 통일에 수월한 국면을 조성하였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내외부적 상황은 패배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으며 연합국과 공화정부에 분노와 원한을 쌓아가고 있었던 독일인에게 구 제국의 영화를, 진정한 제국을 강력히 요구하는 계기로 작용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독일의 제국적 여망을 등에 업고 히틀러( Hitler )가 집권하여 표면적으로만 공화국이자 제국이었던 바이마르 공화제국을 타도하고 나치 독일( 제 3제국: 1933~1945 ) 독재체제를 수립하였던 것이다.( 1933 )
나치 독일의 성립으로써 독일은 제국의 열망과 제국주의적 군국주의적 국수주의적 인종주의적 극우민족주의적 성격이 정점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나치 독일은 애초부터 대독일민족 제국의 건설이라는 대의명분으로 집권하여 1차 대전으로 상실된 고토를 탈환하고 이어 구 독일제국의 야심을 재개하여 중추지역인 독일에서부터 오서 등의 독일 외곽의 독일민족이 분포하고 있었던 지역들을 모두 통합시키고 그를 토대로 역시 구 독일제국과 같이 그리고 구 독일제국의 초독일주의를 더욱 극으로 발전시키고 극단의 광신적인 인종주의적 요소까지 가미한 나치주의를 이념으로 하여 마찬가지로 재차 중구와 동구와 구주대륙의 패권도모에서 더 나아가 나치의 신질서에 입각하여 게르만족이 대서양에서 우랄산맥까지 생활권으로써의 통치를, 그리고 다시금 전 세계의 패권을 목적으로 하여 정치 군사적으로 영토확장을 추구하였다. 그리하여 독일은 자를란트( 1935 ), 라인란트( 1936. 3 )의 주권상실 지역을 수복하고 독오합방( 1938. 3 )을 실현시켜 마침내 중세 이래로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격차로 인하여 계속 이루어지지 못했던 독일과 오서의 통일을 최초로 이룩하여 이미 독일 제 2제국으로 이루어졌던 보로서 위주의 독일민족국가로의 통일인 소독일주의를 최종적으로 실현시켰고 이어 주데텐란트( 1938. 10 ), 체코( 1939. 3 )까지 병합함으로써 오서 위주의 구 신성로마제국 영역에 이민족까지 포괄한 통일인 대독일주의까지 일부분 구현하기에 이르렀으며 최종적으로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1939 ) 구주대륙 대부분의 지역을 점령하고 소련을 침공하여 모든 게르만족의 통일인 초독일주의까지 실현시키고자 기도한다. 제국의 꿈이 그 절정에 달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독일은 또다시 전쟁에서 패배( 1945 )하였으며 2차 대전의 패배는 세계적 초강대국이었던 독일의 패권을 결정적으로 붕괴시키고 말았다. 근대 나폴레옹 시대 이후 최초로 외국의 군대가 독일을 점령하여 전면적인 변혁을 강요하였으며 독일과 오서는 재차 최종적으로 분리되어 합병이 금지되었고 또한 독일은 오데르-나이세강 이동의 모든 영역을 상실하고 자본주의의 독일연방공화국( 서독 )과 공산주의의 독일민주공화국( 동독 )으로 분단까지 되어버렸다.( 1949 ) 이로써 독일이 오랫동안 열망하였던 제국의 꿈은 망각 속으로 매몰되어 버렸으며 독일은 이 제국의 꿈을 묻어둔채로 현존하여 왔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독일 역사에서의 주요한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제국의 시대가 일단락되었다. 거듭된 패전과 분단이라는 시련을 겪었음에도 독일은 활력과 창의력을 발휘하여 번영하였으며 결국에는 통일을 성취하였다.( 1990 ) 독일의 통일과 냉전의 종식으로 독일은 재차 구주대륙의 주요 강국으로써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으며 구주연합( EU )의 창설로써 다시금 구주대륙에 그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독일은 이제 다시 1차 대전 이후의 상황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독일민족은 여전히 독일민족의 주요 독자적인 국가인 오서와 독일의 이중체제로써 현존하고 있으며 그들은 차이점만큼이나 독일민족으로써의 민족적, 문화적 유대감도 존재하고 있다. 물론 그 민족적 문화적 공감대가 통일의 당위성은 아니며 그럴 이유도 필요도 없다. 독일과 오서의 통합은 세계가 좌시하는 이상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거의 없으며 독일은 이미 두 차례의 역사적인 경험을 통하여 과거 제국의 꿈을 접은 실정이다. 하지만 역사에서 그리고 현재도 일부에서나마 독일과 오서을 통합하려는, 통일된 독일민족의 국가를, 제국을 이룩하려는 이상이 계속 존재하였던 사실은 간과할 수는 없다. 현재 대독일주의의 오서와 초독일주의가 소멸한 이상 독일민족 통일의 유일한 해결책은 소독일주의뿐이며 독일과 오서 양측의 의사가 일치하고 구주대륙의 미래에 위험요소로서의 변동만 없다면 최소한 소독일주의적 독일과 오서의 통일은 비록 그 가능성이 거의 없긴 하지만 잔존하는 것도 사실이다. 독일과 오서, 그리고 독일민족은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독일민족은 아직도 제국의 꿈을 꾸고 있는가? 역사가 독일민족의 선택에 대하여 후대에 답변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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