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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교문명권이 전 세계의 주도문명을 차지할뻔하였던 세차례의 결정적인 전투들

契來慕愛彛吐glamorator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08.10.27 06:12:08
조회 1521 추천 0 댓글 29






5세기 고대 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통일적 기독교 지중해 지역은 두 종류의 문명으로 분립되었다.
첫째는 고대 동방제국의 정통을 계승하였던 유서깊고 세련된 반동방적인 희랍 중세 동방제국으로 미래 \' 동구( Eastern Europe )  \' 문명으로 발전할 비잔티움 문명.
둘째는 고대 서방제국의 판도에서 할거하였던 조야하고 반야만적인 라틴, 즉 최초의 \' 서구( Western Europe ) \' 문명이었다.
7세기 이들 기독교 문명들은 제 3의 문명이자 새로운 문명이었던 회교 문명의 강력한 공세를 받았다.
회교 문명은 아랍적 근간에 기독교 문명처럼 유태-기독교적 기원과 고대 희랍-로마 문명의 간접적인 영향 하에서 태동하여 유태교, 기독교를 이어 최후의 유일신교적인 세계종교로 성장하게 된다.
 
회교 문명은 탄생하자마자 파죽지세로 지중해 세계를 휩쓸었으며 승리의 진군을 구가하였다.
622년 성천( 聖遷: Hegira )으로 시작된 회교 문명은 이미 632년 예언자 무하마드가 사망한 직후부터 외부세계로 급격히 뻗어나가
634년 기독교 비잔티움과 배화교 사산조 파사( Persia )에 동시에 침공해들어가기 시작하여 638년에 팔레스타인, 640년에는 시리아, 641년에는 애급, 698년에는 북아대륙을 점령하여
고대 기독교 문명의 형성지였던 비잔티움의 동부와 남부 지중해 연안을 모조리 탈취해버렸고
650년에는 사산조 파사를 정복 병탄하여 배화교 문명을 완전히 폐멸시켜 버렸으며 더 나아가 인도와 중앙아시아까지 진격하였다.
이를 역사에서는 회교 문명의 전반기 대확산이라고 칭한다.
그리하여 7세기 경 회교 문명은 형성된지 한 세대가 지나서 배화교 문명을 멸망시키고 기독교 문명을 크게 축소시켜 새로이 주도적인 문명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로부터 반세기를 조금 넘어 8세기 지중해 세계의 양극단에서 회교 문명의 재공세가 재개되었다.
회교 문명은 705년 중앙아시아, 710년 인도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였으며 711년에 북아대륙에서 건너가 712년에는 서고트를 멸망시켜 서반아 대부분을 차지하였고
718년에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 불란서를 공격하여 719년 셉테마니아를, 720년에는 나르본을 함락시켜 불란서 지중해 연안 지역을 차지하였으며
721년 툴루즈를 공격하였고 730년대까지 남부 불란서를 거진 점령하였으며 마침내 732년 투르-푸아티에까지 들이닥치기에 이르렀다.
역사에서는 이를 회교 문명의 후반기 대확산, 혹은 아랍의 팽창이라고 칭한다.
이리하여 8세기 형성된지 1세기 만에 회교 문명은 대서양에서 중국 국경까지의 광대한 지역에 군림하게 되었으며 라틴-비잔티움 기독교 문명 전체가 회교 문명의 직접적인 위협을 받기에까지 이르렀다.
 
회교 문명의 침입으로 지중해 문명의 통일성은 파쇄되고 고대 지중해 세계는 완전히 소멸되어 버렸다.
회교 문명은 기독교 문명에서 소아시아를 제외한 아시아와 북아대륙의 기독교 지중해 연안 모두를 앗아가버렸다.
그리고 잔존하고 있었던 기독교 지역조차도 생존 자체가 의심받게 되었다.
이 시대 이 \' 문명의 충돌( Clash of Civilizations ) \'에서 패하였더라면 현재의 \' 구주( Europe ) \', 그리고 현존하는 기독교 구주 문명은 결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며
배화교 문명처럼 회교 문명의 일부분으로 통합되어 버렸을 것이고 더 나아가 회교 문명이 전 세계를 주도하게 되었을 것이다.
기독교와 회교의, 기독교 문명과 회교 문명의 \' 문명의 충돌 \'에서 세계사적 의미를 지니는 3대 전투가 기독교 문명의 생존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이 전투에서의 승패가 이후의 전 기간 동안 기독교 문명과 회교 문명에, 그리고 세계의 역사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1차 전투: 제 1차 콘스탄티노플 공방전( 674~678 )
 
성립된지 1세대 만에 회교 문명은 비잔티움의 동부 지중해 연안지대들을 싸그리 점령해버렸으며 이어 드디어 수도인 콘스탄티노플로 육박해들어옴으로써 전반기 회교 문명의 대확산의 정점을 이루었다.
백의대식( 白衣大食: Umayyad )의 시조 무아위야 1세( 661~680 )의 명으로 파돨라 알 안싸리와 무아위야 1세의 아들 야지드 휘하의 회교군은 668년 출정하여
670년 키지코스를, 672년에는 1천 7백 척의 함대로 로도스, 크레타, 스미르나를 점령하고 킬리키아까지 공격하였으며 674년 초에 마침내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회교군은 키지코스를 거점으로 하여 674년에서 678년까지 하절기 내내 콘스탄티노플을 포위 공격하였다. 
하지만 비잔티움은 콘스탄티누스 4세( 668~685 ) 지휘하에 난공불락의 성이었던 콘스탄티노플은 굳게 버티어냈으며 끝내 깔리니코스가 제작한 신무기 희랍의 불, 희랍 화약으로 회교함대를 대패시켰다.
회교군은 전투를 포기하고 678년 퇴각하였으며 회교함대는 폭풍으로 더욱 크게 손상되어 철수하였고 육지에서도 귀환 도중 소아시아에서 참패해버렸다.
결국 무아위야 1세가 비잔티움에게 점령지 반환과 1년에 3천 개의 금괴와 50명의 포로 및 50필의 말을 조건으로 30년의 평화조약을 체결하였으며
이 기독교 비잔티움 문명의 승리로 회교 문명의 승리의 진군이 최초로 저지되어 이때부터 콘스탄티노플은 기독교 구주 문명의 최후의 방벽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2차 전투: 제 2차 콘스탄티노플 공방전( 717~718 )
 
회교 문명은 1세기도 채 안되어 후반기 회교 문명의 대확산을 재개하여 재차 콘스탄티노플로 쳐들어오기에 이르렀다.
당시 비잔티움은 헤라클레이오스 황조( 皇朝 )의 멸망 이래 군주가 난마와 같이 교체되어 혼란한 상황이 계속되었다가 레오 3세( 717~741 )가 즉위하여 가까스로 안정을 회복한 직후의 일이었다. 
백의대식의 군주 술레이만( 715~718 )은 전 군주 알 왈리드의 정책을 계승하여 콘스탄티노플에 대한 전면적인 공세를 결정하여 군을 일으켜
동생 무살리마 휘하의 8만 명의 육군은 소아시아로 쳐들어가고 오마르 휘하 해군은 콘스탄티노플을 해상으로, 총 12만 명에 1천 8백척의 함대로 공격하였으며 
술레이만 자신도 출정하여 원정군의 뒤를 받쳤고 717년 8월 15일 드디어 무살리마가 콘스탄티노플을 포위 공격함으로써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이 다시금 전개되었다.
무살리마는 장기전에 대비하여 식량과 물자의 비축과 둔전까지 준비하였지만 레오 3세는 콘스탄티노플을 고수하면서 회교군의 비축 식량을 불태우고 희랍 화약으로써 또다시 회교함대를 격멸시켜 제해권을 장악하였다.
유례없었던 혹독한 겨울에 회교군대는 기한과 질병까지 만연되어 술레이만까지 병사해버리는 등에다가 비잔티움의 청탁을 받은 불갈이군이 공격하여 2만 2천 명이 패사해버리는 더욱 대손실을 당하였다.
718년 봄 시리아의 육군과 애급, 북아대륙의 함대로써 회교의 새로운 증원부대가 파견되었지만
절대다수가 기독교인이었던 애급과 북아대륙의 승무원들은 비잔티움으로 대거 도주하매 보급까지 탈취당해버렸으며
증원군은 포위군과 합류하기도 전에 비잔티움군의 매복 공격으로 인하여 패배당해 축출되고 말았다.
회교군은 이외에도 기독교 수호를 위해 비잔티움을 원조하러 내도하였다는 프랑크군의 풍설에 군심이 흔들리다가
술레이만의 사망 소식과 신군주의 철군령으로 마침내 718년 8월 15일 콘스탄티노플에서 철군해버렸지만 함대는 귀환길에 폭풍우에다가 에게 해의 화산폭발까지 당하여 1775척이 침몰해버려 깡그리 궤멸되고 말았다.
콘스탄티노플의 포위가 풀리고 이어 일련의 전투에서 소아시아에서 회교군대를 일소함에 따라 레오 3세는 영웅으로 부상하여 아모리아 황조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으며 
회교 문명의 대규모 콘스탄티노플 공격이 그후 수백년간 동결되어 비잔티움 문명은 생존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3차 전투: 투르-푸아티에 회전( 732 )
 
두 차례에 걸친 콘스탄티노플의 강력한 방어선으로 회교 문명의 비잔티움 문명 정복이 무산되어 버림에 따라
회교 문명은 북아대륙을 거쳐서 \' 위대한 땅 \'으로 들어가 가장 약한 고리인 라틴 문명을 통하여 배후로부터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이미 회교 문명은 711년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서고트를 멸하고 서반아의 대부분을 점거하였으며 더 나아가 남부 불란서까지 쳐들어감으로써 프랑크까지 위협하기에 이른다.
721년 압둘 알 라흐만의 회교군대는 툴루즈의 공격에서 일단 패배하였지만 회교 문명의 세력은 계속 남부 불란서로 뻗어나갔으며
732년 경에는 총독 압둘 알 라흐만 지휘하의 1만 5천 명으로 추산되는 회교군이 불란서 남부 가스코뉴, 아키타니아로 진격하여 보르도에서 아키타니아의 영주 오도 휘하의 기독교 군대를 궤멸시키고 불지르고 약탈하면서 북상해갔다.
이에 프랑크의 궁재 칼 휘하의 프랑크군이 맞섬에 따라 투르와 푸아티에 중간에서 마침내 전투를 치르게 된다.
6일 간의 대치 끝에 회교군대가 선제 공격해 해질녘까지 전투가 치뤄져 중무장 보병의 프랑크군이 경무장 기병의 회교군을 격파하고 압둘 알 라흐만을 패사시켰으며 회교군이 철수하여 투르-푸아티에 전투는 종결되었다. 
이후 칼은 회교군을 밀어붙여 남부 불란서를 거의 모두 탈환하였고 759년에는 회교 세력을 피레네 너머 서반아로 내몰아버렸으며 
이 공로로 인하여 칼은 기독교 구주 문명을 구원한 대위인으로써 후대에 망치( Martell )란 별명을 얻게 된다. 
비록 투르-푸아티에의 전투는 예전에는 라틴 기독교 문명의 승리로써 과대포장되었고
현대에 들어와서는 콘스탄티노플의 공방전에 비하면 약탈군의 격퇴라는 경시를 받는 등 그 평가가 갈리고 있지만
매한가지로 이 승리를 통하여 구주 기독교 문명이 회교 문명을 저지하였다는 점에서 세계사적 전투라는 의의가 존재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구주 기독교 문명은 회교 문명 대확산의 시대를 헤쳐나와 생존할 수 있었다.
기독교 문명에 막힌 회교 문명은 팽창이 저지되었으며 내부적 상황으로 분열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회교 문명은 계속 준동해 9세기 지중해 지역를 재침략하여 시칠리아, 꼬르시카, 사르데냐, 남부 불란서를 정복하고 이태리와 로마까지 위협하였으며
이후에도 12세기까지 구주 기독교 문명보다 선진적인 면모를 유지하였다.
하지만 회교 문명이 기독교 문명 자체를 위협하였던 시대는 지나가버렸으며 회교 문명은 내부 분열로 더이상 기독교 문명에 대한 대공세를 펼칠 역량이 부족했다.
그리하여 기독교 문명은 11세기 십자군과 재정복으로 반격하여 지중해 지역에서 회교 문명을 몰아내고 일시적이나마 팔레스타인에 거점을 구축하기까지 하였을 정도로 성장하였던 것이다.
 
그에 맞서 회교 문명이 결집하여 마침내 구주 기독교 문명에 대하여 재차 공세를 행한 시기는 돌궐제국 시대부터였다.
셀주크, 오스만 돌궐대에 회교 문명은 비잔티움 문명의 오랜 근거지였던 소아시아에서 기독교를 쓸어버렸으며
이어 오스만 돌궐대에는 드디어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켜 비잔티움 문명을 멸망시켜 버렸고
계속해서 동구 문명권 상당부분을 정복하여 더 나아가서는 빈공격과 레판토해전으로써 서구 문명권을 노리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이때는 투르-푸아티에 전투로부터 이미 어언 700여 년이 흘러간 후였으며 이미 구주 기독교 문명은 만만치 않게 성장한 후였다.
결국 회교 문명은 기독교 문명을 정복하지 못하고 반대로 구주 문명에 압도되었으며 근현대에 들어와서는 구주 기독교 문명권이 전 세계의 주도 문명으로 자리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세차례의 전투에 의하여 기번이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상상하였던 \' 대식인들이 파란 국경에서 스코틀랜드 국경까지 도달 \'하는 역사가정은, 
\' 옥스퍼드 대학에서 마호메트 계시의 신성함과 진리를 할례한 사람들에게 회교성경을 강의 \'하는 대체역사는 불발로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당시 암흑시대로 일컬어졌던 구주 기독교 문명의 사람들은 그들의 미래를 알지도 못하였고 알 수도 없었다.
그들은 그 먼 미래보다는 그들의 신앙과 그들의 국가 및 그들이 지켜왔던 것을, 그들이 사랑했던 사람들을, 그들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여 분투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전투는 그들 자신을, 그들이 사랑했던 사람들을, 그들이 지켜왔던 것을, 그리고 그들의 문명을 구하고 그들의 문명을 미래에까지 발전시키는데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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