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황도(皇都)를 차지하라-1차 대전 노서아와 희랍의 꼰스딴찌노쁠 수복 계획

契來慕愛彛吐glamorator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08.11.30 14:14:19
조회 725 추천 0 댓글 8












\' 로마의 창조물인 만족( 蠻族 ) 세계는 바로 그 로마의 창조자가 되었다. \' 로마제국은 서양사에서 탁월한 정치적, 군사적 능력으로 서양의 세계를 창조하였으며 구주대륙에 대륙적 통일의 영원한 제국이라는 관념을 깊숙히 각인시켰고 이 보편제국의 이념적 전통은 서구에서 중세 게르만적 서방제국, 즉 신성로마제국( 800~1806 )을 부활시켰으며 동구에서는 중세 희랍적 동방제국인 비잔티움 제국( 395~1453 )으로 존속하게 되었다. 비잔티움 제국은 말기 로마 문명의 희랍적, 동방적 요소를 기본으로 형성되었고 동구권의 종주 제국으로 중세 초기에 이르기까지 야만족이었었던 슬라브족에게서 실로 막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 제 1의 로마 \'에 이어 330년 5월 11일 창건된 제국의 수도 신로마( NovaRoma ), 즉 꼰스딴찌노뽈리스( 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 )는 \' 제 2의 로마 \'로서 제국의 대부분의 기간에 구주대륙의 최대 도시이자 제국의 상징으로 희랍인들에게는 \' 도시( i Poli ) \'로, 슬라브인들에게는 \' 황제의 도시( 노명: Царьгра́д, 영명: Tsargrad ) \'라고 칭해지게 되었다. 서구의 제국가들이 로마를 염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구의 제국가들은 이 황도( 皇都 )를 열망하였으며 이미 중세부터 불갈이의 시메온 1세( Simeon I ), 노서아의 스뱌또슬라쁘( Sviatoslav ), 세르비아의 스쩨빤 두샨( Stefan Dušan )은 황도의 차지와 슬라브족이 지배하는 세계제국을 꿈꾸었다. 그러나 1453년 5월 29일 비잔티움 제국은 오스만 돌궐에 의하여 멸망되었으며 꼰스딴찌노뽈리스는 \' 회교의 도시( İstanbul ) \'로 개명되어 회교도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후 중세 말기 동구권 비잔티움과 남슬라브 제국가가 회교세력에게 몰락해버린 상황에서 달단의 멍에를 벗어던지고 정교 신앙을 지키는 유일한 독립적 세력으로 정교세계의 새로운 중심이 되었던 노서아제국이 \' 제 3의 로마 \'가 되어 비잔티움 제국의 계승자로 동구에서의 맹주권을 주장하기 시작한다.
 
근대 노서아제국은 비잔티움의 정신적인 유산, 그것의 신앙과 정치적 이념과 정신적 이상을 품에 안고 출범하였다. 노서아의 전국민적 통일군주 모스끄바 대공국의 이반 3세( Ivan III )는 1472년 비잔티움 마지막 황제의 질녀와 결혼하였고 이어 대공에서 황제로 자칭하였으며 비잔티움 제국의 문장인 쌍두취( 雙頭鷲 )의 문장과 제국의 예식 및 관습을 도입하였다. 모스끄바는 로마와 꼰스딴찌노쁠에 이어 \' 제 3의 로마 \'가 되었다. 노서아는 동구 정교권의 유일한 독립세력이자 새로운 종주국으로 동방제국의 계승자이자 새로운 동방제국 자체가 되었으며 소위 이교도 회교세력에게 점령된 정교권과 비잔티움 제국, 그리고 구 제국의 수도 황도의 탈환과 해방은 노서아제국의 사명이 되었다. 이미 꼰스딴찌노쁠 함락 직후 서술되었던 노서아의 문학 작품인 황도 이야기에서는 황도의 영웅적인 함락의 묘사와 아울러 이교도인 회교도에게 넘어간 황제의 도시를 노서아가 탈환하여 다시 기독교권의 도시로 복구시켜야 한다는 결의를 피력한 바 있었다. 하지만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노서아는 돌궐제국의 정복으로 같은 동구 정교권인 비잔티움 및 남슬라브 제국가들의 멸망으로 보다 더욱 고립되었었던 상황이었으며 더불어 노서아의 국력은 아직까지는 흥성했던 돌궐제국에 겨루어 발칸반도와 꼰스딴찌노쁠로 뻗어나갈 세력이기에는 무리였었다. 결국 그로 말미암아 이반 3세는 서구 천주교권과 연합하여 돌궐에 맞서서 꼰스딴찌노쁠에 기독교도 황제를 다시 즉위시키자는 교황의 제안을 거절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후 노서아제국이 계속 강성해지고 돌궐제국이 점점 약화되자 노서아는 정교권의 보호자를 자임하면서 점차 적극적으로 동구권에 개입하였으며 더 나아가 구주의 패권과 황도 꼰스딴찌노쁠을 향하여 야망을 키워나가고 이를 실현시키려고 부단히 노력하였다.
 
예까쩨리나 2세( Ekaterina II )의 시대 노서아제국은 제 1차 노토전쟁( 1768∼1774 )에서 승리하여 돌궐제국에게서 현 노서아 남단의 끄림한국을 독립시키고 꼰스딴찌노쁠에서의 정교회 건립과 돌궐 내 정교도의 보호권을 인정받았다. 더욱이 예까쩨리나 2세는 그의 명장 뽀쩸낀( Potemkin )과 노서아 남단의 경략을 넘어서 돌궐의 정복과 회교도를 대신한 정교도의 중동 지배, 혹은 돌궐 지배 하의 구주 내의 영토를 정복하고 꼰스딴찌노쁠에 기독교 희랍제국을 건립하여 동방제국을 부활시키려는 소위 \' 희랍 계획 \'이라는 원대한 구상까지 하고 있었으며 이를 위해 자신의 둘째 손자를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의 이름인 꼰스딴찐으로 명명하고 그를 희랍식으로 양육하기도 하였다. 비록 희랍 계획은 무산되었지만 노서아는 이후의 노토전쟁에서도 승리하여 끄림한국 및 현 노서아 남단의 흑해 연안까지 차지하기에 이르렀으며 그리하여 말세에 노서아인이 꼰스딴찌노쁠의 주인이 된다는 타우루스( Taurus ) 광장의 기마상( 騎馬像 )의 비밀 예언의 풍설이 나돌기까지에 이른다. 그리고 이후 노서아는 계속 팽창 진출하여 동방정책에서 대성과를 거두고 범슬라브주의로 발칸반도 민족운동의 주도권을 장악하였으며 돌궐제국이 계속 쇠퇴하여 동방문제( Eastern Question )가 대두되고 희랍 독립전쟁( 1821∼1826 )으로 희랍이 독립( 1830 )하자 비잔티움 제국의 정통성 및 꼰스딴찌노쁠을 둘러싼 경쟁에서 노서아와 돌궐에다가 구 제국의 민족적, 국가적 직계를 자처하고 대희랍주의로 비잔티움 제국의 재건을 도모하는 희랍까지 잠재적으로 끼어들게 되었다. 이들 노서아와 희랍 및 기타 서양 제열강과 독립 발칸의 신생 제국가들은 동구권의 패권을 위해 이합집산을 되풀이하면서도 거듭하여 \' 구라파의 병자( Sick man of Europe ) \' 돌궐을 밀어붙여 발칸전쟁 이후 제 1차 세계대전의 전야 돌궐제국은 구주대륙에서는 거의 모든 영토를 상실하고 오직 수도 회도( 回都 )를 중심한 뜨라끼아( Thracia )만을 보전하고 있던 상황으로 전락되고 말았다. 이러한 ‘ 유럽의 화약고 ’ 동방의 발칸문제는 1차 세계대전의 주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1차 대전이 발발하자 노서아와 희랍, 그리고 돌궐은 각각 연합국과 동맹국으로 참전하여 최종 대결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으며 노서아와 희랍, 돌궐은 각기 자국을 중심으로 하는 제국의 부활과 재건이라는 최후의 거대한 야망을 더욱 강렬하게 열망하게 되었다. 희랍은 동방제국의 영토 회복을 명분으로 최소한 희랍인이 소수민족으로 분포하고 있는 돌궐령 동뜨라끼아와 에게해의 제도서를 목표로 하고 있었으나 국왕 꼰스딴띠노스 1세를 중심으로 중립을 원했던 친동맹국파와 수상 베니젤로스 중심의 친연합국파 간의 참전 문제로 상호 반목하다가 1917년에야 영국, 불란서의 압력으로 왕을 퇴위시키고 뒤늦게 연합국으로 참전했기 때문에 입지가 약하였다. 가장 유망해보였던 주자는 바로 노서아제국이었다. 노서아는 막강한 열강으로 전쟁의 시작부터 참전하였었고 연합국의 중추세력 중의 하나였던터라 연합국의 전후 계획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노서아는 1914년 전승 후에 동보로서, 포젠, 갈리시아, 부코비나 북부, 다르다넬스, 보스포루스 양 해협의 영유를 요구하였다. 동부전선에서의 노서아의 불리함에도 전쟁이 장기화되자 연합국과 동맹국 양측은 전쟁의 최종 승리를 위하여 참전국들을 끌어들이고 상당한 지분을 약속할 수 밖에 없었으며 연합국에서는 영국과 불란서가 크게 노서아에 의존하였던 상황이었다. 결국 드디어 1915년 3월~4월의 꼰스딴찌노쁠 비밀협정으로 영국과 불란서는 돌궐제국의 최종 분할계획에서 노서아의 해협문제에 대한 오랜 반대를 포기하여 노서아에게 보스포루스, 마모라해, 다르다넬스 해협 전체, 그리고 마침내 황도 꼰스딴찌노쁠의 합병을 결약하기에 이르렀으며 1916년 5월에는 사이크스-피코 협정으로 노서아에 뜨라브존, 에르주룸, 반, 비뜰리스의 돌궐 소아시아의 동부 흑해 동남 연안의 할양을 확약받았고 1917년 3월 11일에는 영국에게는 비밀로 한 노서아와 불란서끼리의 비밀 협정에서는 실질적으로 파란을 넘겨주는 노서아의 서부 국경선 설정의 자유를 약정하였다. 이리하여 노서아는 전후 오랫동안 꿈꿔왔던 제국의 염원과 중구, 동구권에서의 결정적 패권과 구주대륙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는 약속을 획득하였다. 그러나 반복된 군사적 패배와 총력전으로 노서아는 무너져가고 있었으며 노서아 3월 혁명으로 니꼴라이 2세( Nikolai II )가 퇴위하고 만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꼰스딴찌노쁠에 대한 예언이 횡행하고 있었으매 꼰스딴찌노쁠은 두번째 미하일( Michael )이 군주가 될 때에 러시아의 소유가 되리라는 것이었다. 당시 니꼴라이 2세는 동생 미하일 대공에게 양위하려 하였으며 그가 미하일 2세로 즉위하여 전쟁에서 승리할 경우에는 예언이 실현될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미하일은 제위를 사퇴하였으며 노서아는 기나긴 전쟁의 폐해로 거의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결국 로마노쁘 황조는 멸망하였으며 이어 11월 혁명으로 소련이 성립되어 브레스뜨리또쁘스끄 조약으로 소노서아, 파란, 핀란드, 리뚜아니아, 에스또니아, 라뜨비아를 포기하고 까쁘까쯔 일부를 돌궐에 양도하면서까지 중도에 이탈하여 종전하고 말았다. 이리하여 몇세기에 걸친 노서아의 제국 건설의 야망은 비참하게 종결되었다.          
          
노서아의 중도 이탈과 돌궐의 패전으로 1차 대전이 종결되자 이제 전승국이 된 희랍이 제국 재건의 강력한 유망주로 부상하게 되었다. 1919년 5월 희랍은 영국의 지지 하에 대희랍주의를 명분으로 소아시아( 희랍명 아나똘리아 )의 이즈미르( 희랍명 스미르나 )에 군을 상륙시켰고 1920년에는 에디르네( 희랍명 아드리아노쁠 )를 비롯한 전 뜨라끼아를 점령하였다. 8월 10일의 세브르 조약에서는 돌궐제국의 해체를 결정지었으며 희랍이 점령하였던 돌궐영토의 승인, 아르메니아의 독립, 꾸르드의 자치 등으로 최종적으로 돌궐민족국가를 아나똘리아 중북부로 축소시켜버렸다. 게다가 1920년~1921년에는 희랍이 소아시아 점령을 도모하여 신생 토이기 공화국의 수도인 앙카라로 진격하기까지 하였고 무력으로 구 제국의 수도 꼰스딴찌노쁠의 접수를 시도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희랍은 과도한 팽창으로 보급로가 길어지고 시리아를 둘러싸고 영국과 분쟁을 일으키던 불란서, 이즈미르를 희랍에게 빼앗겼던 이태리, 영국과 적대하고 있던 소련의 제열강이 토이기를 지원하여 외교적 입지가 악화되었으며 돌궐의 강력한 저항, 즉 돌궐국부 케말( Kemal Atatürk )이 영도하는 토이기민족의 독립전쟁( 1919~1923 )에 맞부딪치게 되었다. 케말은 돌궐민족주의와 세속공화국을 명분으로 국가와 민족의 독립을 위해 연합군과 괴뢰 돌궐제정에 독립투쟁을 전개하여 1921년 3월 16일 토소협정에서 까르스, 아르다한을 회복하였고 8월 29일~9월 13일의 사카리야 강의 전투에서 악천후와 빈약한 보급로로 곤난을 겪고 있던 희랍군을 궤멸시키고 이어 이즈미르를 탈환하여 희랍의 세력을 소아시아에서 축출해버리는 대승리를 거두었다. 전쟁의 패배로 인하여 희랍에는 정변이 일어났으며 대희랍주의는 사실상 꺾이고 말았다. 이어 케말은 1922년 회교황제( Sultan )를 폐지하여 돌궐제국을 완전히 멸망시켰으며 1923년 7월 24일의 로잔 조약에서 세브르 조약을 폐기시키고 서뜨라끼아와 에게해의 제도서들을 제외한 희랍이 점령했던 동뜨라끼아, 테네도스, 이즈미르의 포기와 토이기 국토의 보전을 확인받았고 10월 29일에는 케말을 초대 대통령으로 현대 토이기 공화국이 본격적으로 탄생하였으며 1924년 3월 3일에는 회교교황( Khalifah )까지 폐지하여 토이기는 토이기민족의 세속공화국으로 재출발하게 이른다. 그리하여 희랍의 제국 재건의 꿈도 종결되고 만다.  
 
이상으로 동방제국의 재건과 부활의 시대가 지나갔다. 창건된지 어언 1700여년, 비잔티움 제국이 멸망한지 500여년, 돌궐제국이 멸망한지 70여년이 흐른 지금, 회교도 돌궐의 세력이 물러나면서 기독교권과 회교권이, 구라파와 아세아가 거의 완전하게 분리되었지만 황제의 도시 꼰스딴찌노쁠은 여전히 토이기의 영토로, 회교의 도시로 현존하고 있다. 이제 꼰스딴찌노쁠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말세의 예언이 정녕 실현될 것인가? 꼰스딴찌노쁠은 기독교의 도시로 회복될 수 있을 것인가? 꼰스딴찌노쁠에서 사라졌던 사제들의 미사가 재개될 수 있을 것인가?( 정교회 신도들 간에서는 1453년 꼰스딴찌노쁠의 함락시 신비롭게 사라진 사제들이 꼰스딴찌노쁠이 다시 기독교의 도시가 될 때까지 불멸하였다가 다시 돌아와 미사를 거행하리라는 당연히 아직까지 검증되지 않은 전설이 존재하고 있다. ) 역사가 꼰스딴찌노쁠의 미래에 관하여 후세에 확인해줄 것이리라.

추천 비추천

0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모태 솔로도 구제해 줄 것 같은 연애 고수 스타는? 운영자 25/07/21 - -
공지 역사 갤러리 이용 안내 [208] 운영자 11.08.24 85640 191
공지 질문은 Q&A게시판에 해주시기 바랍니다. [208] 운영자 04.09.20 121381 93
2286950 택시 업계가 어떻게 유지되는지 의문임 (궁금증) [1] 야옹아저씨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2:57 11 0
2286949 대마도 회수 하는 듯. 굳 [2] 역갤러(39.118) 01:56 10 0
2286948 (예수회 + 통일교 + cia) ㅡ> 국힘당 [2] 역갤러(39.118) 07.23 42 0
2286947 기후 변화로 요하 문명은 동/서로 남하 하는데 [2] 역갤러(39.118) 07.23 35 0
2286946 응 발해 [5] 역갤러(39.118) 07.23 43 0
2286945 화하족 역갤러(39.118) 07.23 23 0
2286944 삼국대륙설 주장하는 사람한테 궁금한게 있음 [5] 역갤러(59.22) 07.23 35 0
2286943 2025.7 일.총선에서 급부상한 '참정당' 역갤러(39.118) 07.23 33 0
2286942 ┌ 국민 力 역갤러(39.118) 07.23 44 0
2286941 아래 도쿠가와 글의 결론에 통일교 섬멸 주장했잔아 [2] 역갤러(39.118) 07.23 82 0
2286940 군주온라인매크로 군주온라인오토 군주오토사냥 군주매크로 군주온라인자동사냥 군주151(121.170) 07.23 30 0
2286939 님들 척씨 말인데 ㅇㅇ(122.43) 07.22 34 0
2286938 성층권 ICBM ... k-플라즈마 요격기술 역갤러(39.118) 07.22 35 0
2286936 [연해주] <ㅡ 여기도 장난 아닌데 [1] 역갤러(39.118) 07.22 69 0
2286935 도쿠가와ㅡ> 오사카 무사 10만명학살 후ㅡ> 조선에 화해 역갤러(39.118) 07.22 57 0
2286934 아직도 부정선거 믿는새끼=저능아 ㅇㅇ(175.214) 07.22 55 0
2286933 우리 엄마가 광산 김씨인데 OO(175.119) 07.22 46 0
2286932 미래의 동아시아 및 남방회랑(일대일로) 역갤러(39.118) 07.22 62 0
2286931 [류큐]는 자치의회투표로 '한국령' 된듯. [홋카이도]는 [1] 역갤러(39.118) 07.22 56 1
2286929 2층집은 무사집단에서 '망루' '성' 개념 [2] 역갤러(39.118) 07.22 83 0
2286928 ㄱ) 미국은 샌프조약해서 독도뻿고 625전쟁 기획함 역갤러(39.118) 07.22 44 0
2286927 ㄴ) 맥아더는 CFR 지시받고 김일성남침을 유도함 역갤러(39.118) 07.22 60 0
2286926 ㄷ) 독도를 공사한 미.국무 덜러스, 차관보 러스크 역갤러(39.118) 07.22 64 0
2286925 ㄹ) 625종전= 간도회복, [만주국/류쿠국/일본]개헌 역갤러(39.118) 07.22 46 0
2286924 ㅁ) 전쟁 억제 능력 완성 1 2 3 [1] 역갤러(39.118) 07.22 67 0
2286923 ㅂ) 한강의 기적. 그리고 21세기 한반도 역갤러(39.118) 07.22 42 0
2286922 ㅅ) 웨(왜)는 동해섬에 고유명사 조차 붙이지 않했어 역갤러(39.118) 07.22 66 0
2286920 서양도 여성군주는 인정안했다는데 영국은 왜 빅토리아시대가 상징성있음? 역갤러(59.16) 07.21 39 0
2286919 국가가 100년 이상 버티는게 생각보다 힘든거였네 jung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21 62 0
2286918 진시황의 진나라 시대 고조선 영토 (북부여, 예맥조선, 임호) 수구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21 42 1
2286917 수구리 // 조선(朝鮮)≠동호(東胡) 열전 편성 때부터 다르다 마한왕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21 37 0
2286916 동호는 1천여리 동쪽으로 물러난 것이다 (동호는 고조선) 수구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21 31 0
2286915 호(胡)는 흉노(匈奴)가 될 수 없고, 호(胡)는 고조선이다 수구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21 33 0
2286914 수구리 // 동호≠조선이니까 망상은 그만해라 마한왕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21 29 0
2286913 수구리 // 동호 1000리 부분 글 엉터리로 읽지 마라 마한왕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21 33 0
2286912 수구리 // 동호≠조선이고 조선,진번 등을 2000여(餘)리 취했다 마한왕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21 35 0
2286911 수구리 // 호(胡)≠임호(林胡)≠동호(東胡) 동호는 연나라 북쪽 마한왕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21 29 1
2286910 수구리 // 대택향은 니가 비틀어서 해석한 거고 근거없다 마한왕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21 38 0
2286909 전국시대 "호, 임호, 동호"가 고조선의 삼조선(중국 고대 문헌에서 ) 수구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21 34 0
2286908 여자가 왕하면 나라망한다는데 영국은 왜 빅토리아시대가 전성기임? 역갤러(115.92) 07.21 35 0
2286907 황본 역갤러(115.138) 07.20 91 0
2286903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과 호랑이를 보고 [1] ㅇㅇ(121.182) 07.19 97 0
2286901 일뽕이라면 일본 참정당을 응원하자 ㅇㅇ(118.235) 07.19 94 1
2286897 역사공부법 추천죰 [1] ㅇㅇ(122.34) 07.19 98 0
2286894 auto-114@nate.com 다크에덴오토가격 auto-114@na 9999111151(121.170) 07.19 51 0
2286890 살벌한 역사 내용~!!!!! vksrhks(220.80) 07.18 204 0
2286885 조선 똥꼬충 문화는 원나라에 끌려갔다 온 공녀들이 퍼뜨린 거임 역갤러(121.131) 07.18 86 0
2286883 수구리 // 동호≠조선이니까 망상은 그만해라 [4] 마한왕갤로그로 이동합니다. 07.18 127 0
뉴스 블랙핑크, 빌보드 글로벌 두 차트 정상…K팝 걸그룹 최초 디시트렌드 07.22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