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강명석 위원의 [쾌동홍길동]보기 쾌도 홍길동-비평

snow anne(218.186) 2008.05.21 12:33:17
조회 594 추천 0 댓글 11


강명석 위원의 [쾌동홍길동]보기 쾌도 홍길동-비평

2008/05/20 01:28

출처:http://home.freechal.com/triplecrown/

박치기! - 쾌도홍길동

KBS <쾌도 홍길동>에서 길동(강지환)은 입버릇처럼 “내 알 바 아냐”를 말하곤 한다.
그는 세상사 어떤 것에도 관심을 갖지 않고, 개입하려 하지도 않는다.
 길동은 서자이나 이판(길용우)의 배려로 노비의 자식이 져야 할 의무에서 벗어난 탓에 어떤 의무도 지지 않는 대신,
그 어떤 세상사에도 개입하지 못한다.
 
이판이 그에게 강조한 것도 “아무 것도 하지 말아라”였다.
개인적인 일상의 영역에서는 망나니 짓을 할 수 있을 만큼 제약이 없지만,
거기서 한발짝만 벗어나면 아무 것도 못하는 인생.

길동이 세상사에 간섭하기 전, 그토록 청나라로 떠날 것을 염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조선에서 태어났으나 조선 사람으로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는 이미 정신적 국외자였다.


gall_bt.gif
viewimage.php?id=honggildong&no=29bcc427b48677a16fb3dab004c86b6f9a697bf10be1d1d76a76490d35427da5144447e41d84f1d1fea4fec4232643be1735c7c391e0a9fab51712568527b4&f_no=78f3da36e2




길동에게 초점을 맞춘다면, <쾌도 홍길동>은 세상에 관심을 갖지 않던 개인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려는 혁명가로 변신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쾌도 홍길동>에서 그 필요조건은 자각이다.
 <쾌도 홍길동>의 청춘들은 현실에 대한 자각을 기준으로 성격이 변한다.
자신의 신분이 복권되기 위해서는 지금의 왕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창휘(장근석)나, 자신이 아버지 윤섭(안석환)의 뜻에 따라 ‘새장 속의 새’로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 은혜(김리나)는 <쾌도 홍길동> 초반부터 진지하다.

반면 이녹(성유리)은 자신의 신분을 알기 전까지 <쾌도 홍길동>에서 가장 오랫동안 코미디를 전담한다.
그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지는 것은 그가 자신의 신분을 자각하는 순간부터다.
현실에 대한 자각은 자신의 정확한 신분, 즉 진짜 자기 자신을 되찾게 하는 대신, 그들을 마냥 즐겁게 살아갈 수 없게 한다. 




Open your eyes




길동은 그 자각의 순간을 한 없이 유예시키려 했다.
길동은 자신의 신분에서 오는 문제를 충분히 알고 있다.
적자인 인형(김재승)과 그의 어머니(이덕희)가 자신을 괴롭힐 때마다, 그는 자신이 신분제로 인해 차별 받았던 기억을 되살린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자각은 하지 못한다.
 그가 서자의 신분을 벗어나려 한다는 것은, 세상 전체를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유로운 서자’의 신분으로 망나니 짓을 하고, 청나라로 떠날 준비를 하는 소극적인 저항에 머문다.

그가 한 없이 가벼운 것은 그가 자신의 현실을 외면하기 위한 방법이자, 세상사에 관심을 두지 않겠다는 제스처이기도 하다.
그것은 활빈당의 ‘불폭탄’ 수근(박상욱)이 평소 여자나 유혹하고 다니며 생각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사채업자에게 끌려간 자신의 여동생에 대한 아픔을 잊기 위한 것과 비슷하다.
 
우울해지지 않으려면 밝고 가벼워져야 하지만, 마냥 밝게 살 수만은 없고, 그렇다고 뭔가 할 수도 없다.
길동이 그 인생을 벗어나려는 결심을 하는 것은 자신의 현실이 단지 무관심만으로 견딜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자각할 때다.
 
길동이 역모죄로 몰려 죽을 위기에 처할 때, 관군을 이끈 것은 그의 아버지였다.
신분의 문제가 아버지와 아들의 호부(號父)는 커녕 아버지가 자신을 죽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 때, 세상에서 “내 알 바 아냐”를 외치던 청춘은 세상을 바꾸려하게 된다.


gall_bt.gif
viewimage.php?id=honggildong&no=29bcc427b48677a16fb3dab004c86b6f9a697bf10be1d1d66576490d35427da5a4f5b43b7cdb675a021590bf28540b51b6c54465a188a0d48ca76a6f4ca0353ed74e416d6ab26f61c53aacb7ba687ca3341ab7415d212d78775b07b8a6293e565f3780e7ac552a867faee44333a8c0a3e9e179f80bde6837167c&f_no=a76508ad0a2bb45bba3338519c06f8b17d46edd12e9c55186a72bc36e356379d99e3




<쾌도 홍길동>이 후반으로 갈수록 진지한 정치 사극으로 변한 것은 이 자각의 문제 때문이다.
곰(맹세창)은 평소 한 없이 밝지만, 즐거워질 때마다 자신의 아픈 과거를 기억하며 우울해진다.
그것은 <쾌도 홍길동>의 청춘들이 세상을 사는 방식이다.
자신의 신분을 규정하는 세상에 눈을 뜬 순간부터, 그들은 즐거움을 포기하는 대신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그것은 <매트릭스>의 네오가 모피어스의 알약을 먹고 진실을 알게 된 것과 같다.
길동이 마치 네오처럼 한 차례의 죽음을 통해 세상을 자각하게 된 것은 흥미롭다.
네오가 죽음과 부활의 과정을 통해 자신이 ‘One\'이라는 것을 자각했듯, 길동 역시 ’살아도 죽은자‘의 신분이 되면서 세상에 눈뜨게 된다.

그리고, 자각한 길동의 시선을 따라 <쾌도 홍길동>의 시선 역시 넓어지기 시작한다.
길동의 자각 전, <쾌도 홍길동>이 그리는 세상은 길동이 살고 있는 도성 주변과 창휘와 연관된 정치의 무대였다.
그러나, 길동이 세상에 자각하는 순간 <쾌도 홍길동>의 카메라는 도성 바깥으로 향한다.
사채업자로 인해 딸을 잃은 부모와, 관료들에 의해 수탈 당하는 굶주린 백성들이 등장한다.
밝은 대낮에 망나니 길동의 이야기를 떠들며 살던 백성들은 어느덧 한 밤 중에 횃불을 들고 왕에 저항하는 사람들로 바뀌고, 그저 웃으며 즐겁게 살았던 기방 여인들의 모습 뒤에는 술에 취한 부잣집 자제들에게 비명 한 번 못지르고 얻어맞는 또다른 현실이 있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논다




그래서, <쾌도 홍길동>은 장르적, 정서적으로 극단적인 분열을 보여준다.
 <쾌도 홍길동>은 인터넷에 악플을 다는 것이 가장 적극적인 정치적 저항 행위인 개인주의자들의 드라마도 아니고, 사상적, 실천적으로 체계가 잡힌 투사의 이야기도 아니다.

<쾌도 홍길동>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전자에서 후자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의 것이다.
그래서 <쾌도 홍길동>은 현실 정치에 대한 풍자와 정치 담론을 분리한다.
 <쾌도 홍길동>에서 영어 몰입 교육은 중국어 몰입 교육으로, 부유층의 병역 비리는 고관대작 자제들의 병역 비리가 된다. 이는 단편적인 정치 풍자다.

<쾌도 홍길동>에서 정치 담론은 가상의 에피소드를 통해 다뤄진다.
성폭행 사실을 은폐하려는 양반의 모습을 통해 신분제도의 모순이 나오고, 길동의 활약에 고무된 백성들이 윤섭의 가마를 습격하는 사건은 창휘가 길동을 정치적 라이벌로 인지하게 되는 계기를 만든다.
 
<쾌도 홍길동>의 길동이 자신이 어떻게 세상을 바꿀지 고민하듯, <쾌도 홍길동> 역시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고민할 뿐,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 것인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KBS <한성별곡 正>은 수도 이전과 재벌들의 정경유착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정조 시대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 한국의 정치 현실과 정치 담론의 문제를 동시에 다뤘다.
그러나, <쾌도 홍길동>은 길동이 대 상인의 집을 습격해 비리를 캐내면서 삼성 특검을 풍자하는 듯 하지만, 그것을 더 깊게 끌고 들어가지는 않는다.
그들이 현실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것은 현실의 어떤 사안들에 대해 직접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는 것밖에 없다.
실존하는 현상을 정치 담론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아직 혁명가가 되지 못한 청춘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다.


<U>길동벌떡복싱아.gif (297.2 KB)</U>
viewimage.php?id=honggildong&no=29bcc427b48677a16fb3dab004c86b6f9a697bf10be1d1d66176490d35427da52e408edbe48045b867bf798085624b81b1949377d7a1e93acbd4a0e0bbdb86abb328af1fe55efef75766e0049157488dd6bb4e291454ae38b879b3dc26bceb0242f34845fd737391&f_no=a76508ad0a2bb374823420749d02f1b108ade1a0e3ee990eca



gall_bt.gif


gall_bt.gif


물론, 길동의 자각 그 자체도 좋은 이야기의 소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쾌도 홍길동>의 세계관을 만든 홍자매(홍미란-홍정은 작가) 자체다. <쾌도 홍길동>은 이미 그 시기를 거친 작가들이 지금의 청춘들에게 자각의 필요성을 알려주는 작품이 아니다.
 자각한 것은 홍자매 그 자신이다.
길동이 “내 알 바 아냐”를 반복하는 것처럼, 이녹은 “나는 잘 모르겠지만”이라는 말을 한다.

이녹은 <쾌도 홍길동>의 거의 마지막까지 자신의 신분도, 자신과 관계된 정치 현실도 전혀 모른다.
그래서, 그는 아무 것도 모르는 ‘멍청이’다.
그런데, 이 ‘멍청이’ 이녹은 지금까지 홍자매의 드라마 속 여주인공을 조선시대로 옮겨온 캐릭터다.
이녹이 그런 것처럼, 홍자매의 여주인공들은 부모가 없거나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고, 먹고 사는 문제 외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그들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 것’외에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다.

<U>길녹ㅋㅋㅋ복싱아.gif (388.9 KB)</U>
viewimage.php?id=honggildong&no=29bcc427b48677a16fb3dab004c86b6f9a697bf10be1d1d66376490d35427da57bc10970a009b97ac5979178d91178f5c17422ddf84269728af2e59d38e63a03766d06d9378a98250985a65bf745414e99f4f668d155d31d5fda331d59e3da5daf7c3ba292dd4ff67d55b6bf1a0b&f_no=a76508ad000bbb43853c335e9534cfb6b7144aa35cd1cb309bc4731a



홍자매의 새로운 세계




그러나, 홍자매의 여주인공은 KBS <쾌걸춘향>과 SBS <마이걸>을 지나 MBC <환상의 커플>에 다다르면서 조금씩 변화했다.
<쾌걸춘향>이 검사와 연예 기획사의 사장이 ‘액션 히어로’가 되는 완전한 거짓말의 세계였다면, <마이걸>은 가짜 가족이 된 여주인공의 거짓말이 들통 나는 순간 가슴 아픈 현실이 찾아온다는 설정이 있었다.
그리고, <환상의 커플>에서 상실(한예슬)은 정말로 ‘자각’한다.
 상실이 자신의 기억을 되찾고 안나 조가 될 때, 그는 예전처럼 웃고 떠들 수 있는가.
<쾌도 홍길동>은 그 예쁜 거짓말의 세계에서 벗어난 홍자매의 여주인공이, 혹은 홍자매가 자각한 현실 속으로 들어간 이야기다.


gall_bt.gif
viewimage.php?id=honggildong&no=29bcc427b48677a16fb3dab004c86b6f9a697bf10be0d1d46576490d35427da53dd912cf8ebae9315fb38c014e16aba88d03b464496abfe559142b8eb62cc7ca951cd65da6ef81d1300b7be1ee6e59dd0891ddf785a410b417e07a86bed393fce3bc1bd4d60f073b67e9&f_no=a14838ad2d0bb45b8a34284d575af7e8ab6e5ebb509e214e3ff6




이는 홍자매가 <쾌도 홍길동>의 장르를 다루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정치 풍자의 면을 제거한다면, <쾌도 홍길동>은 정치 사극이자 무협 사극이다.
길동과 창휘가 각자의 방법으로 세상을 바꾸려 하면서 그에 대한 실천의 방법을 고민한다는 점에서 정치사극이고,
그 방법을 위한 수단으로 무력을 사용하는 방식은 무협 사극에 가깝다.
 
활빈당의 우두머리가 봉을 가지는 설정은 무협소설에서 거지들의 집단 개방의 우두머리가 타구봉을 가지는 것과 유사하고, 활빈당과 상인 집단 용문(<용문객잔>의 그 용문이 연상되는) 등 특정 집단이 세상의 변화에 참여하는 것은 무협 소설에서 가져온 것이 분명한 설정이다.

홍자매는 이것을 매우 진지하게 다룬다.
 <쾌걸 춘향>에서 <환상의 커플>로 올수록, 홍자매는 트렌디 드라마의 장르적 특성을 비트는데 능한 모습을 보였다.
<환상의 커플>에서 기존 트렌디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묘사된 청순가련형의 여성은 악역이 되고,
상실과 철수(오지호)의 사랑은 트렌디 드라마의 로맨틱한 연애담 대신 궁상맞은 현실 안에서 벌어졌다.

트렌디 드라마 안에서 홍자매는 장르적 관습을 조롱하면서,
 오히려 그 장르가 시청자에게 진실처럼 포장하고자 했던 진짜 연애 감정을 만들어내는데 능했다.

그러나, <쾌도 홍길동>에서 홍자매는 정치사극과 무협사극 어떤 쪽도 웃음의 소재로 삼지 않는다.
무협 사극 속 진지한 주인공의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온 창휘는 단 한 순간도 희화화 되지 않고,

 길동 역시 무협 고수나 혁명가의 모습을 보여줄 때는 전혀 우스꽝스럽지 않다.
길동의 활빈당 활동이 창휘에게 알려지고, 그것이 정치적으로 해석되고,
그것에 대해 진지한 반응을 내놓는 것은 정치 드라마의 정석이다.

홍자매는 자신이 처음 시도하는 장르를 뒤트는 대신 정석을 밟아 진지하게 풀어냈다.

그래서, <쾌도 홍길동>의 장르적, 정서적 분열은 <쾌도 홍길동>은 홍자매에게는 필연적이었고,
그들은 그 변화를 감당할 만큼의 드라마적 완성도를 보여주지 못했다.
홍자매는 청춘의 자각에 대해 이야기하고, 청춘들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진지하게 말하려 한다.
그러나, 홍자매가 보여주려는 것은 그들조차 처음으로 시도하려는 것이다.

그들의 기술은 장르를 비트는 코미디에 능한데, 그들의 마음은 새로운 장르에 대한 진지한 추종에 있다.
그래서, <쾌도 홍길동>은 코미디와 진지함 사이에서 길을 잃고 방황한다.
정치 풍자나 캐릭터의 헤프닝은 단편적으로 나열될 뿐 중요한 에피소드에 뒤섞이지 못하고,
 반대로 진지한 에피소드에는 코미디의 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쾌도 홍길동>의 코미디는 코미디를 위한 코미디가 된다.
고관대작이 골프를 치는 모습을 희화화하는 것은 정치 풍자이긴 하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유치하고 직설적인 풍자다.
 이녹의 할아버지가 허준, 허균, 허재, 허참을 거론하는 코미디는 단순한 유머일뿐, <쾌도 홍길동>의 내러티브에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한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마음은 정치 현실에 있으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매 회 코미디를 넣는 <쾌도 홍길동>의 전개 방식은 작품의 일관성을 해치는 것은 물론, 캐릭터의 조화에도 심각한 문제를 끼친다.

이녹은 <쾌도 홍길동>의 후반까지 자각하지 않으면서, 네 명의 주요 캐릭터 중 가장 많은 코미디를 전담한다.
 만약 <쾌도 홍길동>이 홍자매의 로맨틱 코미디의 세계에 있다면,
 이녹의 코미디는 곧 이녹을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요소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쾌도 홍길동>에서 이녹은 ‘코미디를 위한 코미디’ 때문에 소비된다.
그가 뱀을 찾기 위해 기방 곳곳을 뒤지며 소동을 벌이거나, 길동에게 마음을 고백한 뒤 부끄럽다며 이곳 저곳을 다니다 물에 빠지는 식의 에피소드는 이녹의 바보스러움을 보여줄 뿐, 작품에 어떤 역할도 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런 식의 코미디는 이미 유행이 한참 지난 구식 코미디이기도 하다.


gall_bt.gif
viewimage.php?id=honggildong&no=29bcc427b48677a16fb3dab004c86b6f9a697bf10be1d1d66576490d35427da5a4f5b43b7cdb675a021590bf28540b51b69e416df083f5858ca76a6d37dc35325c5788c547d9eff53f24c505fea3bf521cc98d8af307d0c05d0695a65a3842ab39d6e079e2236355eea98f03a3a2be7d7fb27ed0&f_no=a14004ad000bb45bba340f519d08d0b6193ef8b9cf2549b4984f13b852d126




이런 코미디 때문에 작품의 흐름과 함께 진지해져야할 캐릭터가 성장을 멈춘다.
 이녹을 굳이 자각 전과 자각 뒤로 나누는 대신, 돈 버는 것 외에 세상 일에 무관심한 캐릭터가 길동과 창휘를 만나면서 서서히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이녹은 지금보다 더욱 매력적인 캐릭터가 됐을 것이다.
 
<쾌도 홍길동>에서 작품 중반까지 그럴듯한 로맨스를 연출한 것이 길동과 은혜였다는 점은 <쾌도 홍길동>의 문제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길동과 은혜가 병풍 뒤에 숨어 손으로 글씨를 그리는 장면은 서로의 신분에 자각하나,
그것을 뛰어넘을 수 없는 청춘들의 애틋한 로맨스다.
 길동과 같은 길을 가고 싶으나 길동의 세계로 건너갈 수 없는 은혜의 마음은 절절할 뿐만 아니라,
그를 능동적인 캐릭터로 만든다.

반면 이녹은 자신의 신분을 자각하기 전까지 어떤 능동적인 선택을 하기 어렵고,
길동과 창휘로부터 보호받는 존재가 된다.
길동과 창휘는 아무 것도 모른 채 그들을 걱정하는 이녹이 사랑스러웠겠지만,
이녹의 무지는 이녹이 <쾌도 홍길동>에서 다른 캐릭터와 어울리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는 윤섭과 같은 조연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정치사극과 정치풍자가 조화된다면, 윤섭은 희화화의 대상인 동시에, 실질적인 위협의 대상이 돼야 한다.
실제로, 우리는 영어 몰입 교육을 주장하면서 외국인에게 ‘you are here\'라는 영어를 자랑스레 쓰는 자가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현실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윤섭은 풍자 코미디를 위한 희화화의 대상일 뿐, 그 풍자의 대상이 실제 정치에서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는지는 못한다.
진지한 정치 담론을 맡는 것은 후반부에 등장한 이녹의 친 할아버지다.


viewimage.php?id=honggildong&no=29bcc427b48677a16fb3dab004c86b6f9a697bf10be1d1d66a76490d35427da5f020245e3d3ad0d98ad474e184b9d35d1127dbae73be61f91c41ce224ed92db154ec58603a92022a22eee6b1fb510d77edf64bc45b7e3b056317b45f99c8283f14af7471f648fec32002b9687556b1be763cf725&f_no=a76508ad0a2bb4618a3335549a2df8b63891bd1ea0f6e7ceb98e7a35c7730d




그래서, <쾌도 홍길동>의 정치 풍자는 통쾌하되 단편적이고, 정치 담론은 진지하되 관념적이다.
 길동이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창휘는 그것을 꼬박꼬박 말로 풀어준다.
길동이 성폭행을 저지른 양반을 풀어준 고을 수령을 눈 앞에 두고도 죽이지 않은 채 그를 단죄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선언하자, 창휘는 길동이 생각보다 더욱 무서운 자라면서 그를 경계하는 식이다.

담론을 위한 구체적인 예는 부족하고, 대사를 통한 설명이 계속된다.
창휘의 부하들은 신분제도가 없어진 활빈당을 보며 “저것은 꿈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쾌도 홍길동>의 시청자들은 길동이 과연 무슨 방법으로 활빈당 당원들을 그토록 행복하게 만드는지 알 수 없다. 작은 조직이라 할지라도 신분제를 없애고, 자급자족만으로도 생활이 가능한 조직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쾌도 홍길동>은 그것을 ‘만들었다’고 가정한 뒤, 그것이 우리의 이룰 수 없는 꿈이라고 말한다.




<쾌도 홍길동>의 부족한 정치 인식은 백성의 묘사 방식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쾌도 홍길동>에서 백성들은 지극히 순진무구한 존재다.
그들은 길동의 활약에 과장되게 말하다가도, 조정에서 길동에 대한 헛소문을 퍼뜨리면 그대로 믿어버린다.

또한 길동이 나눠주는 양식을 먹을 때는 길동의 편을 들지만, 조정에서 그들을 조금만 위협해도 금새 돌아 선다.
어제까지 길동의 편을 들던 사람들이 배고픔을 이유로 길동을 공격한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단지 선동에 의해 이리저리 움직인다고 생각한다면, 길동은 절대로 혁명을 성공할 수 없다.

국민은 때로는 계도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선동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국민들의 행동에는 보다 복잡하고 다양한 이유가 깔려 있다.
그건 지금 대통령이 뽑힌 것이 단지 국민들이 멍청해서가 아니라 집 값을 비롯한 여러 이유가 결합된 것과 같다.

드러난 결과는 바보스러운 것처럼 보일 수 있어도, 개개인의 이유는 멍청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쾌도 홍길동>은 그 복잡한 정치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만, 현실 정치의 복합적인 문제들을 표현할 역량은 갖추지 못했다. 이 때문에 <쾌도 홍길동>의 정치는 단선적이다.
어느 한 쪽에서 행동이 일어나면 백성을 통해 금새 여론화 되고, 그것이 상대편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정치가 단순해지다 보니 정치를 위한 고민은 현실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보다는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한 관념들이 반복된다.

‘백성을 위한 왕’, \'세상을 바꾸는 힘‘, ’이룰 수 없는 꿈‘같은 것들.




미친 왕의 시대에 나타난 이상한 컬트




그래서, <쾌도 홍길동>은 이른바 ‘웰메이드 드라마’에서 한참 떨어져 있다.
이야기는 허술하고, 담고 있는 메시지를 구현하는 방식은 순진해 보일 만큼 단순하다.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쾌도 홍길동>이 설파하는 정치적 메시지는 이제 막 정치에 눈 뜬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쏟아낸 것 같다.

생각은 많은데, 실천적인 방안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다.
그러나, <쾌도 홍길동>이 웰메이드 드라마가 되지 못한 것은 이 작품이 형편없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쾌도 홍길동>은 원한다면 훨씬 쉬운 길을 갈 수 있었다.
그저 정치를 비웃고, 길동 일당이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양반들을 괴롭히는 이야기였다면
<쾌도 홍길동>은 보다 대중적이거나, 더 매끈한 이음새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후반부를 왕과 길동의 화합으로 이끌기만 했어도 <쾌도 홍길동>은 보기 편한 드라마가 됐을 것이다.
<U>휘마마재주넘기피삼.gif (440.8 KB)</U>
viewimage.php?id=honggildong&no=29bcc427b48677a16fb3dab004c86b6f9a697bf10be0d1d56276490d35427da5376022df73e93b6a6ba36f9d4c461eee07a16181d43cb5ee232ea02fc23a0d0adba2615d1d27d256949ffbcb70cf15e93c056230353863ac4f458dd9938f8c2a28499d9e3fa9ef5f269a88c6a08bb0580274ebd5&f_no=a04128ad223ab361863328799a12f8b6e32228082f445cf689165d200e534a





그러나, <쾌도 홍딜동>의 엔딩은 작가들의 극단적인 선택이 아니라, 필연적인 결과다.
물론, 그 선택의 과정에서 사인검이 가짜였다는 것이 밝혀지는 식의 전개는 무리수다.
사인검이 가짜로 판명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그에 대한 복선이 있어야 했다.
특히 사인검이 가짜가 되면서, 왕권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을 위한 왕이 되려는 창휘의 고민은 물거품이 되었다.
길동은 창휘에게 ‘백성의 왕’이 되라고 하지만, 명분상 사인검을 바탕으로 왕이 될 수 있었던 창휘가
그것을 단번에 버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은혜가 길동을 갖지 못했다는 이유로 길동을 죽이겠다고 나서는 것 역시 진부한 전개다.
그거야말로 트렌디 드라마에서 홍자매가 가장 비웃던 전개 아니었던가.
하지만 홍자매가 그렇게 해서라도 <쾌도 홍길동>의 후반부를 비극으로 끌고 간 것은 그들의 확고한 현실 인식 때문이다.

viewimage.php?id=honggildong&no=29bcc427b48677a16fb3dab004c86b6f9a697bf10be1d1d66576490d35427da5a4f5b43b7cdb675a021590bf28540b51b6ca423ba0dbf1858ea76a6d4ca83542e9236d9d9e736dea0fb678e03f84bb13337f4578d87faaa0bc8b6e8c&f_no=a16d0dab192ab375bb333d649a24c073e381f5


<쾌도 홍길동>에서 호부가 불가능한 청춘들은 연대했으나, 결국 계급적인 차이에 의해 분열되는 이야기다.
길동과 창휘, 이녹은 모두 세상이 바뀌어야 자신의 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 때문에 길동과 창휘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힘을 합치지만, 그들은 정권을 얻은 뒤 분열하게 된다.

창휘가 아무리 길동을 옹호한다 해도, 그가 왕으로 있는 나라에서 서자인 길동은 체제의 근본을 뒤흔드는 인물이다.
반면 길동의 입장에서 창휘는 왕이 아니라 백성의 대리자일 뿐이다.
 이녹이 길동과 창휘와 삼각관계를 이루는 것은 애정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가 어떤 계급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녹은 원래 신분은 양반이었으나 자라기는 평민으로 자랐고,
신분을 자각하기 전에는 길동의 연인이었으나 자각한 뒤에는 길동의 아버지가 자신의 친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길동의 연인이 은혜가 아닌 이녹이 되는 것은 누가 더 어울리느냐,
로맨틱하느냐의 문제를 떠나 계급을 뛰어넘을 수 있는 용기에 관한 것이다.
이녹이 길동을 선택하면서, 그들은 한시적으로나마 아버지 세대가 만들어놓은 계급 사회를 뛰어넘는다.




계급은 사랑보다 단단하다




사랑과 우정은 중요하다. 그러나, 계급은 그것을 초월한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계급적인 문제로 칼과 봉을 겨누는 것이 계급이다.
이는 매우 급진적인 선택이다.
<쾌도 홍길동>은 기존 드라마에서 내세우던 인간적인 정 대신,
그것마저 누릴 수 없게 만드는 계급 사회의 냉혹함을 정면으로 다루었다.

길동의 “내 알 바 아냐”는 실상 그의 아버지 세대가 길동의 세대에 만들어놓은 감옥이다.
그의 “내 알 바 아냐”는 사실 이판의 “아무 것도 하지 말아라”였고,
 그것은 곧 사채업자의 말처럼 최철주의 말처럼 “남의 일 신경쓰지 말고 가던 길 가라”고 한다.

아버지 세대는 그들의 체제 수호를 위해 자식 세대에게 그들이 현실에 대해 관심 가지지 말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어머니들은 이 시대의 자식들이 아닌 오직 ‘내 자식’만을 위해 산다.

인영의 어머니는 인영을 위해 온갖 부정을 저지르고,
창휘의 어머니 격인 용문 객주(최란)는 창휘를 위해 길동과 이녹마저 죽이려 한다.
또한 창휘의 친 어머니는 사인검의 밀지를 조작해서라도 창휘를 왕으로 만들려 한다.

부모는 자식에게 그들에게 도덕과 연대 대신 복종과 권모술수를 가르친다.
의도한 것은 아닐지라도, <쾌도 홍길동>에는 부모 세대의 가치관을 거부하는 청춘의 무의식이 숨겨져 있다.

viewimage.php?id=honggildong&no=29bcc427b48677a16fb3dab004c86b6f9a697bf10be1d1d66a76490d35427da5f020245e3d3ad0d98ad474e184b9d35d117f8bae20eb60fc4841ce2134d356b05d25d0322f3c41b9399d51210c435455ccf8e09e4ed85063bb3faeb0047f6e51643fd3d7ec83c470&f_no=a65f29aa120fb27eb634394c9d02f1b1b02958441f12580cc8
gall_bt.gif
viewimage.php?id=honggildong&no=29bcc427b48677a16fb3dab004c86b6f9a697bf10be1d1d66a76490d35427da5f020245e3d3ad0d98ad474e184b9d35d117088ae73e86bff1d41ce2035d42dca5df07e45d9b01c0a31bc60ff8cef0efaf14a4fdb15a8&f_no=a1480cad3607b44dbf33235158d62d3b



그리고, 청춘들은 이 부모 세대를 넘어서기 위해 연대하지만, 계급의 벽을 넘지 못한다.
인영은 은혜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동정받을 여지가 있지만,
그는 은혜의 사랑을 얻기 위해 길동을 죽이려할 뿐만 아니라, 평민들을 학대한다는 점에서 끝까지 용서받지 못한다.

<쾌도 홍길동>은 청춘의 연대 가능성을 모색하지만, 계급의 문제가 그에 우선하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계급 의식을 깨지 못하는 청춘은 길동과 같은 그 ‘청춘’이 아니다.
홍자매는 정치에 대해 단순하게 접근했지만, 그것을 낭만 따위로 포장하지 않았다.
 여기엔 사랑과 청춘이 현실을 바꿀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도 없고, 모두가 불쌍한 사람이었다는 착한척도 없다.




이 냉정한 현실 인식과 계급문제에 대한 비관적인 견해는 <쾌도 홍길동>에 기이한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내 알 바 아냐”를 외치던 개인주의자 길동은 자신의 계급이 자신의 일상에,
다른 사람들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자각하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길동이 아무리 몸부림쳐도 계급 사회는 바뀌지 않는다.
길동은 아버지 앞에서 화살을 맞고, 역적으로 몰리며, 자신이 구하려는 사람들에게 버림받거나,
자신이 구하려는 사람을 눈 앞에서 구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가 지지한 정치가는 자신을 기만했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바뀌지 않는 현실. 그러나, 그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 부딪치는 사람들의 노력.

그래서, <쾌도 홍길동>은 그 계급 문제를, 현실에 부딪쳐 좌절하는 사람들의 슬픔을,
세상을 바꾸려는 길동의 고민을 공감하는 사람들에게 어느 순간 울컥하는 감정을 준다.
길동이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남편에게 누명을 씌운 양반에게 복수하던 여성들을 구하지 못할 때,
이녹과 은혜 모두 길동을 사랑하면서도 계급의 문제로 길동에게 다가설 수 없을 때,
그것은 조선시대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 현재의 ‘평민 계급’을 가진 청춘들의 현실이 된다.




물론, 그것은 정치적 허무주의로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쾌도 홍길동>의 관점은 ‘해서 안되는 것’을 내팽개치는 게 아니라, 그래도 끝까지 해야 한다는 쪽이다.

그것은 <쾌도 홍길동>의 문제제기가 지극히 순진하지만 당연한 것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쾌도 홍길동>의 에피소드에서 1차적인 피해자들은 가난한 여성들이다.
 <장화, 홍련>의 이야기가 양반의 성폭행을 덮기 위한 거짓이었다고 뒤트는 에피소드에서
첫 번째 희생자는 성폭행 당한 가난한 여성이고, 이 때문에 피해를 입은 남편들을 복수하기 위해 나서는 것도
힘없는 여성들이다.
 
또한 사채업자 최철주가 돈 대신 끌고 가는 사람들 역시 가난한 여성들이다.
또한 두드러지게 강조된 것은 아니지만, <쾌도 홍길동>에서 길동이 쓰는 무기는 봉이고,
 길동과 활빈당원들은 칼을 쓰는 순간에도 사람을 베는 대신 칼 등으로 사람을 친다.

현실은 냉정하다. 계급의 벽은 높다.
하지만, 그것을 수긍하는 한 가장 약한 사람부터 먼저 죽는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을 바꾸기 위해서는 사람을 죽이지 않는 혁명을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길동은 실패를 거듭하지만,
길동의 실패는 그의 마음에 공감하는 사람들에게 ‘역시 안 돼’보다는 ‘그래도 해라’라는 응원을 끌어낸다.




그래서, <쾌도 홍길동>은 <홍길동 전>과 가장 다른 길을 갔지만,
<홍길동 전>의 정신을 가장 창의적으로 재현한 리메이크이자,
동시에 웰메이드가 아닌 컬트의 자리에 올라설 자격을 갖췄다.

에피소드는 하나로 통합되지 못하고 뚝뚝 끊어지고,
유머와 진지함은 다른 두 개의 드라마를 찍는 것처럼 불균질하며, 정치 담론은 관념적이다.
그러나, <쾌도 홍길동>은 마치 길동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을 위해 앞으로 나아간다.

상업성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밀고 가겠다는 그 에너지.
그 진심은 그들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이야기 속으로 몰입시키고,
그들이 고민하는 문제에 같이 동참하도록 만든다.

길동이 사람들을 구하지 못해 눈물 흘릴 때, 그것은 어떤 사람에게는 감정 과잉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것을 설득력있게 설명하기엔, <쾌도 홍길동>은 감정과 관념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어떤 노력으로도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길동의 눈물은 드라마 속 눈물만으로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홍길동 전>이 사실은 대중에 의해 윤색된 이야기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홍자매가 <쾌도 홍길동>에서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드러낸다.
<쾌도 홍길동>의 길동은 원작의 홍길동보다는 체게바라에 가깝다.
게릴라전과 백성들과의 연대를 통해 혁명을 이루려는 길동의 움직임은 가상의 영웅보다는 실천적인 혁명가에 가깝다.

홍자매는 영웅대신 혁명가를 통해 지금 이 시대의 문제와 해결에 대해 고민하는 자기 자신들의 현재를 그려냈다.
<쾌도 홍길동>은 드라마적 완성도를 일정부분 포기하면서까지 어떤 정치적 신념을 밀어붙였고,
그것은 다수의 ‘인정’을 받는 대신 일정 숫자의 ‘지지자’를 만들어냈다.
 <쾌도 홍길동>이 마지막까지 14% 내외의 시청률을 얻은 것을 단지 홍자매나 강지환의 유명세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극단의 에너지가 뭉쳐 이상한 도둑이 탄생했다




이는 단지 홍자매의 뚝심만으로 얻어진 것은 아니다.
<쾌도 홍길동>은 기묘하게도 연출과 연기까지 모두 극단의 무엇을 보여줬다.
홍자매가 <쾌도 홍길동>에서 매우 장단점이 뚜렷한 극본을 보여준 것처럼,
이정섭 감독 역시 한 사람이 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편차가 심한 연출을 보여준다.

<환상의 커플>에서 잘 드러났듯,
홍자매의 코미디는 그것을 코미디로 부각하는 것보다 빠른 전개를 통해
 시청자들이 코미디에 별다른 위화감을 느끼지 못할 때 더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환상의 커플>에서 상실과 철수의 코미디는 그 자체로는 과장된 상황이었지만,
연출에 의해 현실적인 느낌을 얻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이정섭 감독은 홍자매의 코미디를 전형적인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연출한다.
사건의 기승전결을 천천히 보여주고, 그 다음에 이어질 반전이 있다는 분위기까지 잡는 식이다.
 활빈당 당원들이 말 장난을 하면 모든 인물들이 대사를 할 때마다 그들의 얼굴을 하나씩 잡으면서 이제 코미디가 나온다는 것을 알려주는 식이다.
 
이는 <쾌도 홍길동>의 코미디와 진지한 부분을 더욱 균열시키는 원인이 됐을 뿐만 아니라,
코미디의 질 자체도 떨어뜨렸다. 그러나, 이정섭 감독은 진지한 부분에서도 극단적인 연출을 사용한다.
 
길동과 왕이 궁에서 대면할 때, 이정섭 감독은 극단적인 클로즈업을 그대로 사용한다.
이 때 그들의 대화에는 어떠한 BGM이나 효과음도 없다.
오직 클로즈업의 연결을 통해 두 사람의 대립은 보다 팽팽한 긴장감을 갖고,
차분한 길동과 광기어린 왕의 대립이 더욱 몰입감을 갖는다.

극단적인 클로즈업과 거친 화면 구성, 그리고 때로는 현장음을 거의 그대로 사용하는 사운드는 일반적인 드라마에서는
자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지만,
<쾌도 홍길동>에서는 그것이 캐릭터의 감정이나 그들의 정치 이념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는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거칠고 불편하지만, 감정적으로는 펄펄 살아있다.
<U>쾌도홍길동E18.avi_004023256.jpg (104.1 KB)</U>
viewimage.php?id=honggildong&no=29bcc427b48677a16fb3dab004c86b6f9a697bf10be1d1d76076490d35427da5d402ec850bc926bdf898db14b4ed0e9b6da1650367c9ad511544be26844b33d04f333633b065514a68912c1fbc7a510225dcf71c39f54db8605e2c3f5223191d83612a5b034be8c458f7d051e9&f_no=a1633cad0a36b55f83350e6d9d3edd185d59ca717f756588a9340e9bf852861a8abb52ce





배우들의 연기도 마찬가지다.
 시종일관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말투로 자신의 무지함을 드러내고,
 언제나 뭔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성유리의 연기는 일반적인 연기의 기준으로 볼 때는 어색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쾌도 홍길동>에 성유리에게 요구한 이녹은 그런 모습이다.
<쾌도 홍길동>은 각각의 캐릭터가 어떤 계급적, 정치적 위치를 상징하고,
캐릭터는 그것을 단순하지만 선명한 방식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복잡한 내면 연기 보다는 오히려 캐릭터의 특징을 정확하게 잡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쾌도 홍길동>을 처음부터 끝까지 본 사람이라면,
이녹이 어떤 말투를 가졌고, 어떤 상황에서 어떤 표정을 짓는지 알고 있다.
 
그 점에서 성유리는 이녹의 캐릭터를 제대로 설명했다.

이는 장근석도 마찬가지다.
이녹과 정 반대이긴 하지만, 창휘의 캐릭터 역시 표정만으로도 캐릭터가 설명될 수 있고,
그런 캐릭터에게 중요한 것은 다양한 종류의 연기가 아니라 작품 내내 일관된 톤을 잡는 것이다.
 
시청자가 창휘를 떠올릴 때 삿갓을 쓰고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을 떠올린다면,
 그것만으로도 창휘의 캐릭터 묘사는 성공이다.

다만 강지환은 다르다.
강지환은 <쾌도 홍길동>에서 여러차례 자신의 현실을 자각하면서, 동시에 그 사이에 가벼운 연기를 함께 보여줘야 한다.
그에게 필요한 건 그 감정의 변화를 포착해내고, 어느 순간에도 진심처럼 보이게 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강지환은 <쾌도 홍길동>에서 가벼움에서 진지함으로 넘어가는 연기만큼은
스페셜리스트라고 할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데뷔 당시부터 강지환은 한 작품 안에서 가벼운 남자친구와
가슴 아픈 멜로연기를 동시에 소화해야하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리고, KBS <경성스캔들>과 <쾌도 홍길동>은 그것을 멜로가 아닌 시대극 속의 개인으로 옮기면서
 강지환의 장점을 극대화 시켰다.
강지환은 혼란의 시대에서 가볍게 살고 싶은 개인과 무거운 짐을 진 청춘 양쪽의 얼굴을 씬마다 변화시키는
흔치 않은 능력을 갖고 있다.
<U>완이ㅋㅋ복싱아.gif (488.6 KB)</U>
viewimage.php?id=honggildong&no=29bcc427b48677a16fb3dab004c86b6f9a697bf10be0d1d46076490d35427da5c838bb065c473e63d77337a848642ca3a88739717c59c6779d4a427cc5b32c90aa2166dabb004dfdd0bd687dcecc878ec9d0de30d1431095b2971c8f9a627cd908a3b3be3c631318&f_no=a14434aa1806bb43853c335e9d02f1b1adefccb152c947670d




<U>쾌도홍길동E07.avi_000273673.jpg (102.8 KB)</U>
viewimage.php?id=honggildong&no=29bcc427b48677a16fb3dab004c86b6f9a697bf10be1d1d76076490d35427da5d402ec850bc926bdf898db14b4ed0e9b6daf615764cdab504144be26844b33d09c246e2607ce2a6076a188755bc49364dbf35829a0ff576c441b423b7c3db76df1481d47130ba43d42957ade0b&f_no=a1633cad0a36b55f83350e6d9d3edd185c56ca717f756588a9300c9ef856841f921b89d9

드라마가 세상과 조우하는 방법

<U>쾌도홍길동E01.avi_000502196.jpg (183.0 KB)</U>
viewimage.php?id=honggildong&no=29bcc427b48677a16fb3dab004c86b6f9a697bf10be1d1d76b76490d35427da5d2e06a781c6e1d1f033cef33f61699c585e273c1b1ede45f3e40daeb54c33e27c0f265048e644f21372e7a8d329258852e8cfd6fcaf131a6bbc15fa8033a5f531dbee7e9b268c01c1f79cc7831&f_no=a1633cad0a36b55f83350e6d9d3edd185c50ca717f756588a9300b99f9518a1abbfd5a20




그래서, <쾌도 홍길동>은 매우 기묘한 작품으로 남게 될 것이다.
결코 잘 만들었다고 할 수는 없고, 메시지의 깊이가 있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대중이 편하게 볼 수 있는 내용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쾌도 홍길동>은 꾸준히 일정 시청률을 유지했고(상대 프로그램이 30%를 오르내렸던 <뉴하트>임에도 불구하고), 열광적인 팬들을 만들어냈으며, 배우들은 나름대로의 성과를 얻었다.

이는 지금 한국 드라마의 어떤 변화를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KBS는 <경성스캔들>, <한성별곡>, <쾌도 홍길동>을 연이어 방영했다.
이 작품들은 모두 시대극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실상은 이 시대와 청춘을 이야기했다.

<경성 스캔들>은 비극의 시대에서 사랑과 저항을 함께 해 나가는 방법을,
<한성별곡 正>은 현실 정치의 문제를, <쾌도 홍길동>은 홍길동을 필요로하는 시대가 무엇인가에 대해 그렸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바탕에는 현실과 사랑을 하나로 조화하기 위해 매달리는 청춘의 이야기가 있다.
 이 작품들의 제작진은 왜 지금 이 시대에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일까.

<경성스캔들>과 <한성별곡 正>, <쾌도 홍길동>은 지금 드라마가 시대의 의무를 저버리지 않으면서도
대중에게 접근하는 세가지 방법이다.
그리고, 저 세 작품의 장점이 서로에게 흡수될 때,
한국 드라마는 웰 메이드 드라마나 전문직 드라마 외에 또다른 새로운 동력을 얻을 것이다.




특히 <쾌도 홍길동>이 앞의 두 작품과 달리 10% 중반 이상의 평균 시청률을 기록한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쾌도 홍길동>이 앞선 두 작품에 비해 아주 뛰어나다거나 대중적이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소재를 대중적으로 풀어내는 구성능력은 <경성 스캔들>이, 메시지의 깊이는 <한성별곡 正>이 탁월하다.

그러나, <쾌도 홍길동>은 두 작품보다 더욱 많은 어떤 시청자에게 강한 공감을 일으키는 무엇이 있다.
세상에 대해 무관심한척 살다 어느 순간 자각하면서 세상을 바로 보게 되는 길동의 모습은
지금 정치에 눈뜨는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가만히 살려고 하는데 내 집 옆으로 운하가 지나갈지도 모르고, 모든 수업을 영어로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쾌도 홍길동>은 이상하게 변하고 있는 이 시대의 단면을 낭만적인 멜로로 과도하게 치장하지도,
무책임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짓지 않고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시청자들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것은 홍자매가 무모할 만큼 다른 세계에 도전해 얻은 결실이다.
그들은 길동처럼 ‘돌아가지 않고’ 앞에서 정면승부를 벌여 한국의 청춘 드라마,
혹은 정치 드라마가 대중에게 다가설 수 있는 방법을 얻어냈다.

지금은 작품의 완결성 이상으로 대중과 시대 정신에 대한 공감이 필요한 시대인 것이다.
 <쾌도 홍길동>은 작가와 대중 모두에게 그것이 필요한 순간,
자신의 세계를 떠나 다른 세계에 도전해 이룬 절반의 성공, 혹은 불완전한 컬트다.
그리고, 홍자매가 됐건 누가 됐건 여기에 다른 두 작품의 장점을 흡수한다면 한국 드라마에도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다.




무엇을 할텐가




그래서, <쾌도 홍길동>은 드라마 그 자체보다 드라마사(史)적으로 보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고,
시간이 흐를수록 재평가 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쾌도 홍길동>이 노무현 대통령 취임 당시 만들어졌다면 정말 뜬구름 잡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또한 <쾌도 홍길동>이 방영되던 당시에는 이제 도저히 정치에 관심을 안 가질래야 안가질 수 없게 된 사람들의
어떤 징후를 보여줄 뿐, 그것이 현실과 어떤 연관을 가지고 있는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쾌도 홍길동>이 종영한지 한 달여 되는 지금, 광화문에는 1만여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그들 모두가 평소 정치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지금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쾌도 홍길동>은 불완전한 드라마지만, 이런 드라마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지금의 현실을 반영한다.
 길동처럼 “내 알 바 아냐”를 외치던 사람도, 홍자매처럼 현실과 떨어진 로맨틱 코미디를 집필하던 작가들도
지금은 어쨌든 세상에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할 때가 됐다는 걸 느끼고 있다.
귀찮고 힘들어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도 일단 정면으로 부딪쳐야 할 때가 있다.
그 다음에는 그 에너지를 바탕으로 하나씩 배우고 생각하면 된다.

<쾌도 홍길동>은 묻는다. 미친 왕의 시대가 열렸다. 당신은 가만히 있을 건가?




글 : 강명석(lennonej@naver.com)
 
 
=========================================================================================
 
 
사진은 모두 디씨 쾌도 홍길동 갤러리의 복싱아님꺼를 퍼왔습니다~^^ 감사해요~
강명석 님의 글...심하게 공감되는 부분이 아주 많네요!!


눈왕 얘기: 득구는...버스 옆자리에 앉았던 보라의 추억을...떠올립니다...

추천 비추천

0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시세차익 부러워 부동산 보는 눈 배우고 싶은 스타는? 운영자 24/05/27 - -
공지 [공지] 눈의여왕갤러리 이벤트 합니다 [7] 보라야(221.151) 10.04.11 4312 0
공지 ★☆★ 눈의 여왕 갤러리 〃 통합공지 ★☆★ [30] DC눈왕갤(58.143) 08.06.24 4811 0
공지 눈의여왕 갤러리 이용 안내 [70] 운영자 06.12.05 10376 0
65278 가로세로연구소 대각선연구소 ㅇㅇ(117.111) 04.30 44 0
65262 너무 재밋게 본 드라마.. ㅇㅇ(223.39) 04.16 100 0
65233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 곳. 쟈넬(220.118) 03.27 102 0
65128 다시보기가 왜 없을까 오오(211.37) 23.12.31 168 1
65102 여름시작 [2] 정팔이(223.39) 23.06.05 219 0
65092 병원 인턴샘이 진단 잘못한 씬에서 나온 진단명 아시는 분? [2] 궁금해(222.97) 23.03.20 345 0
65091 유튜브채널에 눈의 여왕 [2] oo(116.35) 23.01.28 362 4
65090 회상 - 눈의 여왕은 [4] 처음이야(172.56) 23.01.14 334 2
65089 회상 - 눈의 여왕은 [3] 처음이야(172.56) 23.01.14 301 1
65088 글리젠이 점점 줄어든다.... [4] 쟈넬(39.7) 23.01.13 330 1
65087 날씨가 추워지니까 생각나서 눈의여왕 정주행 중 [1] ㅇㅇ(123.213) 22.10.21 415 3
65085 10년도 더 지난 드라마지만 아직도 보라랑 태웅이는 마음속에 있어요 [1] ㅇㅇ(121.141) 22.10.11 362 5
65084 진짜 오랜만이네요 [1] ㅇㅇ(223.62) 22.09.04 314 1
65081 참 재미있게 봤는데요 [1] 223(183.96) 22.05.29 390 1
65076 서건우가 한태웅보다 잘생기지 않았냐? ㅋ [1] (125.129) 22.02.25 560 1
65072 일본폭설 [1] ㅇㅇ(112.153) 21.12.27 467 0
65071 겨울됐다... [1] 쟈넬(222.112) 21.12.27 439 2
65068 보드타는 사람때문에 피해봤어요 [1] 일순이(223.33) 21.11.04 450 0
65066 조성준 나가주세요 이갤러리에서 제발 [1] 집사람(223.39) 21.11.03 471 0
65065 조성준 아는분 [1] 천재소녀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11.03 446 0
65064 갑자기 미치도록 보고싶어서 3만원결제해서 다운받앗다.. [1] ㅇㅇ(219.255) 21.10.27 590 2
65061 은하수 [1] ㅇㅇ(183.97) 21.10.20 463 0
65055 유툽에 영상 다 짤렸네 ㅠ [2] ㅇㅇ(175.223) 21.09.11 665 2
65044 갑자기 생각나서 왔는데 ㅋㅋㅋ [1] 최임(183.101) 21.08.12 586 0
65042 너무더운거아니냐구 [1] 쟈넬(121.140) 21.07.16 607 0
65041 “라플란드에는 눈의 여왕이 살고 있단다” [3] ㅇㅇ(223.38) 21.07.13 727 4
65040 초등학생때 진짜 좋아했던 드라마였는데ㅠㅠㅋㅋㅋ [2] ㅇㅇ(59.14) 21.07.10 651 3
65039 추억팔이 [2] ㅇㅇ(183.91) 21.06.22 742 1
65036 생존신고 [6] 정팔이(223.39) 21.06.02 681 0
65034 제발 부탁 좀 드립.. [2] 00(175.126) 21.04.21 661 0
65033 몰랐는데 이것도 윤스 칼라 드라마였구나 [5] 모디드머니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2 800 7
65031 3년전에 눈왕 리뷰북 글썻던 갤런데.. [4] ㅇㅇ(175.223) 21.03.10 782 4
65030 ㄱㅐ념글 다 썰렸네...????? [2] ㅇㅇ(175.223) 21.03.10 730 1
65029 [1] ㅇㅇ(223.39) 21.03.01 652 0
65024 고등학교 졸업하던 그무렵에 봤던 인생띵작 [1] 천정강(112.155) 21.01.23 774 2
65021 오랜만에 생각나서 정주행중 [1] ㅇㅇ(211.200) 21.01.08 733 0
65020 새해복..많이받..으세요... [4] 쟈넬(222.112) 21.01.05 723 1
65018 14년이 지났네요 [12] 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2.23 958 9
65015 태웅이가 정규의 부탁대로 끝가지 수학의 길을 가는 모습(유튜브) [1] we(61.77) 20.12.22 812 3
65007 이 드라마에 너무 늦게 빠졌네.. [3] ㅇㅇ(114.207) 20.11.01 1053 9
65006 2020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 보는데... [3] ㅇㅇㅇ(152.99) 20.10.29 1022 4
65005 지금 3화 주행중 [4] ㅇㅇㅇ(152.99) 20.10.27 758 3
64963 벌써9월... [1] 쟈넬(211.36) 20.09.17 758 1
64951 예쁜 보라 볼래? [1] ㅇㅇ(58.121) 20.09.05 963 8
64943 눈의여왕 이제 막 보기 시작했는데 [3] ㅇㅇ(58.121) 20.08.29 1005 5
64931 14년이 지난 드라마인데도 아직도 권투장이랑 태웅이 방은 기억에 남네요 [6] we(61.77) 20.08.23 1069 13
64849 안ㅡㅡㅡㅡㅡ시 [1] khgkhgk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07.07 819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