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항함의 괴멸, 미드웨이 해전 -ㅅ-;
뭐..........사실 아주 예전에 재미로 섰던 글의 재활용입니다(뽀핫)
일반적으로 구 일본해군의 인사는 경직된 연공서열, 미 해군의 그것은 유연한 실력 본위의 시스템이었다라고 말해집니다. 뭐 사실 또한 그런 것이라 -ㅅ-;....... 확실히 미 해군이 전시 채용한 임무부대
(Task Force) 제도는 전시에 있어서 인사 시스템의 기적과 같은 시스템이며 일본해군이 연공서열에 얽매여 지지부진한 작전을 펼쳐나간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잘못된 연공서열 제도의 전형, 그러므로 미드웨이에서 졌다고 평가되는 구 제국 해군 제 1 항공함대의 인사는 정말로 그랬기 때문이었을까요? -ㅅ-;
제 1 항함 사령장관은 나구모 쥬이치 중장
(수뢰과 출신), 참모장은 쿠사카 소장
(포술과).........각 과별을 봐도 아시다시피 사실 두양반 모두 모두 항공전에는 전문 외의 제독인데, 이에 비해 당시 해군 내에서 항공전에 일가견이 있다고 평가된 오자와 지사부로 중장이나 야마구치 다몽 소장, 그리고 항공출신의 오오니시 소장을 모두 누른 보임인것 또한 사실입니다. 과연........경직 인사와 같이 보입니다. -ㅅ-;
그런데....이 제 1 항함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있었습니다.

((두둥))
겐다 미노루 참모 -ㅅ-;
바로 천재(...) 항공참모로 불리운 겐다 미노루 중좌와 제 1항함의 함상비행대 총지휘관격인 후치다 미츠오 중좌......이들은 모두 해군 항공대소장 장교의 선두주자격인 인물로 장래 해군을 짊어질 인재로 지극히 높은 평가를 받고있어 전에도 티안무님이 비아냥거린 것처럼 제 1 항함은
나구모 함대가 아니고 겐다 함대다 - 라고 칭해질만큼 그들은 능력을 마음껏 발휘했습니다.
때문에 이건 굳이 겐다에 호의적인 시선이라기보단
"일본적인 것" - 에서 유추해본 사견인데, GF(연합함대) 수뇌부는 처음부터 이 제 1 항공함대를 겐다에게 맡길 생각으로 나구모 제독을 장관에 앉힌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 그렇다면 일개 중좌가 함대의 실권을 잡는다는 것, 왕족도 아닌 한 유례없는(...) 이것이야말로 너무나 이례적인「대발탁」이 아닐까요? (뽀핫)
게다가 원래부터 일본에는 조직의 최상급자는 묵직한 자세를 보여주며 최종결단과 책임을 진다는 사상이 고래부터 있어왔고 또한 메이지유신 이후 참모의 권한이 강한 독일식 시스템의 유입이나 메이지 중기의 급격한 군사 시스템의 변화로 유신의 원훈이 선두지휘를 하고싶어도 할 수 없었다는 현실이 더해져 최고 지휘관이 아닌 고급참모가 실질적으로 지휘를 하는,
\' 통수는 하되 지휘하지 않은 \' ........이라고 -ㅅ-; 말해도 좋은
기묘한 군사 시스템이 완성되었습니다. -ㅅ-; 이게 바로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간과하기 쉬운
\'일본적인 것\' 이죠.
또한 구 일본의 최고 전쟁지도 부서인 대본영은 그 말뜻 자체로도「폐하의 본영」이며, 육해군 통수부
(참모총장/군령부총장)를 포함한 각군 수뇌가 오직「폐하의 참모」인 관계로, 그런 의미에서도 참모가 실권을 잡는 것
(즉 대본영에선 \'폐하의 참모\' 인 육군 참모총장과 해군 군령부총장이 실제 육해군에서는 최고 군령권자라는 점)은 일본적인 시스템에선 지극히 본질적인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 결단력과 인품을 겸비한 최고 지휘관과 실무가 참모 」........즉 이것으로 구체제 일본은 유신 이후 최대의 국난이었던 러일전쟁에서 육군은 톱의 오야마 이와오(만주군 총사령관), 보좌 고다마 겐타로를 시작으로 쿠로키=후지키 등 만주에서 싸운 각군 모두 이 구성으로, 해군도 도고 헤이하치로 연합함대 사령장관을 톱에 놓고 아키야마 사네유키(소좌)라는 영재를 참모로 배치해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또한 태평양전쟁의 서막을 연 기동부대의 집중 운용과 해상 항공전은 종래의 수상전투와 완전히 차별되는 획기적인 전투법이었기에 당시의 일본군 수뇌부는 이 새로운 전법을 고슈 군법에서 프랑스식으로......그리고 독일식으로의 전환을 실시한 뒤 승리를 거둔 막말내전, 청일전쟁, 러일전쟁과 겹쳐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ㅅ-;
뭐 후치다 중좌라면 사실 당시 일본해군의 계급구성상 최일선의 비행대장직은 적당하지 않았습니다만(주) 그래도 전례를 찾아본다면 내무상 겸 대만총독에서 현격히 격하된 육군 참모차장으로 현역복귀한 고다마 겐타로와 비슷할 수도 있겠지요. ㅎㅎ
* 주) 구 일본해군에서 해군항공대의 (사관)보직편성은
분대사 -> 분대장 -> 비행대장 -> 항공참모 -> 비행장 -> 사령 등으로 올라가는데 후치다 정도의 랭크라면 검정색의 최일선 근무라기보단 빨간 표시쪽으로 올라가는게 일반적. -ㅅ-;
후치다 미츠오 역시 개인적 가설입니다만 겐다 중좌나 후치다 중좌 등의 참모막료나 중견이 전선지휘관의 실권을 잡는다는 것은 오자와 중장처럼 항모전에 일가견이 있다고 평가된 제독이나 야마구치 소장과 같은 열혈(...)제독 아래선 충돌을 일으켰을지도 모르며 혹은 오오니시 소장 등 겐다나 후치다의 직접 선배(항공과)에 해당하는 제독이었다고해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고 생각됩니다.
때문에 굳이 선임순서로 신중하다고 알려진 나구모 중장과 쿠사카 소장이 겐다와 후치다의 카운터 파트너로 선택된 것은 아닐까 생각되네요 -ㅅ-;
그.러.나..........무엇보다 나구모 중장은 도고 대장이 아니고 쿠사카 소장도 가토 토모사부로 소장이 아니었고 겐다 중좌도 아키야마 사네유키 중좌일 순 없었습니다. -ㅅ-;
구 일본군의 이 시스템은 지휘관의 성품과 참모장의 조화, 그리고 그 선임참모의 능력.....그 어느 쪽에서라도 일점의 부조화가 있다면 파탄되는 아슬아슬한 시스템이며 과거에도 러일전쟁시 뤼순 공략을 맡은 제 3 군에서는 노기 사령관과 이치지 코우스케 참모장의 콤비는 완전한 실패...-ㅅ-; 대량의 사상자를 냈습니다만 러일전쟁의 승리와 전후 노기 장군의 신격화등에 의해 이러한 교훈은 잊혀지게 되었죠.
다시 미드웨이 얘기로 돌아갑니다만 해전의 전술적 패인에 대해서는 무장환장 문제, 토네기 고장, 제 1 차공격 미흡, 나구모의 결단력 부족과 방황(...) 등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여타 운적인 요소를 제외한다면 사실 너무나 함대 항공전의 \'원칙\' 을 고집한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것이 최종적으로 나구모 중장에게 기인한 것인가, 혹은 겐다 중좌에게 기인한 것인가는 연구자에 따라 각각의 판단이 다 다릅니다만 하나하나의 문제에 집착하지 않고 좀 더 널리 본다면 답은 하나로 귀결된다고 생각되네요. -ㅅ-;
만약 겐다 중좌에게 기인하고 있다면 참모가 실권을 잡는다는 시스템의 파탄, 나구모 중장에게 기인한다고 해도 결국 참모 중좌로써는 중장인 장관의 잘못된 결단은 멈추는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로, 결국 일본식 시스템의 한계라고 볼 수 있기에 제 1 항공함대 패배의 원인은 그 연공서열이나 참모의 나댐이 아닌, 반대로 너무나 이례적인 대발탁이었던게 아닐까란 잡설로 마무리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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