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센의 라이벌
지평선으로 저무는 황혼을 홰치며
제국육군 キ43 1식전투기 하야부사(隼) - 연합국 코드네임 : Oscar
Imperial Japanese Army Ki-43 Type 1 Fighter Hayabusa(Peregrine Falcon) - Allied Code Name : Oscar
1. 일본육군 차기 주력전투기의 개발
노몬한 전투 이후, 항공전력의 중요성을 보다 깊이 이해한 일본육군은 주력전투기인 Ki-27 97식전투기가 중국공군의 I-16에 대해 화력에서 열세를 드러내고, 보다 길어지는 폭격기의 행동반경에 맞춰 함께 이를 호위할 장거리 호위기의 개발을 원하게 됩니다. 이에 일본육군은 대전투기용의 중전투기와 폭격기 호위를 위한 장거리비행의 경전투기를 구상하게 되고 이 두 기종을 모두 Ki-44, Ki-43이란 이름으로 1937년 12월 나카지마 비행사에 제작지시를 내립니다.
Ki-43의 개발을 위한 육군의 요구사항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1. 시속 500km/h를 넘을 것
2. 상승력이 975m/min 이상일 것
3. 항속거리가 800km 이상일 것
4. 97식전투기 수준의 운동성을 가질 것
당시 이 기종개발에 참여한 2명의 주요 설계자는 일본최초의 자국산 전투기 91식전투기의 설계자이자, 4식전투기 하야테(疾風), 100식폭격기 돈류(呑龍)를 제작한 코야마 야스시(小山 悌)와 2식전투기 쇼키(鍾馗), 전후 일본 최초의 로켓을 개발한 이토가와 히데오(糸川 英夫)였습니다. 당시 대전투기 요격용으론 2식전투기 쇼키가 역시 이토가와 히데오의 지휘 아래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Ki-43은 폭격기 호위를 위해 긴 항속거리, 가벼운 무장, 뛰어난 기동성을 중점으로 그 설계가 결정되었고 97식전투기를 확대, 대형화하는 방향으로 그 설계를 진행합니다. 수납식 랜딩기어를 제외하고는 그 무장과 설계는 거의 97식전투기를 계승했고, 기체의 대형화는 주로 항속거리와 내구성의 확장에 활용되었습니다.
이에 1938년 12월, 시작(試作) 1호기가 완성. 그 달 12일에 시험비행에 들어갔으나 육군의 심사결과 항속거리가 늘어난 것 이외엔 최고속도와 운동성에서 모두 미달. 새로 나카지마에서 개발된 가볍고 출력이 좋은 925마력 Ha-25 엔진으로 (해군명칭으론 사카에(栄)라고 하죠) 다시 설계에 착수합니다. (하야부사가 초기 최고속력이 495km/h로 제로센보다 느렸던 것은 궁핍한 일본육군이 해군보다 옥탄가가 낮은 연료를 썼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후에 육군과 해군의 유류가 통합되며 하야부사와 제로센의 속력은 비슷해지죠.)
폭격기 호위가 주 임무였기 때문에, 무장을 소구경인 7mm 2정 수준으로 한정. 지속적인 상승력을 위해 주익을 대형화하고 철저한 경량감소의 설계가 Ki-43에 진행됩니다. 그러나 이 경량감소의 설계에 있어, 비슷한 시기에 진행되었던 A6M 12시(試)함상전투기와의 차이는 바로 방탄장비를 그대로 유지했다는 점입니다. 일단 A6M과 달리 20mm 기관포와 같은 무장의 부담이 적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나카지마의 설계자들은 이 하야부사를 시작해 모든 기체들에 일관되게 생존성을 높이기 위한 방탄장비를 배려했단 것도 높이 살만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동시에 이것은 전투기에 대한 해군이 인식차이에 의한 것이기도 한데. 당시 일본최고의 항공참모(.......)였던 겐다 미노루(源田 実) 중좌 이하의 항공전문가들은
“향후 전투기의 주 무장은 20mm로 변환될 것이며, 전투기에 대 20mm 방어장비를 갖추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방탄장비보다는 기동성과 무장으로 생존성을 높이는 것이 현명하다.”
라고 주장해, 일본해군의 항공기들은 아예 장갑을 벗고 다니는 신세가 됩니다. (뭐, 이것도 한 제트기 시대로 가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겐다 미노루, 넌 도대체 선구자냐 아니면 바보냐;;)
다시 Ki-44 설계를 진행하던 이토가와 히데오가 백병전 향상을 위해 접(蝶)형 플랩을 개발, 이를 하야부사에도 적용해 선회전을 할 때, 주익의 플랩이 펼쳐지며 매우 정교한 턴 파이팅을 펼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실제로 하야부사는 선회전에 있어 으뜸을 자랑하는 제로센보다 더 좁은 반경에서 선회가 가능했고 순간상승력은 뒤졌지만 고고도까지의 지속적인 상승력은 그 이상으로 평가되지요.)
또 통신장비도 안테나 지지대를 캐노피 앞으로 연장해 무선감도를 좋게 하는 것으로 난청문제를 깔끔히 해결한 것도 특이할 사항이겠지요.
또 이 Ki-43의 개발사상을 A6M과 같은 동렬로 보기 힘든 것이, 분명 제로센은 호위와 공격의 통합적인 목적을 가진 함상전투기로 개발되었으나, 이 Ki-43은 철저히 운영목적을 장거리 작전 및 호위임무로 한정하고, 무장의 경량화로 저출력 엔진에서도 일정한 성능을 확보한다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육군은 ‘당연히 모르고 있던’ 해군의 진주만 공습으로 개전이 예상보다 빨리 시작되고 전선이 동남아로 확대되자 육군은 Ki-44의 개발이 늦어짐에 따라 급히 Ki-43을 개수하여 즉각 ‘1식전투기 하야부사’란 이름을 부여하고 약 40여기를 급히 생산해 동남아 전선으로 파견합니다.
2. 밀림의 송골매들, 그러나.......
태평양전쟁의 개전과 급히 배치된 일본육군의 하야부사는 고작 제59, 제64의 2개 비행전대 40여기. 더구나 채용 예정이었던 7.92mm 기관총의 채용이 늦어지며 97식전투기와 같은 7.7mm 89식기관총 2정만을 장비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달리 장거리를 비행하는 폭격기를 호위할 전투기로 하야부사가 유일했던 일본육군은 이 2개 비행전대를 앞세워 연합국과의 전투를 시작합니다.
최고속도 495km/h, 무장은 7.7mm 기총 2정. 소위 하야부사 1형이라 불리는 가장 빈약한 기종을 몰고 P-40, F2A, 허리케인과 같이 속력과 무장에서 모두 우위에 있던 연합군 전투기와 싸워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육군 항공대의 하야부사들은 동남아에서 선전을 올리고 승리를 거뒀고, 특히 23기 격추의 에이스 이근석 장군(중국전선에서 18기 격추, 태평양전선에서 5기 격추)이 활약했던 제64비행전대 -가토 다테오(加藤 建夫) 중좌가 지휘하던 가토 하야부사 대는 네덜란드령 동인도, 버마, 말레이에서 연합군을 상대로 큰 전공을 올리며 활약합니다.
[2날 프로펠러는 1형의 주요 특징이죠. 무엇보다 하야부사는 정비가 편리했다는 점이 큰 장점이었습니다.]
하야부사의 파일럿들은 전선이 넓어짐에 따라 하루에도 수차례 출격하는 등, 무리한 체력소모가 계속되었는데 이 와중에서 하야부사는 그 부족한 화력이 크게 지적받았습니다. 아무래도 당시 금속제 단엽전투기로선, 소련의 I-16보다 못한 7.7mm 2정의 화력은 너무나 약한 수준이었고 가토 다테오 중좌 또한 이 때문에 전사하게 됩니다.
[가토 다테오 중좌의 최후. 블렌하임 폭격기를 격추하기 위해 7.7mm의 사정권 안으로 지나치게 접근해야 했던 그는 역시 7.7mm 방어기총으로 무장하고 있던 블렌하임 폭격기의 화망에 말려 격추됩니다. 그는 모두 19기를 격추했고 평양에서 오래 근무한 적이 있어, 부대 내의 조선인 출신 조종사들을 잘 통솔했다고 합니다. (장지량 장군의 일본육사 선배가 가토 다테오 중좌의 윙맨이었다고 합니다.)]
이에 일본육군은 급히 하야부사의 7.7mm 기총 1정을 12.7mm로 교체하는 1형 을(乙)의 개조를 걸치며 화력을 강화를 꾀하는 한편 새로 화력과 방어력을 일부나마 보강한 2형의 생산에 착수합니다.
엔진을 1,150마력의 Ha-115(해군의 사카에 21형)로 교체, 무장을 모두 12.7mm 2정으로 환장하고 조종석 후방에 12.7mm 탄환을 방어하기 위한 방탄강판을 증설한 Ki-43-II, 하야부사 2형을 생산합니다. 프로펠러를 3날로 바꾸고 집합 배기관을 채용. 조준경을 망원식에서 광상(光像)식으로 교체한 하야부사 2형은 최고속력 515km/h로 어느 정도 필요한 속력을 달성하고 12.7mm의 높은 신뢰성으로 어느 정도 괄목할 성과를 이루는데 성공합니다. 특히 2식단좌전투기 쇼키와, 3식전투기 히엔(飛燕)과 같은 신형기들이 투입되는 시점에도 하야부사는 무엇보다 높은 신뢰성으로 일본육군 항공대의 주력으로 활약합니다.
[비록 약한 화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육군 항공대에서 가장 사랑받은 기체였던 하야부사 2형입니다.]
쇼키는 조작성이 다른 기체들에 비해 난해하고, 히엔은 액랭식 엔진의 신뢰성으로 골머리를 앓던 때에도 1식전투기 하야부사는 저속임에도, 뛰어난 운동성과 높은 신뢰성으로 정비가 용이해 이 간격을 매우며 크게 활약할 수 있었다는군요. 대전 말기, 하야부사와, 쇼키, 하야테로 이루어진 부대를 비교했을 때, 쇼키로 이루어진 부대의 피해가 제일 크고, 하야테는 밥값만 그럭저럭한 반면에 하야부사는 언제나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린 것을 주목한다면 하야부사도 단순히 평가 절하할 기체는 아니라고 봅니다. (뭐, 핀란드에서도 버팔로는 활약했으니)
특히 이 하야부사는 앞서 말한 가토 다테오, 이근석 장군과 같이 많은 일본육군항공대의 에이스를 배출한 기체로도 유명한데 일본육군 항공대 제1의 에이스 아나부키 사토시(穴吹 智)는 하야부사로 단 하루 만에 B-24 리버레이터 중폭격기 3기, P-38 라이트닝 2기를 격추해 하루 만의 에이스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고, 대만 항공전에서 역시 하야부사로 F6F 헬 캣 2기를 격추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B-24 리버레이터(Liberator) 폭격기. F2A로 La-7을 격추하고 I-16으로 BF-109를 잡는 사람도 있으니 하야부사도 이거 3기에도 P-38 2기를 격추하는 괴물도 있긴 있겠지요.]
분명 하야부사는 쇼키, 히엔에 비해 카탈로그 상의 수치가 떨어졌음에도 최후까지 일본육군 항공대의 주력으로 활약했고 일본최강의 Ki-84 4식전투기 하야테(疾風)가 나온 후에도 여전히 파일럿들로부터 가장 인기 있고 생존성이 높은 전투기로 활약했습니다. 이건 단순히 일본 파일럿들의 특성 문제라기 보단 빠른 상승력, 가속력의 우위, 경쾌한 기동성을 포함해 연습기로도 사용할 만큼 조장이 매우 간편했다는 점을 포함할 수도 있겠지요. 또 일본전투기 가운데서는 드물게 B-29의 요격고도까지 상승가능한 기종이기도 했지요. (물론 12.7mm 2정으로 B-29를 격추하기란 거의 불가능했지만 -_-) 흔히 이 하야부사를 평한 말은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식전(=하야부사)은 우리에게 최고의 전투기였습니다. 적을 격추시키긴 힘들었다곤 하지만, 역시 적에게 패하지 않은 전투기였지요. 급강하하는 적에게 뒤를 잡히더라도 금방 뒤로 돌아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3식전이나 4식전은 거칠게 몰면 조종을 따라오지 못했지만, 1식전은 그런 문제가 전혀 없었습니다. 분명 4식전은 1식전보다 속력도 빠르고 화력도 강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 대부분은 1식전을 더 좋아했고 1식전을 탄 사람들이 더 많이, 더 오래 살아남았지요.”
그리고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이, 제가 어떤 객관적인 자료에서 확인한 것이 아니지만. 일본육군 전투기 가운데 P-51(물론 초기형)을 가장 많이 격추한 전투기가 바로 하야부사라는 풍문입니다. 또 일본 항공대가 가장 두려워한 전투기가 속력과 급강하, 급상승이 좋은 P-38 라이트닝이 아닌 (정확히 말하면 P-38은 일본 항공대에서 날름 집어삼켜 먹을 수 있다고 페로하치(ペロハチ)라 불리며 F4F보다 못한 기종이었습니다.) 선회성이 제로센과 맞먹는 F6F 헬 캣이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유럽전선과 태평양전선에서 각각 선호되던 기체의 능력이 다른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공회전 중인 하야부사들입니다. 성형(星型)엔진의 특색을 잘 볼 수 있는 사진이로군요.]
하야부사는 2형 후기형에 이르러선 속력이 530km/h 이상으로 올라가고 Ki-43-III 3형에 이르러선 580km/h의 속력을 달성하게 됩니다. 이후 20mm 기관포 장비형인 3형 을(乙)이 시험 제작되고 Ha-45(호마레[譽]) 엔진 탑재형인 4형도 계획되나 페이퍼 플랜으로 끝나게 되어 일본은 패전을 맞습니다.
3. 마치며
개인적으로 하야부사는 크게 좋아하는 기체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제2차대전을 걸치며, 일본 항공대에 있어 제로센과 더불어 태평양 전선 양 날개를 이룬 기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겠지요. 당시 해군의 주력 기체였던 제로센의 라이벌이라곤, 아니 정확히 말해서 P-40이나 허리케인에 비해서도 낫다고 할 수 없는 그 성능에도 불구하고 대전기간 내내 일본육군 항공대의 사랑과 신뢰를 한 몸에 받았던 하야부사도 나름대로 그 의의를 찾아볼 수 있는 비행기가 아닐까하며..... 이상의 글을 마칩니다.
추신 - 하야부사는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 왜 글을 썼냐고 물으시면, 스티븐 스틸버그의 [태양의 제국]에 나오는 그 전투기가 아무래도 제로센이 아닌 하야부사로 생각되어서 말입니다 (-_-) 그 영화는 개인적으로 참 좋아해서요. 오늘 시간이 난 김에 한번 봤습니다.
Ki-43-IIA 1식전투기 하야부사 1형 갑(甲)
전장 : 8.92m
전고 : 3.27m
전폭 : 10.84m
익면적 : 21.40m²
자체중량 : 1,975kg
완비중량 : 2,590kg
최고속도 : 536km/h(고도 6,000m) // 상승속도 5,000m까지 4분 48초
항속거리 : 통상 1,620km(외부 연료탱크 장착 - 3,000km)
프로펠러 : 해밀튼 가변 피치 3날 프로펠러
엔진 공냉복렬성형 14기통 공칭 1,150마력 나카지마 Ha-115
승무원 : 1명
총생산량 : 5,751기(각 바리에이션 통합. 나카지마 3,187기 생산, 타치가와 비행기 2,492기 생산, 육군 항공병기창 72기 생산)
무장 : 12.7mm 기관총 2정, 60kg 폭탄 2발 혹은 250kg 폭탄 2발 폭장 가능
바리에이션
하야부사 1형
Ki-43-IA, 1형 갑(甲) : 최초의 양산형으로 89식 7.7mm 기관총을 2정 탑재하고 925마력 Ha-25 엔진을 채용.
Ki-43-IB, 1형 을(乙) : 1형 갑에서 좌측의 기관총을 Ho-103 12.7mm 기관총으로 교체한 형태.
Ki-43-IC, 1형 병(丙) : 1형 갑의 모든 무장을 12.7mm 기관총으로 교체한 형태.
하야부사 2형
Ki-43-IIA, 2형 갑(甲) : 1940년 1월부터 연구된 성능 향상형태. 카울링과 캐노피의 공기역학적인 개량을 포함해 엔진을 1,150마력 Ha-115로 교체했다. 1942년 5월에 시험 제작기가 완성되었다. 고리형의 윤활유 냉각기와, 카울링 하단에 허니컴 냉각기를 장비한 초기형과 하단의 대형 냉각기로 단일화한 후기형으로 구분되고 집합 배기관을 채용하였다.
Ki-43-IIB, 2형 을(乙) : 배기관을 추진식 배기관으로 교체한 형태. 속력이 530km/h 이상으로 상승했다.
하야부사 3형
Ki-43-IIIA, 3형 갑(甲) : 물-메탄올 혼합분사 엔진은 Ha-115 2형을 채택한 형태. 1943년말에 시험제작을 지시받아 1944년 4월에 완성되었다. 580km/h 이상의 속력과 2형 이상의 상승력을 발휘했다.
Ki-43-IIIB, 3형 을(乙) : 카울링을 200mm 연장해 Ho-5 20mm 기관포 2정을 장비한 형태. 1945년에 시험 제작기가 타치가와 비행기에서 만들어졌다.
하야부사 4형
Ki-43-IV, 4형 : 엔진을 Ha-45로 예정한 페이퍼 플랜. (Ha-112, 킨세이(金星) 환장설이 더 유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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