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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2.12.13 02:45:55
조회 108 추천 0 댓글 0

사치에 대한 성경구절이 있나요?

https://blog.naver.com/stchopeter/150032554362

1. 광고는 자신들이 엄청난 재력을 들여서 만든 상품을 불과 수십초 안에 알려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문구나 장면을 사용할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물질주의와 개인주의가 팽배한 현실 속에서 이런 광고들이 시청자에게 어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러한 문구를 사용한 광고가 먹혀드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가 철저하게 물질주의적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관은 성경에서 가르치는 것과는 매우 거리가 멉니다. 

세상은 많이 벌어서 즐기면서 살아가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물질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라고 가르칩니다.


제 생각에는 사람들이 "사치"에 빠지는 근본 원인은 "청지기적 정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모든 내 능력과 물질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합니다. 


그들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벌어서 쾌락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 사치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대사회는 사치하는 사람을 통이 크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칭찬하기도 합니다.


2.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가진 재능과 물질이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재능과 물질은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잠시 맡겨 주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장차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해서 엄중히 심판을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생각을 가리켜서 "청지기적 정신"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청지기적 정신을 가진 사람은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벌거나, 자기가 번 재물을 사치스럽게 낭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대로 이 땅에 보물을 쌓지 않고, 가능하면 하늘에 보물을 쌓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내가 인생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늘보다는 이 땅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땅에서 즐기기 위해서 모든 것을 허비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사치와 낭비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치의 근본 원인은 "청지기적 정신의 결여"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성경은 사치에 대해서 엄중히 정죄하며 경고하고 있습니다. 

아래에 성경에서 사치라는 말이 나오는 구절을 소개합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잠 19:10) 

미련한 자가 사치하는 것이 적당치 못하거든 하물며 종이 방백을 다스림이랴?


(사 23:9) 

이 결정을 내리신 분은 만군의 야훼, 뽐내던 온갖 사치를 짓밟으시고 세상이 우러르던 자들을 천대받게 하셨다.


(사 47:8) 

그러므로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 뿐이라 나 외에 다른이가 없도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하는 자여! 

너는 이제 들을찌어다.


(눅 7:25)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딤후 3: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약 5:5)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


(계 18:3)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계 18:7)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계 18:9)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계 18:19) 

그리고 그들은 머리에 먼지를 뿌리고 슬피 울면서, "무서운 일이다! 이 큰 도시에 화가 미쳤구나! 항해하는 배의 선주들이 모두 그 도시의 사치생활로 말미암아 부자가 되었건만, 그것이 다 일시에 잿더미가 되고 말았구나!" 하고 부르짖을 것입니다.


솔로몬-사치

https://bedesd153.tistory.com/entry/%EC%84%B1%EA%B2%BD%EC%9D%B8%EB%AC%BC-%EA%B0%95%ED%95%B4%EC%84%A4%EA%B5%90%EB%A7%90%EC%94%80-%EC%86%94%EB%A1%9C%EB%AA%AC-%EC%82%AC%EC%B9%98

솔로몬이 왕이 될 때는 겸손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던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상을 숭배하게 되는 왕으로 타락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신명기에 말을 많이 가지지 말고 금과 은을 축적하지 말고 여자를 많이 두지 말라고 했는데 솔로몬 왕은 이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셨는데도 이방 여인을 곁에 많이 두었기 때문에 그들이 섬기는 신을 숭배했습니다. 


우리는 솔로몬을 보면서 인생의 허무함을 배워야 합니다. 

전도서를 기록하면서 인생이 허무하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누렸던 사람인데도 인생이 허무하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없는 삶은 허무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성도로서 우상을 숭배해서는 안 됩니다. 

사치스러운 삶을 살아서도 안 됩니다.


1. 사치스러운 삶


1) 하나님과 유리된 삶

(약 1:15, 시 1:2)


약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시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고 끝이 없습니다. 

이 욕심이 결국에는 사망을 잉태하듯이 사치스러운 마음과 행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치는 인간의 끊임없는 욕심으로 나타나며, 사치는 또 다른 사치를 불러오는 습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사치스러운 행동의 문제는 하나님과 분리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인간의 참된 행복은 물질의 소유에 있는 것도 아니고 사치스러운 삶을 사는 것에 있는 것도 아닌 오직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소유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사치에 빠진 몸은 이 사실을 망각하며 살아가기에, 하나님과 유리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 이기적인 삶(딤후 3:2, 마 25:43)


딤후 3: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마 25: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사치는 혼자만의 기쁨을 추구하는 것이므로 극히 개인적이며 이기적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공동체적인 삶의 태도를 갖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야 할 장소입니다. 


자신의 화려함과 안위에만 신경 쓰지 않고 백성들의 고통과 필요를 해결해 주고자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면 솔로몬은 영원토록 선왕으로서의 명예를 유지했을 텐데, 그는 사치에 빠지자 자기 자신만 아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3) 파멸에 이르는 삶

(왕상 11:25, 왕상 11:35)


왕상 11:25 

솔로몬의 일평생에 하닷이 끼친 환난 외에 르손이 수리아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미워하였더라


왕상 11:35 

내가 그의 아들의 손에서 나라를 빼앗아 그 열 지파를 네게 줄 것이요 


사치는 인간으로 하여금 끝없는 욕망의 길로 빠져 들게 합니다. 

솔로몬도 이와 같았습니다. 


그가 성전을 지은 후 왕궁을 건축할 때 원래의 계획대로만 건축했어도 괜찮았을 텐데, 과욕으로 외모를 화려하게 치장하고 재료를 최고급으로만 쓰다 보니 역효과가 나타났습니다. 


그 결과로 민심이 떠나고 반란만 계속 생기더니 급기야는 국가가 분열되는 파멸을 자초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치는 무서운 파괴력을 가지고 우리들의 마음을 좀먹고 있습니다.


2. 솔로몬의 사치스러운 행동


1) 사치스러운 건축물들

(대하 9:17, 아 8:11)


대하 9:17 

왕이 또 상아로 큰 보좌를 만들고 순금으로 입혔으니


아 8:11 

솔로몬이 바알하몬에 포도원이 있어 지키는 자들에게 맡겨 두고 그들로 각기 그 열매로 말미암아 은 천을 바치게 하였구나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한 후 자신을 위해 왕국을 건설하였습니다. 

그에 따른 규모나 질에 있어서 그는 평범한 것을 원치 않고 무엇이든지 최고급을 추구했습니다. 


목재는 레바논의 백향목으로 사용했으며, 상아로 만든 보좌와 특별히 정원에다가 온 정성을 기울였던 바, 포도원 동산과 온갖 종류의 열매를 맺는 나무들과 재목 나무의 숲을 조성했습니다. 


그리고 이 나무들에게 물을 주기 위해 수도 사업으로 연못과 운하를 만들 정도로 사치했던 것입니다.


2) 많은 종들을 고용

(왕상 9:27, 대상 27:29)


왕상 9:27 

히람이 자기 종 곧 바다에 익숙한 사공들을 솔로몬의 종과 함께 그 배로 보내매


대상 27:29 

사론 자람 시드래는 사론에서 먹이는 소 떼를 맡았고 아들래의 아들 사밧은 골짜기에 있는 소 떼를 맡았고 


또한 솔로몬은 이러한 건축 사업과 함께 자신의 주위를 화려하게 치장하기 위해서 많은 일꾼들이 필요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솔로몬은 수많은 남종과 여종들을 돈을 주고 사서 고용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엄청난 숫자의 소와 양 떼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이를 통해 솔로몬은 많은 돈을 벌어 들이며 이러한 사업을 즐겼던 것입니다.


3) 물질적 부와 쾌락을 즐김

(왕상 10:27, 왕상 11:3)


왕상 10:27 

왕이 예루살렘에서 은을 돌 같이 흔하게 하고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 같이 많게 하였더라


왕상 11:3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솔로몬은 시간이 지날수록 재산이 불어났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은이 돌같이 흔할 정도가 되었고 국고에는 은과 금이 가득 찼으며, 여러 인근 국가에서 보낸 진기한 보물들이 솔로몬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은 사람의 기분을 전환시키고 매혹시키는 온갖 음악들을 자신의 수중에 두고 있었는데, 최고의 남녀 가수는 물론이거니와 최고의 연주자들을 자기 옆에 두고 마음대로 부렸던 것입니다. 


동시에 그는 아내만도 천 명이나 될 정도로 많은 여인들을 거느리며 쾌락에 빠져 살아갔던 것입니다.

 따라서 사치스러운 여인들의 품에서 벗어나지 못한 솔로몬은 더욱더 사치스럽고 경망스럽게 변모하였던 것입니다.


3. 사치의 결과


1) 도덕적 타락

(렘 17:9, 요 3:19)


렘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요 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솔로몬의 사치스러운 행동은 곧바로 죄의 모습으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먼저 도덕적으로 심히 부패하고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잘못이고 죄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심각한 죄의 오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의 안중에는 하나님도, 자신의 백성들도 없고 오직 자신의 이기적이고 정욕적인 야심과 쾌락만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천 명의 여인들을 거느리면서 추호의 가책도 없이 음행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도덕적으로 심히 패역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사치는 도덕적 불감증에 빠지게 만듭니다.


2) 빈곤

(왕상 12:4, 잠 6:11)


왕상 12:4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잠 6:11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솔로몬은 사치스런 행각을 추구하다 보니 많은 인원과 자금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원활한 자금 소통이 이루어졌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중한 세금을 강제적으로 착취하였는데 솔로몬은 물론, 백성들도 낼 돈이 없었습니다. 

국가 전체가 커다란 건물만 세워졌을 뿐 빈곤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사치는 반드시 빈곤을 몰고 옵니다.


3) 신앙의 변질

(왕상 11:9)


왕상 11:9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두 번이나 그에게 나타나시고 


솔로몬은 자신의 사치스러운 마음 때문에 결국은 신앙까지도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무수한 이방 여인들의 유혹과 꾐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사치와 더불어 우상 숭배를 함께하면서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고 말았습니다. 

그야말로 물질과 정욕에 사로잡힌 삶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사치는 독과 같이 영혼을 쓰러뜨리기까지 하였던 것입니다.


부유한 기독교인, 재물로 ‘자기 사치’에 치중해선 안 돼

https://www.igood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67220

부요(富饒)함을 변호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맹목적으로 부의 추구를 정당화한 것이 아니었다. 

부 자체를 문제시한 것이 아니라 부에 내포된 위험을 보고 있었다. 


부가 얼마나 위험 할 수 있는가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꼬리를 잡는 방법을 알지 못하면 물리게 될 뱀과 같은’ 것이었다. 


부유한 기독교인은 자신의 재물을 가지고 자선을 위한 목적으로 올바르게 사용해야 했다. 

그것이 자기 사치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 것이다. 


동부 지방에서 행해지는 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치, 값비싼 보석, 세공품과 드레스, 화려한 욕실, 호화로운 연회, 번쩍이는 마차 등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했다. 


당시 재산이 있는 한가한 귀부인들은 부를 과시하며 애완동물인 원숭이와 공작새, 말티즈 개에게 애정을 쏟아 부었다. 

오늘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지만 당시의 이런 세태는 부의 과잉이 가져오는 사치스런 일로 간주했다.


칼이 잘 들기 위해서 은으로 된 장식 못이나 상아(象牙) 손잡이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토기(土器) 램프도 황금 램프만큼 제 기능을 발휘하고, 상아로 만든 침대라야 잠을 잘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염소 가죽도 화려한 침대보만큼 낫다고 보았다. 

실용성을 중시하던 그는 이런 소소한 일들에 대해서도 검소한 삶을 지향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화려하고 사치스런 삶의 추구는 세상적인 욕망일 뿐이라고 본 그는 검소하고 자족하는 삶을 가르친 것이다.


소유물로 인해 생기는 괴로움을 논하면서 영혼의 수양을 강조했다. 


보석으로 장식된 술잔을 초조하게 마시고, 푹신한 침대에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도둑에 대한 염려로 잠을 설치고, 소유한 재산에 연연하여 살아가는 삶이 그리스도인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물질에 예속된 부자들에 대해 경고했다. 


하나님의 영이 계신 성전인 우리의 영혼이 변색될 황금으로 장식된 집에서 떠나는 것이 더 좋은 일이라고 가르친 것이다.


육신을 지나치게 소중히 여기는 것에 대해 경고했다. 


“우아한 팔찌를 끼고 있는 손목이 어떻게 쇠사슬을 찰 수 있겠는가? 

어떻게 보석으로 장식된 목이 사형 집행자의 도끼에 찍힐 수 있겠는가? 


어떻게 화려하게 장식된 다리가 억압 속에서 견디겠는가? 

만일 우리가 하늘에 속한 것을 바란다면, 이 세상에 속한 장신구를 던져버려야 한다. 


적당함(Comeliness)이 그 영혼의 신성한 의복이 될 것이다.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장식품으로 치장하라. 


소박함에서 순백을 얻고, 겸손함에서 불그레한 혈색을 얻고, 수줍음으로 당신의 눈을 채색하고, 침묵으로 당신의 입을 꾸미고, 당신의 귀에 하나님의 말씀을 불어넣고, 당신의 목에 그리스도의 멍에를 채우라. 


자신에게 정직이라는 비단과 거룩이라는 마포와 겸손이라는 자줏빛 천으로 만든 옷을 입혀라. 

그러면 당신은 하나님을 당신의 연인과 배우자로 맞이하게 될 것이다.”


명품과 사치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84886

본래 명품이란 감탄할 만큼 훌륭한 제품을 말하지만 요즈음엔 사치품의 대명사요 개인과 가정을 파탄시키는 ‘망품’입니다.


명품의 대중화


오늘의 명품은 귀족적 취향의 대중화요, 스페인 철학자 오르테가 이 가제트(Jose Ortega y Gasset)의 말처럼 “대중의 반란”일수 있습니다. 

명품이 최고의 장인에 의해 “한 땀 한 땀” 예술품처럼 만들기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명품’들도 다른 제품들처럼 대량생산됩니다. 

명품으로 알려진 가방이 3초마다 눈에 띈다 해서 ‘삼초백’이 된 것은 이 때문입니다. 


브랜드가 명품의 가장 중요한 조건인데 그나마 이름만 프랑스나 이탈리아제지 대개 중국에서 만들어집니다.


중국에서 양복의 상표를 소매 부분에 붙이는 것이 유행한 적이 있었답니다. 

입고 있는 옷이 보통 양복이 아니라 명품임을 과시하는 바람이 분 때문이었습니다. 


어디서나 명품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품질이 아니라 전시효과입니다.

명품이 비쌀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이래서입니다. 


명품의 기본은 고가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격표에 0을 몇 개 더 붙여야 더 잘 팔린다는 역설은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넘보지 못하게 만들어 차별화와 희소성을 담보하는 전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여 대중화되면 그 즉시 매력을 잃는 것이 명품의 운명입니다.


명품 중독의 폐해


명품이 낳는 가장 큰 부작용은 과소비입니다. 

분수에 넘치는 씀씀이로 파산은 물론 절도와 가정파괴, 심지어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까지 심심치 않게 일어납니다. 


일단 명품에 중독되면 쇼핑을 못하면 불안해집니다. 

매장에 들어서면 능력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필요도 없는 것을 충동적으로 사는 일을 반복하다 인생을 망치는 이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낮은 자아정체성이나 심리적 공허를 명품 구매로 채우려다 벌어지는 일입니다. 

상류층에 대한 질투나 박탈감에 ‘일단 지르고’ 보는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적어도 남들만큼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무리를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남다른 개성과 감각을 뽐내려는 우월감도 한 몫 합니다. 


열등의식과 우월감이 번갈아 명품 소비를 부추기는 셈입니다. 

거기에 따라 춤을 추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독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이런 위험은 동양적 체면문화에서 훨씬 높습니다. 

과시가 모방을 부르는 문화의 확산은 나라 경제를 위태롭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피땀 흘려 번 외화로 엄청난 폭리를 취하는 외국기업의 배만 불려 놓으며 국가적 경쟁력을 소진시키기 때문입니다. 

왜 구한말 믿음의 선조들이 국산품 애용과 근검절약운동에 앞장섰는지를 잊으면 안 되는지 이유가 있습니다.


참된 인품이 명품


모든 중독은 영적 결핍에서 비롯합니다. 

명품이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잘못된 자세가 문제입니다. 


소유욕은 물론이고 고상한 취향도 우상화될 수 있습니다. 

명품 중독은 증상일 뿐입니다. 


근본 원인은 보다 깊은 곳에 있습니다. 

영적 공허와 참된 정체성의 실종이 그것입니다. 


명품이 인품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정체성의 확립은 먹고 쓰고 입는 것으로 확보되지 않습니다. 

온몸을 수억 원어치 명품으로 치장을 한다고 사람이 명품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솔로몬의 영광이 들에 핀 풀꽃만 못한 법입니다(마 6:29).


남과의 비교나 이기적이고 허황된 차별화를 꾀하는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본받아야 합니다. 

명품으로 자신을 돋보이려 할 필요가 없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걸작품이며 명품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우리를 구원하려 지불한 값으로 따져도 우리만큼 고가품이 없습니다. 


“삼가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눅 12:15). 


명품이면 그 가격에 부합되는 품격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성도의 사명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욕망을 자극해서 돈을 벌기에 급급한 기업이나 상인들에게 속지 않을 분별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먹고 쓰고 입는 것들에 대해 바른 관점을 갖추는 것이 우선입니다. 


합리적인 소비는 경제를 활성화하지만 허영과 과소비는 개인과 공동체의 파탄을 부릅니다. 

낭비는 독이고 죄입니다.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오병이어의 기적 후에 부스러기를 주어 담으라 하신 예수님의 심령을 따르는 자세를 익혀야 합니다.


매일 성경 _ 마태복음 19:23

https://www.light-of-truth.org/daily-bible-matthew-19-23.html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부자는 왜 천국에 들어가기 어려울까요? 


바로 돈과 육적인 향락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자가 아닌 우리도 돈을 탐하는 마음과 명예와 이익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다면 부자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마음이 물질에 점령 되면, 하나님의 자리가 사라지고, 갈수록 탐욕스러워지며 주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네가 육을 만족시킬수록 육은 더 큰 욕심을 내는 법이다. 

이번에 만족시키면 다음에 또 다른 요구를 한다. 


계속 그렇게 하다 보면 사람은 육을 더 사랑하게 된다. 

… 

사람의 육은 뱀과 같아 본질적으로 사람의 생명을 해친다. 


네가 육의 목적을 완전히 달성했을 때는 곧 생명을 잃는 때이다. 


육은 사탄에 속하는 것으로, 그 안에는 항상 사치스러운 욕망이 들어차 있어 항상 자신만 생각하고, 항상 호강하길 원하며 안일한 생활을 탐내고, 애타하지도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네가 어느 지경까지 육을 만족시키다 보면 종국에 육에 집어삼켜지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네가 이번에 육을 만족시켰다면 다음에도 만족시켜 주길 바란다. 


그 안에 항상 사치스러운 욕망과 새로운 요구가 있으며, 네가 육을 생각하는 기회를 틈타 육을 더욱 아끼며 육의 안락 속에서 살게 한다. 


그러니 네가 그것을 이기지 못하면 결국 너 자신을 망칠 것이다.』, 『네가 지금 누리려고만 하면 너의 앞날을 망치게 되고, 네가 오늘 참고 견디는 고통은 너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말씀을 통해 우리는 육은 뱀과 같아 그것을 만족시킬수록 욕심이 점점 더 커져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 번 육체의 향락 때문에 진리를 실행하지 않으면 마음에 가책을 느낄 수 있습니다. 


두 번이 되어도 가책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 번, 네 번 반복되면 그 느낌은 사라지고 마음에 죄책감도 사라집니다. 


그렇게 되면 구원의 기회도, 천국에 들어갈 기회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의 본질을 간파하고, 실제적인 협력과 하나님께 육의 욕심을 이길 용기와 결단력을 더해 달라고, 진리를 실행할 믿음과 끈기를 더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이 있어야 조금씩 육을 저버릴 수 있습니다.


사치의 증거력과 좁은 길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12555

경제학자 베블런은 말합니다.


"높은 평판을 얻으려면 낭비는 필수적이다.

기본적인 생필품 소비로는 아무련 칭송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치스런 비싼 물건이 더 잘 팔리는 역설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이 세상을 정확히 꿰뚫은 통찰입니다.

사회적 지위를 얻으려면 이를 뒷받침할 강력한 증거가 있어야 하고 이때에 과시적인 사치가 바로 강력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자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롬 12:2)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강력한 증거는 오직 우리의 중심을 보시며 우리를 참된 기쁨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시는 주님께로부터 인정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사치

https://godpeople.or.kr/index.php?mid=mopds&document_srl=2771394

사치가 사회의 문제가 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가 너무 일찍 경제회복에 대한 자신감을 갖는다는 것이었다. 


다시 무너질 수 있음을 경고하는 내용이 주요 강조점이었다. 

최근에 우리를 당황하게 만든 사건이 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을 자처하던 사람들이 보지도 듣지도 못한 수천만원 대의 호랑이 무뉘 밍크 코트를 입었다니, 사주었다니, 대납을 요구했다느니 하는 말들을 듣게 된 것이다. 


이것이 사치라는 어리석음의 대열에 그리스도인들도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현실이다. 

사실이다. 


그러면 '사치하는 그리스도인'이란 말이 모순임을 증명해 보자.


1. 사치의 심리


사치는 일종의 보상심리이다. 

내적인 공허감과 무의미감의 보상으로써 외적인 사치를 추구한다. 


고급 의류의 50% 이상은 유흥가의 여성에게로 팔린다는 통계가 있다. 

자신의 천박과 무가치함을 보석과 고급 옷으로 위장하려는 것이다. 


이들의 심리나 사치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동일하다. 

사치란 내적 수치감에 대한 위장인 것이다.


2. 사치 문화


사치 문화는 목적 상실의 문화이다. 

푯대가 없는 사람이 가는 마지막 길이 사치인 것이다. 


보통 목욕탕 문화와 음식 문화가 발달하면 망조가 깃든다고 한다. 

로마에는 8종류의 목욕탕이 있었고, 많은 음식을 맛보기 위해 먹은 것을 토하게 만드는 노예가 있었다고 한다. 


사치 문화가 횡행한다는 말은 그 사회에 희망이 없고, 목적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면,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꾼다. 


다시 말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엄청난 소망에 휩싸인다는 말이다. 

성령의 사람은 세속의 사치에 마음을 빼앗길 여유가 없는 것이다. 


사치하는 그리스도인과 성령의 소망을 어찌 양립할 수 있겠는가? 

사치하는 자, 그는 소망이 없는 목적 상실의 방황자일 뿐이다.


3. 그리스도인 문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에 대한 뚜렷한 목적이 있다. 

우리는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는 존재들'이다(빌3:14). 


그리스도인의 문화는 사치 문화가 아니라 '단순한 삶'(simple life)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푯대를 향하여 뛰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체중을 줄여야 일할 수 있다. 

성2도의 목표는 '성장'이지 '비만'이 아니다.


4. 그리스도인의 사명


그리스도인은 목적없이 방황하는 세상사람들과 같이 사치하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단순한 삶을 통해 일하는 존재들이다. 그리스도인은 사명을 맡은 청지기이다. 


그러므로 사치에는 심판이 있다.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

'(약5:5)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부자의 범죄가 사치였음을 잊지말자! 

사치에는 심판이 있다.


수천만원 대의 밍크 코트 입고, 회개의 기도를 하겠다고 기도원에 들락거리는 그리스도인!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무엇일까?


사치품은 인간의 영혼을 부식시키는가? 메모리의 동일한 가치.

https://mylandrover.ru/ko/electrical-equipment/roskosh-razedaet-dushu-cheloveka-ravstvennoe-znachenie-pamyati.html

전염병과 같은 사치품을 조심하십시오. 

그것은 기독교인의 영혼을 크게 이완시키고, 납치하고, 사람들을 기분 상하게 하고, 기독교인에게 요구되는 자선을 베푸는 것과 손을 잡는 것을 가르칩니다. 

사치품은 자궁처럼 포만감을 모르고, 심연처럼 좋은 것을 다 삼켜 버린다... 

타코 사치품은 모든 것을 삼키고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사치품을 조심하십시오. 

자연은 적은 것으로 만족합니다. 


정욕과 사치에는 많은 것이 필요합니다(5:158-159). 


그러한 집회와 잔치에 얼마나 많은 시험과 죄와 불법이 있는지 계산할 수 없습니다. 

거기에 얼마나 많은 말과 행동이, 그토록 많은 죄가; 얼마나 많은 사람, 얼마나 많은 범죄자. 


하나님과 그의 거룩한 천사들은 여기에서 멀리 떠나갑니다. 

자기 멸망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는 마귀와 그의 사악한 사자가 있을 곳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 그들의 죽음은 곧 느껴지지 않을 때 잠들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의로운 심판을 잊었습니다. 


“하나님은 시인하시되 그의 행위는 배척을 받으리라”

(5:368). 


사치품은 영생에서 가난으로 변한다 당신이 원할 때 여기에서 평화롭게 통치하십시오. 

당신의 사치품으로 기뻐하고 위로하고, 서로를 방문하고, 잔치를 벌이고, 잔치를 벌이고, 춤을 추십시오! 


그곳에서 어찌어찌 기뻐하고 춤추리라! .. 

우리는 성경에 “어떤 사람이 부자로 자색과 세마포 옷을 입고 종일 놀았다”고 읽습니다. 


그러나 ... 죽음 이후 그에게 끔찍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의 사치에 따라 그는 불타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값비싼 포도주를 위해 그는 물 한 방울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는 대답을 듣습니다. 


“아이! 당신이 당신의 뱃속에서 당신의 선함을 취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4:120) 


명품은 무엇으로도 만족할 수 없다 정욕과 사치는 많은 것을 원하고 추구합니다. 

국가 자체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열이 식지 않는 것처럼 환자가 아무리 술을 마셔도 식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욕과 본성의 필요를 알고 정욕을 좇지 않고 본성의 요구에 따라 행동하십시오(4:247). 


우리는 자궁이 만족할 줄 모르고 항상 음식과 음식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압니다. 

자궁이 없으면 안 됩니다. 

오늘 만족합니다. 


다음날, 세 번째, 그리고 더 많은 음식이 필요합니다. 

타코는 사치품입니다. 

사치품은 모든 것을 삼키는 자궁과 같습니다. 


그리고 사치는 기발하며 어떤 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4:398). 


사치품은 파괴를 위한 악마의 제안이다 인간 영혼의 원수인 사탄은 사람에게 기발하고 사치스러운 생각을 하여 사람을 혼란스럽게 한다. 


어떻게 노는가, 이것 저것을 하고, 이것 저것으로 자신을 위로하고, 방문하고 손님을 맞이하는 등. 

대적은 사람이 이 세상을 그의 조국과 낙원을 위해 소유하지만 미래의 행복은 잊어버리고 멸망하기 위해 이것을 음모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치가 가르치는 가난한 사람들의 모든 거짓과 모욕이 더 편하고 모든 악한 자들에게 얽매여 멸망하는 것이 더 편할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교활함과 그의 계획입니다! 


강력하고 실제적인 마귀의 지팡이는 기독교인의 영혼이 붙잡아 영원한 죽음으로 끌고 가는 사치품입니다(4:399-400). 


사치품은 불처럼 영혼을 태우고 궤양처럼 감염시킵니다. 


모든 악은 사치로 증가하고, 한 집에서 시작하여 도시나 마을 전체를 태우거나, 한 사람에게서 시작하여 근처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감염시키고 죽이는 역병처럼 다른 방법으로 사람의 영혼을 삼켜 버립니다. 


우리는 우리 조국에서 기독교인의 몸이 아니라 영혼을 감염시킨 이 치명적인 전염병을 봅니다(4:119). 


허영심과 매력은 변덕스럽지만 항상 변합니다. 

흥을 보라! 


어떤 사람은 이런 저택을 짓고, 이런 옷을 입기 시작했고, 집에 이런 거울을 두었고, 어떤 사람은 이런 마차를 타고 이런 음식을 하인들에게 배달하여 이런 음식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복장에서 등등. 

상대방은 그것을 보고 모방한다. 

모두가 그것을 보고 자신이 하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사방에 퍼지고 사치품이 더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늘어납니다(4:118-119). 

사치품은 사람을 눈멀고 미치게 만든다 오 부패하고 회개하지 않는 마음의 맹목이로다! 


이 슬프고 힘든 시간에 즐길 수 있습니까? 

오, 얼마나 죄는 증가하고 경건은 감소하는가! 


이 사람들은 배가 부서져 춤을 추는 어리석은 선원들처럼 그렇게 합니다. 

또는 연회를 하는 동안 도시에 불이 붙은 무력한 시민들처럼. 


조국은 문제와 불행으로 신음합니다. 

젊은이들은 가난하다. 


재무부는 전쟁으로 소진되었습니다. 

노인들과 젊은이들과 아기들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옵니다. 

어디에서나 어머니, 아버지, 아내, 형제 및 기타 사람들은 전쟁에서 전사하고 죽음의 위험에 처한 이들을 위해 애도하고 웁니다. 


그러나 이 독신 파티는 조국의 아들들처럼 재미있지 않으며 우리를 둘러싼 문제에 대해 원수와 함께 기뻐합니다! .. 


오 럭셔리, 럭셔리! 사람들의 마음을 얼마나 눈멀게 하고 미치게 하고 강퍅하게 하는지! (5:368). 


사치에 대한 집착은 믿음을 소멸시킵니다(4:166, 참조, 152). 


사치품은 역사상 많은 피해를 입혔다 우리는 많은 도시와 주가 사치품으로 인해 멸망했다는 이야기를 읽습니다. 

사치품은 모든 것과 좋은 것을 태나 무저갱과 같이 삼키고 사람과 강한 자를 무력하게 하고 약하게 하여 전쟁에 불리하게 합니다. 


기쁨은 이웃의 적들에게 일어나고, 그들과 반대 상태에 있을 때 사치가 배가됩니다. 

사치가 배가된 그 나라와 국가에 화가 있도다! 

사치와 함께 모든 악이 거기에서 번식하기 때문입니다. 


그 위에 하나님의 의로운 진노가 달려 있습니다. 

거기에는 멸망 외에는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4:400). 


불법이 있는 곳에 신이 없다. 


또 이것을 알라 거기에는 신이 없고 이 세상의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곳 사람들이 재물과 존귀와 영광과 사치로 기뻐하고 기뻐하고 잔치를 베풀고 웃음을 고치고 춤추고 마시고 노래하며 그리스도인에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 소리를 지르며 다른 음란한 화려함을 연출합니다. 


하나님은 마치 그들의 불법에 대해 기분이 상하신 것처럼 그런 사람들에게서 떠나십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악한 영은 자기를 기쁘게 하는 일을 행하는 것 같이 거기 옵니다(3:296). 


죽기 전에 사람들은 점점 더 분노합니다(5:368). 


음식의 사치품은 죄입니다(3:243, 참조, 678). 


럭셔리와 MAGNITY는 정반대 자매, 하지만 둘 다 영혼을 파괴한다 사치와 인색함은 못된 자매이지만, 둘 다 치명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감염시킵니다. 

한 사람은 부를 낭비하고 다른 사람은 부를 유지하고 가르치지만 둘 다 인간을 파멸시킵니다. 


하나는 이완하고 다른 하나는 사람을 묶지만, 그 둘 다 그의 영혼을 죽게 합니다(2:162). 


곤경에 처한 사치는 국가의 적에게 도움이 된다 우리 형제들은 전쟁에서 총알, 핵, 칼에서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끊임없는 두려움과 슬픔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미친 듯이 즐기고 있습니다! 


그들을 도울 필요가 있었지만, 그 대신에 잔치와 술 취함과 다른 죄로 우리는 그들에게 이방 칼을 날카롭게 하여 우리 자신과 싸우고 있습니다. ..(5:368). 


사치가 범죄를 부추긴다 사치품은 남자가 광범위하게 살기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적은 양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명품이란 무엇인가? 

목 어디서 받나요?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사치스러운 사람은 온갖 거짓말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통치자는 부하들로부터 수집해야 합니다. 

토지 소유자가 농민에게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거나 일주일에 하루 이상 일하도록 강요합니다. 


상인에게 값싼 물건을 팔고, 거짓말을 하고, 목욕하는 사람들을 속이는 것; 용병을 위해 또 다른 뇌물을 받다; 특정 군주로부터 부하에게 급여를 주지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는 도둑질과 횡령과 모든 불의로 돌이킬 필요가 있습니다. 

사치품은 이것과 모든 악의 원인입니다!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가난하고 궁핍하게 살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집과 일용할 양식과 의복이 없음을 봅니다. 


이 모든 것은 럭셔리에서 비롯됩니다! 


사치는 사람들에게 기분을 상하게 하고 폭로하도록 가르칩니다(4:399). 


영원에 대한 추론은 사치에 대한 생각을 추방한다 사람의 영혼을 갉아먹는 사치에 대한 욕망은 반성하는 문제입니다. 

본문에서 제기된 도덕적 질문은 문학에서 영원한 질문 중 하나입니다. 


성경에서도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하여 사치스럽게 살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오늘날 수백 명의 사치품에 사는 사람들이 수천 명의 빈곤층에 반대하는 상황에서 특히 화제가 되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의 삶을 부러워한다는 주장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 저자는 부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몇 줄만 인용합니다. 

그의 의견으로는 그들은 불행합니다. 


사치는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하거나 인생의 일을 찾는 데 도움이되지 않았고 단순한 인간 평화를주지 못했습니다. 

저자는 부는 "영혼을 죽인다"고 믿습니다. 


부자는 거의 행복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확실히 그들이 가진 것을 보지만 그들이 부족한 것을 보지 못합니다. 


친절하고 매력적인 소녀가 노인과 결혼하고 사치에 빠져 변화하고 냉담하고 건조하며 한때 사랑했던 형제들을 잊어 버린 방법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아버지 우리는 모두 아름다운 세상의 품에서 태어나 그 안에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보편적인 자연의 물질성은 우리의 영혼에 직접 침투하여 그 안에 퇴적됩니다. 

사람들은 또한 자연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지만 그 정도는 작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문명의 혜택으로 교육을 받고 문명에서 분리될수록 문명에서 일어나는 과정에 덜 의존합니다. 

따라서 나는 금에 대한 갈증이 마음을 마르게 하고, 연민에 대한 갈망을 닫고, 우정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며, 혈연까지 끊는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단어. 자연의 아름다움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까? 

자연에 대한 존중과 사랑. 이것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배운 것입니다. 


각 사람은 자연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생활 환경일 뿐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에너지의 원천인 조화와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자연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칩니 까? 

그것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상태를 야기합니까? 

왜요? 


많은 작가들이 작품 속 인물의 내면세계를 드러내기 위해 자연을 찾는다. 

자연은 사람의 모든 실제 감정과 감정을 나타내고 보여주는 특별하고 조화로운 세계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라는 중요한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 모두에게 다소간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모두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 속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습니다. 


자연은 각 사람을 더 고귀하고, 더 훌륭하고, 더 순수하고, 더 자비롭게 만듭니다. 

그리고 자연을 한마디로 재창조하는 소설은 사람에게 자연에 대한 세심한 태도를 불러일으킨다. 


나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사람의 기분과 사고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매일 그 아름다움을 보는 법을 배우고 잠시라도 그 아름다움에 빠져보는 것은 큰 가치가 있습니다.


사람의 영혼을 갉아먹는 사치에 대한 욕망은 반성하는 문제입니다. 

본문에서 제기된 도덕적 질문은 문학에서 영원한 질문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나는 금에 대한 갈증이 마음을 마르게 하고, 연민에 대한 갈망을 닫고, 우정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며, 혈연까지 끊는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돈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 


1. 돈은 사람의 가치, 사회에서의 중요성을 결정합니다. 


"이제 돈 없이는 존경심뿐만 아니라 자존심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나는 물질적 부만이 다른 사람의 눈에 사람을 만든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가 돈에 대해 얼마나 감정적으로 이야기하는지, 그것을 음악, 현대의 시로 생각하는지... 홍보 담당자의 입장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 시대에는 돈이 "모든 사회적, 개인적 문제를 해결하고 모든 삶은 그 문제를 중심으로 구축됩니다."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기 어렵다. 

참으로, 라디오와 텔레비전 모두 부와 번영을 찬양하고 아무도 개인의 성격에 관심이 없다면 그의 관점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는 이것이 돈의 부정적인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부에 미쳐 남작은 인간의 얼굴을 잃어 자신을 "전능"하다고 상상했습니다. 


돈은 그에게 탐욕과 교만과 악을 낳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돈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입니다! 

따라서 사회의 유일한 가치가 된 돈은 한 사람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결론지을 수 있습니다.


사치스런 예배 환경이 몸과 영혼 망친다

https://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8694

居無求安(거무구안)하며 : 거처하는 데 편안한 것을 구하지 아니하며


지난번에 주거 공간에 살펴 본 거무구안의 뜻을  이번에는 교회 환경과  관련하여 살펴 보곘습니다. 

사치스런 주거 공간은 우리의 건강을 해친다는 사실은 제가 언급하였고 이미 잘 알고 있는 상식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교회조차 사치스런 공간으로 변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대형 교회일수록 더 심합니다.


현대 사람들은 편안한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문명의 도구들이 어느 것 하나 편리함을 바탕으로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자동차, 냉장고, 엘리베이트, 휴대폰, TV, 각종 전자제품 등등. 일일이 열거하자면 끝이 없습니다. 

심지어 예배드리는 공간도 편리함은 물론이고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꾸미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마치 무당들의 굿집이 화려하게 장식한 형태를 좀 세련되게 현대적인 인테리어로 고급음향, 영상 시스템으로 오페라 극장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 대형 교회는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을 주고 있습니다. 


편리한 신앙 생활의 욕구를 적절히 충족시켜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대로 모방하려고 애를 씁니다.


편안함에 중독되 예배


편리함에 중독된 예배를 드리다 보니까 몸과 마음을 다해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기능이 퇴화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참여적이고 능동적인 예배가 아니라 수동적으로 드리는 관객의 존재로 전락한 느낌만 지배하고 있습니다. 


영상 시스템은 예배의 시각 효과를 주고 자료화면을 통해 감성을 자극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하는 순기능도 있습니다. 


하지만 찬송가를 부르기 위해 고를 수고와 성경을 찾을 수고도 할 필요가 없는 그야말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예배를 드릴 수가 있게 되었으니까 얼마나 편리한 예배입니까?


다윗은 주거 공간이 넓고 편안한 왕궁에 살다가 범죄를 하였습니다. 


다윗의 범죄는 목동 시절 풀밭과 텐트에서 지낼 때 지은 것이 아니고 왕의 신분으로 즉 군자로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그곳에서 목욕하는 여인을 보고 음욕이 발동하여 우리아의 아내 밧새바를 간통하게 된 것입니다. 


한국교회 목사님들도 개척 시절과 교회 성장기에는 주의 종으로서 변변한 방 한 칸 없이 살며 가족들 고생시키면서도 사명감 하나로 버티다가 제법 교회로서 모든 것을 갖추고 나면 다윗과 같이 편안한 데 살기를 구합니다. 


그러다 이내 죄의 골짜기고 걸어가고 있는 현상이 교회 안팎에서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목사는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하고 교만하지 않도록, 죄에 빠지지 않도록 자기 스스로 채찍질을 하는 군자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야곱이 하루해가 져서 발길이 멈추는 그곳이 그날 처소였고 땅 위에 돌베개를 베고 자면 그게 침대이고 베개였습니다. 

야곱은 생활 자제가 주거 공간이자 예배 공간인 셈입니다 세례 요한도 그랬을 겁니다. 


예수님도 그랬을 겁니다. 

바울도 그랬을 것이구요. 

야곱이 베고 자던 돌베개는 비록 딱딱하였지만 목의 건강에서는 아주 좋은 베개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늘 목이 뻣뻣하고 경추염좌나 디스크가 많은 것은 너무 푹신푹신한 베게와 침대에서 자기 때문입니다. 

허리디스크도 결코 침대와 무관하지 않은 생활 속에서 발생한 질병입니다. 푹신푹신한 침대는 허리의 건강을 위협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잘 때 침대에서 자도록 프로그램하여 놓지는 않았습니다. 

낙엽 위나 널판지 위, 나무 위, 황토방이나 온돌방, 가마니 위에서 자는 것이 허리에 좋습니다. 

디스크예방과 치료를 해주기도 합니다.


이렇듯 인간의 이성과 지혜로 발전한 인간의 모든 문명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파괴시키기 위한 것들에 불과한 문명의 진보라고 여겨집니다. 따라서 현재 풍요한 물질 문명과 의식주 뒤에 숨은 악의 정체를 직시하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은 그 실체를 바로 알아 종말론적 삶으로 절제하며 건강하게 살아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대형 교회는 구조적으로 하나님의 교회가 되기 어려운 상황이 바로 너무도 편안한 공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부적합한 공간입니다. 

솔로몬 성전과 같이 훌륭하게 지어지고 인테리어도 호화스럽게 편의시설도 초현대식으로 지어졌지만 그곳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단지 그 속에는 세트장에서 연출하는 드라마와 목사들의 탈렌트적인 연기와 이를 즐기는 관객만 있을 뿐입니다. 

대형 교회는 인간의 저 잘남을 연출, 경쟁하는 박람회장입니다. 


귀족 계층의 친목 공간으로 전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고비용의 구조로 되어 갑니다. 


하위 계층들은 입장료를 낼 수준도 되지 못하여 접근하기조차 어려워집니다. 

이런 교회는 비록 교회 간판을 내걸고 신학박사, 목회학 박사학위를 가지 목사가 목회하더라도 하나님의 교회가 아닙니다. 


유럽 교회와 같이 한세대가 지나면 사라질 교회에 지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연 속에 운행하시고 계십니다. 

아골 골짜기나, 빈들이나, 초막이나, 궁궐이나 그 어디나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어디나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자연 공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위적인 공간인 건물에서 복음을 전하시기보다는 갈릴리바다가, 산기슭에서, 길가에서, 밀밭 등의 자연 속에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건물보다는 사람들의 집합 그 자체를 귀중하게 여겼던 같습니다. 

아무런 군더더기와 호화스럽게 연출되는 인간적인 프로그램도 없었습니다. 


지금의 자본주의 사고로 보면 무미건조하고 무비용의 교회인 셈입니다. 


이와 같이 예배는 아무런 건물유지비가 들지 않고 불필요한 조명과 선교단 밴드의 음향의 소음에 노출되지도 않고, 전자기파도 받지 않고 자연이 주는 신선한 공기와 햇빛을 받고 예배드리니 건강에도 좋습니다.


절제하고 분별하자


대형 교회는 건강상 문제도 그렇고 또 하나는 소음이 너무 크다는 것입니다. 

청력이 문제되는 것 중에 하나가 교회 안의 음향 레벨이 너무 높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각 교회마다 밴드가 있고 앰프 시설이 되어 있어서 불필요하게 볼륨을 높게 하여 귀가 찢어질 정도입니다. 

교인들을 모조리 귀를 멀게 하고 이명증환자로 만들 작정인 모양입니다. 


작은 교회로 갈수록 소음 피해가 심합니다. 

어느 교회에 간적이 있었는데 스피커 바로 앞에 앉았는데 귀가 찌어질 정도로 아파 혼이 난적이 있었습니다. 


작은 교회는 얼마든지 육성으로 설교할 수 있는데도 마이크를 사용합니다. 

참으로 웃기는 광경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셨을 때 그 많은 사람들에게 마이크를 사용하여 전하였겠습니까? 

아니지요. 


그냥 조용조용하게 하늘나라의 복음을 전하였을 겁니다. 

소리는 상대적이기 때문에 귀만 기울이면 다 들을 수 있거든요.


저는 개인적으로 교회 건물에서 편안하게 예배드리는 것을 지양하고 강가나, 바닷가나, 산기슭에서나 들판에서 드리는 예배를 시도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대형 교회서는 인구밀도가 너무 높습니다. 

따라서 공기가 오염되어 폐암을 유발하는 원인을 교회가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어느 대형 교회 목사님이 폐암 수술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담배도 피우지 않았을 것인데 어찌 된 것입니까? 


물론 개인적인 성격과 육체적인 발병 요인도 있겠지만 대도시의 공기오염과 오염된 교회 안의 공기도 일조를 하였을 겁니다. 

교회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인 곳이고 예배와 성경공부의 순서가 오죽이나 많습니까? 


특히 목사들은 필히 참석해야 하기 때문에 확률적으로 폐암에 더 노출되기가 쉽습니다. 

따라서 이왕 교회를 지을 바엔 냉온방 시설만 할 게 아니라 환기 시설도 제대로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에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게 창조한 것과 같이 인간도 동굴이나 비바람을 피할 수 있도록 나무와 흙으로 집을 짓도록 지혜를 주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흙으로 소박하게 지은 집들이 대부분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머리 둘 곳조차도 없다 하셨습니다. 


얼핏 들으면 이 세상을 살아가신 예수의 삶이 가난하고 구차했다는 것으로 들리지만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편리함과 풍족함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구원 사역에는 전부 하찮은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예수님의 l2제자의 삶이 행적과 사도 바울의 일생도 전도여행을 하는 동안 비바람을 맞으며 광풍에 고생하며 제대로 먹지 못하며 매를 맞는 고난과 허름한 집에서 생활하였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교회 주의 종들 중에 브랜드 목사들은 호의호식(好衣好食) 하다못해 호거(好居) 하고 있습니다. 

이런 행태는 이방종교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현재의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환경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절제를 하고 분별을 하자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므로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삶, 12제자와 바울 사도의 삶을 기계적으로 그대로 행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이 시대의 병든 교회 예배 공간 구조를 분별하고 하나님의 창조 환경으로 돌아가는 것과 개혁적인 예배 공간으로 돌아가자는 의미에서 공자의 거무구안(居無求安)의 뜻을 살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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