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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일본에서 실패했습니다” 국립대 98학번 선배의 현실 충고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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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취업 1년 만에 돌아온 K씨 사연[해외취업 허와 실④]일본 취업 1년 만에 돌아온 K씨 사연사전 현지 기업 정보 없이 갔다가 낭패“알선업체 정보 파악 필수⋯한국서 일본계 기업 취업 시 도움” <편집자주> 2017년 해외 취업자 수가 5000명을 넘어섰습니다. 국내 고용 한파가 계속되면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일본, 싱가포르, 미국 등으로 향하는 청년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공적으로 안착한 이들도 있지만 적응에 실패해 한국으로 U턴하는 쪽도 적지 않습니다. jobsN이 해외취업 성공, 실패담을 들어봤습니다. “해외 취업은 여행 가듯 준비하면 안 돼요.”K(39)씨는 14년 전 일본으로 취업을 하러 갔다 1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가장 큰 실패 요인은 취업하는 기업에 대한 사전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시작한 데 있다. 일본 문화에 대한 막연한 동경만 갖고 일본 취업을 감행했다는 점도 문제였다. K씨는 “오래전 경험이지만 해외 취업을 생각하는 이들이 준비해야 할 것들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며 jobsN과 만나 실패담을 풀어놨다.(K씨 요청으로 인터뷰는 익명 처리합니다.)게티 이미지 뱅크◇ “한국보다 나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은 독”K씨는 지방 국립대 공대 98학번으로 한 번의 휴학 없이 졸업했다. 졸업을 하고 학사장교로 입대한 때가 2002년. 제대 후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하던 중 해외 취업이 눈에 들어왔다. 화학공학을 전공했지만 이와 관련한 일을 할 생각은 없었다. “졸업하고 무슨 일을 하면서 살까 궁리하다가 해외 취업에 관심이 생겼어요. 제가 취업을 준비하던 2000년대 초만 해도 연봉, 생활환경 등 일본 근무 여건이 한국보다 좋았어요. 방학 때마다 해외여행을 자주 다니면서 막연하게 외국에서 일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요.”K씨는 한국산업인력공단 도움을 받아 군대에서 틈틈이 일본 취업을 준비했다. 당시 산업인력공단은 취업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원서를 받아 일본 기업과 연계해주는 일을 주선했다. K씨는 2004년 6월 말 제대를 하고 한 달 뒤 일본으로 건너갔다. 하지만 일본 도착 하루 만에 그의 머릿속이 하얘졌다. 당시 들어간 곳은 한국에 본사를 둔 회사의 일본 지사로, 4명의 직원을 두고 있는 영세업체였다. “기업에 대해 상세하게 조사를 해보지 않고 간 것이 문제였어요. 한국인 사장과 재무담당자, 또 다른 한국인, 일본인 직원까지 4명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 저를 포함한 3명의 인턴이 들어갔어요. 출근하자마자 우리 앞에 전화번호부가 던져졌습니다. 회사가 만든 제품을 살 의향이 있는지를 전화하는 업무였습니다. 단순하게 표현해 하루 종일 전화만 돌리는 일이었죠. 이 정도 규모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회사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은 K 씨뿐만이 아니었다. “한 친구는 일본에서 떡 상점을 운영한다는 회사에 들어갔어요. 사무 업무를 볼 것으로 생각하고 왔지만 정작 일본에 가서 그 친구가 한 일은 호떡을 굽는 일이었다고 해요. 떡집 앞에서 임시로 호떡을 팔고 있었는데, 그 일을 맡겼다는 겁니다. 직업에 귀천은 없지만 대학 졸업하고 호떡 구우려고 한국에서 대학 나와 어렵게 일본까지 간 것은 아니잖아요. 그때 한국에서 같이 간 친구들이 들어간 업체들은 직원 수 10명 미만의 영세한 곳이 대부분이었어요. 저를 포함해 같은 회사에 온 3명은 공단 측에 항의를 했고 결국 100일을 못 채우고 다른 회사로 이동했습니다.”  K씨가 일본에서 두 번째로 간 직장은 한국인 사장이 직원 20여 명을 두고 운영하는 여행사였다. 여행업 뿐 아니라 연예인 초청 행사 등 이벤트 업무로 사업을 벌이고 있던 때였다. K씨에게 사장 비서 역할이 떨어졌다. “당시 한류 열풍으로 한국 연예인을 불러 팬미팅을 하는 행사를 일본에서 많이 진행했어요. 여행업도 시장 상황이 괜찮았고요. 사장 비서를 하면서 여행, 이벤트 등 다양한 업무를 경험할 수 있었죠. 미팅에 사장과 항상 동반하다 보니 일본어 실력도 빠르게 늘었고요. 문제는 일에 대한 만족도가 커지면서 또 다른 고민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계속 일본에서 지낸다면 한국 가족, 지인들과 관계를 이어가지 못할 텐데 그렇게 살아도 괜찮을까란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일도 중요하지만 가족, 지인과 함께하지 못하고 타국에서 살아가는 것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를 진지하게 고민했는데 저는 ‘못한다’였습니다. 그곳에서 9개월 일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게티 이미지 뱅크◇ “장기 투숙자 아닌 생활인으로 현지 경험해봐야” K씨는 스스로를 “일본 취업 실패 사례”라고 말했다. 그가 꼽은 실패 원인은 크게 ‘기업에 대한 무지’,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 ‘부족한 언어 실력’이었다. “가고자 하는 기업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갔던 점이 가장 큰 패착이었다"며 "내가 살고자 하는 나라의 문화에 대해 막연한 기대감만 갖고 시작했다. 그때 숙고했더라면 다른 결정을 내렸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은 인터넷 환경이 발달해 알고자 한다면 알아볼 수 있는 정보들이 많지만 당시만 해도 제가 취업하려는 회사에 대한 정보를 알기 쉽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보든 공신력 있는 기관을 통해 알아보든 제대로 된 정보를 최대한 많이 파악해야 합니다. 당장 일본 현지인들에게 회사 이름을 말했을 때 처음 들어보는 곳이라고 한다면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죠. 회사의 홈페이지조차 갖추지 않고 있는 곳은 숙고를 해 볼 필요가 있고요."취업 알선업체 얘기만 믿어선 안된다는 조언도 곁들였다. 산업인력공단이 운영하는 해외 구인, 구직 정보 통합망인 ‘월드잡 플러스’에는 일본 기업들이 규모에 관계없이 채용 공고를 올릴 수 있다. 기업에 대한 검증은 본인 몫이란 얘기다. “정부가 알선해주는 곳이니까, 취업 중개업소가 알아서 소개해주는 곳이니까 믿을만한 곳이겠다라는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위험해요. 나를 지키는 것은 오직 나뿐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노동 착취를 일삼는 악덕기업을 뜻하는 ‘블랙 기업’에 취업해 피해를 본 사례들이 여전히 많아요. 덜컥 취업했다가 계약서에 기재하지 않은 근무를 강요한다든가 수당을 제대로 계산해 주지 않는 등의 얘기가 나오는 것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고요. 블랙 기업은 일본에서 인력을 구하기 어려우니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수밖에 없어요."‘일본을 좋아하는 것’과 ‘일본에서 취업해 사는 것’이 다르다는 점은 K씨가 뼈저리게 느낀 것 중 하나다. 향수병까지는 아니지만 일본에서 새로운 인맥을 형성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점도 그에겐 부담이었다. “방학 때마다 찾은 일본이었지만 여행자였을 때 보는 시각과 실제 생활인으로 살아보며 느낀 것이 너무 다르더라고요. 게다가 전 일본어를 어느 정도는 할 줄 알았지만 능숙하게 하지는 못했거든요. 일본에서 살면서 일가친척이나 친구들과의 교류를 할 수 없다는 점도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어요. 한마디로 한국에서의 인연을 놔두고 일본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 쉽지 않았어요. 일본 취업을 생각한다면 일본에서 6개월이라도 살아보고 나서 결정을 해도 늦지 않는다는 얘기를 꼭 해주고 싶어요.”게티 이미지 뱅크◇ 현지 취업 경험 살려 일본계 한국지사 취업 일본에서 1년을 지내고 한국으로 돌아온 K씨는 한국에 진출한 일본계 기업 입사를 준비했다. 현재 일본에 본사를 둔 ICT 기업에서 근무 중이다. 일본에서 돌아온 직후 일본계 반도체 회사에 취직했고 일본계 전자제품 기업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안착했다. “일본에서 지내는 1년 동안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일본어 공부를 확실히 해 둘 수 있었던 것은 큰 도움이 됐어요. 외국계 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던 계기도 됐고요. 반도체 회사에 근무할 때는 일본 현지에 발령받아 2년 정도 지냈던 적이 있었는데, 한때 생활을 했던 경험들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곧바로 일본 기업으로 취업할 수 없다면 거꾸로 한국에 지사를 둔 일본 기업에 취직해 경험을 충분히 쌓은 뒤 일본 본사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찾는 것도 방법일 수 있어요." 글 CCBB 에디터 절미시시비비랩
태국에 BB크림 40만개 판매한 무서운 신입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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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2년만에 태국·베트남 등 5개 국가 책임진 사람에이블씨앤씨 해외영업팀 김하정 사원작년에 태국에 비비크림 40만개 판매부족한 것 먼저 제안해야 현지 파트너 성공대학때 전공은 프랑스어였다. 프랑스어가 재밌어 프랑스로 교환학생도 1년 다녀왔다. 졸업 후 희망은 통역사였다. 통역사의 꿈을 안고 캐나다로 연수를 떠났다. 그가 있던 몬트리올에는 한국 화장품 매장이 많았다. 캐나다에서 한국 화장품이 단독 매장을 내고 판매를 하는 게 신기했다. 한국 화장품을 다른 나라에 파는 일이 궁금했다. 통역사의 꿈을 접고 화장품 해외 영업으로 자신의 진로를 바꾸기로 결심했다.에이블씨엔시 해외영업2팀 김하정 사원 /사진 jobsN귀국 후 화장품 미샤·어퓨 등을 생산유통하는 에이블씨엔씨에 입사했다. 2년만에 동남아시아 영업팀(해외 영업2팀)에서 태국·베트남·라오스·미얀마·캄보디아 등 5개 국가를 책임지고 있다. 작년 태국에서 판매한 비비크림만 40만개가 넘었다. 에이블씨엔씨 해외영업 2팀 김하정(27) 사원의 이야기다. 김씨는 “해외 영업을 하려면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잘 아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 사이의 신뢰”라고 말했다. 미샤의 신입사원 평균연봉은 남성 3800만원, 여성 3650만원이다. -프랑스어를 전공하다 동남아시아 영업을 담당하고 있다. 전공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프랑스어와 화장품 해외 영업은 전혀 상관없어 보인다. 지역도 동남아라 전공과 거리가 있다. 해외 영업이라는 직무를 아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컸다. 동남아에서 업무를 익히고 나면 다음에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입사 2년만에 5개 국가의 영업을 책임지고 있다. 상당히 이례적인 일인데.“한 지역을 책임지는 지역전문가로 성장하기에 2년은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하지만 국가를 나눠 한 사람이 그 지역을 책임져야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5개 국가를 맡긴 것 같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꾸준히 현지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있다.”-동남아에서 K뷰티가 인기인가?“많은 동남아 국가에서 한국에서 하는 화장법을 따라한다. K팝이나 한국 드라마도 인기다. 한국 문화도 잘 알고 있다. K뷰티가 중국의 반한감정 때문에 고전했는데, 동남아가 돌파구 역할을 해준 것 같다.”김하정 사원-동남아시아 적응은 어땠나?“우리에게 동남아시아는 휴양지 정도 이미지였다. 시장으로 접근해야 해 알고 지냈던 동남아와 다른 곳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차이가 있었다.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공부하면서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던 동남아시아도 공부를 했지만 동남아에서 생활했던 사람들에 비해서 적응하는 데 훨씬 힘들었다.베트남은 직접 만나 얼굴을 보기 전까지는 업무를 하기 힘들었다. 정부의 행정절차도 느렸다. 화장품은 품질이나 성분에 대해서 인증을 받아야 했는데 인증 절차가 예상보다 늦어지는 일이 많았다.좋아하는 제품의 차이도 컸다. 우리나라에선 영양감이 풍부한 제품이 반응이 좋았는데, 동남아에서는 산뜻한 제품이 인기가 많았다. 환경오염 영향으로 미세먼지 차단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미백에 관심이 많은 것은 만국 공통인 것 같다.”-K뷰티가 동남아에서 인기인데, 영업하는 데 이점은 있었나.“한국 화장품을 많이 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신제품이 나오면 언제 받을 수 있는지 문의하곤 한다. 한국 화장품을 신뢰하고 있어서 먼저 사업을 하자고 제안 오는 경우도 많다.”태국 방콕에서 현지 거래처와 논의를 하고 있는 김하정 사원. /사진 김하정 제공-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이었나.“태국이나 베트남에서는 제품 등록 절차가 까다롭다. 신제품을 내려면 준비할 게 많고 복잡하다. 서류 하나하나 꼼꼼하게 챙겨야 했고, 대사관 공증업무까지 해야했다.태국 어퓨 브랜드 단독매장을 낼 때였다.  올 추석연휴 직전이라 시간이 촉박했다. 매장을 열려면 진열할 상품 목록과 인테리어를 현지 사업자와 협의를 해야했다. 매장 인테리어를 위한 도면을 받아서 현지에 넘기는 일도 했다. 그런데 오픈 당일까지 상품을 확정할 수 없었다. 태국에서 상품등록이 늦어졌기 때문이다. 서류 작업을 서둘기 위해서 제조사에서 직접 성분 서류를 받아오기도 했다. 매장 인테리어가 7~8 차례는 바뀐 것 같다. 매장 오픈까지 하루하루 살얼음을 걷는 기분이었다.”-제일 많이 판 제품에는 어떤 것이 있나.“2017년에 제일 많이 판매한 제품은 비비크림이다. 태국에서만 6개월 동안 40만개를 팔았다. 시트마스크도 인기가 좋았다. 1년 동안 200만장은 판 것 같다. 비비크림 40만 개는 20톤 콘테이너 4개 정도다. 시트마스크 200만장을 넣으려면 콘테이너 20개가 필요하다.베트남은 한 제품이 많이 팔리기보다는 여러 제품이 고르게 나간다. 아무래도 현지 판매 정책 차이 때문인 것 같다. 태국에서는 단독 매장을 내기보다는 편의점 세븐일레븐 등 소매 채널을 활용하거나 H&B스토어와 같은 멀티 브랜드숍을 이용한다. 반면 베트남은 자체 브랜드숍만 운영하고 있다.”-동남아시아 출장은 자주 가나.“두 달에 한 번 정도는 다녀 온 것 같다. 한 나라를 갈 때는 2박 3일 정도나 3박 4일 정도 걸린다. 여러 나라를 돌면 일주일이 걸리는 경우도 많다.”김하정 사원-한국에서는 어떤 업무를 하나.“한국에서 하는 일이 더 많다. 국내 영업은 같은 지역에 있으니 어려움이 있을 때 찾아가서 바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런데 해외 영업에서는 그럴 수 없으니 현지 거래처와 의사소통에 신경써야 한다. 나라별로 주로 사용하는 메신저 앱이 다르다. 태국은 라인, 베트남은 왓츠앱, 미얀마는 바이버를 많이 쓴다. 라오스는 아직 대세인 서비스가 없어서 거래처 사람들에게 카카오톡을 쓰라고 했다.”-해외 영업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영업은 끝이 없는 일이다. 현지에서 매장을 연다면 매장 준비에 한동안 온 정신을 쏟는다. 그런데 본격적인 일은 매장을 열고 나서부터다. 문을 연 매장에서 매출이 올라가는지를 살피고 부족한 게 어떤 것이 있는지도 살펴야 한다.여기서 외국어 능력은 기본이다. 현지 거래처와 일대일로 일하기 때문에 세심하면서도 적극적인 성격이면 더 좋다. 현지에서 요구하는 것만 제때 보내주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현지 기상상황이나 유행 등을 꾸준히 살피면서 먼저 제안을 해야 한다. 한국 뷰티유튜버에도 관심이 많다. 화장법을 직접 가르쳐줄 수 없다면 친절하게 화장법을 가르쳐주는 유튜브 채널을 알려주는 것도 방법이다.”글 CCBB 에디터 CBCB시시비비랩
초딩들에게 '꿈의 직업'으로···조물주 위에 건물주, 그 위에 유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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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초딩들 장래희망 5위 유튜버. 그 꿈을 이룬 어린이 유튜버 살펴보니라임튜브, 마이린TV 등 어린이 유튜버 급증성인 유튜버 못지않은 진행과 콘텐츠‘엄마몰카’ 등 조회수 노린 자극적 콘텐츠도‘조물주 위에 건물주, 그 위에 유튜버.’최근 어린이들의 인기많은 장래희망을 조금 과장해 표현한 말이다. 대도서관, 밴쯔, 이사배 등 성인 유튜버들이 인기를 끌며 수십억원을 벌자 초등학생이나 미취학연령 어린이들 사이에서도 유튜버가 인기 직업으로 떠올랐다.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2018년 12월 14일 발표한 ‘초·중등 진로교육 현황조사’에서 이런 흐름을 포착할 수 있다.학생과 학부모, 교사 4만7886명을 설문한 이 조사에서는 초등학생 장래희망에 처음으로 인터넷방송진행자(유튜버)가 등장했다. 무려 5위다. 가수(8위), 프로게이머(9위), 만화가·웹툰작가(11위)보다 순위가 높다. 1위는 운동선수, 2위는 교사, 3위는 의사였다.이미 활발하게 활동하는 초등학생 이하 유튜버가 많다. 올해 전체 유튜버 중 최고 수입을 거둔 사람도 7살이다. 유튜브에서 장난감을 소개하는 7살 미국인 라이언은 지난 1년간 2200만 달러(243억원)를 벌었다. 라이언의 구독자 수는 17일 현재 1746만명에 달한다. 이보다는 못하지만, 국내 어린이 유튜버도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어린이 유튜버의 세계에 대해 살펴봤다.보람튜브 토이리뷰(왼쪽)와 서은이야기 유튜브 모습. / 각 채널 유튜브 캡처◇장난감 소개하고 일상 공개하는 어린이 유튜버어린이가 등장해 영상 속 주체적인 역할을 하고, 구독자 수가 15만명 이상인 주요 국내 어린이 유튜브는 10여개다. 그 중 규모가 가장 큰 곳은 ‘보람튜브 토이리뷰(구독자 수 720만명)’다. 밴쯔(구독자 303만명), 영국남자(295만명), 대도서관TV(191만명)보다 구독자가 많다.2013년생 5살 이보람양의 취미로 시작한 이 유튜브는 장난감 소개, 일상생활 등을 영상으로 찍어 올린다. 보람양의 부모가 기획사를 차려 아이와 함께 콘텐츠를 만든다. 보람양의 가족은 보람튜브 토이리뷰 외에도 ‘보람튜브 브이로그’ ‘보람 팝 토이즈’ 등 여러 개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다.‘서은이야기(구독자 258만명)’도 이와 비슷한 형태다. 서은이야기의 주인공 신서은(4)양은 국내 최연소 유튜버다. 맞벌이이던 서은양 부모가 서은양의 애정결핍 현상을 고치기 위해 생후 21개월 때부터 유튜브를 시작했다. 장난감이나 어린이 체험 공간 후기를 주제로 한 콘텐츠를 주로 만든다.길라임(7)양이 나오는 ‘라임튜브’도 구독자 172만명을 거느린 대표 어린이 유튜브 방송이다. 길라임양이 아빠와 함께 등장해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숫자와 알파벳을 배우는 모습이 영상에 담긴다. 특히 길라임양이 직접 능숙하게 진행을 하기도 한다.유튜버 띠예가 바다포도 ASMR 방송을 하는 모습(왼쪽). 오른쪽은 길라임양의 라임튜브 유튜브 모습. / 각 유튜브 채널 캡처◇직접 기획·진행하고, 커버댄스 추며 수십만 구독자 모아직접 진행을 하고,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편집도 하는 등 진정한 의미의 어린이 1인 유튜버를 꼽으면 ‘마이린TV’의 최린(12)군이 있다. 2015년부터 방송을 시작해 추리 영상, 방 탈출, 숨바꼭질, 슬라임, 일상생활 관련 영상을 올린다. ‘밤 12시에 엄마 몰래 라면 끓여 먹기’ 영상은 조회 수 813만건을 넘었다. 구독자 수는 73만명이다.ASMR 방송이나 커버댄스 등을 선보이는 어린이 유튜버도 있다. 구독자 수 268만명을 거느린 ‘어썸하은’의 나하은(9)양이 대표적. 2013년 SBS 스타킹에 나와 ‘베이비 현아’로 출연하기도 한 댄스 신동이다. 그는 다양한 음악의 댄스를 따라 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린다. 최근에는 자신만의 싱글 앨범까지 냈다.유튜버 ‘띠예’는 바다포도를 먹는 ASMR 영상으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경우다. 2009년생 9살인 띠예는 올 11월 유튜브를 시작해 동치미, 식용 색종이 등을 먹는 ASMR 영상 5개로 구독자 수 40만명을 돌파했다. 휴대전화 이어폰 마이크를 얼굴에 테이프로 붙이고 방송하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하지만 띠예양은 최근 현재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한 신고로 영상이 차단됐고 활동을 잠시 중단했다.이 밖에 어린이 유튜브로는 ‘간니닌니 다이어리(구독자 58만명)’, ‘뚜아뚜지TV(47만명)’, ‘프리티에스더(17만명)’, ‘노래하는 하람(17만명)’ 등이 있다.마이린TV에 나온 마이린과 간니, 닌니의 모습. 오른쪽은 어썸하은의 하은양이 2018 멜론 뮤직어워드 베스트댄스 부문 후보를 소개하는 모습. / 마이린TV, 어썸하은 유튜브 채널 캡처◇주말에 몰아 찍고 부모가 주도적 역할어린이 유튜버들은 보통 하루에 영상 1개씩을 올린다. 이 과정에서 부모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영상 기획과 카메라 촬영, 편집 등 핵심적 작업은 어린이 유튜버의 부모가 도맡는다. 3~4명의 전문 제작 인력을 두는 경우도 많다.영상 주제는 기획자인 부모와 출연자인 어린이 유튜버가 상의해 정한다. 라임튜브의 길라임양의 아버지인 길기홍(42) 라임캐스트 대표는 2년 전 jobsN과의 인터뷰에서 “라임이가 좋아하는 걸 주로 찍는다”며 “또래 아이들이 영상을 보고 간접 경험할 수 있도록 라임이가 체험하는 것을 많이 찍으려 한다”고 말했다.어린이 유튜버들은 평일에는 유치원이나 학교생활에 충실하고 주말에 영상을 몰아 찍는다. 한 어린이 유튜버는 토요일에는 집 안에서 무언가를 가지고 노는 실내 촬영을 하고, 일요일에는 야외활동 영상을 촬영한다고 밝혔다. 평일에는 주말에 찍어 놓은 영상을 부모나 전문 인력이 편집한다.어린이 유튜버의 수익은 얼마나 될까. 성인 유튜버와 달리 어린이 유튜버들은 수익에 대해 공개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 하지만 유튜브 수익 구조로 알려진 ‘영상 1뷰당 1원’이라는 공식에 대입해보면 대기업 사원 연봉 정도는 받는 것으로 추정된다(영상 내 광고나 협찬 금액은 미포함).한 대표적인 어린이 유튜브 채널의 경우 지난 12월 8~15일간, 9개의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고 총 95만 클릭뷰를 기록했다. 한 주 새 유튜브로 95만원의 수익을 거둔 셈이다. 한 달이면 380만원이다. 여기에 업체들의 협찬과 PPL 광고 등이 더해지면 수억원에 달하는 연 매출을 거둘 수도 있다.실제 도로에서 어린이 유튜버를 장난감 자동차에 태운 유튜브 방송. 오른쪽은 유튜브에서 '엄마몰카'를 검색해 나온 영상들. / SBS 뉴스·유튜브 캡처◇클릭 수 높이려고 ‘엄마몰카’ 등 자극적 소재 활용 문제도어린이 유튜버가 증가하면서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어린이 유튜버 일부는 클릭 수를 높이기 위해 자극적·선정적 콘텐츠를 생산한다. 실제 유튜브에 ‘엄마몰카’ ‘엄마직캠’을 검색하면 수십 개의 영상이 등장한다. 엄마의 샤워 모습을 몰래 촬영한 영상도 있고, 집에서 편하게 옷을 입은 엄마의 모습을 담은 영상도 있다.클릭 유발을 위해 부모가 어린이 유튜버에게 정신적·신체적 피해가 될만한 상황을 연출해 촬영하는 경우도 있다. 한 어린이 유튜버 부모는 작년 실제 자동차가 오가는 도로 위에서 어린이가 장난감 자동차를 타는 영상을 찍었다가 아동학대로 신고되기도 했다. 이 부부는 아동학대 행위가 인정돼 법원으로부터 교화 개선 목적인 보호처분을 받았다.유튜브에 올라왔던 초등학생 아이가 십여분 동안 아이스크림을 4개씩 먹는 영상, 잠자는 부모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는 모습을 연출한 영상, 아이가 강도를 만나는 상황을 몰래카메라로 연출한 영상 등은 모두 어린이 유튜버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아이들은 높은 조회 수를 통해 쾌감을 느끼고, 이러한 쾌감은 중독현상을 일으켜 일상생활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글 CCBB 에디터 별걸다시시비비랩
“손전등 켜고 털 세기도···” 겨울에도 월 400만원 버는 극한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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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폐업소 아니냐고요? 오해는 금물입니다체모 없애주는 ‘왁싱샵’퇴폐업소로 아는 손님 때문에 힘들어여름 성수기 월 550만원 벌기도“몸 전체가 어려지는 기분이다.”“가려운 곳을 세게 긁어 주는 느낌이다.”샤워를 하고 흰 가운으로 갈아입는다. 시술방에 들어가 가운을 벗고 침대에 눕는다. 관리사가 들어와 장갑과 마스크를 착용하고 시술 부위를 살펴본다. 제모하기 쉽게 먼저 가위로 체모를 짧게 자른다. 소독제를 머금은 솜으로 피부를 적시고 건조를 위해 베이비파우더를 바른다. 나무 막대로 시술 부위에 왁스를 펴 바르고 천을 덧댄다. 3~4초 후 왁스가 굳으면 천을 떼어낸다. 30분 동안 같은 작업을 반복한다.tvN '인생술집' 방송 캡처탤런트 이규한씨는 2018년 5월 tvN ‘인생술집’에 출연해 왁싱 경험을 이렇게 설명했다. 왁싱은 머리카락을 제외한 체모를 없애주는 시술을 말한다. 가수 김종민·배우 최은주씨도 방송에서 왁싱 경험을 이야기했다. 요즘은 왁싱샵을 찾는 일반인도 늘고 있다.왁싱샵은 종종 퇴폐업로소 오해받기도 한다. ‘어디까지 해줄 수 있느냐’는 문의 전화에 남자 손님은 아예 받지 않는 곳도 있다. 2015년 10월부터 경기도 용인에서 1인 왁싱샵을 운영하고 있는 이지영(27)씨에게 왁서라는 직업에 대해 물었다.-하루 몇 명 정도 시술하나.“겨울에는 하루 평균 5~10명 정도다. 여름은 날씨가 더워서 왁싱샵을 찾는 손님이 더 많다. 하루 10명 이상 방문한다. 브라질리언 왁싱은 계절과 상관 없이 수요가 꾸준한 편이다. 가격은 시술 범위에 따라 다르다. 브라질리언 왁싱은 세미누드와 올누드가 있다. 세미누드는 회음부에 난 체모를 없애고 음모는 남겨둔다. 올누드는 음모까지 모두 제모해서 가격이 2만원 정도 비싸다. 평균 10만~12만원으로 보통 4~6주마다 한다.”헤어라인 왁싱 전후를 비교한 사진. /이지영씨 제공-주로 어느 부위를 시술하나.“머리카락 빼고 다 한다. 얼굴 왁싱은 헤어라인·눈썹·인중 등으로 나눠서 할 때도 있다. 브라질리언 왁싱을 하는 손님이 전체의 절반 정도다. 나머지는 얼굴에 난 털을 왁싱하는 분들이다.”-시술은 몇 분 정도 걸리나.“체모 양에 따라 다르다. 털이 너무 촘촘하게 나거나 잘 안 빠지는 사람은 조금 더 오래 걸린다. 브라질리언 왁싱을 예로 들면 30~40분 정도 한다. 중간중간 아파서 쉬는 사람도 있다. 그럼 40~45분가량 한다.”-왁싱 종류도 다양하다고.“왁스에 들어간 성분과 시술 방식에 따라 하드·슈가링 왁싱으로 나눈다. 나는 슈가링 왁싱을 한다. 슈가링 왁스 제품은 주 원료가 설탕이다. 하드 왁싱은 화학 성분이 들어가 있다. 시술 방식도 다르다. 슈가링 왁싱은 라텍스 장갑을 끼고 체모 부위에 털 반대 방향으로 왁스를 바른다. 그리고 손으로 직접 모근까지 뽑는다. 하드 왁싱은 털 방향으로 ‘모슬린 천’이라는 제모용 천을 붙였다가 털 반대 방향으로 떼어낸다. 반대 방향으로 떼어내야 체모가 잘 뽑힌다.슈가링 왁스 제품과 시술 도구. /이지영씨 제공-왁서를 하는 방법은.“산업인력공단에서 시행하는 피부미용사 자격증이 있어야 왁싱샵을 열 수 있다. 요즘은 사설 미용학원에서도 왁싱을 가르친다. 사설 기관에서 왁싱을 배우거나 민간 자격증이 있어도 피부미용사 자격증은 필수다.화장품처럼 왁스 제품도 다양한 브랜드가 있다. 슈가링 왁싱의 경우 왁스 제조사에서 교육을 하고 ‘디플로마’라는 민간 자격증을 발급해주기도 한다. 수료증을 받은 사람한테만 자사 제품을 공급하는 브랜드도 있다.”-왁싱으로 돈은 얼마나 버나.“여름철에는 한 달에 500만~550만원 정도 번다. 겨울에는 여름보다 손님이 적어서 한 달에 350만~400만원 정도 수입이 나온다.”방송인 전현무씨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왁싱을 체험했다. /MBC '나혼자산다' 캡처-애로사항은.“유난히 깐깐한 분들이 있다. 왁싱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시술하다가 실수로 한두 개 놓칠 때가 있다. 손전등을 켜서 확인하고 따지는 사람이 있다. 왁싱을 하면 피부에 트러블이 생길 수도 있다. 이 점을 미리 이야기했는데도 시술 3일 뒤에 전화해 책임을 지라며 소리부터 지르는 손님도 있다.”-퇴폐업소로 오해하는 사람도 많다고.“퇴폐업소로 오해하는 분들한테 전화가 자주 온다. 대놓고 퇴폐업소가 맞냐고 물어본다. 처음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몰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자신의 특정 신체 부위를 찍은 사진을 보내줄테니까 어떤지 봐 달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왁싱샵 업계에서 공통적으로 겪는 애로사항이다.손님을 상대로 왁싱을 해주는 퇴폐업소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이미지 때문에 왁싱샵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한다. 나는 예전부터 단골이었던 분을 빼면 남자 손님은 거의 안 받는다. 처음에는 그런 문의가 오면 무시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었다.”JTBC '마녀사냥' 캡처-요즘은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왁싱은 우리나라에 10년 전쯤 들어왔다. 2년 전부터 연예인들이 방송에 출연해 왁싱 경험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왁싱에 거부감이 없는 일반인 손님도 많다. 수영복을 입을 때 집에서 혼자 면도하다가 왁싱샵으로 찾는 분도 있다. 어떻게 하면 왁서를 할 수 있냐는 문의 전화도 자주 온다.”-이런 사람에게 추천한다.“피부 미용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피부를 다루는 일을 하면 손님과 부딪힐 때가 많다. 시술 이후 얼굴에 피부 트러블이 생기면 누구라도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당장 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 장기적인 목표가 있는 사람들이 도전하면 좋겠다.체력도 중요하다. 겉보기와 다르게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다. 예상한 것보다 세심한 작업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그만둔 사람도 있다. 요즘 유행이라는 이유로 나도 할 수 있겠다고 쉽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체력과 정신력 둘 다 필요한 직업이다. 도전하기 전에 본인이 이 직업을 정말 하고 싶은지 진지하게 고민해봤으면 좋겠다.”글 CCBB 에디터 송영조시시비비랩
'북한출신' 꼬리표 털어내고 매출 400억 기업 만든 전직 개그맨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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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쇼핑몰에서 냉면을 검색하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있는 유명한 '평양냉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살아남기 힘들다는 홈쇼핑에서도 동일한 이름이 붙은 '항아리 갈비'를 찾아 볼 수 있는데요. 이쯤 되면 눈치채실 수도 있을 텐데 바로 그 주인공은 개그맨 전철우입니다. 이봉원, 최양락 등 당대 인기 개그맨들과 활동하며 큰 인기를 누렸던 인물이죠. 여기까지는 많이 알려진 내용이죠? 하지만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그는 탈북 이민 1세대로 김책 공업대학을 나온 엘리트 집안의 자제입니다. 평양 남도 남포 출신의 그가 한국으로 넘어와 개그맨으로 자리를 잡고, 다양한 외식사업을 시작하며 억대 매출의 CEO로 변신한 비결을 알아보겠습니다. 1. 개그맨에서 냉면 장사를 시작한 이유개그맨으로 활동하던 그가 왜 갑자기 냉면 사업을 시작한 것일까요? 그는 개그맨으로 활동하던 때에 동료였던 최양락, 이봉원, 최미화를 위해 이북에서 먹던 냉면을 만들어 줬습니다. 이에 그들의 반응이 무척 좋았고, 이봉원은 심지어 냉면 가게를 하라며 '철우와 랭면'이라는 상호까지 제안을 했었죠. 당시 고향 생각이 많이 나던 그는 부모님이 해주셨던 음식이 자주 떠올랐다고 하는데요. 북한에서 냉면과 만두, 순대가 특히 맛있다고 합니다. 본인도 하루에 한 끼는 냉면을 먹을 만큼 애정이 깊은 음식이었기 때문에 동료들의 응원을 받으며 '전철우 랭면'을 시작하게 된 것이죠.2. 북한 출신이라는 핸디캡 이용한 사업전략처음 그는 선배가 소개해준 남영동의 한 구석진 빌딩에서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그 터는 이전에 여러 가게가 망해서 나갔기 때문에 속된 말로 터가 안 좋은 곳이었는데요. 거기에 가게 자리가 나쁜 까닭에 주방장 모집에 난항을 겪다가, 요리에 자신이 있던 본인이 직접 주방 일의 일정 부분을 분담하는 걸로 오픈하게 되었죠. 그런데 자리에서 대박이 나게 됩니다. 냉면을 먹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인데요. 당시에는 핸디캡으로 작용될 수 있었던 북한 출신이라는 사실도 역으로 이용해 호기심을 유발하는 광고 효과를 톡톡히 거두었죠. 그는 장사 초기 자신의 인지도로 오는 손님들을 단골로 만들기 위해 맛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우선 북한 정통 냉면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웠고, 당시 냉면과 차별된 가늘란 면이라는 특징을 선보였습니다. 북한에서는 실제로 심심한 간이지만 남한의 입맛에 맞게 양념도 변경을 했죠. 그 덕에 20평도 안되던 가게에서 하루에 200만 원씩 매출을 올렸고 가맹점이 60여 개로 늘어나며 급성장하게 되었습니다.3. 400억 매출로 증가할 수 있었던 비결그는 탈북자들이 처음에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한국 시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래서 본인은 사업 초기 일본과 같은 해외 시장을 다니면 제품 개발에 대한 노력을 기울였죠. 쉬는 날이면 신메뉴 개발을 하느라 아내를 괴롭히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그 덕에 냉면사업을 뛰어넘는 항아리 갈비가 탄생하였습니다. 홈쇼핑에서 안방주인이 될 정도로 2년 넘게 판매 되면서 400억 이라는 큰 수익을 냈습니다.이렇게 사업가로 성공한 전철우씨는 다른 탈북자들을 위해 사업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강연 프로그램에도 나와 자신의 사업 스토리를 바탕으로 성공하는 법칙 등을 공유하기도 하였습니다. 정주영과 스티브 잡스가 멘토라는 전철우는 이제 식품 사업을 한지가 10년이 훌쩍 넘었는데요. 연 매출 100억 원으로 직원 100여 명의 유통업체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글 CCBB 에디터 스마트인컴시시비비랩
엄마와 출연해서 대박 낸 127만 유튜버가 홀연히 떠난 이유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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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뉴데일리화장을 글로 배운 바람에 광대 화장을 하고 나왔던 하이킥 속 오현경의 모습, 기억나시나요? 요즘에는 이럴 일이 거의 없을 것 같아요. 모두들 화장을 유튜브로 배우니까요. 화장뿐만이 아닙니다. 다양한 기술부터 일상 공유까지, 모든 콘텐츠를 아우르는 유튜브는 이제 가장 중요한 매체 중 하나로 자리 잡았죠. 오죽하면 연예인들까지 유튜브를 시작해 '생태계 교란'이라는 말까지 등장했겠어요. 여기 연예인 못지않은 팔로워를 자랑하던 유튜버가 있습니다. 아니, 있었죠. 100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구독자를 가졌던 그는 얼마 전 갑자기 유튜브로 계를 떠나겠다고 발표했는데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엄마와 찰떡 케미 자랑하던 정선호출처: 유튜브 Helen's Recipes요즘 인기 있는 영상의 소재 중 하나는 '부모님 반응 보기'입니다.  부모님이 등짝 때릴 수준의 엉뚱한 짓을 저지르고 나서 부모님, 혹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반응을 보는 것이죠. 한국에서만 유행하는 건 아닙니다. 외국 유튜버들도 자주 할머니 반응, 할머니와 랩하기 등의 콘텐츠를 선보여 가족 간의 친분을 과시하곤 하는데요. 출처: 유튜브 정선호이번에 영상활동 중단을 선언한 정선호 씨도 본인의 어머니와 자주 영상에 함께 등장했습니다. 핑크색으로 염색한 채 본가에 가서 엄마에게 욕먹는 모습, 엄마와 스노우 어플로 얼굴을 바꾸는 모습, 엄마에게 무작정 애교를 떨다가 베개로 맞는 모습 등을 공개해 많은 호응을 얻었죠. 그는 유튜브 영상 만드는 데 정신을 쏟다 보니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어 엄마와 하는 콘텐츠를 시작했다는데요. 본인도 본인이지만, 거침없는 매력을 뽐내는 어머니의 입담 역시 100만 팔로워를 끌어들이는 데에 한몫했다고 합니다.되돌릴 수 없는 악플의 상처출처: 유튜브 정선호그렇게 어머니와 즐거운 시간도 보내고 영상활동도 즐기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것처럼 보이던 정선호 씨는 지난 2018년 11월 7일 갑자기 유튜브를 그만두겠다는 영상을 올렸습니다.  그가 밝힌 유튜브 중단 사유는 다름 아닌 '악플' 이었는데요. 처음에는 시간이 지나면 무뎌질 거라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합니다. 물론 응원해 주는 팔로워가 훨씬 많았고, 절대적인 악플의 수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었지만 100개의 선플도 악플 1개의 상처를 씻어줄 수는 없었다는데요.  그동안 최대한 팔로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만 주려고 노력해왔다는 그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지금 잠시 영상 공유를 중단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돌아오게 되었을 때 모든 악의적인 댓글에 대한 강경 대응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죠. 상상초월하는 악플의 수위출처: 유튜브 정선호 / 유튜브 스팀보이물론 모든 영상에 모든 사람이 긍정적인 의견만 남길 수는 없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고요. 하지만 건설적인 비판과 단지 사람을 괴롭히기 위한 악의적인 댓글은 구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영상 자체의 퀄리티에 대해 '이번 영상은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거나 '편집이 너무 어지러워 보기 힘들다'는 등의 의견을 남기는 것은 오히려 유튜버에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밑도 끝도 없이 '퀄리티가 구리다'고 하거나 '얼굴이 못생겼다', '얼굴이 더럽다' 등의 인신공격을 하는 건 남에게 상처를 줘서 주목을 받아보겠다는 꼬인 심사로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출처: 유튜브 정선호하지만 퀄리티 공격, 외모 공격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악질 중의 악질 댓글도 있습니다. 바로 가족 공격이죠. 곱게 말해 가족 공격이지, 정말 입에 담을 수도 없는 험한 소리를 남의 가족에게 지껄이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정선호씨 역시 가장 상처받은 댓글은 어머니를 언급하며 욕하는 내용이었다고 하는데요.  정선호씨는 그 내용을 전달하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악플의 또 다른 피해자 스팀보이악플에 고통받는 유튜버가 정선호 씨 한 사람은 아니겠죠. 작년에도 악플에 스트레스를 받아 몇 달간 영상 업로드를 중단했던 유튜버가 있었습니다. 귀여운 장난감, 군침 도는 먹방, 매력적인 고양이와의 일상 등을 공유해 88만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스팀보이인데요. 그는 주기적으로 자신에게 달린 악플들을 읽는 영상을 공개하는 등, 혼자 상처받지 않고 악플러들의 경각심을 일깨워 주려는 노력을 많이 해왔습니다. 헐리웃 스타들이 자신을 향한 악플을 직접 읽는 '민 트윗츠(mean tweets)'를 떠올리게 하는 콘텐츠였죠. 하지만 그걸로도 악플의 상처는 순화되기 힘들었는지, 결국 유튜브 휴식기를 갖게 됩니다. 스팀보이 역시 정선호 씨처럼 자극적이거나 낚시질하는 콘텐츠 없는 '클린 유튜버'였기 때문에 많은 팬들이 아쉬움과 함께 악플러에 대한 분노를 나타냈죠.악플은 고소 당할 수 있는 명백한 범죄입니다.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인터넷에 상대방에게 욕설 등을 한 경우 인정되는 사이버 모욕죄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해지게 되어있죠. 한 번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모욕을 주거나 불안감을 조장했다면 사이버 스토킹으로 볼 수 있으며 이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저 장난으로, 누구를 향한 것인지 불분명한 분노 때문에 타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준다면 본인에게도 그 대가가 돌아온다는 사실, 절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더불어 정선호씨가 하루빨리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고 즐거운 영상을 들고 돌아오시길 기대해 봅니다.글 CCBB 에디터 스마트인컴시시비비랩
섭외 1순위 명품 아역배우들의 폭풍 성장 후 현재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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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유튜브 라라지금은 그 인기가 좀 주춤하고 있지만, '시트콤 전성시대'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시트콤이 많은 사랑을 받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이 그랬는데요. 요즘에는 하이킥 시리즈로 더 잘 알려진 김병욱 감독의 가족 시트콤이 주로 히트했죠. 작품이 잘 되면 출연 배우들의 인기도 자연스레 따라 올라갑니다. 특히 오늘 다룰 가족 시트콤의 경우 귀여운 아역배우들이 많은 주목을 받았죠. 방영 시기로부터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그때의 꼬꼬마들은 당연히 모두 어엿한 성인이 되었는데요. 그들이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그 근황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매일 저녁 가족들의 웃음폭탄출처: sbs순풍산부인과는 1998년부터 2000년 말까지,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이하 웬그막)는 그 뒤를 바로 이어 2002년까지 방송됐습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도 아니고, 평일 저녁엔 매일같이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불러 모았는데요. 방영 시간은 9시 15분부터로, 저녁식사 후 온 가족이 둘러앉아있을 시간이긴 했지만 당시 각 방송사의 메인 뉴스가 9시에 시작했던 것을 생각하면 그다지 유리한 편성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풍 산부인과는 30%를 상회하는 시청률을, 웬그막은 15% 정도의 시청률을 방영 내내 꾸준히 유지했죠.출처: 인스타그램 @ggongjibyul두 시트콤의 인기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진지한 정극 연기를 하던 배우들의 코미디 연기입니다. 노주현, 신구 등 드라마와 영화에서 근엄한 역할을 주로 맡던 중견 배우들이 이홍렬, 박미선 등의 희극 배우들을 만나 자연스럽게 섞이면서 찌질하고 엉뚱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시청자들에게 호응을 얻었죠.시청자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일상적인 소재 역시 인기 요인이었습니다. 가족 간의 자잘한 다툼과 일상 이야기에 각 캐릭터들이 가정 밖에서 겪는 연애, 학업, 직장생활 등의 에피소드가 더해지면서 웬만한 사람이라면 그들 중 누군가에게는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던 것이죠.빼놓을 수 없는 아역배우들시트콤이 잘 되다 보니 출연 배우들도 주목을 받기 시작했는데요. 특히 순풍 산부인과는 톱스타 송혜교 씨의 첫 작품이기도 합니다. 박영규 씨는 장인 역할의 오지명 씨와 함께 콤비를 이루며 "아~ 장인어른~"이라는 유행어를 만들기도 했죠. 오지명 씨가 극 중 아내인 선우용녀 씨를 부르는 "용녀 용녀"는 수많은 패러디를 낳기도 했고요.출처: 아주경제성인 배우들의 활약도 대단했지만, 아역배우들의 공도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 두 시트콤에서 어린이, 청소년들은 성인들의 스토리를 서포트 하는 역할이 아니라  극을 이끌어 나가는 주체였으니까요.순풍 산부인과를 미달이 빼고 이야기할 수 없고, 웬그막 하면 노영삼의 노란 이소룡 트레이닝 복이 떠오르게 마련입니다. 우리 기억 속엔 다 귀여운 꼬꼬마 들이지만, 이제 이 시트콤들이 나온 지도 20년 정도 흘렀으니 모두들 어른이 되었을 텐데요. 과연 이들이 지금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미달이와 의찬이는 여전히 우정 과시중'시트콤 아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캐릭터는 아마 미달이일 겁니다. 순진하고 착하게만 나왔던 당시 드라마 아역들과 달리, 가끔은 되바라지게 굴기도 하고, 강력한 자기표현을 할 줄 아는 모습에 많은 시청자들이 반했었는데요. 미달이 역의 김성은 씨는 1990년생으로 현재 29세입니다. 김성은 씨는 미달이 역할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사춘기 시절에는 모든 사람이 자신을 '김성은'이 아닌 '미달이'로 부르는 게 너무나 괴로웠다고 하네요.출처: 위키트리 / 아프리카 TV 라라쇼어린 시절에 유명해진 배우들이 자주 그렇듯 김성은 씨에게도 여러 부침이 있었지만, 지금은 뷰티 유튜버이자 아프리카 TV bj로 안정적인 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2017년 유튜브에서 'Lara'라는 채널을 오픈한 김성은 씨는 2017년 11월 온스타일에서 방영된 뷰티 크리에이터 서바이벌 '퍼펙트 브러시'에 출연하기도 했는데요. 2018년 5월에는 아프리카 TV에도 채널을 개설했습니다. 그녀는 첫 방송에서 '연기의 끈을 놓으려 한 것은 아닌데 잘 안되더라'라며 배우로 주목받는 일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죠.순풍 산부인과에 아역이 미달이만 있었던 것은 아니죠. 미달이의 단짝 친구, 까만 뿔테 안경의 똘똘이 의찬이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의찬이 역할을 맡았던 김성민 씨는 최근 김성은 씨의 아프리카 TV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며 여전한 친분을 자랑했습니다. 출처: 비즈엔터또 김성은 씨와 김성민 씨는 김병욱 감독의 시트콤 '감자별'에 함께 출연해 많은 시청자들이 반가워 하기도 했는데요. 최근에는 감자별 동료인 김성민씨와 하연수씨가 김성은 씨의 연극 '보잉보잉'을 관람하러 간 모습도 포착 되었죠.출처: SBS NOW미달이와 의찬이에게는 '정배'라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조그만 입으로 '맙소사!'라는 대사를 자주 해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정배는 혼신의 술취한 연기로 시청자들의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는데요. 어른들이 집을 비운 사이, 술에 담가 둔 자두를 세 꼬맹이가 먹어치운 에피소드였죠. 출처: 아시아경제 / 스타저널정배는 폭풍성장해 2018년 '뷰티 인사이드'의 정비서가 됩니다. 미달이 말에 꼼짝 못하던 귀여운 모습은 어디가고, 깔끔한 정장 차림의 엘리트가 되어 시청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는데요. 정배 역할의 배우 이태리 씨는 해품달에서 정일우씨의 아역을 맡은 전력도 있답니다.어엿한 사회인이 된 영삼이그럼 이제 웬그막으로 넘어가 볼까요? 웬그막 아역이라면 가장 먼저 노주현 씨의 아들로 등장했던 노영삼 역할의 윤영삼 씨가 떠오릅니다. 공부보다는 외계인, 염력 등 엉뚱한 일들에 정신을 빼앗겨 있던 영삼이는 일명 ‘이소룡 트레이닝복'으로 불리는 노란 옷을 자주 입고 등장해 시청자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겼는데요. 웬그막 이후 윤영삼 씨는 2007년 KBS 드라마 시티-아귀를 마지막으로 연기 활동을 중단합니다. 출처: 네이버 카페 액션피겨연기를 그만 둔 윤영삼씨는 2008년 한 제약회사에 입사해, 지금은  회사원으로서 성실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데요. 사진 속 모습을 보니 여느 회사의 대리님 같은 친근한 인상이네요.영삼이와 함께 사고 칠 궁리를 하던 영삼이 친구들, 기억나시나요? 영삼이 친구 4인방 중 '인종' 역할을 맡았던 김준홍 씨는 시트콤 이후 여러 군데서 제의를 받아 출연했었다는데요. 이후에는 소속사와의 계약 문제로 한동안은 연기자 생활을 할 수 없었답니다. 그는 작년 방영된 SBS 스페셜 495회 '스타로부터 한 발자국' 편에 출연하며,  화면에 1분 잡히기도 힘든 단역배우의 삶을 보여준 바 있습니다. 출처: 뉴스엔웬그막에는 영삼이네만 있는 게 아닙니다. 노주현 씨의 동생으로 이홍렬 씨가 출연했고, 노주현 씨가 근무하는 소방서의 계장으로 배종옥 씨가 등장해 이홍렬 씨와의 러브라인을 형성했는데요. 극중 배종옥 씨에게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미나'라는 딸이 있습니다. 귀엽고 깜찍하지만, 엄마를 골탕 먹이려는 속셈으로 옷에다 일부러 실례를 하는 등 맹랑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던 미나 역할의 배우는 1993년생 장미나 씨입니다. 장미나 씨는 2살 때 앙팡 잡지 모델로 데뷔했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라는 노래로 유명했던 초코파이 CF로 전국민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기도 했는데요. 출처: 장미인애 트위터여기서 약간 놀라운 사실 하나. 장미나 씨는 배우 장미인애 씨의 친동생이라고 합니다. 장미인애 씨는 토크쇼에 나와 '당시 IMF로 가정의 경제상황이 말이 아니었는데 미나의 출연료로 온 가족이 먹고살았다. 어린 나이에 스케줄을 잘 소화하는 모습에 고맙고도 미안했다'라며 애틋함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웬그막 이후 몇 개의 작품에 더 출연했던 장미나 씨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고 하네요. 어릴 때의 큰 눈망울을 그대로 간직한 모습이 인상적입니다.정배 역할의 이태리 씨와 미달이 역할의 김성은 씨를 제외하고는 대중 앞에 지속적으로 얼굴을 비추는 배우가 별로 없어 시트콤을 좋아했던 시청자 입장에서는 약간 아쉽기도 한데요. 하지만 나쁜 소식 없이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히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니 다행이기도 합니다. 요즘 90년대-2000년대 흥했던 연예인들의 복귀가 속속 눈에 띄고 있는 만큼, 왕년의 인기 시트콤 배우들도 한자리에 모여 다시 한 번 큰 웃음 줄 날이 오기를 고대해 봅니다.글 CCBB 에디터 스마트인컴시시비비랩
미스 유니버스 미녀들을 심사하고 트레이닝하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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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 말레이시아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제프 리 (Jeff Lee)는 이제 32살이 된 변호사입니다. 명문 스탠포드 대학과 예일 법대를 졸업한 제프는 현재 한 유명 로펌 소속 억대 연봉을 받는 변호사이기는 하지만,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녀들을 심사하고 트레이닝시키는 이색적인 세컨 잡을 가지고 있죠. 다음은 올해 GQ가 뽑은 '미스터 미스 유니버스' (Mr. Miss Universe) 제프 리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제프 리는 수많은 남성들이 상상만 하는 세계 각국 미녀들을 직접 코치하고 있습니다.그는 최근 5년간 미스 알바니아, 4명의 미스 중국, 미스 인도네시아 그리고 미스 인도를 포함해 모두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서 준결승까지 올라간 참가자들을 트레이닝 시켰습니다.제프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미스 유니버스 트레이닝 스쿨'을 설립한 뒤부터 무시할 수 없는 성과로 엄청난 유명세를 타고 있죠. 그는 모델들의 기본자세와 걸음걸이부터 전체적으로 풍기는 아우라와 동작 하나하나까지 전략적으로 코치를 해준답니다.또한, 체중 감량과 치아 상태 그리고 나쁜 버릇들을 관련해 무서운 독설을 내뿜기로 유명하죠. 그는 자신의 학생들이 미스 유니버스 왕관까지 가는데 합법적인 이상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합니다.이제 32살이 된 제프 리는 작년 처음으로 그의 유명세에 힘입어 미스 유니버스 대회의 공식 심사위원으로 나서기도 했죠.사실 제프는 어렸을 적부터 내성적인 성격 탓에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답니다. 하지만 자신감 하나는 확고했던 제프는 백인들 사이에서 전혀 꿀리지 않으려고 공부에 열중하고 몸을 만들었다고 하죠. 참고로 뛰어난 성적을 올렸던 그는 불과 16살의 나이로 스탠포드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캘리포니아에서 낚시와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제프는 현재도 시간이 날 때마다 바다를 찾는다고 합니다. 일찍이 성공가도를 그리기 시작한 그는 아래 보이는 애스턴마틴 럭셔리 자동차도 직접 구입하게 되었죠.그는 법대를 준비하면서 한때 모델로도 잠시 활동했지만 뜨지는 못했습니다.하지만 모델 트레이닝과 선별 능력에 뛰어난 감각을 보였던 제프 리는 지방 미인대회부터 차차 자신의 입지를 다져나가기 시작했죠.그의 능력은 좋은 결과로 이어졌고 결국 미스 유니버스 우승자를 탄생시키게 되었습니다.현재 제프 리는 뉴욕의 와첼 립톤 로젠 & 캐츠 (Watchell, Lipton, Rosen & Katz) 로펌 소속 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는 동시에 미국 반대편에 있는 미스 유니버스 트레이닝 스쿨을 운영하는 CEO이기도 하죠.그는 자신의 제자들이었던 전직 미스 유니버스 미녀들과 인연을 유지하면서 더 강력한 우승 후보들을 키워내는데 저력을 쏟고 있습니다.그리고 2018년, 그는 글로벌 남성 패션잡지 GQ에 의해 "미스터 미스 유니버스" (Mr. Miss Universe)에 당당히 뽑히게 되었죠. 글 CCBB 에디터 피클시시비비랩
사회초년생이 놓치는 300만원 넣고 1600만원 받는 마법적금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8.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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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미생5% 이자를 주는 적금이 있다면 가입하실건가요? 지금도 종종 아이들 대상으로 금리 5~7%선의 특별판매 상품이 나오곤 하는데요. 이런 상품들의 경우 한정 수량이거나 가입 기간이 짧아 많은 사람들이 줄서서라도 가입하려고 합니다. 대개의 적금 상품들은 2~3%대의 이자만 주기 때문이죠. 그런데 무려 이자율 300%가 넘는 마법같은 적금이 있다고 합니다. 과연 이 마법같은 적금의 정체는 무엇일까요?1. 청년내일채움공제란 무엇인가tvN 미생, 고용노동부 홈페이지 마법같은 적금의 정체는 청년내일채움공제인데요. 종류는 2년제, 3년제 두 가지가 있는데요. 기존 2년제에서 3년제가 신설되면서 혜택이 확대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년제의 경우 매달 12만 5000원씩 300만원을 넣으면 2년 뒤 1600만원과 원금에 대한 이자를, 3년제의 경우 매달 16만 5000원씩 594만원을 넣으면 2년 뒤 3000만원과 원금에 대한 이자를 받을 수 있어 청년들의 목돈 마련에 큰 보탬이 될 수 있습니다. 이외에 재직자를 위한 5년형 청년내일채움공제도 신설되어 기존 재직자들에게도 혜택을 확대하고자 했습니다.2. 어떻게 300% 이자가 가능한가고용노동부, tvN, 서울스퀘어 홈페이지시중 적금 금리는 2~3%에 불과한데요. 과연 어떻게 300%의 이자가 가능할까요? 이것은 청년내일채움공제가 부와 기업, 직장인이 함께 돈을 넣는 매칭펀드 방식이기 때문인데요. 직장인이 2년 동안 300만원을 저축하면 정부가 900만원, 해당 기업이 400만원을 지원해 1600만원을 만든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것만 보면 기업이 추가로 지원금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청년내일채움공제는 사실상 정부자금으로 만들어집니다. 즉, 기업에서 일부 금액을 내는 형식이지만 정부가 기업에 직원 1인당 현금으로 더 많은 돈을 지원함으로써 기업은 오히려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것이죠. 3. 그렇다면 자격 조건은그렇다면 자격 조건은 어떻게 될까요? 청년내일채움공제는 청년과 기업이 모두 가입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조건이기때문에 양쪽의 자격을 모두 확인할 필요가 있죠.tvN 미생 페이스북, 제국의 아이들 페이스북 외우선 청년의 경우 '내일채움공제를 신청한 중소, 중견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중 만 15세 이상~34세인 청년'이면 누구나 가능합니다. 생애 최초 취업이라는 점만 만족한다면 말이죠. 생애 최초 취업이란 중소, 중견 기업기준이기때문에 대기업에 다니다가 이직해 처음으로 중소, 중견기업에서 근무한다면 해당이 된다고 합니다. JTBC 뷰티인사이드 비하인드또, 고용보험 가입이 12개월 이내여야 하는데요. 최종 졸업 이후 기준이며 아르바이트 등으로 가입하더라도 3개월 이하 단기 고용보험 가입은 산정에서 빠진다고 합니다. 2년형 가입자의 경우 고용보험 가입기간이 12개월을 초과하더라도 6개월의 실직기간이 있으면 신청 가능하다고 합니다. 단, 올해 3월 31일 이전 퇴사자의 경우엔 실직기간과 무관하게 신청 가능합니다.작년에는 취업성공패키지 이수 등 조건이 많았는데요. 올해부터는 조건이 완화되어 위 조건만 만족하면 누구나 신청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단, 저소득층의 근속수당과는 중복이 되지 않는다고 하니 저소득층 지원자의 경우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청년정책 공식블로그예전에는 공제 가입 후 퇴사를 할 경우, 나중에 다시 가입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3개월 안에 퇴사를 할 경우, 1번에 한해서 청년내일채움공제를 재가입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됐다고 합니다.(2018년 4월 1일 이후 퇴사자부터 적용)청년정책 공식블로그기업은 업종 상관없이 5인 이상의 사업장이면 어디나 지원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또, 직원에게 최저임금의 100%이상을 월급으로 주는 곳이면 됩니다. 최저임금을 준수하는 곳이라면 가능하단 뜻이죠. 단, '비영리 목적의 사업자 및 법인' , '소비향락업' 등에 해당될 경우 불가능합니다.4.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tvN 미생정규직 채용 전의 청년이라면 워크넷-청년내일채움공제에서 온라인으로 신청이 가능한데요. 온라인 신청 후 운영기관에서 자격심사를 거쳐 기업과 운영기간 간 지원협약을 체결합니다. 그리고 청년이 정규직 채용이 되면 기업이 운영기관에 채용명단을 통보하고 청년과 함께 중소기업진흥공단에 청약신청을 하면 완료가 됩니다.정규직 채용 완료 후 신청하는 청년의 경우에도 온라인 신청부터의 과정은 같습니다. 중간에 정규직 채용되는 부분만 차이가 있습니다. 이렇게 청약신청 후 청약 승인이 되면 계약이 성립하며, 계약 성립 후 3개월 이내에는 취소가 가능합니다.5. 만기에 성공해 수령한 사례는청년정책 공식 블로그에서는 올해 8월 7명의 만기 수령자 인터뷰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최초 만기금 수령자는 16명으로 7명이 '웰크론한텍'이라는 기업 소속이었다고 하죠. 이들은 뉴스 기사를 통해 정보를 알게 되었고, 회사의 추천에 가입하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tvN 미생가입할 수 있는 횟수 제한이 있어 근속에 대한 부담이 있지 않았냐는 질문에는 다행히 회사와 잘 맞아 큰 고민이 없었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가입 가능한 3개월의 기간동안 지금의 회사와 잘 맞는지, 내가 성장할 수 있는 회사인지를 충분히 고민해본 후 공제에 가입해 혜택을 받는 것을 추천한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드라마 연애말고 결혼또, 그들은 일반 적금보다 훨씬 혜택이 좋았으며, 청년내일채움공제를 통해 대기업과의 임금격차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사용처를 묻는 질문에는 각각 재테크 기본 자금, 결혼 자금 등으로 이용할 생각이라고 답했습니다.청년 정책들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청년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데요. 청년 정책임에도 청년들에게 제대로 홍보가 되지 않아 여전히 아는 사람만 알고 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일부 청년들은 이와 같은 정책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좋아보이지만 허점이 많다는 것입니다. 청년내일채움공제는 입사 혹은 정규직 전환 이후 3개월 내에 가입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는데요. 사회초년생이 회사나 업무가 자신과 맞는지를 3개월만에 판단하기란 어렵습니다. 또, 이때문에 좋지 않은 회사에서 2-3년을 묶일 수도 있다는 것이죠.tvN 미생게다가 기업 담당자들은 관련 서류 처리에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아 해당 정책 신청을 요구한 신입에게 불이익을 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따라서 사실상 극소수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소득격차가 큰 만큼 그를 줄여보겠다는 생각과 중소기업을 지원하겠다는 취지에서 시작이 된 정책인데요. 좋은 취지에 반해 실효성이 있는지는 의문이 든다는 것이죠. 앞으로는 좀 더 보완이 되어 더 많은 청년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글 CCBB 에디터 피클시시비비랩
오전엔 치과의사 오후엔 춤추는 번역가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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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를 직업으로 만드는 법치과의사, 폴댄서, 번역가로 활동하는 40대 20~30대 치열하게 보내며 3개의 직업 가져 "10년 노력하면 못할 것 없어"다리를 폴에 걸어 자유자재로 돈다, 거꾸로 매달려 돌다가 그대로 멈춘다. 몸을 확 뒤집어 다시 날렵하게 비상해 빙빙 돌기도 한다. ‘폴댄스 추는 치과의사’ 오현진(41)씨를 보면 절로 탄성이 나온다. 폴댄스는 춤과 체조가 결합된 공연 예술의 한 분야. 세로로 된 철봉(폴)을 잡고 춤을 추거나, 폴을 중심으로 회전 혹은 폴에 매달려서 버티는 동작 등의 철봉 운동을 함께 해주는 것이다.치과의사 가운을 입은 오현진씨(왼쪽). 오른쪽은 폴댄스를 하는 모습/본인 인스타그램오씨는 3개의 직업을 갖고 있는 ‘워킹맘’이다. 14살과 10살 아들이 있다. 직업 세 개는 치과의사, 2개의 학원을 운영하는 폴댄서, 그리고 번역가다. 그녀는 “우리나라에서 치과의사 출신 번역가, 폴댄서 모두 각각 유일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3개의 직업과 육아의 균형을 절묘하게 맞추고 있다. 각자의 업계에서 오씨의 인지도는 제법 높은 편이다. 주로 오전에는 출장검진의로 일한다. 오후에는 직접 교습을 하는 등 학원 운영에 신경을 쏟는다. 2016년에는 국내 최초의 폴댄스 교본을 펴냈으며 그동안 학원을 통해 배출한 강사만 100명이 넘는다. 협회 겸 학원인 ‘폴핏코리아’는 민간 자격증도 발급한다. 방송에도 종종 출연한다. <오현진씨의 폴댄스 영상>주말 등을 이용해 틈틈이 번역가로 일한다. 한때는 번역 때문에 1년 내내 쉬는 날이 없었을 정도다. 주로 치과 쪽 의학 번역 수요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이렇게 3개의 직업을 통해 얻는 수입은 월 1000만원. 대학 졸업 이후 치과의사로만 일했던 개업의 시절과 비슷한 수준이다. ‘페이닥터’가 되면서 치과의사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반토막이 났기 때문이다. 폴댄스 학원은 손익분기점을 조금 넘기는 수준이며 번역가로는 일반 직장인 월급 정도 벌어들인다. 몸이 2개라도 모자랄 것 같은 삶을 사는 오씨는 “버는 돈은 과거와 비슷할 지 몰라도 행복도는 비교할 수 없이 높다”고 했다. 그녀를 통해 ‘취미를 직업으로 삼는 법’을 알아봤다.  ◇13년만에 결실 맺은 하나의 꿈 왼쪽은 폴 옆에서 찍은 모습. 오른쪽은 가운을 입은 모습/본인 제공, 본인 인스타그램오씨는 ‘1만 시간의 법칙’을 얘기했다. “누구나 취미로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은 하잖아요? 10년 이상의 노력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오씨는 10년 이상을 내다보고 인생계획을 세웠다. 1995년 부산대 치대 입학 이후 세운 인생 계획이 ‘투잡으로 번역하기’였다. 1만 시간 노력했고 2008년 번역가로 자리를 잡았다. 번역을 번듯한 제 2의 직업으로 내세우기까지 13년이 걸린 셈이다.  번역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오씨는 예과 시절 그 흔한 미팅 한번 해본 적이 없었다. 선배들에게 찍힐 정도로 술 자리도 멀리했다. 단순히 영어를 잘하는 것만으로는 돈을 벌기 어렵다는 것도, 번역가의 전망이 결코 밝지만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의학 분야에 대한 이해도를 바탕으로한 전문성과 함께 번역 스피드를 높이면 돈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오현진씨 프로필 사진/본인 제공학부 시절에는 경험을 쌓기 위해 선배 논문, 교수의 서신 등을 닥치는대로 번역했다. 무료 봉사였다. 졸업하고 병원을 차린 개업의 시절엔 일을 병행하면서 한국외대 통번역학과를 다녔다. 병원에선 잠깐의 휴식 시간에도 틈틈이 번역 공부를 했다. 심지어 가족 모임에 나가서도 번역 공부를 했다. 지하철, 설거지 직후 등 시간과 장소에도 구애받지 않았다. 2008년 드디어 번역을 통해 수입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한 번역회사에서 일종의 인턴으로 3년간 일했다. 자신감을 얻은 오씨는 2011년 프리랜서로 독립했다. “번역회사들은 프로젝트 형태로 인력을 운영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번역가들이 대부분 프리랜서예요.” 일감의 대부분은 치의학과 의학 분야. 치과계에서 번역에 대한 수요가 의외로 많다고 한다. 논문, 해외 학회지, 수출입 계약 등에 쓰인다. 입소문이 나면서 이 수요를 상당 부분 빨아들였다. 의학용어를 제대로 이해하면서 글을 옮길 수 있는 번역가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야외에서 즐기는 폴댄스는 또 다른 매력을 안긴다/오현진씨 인스타그램오씨는 지금도 하루도 빠짐없이 영단어 공부를 한다. 당장 일이 없을 때도 감을 잃지 않기 위해 공부를 한다. 논문을 번역하면서 자연스럽게 치과계의 최신 트렌드와 학설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하나의 직업이 다른 직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 꿈 위해 한때 치과의사 관둬   나이가 불혹(不惑)에 가까워지면서 두번째 꿈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부터 즐겼던 댄스 분야였다. 오씨는 어릴적 발레와 한국무용을 배웠다. 대학생 때는 번역을 제외한 유일한 취미가 에어로빅 등 댄스였다. 치과의사라는 직업도 ‘타협의 산물’이라고 했다. “체육은 못하지만 춤을 추면 그렇게 즐거웠거든요. 그러나 중학교 때 장래를 고민한 결과 그걸로는 밥 먹고 살기가 힘들다는 걸 알고 치과의사로 방향을 튼 거죠.”폴댄스는 고난도 운동이기 때문에 몸이 다치는 경우도 많다. 오른쪽은 굳은살이 박힌 모습/오현진씨 인스타그램10년 넘게 개업의를 하면서 취미 수준으로 댄스를 즐겼다. 2011년 처음 접한 폴댄스는 오씨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이거구나 싶었습니다. ‘마약 같다’고 하면 정확히 이해가 될 것 같아요. 굉장히 어려웠지만 성취감은 다른 것과 비교할 수가 없었습니다. 올인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2013년 치과의사로 일하며 모은 돈으로 학원을 차렸다.  한동안 학원과 병원을 병행했던 오씨는 병원을 그만두고 2년가량 아예 폴댄스 학원에 전념했다. 믿을 구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폴댄스 학원은 당장 적자였지만 당시 번역가로서 어느 정도 반열에 올랐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입을 벌충할 수 있었다. 허리띠를 졸라매 지출을 줄였다. “처음에 병원을 그만둘 용기는 없었어요. 그러나 몸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육아도 해야하니까요. 치과의사야 잠깐 쉬더라도 나중에 다시 할 수 있으니까요.” 주변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고 심지어 ‘의료인의 품위를 손상시킨다’는 따가운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오씨는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폴댄스는 노출이 심하다는 부정적 인식이 있습니다. 피부 마찰력을 이용하는 운동 특성상 안전상의 문제 때문에 의상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잘 모르시는거죠. 좀더 대중화가 되면 그런 인식도 개선되리라 생각합니다."왼쪽은 오현진씨가 펴낸 폴댄스 교본. 오른쪽은 바디빌딩 대회에 나갔을 당시 모습/본인 제공, 본인 인스타그램폴댄서에 가장 큰 무게추를 두었던 기간은 머릿속으로 꿈만 꾸던 것들을 실현한 기간이었다. 그야말로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봤다. 우리나라 최초의 폴댄스 교본 ‘오현진의 폴댄스 피트니스(2016년)’를 펴냈다. “이쪽 업계는 체계없이 가르치는 경우가 많았어요. 용어도 통일돼 있지 않았습니다. ‘스포츠’라고 할 정도가 되려면 이런 혼선을 정리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책을 펴내기까지 해외 자료까지 찾아가며 2년 정도 걸렸다.학원이 안정세에 접어들자 다시 치과계에도 컴백했다. 다만 하루종일 일하는 업무가 아닌 한 병원의 ‘출장 검진의’로 활동하고 있다. 기업을 돌아다니며 검진을 하는 일이다. “저로서는 치과의사도 하려면 이런 식으로 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 가지 방법을 검토했는데 이게 최선이었습니다. 스케줄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으니까요.” ◇취미를 직업으로 삼고 싶은 이들에게  오씨는 폴댄스에 대해 ‘무한 예찬론’을 폈다. “여러 가지를 해봤는데 폴댄스만큼 몸의 변화가 눈에 보이는게 없었습니다. 전신 운동이니까요. 재미있는데다 운동효과까지 있으니 1석2조인 셈입니다. 먹고 싶은 것을 제대로 먹으면서 몸무게도 유지되는 운동입니다.” 고난도 동작을 성공했을 때, 자신이 스스로 고안한 동작을 실전에 응용했을 때의 쾌감도 높다고 한다. “똑 같은 것을 반복하는 다른 운동과는 차원이 다릅니다.”직접 폴댄스를 가르쳤던 가수 가희(왼쪽 사진의 왼쪽)와 트레이너 양정원(오른쪽 사진의 왼쪽)씨와 함께 찍은 모습/오현진씨 인스타그램오씨는 “꿈을 위해 20~30대는 치열하게 살았다”며 “앞으로의 10년은 현재 상태(3개의 직업)을 유지하면서 살 것”이라고 했다. “새삼 육아의 소중함을 점점 더 크게 느낍니다. 앞으로는 엄마의 역할이 가장 중요할 것 같아요. 그게 1번이에요. 직업간 균형을 맞추는 건 이제 어느 정도 유지가 되는 수준이니까요.” 마지막으로 오씨는 자신의 인생을 토대로 취미를 직업으로 삼고 싶은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남겼다.  ①메인잡을 완전히 버리지는 말라  취미를 돈벌이로 연결시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나도 그랬다. 원래 직업이 있다면 완전히 버리지는 말라.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취미가 직업으로 안정되기까지 병행하는 것이 좋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는 점을 똑똑히 알아야한다.  ②목표가 섰다면 소신껏 밀어붙여라 전문직 특성상 치과계도 보수적인 곳이다. 심지어 “우리 아내가 저런 일(폴댄스)을 하면 다리를 부러뜨리겠다”는 사람도 봤다. 그러나 나는 폴댄스는 예술이자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신념이 중요하다. 또한 내가 아니더라도 직업을 바꾸려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응원을 많이 해주자.  ③취미가 일이 되면 싫어질 수도 있다  아무리 좋은 취미라고 해도 막상 직업이 되면 싫어질 수 있다. 어떤 직업도 순탄한 직업은 없기 때문이다. 폴댄스 학원을 운영하며 별의별 일을 다 겪었다. 스트레스가 없을 것이라는 환상을 깨야한다. 슬럼프에 빠지더라도 이 직업이면 내 삶이 정말 즐거울 것 같은지 한 번더 고민해봐야한다. 나는 폴댄스만 하면 힘든게 다 잊혀졌다.  글 CCBB 에디터 오유교시시비비랩
일본말이란 누명 쓰고 탄압 받는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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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ssul]“너 일본인이야? 왜 일본말을 써?”일본어 잔재로 오해받아 탄압받는 순 우리말 적잖아공기관이 순 우리말을 외래어로 혼동하기도도리어 근본 없는 어휘를 순 우리말로 떠받들기도 해 “너 일본인이야? 왜 일본말을 써?”  한 대기업 신입사원 최모(28)씨는 얼마 전 선배에게 ‘감사합니다’고 말했다가 혼쭐이 났다. 최씨의 선배는 “한국말도 똑바로 못하냐”며 “감사는 일본어 ‘칸샤시마스’(感謝します) 에서 온 말이니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쓰라”고 쏘아붙였다.  의도는 좋았을 지 모르지만, 틀린 지적이다.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감사’는 중국어에서도 쓰이고 있고, 비록 17세기 원본이 전하지는 않지만 우암 송시열 선생이 쓴 ‘계녀서’(誡女書)에도 등장한다”며 “과거 한 신문이 ‘감사’가 일본어에서 탄생한 말이라 잘못 알려 생긴 오해”라고 밝혔다. 애들끼리 놀다 보면, 살짝 이민족처럼 생긴 아이가 종종 엄마 아빠 외국인이라 놀림당하는 때가 있다. 전형적인 한국인과 좀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다. 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우리 말들이 있다. 멀쩡한 우리말이 일본어 찌꺼기로 몰리는 것이다. 특히 요즘같은 한글날 무렵에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이런 취급 받는 말을 몇 개 짚어 본다. ◇쏘지 마라 아군이다 지난 2015년 5월,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 연구팀과 대한민국 홍보 연합동아리 ‘생존경쟁’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서울·경기 지역 남녀 대학생 각 350명을 대상으로 ‘언어문화 개선을 위한 일본어 잔재 설문 조사’를 했다. 그 결과 ‘구라’(거짓말)가 가장 많이 쓰는 일본어 잔재 단어로 지목당했다. 전체 응답자의 57.9%인 405명이 택했다 한다.   하지만 사실 일본어에는 ‘구라’의 발음이나 뜻과 연관될 수 있는 단어가 없다. 굳이 찾자면 쿠라마스(くらます·속이다) 정도지만, '구라'와 어원이 연관있다는 뚜렷한 증거가 없다. 결정적으로, ‘구라’는 국립국어원이 편찬한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하는 단어다. 즉, 국가 공인 표준어다. 물론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종종 오류가 있다지만, 일단은 '구라'도 에누리(값 깎기)·야마리(얌통머리)·야코(콧대)·사타구니(가랑이)처럼 순 우리말임에도 뭔가 일본어 비슷한 발음 때문에 오해받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이 설문에서 386명이 택해 2위가 된 ‘애매하다’ 역시 실제로는 일본어에 뿌리박고 있는 단어가 아니다. 한자어 애매(曖昧)는 조선왕조실록에도 자주 나온다. 뜻 역시 현대어와 같이 ‘명확하지 않다’다. 예를 들면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45권에 ‘애매하여 판단하기 어렵다’(曖昧難辨)는 문구가 등장한다. 게다가 ‘애매’가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기록은 중국 후한 시대 사람 채옹(蔡邕)이 쓴 서적 ‘석회’(釋誨)다. 차라리 중국어 잔재 소리를 들으면 모를까, 일본어 잔재라고 지적 받을 근거는 없다.  ◇나랏밥 먹는다는 사람들이   심지어 공공기관이 우리 역사에서 유서 깊은 한자어를 난데없이 일본식이라 지목해 쓰지 않겠다 선언하는 일도 벌어진다. 지난 2015년 4월, 서울시는 광복 70년을 맞아 일본식 한자어 등 일제 잔재 행정용어 23개를 순화해 적용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 중 하나로 지목된 단어가 ‘식비’(食費)다. 그러나 이 단어 역시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6권에 등장해 ‘밥값’의 의미로 쓰인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일본어 잔재라 보기 어렵다는 의미다. 당시 서울시 관계자는 “‘식비’는 한국보다는 일본에서 훨씬 자주 쓰는 단어이기에 오해한 면이 있었다"며 "발표 후 식비는 일본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해 주시는 분들이 있었다”고 밝혔다. ◇살리라는 우리말은 안 살리고세종문화회관 지하 식당가 '광화문 아띠' 간판./조선DB반대로, 공공기관에서 멀쩡한 우리말은 죽이고 어디서 근본 없는 말을 끌어다 순 우리말이라고 띄우는 해괴망측한 일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과거 서울시는 도리어 가짜 순 우리말인 ‘아띠’를 “친구의 순 우리말”이라며 세종문화회관 지하 식당가에 ‘광화문 아띠’라는 이름을 붙였다. 2011년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현대사전뿐 아니라 고어사전, 어원사전, 우리말큰사전 옛말편 등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단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세종문화 회관 지하 식당가엔 아띠란 이름이 붙은 다음이었다. 진짜 순 우리말인 ‘벗’이 '아띠'란 근본 모를 단어에게 자리를 뺏긴 셈이다.쇄빙선 '아라온호'./조선DB한국 최초 쇄빙 연구선 ‘아라온호’도 비슷한 예다. ‘아라’가 바다의 옛말이라며 배이름을 이렇게 지었지만, 사실 아라에 ‘아래’ 뜻은 있어도 ‘바다’ 의미는 없다. 바다의 순 우리말은 바다다. 당시 한국해양연구원은 논란이 일자 “시민 공모를 통해 뽑은 이름인데 우리도 순 우리 말이 아닌 것을 몰랐다”고 해명했다. 선정 당시에도 특별한 검증 절차는 달리 없었다고 한다.글 CCBB 에디터 폴리시시비비랩
“옆에 스벅 있어도 두렵지 않다” 요즘 난리난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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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3천병 만들어도 없어서 못파는 밀크티…'카페 진정성' 김정온 대표취향저격 밀크티로 대박 낸 '카페, 진정성' “스타벅스, 폴바셋 옆에 가게를 내도 두렵지 않습니다.”‘카페, 진정성’(이하 진정성)은 최근 가장 많이 사랑 받는 카페 중 하나다. 2016년 4월 경기도 김포에 처음 문을 열었다. 당시 일하는 사람은 김정온(33) 대표 한 명 뿐이었다. 금세 자리를 잡으면서 1년여 만에 점포는 4개가 됐다. 현재 직원 수는 32명이다. 월 평균 매출은 3억~4억원에 달한다. 가게 홍보에 한 푼도 쓰지 않고 일궈낸 성과다. 입소문과 소셜미디어만으로 급성장했다. “양질의 재료로 부끄럽지 않게 커피와 차를 만듭니다. 대형 프랜차이즈와 같은 상권에서 경쟁해도 지지 않을 자신 있습니다.”김정온 대표(왼쪽)와 '카페, 진정성'의 밀크티 병들◇일등공신은 ‘밀크티’ 매출의 상당 부분은 밀크티에서 나온다. 500ml 용량의 ‘로얄 밀크티’ 한 병 가격은 7000원. 하루 3000병을 만들 수 있다. 비싼 편이지만 없어서 못 판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주요 소셜미디어에는 진정성 밀크티 관련 게시물이 수천~수만 개씩 있다. 창업 초기에는 카페 옆 제조시설에서 8명의 직원들이 하루 1000병을 만들었다. 매일 조기 품절 사태가 벌어졌다. 카페를 8시간만 열면서 밀크티 제조에 집중했지만, 판매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수소문 끝에 2017년 초 대량 생산이 가능한 공장을 섭외했다. 손으로 만든 밀크티와 같은 맛을 유지하기 위해 3개월간 수 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대량 생산에 맞는 우유와 설탕, 찻잎 등의 비율, 보관 온도, 급속 냉침법 등을 다시 만들어야 했어요.” 밀크티는 보통 우유를 끓여 홍차 티백을 넣고 우려내거나 밀크티용 분말을 넣어서 만든다. 진정성은 찻잎을 차가운 우유에 넣고 우려낸다. 자르지 않은 찻잎부터 가루에 가까운 찻잎까지 크기는 다양하다. 맛을 단조롭게 하지 않고, 깊고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다. 홍차는 찻잎 크기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데, 잘게 분쇄할수록 떫은 맛을 낸다. 찻잎과 비정제 설탕을 넣은 밀크티는 적정 온도를 유지하며 계속 저어준다. 이후 찻잎을 걸러내고, 냉장 보관하며 발효시키는 과정을 거친다. 현재는 제조 과정이 전부 시스템화 돼 있다. 병에 담긴 밀크티가 나오기까지 정확히 24시간 걸린다. 밀크티 외에는 밀크쉐이크, 바닐라빈라떼, 티라미슈 등이 인기 메뉴들이다.'카페, 진정성' 매장에 줄 선 사람들◇첫 창업 실패…신념 꺾지 않아  김 대표도 실패를 맛본 적이 있다. 2015년 4월 서울 화곡동에 9000만원 들여 카페를 차렸다가 1년도 안돼서 문을 닫았다. 대학 시절, 바리스타 자격증을 딸 정도로 커피에 관심이 많았다. 군 제대 무렵 카페를 연 어머니 가게에서도 틈틈이 일했다. 대학 졸업 후, 1년 정도 회사를 다니다 카페를 열고 싶어서 2012년 퇴사했다. 어머니 일을 도우며 꼼꼼히 창업 준비를 했다. 하지만 카페를 열고, 한 달 후 옆 건물에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섰다. 할인 행사 등 대대적인 프로모션이 이뤄졌다. 월 매출 5000만원은 돼야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1000만~2000만원을 겨우 벌 만큼 어려웠다. 2016년 초 폐업했다. “단골 손님은 꽤 됐어요. 커피나 차를 저렴하고 빠르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시럽과 분말은 쓰지 않았거든요. 메뉴 이름대로 재료를 넣었어요. 예를 들어 카라멜 마키아또라 하면, 공장에서 만든 카라멜 시럽을 펌프질 해서 넣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카라멜을 제조해서 넣는 식으로요. 밀크티를 비롯해 진정성 메뉴 대부분이 당시 판매했던 것들입니다.”가게를 접고, 더는 장사를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단골들이 힘을 실어줬다. “충분히 맛있으니 다른 곳에서 해보라”는 응원이었다. 고민 끝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카페를 열기로 했다. 권리금 없고 월세가 저렴한 곳을 찾다 보니 김포 신도시 외곽의 장기동에 자리를 잡았다.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가게 앞을 지나가는 사람이 하루 서너 명 정도였다. 정직하게 좋은 재료로 정성껏 차와 커피를 만든다는 신념으로 카페 이름은 ‘진정성’이라고 지었다.경기도 김포에 있는 '카페, 진정성' 본점 전경◇해외 진출도 계획중 개점 첫 날, 손님은 한 팀이었다. 둘째 날은 세 팀이 왔다. 초조했다. 하지만 부끄럽지 않은 차와 음료를 만든다는 자부심 하나로 불안감을 이겨냈다. 반응은 금세 나타났다. 맛 좋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사람이 몰려들었다. 혼자 장사하다가 보름 만에 직원 2명을 뽑았다. 직원 수는 빠르게 늘었다. 한 달 지나자 일 매출이 70만원, 100만원, 150만원 식으로 뛰기 시작했다. 테이블 15개에 최대 4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카페였다. 매일 만석이었다. 2~3개월 지나면서부터는 ‘초대박’ 행진을 벌였다. 주말 하루 매출이 800만~1000만원을 기록했고 600~700팀이 방문했다. 2017년 6월 김포 본점을 ‘하성면’으로 옮긴 것도 사람이 너무 많이 와서 주변 이웃들에게 방해가 됐기 때문이다. 주말이면 주변 도로가 마비되고, 경찰까지 나와서 교통정리를 해야 했다. 카페 건물에는 20대만 주차할 수 있어서 근처에 불법 주차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김포 본점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진정성은 2016년 12월 서울 도곡점, 2017년 1월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6월 여의도점을 열었다. 모두 직영점이다. 매장 직원 32명 중 28명이 정규직이다. 진정성은 중국이나 동남아, 일본 등 해외로의 밀크티 판매도 구상 중이다. 국내 매장은 여건이 되는대로 조금씩 늘려갈 생각이다. 품질과 서비스 관리를 위해 앞으로도 직영점 형태로만 운영할 계획이다. “진정성은 카페인데 밀크티 때문에 주종목인 커피가 묻히는 것 같은 느낌이어서 고민입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커피도 정직하고 좋은 맛을 내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어요. 진정성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차를 우려내고, 커피를 내리고 싶습니다.”글 CCBB 에디터 김지섭시시비비랩
승무원 때 당한 두번의 추돌·충돌…‘천직’ 찾게 해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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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초반에 네 번째 직업 갖게 된 이은형氏30대 초반에 네 번째 직업 갖게 된 이은형氏필라테스 강사는 이은형(32)씨의 네 번째 직업이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여러 직업을 거쳤다. 대한항공 승무원으로 사회에 첫 발을 들였다. 이후 와인회사 브랜드 매니저, 승무원·스피치 강사로 일했다. ‘좋아하는 일이 아니면 직업으로 삼지 않겠다’는 고집이 있었다. 수입이 줄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용기를 낸 끝에 천직(天職)을 찾았다.필라테스 강사 이은형씨현재 그는 필라테스 강사로 좋은 평가를 받으며, 6월 개인 스튜디오를 열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만 9만4000명에 달하는 인기 강사다. 잡스엔(jobsN)이 이씨를 만나 다양한 직업을 거치게 된 사연을 들었다.  ◇두 번의 교통사고가 바꾼 삶대학 시절, 쇼호스트를 준비한 이씨는 번번이 최종 문턱에서 고배를 마셨다. 고심 끝에 쇼호스트 준비를 접었다. 아쉬움이 컸지만 패배감에 젖어있을 수만은 없었다. 취업할 곳을 알아보던 중 항공사 승무원이 눈에 들어왔다. 늘 바른 자세를 유지하고, 미소를 짓고, 정성을 다해 사람을 대한다. 쇼호스트와 닮은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2010년 8월 대한항공 승무원에 합격했다. 대체로 만족하며 일했다. 여러 나라를 다닐 수 있고, 급여도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두 번의 교통사고를 당했다. 2011년 4월 4중 추돌, 2012년 5월 조수석에 타고 있다가 정면충돌사고를 당했다. “목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죠. 허리 통증도 심했고요. 두 번의 사고로 총 두 달 정도 병가를 냈어요.”승무원 시절의 이은형씨강한 체력이 필수인 업무 특성상, 복직 후 어려움을 겪었다. 대상포진에 걸리기도 했다. 퇴사를 결심했다. 입사 2년 만이었다. 재취업할 곳을 알아볼 때 기준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다. 승무원으로 일하면서 관심이 생긴 와인을 공부해보기로 했다. 와인나라 아카데미에서 소믈리에 과정을 수료하고, 2013년 2월 와인회사 ‘아영FBC’에 브랜드 매니저로 들어갔다. 와인 브랜드를 맡아서 홍보, 마케팅, 판매 등을 기획,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와인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급여는 줄었지만 즐겁게 일했다. 하지만 또 건강이 발목을 잡았다. “어느 날 외부 미팅을 마치고 퇴근하는데 갑자기 다리에 전기 콘센트를 꽂은 것처럼 감전되는 느낌이 들면서 힘이 풀렸어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죠. 허리디스크 진단을 받았어요. 오래전부터 진행돼 왔다고 하더라고요. 교통사고도 나쁜 영향을 줬고요.” 한 자리에 오래 앉아있거나 무리하지 말고,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처방을 받았다.필라테스 강사 이은형씨◇필라테스 강사라는 천직을 찾기까지와인회사를 6개월 만에 퇴사했다. 이후 쇼호스트 준비 경험과 승무원 경력을 살려 승무원 아카데미 등에서 강사로 일했다. 강사를 하며 몸을 고치기 위해 평소 가끔씩 하던 필라테스를 열심히 했다. 물리치료도 병행했다. 필라테스로 몸이 조금씩 좋아지자, 이씨는 또 한 번의 결단을 내렸다. 필라테스 전문가가 되기로 한 것. 캐나다 공인 ‘스탓(STOTT) 필라테스 강사 자격증’ 코스를 밟았다. 돈을 벌면서 준비하느라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자격증 취득에만 1000만원 넘게 들었다. “일하며 번 돈으로 자격증 취득 비용을 충당했어요. 값싸고, 비교적 쉽게 딸 수 있는 기관에서 발급하는 자격증 코스도 있었지만 제대로 배우고 싶었어요.” 2014년 9월 필라테스 강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스튜디오에 들어가 강사로 2년 넘게 일했다. 올해 2월 결혼하고, 6월 남편과 서울 강남구청 근처에 필라테스 스튜디오를 차렸다. 남편이 운영을, 이씨가 교육을 맡는다. 이씨는 “짧은 기간 여러 가지 일을 했지만, 헛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말한다. 거쳐간 직업들이 지금 하는 일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승무원으로 일하며 몸에 밴 서비스 정신, 와인회사 브랜드 매니저로 일하며 경험한 마케팅 노하우와 영업, 강사로 활동하며 쌓은 교수법 등을 모두 활용하고 있다.필라테스 강사 이은형씨“저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그 앞에서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지금 하는 일이 적성에 잘 맞아요. 저로 인해 건강을 회복하는 분들을 보면 뿌듯합니다. 요즘은 평생 직장, 평생 직업은 찾기 힘든 것 같아요. 인생의 변화나 굴곡에 현명하게 대처하면서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해야 할 것 같아요. 하나에 얽매이지 않는 제 삶을 사랑합니다.” 글 CCBB 에디터 김지섭시시비비랩
‘원조 군통령’으로 불리던 LPG 멤버…요즘 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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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쇼핑 쇼핑호스트 한수연 인터뷰K쇼핑 쇼핑호스트 한수연 인터뷰  ‘평생 직업’ 꿈꾸며 쇼핑호스트 도전  '군통령'이란 별명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보통 걸그룹이나 여성 가수들이다. 2000년대 후반 군통령 리스트를 만들라면 빠지지 않는 걸그룹이 있다. 바로 국내 최초 트로트 걸그룹 LPG다. LPG는 1기 때는 ‘늘씬한 미녀(Long Pretty Girls)’, 2기부터는 '사랑스러운 미녀(Lovely Pretty Girls)'라는 의미였다. LPG가 부른 많은 곡 중에 히트곡으로 꼽히는 ‘사랑의 초인종’을 불렀던 멤버가 한수연(33·LPG 2기 활동명 수연)이다. LPG 탈퇴 이후에는 뮤지컬배우와 모델로 활동했다. 그 한수연이 이제 전혀 다른 무대에 오른다. 그녀는 2017년 KT그룹의 데이터쇼핑(T커머스) 계열사인 K쇼핑의 국민 오디션 공채를 통과해 입사했다. 현직 쇼핑호스트다. 프리랜서 신분으로 회당 출연료를 받는다. 2018년 2월 서울 목동 K쇼핑 스튜디오에서 한수연을 만났다.한수연 쇼핑호스트./K쇼핑◇15세 때 길거리 캐스팅, 모델, 가수, 뮤지컬 배우 활동도지금도 한수연의 이름 석자 뒤에는 ‘LPG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본인도 뗄 생각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가장 오래 활동한 것은 모델이다. 중학교 3학년인 2000년 한수연은 명동 거리에서 ‘길거리캐스팅’으로 데뷔했다. 모델 에이전시를 통해 국내외 잡지와 광고 모델로 활동했다.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인 2008년에는 SBS 슈퍼모델 선발대회에도 나갔다.    한씨는 “의류 카탈로그 모델일이 많았다”면서 “하루에 몇십 벌씩 옷을 갈아입었다”고 말했다. 이 때의 경험이 지금 쇼핑호스트로 ‘4분할 방송’을 할 때 도움이 된다고 한다. 화면을 위 아래 반씩 나눠, 4가지 ‘착용샷’을 보여주는 홈쇼핑 기법이다.    그녀는 2009~2011년까지 LPG로 활동했다. “행사의 끝없는 연속이었어요." 걸그룹은 젊은층에게 인기다. 트로트는 나이 지긋한 분들까지 좋아한다. LPG는 트로트 걸그룹으로 모든 연령층을 공략했다. 하루에 5~6개씩 행사가 있어, 전국을 돌았다. “서울-대전-대구-부산 찍고 서울 다시 온다고들 하잖아요. 정말로 그랬어요.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에 1000㎞를 달린적도 있었죠.” 그렇게 스타렉스를 타고 전국을 누볐다. LPG는 당시 국군 장병들의 사랑을 담뿍 받았다. 공연을 가면 군부대가 떠내려갈 정도로 환호성이 울려퍼졌다. "많이 사랑해 주셨죠. 지금도 군대에서 봤다는 분이 많습니다. K쇼핑 제작 스태프 중 한 분도 '군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이 수연씨 공연이었다'고 말했어요."2011년 3월 디지털 싱글 ‘앵그리’를 끝으로 한씨는 LPG에서 탈퇴했다. 이후에는 뮤지컬 배우로 활약했다. ‘김종욱 찾기’ ‘정글라이프’ ‘총각네 야채가게’ 등의 작품에 출연했다. 그 중에서 애착이 가장 가는 역할은 극중 톱스타 연예인으로 나오는 2인 뮤지컬 ‘트로니시스’.실제 방송에서 촬영 중인 한수연씨의 모습./한수연 인스타그램 캡처뮤지컬 ‘정글라이프’도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창작 뮤지컬로 회사안에서 벌어지는 ‘정글 같은 삶’이 주제였다. 사실 정글라이프 덕분에 한수연은 지금의 직업을 얻었다. 뮤지컬에서 한수연과 함께 호흡을 맞춘 ‘스페이스A’ 출신의 여성 가수 이시유(34)가 그녀를 쇼핑호스트 업계로 이끌었다. 이시유는 2016년 1기 K쇼핑 국민 쇼핑호스트 오디션에 합격했다. 한씨는 '쇼핑호스트를 평생직업으로 삼겠다'는 이씨 이야기를 듣고 쇼핑방송에 관심을 가졌다. 또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이씨가 한씨의 멘토 역할을 했다. 한씨는 “(이)시유 언니의 홈쇼핑 방송을 모니터링하면서 기본기를 익혔다”고 말했다.    ◇쇼핑호스트 면접서 담당PD “핏이 좋아” 이시유와 마찬가지로 한수연 역시 ‘평생 직업’을 꿈꾸며 쇼핑호스트에 도전했다. “30살이 넘자 뮤지컬에서 맡을 수 있는 배역이 줄어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면 쇼핑호스트는 체력 관리를 잘하면 꾸준히 방송을 해 매출을 낼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한수연 쇼핑호스트./K쇼핑 제공K쇼핑은 매년 한 차례씩 대국민 공개 오디션을 진행한다. 주부는 물론 어린 아이나 노인까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오디션이다. 1기 국민오디션에서는 지원자 480명 중 18명을 선발했다. 기상캐스터, 개그맨, 약사, IT 엔지니어 등 다양한 출신의 30~40대가 오디션을 통과해 K쇼핑 호스트로 일한다.  K쇼핑은 앞으로도 쇼핑호스트를 지속적으로 발굴할 계획이다.   한씨가 응시한 2기 국민오디션에는 825명이 몰렸다. 현직 기자를 비롯해 아이돌 그룹 출신 배우, 성우 등도 참여했다. 최종합격자는 5명. 전형은 1차 면접(카메라 테스트), 2차 면접(지원자가 준비한 상품소개 및 당일 즉석 미션), 3차 면접(임원면접) 순이었다. 한씨는 "2차 면접이 가장 까다로웠다"고 했다. 그녀는 2차 면접에 청바지를 들고 나갔다. 모델 출신으로서 ‘핏(fitㆍ옷 맵시)’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청바지를 즐겨 입었고, 모델 업계에서도 ‘청바지가 잘 어울린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전략이 통했다. 2차 면접장에서 심사위원을 맡았던 PD가 “저 친구는 핏이 좋으니 청바지 쇼핑 방송을 맡기면 좋겠다"고 했다. 실제 지금 한씨의 주된 방송 아이템은 청바지다.한수연 쇼핑호스트./한수연 인스타그램 캡처◇“야구선수 아내로 내조...내 이름 딴 브랜드 꿈” 한수연은 지난 2017년 말 한화이글스 투수 김혁민(31)과 결혼해 품절녀 대열에 올랐다. 그녀는 “요새는 남편이 스프링캠프에 가서 혼자 지낸다”고 말했다. 남편 김씨는 일본 오키나와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아내로서 한씨는 내조에도 열심이다. 1주에 4~5끼는 한번에 10인분 가량 밥상을 차린다. “남편이 집에서 동료 선수들과 모임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무조건 고기와 생선을 내가야 하죠. 워낙 대식가들이라 밥공기 말고 국그룻에 밥을 담아요.” 한때 군통령이 이제 직업인이자 한 가정의 안주인이다.  글 CCBB 에디터 밥값시시비비랩
전 육해공 훈련 다 익힌 청와대 첫 여성 경호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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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여성 청와대 경호원이 10년 만에 찾은 새 직업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후진타오(胡錦濤) 전 중국 국가 주석,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전직 청와대 경호원 이수련(37)씨가 경호했던 국가 원수들이다. 그는 2004년 청와대 첫 여성 경호원으로 뽑혀 10년간 근무했다.   안정적이면서도 전문성을 인정받는 청와대 경호원. 아랍에미리트 왕세자를 경호할 때 수행원에게 청혼을 받는 등 재밌는 에피소드도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씨는 2013년 사표를 던졌다. “예쁜 주연보다 감초 같은 조연이 되고 싶다”면서 연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때 나이는 32살. 배우를 하기엔 늦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야 했다.이씨는 여러 드라마에 조연으로 출연했다. 중국판 유튜브 ‘유쿠’에서 방영된 드라마 ‘최고의 커플(最佳情侶)’을 비롯, SBS ‘미녀 공심이’, ‘다시 만난 세계’, KBS ‘다 잘될 거야’, MBC ‘당신은 너무합니다’ 등에 출연했다. MBC에브리원의 2부작 드라마 ‘단짠 오피스’에도 나온다.  jobsN은 이씨를 만나 청와대 경호원 출신 배우의 삶을 들어봤다. 배우 이수련씨 / 이수련씨 제공◇집안 사정 때문에 ‘알바천국’ 삶…2004년 경호원 입문처음부터 경호원을 꿈꾼 것은 아니었다. 어릴 적 집안이 넉넉하지 않았던 이씨는 사관학교 진학을 꿈꿨다. 등록금이 면제되는 혜택이 컸다. 이를 위해 태권도 5단도 취득했다. 하지만 정작 대학은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로 진학했다. 이후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영어 과외는 물론이고, 패션잡지 모델, 방송국 리포터 등을 섭렵했다. 방송국 프로듀서를 꿈꿀 때는, 관련 학원을 다니려고 청소와 수업 준비를 맡는 ‘근로장학생’을 하면서 무료로 수업을 듣기도 했단다. - 청와대 경호원이 된 계기는. “2004년 신문에 난 공고문에서 청와대 경호실이 첫 여자 경호원을 뽑는다는 소식을 접했다. 첫 여자 경호원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고,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라 지원하고 싶었다.”- 준비가 어렵지는 않았나.“어릴 적 사관학교를 꿈꿔 태권도 5단이다. 체력적인 면은 자신이 있었다. 필기시험 역시 언론사 입사 시험과 내용이 많이 겹쳤다. 그래서 비교적 수월하게 합격했다.”- 경호원 생활을 하면서 힘들었던 점은.“청와대 경호실(현재는 경호처)은 군대와 분위기가 비슷하다. 적응이 쉽지는 않았다. 방송국에서 일할 때처럼 교관님께 애교를 부렸다가 된통 혼이 나기도 했다. 대테러 훈련 같은 것도 정말 힘들었다. 사회에서 운동하던 것과는 운동량 자체가 달랐다. UDU(해군 첩보대)·육군 공수부대·해병대 등에서 훈련을 받는데 재밌었지만 정말 힘들었다.”- 누구를 경호했나.“당연히 우리나라 국가 원수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을 경호했다. 그리고 외빈 근접 경호도 맡았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 주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등이 있다. 한 번은 아랍 국가에서 온 왕자를 경호한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어떤 수행원이 내게 청혼한 적도 있다. 두 번째 부인이 돼 달라더라.(웃음)”후진타오 주석과 청와대 경호원 시절 이수련씨 / tvN '현장토크쇼 TAXI' 캡처◇“꿈 없이 산다” 생각에 사표…SBS ‘피노키오’에서 첫 역할- 청와대 경호원을 포기하고 연기에 입문한 이유는.“청와대에서 10년쯤 근무한 2013년 사표를 냈다. 사실 경호원의 삶은 안정적이고, 일도 몸에 익으면 편하다. 그런데 10년이 지나도 나는 청와대에서 같은 업무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꿈은 어디 갔나 싶더라.""그때 생각난 직업이 배우였다. 평소에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저라면 어떻게 연기했을지 생각하는 편이다. 라미란씨나 곽도원씨, 조진웅씨처럼 인물을 생생하게 연기하는 배우가 연기자가 되고 싶었다. 바로 사표를 내고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안정적인 삶을 포기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청와대 경호원은 특정직 7급 공무원으로, 당시 10년 차 월급은 본봉만 250만원이었다. 위험수당과 시간 외 수당은 별도다. 배우를 하면서 소득은 줄었지만 나 자신에게 투자할 시간이 늘어 좋았다. 학창시절 중고생들이 대학생활을 꿈꾸면서 힘든 대입 준비를 이겨내듯, 나도 꿈이 있으니 고난을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디션 준비는 어떻게 했나.“연기학원에 다니고 영화감독·교수·선배 배우 등 연기 전문가들을 따라다녔다. 나이가 많거나 못생겼다는 이유로 오디션에 떨어질 수는 있어도, 연기를 못한다는 이야기만은 듣고 싶지 않았다. 하루 종일 영화를 보면서 대사를 외우고, 친구를 만나면 이야기를 하다가도 뜬금없이 외운 대사를 써먹기도 했다. 1년쯤 연습하고 나니, 친구들도 내가 연기를 하는지 실제로 대화를 거는지 구별을 못하더라. 그때 SBS 드라마 ‘피노키오’에서 단역을 받았다.”◇“경호원 오래 해 감정 숨기는 습관을 고치기가 어려웠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예쁜 주연보다는 감초 같은 조연.”- 예를 들면. “영화 ‘공공의적’ 시리즈에서 유해진씨(용만 분)의 대사 ‘에, 이것은 장검인디’ 같은 것. 아니면 ‘달마야 놀자’나 ‘신라의 달밤’같은 영화에 나온 조폭 대사도 연습했다.”배우 이수련씨 / 이수련씨 제공- 여자 캐릭터는 준비를 안 했나.“내게 영화 속 매력적인 캐릭터는 대부분 남자였다. 내 또래(30대 후반) 여배우가 할 수 있는 인상적인 역할도 많지 않다. 주연이 아닌 조연이나 단역으로도 주목받을 수 있는 여성 캐릭터가 많아지면 좋겠다. 언젠가 원하는 역을 맡을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한다.”- 경호원은 철저히 냉정한 직업이고, 배우는 감정을 표현하는 직업이다.“그 변화가 힘들었다. 연기에 처음 입문한 이후, 인형이 말하는 것처럼 연기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눈물을 흘리지 않고, 자신의 표정을 감춰야 하는 경호원 습관을 버리기가 어려웠다. 이 때문에 감정에 따라 자연스럽게 표정을 짓는 것부터 훈련했다.연습을 하다 보니 세상을 보는 관점도 좀 달라진다. 이전에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사람을 보면 수상하다는 생각부터 했는데, 지금은 왜 손을 넣었을지 생각해 본다.”이씨는 미국 배우 메릴 스트립(Meryl Streep·69)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도 그 나이에 맞게 강렬한 캐릭터를 소화해내는 배우거든요. 그렇게 평생 연기하고 싶어요.”그는 많은 대학생들이 ‘환경’을 이유로 꿈을 포기하려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고작 20대 중후반의 나이에도, 무언가를 도전하기에 늦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어떤 기준에서 늦었다는 건지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제가 배우에 도전할 때도 배우를 하기엔 예쁜 얼굴이 아니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어떤 기준으로 예쁘지 않다는 건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모호한 기준을 신경 쓰느라 꿈을 포기하는 건 아쉽잖아요.”글 CCBB 에디터 주동일시시비비랩
자녀에게 권하고 싶은 직업 3위 장학사, 2위 판사…1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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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아버지처럼 살지 말아라.""너는 아버지처럼 살지 말아라."자신의 직업을 부끄러워하는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하는 말로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표현입니다. 반대로 자기 직업을 자랑스러워하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다면 자식들에게도 자신의 길을 따라가라고 권유할 것입니다.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 직업을 자녀에게 권할까요?자녀에게 권하고 싶은 직업 1위는 초등학교 교장(교감) 선생님입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18년 1월 직업만족도 순위 정보를 포함한 ‘2016 한국의 직업정보’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서울 및 전국 6대 광역시와 인접 산업도시를 중심으로 639개 직업, 재직자 1만 9827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만든 자료를 분석했습니다. 자녀에게 권유하고 싶은 직업은 주로 사회적 평판이 높은 직업이었습니다.자녀에게 권하고 싶은 직업 순위 /자료 한국고용정보원◇교육자, 자녀에게 자기 직업 권유 상위권 독차지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자녀에게 권하고 싶은 직업 순위 1위를 차지했습니다. 초등학교 교장이나 교감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초등학교 교사가 돼야 합니다. 교사에서 교감으로 승진 후 다시 교장으로 승진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죠. 교장은 학교와 교육에 대한 상식과 지식이 많아야 하고, 교사와 학생의 관리 감독에 능해야 합니다. 공모형 교장은 교육철학을 담은 학교경영계획서를 제출해 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교장의 임기는 4년이고 1회에 한해 중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장이 되면 정년에 임박할 즈음이기 때문에 8년 중임기를 다 채우는 경우는 적다고 하네요.교장선생님이 자녀에게 권하고 싶은 직업 1위를 차지했다. /사진 조선DB장학사(3위), 대학 총장∙학장(5위), 교수(6위)도 자녀에게 권하는 직업 톱10에 들었습니다. 교육자가 자녀에게 권하고 싶은 직업 순위도 상위권을 휩쓸었습니다.◇사법시험 없어진 판사, 그래도 2위판사가 자녀에게 권하고 싶은 직업 2위입니다. 과거 판사가 되기 위해선 사법시험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해야 했습니다.판사가 자녀에게 권하고 싶은 직업 2위다. /사진 드라마 미스함무라비 화면 캡처이후 사법시험 합격생이 교육을 받는 사법연수원에서도 높은 성적을 거둬야 판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법시험이 고시 낭인을 양산한다는 지적과 함께 사회경험이 없이 고시공부만 한 사람이 법관이 돼서 재판을 한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사법시험을 폐지하고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만들었습니다. 로스쿨 졸업생이 변호사 시험을 봐서 변호사 자격을 얻은 후에 다시 재판연구원 과정을 거쳐야 판사 자격을 얻을 수 있습니다. 판사가 되기는 힘들지만 자녀에게 권하고 싶은 이유는 직업적인 보람도 크고, 사회적인 평가도 좋기 때문이겠죠.◇그래도 공무원이 최고정부행정 관리자와 행정부 고위공무원이 자녀에게 권하고 싶은 직업 7위와 10위를 차지했습니다. 우리가 보통 공무원이라고 부르는 직업이죠.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공무원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5급 공무원 시험을 특별히 행정고시라고도 부릅니다. 고위공무원은 3급 이상 공무원입니다.한의사와 세무사도 자녀에게 권하고 싶은 직업 톱10에 들었습니다. 한의사가 되려면 한의대나 한의학 전문대학원을 졸업한 후 국가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세무사가 되려면 세무사 자격시험을 통과하면 됩니다.종교인 중 자녀를 둘 수 있는 유일한 신분인 목사가 자녀에게 권유하고 싶은 직업 4위입니다. 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신학교를 졸업한 후 전도사 과정을 거쳐야 하죠. 물론 독실한 신앙심을 갖추는 것도 필수입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종교적인 신념 때문에 자녀에게 권유하고 싶은 직업이라고 응답한 듯합니다.글 CCBB 에디터 CBCB시시비비랩
서장훈·이상민과 연대 전성기 이끈 구본근, 요즘 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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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선수 생활 접고 선수들 뒷바라지에 매진하는 왕년의 농구 스타구본근 현대모비스 농구단 사무국 과장티켓영업부터 선수들 뒷바라지까지“사무직 어색하지만 농구판에 남아 행복”1997년 KBL 프로농구가 출범하기 전, 농구대잔치의 열기는 대단했다. 1990년대 농구대잔치에서 뛴 연세대와 고려대 농구부원들은 요즘 아이돌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서장훈, 이상민, 우지원, 문경은 등 당시 연세대 농구부 선수들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웬만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화보도 나왔고 CF도 수차례 찍었다.구본근(43) 과장도 당시 연세대 농구부였다. 94학번인 그는 1년 선배인 서장훈의 백업 센터였다. 화려했다. 하지만 그는 일찍 선수 생활을 접었다. 농구팀 코치와 매니저를 거쳐 현재는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농구단 사무국에서 일한다. 벌써 사무직으로 근무한 지 8년. 티켓 판매부터 시즌 회원 관리, 전지훈련 관리, 연봉협상까지 농구단의 뒷바라지를 담당한다. “인생의 대부분을 농구만 하고 지내 아직도 컴퓨터 다루는 게 익숙지 않아요. PPT(파워포인트)도 어렵고, 독수리 타법입니다. 그래도 아직 농구판에 남아있어 행복합니다.”구본근 과장. /현대모비스 제공◇화려했던 연세대 농구부였지만 프로에서 밀려나그는 중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농구공을 들었다. 중학생 시절 벌써 키가 180㎝를 넘었다. 그는 서장훈의 뒤를 이을 센터로 주목받았다.-어떤 경기가 기억에 남나요.“1994~1995 시즌 삼성전자와의 경기가 기억에 남아요. 몸싸움도 심한 치열한 경기였죠. 생애 첫 덩크슛을 했고 19득점, 9리바운드를 했어요. 하지만 졌어요.”-그 시합을 마치고 호흡곤란으로 코트에서 쓰러졌죠.“게임을 잘하고도 졌다는 게 너무 화가 났어요. 라커룸에 돌아가려는데 갑자기 핑 도는 느낌을 받고 쓰러졌죠. 당시 신문에 신부전증이라고 나왔는데 그건 아니었어요. 원래 안으로 화를 삭이는 스타일인데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터진 거죠.”-당시 연대 농구부의 인기는 대단했죠.“CF도 여러 개 찍었고, 화보집도 찍었고, 책도 냈었죠. 전 대학교 2학년 때 올스타에 뽑혔고, 3학년 때는 22세 이하 대표팀에 뽑히기도 했습니다.”-1998년 프로에 진출한 후는 빛을 못봤죠.“신인 드래프트 전체 10순위로 대전 현대 다이냇에 입단했어요. 하지만 제 포지션에 외국인 선수가 버티고 있어 출전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대학 때 수술한 무릎도 좋지 않았죠. 4년차인 2002년 대학 은사인 최희암 감독이 찾아 모비스로 이적했습니다.”연세대 농구부 시절 구본근 과장. /구본근 과장 제공연세대 농구부 모습. 왼쪽 첫번째가 구본근 과장. /구본근 과장 제공◇역대 최연소 코치였다가 팀 매니저로 활동구 과장은 모비스에서 새로운 인생을 맞았다.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박승일 코치의 뒤를 이어 코치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이다. 그는 “어영부영 선수 생활을 마감하기보다 남들보다 빨리 다른 길을 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고 했다. 만 27세, KBL역대 최연소 코치가 됐다.-나이 어린 코치였는데 선수들이 잘 따르던가요.“저보다 선배 선수가 7명이나 있었습니다. 그때 최고참이던 오성식 선수가 선수들을 불러 놓고 코트 안에서는 무조건 코치님이라고 부르라고 했습니다. 정말 고마웠죠. 그런데 정작 성식이 형은 반말로 ‘구 코치’로 부르더라고요. 하하.”-1년 만에 코치를 그만두고 팀 매니저를 맡게 된 이유가 있나요.“사실 말이 코치지 선수를 가르치는 코치는 아니었어요. 백보드에 공을 튀겨주고 밤새 비디오테이프 돌려보며 전력분석 하는 게 일이었습니다. 최연소 코치라 주변에서 말도 많았어요. 감독님이 ‘일단 팀 매니저를 하면서 더 배우고 나중에 코치하자’고 말씀하셔서 두말없이 따랐습니다.”-매니저가 하는 일은 뭔가요.“농구단 살림을 맡는 것이에요. 선수들 먹는 것, 자는 것, 쉬는 것, 이동하는 것 등을 관리합니다. 7년 반을 매니저로 지냈습니다. 선수들 관리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그만두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사직서도 들고 다녔죠. 선수들 스케줄에 문제를 일으킨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구본근 과장이 현대모비스 농구단 코치로 활동하던 모습. /구본근 과장 제공◇사무직 되고 나서 가장 힘든 것 3가지-어쩌다가 농구단 사무국에 오게 된 건가요.“2009~2010년 시즌을 우승하고 회식 때였어요. 유재학 감독님이 계속 저에게 윙크하는 거에요. 왜 그러나 싶었죠. 알고 보니 감독님이 현대모비스 부회장에게 절 사무국에 넣어달라고 부탁했더라고요. 당시엔 정말 황당했고 화도 났죠. 감독님이 저에게 사무국 관련 이야기를 한 번도 한 적 없거든요. 제가 생각했던 미래가 아니어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결국 안정적인 게 낫겠다 싶어 2010년 7월 사무국으로 왔습니다.”-사무국에서 하는 일은 뭡니까.“맨 처음엔 티켓 영업과 예산, 유소년 팀 관리를 맡았어요. 티켓 관련 민원이 들어오며 무조건 직접 전화를 걸어 당사자와 통화했죠. 처음 사무국에 왔을 때는 연 총 관중수가 7만명이었는데 제가 14만명까지 늘려봤습니다. 시즌회원도 200명에서 500명으로 늘렸고요.”-무엇이 가장 힘들었나요.“처음 1년은 의자에 오래 앉아있는 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선수들은 운동 후 낮잠을 자는데 사무직은 낮잠을 못 자는 것도요. 매일 정장 입는 것도 익숙지 않았죠. 또 엑셀과 파워포인트를 다루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엑셀로 예산을 맞추다가 밤을 새기도 했어요. 지금도 명함 주고받는 게 어색해요.”현대모비스 농구단이 2014~2015년 시즌 우승을 차지할 때의 모습. 환호하는 농구단 우측 흰색 옷을 입은 사람이 구본근 과장이다. 그는 "우승 시 함께 환호하기 보다는 선수단을 살뜰히 챙기는 게 사무국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현대모비스 제공-선수 출신 사무국원이 많은가요.“제가 왔을 땐 모비스엔 선수 출신 사무국 인원이 없었습니다. 예전 선수 출신이 한 명 있었는데 사고를 많이 쳤더라고요. 그래서 부담이 컸죠. 제가 잘해야 제 후배들도 사무국에 올 가능성이 커지잖아요. 선수 출신은 선수들의 요구 사항을 이해하기가 더 쉽고 감독님과 의사소통도 잘 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연봉협상 등에서 선수 입장에 좀 더 마음이 가는 단점도 있어요. 선수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요. 구단이 제시한 연봉보다 더 받으려면 합당한 이유로 먼저 날 설득시켜라. 설득할 수 있으면 내가 대신 구단과 싸우겠다고요.”-잘 안 풀리는 경기를 보면 직접 뛰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나요.“선수단을 떠난 이후 우리 팀 경기는 일부러 안 봐요. 아쉬운 장면을 보면 계속 머리에 남아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성격이거든요. 지금은 울산 모비스 홈구장에 가서도 슛 한번 안 쏩니다. 농구공이 이제 크고 무겁더라고요. 하하.”-농구 선수들은 은퇴 후 무슨 일을 주로 하나요.“저야 사무국에서 안정적으로 일하고 있지만, 예전 난다긴다했던 애들은 지금 뭐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잘 풀리면 지도자를 하고, 프로 생활에서 돈을 좀 모았으면 사업이나 장사를 많이 하더라고요.”-앞으로 계획은 뭡니까.“양동근 선수가 은퇴 시점을 고려 중인데 좋은 모습으로 잘 마무리하게 돕는 게 첫 번째 목표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보고서 쓸 때 오타를 좀 줄이려고요(웃음).”구본근 과장. /현대모비스 제공글 CCBB 에디터 별걸다시시비비랩
‘복면가왕’에서 건반 연주하고 있는 이 사람, 알고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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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몬·괴짜가족·시티헌터…추억의 만화 주제곡을 부른 이 사람 본업은?복면가왕 건반 세션 전영호(45)씨디지몬·괴짜가족·시티헌터 등 만화 노래 불러 현재 편곡과 공연으로 음악활동 이어가2000년대 초 어린이들의 동심을 자극했던 애니메이션 디지몬 어드벤처의 주제가 ‘Butterfly’를 지금도 흥얼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유튜브에 올라온 관련 영상만 수백 개, 팬들이 따라 부르고 올린 곡도 수십 개다. 그중엔 조회수 100만이 넘는 영상도 있다. 애니메이션계의 명곡 ‘Butterfly’를 포함 다수 만화 주제가를 부른 전영호(45)씨를 만났다.키보디스트 전영호(45)/ jobsN- 유명 만화 주제가를 많이 불렀다.“디지몬·괴짜가족·신의괴도 잔느·우당탕탕 닥터지·시티헌터 등의 주제곡을 불렀다. 사람들은 디지몬 ‘Butterfly’ 부른 가수로 많이 기억해주는 것 같다. Butterfly는 앞부분을 녹음했을 때가 기억난다. 투니버스 측에서 첫 시작을 멋있게 처리해 달라고 요청해 여러 음역대로 녹음해 화음을 만드는 등 신경썼다.”- 애니메이션 가수로 활동하면서 팬클럽도 생겼다고.“한번은 팬클럽이 생긴지 1주년이라며 전화가 왔었다. 사실 난 팬클럽이 있는지 몰랐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팬클럽이 활동하고 있었다. 회원 숫자는 800명 정도였다. ‘괴짜가족’ 오프닝 영상에 원곡을 부른 일본 밴드가 노래 부르는 모습이 짧게 나온다. 팬들이 올린 게시글을 보니 영상에 나온 밴드 보컬을 나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내가 부른 노래, 일본 밴드 얼굴을 듣고 본 사람들이 만든 팬클럽이었다. 오해로 인해 생긴 팬클럽이었지만 색다른 경험이었다."(왼쪽부터) 디지몬 어드벤처 방송화면, 괴짜가족 오프닝에 나온 일본 밴드/ 만화 디지몬어드벤처, 괴짜가족 오프닝 영상 캡처-요즘 복면가왕에서 건반을 치고 있는 모습이 인터넷에서 화제다.“2000년대 초 애니메이션 가수로 활동해서 의아해 할 수 있지만 본업은 키보디스트다. 현재 복면가왕(MBC)에서 건반을 연주하고 있다. 또 양희은, 박기영, 김연우 등 오랜 경력을 가진 가수부터 최근에는 마마무 등 젊은 가수들의 공연에서 건반 세션을 맡고 있다. 2015년부터 3년간 EBS 스페이스 공감에 하우스밴드로 출연하기도 했다.”- 작곡도 많이 했다고.“ ‘The Day(박기영)’와 ‘Fiance(박기영)’, ‘발끝을 적시는 눈물(알렉스)’, ‘모래성(민경훈)’ 등을 작곡했다. 예전에는 작곡도 많이 했지만 최근에는 편곡만 하고 있다. 바이올린·비올라·첼로 등 10명 규모의 현악기 합주를 녹음하는 현편곡을 주로 한다. 최근 편곡에 참여한 곡은 ‘사랑이었다(지코)’, ‘가끔(크러쉬)’, ‘BAAAM(다이나믹 듀오)’, ‘화장 지웠어(개코)’, ‘꽃길(김세정)’이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하고 싶어했나.“처음부터 음악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지만 전자 관련 일을 하고 싶었다. 대학도 수학과에 들어갔다. 물론 음악을 좋아했고 계속 했다. 고등학교 때 교내 밴드에서 서브보컬을 했다. 대학교때도 통기타 동아리 활동을 하며 대학가요제와 강변가요제 예선을 본 적도 있다.”(왼쪽부터) 복면가왕(MBC), EBS 스페이스 공감에 출연해 건반을 연주하고 있는 모습/ MBC 복면가왕, EBS 스페이스 공감 캡처-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음악을 했나.“음악에 흥미가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해보자 결심했다. 제대 후 1995년 다시 입시에 도전해 서울예술전문대학 실용음악과에 입학했다. 1995년 그룹 ‘뜻밖의 손님’에서 건반으로 3년간, 1998년 록듀오 ‘가명고’ 보컬로 2년간 활동했다. 록듀오를 하면서 ‘들국화’ ‘U2(아일랜드 록밴드)’ 같은 록밴드를 꿈꿨다. 활동은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다.1997년에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은상을 타기도 했다. 대회에서 원하는 곡 스타일과 내 음악적 색깔이 비슷하다고 생각해 도전했다. ‘뜻밖의 손님’이라는 그룹으로 활동하고 있어 주변에서는 나가서 탈락하면 어떡하냐는 걱정을 많이 했다. 꼭 상타서 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만큼 자신 있었다. 대상을 기대했는데 은상이라고 불러서 조금 속상했다. 그래도 상을 받아 기뻤다.”- 가수가 아닌 건반으로 활동한 이유는.“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상도 타고 록밴드 활동을 하면서 가수로서 가능성을 확인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수로 성공하는 일은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일을 찾았다. 팀 해체 후 건반 세션으로 자리를 잡았다.”- 만화 주제가를 부른 계기는.“1999년부터 3년간 저녁 카페나 바(Bar)에서 연주와 노래를 했다. 투니버스 박정식 음악감독님이 그 모습을 보고 투니버스 만화 주제곡 가수로 녹음에 참여할 기회를 줬다. 몇 번 녹음에 참여한 후 투니버스 측에서도 노래 반응이 좋다고 생각해 계속 불러줬다. 2001년부터 3년간 애니메이션 가수로 활동했다. 일주일에 두 곡을 녹음하기도 했다. 당시 가요 앨범 제의도 받았지만 노래보다는 건반이 더 맞다고 생각해 지금까지도 건반 세션에서 활동하고 있다.”(왼쪽부터) 제 8회 안양·과천 상공회의소 행복콘서트(2018)에 하우스 밴드로 참여해 밴드 대표로 노래를 부르는 모습, 2018년 김연우 여름 콘서트에 키보드로 참여한 전영호씨 모습/ 전영호 제공- 방송에 나와 다시 노래 불러달라는 팬들의 요청이 많다.“너의 목소리가 보여(Mnet)에서도 출연제의가 왔지만 끝내 거절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좀 더 자신감이 있을 때 방송에 나가고 싶다.”- 향후 계획은.“앞으로도 계속 음악을 하고 싶다. 기존에 같이 작업하던 가수들에서 영역을 넓혀 젊은 가수와도 활동하고 싶다. 작곡도 다시 할 계획이다. 내년 앨범 발매를 목표로 하고 있다. 20년 전 그룹 ‘가명고’로 록 앨범을 냈지만, 이번에는 건반을 연주했던 경력을 살려 피아노 연주를 살릴 수 있는 곡을 써볼 예정이다. 앨범 준비를 하면서 최근에 15kg 감량했다. 나중에 방송에 나갈 때를 대비해서다.”글 CCBB 에디터 김경철시시비비랩
낮엔 공사장, 밤엔 경비…라면 하나로 이틀 버틴적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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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엔 공사장, 밤엔 경비…컵라면 하나로 이틀 버틴 적도 있어요제이블랙&제이핑크 조진수하루 13시간 춤·5년의 무명생활 거쳐목표는 “최고로 유명한 댄서”무대 위 화려한 화장을 하고 아찔하게 높은 하이힐을 신은 댄서가 춤을 춘다. 긴 레게 머리를 휘날리며 음악에 맞춰 관능적인 춤을 추는 이 댄서는 남자다. 주인공은 바로 '제이블랙&제이핑크' 조진수씨. 국내 스트릿 댄서 1인자로 제이블랙과 제이핑크라는 두 가지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춤에 미친 듯 몸이 부서져라 춤을 출 땐 제이블랙으로, 남성이 낼 수 있는 여성의 이미지와 느낌을 살리는 걸리시 댄스(girlish dance)를 할 땐 제이핑크다.조씨는 국내에 걸리시 댄스를 알린 장본인이며 걸리시 댄스 1인자기도하다. 지금은 무대뿐 아니라 각종 예능 프로그램을 누비고 있지만 제이블랙&제이핑크 라는 이름을 알리기까지 5년의 세월이 걸렸다.제이블랙&제이핑크 조진수 / 디딛웍스 제공◇늦은 나이에 시작한 춤어렸을 때부터 춤을 좋아했다. 초등학생 때는 아버지를 따라 재즈 댄스를 배우러 다녔다. 가수들이 추는 춤을 녹화해서 따라 추기도 했다. 혼자 춤을 추던 중 사람들에게 춤을 보여줄 일이 생겼다. "고등학생 때 화장실에서 춤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그 모습을 보고 수학여행 장기자랑을 같이 해보자고 했어요. 그때 처음 무대에 올라 친구들의 환호성에 희열을 느꼈죠."그때까지만 해도 춤을 업으로 정한 건 아니었다. 대학 진학 후에도 군대에서도 취미로 계속 춤을 췄다. 병장 진급 후 일과가 끝나면 춤 연습으로 시간을 보냈다. 제대할 때쯤 진로를 정했다. "나가서 뭐 하고 살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춤이고 이거 한 번 제대로 해보자 싶었죠. 24살이었습니다. 부모님께도 말씀을 드렸어요. 흔쾌히 허락해주셨어요. 대신 최고가 될 생각으로 하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제이블랙(좌), 제이핑크(우) / 제이블랙 인스타그램◇컵라면으로 때우고 생활고 시달려도 힙합에 빠진 그는 쓰리디 칼라(현 큐브 사운드)팀에 합류했다. 당시 그의 나이 25살이었다. 보통 10대 중후반부터 춤을 시작한다. 다른 사람보다 늦은 나이에 시작했기 때문에 지체할 틈이 없었다. 쉬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을 빼고 춤만 췄다. 하루에 13시간씩 연습을 했고 학원에서 강사와 경비원을 겸하면서 먹고 자는 생활을 반복했다. 무명 댄서로 춤만 추다 보니 생활고를 겪기도 했다. 당시 학원에서 일을 하면서 받은 월급은 3만원이었다. “연습실에 살기 위한 조건으로 경비 일을 했고 팀 연습시간은 정해져 있었어요. 그 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방출될 수도 있었죠. 그래서 춤 연습과 학원 일 외에는 다른 일을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생기면 공사 현장에 나가기도 했어요. 가장 힘들었던 몇 달은 이틀에 한 끼를 컵라면으로 버틴 적도 있었죠. 지금 돌아보면 어떻게 버텼나 싶지만 그때는 잘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춤이 좋아서 유명해지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생각도 했죠.”5년이라는 긴 무명생활을 끝내고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2009년 국내 춤꾼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댄스배틀 ‘포다넥스트레벨’에서 준우승을 한 것이다. 이후 대만 맥스파티 솔로배틀, 중국 K.O.D 크루배틀, 포다넥스트 레벨 인터내셔널 레벨 솔로 배틀 등 다양한 댄스 배틀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스트릿 댄스 강자로 자리 잡아갔다.제이핑크일 때의 모습 / J-BLACK & J-PINK Official◇국내 걸리시 댄스 1인자 ‘제이핑크’조씨는 국내 걸리시 댄스 1인자이면서 한국에 생소한 장르를 알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걸리시 댄스를 출 때는 조진수 혹은 제이블랙이 아닌 제이핑크로 변한다. 걸리시 댄스와의 인연은 26살 무렵 안무가 존테 모닝(Jonte Moaning)의 영상에서 시작했다. 처음엔 댄서인 자신도 남자가 하이힐을 신고 여성스러운 춤을 춘다는 것에 웃음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곧 걸리시 댄스에 빠져 따라 추기 시작했다.걸리시 댄스를 출 때면 온전히 제이핑크에 몰입한다고 한다. “여자친구였던 마리에게 의상을 빌려 입고 메이크업도 배웠어요. 섬세한 춤선과 유연함을 위해 체중감량을 하기도 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 속 여성의 사소한 특성이나 동작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보정속옷도 입었습니다. 이렇게 하고 나서 춤을 추니 100%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2014년에는 이 춤을 좋아하는 남자 1명, 여자 2명을 모아 ‘핑키칙스’를 시작했다. 그러나 대중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그러던 중 춤 경연 프로그램 ‘댄싱9’에 출연해 걸리시 댄스를 선보였다. 높은 하이힐과 표범무늬 레깅스, 털 코트를 입고 등장해 심사위원뿐 아니라 대중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멋있다’ ‘신선하다’는 반응이 있는 반면 누구는 더럽다고 욕하기도 한다. 화장을 하고 의상을 화려하게 입다 보니 제이핑크일 때에 사소한 오해도 생긴다.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 전에는 사람들이 조씨를 게이로 착각하기도 했다. 그는 오히려 기분이 좋다고 한다. “여성성과 남성성을 오가면서 춤을 추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 오히려 자랑스럽습니다. 게이라고 오해받는 건 제가 완벽하게 제이핑크에 몰입했다는 증거입니다. 뿌듯하죠.”햄버거 광고도 같이 찍었다(좌), 제이블랙과 마리의 리마인드 웨딩 사진(우) / 제이블랙 인스타그램◇목표는 “최고로 유명한 댄서”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던 큰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아내 마리다. 마리는 댄스팀 원더크루를 이끄는 안무가다. 댄서라는 같은 길을 걸으면서 자신을 이해해주고 존중해주는 고마운 존재라고 한다. “같은 직업을 가진 부부로서 제가 무엇을 해도 함께 교감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반면 단점은 없어서 신기할 따름이죠.”그는 댄서로서의 활동뿐 아니라 방송인으로도 활동을 계속할 예정이다. 제이블랙이라는 사람으로서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사랑받고 싶다는 게 그 이유다. 그의 목표는 최고로 유명한 댄서가 되는 것이다. “마이클 잭슨이나 엘비스 프레슬리는 죽었지만 그들의 음악이 세상에 남아있습니다. 불가능하겠지만 제가 죽고 나서도 ‘그 사람 정말 최고였지’ ‘춤하면 제이블랙이었지’라고 말하는 아티스트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댄서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세계에서 아니더라도 한국에서만큼은 춤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어요.”글 CCBB 에디터 하늘시시비비랩
연봉이 330억인데 아내보다 적게 버는 이 남자는 누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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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일에 열렸던 프로미식축구 결승전 제 51회 슈퍼볼에서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스타 쿼터백 톰 브레이디(Tom Brady)는 헐리우드급 극장 역전승을 거두면서 5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렸습니다. 그는 올해 42세로 대부분의 프로 선수들이 은퇴하고도 남을 나이지만 앞으로 1년 이상 더 뛰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죠. 화려한 프로 커리어를 쌓으면서 수천억원을 벌어온 브레이디는 이번 경기 이후로 스포츠 전문가들에 의해 NFL이 낳은 최고의 스타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인기와 수익을 능가하는 와이프를 만나게 되었죠. 다음은 연봉이 330억원인데 슈퍼모델 아내보다 수익이 적은 슈퍼볼 MVP 톰 브레이디의 평범한(?) 삶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톰 브레이디는 2,880만달러 (약 330억4,000만원)로 올 시즌 NFL의 모든 선수들을 통틀어 5번째로 높은 연봉을 받았죠.또한 그는 NFL 97년의 역사상 3번째로 많은 통산 수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브레이디는 16년간 무려 1억9.620만달러 (약 2,250억5,000만원)를 벌어들였죠.이 뿐만 아닙니다. 그는 지금도 언더아머, 인텔, 쉴드 등의 CF 계약으로 해마다 800만달러 (약 91억8,000만원)의 짭짤한 광고수익을 올리고 있습니다.하지만 남성 브랜드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UGG(어그)와의 광고계약으로 그의 강인하고 카리스마 있는 이미지가 살짝 흔들리기도 했죠.슈퍼볼 우승 5회에 MVP상까지 4번을 거머쥔 브레이디는 부상으로 받는 자동차를 매번 연봉이 훨씬 적은데도 큰 활약을 펼친 자신의 팀 동료에게 물려줬습니다.사실, 톰 브레이디가 엄청난 수입을 집에 가져오고 있지만 그의 아내이자 브라질이 낳은 최고의 슈퍼모델인 지젤 번쳔(Gisele Bündchen)과 비교 자체가 되지 않습니다.지젤은 지난 해, 남편 톰과 비슷한 수준인 3,050만달러 (약 350억원)를 벌어들였습니다. 하지만 모델 중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입을 자랑하는 그녀는 10여년간의 활동으로 무려 10억달러 (약 1조1,500억원)의 재산을 쌓게 되었죠.심지어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에서는 톰 브레이디를 단순히 '지젤 번천의 미국인 남편'으로 부를 정도로 지젤의 위상은 높다고 볼 수 있죠.이 파워 커플은 미국 LA에 2,000만달러 (약 230억원)를 들여 커스텀 대저택을 지었습니다. 이곳에는 양계장이 갖춰져 있어서 브레이디 가족은 매일마다 싱싱한 달걀을 먹을 수 있었다고 하죠.하지만 2014년에는 에미넴과 50센트를 발굴한 '힙합 재벌' 닥터 드레에게 두배 가격인 4,000만달러에 팔아 넘겼습니다.2013년, 브레이디-번천 커플은 뉴욕 맨하탄에 1,150만달러를 호가하는 2층짜리 펜트하우스를 매입했습니다.그리고 트라이베카에 위치한 펜트하우스에도 2,000만달러를 투자해 사들였죠.톰 브레이디는 화려한 슈퍼스타의 삶 보다는 항상 가족을 먼저 챙기는 모습을 보여온 전형적인 패밀리맨입니다.그가 경기를 준비하거나 훈련하지 않을 때는 대부분 두 아이와 함께 노는 모습이 포착되고는 하죠.가끔씩은 켄터키 더비나 메트 갈라 등 VIP들만 참석하는 사교 모임에 아내와 함께 나가기도 합니다.또한, 2014 브라질 월드컵과 브라질의 유명 카니발 축제 VIP석에서 포착되기도 했죠.건강을 지극히 챙기는 브레이디는 전용 쉐프를 둬서 40세 이후까지 프로 선수로 뛸 수 있도록 건강 식단을 요구합니다. 심지어 그의 자녀들까지 80% 채소 위주로 식단을 짠다고 하죠. 슈퍼볼 MVP 답게 그는 개인 트레이너 부터 심리상담사, 영양상담사, 마사지사, 그리고 영적 멘토까지 다양한 방면의 전문가들을 고용하고 있습니다.글 CCBB 에디터 피클시시비비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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