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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ㅇㅇ고정닉
한국 균학의 어머니, 김삼순에 대해서 알아보자
김삼순...김삼순 하면내 또래 틀딱들은 응? 드라마 그거? 떠올릴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김삼순은그 김삼순이 아니라한국에서 균학이 학문의 형태를 갖추고 버섯 연구가 산업과 연결되는데 기초공사를 한 과학자이자, “한국 균학의 어머니”라 불리우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임 한국학중앙연구원은 그를 한국인 여성 최초의 농학 박사이자 과학자로 말하고과학기술유공자 공식 자료는 아예 “균학의 대모”라고 부름1909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났고,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 이과로 갔음 김삼순 본인이 과학 쪽으로 마음을 굳힌 이유가 “경성에 처음 와서 전깃불과 전차를 보고, 앞으로는 과학이 더 중요해질 것 같아서”였다고 함...지금 보면 낭만적인데, 당시 조선 여성에게는 꽤 과감한 진로 선택이었음 이후 교사로 일하다가, 대학에 가겠다고 직장을 던지고 큰오빠의 도움으로 가족 반대를 이겨내고 다시 일본으로 건너감물론 잘사는 집안이긴하나 당시 여자로썬 보통이 아닌 사람이었던건 확실함 그리고 1941년, 김삼순은 홋카이도제국대학 이학부 식물학과에 입학함 이게 왜 중요하냐면, 당시 조선인 여성에게 제국대학 이학부 입학 자체가 거의 돌벽 뚫는 수준이었기 때문임 여기서 식물생리학 교실에 들어가 사상균, 즉 곰팡이류를 연구했고, 1943년 9월 조선인 여성 최초로 제국대학 이학부를 졸업했음 즉 훗날 버섯 연구로 이름이 알려지긴 했지만, 출발부터 버섯 재배 전문가는 아니었고 기초 균류 연구를 제대로 밟은 식물학·균학 계열 엘리트였음 그런데 여기서 또 한 번 꼬임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해 더 공부하려 했지만, 1944년 말 귀국했다가 1945년 해방을 맞으면서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게됨 해방 후에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로 임용되었는데, 여기서 포기하지 않았음 교수 자리도 있었고, 그냥 그 시대 기준으로 충분히 성공한 여성 지식인으로 살 수도 있었는데, 본인은 박사 학위의 꿈을 꼭 이루고 싶어했음 그래서 다시 일본 유학을 준비했지만, 한국전쟁이 터지고 그녀를 지지해주던 큰오빠가 북한군에게 희생되고, 본인 건강도 악화되고, 남편까지 사망하면서 계획이 무너짐 사실 이정도면 그냥 멘탈 터져서 다 포기할만할 함
그런데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음 보통 이쯤 되면 인생이 접히는데, 김삼순은 1961년 다시 일본으로 감 무려 25년 만의 재도전임 처음엔 홋카이도대로 갔지만 연구 주제를 맞춰줄 교수가 없어 규슈대로 옮겼고, 거기서 도미타 키이치 교수 밑에서 다카아밀라아제 A의 광불활성 반응을 연구함 그리고 1965~1966년에 일본 학술지와 Nature에까지 논문을 발표한 뒤, 1966년 57세의 나이로 한국인 여성 최초의 농학 박사가 됨 이건 그냥 여성 최초 타이틀만 대단한 게 아니라, 57세에 국제 수준 논문을 묶어 박사를 딴 거임 .많은 사람이 여기서 착각하는게 “김삼순은 원래 버섯 전공이 아니었는데 왜 느타리버섯을 했냐?” 하는 식으로.그런데 그건 반만 맞음 이 분은 애초에 사상균을 연구했고, 효소 연구로 농학박사까지 딴 균류·미생물 기반 연구자였음 즉 느타리버섯 연구는 뜬금없는 외도가 아니라, 기초 균학에서 응용균학으로 넘어간 확장에 가깝움 1968년 귀국 후 서울여자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창립 교수로 합류하면서 응용미생물연구소를 세우고, 여기서 버섯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균학 연구에 착수했음 원래는 균학 전문가 였지만, 이쪽으로 연구비는 잘 안나오고당시에는 정부에서는 수출에 쓸수 있는 실용적인 연구를 바랬고그리고 여기서 느타리 버섯이 나오게 됨 당시 국내에서 느타리버섯은 아직 제대로 상품화되지 않았고, 연구는 있었어도 사회적 반향이 크지 않았음 김삼순은 국가 지원을 받아 느타리버섯 인공재배 연구를 진행했고, 그 결과 느타리가 전국 어디서든 재배 가능하며 양송이보다 20~25% 수량이 많다는 점을 확인했음 쉽게 말하면 진짜 농가에서 먹힐 수 있고, 농가 소득 증가 가능성을 보여준 셈임 김삼순보다 먼저 느타리를 건드린 사람은 있었지만 정작 보급의 돌파구를 연 건 김삼순의 연구와 그 파급효과였다고 평가됨 김삼순 이전에도 느타리 버섯을 연구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누가 그걸 국가적 보급 가능성이 있는 연구로 바꿨느냐는 건데, 그 자리에 김삼순이 있었다는 거임 단순히 그냥 논문 몇 편 쓴 교수가 아니라, 오늘날 너무 당연해서 아무도 생각 안 하는 버섯 산업의 초기 인프라를 깔아준 인물로 봐야함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님 보통 연구자들은 자기 실험실만 챙기는데, 김삼순은 아예 분야의 판 자체를 만들었음 1972년 한국균학회를 창립했고 초대 회장이 되었음 그리고 재임 4년 동안 한국균학회지를 창간하고, 한국어 버섯명 통일안을 마련하고, 국내외 학술대회를 정기적으로 열고, 버섯 공동 채집회까지 추진했음 한국균학회 항목을 보면 창립 멤버는 여러 명이지만, 초대 회장이 김삼순이었고, 국제균학협회 가입과 학회지 발간 같은 제도화 작업이 이때 이뤄졌음 한국 균학이라는 분야를 바닥부터 세팅한 사람임 괜히 김삼순을 두고 한국 균학의 어머니라는 표현이 나오는게 아님1974년 정년퇴임 뒤에도 끝이 아니었음보통 여기서 자서전등을 쓰면서 쉬는데, 김삼순은 고향 담양으로 내려가 1978년 취원응용미생물연구소를 세웠음 운영은 쉽지 않았다고 함 연구 인력과 비용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고, 기대한 만큼 크게 굴러가지는 못했음 그런데도 그녀는 후배 김양섭과 함께 10여 년간 버섯 연구를 계속해서, 1990년 81세의 나이에 한국산버섯도감을 냈음 여든하나에 도감을 쓴거임 그리고 이후에도 논문 발표를 이어가다가 2001년에 생을 마감하심요약하자면 전쟁과 식민지와 성차별의 시대를 뚫고,쉰일곱에 박사 따고,귀국해서 느타리버섯 연구를 산업화의 길로 밀어 올리고,한국균학회까지 세워서 한국 균학의 기틀을 세운 사람이라 볼수 있을꺼임 국가와 학계도 완전히 몰라준 건 아님 김삼순은 1976년 여성 과학자 최초로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 되었고, 1979년 대한민국학술원상을 받았음 1990년 월남상, 1995년 자랑스런 경기인, 그리고 훨씬 뒤인 2021년에는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로 지정되었음 아쉬운건 이런 훈격과 평가에 비해, 대중에게는 널리 알려진 인물도 아니었음 하지만 적어도, 최소한 대한민국 학술사 기준으로는 이 분의 위상이 애매하지 않음 한국 균학의 제도적, 학문적 발전을 이끈 핵심 인물이라는 점은 부정할수 없을꺼임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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