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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전쟁 -18-

김유식 2003.04.02 14:38:38
조회 2589 추천 0 댓글 0
   모리시타는 카지노에서 서성이다가 밖으로 나왔고 생각 없이 길을 걷다 가장 가까운 펍에 들어왔다. 블루 라이언이었다.   어지간히 취한 모리시타가 또 맥주를 주문하자 로버트 노블이 다가왔다. 그만 나가달라고 할 참이었다. 그때 뒤에서 "보비!" 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김창환이 펍 입구에 서 있었다. 로버트는 실질적인 블루 라이언의 주인이 보는 앞에서 손님을 내쫓을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모리시타에게 다시 1 파인트의 맥주를 따라주었다.    "오, 보비 잘 지냈나?"   김창환이 펍 안으로 걸어 들어오며 물었다.   "미스터 김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김창환의 인사에 130kg이 넘는 거한 로버트가 어린이처럼 쾌활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김창환이 의자를 끌어다 바 앞에 놓고 앉았다.   "아버지도 안녕하신가?"   "무적의 왕실해군 출신이신데 여전하시죠. 한 잔 하시겠습니까?"    로버트의 말에 김창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지. 우리 것으로 한잔 주게."   로버트는 김창환이 말한 '우리 것'에 대해서 짧은 시간동안 생각하다가 씩 웃으며 병맥주를 꺼냈다. 한국에서 대 히트를 쳤다는 명성의 천연 암반수 맥주인데 로버트는 이 맥주의 맛이 독특하다고 느꼈다. 물이 깨끗하지 못한 영국이나 유럽에서 만드는 맥주하고는 무언가 다르기는 했지만 펍에서 병맥주를 찾는 손님은 거의 없었고 그나마 있어도 명성맥주는 아니었다. 김창환이 한국에서 이 맥주의 유통업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던 터였다.   로버트가 잔을 꺼내어 김창환 앞에서 맥주를 따랐다. 시원하게 거품이 올라오면서 잔 옆으로 약간 흘러내렸다. 김창환이 앉은 바 위에 잔을 올려놓으며 물었다.   "술은 드셔도 되는 겁니까?"   "걱정은 고맙네만 나는 환자가 아니네. 난 단지 요양을 하고 있을 뿐이야."   말을 마친 김창환이 잔에 담긴 맥주의 반 정도를 단번에 마셨다. 건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   술에 취한 모리시타는 로버트에게 오라는 손짓을 하고는 가방에서 몇 가지 팜플렛과 서류를 꺼냈다.   로버트는 이 취객이 왜 자신을 부를까? 귀찮아하는 얼굴로 모리시타에게 다가갔다. 맥주를 더 주문하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았지만 조금 전 모리시타에게 준 파인트 잔에는 맥주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모리시타는 본국으로 쫓겨가기 전에 회사에 좋은 일 하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블루 라이언이 있는 소호지역은 자신의 담당이 아니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한 개의 펍이라도 더 끌어들여 아사히 맥주의 꼭지를 설치하는 것이 중요했다.   로버트 앞에서 팜플렛를 늘어놓으며 자신이 일본계 아사히 맥주회사의 직원이라 밝힌 모리시타는 아까보다는 정확한 발음으로 아사히의 생맥주를 공급받는다면 펍의 매상이 이전보다 훨씬 늘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로버트는 눈살을 찌푸렸다. 모리시타에게 정중한 어조로, 이런 영업에 관한 이야기를 바쁜 저녁시간에 하는 것은 실례이며 자신은 주인이 아니라서 그런 것을 결정할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마침 다른 손님이 맥주를 주문하자, 로버트가 '익스큐즈 미'라고 말하고는 모리시타 앞에서 등을 돌렸다. 그러자 누가 주인이냐며 모리시타가 큰 소리로 물었다. 이때 두 사람의 이야기를 흥미 있게 듣고 있던 김창환이 끼어 들었다. 김창환이 모리시타에게 동양인을 만나게 되어 반갑다고 말하자 모리시타는 일본인이냐고 물어왔다.   "한국. 나는 한국에서 왔소."   김창환의 대답에 모리시타가 고개를 홱 돌리며 말했다.   "한국이라면 우리 아사히의 맥주 맛을 볼 수 없는 나라로군요."   모리시타의 빈정대는 듯한 말투에 김창환이 껄껄 웃으며 받아쳤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좋은 물로 만드는 맥주가 있다오."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면서 김창환이,   "세토(瀨戶) 사장 못 본지도 오래됐군."   이라며 중얼거렸다. 누구 들으라고 한 말이 아닌 지라 무심코 한국말을 썼다. 술에 취한 모리시타는 "세토"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사히를 일본 맥주업계 1위의 회사로 올린 장본인이 아닌가? 다만 김창환이 한국말을 썼다는 사실은 모른 채, "세토? 세토? 왓?(What)" 하면서 김창환을 쳐다보았다.   김창환은 이제서야 모리시타가 취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근무 시간도 아닌 이 시간에 술에 취해 있으면서도, 아사히의 맥주를 선전하는 그가 똑똑하고 유능해 보였다.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김창환은 아사히와 세토의 공격적인 해외 영업 전략이 훌륭하다고 느껴왔었다. 아사히는 기린이나 삿포로보다 빠르게 해외에 진출했고 이미 영국 데번셔에 영국의 에일 맥주 전문 회사인 배스 양조(Bass Brewer)와 함께 합작 공장까지 세워둔 상태였다. 한국 회사들이 그 정도까지 되려면 아직은 힘들겠지만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 펍의 주인이고 나는 한국의 명성맥주에서 일하는 사람이오."   모리시타는 두 눈을 꿈벅이며 김창환의 말을 들었다. '명성맥주라..'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펍의 주인이라고?' 머리가 아파 왔다.   "보비. 우리 맥주 한 병 더 주게."   김창환이 늘어나기 시작하는 손님들을 훑어보며 로버트에게 말했다. 로버트는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맥주를 꺼내 김창환 앞에 내놓았다.   "잔도 하나 주게나."   잔을 주며 로버트는 모리시타를 못마땅하게 쏘아보았다. 김창환은 역시 동양인이라 같은 동양인에 관심을 가지나보다 생각했다.   잔을 받은 김창환이 모리시타를 향해 말을 했다.   "이것이 우리 명성이 한국에서 주력으로 삼는 맥주요. 한 잔 드리지."    모리시타는 기계적으로 고맙다고 말하며 잔을 들어 김창환이 따라주는 맥주를 받았다. 모리시타의 두 눈이 풀린 상태였으나 김창환은 이를 감지하지 못했다.   "건배합시다."    두개의 잔이 부딪히고 김창환이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켰다.   "세토 사장의 용인술이 대단하다더니 정말 열심히 일하시는군요."   오후 일곱 시가 넘은 시간에 펍에서 자기 회사의 맥주를 선전하는 모리시타를 두고 김창환이 한 말이었으나 모리시타의 입장에서는 전혀 다른 뜻의 말이 되었다. 모리시타는 이 동양인이 자신의 행적을 모두 알고 있는 것 같다고 느껴졌다. 회사에서 쫓겨나기 전에 회사의 차까지 팔아먹고, 모든 돈을 도박으로 탕진한 자신에게, 회사 사장의 이름까지 들먹여 가며 놀리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물러날 곳도, 갈 곳도 없는 모리시타였다. 마지막으로 회사를 위해 좋은 일 하나 해보겠다고 팜플렛을 꺼낸 것이 이렇게 놀림 당하는 일이 될 줄은 몰랐다. 울컥 화가 치밀었다. 몸을 일으키면서 명성의 맥주병을 들었다. 팔을 뒤로 돌려 있는 힘껏 김창환에게 휘둘렀다. 불행하게도 휘두르면서 모리시타의 몸이 앞으로 휘청거렸다. 체중이 실렸고 반이나 남아있는 맥주병이 김창환의 이마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원심력을 받은 맥주는 맥주병 안에서 세차게 폭발했다. 무엇에 맞았을 때, 어느 정도 충격이 완화되는 빈 맥주병의 강도는 맥주가 차 있는 병의 강도와는 천지차이다.   맥주병이 깨지는 소리에 이어 로버트의 고함 소리가 펍 안을 진동시켰다. 모리시타는 깨져서 손잡이만 남은 맥주병을 들고 김창환의 목을 찔러댔다. 김창환의 몸이 천천히 앞으로 숙여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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