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맥주전쟁 -13-

김유식 2003.04.02 14:36:28
조회 2259 추천 0 댓글 0
2000년 2월 5일. 토요일. 오전 11시 20분.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 조직의 두목이면서도 마음 여리다는 말을 듣는 유정후에게 이런 일은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는 간단하면서도 돈이 되는 일을 해왔고 또 지금도 그런 일을 원했다. 비교적 고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유흥업소 경영이나, 건물, 대지 등의 경매 참여, 건설 회사의 입찰 담합과 건설 현장의 위력 시위 등이 그것이었다.   협박과 공갈을 통한 수금 같은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 것은 유정후 만이 아니었다. 조직의 살림살이를 맡고 있는 이광혁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지금 조직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일이 달리 없는 가운데 다른 사업을 해보자고 말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두 달 전 이광혁은, 유정후가 출소하면 새로운 사업을 해보자던 명성유통의 김택환 이사를 찾아갔다.   40대의 나이에 제법 탄탄한 주류 유통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김택환 이사가 두 개의 회사 설립을 제안했다. 명성맥주의 대주주이자 명성유통의 대표 이사를 맡고 있던 김택환의 친형은 건강이 좋지 않아 요양 중이라고 했다.   유정후는 오래 전 명성맥주의 목포 지역 도매에 관여한 적이 있었고 나이트 클럽을 운영했던 적이 있으므로 당시 명성유통에서 영업 관리를 하던 김택환과는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다.   명성유통의 경영 일선에 나서게 되고 새로 구상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던 김택환은 마침 유정후가 출소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와 같이 일해 보리라 마음먹었다. 유정후의 사람됨은 자신도 잘 알고 있던 터였다. 그의 모질지 못한 성격이 새로 시작하려는 사업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곧 그런 생각은 사라졌다. 조금만 사업이 잘된다 싶으면 독립해서 차리거나 살모사처럼 남의 사업까지 잡아먹으려 드는 일이 다반사인 조직폭력계에서 유정후는 믿을 만한 인격의 소유자였다.     - 명성 파이낸스   - 명성 신용정보조사   명성 파이낸스는 목포에 설립한 사채회사였다. 지역정보 신문 광고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채회사와 크게 다를 것은 없었으나 전주(錢主)가 명성유통이니 만큼 회사 자본금이 넉넉했으며 인기도 좋았다. 김택환으로서는 돈을 벌어보자는 것 외에도 명성유통의 비자금을 조성하려는데 설립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명성 신용정보조사는 거창한 이름과는 달리 직, 간접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회사였다. 각 채권자인 개인이나 회사의 의뢰로, 채무자의 숨겨둔 재산을 찾아내어 빚을 받아내는 것이 주된 업무였는데 아직 IMF 체재하에 있는 한국에서는 일거리가 넘칠 정도로 많았다.   은닉한 재산을 찾아내는 일은 새로 뽑은 똑똑한 대졸 사원들의 몫이었고 협박과 공갈은 신목포파 조직원들의 일이었다. 조직원들 대부분을 이 회사의 직원으로 만들어 두었기 때문에 조직원들의 밥벌이에는 문제가 없는 것이 다행이었다.  심지어 사장의 명의를 갖고 있는 유정후에게 깡패자식을 취직시켜 주어 고맙다는 전화를 한 조직원의 부모도 있었다.   낮에는 자고 저녁이나 되어서 어슬렁거리며 나타나 일하던 조직원들에게는 일반 회사원들처럼 아침에 출근하여 저녁이면 퇴근하는 일이 따분하고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러나 이 일을 좋아하는 조직원도 있었다. 이광혁의 출소 전부터 채무자 협박으로 소일하며 돈이나 뜯어내던 것이 직업이었던 김근태에게는 딱 맞는 일이었고 이승영도 그리 싫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협박이라면 자신들에게 맡기라며 열성적으로 일했다.   유정후의 지시로 이승영과 김근태는 다른 조직원들에게 채무자 협박하는 방법도 가르쳤는데 유정후는 절대 채무자의 자녀에게 손대는 짓은 하지 말도록 했고 채무자의 집으로 찾아가 대, 소변을 보는 일과 같은 행동은 일체 금지시켰다. 이때 김근태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형님은 잘 모르시는구만이라....웁따던 돈도 오짐 한 번만 깔겨 부리면..."   유정후의 사나운 눈초리를 본 김근태는 찔끔하여 말끝을 흐렸다.   명성 신용정보회사의 수익은, 더 이상 받을 길이 없어 보이는 악성 채권의 경우 최고 90%까지였다. 보름 전 찾아왔던 개인 의뢰자의 경우가 그러했다. 친구가 사업한다고 해서 퇴직금으로 받은 팔천만 원을 빌려주었는데 사업이 망해서 돈 받을 길이 막막했다.   하루 끼니 연명하기도 힘들다는 친구에게 돈 갚으라고 말도 못 꺼내던 의뢰자는 어느 날, 쌀이라도 가져다 줄 생각에 집을 나섰다가 가족과 함께 고급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친구를 목격했다.   의심이 들어 뒷조사를 해보니 사업한답시고 이리저리 돈을 꾸어다가 중간에서 착복하고 고의로 부도냈다는 것을 알아냈다. 돈 갚을 것을 요구했으나 대답은 '있으면 뒤져서 가져가라.'였다. 괘씸하고 뻔뻔한 친구의 모습에 받을 돈이고 뭐고 혼이나 내주어야겠다고 생각한 의뢰자는 명성 신용정보회사로 찾아왔다. 돈을 받게 되면 자신에게 10%만 달라고 했다. 어차피 자신의 힘으로는 받기 힘든 돈 약간이나 받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팔천만 원은 위임장을 휴대한 김응진과 김근태가 간단하게 받아왔다. 김응진은 뒷짐지고 서 있기만 했고 걸쭉한 사투리의 김근태가 속사포처럼 몇 마디 쏘아대자 돈 없다던 채무자는 금새 오천만 원을 마련해왔다. 김근태가 성질을 부리며 몇 마디 더 하자 채무자가 나머지 삼천만 원을 가져오는데는 불과 삼십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김근태가 말했던 내용은 장기를 팔라는 협박이었다. 눈알 하나에 오백만 원씩 계산해서 마누라 것과 함께 이천만 원, 신장은 천만 원씩 치면 사천만 원, 나머지 이천만 원은 간장이나 폐 등 필요한 것으로 뜯어가서 채우겠다고 했다. 원래 이런 협박은 중형을 선고받을 수 있는 죄목이지만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었다.   채무자가 처음 오천만 원을 가져왔을 때, 김근태는 태연하게 고맙다고 인사하면서 눈알 두 개와 신장 하나로 나머지 계산을 맞추자고 하자 채무자는 혼비백산하며 잔액을 마련해 왔다. 매사가 이런 식이었다. 정말 돈 없다고 버티는 채무자들은 몇 일씩 미행하며 행적을 조사했다. 가족이나 친지의 계좌 추적은 물론 전화 도청까지 했다. 그래도 돈 가진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깨끗하게 포기했지만 대부분의 채무자들은 돈이 있음에도 없다고 잡아떼며 배 째라는 식이었다.  한국 사회와 신용 사회는 거리가 먼 단어였다. 사업하다 망했다는 사람은 그래도 떵떵거리고, 죽어나는 것은 월급도 못 받고 쫓겨나는 종업원들뿐이었다.   '돈이 모이면 다른 사업을 해야겠어.' 유정후는 이런 일은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담배를 하나 피워 물자 노크 소리가 들렸다.   "다녀왔습니다. 혀어... 사장님."   아직 사장님이라는 단어가 입에 익지 않은 이광혁이 빨갛게 된 얼굴로 들어왔다. 같이 들어온 김응진은 유정후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빨간색 가죽 장갑을 벗어 히터 옆에 올려두었다. 유정후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반갑게 맞았다.   "그래. 수고들 했다. 일은 잘 되었나?"   "박 사장 그놈은 짱 박아 둔 돈이 십억이 넘습니다. 형...사장님." 이광혁이 큰 건을 하나 해결했다는 듯 목청 높여 말했다.   "그래? 다 찾았나?"   "어휴. 말도 마십쇼. 어디서 줏어 들은 건 있어서 합기도 좀 했다는 보디가드 두 명 쓰러뜨리니까 바로 통장하고 CD 꺼내 내밀더라구요. 더 쑤시면 또 있을 것 같은데 나머지는 나중에 받기로 하고 여기 이거 가져왔습니다." 이광혁은 빨간색의 베네통 학생용 가방에서 만 원 짜리 신권 수십 묶음을 꺼내 유정후가 앉아있는 책상 위에 차곡차곡 올려놓았다. 다 올려놓았을 즈음 주차를 마친 이승영과 김근태가 들어왔다. >

추천 비추천

0

고정닉 0

0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SNS로 싸우면 절대 안 질 것 같은 고집 있는 스타는? 운영자 24/05/06 - -
59 맥주전쟁 -58- 김유식 03.04.03 120663 47
58 맥주전쟁 -57- 김유식 03.04.03 13671 7
57 맥주전쟁 -56- 김유식 03.04.03 8682 1
56 맥주전쟁 -55- 김유식 03.04.03 7887 0
55 맥주전쟁 -54- 김유식 03.04.03 7119 0
54 맥주전쟁 -53- 김유식 03.04.03 6183 0
53 맥주전쟁 -52- 김유식 03.04.03 5864 1
52 맥주전쟁 -51- 김유식 03.04.03 5612 0
51 맥주전쟁 -50- 김유식 03.04.03 5336 0
50 맥주전쟁 -49- 김유식 03.04.03 4738 0
49 맥주전쟁 -48- 김유식 03.04.03 4814 0
48 맥주전쟁 -47- 김유식 03.04.03 4934 0
47 맥주전쟁 -46- 김유식 03.04.03 4583 0
46 맥주전쟁 -45- 김유식 03.04.03 4588 1
45 맥주전쟁 -44- 김유식 03.04.03 4636 0
44 맥주전쟁 -43- 김유식 03.04.02 4321 0
43 맥주전쟁 -42- 김유식 03.04.02 4623 0
42 맥주전쟁 -41- 김유식 03.04.02 4647 0
41 맥주전쟁 -40- 김유식 03.04.02 5104 0
40 맥주전쟁 -39- 김유식 03.04.02 9709 0
39 맥주전쟁 -38- 김유식 03.04.02 3058 0
38 맥주전쟁 -37- 김유식 03.04.02 2506 1
37 맥주전쟁 -36- 김유식 03.04.02 2566 0
36 맥주전쟁 -35- 김유식 03.04.02 2630 1
35 맥주전쟁 -34- 김유식 03.04.02 2686 0
34 맥주전쟁 -33- 김유식 03.04.02 2871 0
33 맥주전쟁 -32- 김유식 03.04.02 2584 0
32 맥주전쟁 -31- 김유식 03.04.02 2596 0
31 맥주전쟁 -30- 김유식 03.04.02 2428 0
30 맥주전쟁 -29- 김유식 03.04.02 5420 1
29 맥주전쟁 -28- 김유식 03.04.02 2246 0
28 맥주전쟁 -27- 김유식 03.04.02 2130 1
27 맥주전쟁 -26- 김유식 03.04.02 2008 0
26 맥주전쟁 -25- 김유식 03.04.02 2165 0
25 맥주전쟁 -24- 김유식 03.04.02 2124 1
24 맥주전쟁 -23- 김유식 03.04.02 2097 0
23 맥주전쟁 -22- 김유식 03.04.02 2272 0
22 맥주전쟁 -21- 김유식 03.04.02 1994 0
21 맥주전쟁 -20- 김유식 03.04.02 2904 0
20 맥주전쟁 -19- 김유식 03.04.02 2485 0
19 맥주전쟁 -18- 김유식 03.04.02 2589 0
18 맥주전쟁 -17- 김유식 03.04.02 2517 0
17 맥주전쟁 -16- 김유식 03.04.02 2548 0
16 맥주전쟁 -15- 김유식 03.04.02 3069 0
15 맥주전쟁 -14- 김유식 03.04.02 2616 1
맥주전쟁 -13- 김유식 03.04.02 2259 0
13 맥주전쟁 -12- 김유식 03.04.02 2442 0
12 맥주전쟁 -11- 김유식 03.04.02 2596 1
11 맥주전쟁 -10- 김유식 03.04.02 2683 0
10 맥주전쟁 -09- 김유식 03.04.02 2746 0
12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