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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전쟁 -31-

김유식 2003.04.02 14:44:54
조회 2596 추천 0 댓글 0
   2000년 2월 16일. 수요일. 오전 11시 10분(한국시간) 김포 국제공항 제 1청사.

  '조직에 큰 누를 끼쳤으면 몇 대를 걸쳐서라도 갚아내야 한다.'

  조장인 요시이의 평소 지론이었다. 명문 오사카 대학을 졸업하고 우연찮게 극도의 길로 들어선 사내는 똑똑하기만 하였지 담력이나 배짱과는 거리가 멀었다. 불과 몇 일전 부산에서 일으킨 잘못으로 조직의 사업에 커다란 차질을 빚게 되자 그는 크게 괴로워했다. 조장인 요시이는 그의 얼굴을 보며 한숨만 내쉬었다.

한동안 조직의 벌을 기다리고 있던 사내는 요시이의 제안에 기꺼이 응했다. 알게 모르게 같은 조직의 미키 조장과 암투를 벌이고 있는 요시이는 런던의 미키가 공을 세우길 바라지 않았다.

  어느 조직과 상대하든지 조직의 우두머리를 제거해야 겨루기 편하다는 사실은 미키나 요시노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요시이는 다른 루트를 통해, 런던의 아사히 맥주를 괴롭히는 것이 한국의 신목포파이며 이 조직의 두목은 한국에 남아있다는 정보를 얻어냈다. 미키가 전술가라면 조직의 고문인 요시이는 전략가였다. 즉시 호시노에게 한국에 있는 우두머리를 제거하도록 명령했다. 이번 일을 성공시키면 얼마 전 부산에서 저질렀던 잘못은 불문에 붙이겠다고도 했다.

  호시노라는 사내는 김포공항을 빠져 나왔다. 여권은 물론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오사카에 거주하는 재일 교포의 것으로 위조했고, 출장 온 비즈니스맨으로 위장했다. 앞으로 다섯 시간 후면 그는 이전에 한 번 접촉한 적이 있던 러시아 조직원과 다시 만나게 될 것이고, 최명규에게 빼앗겼던 것과 같은 권총들을 손에 넣게 될 것이었다.

  2000년 2월 16일. 수요일. 오전 10시 30분(영국시간) 런던 소호.

  김도현은 최명규와 같이 학교까지 오게되었다. 좀처럼 늦잠을 자는 일이 없는 최명규가 시차 적응이 안되어서 그랬는지 새벽에 일어나 한국으로 전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었다. 김도현이 다니는 학교까지 와서야 겨우 부산의 동생들과 연결된 그는 미키의 소재를 알게되었다.

  한시라도 빨리 동생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김도현에게 인사도 없이 떠날 수는 없었기에 쉬는 시간까지 기다린 최명규는 교실에서 나오는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리고 같이 온 동료들이 묵고 있는 곳을 찾았다며 노스 액톤까지 가는 길을 물었지만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지하철 탈 일이 쉽지만은 않아 보였다. 결국 김도현에게 부탁하여 택시를 타게 된 최명규는 지갑을 꺼내 집히는 대로 돈을 집어 한사코 거절하는 그에게 주고 학교를 떠났다. 멀어지는 택시를 바라다보고 있는 김도현 앞에 세 명의 사내가 모습을 나타냈다.

  "어이! 잘 있었나? 걱정했는데 쉽게 찾았군."

  "어? 안녕하세요? 여기는 무슨 일로 오셨나요?"

  이광혁의 인사에 김도현이 놀라는 얼굴로 물었다. 그러나 이광혁이 아무런 대답도 없이 자신의 손에 시선을 두고있다는 것을 느끼고, 무심코 손에 쥔 것을 들여다 본 김도현은 깜짝 놀랐다. 기껏해야 만 원 짜리 몇 장 일줄 알았는데 최명규가 준 것은 수표 뭉치였기 때문이었다. 김도현이 '다음에 다시 만나면 돌려주어야겠다.' 고 생각하며 수표를 주머니에 넣자 김응진이 한마디했다.

  "햐. 보기보다 부자시군?"

  이광혁은 노닥거릴 시간이 없었다. 뭔가 부탁할 일이 있는데 시간이 있냐고 묻자 김도현은 아직 수업이 한 시간 정도 남았다고 말했다. 이광혁이 기다릴 수 있다고 하자 김도현은 근처에 멋진 펍이 있으니 거기서 기다리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펍 이름이 블루 라이언이라는 말에 이광혁과 김응진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2000년 2월 16일. 수요일. 오전 11시 30분(영국시간) 런던 노스 액톤.

  "헤임. 고생 많았심니더."

  "하루 동안 고생은 무슨 고생이냐."

  반가워하는 김재수의 말에 최명규가 무안해 했다.  

  "별 일 없었지?"

  "없었심더."

  북적거리는 소리에 미키가 밖으로 나와보았다. 미키의 얼굴을 본 최명규는 실소를 터트렸다. 하루 사이에 미키 의 얼굴이 두 배 가까이 퉁퉁 부어있었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부끄럽다는 기색 없이 최명규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나이로 치자면 미키가 훨씬 연장자였으나 그는 최명규에게 함부로 하대하지 못했다. 최명규는 한 조직의 이인자였으며 어디까지나 도오야마의 부탁을 일선에서 처리하도록 명령받은 것은 미키의 조직이 아닌 최명규의 해운대파였다.

  "최상. 앞으로 우리 계획에 대해서 의논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유형남이 통역으로 나섰다. 미키의 주장은 간단했다. 아사히 맥주를 괴롭히는 한국의 맥주회사와 이를 돕는 한국의 깡패들을 처단하면 그만이었다. 한국 깡패들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다니는 일이 힘들겠지만 명성맥주 런던 사무소 건물만 지키고 있으면 틀림없이 나타날 것이라는 것이 미키의 생각이었다. 이점에 대해서 최명규는 영국의 경찰을 두려워했다. 싸움에서는 두려울 것이 없는 그에게도 외국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커다란 부담이 되었다.  

  최명규가 아무 대답이 없자 미키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다른 대안이 없이 따라온 최명규는 그제서야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2000년 2월 16일. 수요일. 오후 12시 30분(영국시간) 런던 소호.

  "잘 이해가 안 가는데요?"

  김도현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앞에 앉은 이광혁과 김응진이 무엇을 바라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저와 친구 한 명이 그 사무실 근처에서 놀고 있다가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람이 나타나면 연락해달라고 하시는 거로군요."

  "맞아.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몇 일만 고생해주면 보수는 충분히 줄게. 좀 도와줘."

  김응진의 말에  김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실실 웃으며 말했다.

  "얼마 주실 건지 미리 말씀해 주시면 안될까요?"

  이광혁이 너털 웃음을 터트렸다. 인상도 좋지만 성격도 시원시원한 김도현이 마음에 들었다. 명성맥주 직원에게 눈짓을 하자 직원이 지갑에서 수표책을 꺼냈다.

  자신 앞으로 지급된 수표를 바라보며 김도현은 살다보니 별 일이 다 있다고 생각했다. 오전에는 한국의 수표가 다발 채로 들어왔고 오후에는 개인 수표까지 받았다. 갑자기 학교 다닐 때 배웠던 "운수 좋은 날" 이라는 제목의 소설이 생각났다. 오전 내내 무거웠던 기분이 잠시나마 풀어졌다. 오늘 왕메이린은 등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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