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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단편소설]가난해진 부자노인의 지혜

운영자 2017.05.19 11:25:27
조회 252 추천 1 댓글 0
가난해 진 부자노인의 지혜

  

나이 먹고 우연히 교회에서 알게 된 고교선배가 있다. 그는 대단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일제시대 그가 태어나는 순간 부자 집 아들이었다. 그는 머리도 총명했다. 명문중고교를 거쳐 서울 대학생이 됐다. 대학생 시절 그는 유명일간지 경제부 기자로 들어가 승승장구했다. 집안의 뒷받침으로 취재비 걱정이 없고 기사를 쓰는 자가용으로 현장을 달리는 기동력을 구비하고 있었다. 아내는 큰 기업을 경영하면서 사교계의 여류명사였다. 제주도의 호텔과 별장 그리고 요트를 소유하면서 파티를 했다. 전국적으로 리조트와 예식장 그리고 고급 가구업체를 가지고 있었다. 남편인 그 역시 레일위에 오른 것처럼 거침없이 성공가도를 달렸다. 편집국장이 되고 신문사 사장이 되었다. 언론은 또 다른 막강한 권력이었다. 성경속의 욥과 같이 어느 날 사탄이 그에게 다가왔다. 동생같이 여기시라고 자처하면서 그 부부와 관련을 맺고 충성을 다 하던 사업가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큰 게이트 사건의 핵심이 되었다. 언론사 사장인 그는 평소 동생같이 여기던 그의 뒷바라지를 해 준 적이 있었다. 언론은 일제히 게이트 사건의 당사자는 깃털이라고 하면서 몸통이 누구인지에 대해 추궁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가 몸통으로 지적됐다. 평생 실패해 본 적이 없던 그는 한순간에 깊은 벼랑 아래로 떨어졌다. 구속이 됐다. 자금을 쓴 은행들은 동시에 원본의 회수조치가 떨어졌다. 부도가 나고 모든 부동산이 사라졌다. 채권자들이 매매형식으로 사실상 강제로 가져간 토지들에 대한 양도소득세도 수십억이 부과됐다. 성경 속 욥의 불행보다 뒤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는 신용불량자와 전과경력의 가난한 노인이 되었다. 그의 후배나 동료들은 “사람이 하루아침에 불행해 져도 어떻게 저렇게 될 수가 있어? 부부가 자살하지 않는데 참 대단해”라고 수군거렸다. 환갑을 넘어 바둑을 배우기 시작한 나는 그와 자주 기원에 가서 바둑을 두고 국수를 먹곤 했다. 그를 위로하고 싶어도 내게 위로할 자격이 있을까 의문이었다. 항상 힘들게 살아왔던 나는 부자의 전락이나 그 아픔을 공감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마음으로 위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바둑이 10급쯤 된다고 했다. 아무리 기를 써도 그를 이길 수가 없었다. 

“늙어서 바둑 배우는 자체가 무리인 것 같아요”

내가 투덜대면서 말했다.

“나는 젊어서 기자실에서 무료함을 때우기 위해 바둑을 배웠어. 유신시절 취재가 없이 그냥 지낼 때가 많았어. 그런데 놀이로만 하고 공부를 하지 않으니까 평생 급수가 늘지 않고 그 밥에 그 나물이야. 이 바둑이 사실은 어려운 거야. 나는 젊어서부터 일주일이면 두 세 번 골프장에 나갔어. 골프도 마찬가지야. 평생 백을 깰까 말까야. 언더로 가려면 치열한 노력이 필요한 거지. 난 춤을 배웠었는데 춤도 그래. 룸 쌀롱에서 배운 막춤이니까 점잖은 자리에서 다른 부인들과 추지 못한다니까. 좋은 부모 밑에서 승승장구했는데 무엇하나 진지하게 열심히 하지 못한 것 같아. 돈도 그래 많을 때 그걸 인식하고 잘 쓰지를 못했던 게 후회돼.” 

“세상 꼭대기에 계시다가 갑자기 벼랑 아래로 떨어질 때 마음이 어땠어요?”

“나는 억울한데 내 말을 들어주는 세상 사람은 어디에도 없더군. 내가 신문사 사장인데도 일간지에서는 내 이름까지 박아 구속영장이 신청된 사실을 보도하더라구. 사십년 쌓아온 모든 게 허물어지는 순간이었지. 그걸로 사회적 생명은 끝이 나는 거야. 얼마 전에 신문에 검사나 변호사 경찰청장이 악의 화신처럼 집중 보도된 적이 있지? 내가 그랬었는데 자신들은 억울한 면이 있겠지만 사실상 끝이야. 그게 세상이더라구.”

“그 순간을 어떻게 견디셨죠?”

“자살하고 싶었어. 그런데 내 경우는 마음이 약해서 그런지 죽는 방법을 모르겠더라구. 그래서 이렇게 빈털터리가 되도 살고 있는 거야.”

문득 그를 보면서 돈이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 물었다.

“만약에 말이죠 다시 부자가 된다면 그 돈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시겠어요?”

“다시 내게 돈이 있다면 정말 주변 힘든 사람들을 위해서 쓸 거야. 예수가 성경속의 부자청년에게 한 말처럼 참 엄 변호사는 몇 살이지?”

칠십대 말인 그가 내게 물었다. 나보다 대충 열다섯 살 가량 나이가 많았다.

“예순 다섯 살이죠”

“내 입장에서 보면 그 나이면 무든 할 수 있는 나이라고 보여. 돈이 아니더라도 책을 읽던 글을 쓰던 자기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그냥 열심히 해. 그게 사는 거라고 생각해.”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극한 박탈감의 정신적 고통을 겪는 속에서 우러나온 담백한 원액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를 위로할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따금씩 바둑을 두고 근처의 밥집에서 콩나물국에 김치로 반찬을 해서 밥을 먹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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