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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사촌의 변호2

운영자 2017.05.22 09:55:57
조회 244 추천 0 댓글 0
고종사촌의 변호(2)

  

나는 부산지방법원의 355호 법정 앞 복도 벽 아래 놓인 의자에 앉아 있었다. 시계가 오후 2시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가방에서 기록을 꺼내놓고 다시 들추어 보고 있었다. 재판이 텀을 두고 이삼주마다 있을 때는 재판 한 시간 전 쯤 다시 기록을 보고 복습을 해 두어야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 기록을 읽고 있는데 옆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육십대 말쯤 되어 보이는 바짝 마른 남자다. 그 옆의 여자는 지난번 법정의 방청석에서 소리를 치던 그 여자였다. 내가 신문을 요청해서 증언을 하러 나온 피해자라고 기록에 적힌 그 남자가 틀림없었다. 재판 시간다 되었는데도 정작 피고인인 고종사촌동생은 나타나지 않았다. 핸드폰에서 이름을 찾아 눌렀다.

“재판시간이 됐는데 왜 안 와?”

“미안합니다. 형님. 지금 차가 워낙 밀려서----”

전화 저쪽에서 고종사촌 동생이 변명을 한다.

“본인의 운명이 달린 재판인데 그게 사유가 되겠어?”

“갈께요”

어리석은 사람들은 더러 자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잘 모르는 수가 많다. 돈을 많이 받는 택시 승객을 위해서는 밤잠을 안자고 눈을 부릅뜬다. 그러나 정작 본인의 건강이나 중요한 재판은 의식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기야 인간이 그런 것 같다. 돈 한 푼을 위해서는 모든 정력을 바쳐도 영혼을 위해서는 거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증인석에 그 남자가 앉았다. 몹시 아픈 표정을 하고 있다. 가짜 같은 느낌이 든다. 검사가 먼저 그의 앞에 다가가 수사기록 속에서 고소장을 들추며 묻는다.

“본인이 고소하시면서 이거 쓴 거죠?”

“아니요. 이거 우리 집사람이 쓴 거라요.”

검사는 순간 당황한다. 고소는 직접 피해자가 하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경찰에서 한 진술이 모두 맞죠?”

“맞아요”

간단히 신문이 끝났다. 하기야 택시 운전기사끼리 길거리에서 시비가 붙어 욕을 하다가 한쪽이 넘어진 일이었다. 공소장이 달랑 두 줄이었다. 변호인인 내 차례가 됐다. 그는 아내와 함께 일방적으로 젊은 상대방 기사에게 폭행당했다고 의논하고 왔을 게 틀림없었다. 우회해서 조금씩 찌르는 신문방법을 구사해야 할 것 같았다.

“뒤에 승객이 있는데 차를 세우고 그냥 문을 박차고 달려나가 싸움을 하셨던데 왜 그러셨습니까?”

“저 친구가 내 차 앞에 끼어들어 유턴을 하려는 거예요. 그래서 클랙션을 울렸죠. 그랬더니 창을 열고 욕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나갔죠.”

“그래도 승객이 있으면 보통 참는데 한 성질 하시네요?”

“그게 아니라 욕을 심하게 해서.” 

“그래서 차를 일 차선에 그대로 놔두고 튀어나가셨나요?”

“일차선이 아니라 길가에 세워두고 갔습니다.”

수사기록이나 승객의 진술은 일 차선에 그가 차를 세워 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수사기록을 읽지 않은 그는 어리석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렇군요. 수사기록이 엉터리로 되어 있군요.”

내가 빈정거렸다. 그는 의미를 모를 것이 틀림없었다.

“수사기록의 진술을 보면 상대방이 미는 바람에 뒤로 발랑 나가자빠져 아스팔트 바닥에 뒷 머리통을 부딪쳤다고 하는데 진단서는 척추압박골절이라고 나와 있어요. 넘어져서 허리가 아픈 게 맞습니까?”

“허리가 아픈 게 맞아요”

“머리통을 부딪쳤다고 하셨으면 거기에 상처가 있는 게 먼저여야 할 거 아니겠습니까?”

그는 경찰관에게 자신의 피해를 과장하기 위해 그렇게 말한 것 같았다. 그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증인은 연세도 있으시고 평소에 척추에 골다공증은 없으셨나요?”

그때 그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면서 아내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눈으로 묻는 것 같았다.

“에이 물어보지 마세요”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법대위에 있던 재판장이 나서서 한마디 했다.

“부인한테 물어보고 대답하지 마세요. 자기 아픈 걸 왜 물어봅니까? 본인이 대답해야죠.”

재판장도 그의 엄살을 대충은 눈치 챈 것 같았다. 

“척추에 골다공증 없었어요.”

“그러세요? 여기 수사기록에 첨부되어 있는 진단서를 보면 척추에 골다공증이 있다고 써 있는데 의사가 잘 못 쓴 거군요?”

“-------”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신문을 계속했다.

“참 지난번 재판 때 부인이 방청석에서 노인을 밀어서 다치게 해 놓고 한 번도 전화연락을 하거나 찾아오지 않았다고 하는데 여기 문자 메시지 한번보시죠”

나는 사촌동생이 싸우고 나서 보낸 문자메시지를 보여주었다.

‘오늘 아저씨를 찾아 뵜습니다. 사모님을 뵈었으면 했는데 안계시더군요. 아저씨를 뵙는 순간 마음이 아팠습니다. 음식을 잘 드시질 못한다고 하시더군요. 내시경 검사를 해놓은 상태라고 하셨는데 결과가 좋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다음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그런 종류의 문자메시지가 여러 개 있었다.

“찾아온 거 맞습니다.”

그가 인정을 했다.

“여기 피고인한테 528만원 받으셨죠?”

“그거 받아가지고 치료비도 사실 안돼요”

“뒤로 넘어져서 허리를 삔 치료비로 부족한 겁니까?”

“아니요. 내가 속 여기저기 아픈 데가 많아요.”

“그걸 이게 기회다라고 해서 다른 택시기사에게 다 내라고 하는 건 너무하시죠. 뭐 보험을 든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내가 신문을 끝냈다. 

“몇 가지 재판장이 질문을 하겠습니다.”

젊은 단독판사가 그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서로 차에서 나가 서로 말다툼을 하고 두세 발자국 가면서 뒤를 돌아본 사실이 있으시죠?”

판사가 계속 덧붙였다.

“팔을 먼저 땅에 짚고 뒤로 넘어지셨죠?”

“그런일 없어요.”

“그가 잡아떼었다.”

하기야 자해공갈이라고 하더라도 그걸 입증할 방법은 없었다. 대충 재판이 끝났다.

  

“구형하시죠”

재판장이 검사에게 말했다.

“벌금 오백만원입니다.”

오백만원을 벌려면 고종사촌동생이 도대체 얼마를 달려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변론 하시죠”

재판장이 나를 보면서 말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하기 시작했다.

  

“먼저 방청석에 있는 피해자라고 하는 부부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 서 있는 피고인은 제 고종사촌동생입니다. 돈이 많아서 변호사를 산 게 아닙니다. 오해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여기 있는 피고인뿐 아니라 또 다른 사촌동생도 택시를 몰고 있습니다. 우리 집안이 원래 그렇게 가난한 집안인데 저 혼자 변호사가 되는 바람에 이렇게 동생들을 위해 뛰고 있습니다. 지난 번 재판이 끝나고도 이 부산법원 앞에 있는 챠이나 타운 중국음식점에 여기 서 있는 고종사촌 동생부부를 데리고 가서 제가 밥을 사 줬습니다. 이게 우리 집안 형편입니다. 검사님이 벌금형으로 구형해 주신 것은 징역형에 비하면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식당을 하다가 파산을 하고 택시회사에 들어가 월급80만원에서 매달 빚 갚는데 30만원을 내는 제 사촌동생이 오백만원을 벌려면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이런 구구한 사정을 얘기하는 변호인이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뭐 그렇다고 늙고 사건도 없는 제가 대주기도 사정이 여의치 않은 입장입니다. 그러니 재판장님께서 화끈하게 벌금을 깍아 주시는 게 나중에 천국 가시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좀 봐주십시오.”

변론을 마쳤다.

  

부산법원의 마당에는 봄비가 축축하게 내리고 있었다. 주차장 구석에 차를 대놓고 있던 아내가 카니발을 몰고 왔다.

“형님 정말 고맙습니다. 이번 재판으로 많이 배웠습니다.”

고종사촌동생의 얼굴에는 진심으로 감사하는 빛이 서려 있었다. 그의 옆에는 여러 명의 택시회사 동료기사들이 서 있었다. 

“저희가 점심이라도 모시면 안 될까요?”

기사 중의 한명이 말했다.

“아닙니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차가 봄비가 내리는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봄비에 산도 들도 길도 다 촉촉이 젖어가고 있었다. 나의 가슴속에서는 물안개 같은 기쁨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변호사 인생 2막에서 마음을 바꾸어 그냥 일을 할 때 생겨나는 기쁨이었다. 사회에서 쫓겨나지 않고 아직도 법정이라는 내가 설 무대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남을 위해 일할 때 받는 기쁨만 해도 엄청난 보수다. 세상이 주는 빡빡한 품삯보다 하나님이 주는 영혼의 기쁨이라는 보상은 비교할 수 없이 더 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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